그해 여름
창문 밖은 안개가 자욱하다. 집들도 침묵에 잠겨있다. 그 와중에도 안개를 헤치고 들려오는 것들이 있다. 새들의 지저귐, 닭들의 울음소리. 제주도 아침은 자주 이렇다. 사과 반쪽, 고구마 하나, 바나나 하나로 아침을 준비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은 오름에 가지 않기로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가 걷혔다. 며칠째 미뤄 두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안마당에 있는 텃밭에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문을 나섰다. 텃밭 앞에 낯선 것이 보인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 자세히 다가가서 보니 암탉이었다. “어디서 왔을까?”
닭의 몰골이 흉측했다. 왼쪽 눈이 허연 눈꺼풀로 덮였다. 아마도 실명한 것 같았다. 머리와 등쪽 부분의 털은 대부분 빠져 시장 가판에 널브러져 있는 생닭처럼 살이 다 드러났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병들어 죽었나?” 손으로 만지려니 찝찝하였다. 주위에 있는 막대기로 이리저리 건드려 보았다. 들릴 듯 말 듯 웅얼거릴 뿐 역시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무슨 병에 걸린 줄 모르겠지만 병든 닭을 앞마당에 놔두고 볼 수 없었다. 아내는 주인을 찾아 주던지, 빨리 자기 눈앞에서 치워달라고 한다. 삽 위에 담아 오십여 미터 떨어진 풀숲에 갖다 버렸다. 거기서 죽든지, 자기 집을 찾아가라는 의도도 깔렸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 의아한 생각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우리 집 주위에는 마당에서 닭을 풀어 놓고 키우는 곳이 두어 집 있었다. 수소문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앞집에서 키우던 닭들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수탉이 두 마리, 암탉이 열 마리쯤 되어 보였다. 아내와 함께 닭장 근처에 접근하자 마당에서 놀던 수탉이 목청을 높였다. 나한테도 달려들 듯이 기세가 등등했다. 아마도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암탉은 우렁찬 소리에 잽싸게 닭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암탉 한 마리는 뭉그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수탉이 암탉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암탉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바짝 엎드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수탉은 암탉 위로 올라타더니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부리로 쪼아 댔다. 암탉은 아프다는 시늉도 못 하고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엔 짝지기를 하나보다 했는데 괴롭힘이 오래 지속되었다. 얼마 뒤 화가 조금 풀렸는지 수탉은 암탉에게서 내려왔다. 암탉은 그때를 놓칠세라 사력을 다해 닭장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그날 보았던 암탉이 집을 뛰쳐나온 것인가. 생김새가 십중팔구 맞다고 단정했다. 주인을 찾아 주기로 했다. 마침, 앞집에 아주머니가 집에 있는 것이 보였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아주머니는 자기 닭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주머니가 나한테 말하는 투를 보니 “별사람 다 보겠네”하는 표정이다. 주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우길 수는 없었다. 뒷집에도 갔지만 아저씨는 자기가 키우는 닭은 종류가 다르다며 역시 아니라고 했다. 하긴 그 집은 오골계를 키우고 있어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텃밭으로 나오니 어제 갖다 버렸던 닭이 오늘은 조금 큰 돌 위에 앉아서 웅크리고 있다. 원래 살던 곳으로 갈 일이지, 왜 이곳으로 다시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니 데크 위에도, 창문 옆에도 누른 물똥을 퍼질러 놓았다. 텃밭에 채소잎도 쪼아 먹은 흔적들이 남았다. 이를 어쩐다. 근처에 다가가니 목청이 어제보다 조금 더 커진다.
쫓아내려고 해도 꼼짝하지 않는다. 비워두고 싶은 내 삶에 느닷없이 들어와 버린 타자의 자리가 당황스럽다. 삽으로 똥을 치우고 주변에서 흙을 퍼와서 그 자리를 덮었다. 나도 세 들어 살고 있는 형편에 같이 동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훨씬 먼 숲으로 내다 버렸다. 다행히 며칠 동안 닭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점점 지워내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난 새벽녘. 닭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오늘은 이놈이 마당 앞을 당당하게 활보한다. 털도 많이 자랐고 생기도 더 있다. 몸놀림도 잽싸다. 원래부터 자기 터전인데 왜 쫓아내느냐는 듯 내 주위만 빙빙 맴돈다. 나와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무성하게 자란 토란밭으로 쑥 들어가 몸을 숨긴다. 우리 부부가 싸우게 생겼다. 아내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놔두자고 한다. 애써 가꾸어 놓은 농작물을 다 먹어 치우는데 쫓아내야 한다는 내 말에 아내는 그래도 귀여운 면도 좀 있으니 지켜보자고 한다.
일상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암탉은 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친 날이 제법 있었다. 이제는 한쪽 눈만 안 보일 뿐이지 듬성했던 털도 다 자라났다. 윤기도 제법 난다. 걸음걸이도 날렵하다. 숫제 자기 집인 양 나를 봐도 도망가지를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서로 타협한 것도 아닌데 무성한 토란밭이 닭의 보금자리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안 보이는 날이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채소밭은 엉망이 되었지만, 평온한 일상은 유지되었다. 암탉은 출퇴근하는 딸처럼 아침에 어디론가 갔다가 밤이 되면 말없이 토란밭에 와서 자곤 한다. 나는 아침이 되면 닭똥을 치우고 닭이 잘 있는지 토란밭을 들여다본다. 모이를 따로 주지 않아도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솟는다. 물똥이 아닌 말랑말랑한 똥을 싸서 치우기도 수월하였다. 단지, 한쪽 눈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렸다. 어쩌다 생각이 나면 토란밭을 들여다봤다. 닭은 얌전히 숨죽여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보이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난 후 영영 암탉을 볼 수 없었다. 어디서 죽었는지, 들고양이에게 물려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은 궁금했지만 찾아 나서기는 싫었다. 무의미한 것 같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해 여름. 짧게 가버렸다. 내 인생도 암탉보다 그다지 다를 것 같지 않은….
찬바람이 분다. 심심하다.
--- 꼬꼬댁
안개가 자욱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수탉에게서 탈출할 기회였다. 같이 사는 동료들도 나를 왕따시켰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한쪽 눈까지 멀었다. 그래도 수탉에게서 벗어 날수만 있다면 최대한 멀리 가고 싶었다.
얼마나 걸어 왔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안개가 걷혔다. 어딘가 몸을 숨겨야 했다. 탈수 증상도 있는지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다. 마침, 손바닥만 한 텃밭이 보였다. 싱싱한 채소로 허기를 조금 채웠다. 조금만 쉬다가 가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났다. 그냥 밭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왔다. 일전에 내가 수탉에게서 폭행당하고 있을 때 본 얼굴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저씨는 아내를 불렀다. “여기 밭에 닭이 죽어있다.” 밭을 다 망쳐 놨다고 고함을 지른다. 막대기로 내 등을 쿡쿡 찔러 보더니 병들어 죽은 것 같다고 한다. 아내도 고개를 끄떡이더니 빨리 갖다 버리라고 한다. 아니라고 소리칠 힘조차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더러운 똥 치우듯 삽에 뜨여 버려졌다. 동네에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고 가시박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는 큰 구덩이였다. 나를 거기에 던져 놓고선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가버렸다. 가시박 덩굴 속에서 밤을 꼬박 보냈다. 썩은 냄새도 나고 아프고 무서웠다. “사는 것이 왜 이리 힘드노. 나만 이런 건가.”
다음날 기운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살려면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발버둥을 쳤다. 가시가 온몸을 찔러댔다. 쓰레기 더미 속을 몇 번이나 헤집고 난 뒤 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맨살의 상처가 도드라지게 아프다. 마침, 옆집에 사는 닭들이 바깥으로 우르르 나와 먹이를 쪼아대고 있었다. 나와 다른 종류였다. 그들은 나를 조금도 아는 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땅속에 벌레들을 사냥했다.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제 있었던 텃밭으로 와 버렸다.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커다란 돌 위를 횟대 삼아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난리다. 내가 물똥을 이곳저곳에 퍼질러 사놨다고 호들갑이다. 참 꼴불견이다. 자기는 아프고 하면 물똥을 안 싸는가. 여전히 기운이 없어 웅크린 채로 있었다. 이번에는 더 먼 숲으로 내다 버려졌다. 거기도 가시박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밤에는 들고양이도 지나다니고 노루도 가끔 찾아와 괴성을 지르고 간다. 주변에는 거의 다 펜션들밖에 없어 마땅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없다. 나를 싫어하더라도 그곳밖에 없었다.
숲속을 며칠 동안 헤맸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사료가 아닌 숲에 있는 먹이를 섭취했더니 기운이 한결 낫다. 이제부터는 내 목소리를 조금 내어야겠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구박당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자기도 세 들어 사는 주제에…. 텃밭으로 당당하게 입성했다. 아침 늦게 나온 아저씨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허름한 체육복 차림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고!” 그러고는 보기 싫다고 나를 쫓기 시작한다. 이제는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가 보다. 옆에 무성하게 자란 토란밭에 몸을 숨겼다.
머리까진 아저씨도 나를 포기한 것 같다. 그러나 늘 좌불안석이다. 아저씨는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 저걸 또 갖다 버릴 수는 없고 삼계탕이나 통닭을 해 먹지도 못하겠고…. 물론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자기들 속은 편안한지 모르겠다. 제일 힘든 것은 좀 쉬려고 토란밭에 들어가 있으면 틈틈이 머리를 내미는 통에 도저히 낮에는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염려되어 찾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혹시나 알을 낳은 것이 있는가 살피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암탉인데 알도 낳지 않는다고 또 구시렁거린다.
비가 그치고 나니 하늘도 맑다. 다친 눈을 빼고는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다. 몇 달간 숨어서 지켜보니 여기 살고 있는 수컷과 암컷도 사는 것이 별거 없더구먼. 일전에 내가 수탉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저들 부부가 너무 부러웠는데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큰소리가 집 밖으로 자주 흘러나오고, 사소한 일에도 잘 삐치고 우리 세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더군. 참 길고 더운 여름이었다. 어디로 가야 평온한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안개가 주위를 덮는 날이 또 오겠지.
대구수필문예대학 18기 수료
현 수필문예회 제11대 회장
공무원문예대전 2014은상, 2018금상, 경북일보문학대전 2016동상 등
ksundoo@naver.com
첫댓글 우왕 회장님
수필과 동화한편 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