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저 간판들을 어쩔거나
게재일 : 2000년 09월 16일 [7면] 글자수 : 2149자
기고자 : 유홍준
서울이 이런 저런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지저분한 도시로 지목될 때면 나는 정말로 화가 난다.
애국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구 1천만명을 가진 세계의 대도시 중 서울처럼 큰 강과 아름다운 산을 갖고 있는 도시가 어디 있느냐며 서울을 옹호한다.
서울의 거리가 지저분하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뉴욕.런던.파리보다 깨끗하다고 항변한다. 뉴욕은 맨해튼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통 같다.
파리의 거리에는 웬 놈의 개똥이 그렇게 많은지. 런던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레기를 거리낌없이 버려 무슨 맘보로 저러는가 알아보았더니 그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청소부를 고용해 치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서울은 너무도 깨끗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지저분한 도시로 낙인찍히고 있는 이유는 저 광란의 경지에 이른 간판문화 때문이다.
서울의 거리를 아무리 말끔히 청소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도 간판들이 저렇게 난무하는 한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지저분한 도시일 수밖에 없다.
한 건물에 서너개 붙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상권이 형성된 길에는 건물의 벽과 창이 모두 간판으로 싸발려 있다.
오래된 낡은 건물일수록 간판은 더욱 많고 지저분하다. 지하철 역이 있는 곳은 모두 건물마다 수십개의 간판이 붙어 있다.
결국 로터리 전체가 간판으로 포위돼 있는 셈인데 그 악머구리 끓듯 하는 간판문화의 절정은 지하철 노원역 입구에서 볼 수 있다.
지방으로 가면 더하다. 지방도시의 버스터미널과 중심가는 끔찍하다 못해 참혹하다. 대전의 고속버스터미널 앞 식당가는 음식점마다 차림표를 값까지 통째로 붙여 놓고 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아름다운 간판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보다 넓은 면적에 보다 큰 글자로 보다 강렬한 색을 구사할 따름이다. 그저 누구 목청이 더 큰가만 있을 뿐이다.
이 너저분한 간판을 가려주는 것은 오직 거리의 가로수뿐이다. 그러나 장사꾼 눈에는 이것이 큰 장애물이다.
그래서 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면 자기네 간판이 가리지 않도록 많이 절지해달라고 벌목인부에게 촌지를 바치기도 한단다.
밤이 되면 이 어지러운 간판은 형광등과 네온사인으로 더욱 현란하게 장식된다.
거기에다 요즘엔 교통의 요충지마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동화상(動畵像)이 돌아가고 최근에는 고무풍선 간판이 새로 생겨 술집.여관.음식점 사인보드가 골목길을 막고 있다.
그리고 이에 뒤질세라 모든 교회당은 시뻘건 십자가를 무슨 상표인 양 허공에 띄운다.
어느 외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어지러워 다닐 수가 없다고. 또 어느 외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천혜의 도시를 이렇게 아무렇게나 관리하는 나라는 없다고.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는 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다 모여 있다.
그러나 그곳의 간판은 건물 이마와 유리창에 검정색 또는 흰색으로 쓴 상호 이외엔 없다.
이 거리는 무채색 글씨 이외엔 황금색만 허용돼 맥도널드 햄버거집의 로고는 붉은색 대신 노란색으로 돼 있다.
간판이 어지럽기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이 잘못된 간판문화는 많은 부분이 일제 식민지지배의 잔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건축가는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차피 식민지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다면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에 받았으면 이런 쓰레기 문화는 없지 않았겠느냐고. 얼마나 한심해 이런 말을 다 하겠는가.
나는 문화창조에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옳지 않게 생각하는 입장이다. 원칙적으로 자율적인 통제를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의 간판문화만은 예외다. 이것은 견디기 힘든 시각적 폭력이고 이런 폭력은 공권력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문화관광부 소관인지, 건설교통부 소관인지, 지방자치단체 소관인지 나는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는 이런 무질서와 폭력을 다스릴 의무와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미술사>
첫댓글 잘배우고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