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부활절 알리기와 현우집에 가는 날.
바구니에 곱게 담겨진 달걀들을 보며 선생님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고 아이들은 침을 꼴딱꼴딱 삼킨다.
기도를 하고 현우네 집으로 나섰다. 아이들에게 예의 바르게 놀다 올 것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지막 점검. 두꺼비 선생님의 오늘 차림은 양복과 갈색털이 복슬복슬한 털고무신. 진달래 선생님은 한 소리 하시고 아이들은 웃는다. 나비도 웃는다.
문을 활짝 열고 현우 어머니가 언제나 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뛰어 나오신다.
신발도 곱게 벗어두고 조용히 간식을 먹는 아이들. 다 먹고 나니 제각기 흩어져 자리를 잡고 논다.
베란다에는 소꿉놀이를 하는 성민이, 석제, 다민이.
소파에는 단비, 동인이.
구석구석 숨겨진 놀잇감을 찾아내는 우영이.
전에 와 봤다며 익숙하게 잘 노는 동현이.
장난감 칼로 싸움을 하는 동주와 여경이.
어른들 곁에서 이야기 떨어진 것 담아 듣는 영민이.
이리저리 친구들의 노는 모습을 흡족히 챙기는 현우.
칼싸움을 하는 동주 여경이는 나비에게 칼을 빼앗기고 동그란 귀로 이야기를 듣던 영민이는 성민이 곁으로 보내어지고 다시 칼을 들고 온 동주 여경이는 칼을 빼앗기고 구석에 숨겨진 자동차를 꺼내달라고 조르는 우영이 진정시키고 약간의 협박을 곁들여 칼 다시 한번 빼앗고 식탁에 둘러 앉아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짧은 한 시간. 아이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학교로 간다. 벚꽃이 하얗게 핀 봄날 아침의 나들이. 봄날 같이 하얀 현우네 집에도 아이들 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과 현우의 마음속에 기쁨으로 기억될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온 것 같아 즐겁다. 현우 어머니,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요일 솔방울 산행. 진짜 산행.
가파른 진달래 약수터 길로 들어선 아이들은 연신 구르며 산을 오른다. 모두들 가슴부터 뿌연 흙투성이가 되었다. 나무숲 사이를 헤치고 오르는데 우리 소리에 놀랐는지 뱀 한 마리가 숨어 있다가 스르르 내려온다. 주변에 낡은 뱀 그물이 있던데 조심하길...
쉬어가는 길에서 아이들은 두꺼비의 손을 잡고 쓰러진 나무위로 걸어 올라가 본다. 점점 높이 올라가다가 뛰어내리기. 안하겠다고 하는 아이도 없이 모두들 열심히 오르고 뛰어내린다. 한 달 사이에 이렇게 강해진 걸까. 힘든 길을 오르면서도 (싫다( 소리 한번 안하고 울지도 않고 넘어져도 그냥 일어난다.
주현이는 만나는 나무마다 한 번씩 껴안아준다. 나무를 좋아하는가보다. 여경이와 다민이는 땅위에 가득한 낙엽을 주워 뿌린다.
아무래도 진달래 약수터는 무리일 듯 싶어 도중에 작은 계곡을 끼고 돌아갔다. 그런데 솔방울 친구들에게는 그 길도 만만하지 않다. 한 발만 곁으로 내딛으면 계곡 아래. 흙이 무너져 길이 살짝 끊긴 곳도 있다. 잔뜩 더듬이를 세우고 무너진 길을 감시하는데 마침 나비 앞에서 여경이가 통통 뛰며 장난을 친다. 그러다 그만 또르르...
얼른 여경이를 잡아 끌고 야단을 치려는데 여경이 눈이 동그래져있다. "조심해라." 뒤에 오는 단비도 걱정된다. 여경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뒤를 돌아보니 단비는 아예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앉아서 조금씩 걸어온다. 요녀석은 또 너무 겁을 내는군... 그래도 처음 치고는 잘 한다. 계곡길을 돌아 오래 되서 푸석해진 꿩밥을 씹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구름산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구나. 계곡 바위 사이에 풀과 이끼들, 나무들이 그림같다. 애기똥풀 하나가 혼자 꽃을 피웠다. 진달래가 다 지고 나면 애기똥풀이 아이들과 놀아주겠지.
약수터 가까이오자 석제가 놀란다. "어! 어제 왔던 데, 저기 길로 왔던 데, 여기 길로 왔는데, 오늘도 왔네!" 나비는 미처 몰랐는데 아이들의 눈썰미는 다르다.
무덤가에 가서 보니 할미꽃들이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흰머리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진짜 할머니 같다.
둘러 앉아 간식을 먹으며 햇살을 만끽한다. 매주 소풍오는 기분이다.
돌아가는 길, 저만치 앞으로 두꺼비 목사님과 동현이가 가는 모습이 꼭 할아버지랑 손자같다. 봄날 산책나온 사이좋은 친구같다.
교실에 꽂아 놓으려고 매주 올 때마다 개나리랑 버들가지를 조금씩 잘라 갔다. 그런데 수요일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오니 꽃병에 꽃이 가득하다. 매주 살금살금 꽃을 꽂는 나비가 안됬었는지 별선생님과 제비꽃 선생님이 뒷산에서 꽃 가지를 한아름 꺾어 왔단다. 교실이 환해졌다.
금요일, 텃밭에 고추랑 토마토 심는날.
아침엔 일호차 아이들이랑 앉아서 도깨비 동전 두개 만들고, 여경이랑 차 마시며 아까 싸운거 화해하고, 이호차 아이들이 도착하고... 모두 텃밭으로 출발!
텃밭만 가면 신이나는 우영이는 위로 아래로 뛰어 다니게 내버려두고 우리는 고추랑, 토마토랑, 케일을 심었다. 우영이는 텃밭 주변 도느라 제 차례가 되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두고 내려왔다. 혼자서 선생님들에 둘러싸여 토마토를 심는 모습이라니. 흐흣.
언니반이 토마토를 심고 내려올 때까지 우리는 개똥 그릇을 들고 개똥을 찾아다닌다. 날씨도 좋고 개똥도 많고 꾸덕꾸덕 말랐는지 안 말랐는지 손으로 만져봐야 알 수 있는 여경이. "간식먹기 전에 꼭 손씻고 먹자~" 오늘은 나비 애벌레인 다인이도 따라 나왔다. 아무래도 자꾸 신경이 쓰여 뒤를 돌아보니 성민이랑 주현이가 양쪽에서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아가를 보살펴주며 언덕을 올라온다. 느린 걸음으로 새로 발견한 숲길을 지나 마을 산책을 갔다. 토끼 선생님의 똥 보따리는 점점 묵직해지고 방금전에 똥 담았던 아이들의 그릇은 축구공도 되고 비행기도 되고 심지어는 장갑도 된다.
옛날에는 개똥 줍는 것이 마을 어른들의 아침 소일이였다고 한다. 마을도 깨끗이 하고 비료도 모으며 몸도 건강히 할 수 있었기에.
미나리 원두막에 와서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언니들과 나물캐는 진달래 선생님모습이 보인다. 조용한 마을이 금새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아이들이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가는데 동인이가 좀 다르다. 오른발을 잘 못든다. 혹시 똥이 마려운가 싶어 누려는지 물어보니 집에 가서 누겠단다. 다리가 아픈가? 동인이 뒤를 따라가며 계속 지켜본다. 발이 아픈가? 점심을 먹으면서도 계속 본다. 아무래도 똥이 마려운 것 같은데 학교에서는 못누겠는지 참고 있다. 어떻게 하나...
텃밭을 내려오는데 현우 얼굴이 이상했다. 눈가가 발갛게 된 것이 많이 울은 것 같다. "울었니?" "네." "왜 울었어?" "엄마가 때렸어요" 응? 그럴리가 없는데... 무엇이 억울했는지 나들이 가는 중에도 한 방울씩 눈물을 계속 흘린다. 진달래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해주신다고 하자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웃기 시작하는 현우. 그러다가도 생각이 나면 한방울씩 운다. 집에 바래다 주며 현우어머니와 이야기 해보니 현우의 오해였다. 새로운 현우의 모습을 본 것 같다. 친구들과 섞여 놀때에는 개구지고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아이들 마음은 참 여리고 다치기 쉬운 모양이다. 또 아물기도 금방이고.
석제는 요즘 몸이 부쩍부쩍 자라는 모양이다. 나들이를 갈 때마다 혼자 중얼거린다. "아침에 밥 먹었는데 왜 또 배고프지?" 아마도 앞으로 밥먹는 양이 좀 늘 것 같다. 현우네 집에 가서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모여 앉아 소꿉놀이를 한다. 그릇들과 음식들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재밌게도 논다. 또 치울때는 차근차근 가방에 그릇을 담아 넣는다. 제법 살림꾼이다. 금요일엔 많이 고단했는지 토끼 선생님과 참새 선생님 사이에 끼어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동주는 산에 가면 항상 가지를 손에 든다. 나비한테 들켜서 한 소릴 들으면 버리고 그리고도 또 줍고...이제는 꾀가 생겨서 나비가 보면 가지를 뚝 잘라 작게 만들어 "이건 괜찮죠?" 그런다. 현우네 집에 가서는 칼을 덥썩 들고 흡족해 하는 동주. 이녀석이 이제 슬슬 개구장이 형아가 되어가는 걸까? 하긴, 개월수로 보면 동주가 남자 친구들중에 제일 먼저다. 형아 되기전에 여자친구들과 어울려 알콩달콩 노는 재미도 좀 느껴보면 좋겠다.
우영이는 할머니댁에 다니러 갔다가 하루를 쉬었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텃밭에서 계속 뛴다. 친구들이 밭 사이길을 따라 종종 걸어갈 때 우영이는 아예 울타리를 넘어 밭을 밟고 감자 위에 서 있다.
날이 더워져서 아이들 목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영이도 연신 땀을 닦으며 긁는다. "선생님 가여워여~" "이따가 물로 씻자~"
요즘 영민이랑 친하게 지내는 우영이. 영민이도 우영이를 참 좋아한다. 개구쟁이 우영이랑 얌전한 영민이랑 참 좋은 짝꿍이 될 것 같다. 신발도 똑같고...
이번 주에도 동현이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두꺼비 가방에 매달려 가는 모습이랑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을 찍으려고 지난 주부터 시도를 하는데 요녀석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 다음 주엔 꼭 성공하리라.
금요일엔 진달래 선생님을 따라 나들이를 다니는데 역시 동현이가 진달래 곁을 뱅글 뱅글 돈다.
소란스러운 교실에서도 나비의 작은 목소릴를 알아채고 먼저 자리에 앉아 눈을 마주치는 동현이. 요녀석 참 신기하다. 친구들과 놀면서도 선생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다정한 목소리로 "선생니임~"하고 부르는 단비.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이상한 것도 많은지 질문이 그치질 않는다. "왜애~?" "왜 그럴까아~" 말투만 들으면 단비가 선생님이고 나비가 어린이인것 같다.
청소를 할 때에는 아무리 불러도 못듣는 단비. 맛있는 거 먹을 때는 한번만 불러도 달려오는 단비.
단비가 솔방울반에 들어온 것을 제일 반기는 친구는 영민이다. 함께 앉아 불럭놀이도 하고 밀랍도 녹인다. 그런데 아직 단비는 영민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쑥스러운가?
영민이가 (메타스퀘어( 나무 열매를 가져왔다. 너무 예뻐서 우리도 갖고 언니반에도 좀 나누어 주었다.
솔방울 같기도 하고 잣같기도 한데 더 작고...영민이 같다. 동그랗고 귀엽다. 그것으로 솔방울 반을 예쁘게 장식하려 한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힘들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는 영민이.
외동딸인 나비는 국민학교를 들어가서 일년간은 맨 앞자리에서 선생님하고만 놀았었다. 오히려 학교는 친구들이랑 안놀아도 공부만 열심히 하고 오면 됬었다. 그러나 자연학교에서는 선생님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영민이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를 오래 마음에 두고 힘들어 한다.
병아리가 딱딱한 달걀을 깨고 나오는것이 가여워서 달걀을 깨어주는 것은 병아리를 돕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아이도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모험을 한다. 그렇게 스스로 나와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민이도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년이 아니라 더 오래 곁에서 지켜보며 개구장이로 변해가는 영민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성민이는 이제 산에 많이 적응을 한 것같다. 데구르르 굴러도 벌떡 일어나 다시 간다. 오히려 언니오빠들보다 더 빨리 적응하고 가볍게 산을 탄다. 버릇 삼아 "산에 가기 싫어~" 했다가도 씨익 웃고 달려간다. 제가 힘들게 다니던 때를 기억해서인지 뒤쳐지는 친구가 있으면 꼭 달려가서 손을 잡아준다. 친구나 동생을 돌보아주는 마음이 참 곱다. 마음처럼 얼굴도 많이 달라졌다. 통통하던 아기볼이 언니 얼굴처럼 갸름해졌다.
다민이는 밥 먹는 버릇이 달라졌다. 나들이를 많이 해서인지 밥을 맛있게 먹는다. 반찬도 골고루 먹고 예전처럼 오래 밥을 두고 앉아있는 일이 없어졌다. 간식도 참 맛있게 먹는다. 햇볕에 얼굴도 예쁘게 그을렀다. 더욱 건강해보인다.
다민이는 오후에 언니들과 놀며 많이 배운다. 지도 그리기 놀이에 푹 빠져서 아침부터 열심히 지도를 그린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놀이를 한다. 그런데 아직 청소를 할 때에 함께 하지는 않는다. 더 기다려보자.
주현이는 현우네 집에 못갔다. 제비꽃 곁에 있느라 그냥 학교에서 다인이랑 놀았다. 둘이 묶어 꽃 봉우리반이라도 만들어줄까보다. 그래도 요즘 주현이 얼굴이 밝아서 마주치면 기분이 참 좋다.
다인이랑 성격이 잘 맞는지 어울려 잘 논다. 나들이를 할 땐 다인이의 손을 잡고 돌보아주는 모습에서 주현이가 자라는 것을 느낀다.
금요일엔 제비꽃의 바로 뒤에서 주현이가 넘어져 한바퀴를 굴렀다. "아~앙!" 울면서도 팔꿈치로 억세게 기어가 엄마 다리를 꼭 잡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아픈 주현이를 두고 나비는 한참을 웃었다.
아이들이 산에만 열심히 다녀도 만족스럽다.
예수와 부처와 간디를 가르친 참 스승은 자연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선생님의 도움보다도 자연의 가르침이 더 크다는 것을 수시로 아이들을 보며 느낀다.
섣불리 아이들을 지도하려는 마음으로 아이들 마음에 색을 들이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벽과 문이 있다고 한다. 상대의 마음 속에 숨은 문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다. 아이들의 문은 아주 커다랗게 열려있는데도 가끔 내가 그 문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여린 벽에 돌팔매질만 하고 돌아선다.
땅 위를 걷는 것은 기적이다.
팀낱한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기적을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초록의 나뭇잎, 우리 자신의 두 눈인 호기심으로 가득찬 어린아이의 까만 눈동자, 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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