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8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 백구영 목사
본문 (구약) 왕상 19:1-8
(신약) 빌 4:10-12
우리 교회에서는 2월을 경로의 달로 지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 49회 은급 주일입니다. 은급 주일은 평생 목회를 하시다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들을 위해 감리교회가 기도하며 남으신 생애 동안 병들고 궁핍함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돕기 위해 마련한 주일입니다.
현재 감리교 은급 재단에서 은급비를 받으시는 원로목사님은 403명으로, 지난해 은급비로 지급된 액수가 40억에 이르고, 혼자되신 사모님들은 237명으로 은급비의 반액이 지급되어 9억에 가까워 총 700명에게 50억 가까이 지급되었습니다. 평균 70만원을 받고 계시는 폭입니다.
현재 감리교 은급 재단의 재원을 본인들이 10년에 한번씩 한달 급여를 내는 기여금과 각 교회의 은급 부담금, 그리고 동산 75억, 부동산 120억에서 나오는 이자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원로 목사님들은 4-50명씩 늘어나고 목사님들이 장수하시는 경향이므로, 은급 사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은급 사업은 원로 목사님들의 복지 차원에서 뿐 아니라 은급 사업이 정착 되야 감리교회의 행정 질서가 정착될 수 있고 또 더 좋은 목회자 양성에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감리교회와 성도들과 그 자손들이 복 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감리교 은급 사업이 더 발전하여 최소한의 생활비 보조만이 아니라 경조 보조비, 의료비, 문화비 기타 후생복지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 되도록 교회는 기도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노후에 도움을 받는 두 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상 19:1-8 말씀은 기진맥진한 엘리야가 천사의 도움을 받는 장면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상에서 바알의 제사장 450명과의 대결에서 있는 정열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이때 아합왕의 비 이세벨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네가 엘리야이냐? 나는 이세벨이다. 내일 이맘까지 네 목이 온전치 못할 것이다." 이 통고를 받고 겁을 먹은 엘리야는 유대의 고원지대를 지나 이세벨의 손이 미치지 못할 사막 깊은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르밧의 과부도 떡을 날라다 무는 까마귀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마저 떠나신 듯 고립 무원의 적막한 상황이었습니다.
외로움과 피로와 고뇌를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그늘에 누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죽음을 자청했습니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어루만져 위로하며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으로 먹이고 정신을 차려 40일 40야를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빌립보 4:10-12절의 말씀은 옥중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받고 감사한 편지입니다.
로마 옥중의 바울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생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빌립보 교인들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사랑의 헌금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이 선물을 받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물 때문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더 기뻤던 것이며, 그 보다 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받을 복이 기뻤던 것입니다.
오늘을 위의 두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는 무엇으로 노종들을 도울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정신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5절에 보면, "로뎀 나무 아래 누어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하신 말씀이 있고 빌립보 4:10 하반절에 보면 "너희가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노종들에게는 정신적 위로가 필요합니다. 평생을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바쁘게 살던 분들이라 어느 날 갑작스러운 관계의 단절은 이성이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 역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할 만큼 탈진과 고독감은 견디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날 엘리야는 그보다 더한 시련을 받을 때도 450명의 바알의 제사장들과 맞설 때에도 혼자였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 만큼 당당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갈멜산 상에서의 흥분도, 순교자적인 용기도, 동정을 구할 이유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할 형편도 되지 못할 빈사 상태에서 죽기를 자청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동정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버림을 받았다고 느낄 때 이런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 생각해 주고, 누군가 위로해 주고, 누군가 어루만져 줄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 오늘의 천사이겠습니까? 고독감에 빠져 있는 노종들을 생각해 주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신학교 은사는 두 분이 살아 계십니다. 박대선 박사님과 김철손 교수님입니다. 언제나 카드 한 장 보내드릴 뿐인데도 감사의 답장을 보내십니다. 카드 한 장에도, 감격해 하시고 고마워하시는 노종들을 생각하고 위로해 드리는 손길이 오늘의 천사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천사들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 잊고 있기에 노종들은 고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오늘의 천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질적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6절에 보면,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신적 도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로뎀 나무 아래 누어 죽기를 자청했던 엘리야에게는 천사의 어루만짐이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수 있었으나 40주 40야를 걸어가야 할 힘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또다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신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 가운데는 노인들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겐 "늙어 보면 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질이란 젊은이들에게는 편리한 수단이지만 노인들에게는 보호의 수단입니다. 편리의 수단은 없으면 불편하지만 보호의 수단은 없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관계있는 노종들을 기억하고 물질적으로 돕는 일도 좋은 일이나 그보다 더 제도적으로 은급 사업이 발전해 가도록 돕는 일은 더 귀중한 일입니다. 이 일은 원로 목사님들만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은급 사업의 바른 정착은 앞으로의 감리교회를 더 청렴한 교회로 만들어 갈 것이며, 목회자들을 더 청렴한 목회자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능한 젊은이들이 사역의 길로 들어서기 더 쉽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으로 노종들을 공궤하는 손이 오늘의 천사의 손입니다.
셋째, 영적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8절에 보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하였고 빌립보 4:10절에 보면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싹이 남이니―"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한 것은 영적 도움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를 크게 기뻐하게 한 것은 영적 도움입니다. 바울 사도는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가르침이 싹이 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며 이 선물은 바울 사도에게 보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큰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호감을 갖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시고 더 큰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빌 4:18하반절에서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서는 갈라디아 4:15절에서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했던 것입니다.
스승의 기쁨은 제자들이 성공하는 것이요, 사상가의 기쁨은 후학들이 자신의 사상을 크게 발전시키는 것이요, 장인의 기쁨은 자신의 작품이 오래도록 명품으로 남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노종들의 기쁨은 그들이 뿌린 씨가 잘 자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해 드리고 끊임없이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도 영적 도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뿌린 씨가 싹이 나고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보다 더 큰 영적 도움은 없습니다.
서예가들의 글씨에는 낙관이 찍힙니다. 유명한 명화에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 낙관이나 서명을 보면 작가를 압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에는 서명이 없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의 대작을 완성하고 밖으로 나와 자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들어가 자신의 싸인을 지우고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이 놀라운 대 자연을 지으시고 서명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작품에 서명을 남기다니―"
그 후로 그는 그의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알아보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것이 더없이 기뻤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3서 4절에서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하였습니다.
누구나 일생을 바친 일이 결실이 없을 때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풍성한 결실이 있을 때 보람과 긍지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의 열매는 노종들의 영적 도움일 뿐 아니라 마지막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생을 정리하는데도 영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하나 궁핍하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족의 비결입니다.
노종들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도와 은급 사업을 성공적으로 성장 시키셔서 자자손손 복 받는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