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동서커피문학상 맥심상 / 김남숙/ 엄마와 두부

[지음]

엄마의 두부

  맷돌이 툇마루 한쪽에 눌러 앉아 있었다. 3년 전 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엄마가 쓰던 것을 가져온 것이다. 처음에는 주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가 성능 좋은 믹서기에 자리를 내주고 밖으로 물러났다. 비를 맞고 먼지를 뒤집어 쓴 맷돌은 제가 누구였는지도 잊은 듯이, 입을 헤 벌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물을 부어가며 묵은 때를 벗겨주자 맷돌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어처구니를 돌리는 동안 엄마는 국자로 불린 콩을 맷돌 주둥이에 떠 넣어 주었다. 매판 위에 앉아 있는 아랫돌과 윗돌의 엉거주춤한 자세에, 어처구니마저 헐거워져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긴 세월이 흘러 닳아버린 수쇠와 암쇠를 겨우 맞추고 나니 부드럽게 콩이 갈리는 느낌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젊은 엄마는 초저녁잠이 많아 두부콩을 물에 담가놓고도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잠들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늦게까지 책을 보고 있다가 잠이 깬 엄마와 함께 맷돌을 돌렸다. 엄마는 곱게 간 콩을 커다란 무쇠 솥에 넣고 불을 지폈다. 나는 타닥타닥 콩깍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는데, 시험 전날에는 밤새 공부를 하다가 부엌으로 난 봉창을 통해 두부 만드는 것을 엿보기도 했다.

엄마는 무쇠 솥에 넣은 콩물을 나무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였다. 이윽고 나무로 만든 두부 틀에 베보자기를 깔고, 간수로 응고시킨 순두부를 바가지로 퍼 담아 꼭 싸맸다. 그 위에 나무판자를 덮고 누름돌을 올리는 과정의 엄마는, 마치 제사를 관장하는 제주처럼 경건해 보였다. 순두부의 물기가 빠져나가 두부가 만들어지는 동안, 엄마는 부뚜막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두부에 적당히 물이 빠져 있는 시간에 벌떡 일어나, 채 식지 않은 두부를 장에 내다 팔았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짚으로 멍석과 삼태기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깊어가면서 긴 밤이 무료해지면 동네 가겟방으로 화투를 치러 가셨다. 그때부터 두 분은 얼굴만 보면 다투었다.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는 맨 방바닥에 모로 누워있고 근처에 사는 이모가 와 계셨다. 아버지가 화투를 치다가 돈뿐만 아니라 콩밭까지 외지에서 온 화투꾼들에게 넘어갔다고 했다.

  여러 날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던 엄마는 내 고등학교 합격통지서를 보고 몸을 추스르셨다. 그때까지 집을 나간 아버지는 소식이 없었다. 엄마는 광에 있는 항아리에서 콩을 꺼내 물에 담그면서 나에게 밥을 하라고 이르셨다.

  그날도 엄마는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두부상자를 머리에 이고 읍내 장으로 나가셨다. 입학금을 내야하는 마지막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 큰돈이 어디서 나올까 싶어 나도 초조해졌다. 보통 점심때 돌아와 다시 콩을 물에 불리던 엄마는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 양옆은 과수원과 숲이 우거진 산이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엄마를 만나 함께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무서움을 참고 걸었다. 그믐이었던지 달빛도 없이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갑자기 길옆에서 무언가 후다닥 산속으로 뛰어 달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시커먼 산짐승이 뛰어나올 것만 같아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30분 간격으로 버스 3대가 섰다가 떠나가도 엄마는 내리지 않았다. 밤이 깊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때, 나는 엄마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고등학교에 안 가고, 이웃에 살던 영자처럼 방직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자는 대학생 오빠 학비를 대주고 있는 효녀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 늦은 시간에 다 큰 계집애가 겁도 없이.”

엄마가 막차에서 내리며 꾸지람을 하셨다. 그 소리가 눈물이 날만큼 반가웠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등학교는 안가고 영자처럼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고 말했다. 엄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 카랑카랑한 호통소리에 풀숲의 벌레들도 숨을 죽이는 듯 사방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눈바람이 쌩쌩 불었다.

  엄마는 두부를 다 팔고 이모네 집에 들러 돈을 꾸어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입학금이 마련됐으니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나 하라며 내 손을 잡았다. 거친 엄마의 손안에서 꽁꽁 얼었던 내 손이 녹아 점점 따뜻해졌다.

  세월이 흘러,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손가락이 쇠갈퀴처럼 뻣뻣해지도록 일구었던 밭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쌀독이 바닥을 보일 때, 자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몸뚱이 하나로 평생 두부를 만드느라 늙은 당신에게는 비지만 남아 있으면서도, 반듯한 두부모로 키운 자식의 삶에 진흙이라도 묻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엄마 곁을 떠나 긴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한 달도 채 안된 어느 날 퇴근해보니, 혼수로 해간 냉장고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기운 집안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나는, 허리가 휘청거리는 충격을 받았다. 빛 한줄기 없는 터널 안에 갇힌 것처럼 막막해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아들과 딸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자식들을 어머님께 맡기고 맞벌이를 해서 빚을 갈무리하는데 꼬박 십년이 걸렸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도 자식들을 위해 쉬지 않고 맷돌을 돌렸지만, 엄마처럼 두부를 몽땅 내주고 비지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 하루를 이십 오 시간으로 살면서,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야간 대학원까지 공부도 마쳤다. 긴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아래 살고 있는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내 안에 지닌 엄마의 두부를 더 희고 단단하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냄비에 넣고 들기름으로 볶은 다음, 갈린 콩을 넣어 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서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어린 시절 부엌에 배어있던 비지찌개의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떠올랐다. 그 냄새는 어찌나 강하던지 무쇠 솥에서 콩물이 익어가며 풍기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덮어버렸다. 옹색한 집안 살림살이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던 냄새였다. 그때는 숱하게 두부를 만들면서 비지만 남기고 모두 장으로 내다파는 엄마가 야속했지만, 이제는 번듯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도 문득 마음에 허기가 몰려올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날만큼 그 냄새가 그립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고 간신히 일어나셨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어깨와 반으로 접힌 허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내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밤 새워 만든 두부를 머리에 이고 시장을 오가며, 엄마의 몸은 뒤틀리고 흐트러진 것이다. 돌로 만들어진 맷돌조차 닳고 닳아 한쪽으로 기울어졌는데 어찌 사람의 몸이 그 모진 무게를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설거지를 마치고 툇마루에 나가 엄마 옆에 앉았다. 언제 다시 쓰게 될지 모를 맷돌을 엄마는 마른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았다. 맷돌도 엄마도 치열했던 삶의 시간들을 잊은 채 기우뚱해진 몸으로 발그레 웃고 있는 것 같다.

[심산]

김남숙 선생님!
맷돌에 얽힌 사연을 읽으며 가슴이 찡해옵니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손으로 만든 두부를 먹어볼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쉬움을 느낀답니다.
옛날을 회상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상을 축하합니다.

[김남숙]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여린 몸 하나만으로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이제는 비지만 남아있는 엄마도 꿈 많은 소녀였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