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 우리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가족 초청주일로 예배하는데요. 우리 유초등부 청소년부 우리 학생들이 우리 율동 찬양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우리 함께 잠시 나와서 특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뒤통수만 보고 있어가지고 표정이 안 보였는데 다음에 누가 영상 찍어놓은 거 있으면 좀 봐야 되겠어요.
오늘 또 어린이 주일이기도 하지만 어버이주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버이 주일에는 우리 어르신들에게 특히 7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우리 하늘소망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선물을 드리는데요. 청년들이 좀 나와서 다 드렸어요. 네 그러면 말씀 드리신 분들이 앞으로 나오셔서 네 선물 전달과 요즘에는 이 배지 같은 걸로 이렇게 카네이션을 대신합니다. 우리 전달할 때 다른 분들은 박수로 네 우리 장로님은 70세가 아직 안 되셨지만 우리 성도의 어른으로 대표해서 선물을 받으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됐습니다. 예쁘네요. 우리 우리 교회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70대 이상같이 안 보이시는 분들이라 한참 찾아야 되는 분들인데요. 아무튼 그 모습 그대로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면서 우리 다시 한 번 힘차게 박수하겠습니다.
또 오늘 초청 주일로 초대돼서 오신 분들도 계시고 오랜만에 얼굴 보이는 분들이 계신데요.
누군지 여러분들 다 아시잖아요. 서로 이렇게 보시면서 잘 오셨습니다. 우리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네 우리 연수 승민이는 엄청 그냥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아요. 옛날 어렸을 때 이미지만 있는데 네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하고 또 우리 사랑하는 부모님들께 마음껏 감사하고 우리 가족들마다 더욱더 작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우리 하늘의 소망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이 신약 성경이 쓰일 당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의 시대적인 배경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우리 지금같이 평등한 시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릴 때 어떤 사람들만 숫자를 헤아렸을까요? 성인 남성 그러니까 여기 지금 보면 숫자에 안 들어가실 분들이 꽤 계시죠? 기분 나빠요. 그쵸? 그 당시는 성인 남성들만 숫자로 셌습니다.
근데 물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성인 남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약간 다르기는 해요. 그 당시의 나이에 성인은 20세나 18세가 아니고요. 그 당시는 13세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아이가 13살이 되면 여자 아이는 12살이 되면 성인식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 나이에 성인식을 하고 아주 이제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는 그런 축하의 시간을 넣는다고 해요.
근데 우리가 여기서 궁금한 게 도대체 왜 이 여인들 또 아이들의 숫자를 이 숫자에 포함하지 않았을까 특히 아이들 아이들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아이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어요. 하나의 인격이라고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른들의 입장으로 보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특히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이 뭔가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그렇게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근데 이런 모습이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의 예전에 유교적인 그런 전통에 따라서 장유유서라고 해서 어른들을 존중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좀 가르칠 대상, 그리고 부모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때가 참 많았습니다.
예전에 여러분들 어렸을 때 혹시 여러분들도 그런 시대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요. 밥상을 차리면 어른들 밥상과 어린아이들 밥상을 따로 차릴 때가 있었어요. 조금 시대가 지나면 같은 밥상에 밥을 먹지만 어른들이 젓가락에 손을 올리기 전에 먼저 손을 올렸다가는 아주 혼났던 그런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아빠들이 밥을 먹기 전에 애들이 먼저 좋은 것들을 먼저 먹여놓고 아빠들은 먹이는 시대가 되었는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시대적인 배경이지만 2천년 전에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좀 더 이해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삶을 사는 과정 속에 3년의 공생애가 있었어요. 33년의 공생회는 예수님이 다양한 사역들을 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아주 귀한 사역을 하셨어요.
그런데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잠잘 시간도 부족했고 또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정말 매일매일의 일상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주한 예수님의 일정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온 겁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예수님 만나서 우리 아이들 좀 축복해 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들 여러들 자녀들이 우리 예수님 손 한번 잡아보고 같이 한번 사진 한번 찍어보는 거 인기 연예인들만 와도 막 난리가 나고 얼마 전에 제가 석사천에서 운동을 하다가 공연하는 팀을 만났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아이들이 다 줄 서가지고 사진 찍으려고 막 대기하는 그 모습을 봤어요.
그런 인기 있는 사람들이 와도 그런데 하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가지고 그렇게 많은 역사들을 일으키시고 막 그런 공생애를 지내실 때 예수님이 그들의 머리에 손 한번 얹어주시고 기도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는 부모의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상황 가운데 그 아이들을 꾸짖고 내쫓습니다. 야 아이들 좀 데리고 가라고 왜 그랬을까요? 지금 시대적으로 약간 우리가 이해가 안 되잖아요. 그렇죠 지금 그랬다가는 아마 이 사람들이 사역자라면 당장 사표 쓰고 나가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예수님이 만약에 만나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면 예수님이 지금 굉장히 분주하게 그 공생회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당시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시간을 쏟는다면 그만큼 그만큼 하지 못하는 다른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지금 너무나도 중요한 일들을 해야 되는 아주 중요한 분인데 지금 아이들과 같이 아무런 가치 없는 그 당시에 그런 가치 없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놓는다면 더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 어렸을 때 이런 추억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각 이 마을 동네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방문을 합니다. 약장수예요.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예 없어진 것 같은데, 약장수들이 그냥 약만 팔러 오는 게 아니라 약을 팔기 전에 막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요. 때로는 막 차력쇼를 보이기도 하고 또 마술쇼를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을 막 이렇게 끌어모았습니다. 막 사람들이 뭔가 소리도 나고 뭔가 막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니까 막 몰려들기 시작해요.
근데 그럴 때 또 아이들도 궁금하니까 막 몰려들잖아요. 특히 아이들이 이제 조그마하니까 막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막 끼어들고 막 들어옵니다. 그때 약장수들이 뭐라고 할까요? 그렇죠 그렇죠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야.
그러면서 막 그 약을 홍보했던 그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왜 그랬을까요? 그렇죠 애들은 돈이 안 되니까요. 애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봐야 자기가 팔려고 하는 그 약을 살 수 있는 얘네들은 경제적인 힘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장사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이 아이들은 이익이 될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고 장사를 시작했겠죠.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가 읽어보면 그렇게 애들을 내쫓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예수님이 보시면서 애들을 그렇게 내쫓지 말라고 애들을 나에게 데려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애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한마디 말을 덧붙이셨어요. 하나님 나라에 이 아이들과 같은 사람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대적인 배경을 말씀드렸는데 왜 예수님은 바쁘고 분주한 그 스케줄 가운데 아이들을 금하지 않고 아이들을 받아주셨을까요? 사람들의 눈에는 효용 가치에 따라서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하지만, 예수님의 눈으로는 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하나의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이런 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말씀의 의미는 무얼까요?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순수해서 어린아이들이 마음이 착해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근데 여러분 우리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이 꼭 순수하고 착하기만 할까요? 요즘 뉴스를 듣다 보면 촉법 선연, 촉법 선연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립니다. 아이들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하고 착한 것만은 아닌 시대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시대적인 배경을 그대로 우리가 접목해 보면 이 아이들과 같이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또 존중받을 대상이 아닌 그런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받아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높은 성과를 낸 사람, 하나님 나라에 큰 일을 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힘이 없고 또 아무런 능력이 없고 죄인과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보시고 그들을 받아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이 말씀 가운데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무엇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계십니까? 사람을 만났을 때 뭘로 평가를 하십니까? 우리는 뭔가 가진 것 그리고 외형적인 것을 보고 판단합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 사람이냐 그걸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모아놓은 통장의 장고를 보고 여러분들을 평가하실까요? 아니면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애쓴 어떤 봉사와 헌신의 그 양을 가지고 평가하실까요?
하나님은 여러분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그대로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이 시각을 가지고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또 어떠한 가치 기준을 가지고 차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러한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위 아래를 따지는 갑과 을을 따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나는 을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러분들도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을 때가 있어요. 식당 같은 데 갔을 때는 여러분들이 갑이 될 때가 있겠죠. 또 여러분들이 여러분들보다 직책이 낮은 사람들 앞에서는 갑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위아래를 따지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절대 전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 그것은 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말씀 한 구절 좀 읽어보려고 하는데요. 야보서 3장 9절입니다. 3장 9절과 10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입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또 욕하고 비난한다면 이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이 야고보서의 말씀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 이것은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특별히 여러분들 가족 안에서 서로 축복하는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자식들은 우리 부모님들을 또 형제들을 서로 축복하고 사랑의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오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는 사실이죠. 특별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지만 아이들 힘이 없고 연약하고 아무런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그러한 연약한 존재들이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동력자들도 마찬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 얼굴을 잠깐 보시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작품이십니다. 좀 약한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얼굴을 쳐다보시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이십니다. 정말 걸작품이세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 나와 어떤 직급의 차이가 있는 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요. 또 때로는 요즘 을의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을의 위치에 있을 때 갑질을 당했다고 여러분들이 갑질을 하는 위치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냥 내 시각으로 내 판단으로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나의 인격입니다. 그들의 의견도 존중해지면서 내 부모의 무조건 강요를 따르라가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라고 하는 것이죠.
물론 지금 부모님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외형적인 모습의 최선과 내적인 모습의 최선이 좀 다를 때가 있어요. 요즘 부모님들을 보면 예전의 부모님들과 달리 정말 자녀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근데 너무 자녀가 원하는 것만 해줄 때가 있어요. 그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죠. 바른 가치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자녀들을 잘 이끌어줘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제자들의 태도가 우리가 볼 때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이 지금 너무나도 중요한 사역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하는 일이 당연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달랐죠. 아무리 힘없고 연약한 그 아이들이지만 한 영혼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들을 존중해 주시고 그들을 품어주시고 그들에게 안수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우리가 뭔가가 잘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내가 뭔가 봉사하고 헌신해서가 아니라 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 구원관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오늘은 어버이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며 당부드립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들 자신들을 사랑하는 그 부모님들의 손에 이끌린 바 되어 예수님을 만나러 왔죠.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예수님께 안수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이 마치 내가 스스로 사랑과 같고 내가 혼자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여러분들 부모님들의 정말 헌신과 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거예요. 가끔 우리 자녀들 보면 마치 내가 그냥 알아서 이렇게 자란 것처럼 착각하고 특히 사춘기 때 그런 말들을 쏟아내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자신보다 여러분들을 더 사랑하는 부모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기에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 세대들을 더욱더 존중해야 합니다. 존귀하게 여겨야 돼요. 그 부모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 부모님도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여러분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하듯 이제 나이가 든 부모님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여러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힘이 더해지지만 부모님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그리고 쇠약해져 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부모 공경은 성경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너무나도 강조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당연한 것도 이 당연한 부모 공경을 하는 그런 사람에게 놀라운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이거는 하나님의 은혜인지 몰라요. 믿음의 다음 세대 여러분 성경에 있는 첫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이제 정리해 볼까요? 오늘 어린이 주일, 어버이주일, 가족 초청 주일로 예배를 드리는데요. 오늘 이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서로를 바라볼 때 그 한 사람, 그 사람의 영혼,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한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작품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자녀들이 부모님을 대할 때 또 형제가 형제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이웃들을 대할 때 우리의 자세는 분명히 달라질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그렇게 대하면 우리 가정은 작은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이 5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의 모든 가정들마다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