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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중대를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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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식란 스크랩 레몬 누깔 사탕 !
이산호756기 추천 0 조회 266 11.03.31 11: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때 그시절

  • 글쓴이: Benhur
  • 조회수 : 779
  • 07.04.24 05:47
http://cafe.daum.net/mcrcncbk/PBj/4
 

1980년으로 기억되는데. 해병특수수색대 창설이후 장거리 수영을 처음 시작했지요, 포항 제철제3부두에서 약 1시간 PT로 몸을 푼 다음, 응급 환자 발생에 대비 frp 고속정을 모함으로 삼고, IBS 3대가 대원들의 상태를 파악 무전기로 연락하면서 약전 방파제까지 장거리 수영을 하였는데 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고, 둘씩 짝을 지어 출발 시켰고, 중간 중간 쯤 에서 누깔 사탕을 입안에다 넣어 주었더니 목마름이란 고통에서 벗어날수가 있었다고 들 합디다.

 

기억상으로두명이 기권을 하고 모두 좋은 성적으로 약전방파제 부두에 상륙 하여 기념촬영을 할때 언제 추었더냐? 조금도 추운 기색없이 모두 늠늠한 모습으로 기념촬영에 임함을 보고 역시 해병은 해병대다!

 

나는 1972년 SEAL/UDT 18기로 입교하여 21주간의 훈련중 15주간은 동해안에 위치한 양양군 현북면 기사문리, 해군 전진기지에서 받았는데, UDT 창설이래 최초로 16주에서 21주로 그리고 수온이 따듯한 진해만에서 수온이 차가운 동해안에 위치한 해군 전진기지에서 훈련을 받았답니다.

 

당시 UDT 대장이 조광현 소령인데(해사16기), 이분이 교육대장(중위) 당시 100여명이 입교하여 단 7명만(해병대 권영석 중사) 수료 시킨, 많은 숫자 보다 오직 특수요원들만 양성하는 분인데, 밤새도록 술마시고 새벽 구보에 따라갈 자가 없는 수퍼맨이지요. 오래전에 UDT전우회장을 역임하실때 만나서 점심을 대접해 드렸는데 과거에 많은 술을 마신 결과로 큰 수술을 하는 바람에 술을 전혀 못마시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져 UDT요원으로 편성, 독도까지 장거리 릴레이 수영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그만 정치적인 문제로...

 

동해안 파도와 낮은 수온을 무릅쓰고 매일 1.5마일 수영을 하다가 마지막 장거리 수영 4마일을 하였는데 실제 거리는 표류를 계산 하면 7키로가 넘었다고 합디다. 주문진 앞바다에서 출발 기사문리 앞 조도를 돌아서 방파제까지였는데, 처음 출발시는 파고가 낮았는데 조도 섬을 돌 때 파고가 높았으나 해군의강철수는 그 파도를 잘 이용하여 1위로 골인 하였지요.

 

역시 물개는 다릅띠다.이사람 진해에서 태여나 거기서 자란 사람이라 조류를 잘 타기도 하며 술담배 못하고 힘이 남아 돌아가는 사람이지요 .또 나이도22살 밖에 않되었고 나는 30살이였는데...

 

그때 UDT 교관들이 내 나이를 보고 저사람은 지옥주 쯤에 갈것으로 판명을 내렸다고 합디다. 왜냐하면 UDT 창설이래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해병대 이한종소위가 65년에(해간26기.추준호 수색대장69년 보다 선임) 26세 나이로 받았는데,30살이라면 할베지요,

 

당시에 교육대장은 미해군 sear/udt/eod를 나오신 위에서 언급한 그분!

얼마나 사람을 죽이는지 내가 이름을 개명을 시켰지요 조악마로 !

 

입교 3일전 나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백호로 눈섭까지 밀고 도구 동문 위병소 지붕 위에다가 중위 계급장과 명찰을 던져버리고 진해로 내려 갔습니다. 입교식 하루전 훈련대장 한테 해병대 10명(장교2-하사관8) 전원 외박을 얻어 경화동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다짐을 했지요,

 

그때 나는 늘 단검을 휴대하고 다녔기에 단검을 술상위에 꼿고 "갈 사람은 지금 가야지 훈련 중에는 절대로 못간다 만약 간다면 이 단검이 용서치 못할 것이다" 그날 밤 모두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다짐 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 마시고 놀았지요.

 

여기서 잠깐 단검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기에....

어느날 훈련을 마치고 도구 술집에서 수상한자를 보고 추격하다가 격투가 벌어 졌는데 그만 낭심 부분 급소를 맞고 정신을 잃어가는 순간 휴대하고 있던 단검으로 목과 어깨를 두군데 찔렀지요,

 

상대도 신음하고 나도 졸도하고 순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피를 많이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기에 그를 업고 포항병원으로 갔으나 예비된 피가 없는거라 내 피형이 맞기에 그에게 수혈을 해서 살려났는데...

 

그가 간첩이라고 난리가 났었지요, 중정에서도 오고, 나는 상급 받을 일만 남았다고들 말입니다. 그런데 간첩이 아닌 울능도 도동에 본적을 두고 무의무도식하는자로 판명이 되어 나는 졸지에 특수폭행 죄로 동문 옆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감되고 말았답니다.

 

수색대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당시 3소대에 친 동생 김윤식이(230기정도)와 대원들이 때를 따라 음식을 넣어주곤 했었지요. 성탄절 전날에 사단장 특명으로 6일만에 석방시키면서 피해자 합의서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때 행정병인 한성복이가 도와줘서 일은 잘 해결이 되었지요,

 

석방하던날이 바로 대연각 호텔에 불나는 날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TV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당시 신총칠대장(별세)님 한테 헬기로 우리가 가서 구출 작전을 하자고 건의하여 사단장님께 보고를 했는데 특전사가 구조 작업을 하고 있으므로 상부에서 거절하였답니다.

 

여기서 당시 우리 수색대 일꾼인 행정병 한성복이로 말을 하자면,

그때는 권투 그럽이 없어서 양말3-4켤레를 손에 신고 수통집을 뒤집어서 끼고 똑다기 단추를 누르면 그게 권투그럽이지요, 내가 당직 때는 소대 대항 권투시합을 할 때가 많았답니다.

 

근데  한성복이는 당시 고대 법대를 다니다가 병력을 필하기 위하여 들어온 학사데 어찌나 빤찌가 센지 한방 맞으면 모두 뻣어! 채격도 인물도 좋은데 그것보다 빤찌가 얼마나 샌지 이길 사람이 없었지 !

그래서 본부소대가 늘 승리를 했고, 그때 내가 별명을 "5함마"라고 지어 줬는데 이 오함마가 지금은 경무관으로서 인천경찰청장을 지냈다가 지금은 국정원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나 !

" 그 사람 성품이나 실력을 보아 그게 될 줄 알았지!"

 

그때 UDT에 입교한 해병들은 이렇게 외쳤답니다.

나에게는 계급이 없다.

나에게는 이름도 없다.

나에게는 휴일도 없다.

나에게는 인격도 없다.

그러니 늦가을에 만나자.(5월입교10월말경수료)

 

처음 입교할때는 공군첩보대에서 사병 15명, 육군 첩보대에서 장교2명 병13명, 그리고 해군은 장교1명 하사관 80명,수병20명, 해병대에선 장교는 포항 수색대에서 나하고 계충교 중위(수색훈련7기,해사25기.대령으로 예편)),그리고 연대에서 지원한 하사관 8명 모두 10명이 입교 했는데 4주만에 공군은 전원 퇴교 하였고,

 

육군은 박중위(정보사 대령으로 예편)하나만 남고 모조리 퇴교.해군은 장교 1명과 하사관 20여명, 해병대는 하사관 모두 부상으로 퇴교하였고 장교 2명(김영빈/계충교), 5개월(21주) 만에 수료식때 보니 처음 148명 입교 했는데 수료자는 30명, 그중에 해병대가 참모총장, 그리고 사령관 상을 받았지요.

 

 장거리 수영(8km)

1위: 해군팀인 강철수하사(UDT원사) : 2시간40분

2위: 해병대팀 김영빈 계충교 : 2시간 42분

그러나 모래 구보 ,16마일 구보, 80m잠영/ 70ft 스킨 다이빙 성적은 내가 훨씬 좋았지요.

 

장시간 동해안, 어름과 같은 찬 파도를 가르며 차고 나갈때, 교관 몰래 담배2가치와 성냥을 폭약훈련시 사용하는 콤돔에 싸서 빤쓰 속에 숨겨 놓고 얼마쯤 가다가 아주 골초인 계충교 중위(해사25기대령으로 예편)가 보좌관님 추운데 불좀 핍시다!

 

교관들 한테 들키면 벌점 먹기 때문에 교관들이 탄 IBS가 멀리 갈때 둘이 누워서 담배는 맞있게 피었는데, 그만 목마름의 갈증을 이겨보려고 어떻게 할수가 없어서 바다 물을 먹고 난 후 수영중 심한 두통과 갈증의 고통을 뼈 져리도록 느꼈답니다.

 

내가 수색대장이 되어서 수색대 창설 이후 최초로 4키로 장거리 수영 훈련을 할때 그점을 이해하고 대원들 하나하나 일일히 접근하여 입안에 레몬 누깔 사탕을 넣어준 추억이 그립습니다. 지금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 ! 정말 ! 보고 싶구나 ! 나의 부하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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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명제

김 영빈 대장님 ! 안녕하셨습니까?

졸리울듯할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듯 이렇게 지나간 35년전의추억담을 들려주시니 다시금 대장님이 생각납니다 옛날에는 참 대장님이 무서웠지요 그러나 지금은어렵고 쓸쓸한자 ..등 외롭게 바다를지키는 등대처럼 좋은길로 인도하시는 목사님으로 바뀌실줄은 어느누구도 짐작도 못했을겁니다.

 

대장님 말씀과같이 교육생에게 사탕하나가 목마름을 없에 주었듯이 이렇게 지난이야기이지만 우리 동우회원 들에게는 우리 해병특수수색대를 다시생각하고 동우회도 다시생각하는 기회가되엿으리라 믿습니다 (한성복은 한진호 치안감으로 경찰청 정보국 국장 )더욱건강하시길 진심으로빕니다 감사합니다 필승 05.04.27 15:50

 

BenHur

옛날 이야기지! 나의 과거는 참으로 험난했지! 그 모든 것을 이겨 보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상한 마음 ! 세상에 대한 분노 ! 이 모든 것이 나를 거칠도록 만들었기에 한때는 주먹세계에서,국토건설단에 갈뻔, 할수없이 해병대 장교로 입대, 이런 파란 만장한 인생 길 헤맴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지!

 

그래서 나의 나 된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더러운 직업인 목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지. 이길은 과거의 길보다 고독하고 더 험난한 길인데 과거의 길은 목표가 없었고, 지금의 길은 어려워도 뚜렸한 목표가 있기에 괴로우나 즐거우나 열차에 몸을 싫고 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단다.

 

명제야! 옛날에 남한테 무섭게 보였을지 몰라도 속마음은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라도 잃어본 적이 없었지, 남을 때리고 나서는마음이 아파서 술로 달래곤 했단다. 광진이 말썽 부리는 바람에 선임인 명제가 빠다 많이 맞았지! 잊지못할 추억이구나! 05.04.29 05:40

 

임 명제

그때 빳다 50대씩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그립습니다 대장님 더욱건강하십시요 필^^승 김앙필 이차종 여태경 임명제 였습니다 그러나 대장님을 미워해본적이없습니다 지금도 그리워하지요 ...........한국에오시면 만나고싶어하는 부하들이많습니다 05.05.07 00:08

 

BenHur

그때 순검 시간에 석유 곤노에다가 무슨 고기 구워 먹고 있었지 이차종인가... 내가 물어 보니 쥐고기라고 했는데 나를 놀리려고 쥐고기라고 했는지 아니면 정말 쥐고기냐 ?나는 그소리 듣고 순검이고 뭐고 얼른 도망나오다 쉽지 했지.. 정말 쥐고기냐? 05.05.07 04:14

 

임 명제

네 !정말 쥐고기였습니다 북문 동문에 쥐가너무많았습니다 언젠가는 고양이를한마리를 사왔는데 쥐가하도많으나까 쥐들이 고양이를 공격하였습니다 웃지못할이야기지만 정말입니다 그래서 죽도시장에서 제일 큰고양이를 사왔더니 그놈에게 밥을안주니까 쥐를매일잡아 저녁에자는데 꼭 저의배위아니면 겨드랑이 사이에서 쥐 크기가 거짓없이 몸통만 약25 cm 정도였습니다 하도약이올라 쥐를 잡아먹자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수한냄새를맛으시고 오셨는데 기겁을 하신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때에는 윗분을 놀라게하여도 기본빳다가 20대는되였지요 암튼 옛날이 그래도 그립습니다 이차종선배님이 쥐하나는 잘잡았었습니다 대장님은기역력도 좋으십니다 ** 그리고 오늘 조병관 형님 큰딸 결혼식이있었습니다 김광복 소대장님도함께참석하셨습니다 대장님의큰축복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물러납니다 .... 필 ^^ 승 임명제 올림 05.05.08 00:22

 

BenHur

 응! 광복이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야! 광복절날 태어났다고 이름을 광복이라고 부모님이 지어 주었데, 그사람과 나 그리고 계충교 대령 이 세명만이 해병특수수색교육대 7기로 훈련을 받았지, 그외에는 장교들이 받은 사람들이 없단다. 광복이는 나하고 육군 공수교육도 동기지.참 덕장이란다. 05.05.09 04:06

 

상어때 용사

김영빈 대장님 안영하세요 무척반갑씀니다 저 민병원 입니다 .지난추억이새롭씁니다 세월이어느새 강산이세번이나변했습니다 보고쉽씁니다. 김광복님 계충교님 강병고님 정말만나고쉽씀니다 건강하십시요 05.10.15 20:28

 

 BenHur

민하사 ! 참 반갑네 ! 민하사는 말없이 묵묵히 훈련 잘받기로 알려졌지. 부산에서 산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어떻든 무척이나 반갑다. 강병고,김광복이는 목사가 된줄 알고 있지.하는 사업과 가정과 자녀와 건강㎰?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드리면서..... 05.11.07 04:02

 

399기 허만훈

"김영빈"대장님~~399기 허만훈입니다...수색대첨가서 대장님실앞에서 노래불렀던 그놈이죠..벌써 27년전예기군요? 참제가몸이넘약해 고생많이했죠..대장님 절기억하십니까? 위사진보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80년도 22차교육중 사진이네요..청포도 사탕한알씩 직접입에 넣어주시던 사진제게도 고이간직하고있습니다...제대하고 동우회 싸이트에 첨들어왔습니다...

 

제큰아들놈이 요번에 수색대에들어갔기에 여차해서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직도 그때가 그립고 대장님얼굴 꼭한번보고 싶네요...항상 내인생에 제일자랑거리가 대장님과 함께했던 기억입니다..부디건강하시어 만나뵈올날 기다리면서......대구에서.. 07.03.14 22:44

 

Benhur

반갑다. 일찍 너의 글을 접하였는데 답글이 늦어 미안하구나! 아무튼 기쁘구나 이렇게 글로 대할수 잇다니 배달에 기수에 크게 얼굴이 나오는 장본인인지? 자주 연락하자 !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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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은 수색교육대장으로 윤종만 대위가 수고를 했지 그옆은 쾌속정을 운영하는 팀장이고, 밑에 사진은 나를 도와준 최종천 선임하사관과 보급관인 임보상이지 이 분들이 참으로 수색대를 위하여 수고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07.04.24 07:10
 

 

아래사진은 수색대 창설이래 최초로 장거리 수영르 마치고 약전 부두에서 기념 촬영을... 역시 약전부두에서 스쿠버 기초 훈련을 조교들의 지시따라... 감포에 침투한 무장공비 잡으러... 07.04.24 07:15
 

 

대장님 잘읽었습니다 옛날생각이 절로납니다 그리고 한성복은 (한진호)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서울경찰청장을 끝으로 지금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제2차장(차관급)으로 우리나라의최고의정보책임자로서 훌륭히 임무수행을 하고있습니다 대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역력도너무좋으십니다 필^^승 07.04.24 16:18
 

 

아니야 ! 내가 수색대장으로 부임할 때 현태규 선하가 주임상사로 얼마간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하셨고, 그후최종천 선하가 수색대 주임 상사로 나를 도왔지 봉섭이는 처음 나하고 얼마간 근무 하였다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간것으로 기억이 되는구나. 근데 현태규 선하 ! 이분 연락이 되는지? 해병대 마라톤 선수이자, 공수교육 최고고참으로 기억하지 참으로 인자하신 분이신데...그리고 임자가 근무할 당시 조00 대위가 기억이 나는데 그 후배도 연락이 되면 알려주기 바라네. 07.04.26 03:10
 

 

맞아 ! 조용일이야 ! 태권도를 한 경상도 사람인데... 강병고는 제대하고 중정에 근무하다가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 안수 받고 전라도 어느 도시에서 목회를 한다고 하던데, 키가 큰 충청도 사나이 우창덕! 몸이 땅땅하고 건강한 체격을 가진 정인철은 소대장으로 나와 함께 근무 했지! 모두들 보고싶구나! 07.04.27 03:52
 

 

그래도 어느 정도 기억은 있지 나는 당시 중정에 대북공작 큰 건을 하나 맡아서 일할 때 당시 김정호 사단장께서 직접 나를 만나자고 하셨기에 포항으로 내려가 식사를 같이 하면서 수색대에 대한 문제점들을 털어 놓으시면서 솔직하게 군 기강을 잡아 달라는 부탁이였지. 나는 그때 이미 쌍용그릅에 일자리를 마련해 놓은터라 미련 없이 해병대를 떠나려는 마음을 굳게 먹은지라 거절을 했지만 그 다음날 다시 점심 시간에 제차 요청하심에 6개월 기간만 군기강을 잡고 정상 퀘도에 올려 놓은 다음에는 꼭 제대를 시켜 달라고 약속을 하고 상경하여 쌍용에 김석원회장한테 이런 사정을 보고하고 정들었던 중정을 떠난지 35일만에 10-26 시해 07.04.28 04:05
 

 

사건이 발생하였지, 사실 처음 부임을 갔었을 때 김점주 중사는 없었고 박기택중사가 행정관을 약2-3개월 같이 근무하다가 김영휘가 맡아서보고, 그안에 박용수,황봉섭이는 떠났고 송남헌이가 통신관 대리로 근무하다가 역시 떠났고 이한우는 훈련차 떠났는데 아직도 군생활을 한다니? 김동근, 한창완, 엄대영, 김응철, 남종우, 나병균, 강능에서 횟집하는 서동근이 모두가 나와 함께 근무를 했었는데 그들은 이 싸이트에 들어오는지, 송수근이도 기억이 난단다. 그후 우리 수색대는 군기강이 확립되어 명실공히 해병대를 대표하여 각 훈련및 시범훈련에 좋은 성과를 거두곤 했었지, 그러나 국무총리 방문 때 칠포 해안에서 시범 훈련도중에 07.04.28 04:17
 

 

오래전 일들인데, 98년 장기금식을 오산리에서 은혜롭게 마치고 보호식 12일째부터 몸이 많이 호전 되었기에 제주도장병 찬양의밤 주강사로 3박4일간 일정을 마치고 miu에 같이 근무했던 남정진대령(장로/별세)이 훈련병들에게 말씀을 선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포항으로 갔었지 필승관에 약2000여 해병들에게 설교를 마치고 창완이와 함께 수색대를 방문했는데 창실이가 있더라 그날 동근이와 보상이 그리고 옛동지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지, 시내에서 신진철이도 만나고 병원 앞에서 박용수를 만났는데 중한 병이라 못알아보더라 그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들었지, 근데 창실이가 아직도 군생활을, 그리고 착하고 계집에 같이 조용한 천수가 07.04.30 03:49
 

 

벌써 세상을 떠났다니 ! 삭삭하고 차분하면서 임무에는 불평없이 잘 이루어 나갔던 천수가 !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생각이 나는구나, 오래전에 창완이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이 슬퍼했었는데, 하나 둘씩 혜어지는 것은 막을수가 없지, 아무튼 살아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숨쉬고 글도 쓰고 있음을 늘 감사드릴수 밖에 없구나.내가 고국방문길이 열리면 동작동 묘지에 가서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들의 비석들을 만지고 싶구나. 07.04.30 03:57
 

 

대장님의부하들에대한 깊은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장님의진짜회고록은아니지만 그래도 지난시절을회상하시며 옮겨주시는 글속에서 대장님과지금 같이있는것같습니다 아마도 대장님의글을 읽는분모두가 저와같은 마음일것입니다 더욱더보고싶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더욱더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필^^승 07.04.30 12:29
 

 

벤허 대장님! 맨 밑사진의 기억은 그 때가 비상출동이었는데 경주 토함산쪽으로 감포쪽으로 팀을 나눠 불순첩자 색출하러 출동하기 직전입니다. 당시 보안대 요원을 각팀에 배치시켜 같이 작전을 하였지요.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산악지대와 사찰 들을 이잡듯 뒤지고 수색하며 의심이 가는 자들을 만나면 검문을 했는데 우리를 보고 무척이나 겁을 먹었던 일이 기억나고 비상식량으로 1박2일 식사를 해결하니 그 때는 수색대 식당밥이 가장 그리웠지요. 당시 김 대장님 계실때가 수색대원에게는 최고의 꽃이었습니다. 전혀 못만날 것 같았던 그리운 대장님과 선,후배님들을 이렇게 까페를 통해서 만나 여러가지 정보와 소식을 교환하고... 07.05.21 10:13
 

 

무궁무진한 대화의 장을 열을 수 있도록 힘써 주신 조병관 초대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 후배님들께 재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존경하는 김영빈 대장님! 항상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충만한 목회사역 이루어 가시기를 이 곳의 모든 수색대원들은 힘모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07.05.21 09:22
 

 

대장님! 대장님의 설교말씀 중 지옥이라는 곳이 손끝에 적실 물 한방울이 없는 곳이라고 하셨는데... 수색교육의 절정 지옥주때의 일입니다. 농사꾼들이 거름하려고 사람 가슴정도 깊이의 땅을 파서 인분을 저장해 놓은 똥통에 뛰어들어 군가 한곡 부르고 머리까지 담그고 나오는 훈련이 있었습니다. 나오면 바로 도구해안으로 뛰어가서 바닷물 깊숙히 들어가 똥물에 베인 훈련복과 몸을 대충 씻었는데 이 때 얼마나 갈증이 났던지 나는 안으로 더 들어가 동해의 찬물에 입을 대고 원없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바닷물을 많이먹으면 많은 프랑크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07.06.04 14:00
 

 

지금도 22차 수색교육의 자부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때 대장님에 의해서 부대휘장이 지금의 휘장으로 바뀌었고 종합마크역시 새로이 제작하여 패용하고 다녔지요.. 그리고 대장님은 순전히 능력위주의 훈련으로 주어진 과업을 끝내면 마지막 페어가 끝날때까지 쉬게 해주신것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늦게나마 사진을 보니 참으로 많은 생각이 납니다. 멀리서나마 대장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필~~~~?!!!! 09.07.0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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