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이웃하고 있는 세 나라 사람들의 말소리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떼 놈처럼 시끄럽다”는 막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자카르타에 머물 당시 가끔 닐라이얀(Nelyan)이라는 중식당을 즐겨 찾았다. 어부라는 인도네시아말의 뜻을 가진 이 대형 중국음식점은 무척이나 넓은 데다가 숲속의 정원이 아름답기도 하고 가격도 무난했다. 그 식당은 손님의 숫자에 따라 20명이 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4〜5명이 함께 자리할 수 있는 대부분이 원탁 테이블인 자리들이 수십 개도 넘게 마련되어 있었다. 탁자 사이가 크게 비좁은 것은 아니었지만 넓게 트여있는 식당 공간은 손님들이 한창인 시간 동안에는 그야말로 북적이는 장터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풍경이 마치 장터와도 같이 왁자지껄하고 흥겨웠다는 것이다. 자카르타에 사는 화교들이 주로 그곳을 많이 찾는 듯했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식당은 마치 말싸움하는 사람들의 경연장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 옆에 자리를 잡게라도 되면 우리의 대화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이들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보통 어떤가? 자카르타에 있으면서 가끔 일본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던 곳은 그들이나 우리나 쉽게 빠져드는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장에서 앞을 두거나 때로는 뒤를 두어 라운딩을 하면서 앞서가는 팀 또는 뒤에 따라오는 팀의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인지 아니면 일본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인지는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가 있었다. 체구나 신체의 모습이 워낙 다른 서양 사람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팀의 사람들이 비교적 조용한 편이면 일본 사람들이기가 쉬웠다. 물론 목소리가 크고 높은 쪽이라면 그들은 보통 우리 한국 사람들일 테고 말이다. 그들이 우리 일본이나 한국 양측의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는 클럽하우스에서 게임 뒤풀이를 하는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그 구분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목소리가 좀 더 큰 쪽이 우리일 가능성이 컸다.
말소리에서 세 나라 사람들의 억양이나 크기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각자의 말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인 특성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4성이라는 높낮이를 가지고 있는 중국말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음역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된소리가 많지 않은 일본의 말은 목소리를 크게 높여야 할 만한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때문일 수도 있다. 내게는 우리들의 말소리가 일본 사람들의 말소리보다는 보통 크게 느껴지지만 역시 중국 사람들의 말소리보다는 작게 들리는 중간쯤의 크기라는 것 또한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처럼 우리가 그들의 중간쯤에 자리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그 외에도 수월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보기에는 각자가 즐겨 쓰는 색깔이 아닐까 싶다. 개개인이 선호하는 색감이나 색깔은 어떤 나라의 차이이기보다는 사람 개개인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사회의 대중적인 모임이나 행사가 이루어지는 종교단체나 관공서의 건축물의 모양이나 색채를 보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색감이나 색채의 향방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하면서 우리의 것을 비교해 보기도 하면서 그 차이를 느낀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전통적인 건축물의 색깔과 모양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그 색깔을 비교해 보면 그 전반적인 화려함의 정도가 서로 확실히 달라 보였다. 내 느낌에 중국 건축물의 색감이나 색채가 가장 화려한 것 같다. 궁궐의 단청은 물론이고 전통 가옥의 일반적인 색채도 일본이나 우리들의 것에 비해서는 훨씬 밝고 강렬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붉은 색깔이 건강과 풍족한 재화를 상징한다는 중국 사람들의 통속적인 믿음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해 보였다.
우리의 궁궐이나 전통적인 사찰을 보게 되면 적, 녹, 청 따위의 비교적 강한 색이 많이 쓰인 것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현란하거나 화려하다고 할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동양적인 건축물에 있어서 그 정도의 색감은 입혀주어야만 그나마 따스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너무 화려한 치장이 되었다 싶으면 중국집 같다고 하는 것도 그러한 색감에 대한 사회 간의 서로 다른 인식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동경을 여행하면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바깥쪽에서만 지켜볼 수 있었던 일본 천황의 황궁(皇宮), 일본의 토속신의 하나인 황금 여신을 모시고 있는 동경 수미다가와강 가의 아사쿠사(Asakusa)사찰, 에도(江戶)시대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비롯한 쇼군(將軍)들의 본거지로 사용되던 니조성(二條城), 일본 유일무이의 종파라고 하는 법상종(法相宗)의 본산이라고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장군의 특별한 배려로 폭격을 면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라는 교토(京都)의 청수사(淸水寺) 건축물 모두가 그 색감이나 색채는 우리의 것보다도 훨씬 단조로워 보였다. 단조롭다 못해 인공의 채색은 거의 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재 본연의 갈색이나 회색을 제외하고 쓰인 색깔이라면 검정과 흰색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또 달리 각각의 건축물에 있어서 얼핏 비교되는 것은 지붕의 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우리 고궁의 지붕 선을 우리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용마루 쪽을 향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사뿐하게 내려앉아 있는 우리의 지붕 선은 그야말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친 기교가 느껴질 만큼 지나치게 깊지도 또 무미건조하게 얕지도 않다. 이에 비해 중국의 이와 유사한 건축물의 지붕 선은 우리의 것보다 더 깊고 날카로워 보였다. 자금성(紫禁城)의 많은 궁궐의 지붕이 그러했고, 황실 정원 이화원(頤和園)의 고궁들이 그랬다. 우리의 것보다 더 바짝 쳐들려진 처마를 입체적이고도 화려하게 만들고 치장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고급의 건축기술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직선에 가까운 지붕 선을 지닌다. 일본 건축물의 상징과도 같이 사진이나 그림으로 소개되는 일본 신사의 본산인 동조사(東照社)의 정면 지붕 모습을 보면 지붕의 선은 거의 직선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다. 비교적 유려한 지붕 선을 지닌 건축물들이 없지는 않지만 보통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물들은 직선에 가까운 지붕 선을 가진 것 같다. 그들의 담담하고 검소한 성격이 직선이라는 꾸며지지 않은 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지진이 많은 그들이 보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직선의 지붕인지도 모를 일이다. 깊은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국의 지붕 선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한국을 중간에 두고 어찌 그리도 곧게 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세 이웃 나라의 색다른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성들의 전통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기모노(Kimono), 중국의 치파오(Qipao), 우리의 한복이 그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각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색감과는 달리 여성의 전통복식에 있어서만큼은 그 감각이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더 다채롭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그 복식을 착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순서로 복잡하기도 하고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 여인들이 짙은 화장을 한 후 착용하는 기모노는 그 옷을 입혀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힘이 들고 까다롭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의 여성들이 한복을 입는 것도 그 격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그러나 중국의 여성들이 즐겨 입는 전통복식인 치파오의 경우는 어떤가. 누군가 한 사람이 뒤에서 쟉크만 올려주면 잠시면 입을 수 있는 옷이 그들의 치파오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전통복식을 한 여성이 나타내주는 여성적인 미와 그 격조라고 할 수 있다. 균형 잡힌 여성의 몸매가 아름다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통속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일본 여성의 기모노는 아마도 그 어떤 요구도 충족시키기가 어려운 복식이 될 것이다. 기모노 한 벌의 가격이 수백만 원에 이르는 것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기모노를 입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품격의 수준은 아마도 그가 입은 기모노의 가격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한복도 그런 기준에서 볼 때 그리 높은 점수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비록 옥죄는 속치마 끈으로 가슴을 죽여서 여성의 아름다운 자태의 일부를 애써 숨기고는 있지만 유려하게 펴져 내린 치마의 흐름과 둥근 소매 깃, 우아하고 고상한 저고리의 다채로운 색채 등은 여인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더 바랄 게 없어 보인다. 한복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매우 우아하고 고상하게 드러내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여성들이 즐겨 입는 치파오를 보자. 차이나 칼라로 심플하게 부각되는 목과 턱의 모습, 몸의 곡선미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살폿한 허리선과 때로는 허벅지 부근까지 깊게 파여있는 열린 선 모두가 여성의 육감적인 모습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표현해준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한껏 뽐내야 한다는 자신감이 치파오에서는 역력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한복이나 더군다나 일본의 기모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 한복이나 기모노는 여성의 원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눌러 자제시키는 편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이 이외에도 서로가 이웃하고 있는 세 나라의 또 다른 모습들을 견주어보면 더 많고 재미있는 차이점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껏 찾아낸 것만으로도 서로의 사고나 생각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세 나라 사람들이 지니는 이러한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각 나라가 처하고 있는 인문지리적인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서로 유사한 문화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원천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자연의 환경이 각자의 모습을 가장 그들다운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말하면서 가장 쉽고 빠르게 ‘섬나라 근성’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나, 중국인들을 말하면서는 이른바 ‘대국 기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말이다.
l이렇듯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 한국이라는 세 나라의 차이점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각자의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야심(野心)의 크기가 아닐 듯싶다.
중국과 일본을 양쪽에 두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우리는 우리의 야심을 크게 키우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한 역사학도의 조사 결과와 주장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그간 반만년의 역사 동안 무려 936번에 달하는 외세와의 무력충돌이 있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우리의 야욕에 의해 빗어진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만주를 되찾기 위한 북벌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자구의 수단이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의 야심은 어떠했는가? 그들 모두가 서로를 넘보기 위해 우리에게 그들의 길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영토와 백성들을 그들의 이웃을 침탈하기 위한 기지와 수단으로 송두리째 빼앗기도 하였다. 중국은 지금도 중화 대국의 건설을 위한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고, 일본 역시 그들이 한때 꿈꿨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야심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차이가 그런저런 것이라면 대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바로 이와 같은 무모한 야심의 차이라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또 다른 비극과 고통을 안겨주는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기 따문이다. 서로를 각별하게 느끼며 바라볼 수 있는 다양성은 더욱 섬세하고 다채롭게 키워나가되, 지난 역사가 되풀이 증명했듯이 무모한 야심이나 그릇된 욕심을 키워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우리가 키워나갈 것은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 그리고 서로가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우호선린의 마음일 것이다. (2003. 9. 25.)
첫댓글 삼국의 차이점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셨군요. 명쾌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대륙성기질과 반도적성격, 섬나라근성이라는 단어로 삼국의 차별성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수천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각각의 공통분모 특징을 살린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도적 성격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및 발칸반도 국민성과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국가의 사람들과 교류해보았지만 이나라 국민성이 우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삼국문화의 차이점을 언어ㆍ의복등에
서 잘 설명해주셨어요.
문화란 물질을 다루는 문명과 대립
개념보다는 문명뿐만 아니라 언
어ㆍ의복ㆍ종교ㆍ제도ㆍ관습ㆍ정
치제도까지 몽땅 포함됩니다.
삼국문화를 좌우하는 중요한 세가지
는 지리적 여건ㆍ정치제도ㆍ관습
이 아닌가 봅니다.
중국이 중화사상이라면 일본은
사무라이정신 그리고 한국은
선비정신이라고 봅니다.
문화는 정체되는것이 아니라
변화되는데 오늘날 한국문화
가 많이 변질된것은 정치의
후진성과 좌우 진영논리에
부화뇌동하는 국민들 몽매
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