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18장은 교회 공동체에 관한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청해야 하는 주된 내용은 ‘형제에 대한 용서’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 문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셨고(18,18 참조),
복음에서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그야말로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조건 없고 한정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용서받은 우리는 또한 형제들을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갈라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용서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과 용기를 청합니다.
우리에게는 용서가 참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용서하고자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하십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용서와 사랑의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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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 사도 요한 신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오늘 한국 교회는 전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남측과 북측이 휴전에 합의한 지도 어느덧 칠십 년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적으로 여겨 총을 겨눈 세월이 이토록 길게 이어져 오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찾아가며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화해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희망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고, 지금은 언제 그러하였냐는 듯이 더 강한 수위로
서로 위협하고 비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반목과 대립이 계속되는 슬픈 역사에 우리는 언제 마침표를 찍게 될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요?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요한 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처음 남기신 인사는 다름 아닌 평화의 인사입니다.
산란하던 제자들 마음에 평화를 빌어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불안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가진 증오와 원망을
내려놓을 것을 주문합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주문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기도하기를 주문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내려놓고, 서로를 더 깊이 용서하고, 서로 일치를 이루고자
마음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일,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들입니다.
물론 칠십여 년 동안 쌓여 온 서로에 대한 깊은 불신과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뿌린 평화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언젠가는 그 열매를 맺게 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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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배 신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하지 말 것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1998년 안식년 땐 남쪽을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 걸어 다녔고, 2009년엔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소망은 한반도 북쪽을 걸어서 백두산 천지에 발을
담그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꿈처럼 보입니다.
오늘은 6·25 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골육상잔의 가슴 아픈 날입니다. 지금은 대화가 끊긴 지
오래고 신뢰도 바닥입니다. 무슨 화해요, 일치요, 통일인가 싶습니다.
로켓 쏘아 올리고, 로켓 쏜다고 군사훈련 강화하고 서로 위협적으로 으르렁 댑니다.
다른 나라와 무슨 동맹이다, 선언이다, 협정이다 하지만, 평화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습니다.
당사자들이 대화하지 않는다면 불안과 두려움만 가중될 것입니다.
1. 오늘 복음의 앞 단락에서, 주님은 잘못한 형제에게 여러 번 타이르고 충고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 하십니다.(마태 20,17 참조)
주님의 이 말씀은 그 형제를 무시하고 단죄하라는 얘기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주님은 세리 마태오를 사도로 삼으셨고, 이민족이라면 더욱 보살펴야 할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셨습니다. 다만 지금은 충고나 어떤 시도 등을 멈추라는 겁니다.
화해를 원한다면 상대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행동을 피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예지(叡智)는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북의 관계에도 이를 적용해봅니다. 대화가 안 되면 일단은 멈추는 것입니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를 돌아보고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겁니다. 성찰과 경청입니다.
왜 신뢰가 깨졌는가? 대화의 걸림돌이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화해할 마음이 있는가?
분단 상황을 정권 강화나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있는 겁니다.
남·북 모두 마찬가집니다. 이제는 청소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왜 북은 핵에 목을 매는가? 적화통일이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인가?
북의 경제력은 우리의 사백 분의 일 정도라고 합니다. 경제력이 바로 전쟁 수행 능력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모든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북의 입장입니다. 핵무장(전쟁 무기)을 생존 카드로
자신들의 삶을 확실히 보장받고 싶은 북의 심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인간관계에서도 형제끼리 불목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해결책으로 거듭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같은 민족끼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일치나 통일을 얘기할 때 힘이 약한 쪽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합시다.
힘 있는 쪽이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겁니다. 상대 존재를 인정해주고
가시 돋친 말을 삼갑니다. 오히려 서로 닮은 것을 말하고 동질감을 확인하며 기뻐합니다.
안보라는 말보다 평화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국제적인 제재(制裁)가 진행 중이라도 인도적인 지원은 아끼지 않습니다.
서로 왕래하고 경제 협력이 될 때 우리도 득이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입장에 설 때 대화가 잘 될 것입니다.
권력자들은 안보 제일주의를 내세웁니다. 압도적 군사력 등 전쟁 준비 운운합니다.
자신들이 뭔가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나 봅니다. 어떤 이는 전쟁이 나서 상대국은 다 죽고
우리가 한 명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전쟁은 전쟁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총포가 아니라 따뜻한 형제애입니다.
정치인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와도 마주 앉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상대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상대가 위협적으로 나온다 해도 놀랄 필요 없습니다.
원래 두려움 많은 개가 사납게 짖어대는 법입니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면 철책을 거두고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일치의 성령께서 조만간에 북쪽을 걸어올라 백두산 천지에 발을 담그게
해 주실지.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길 기도합시다.
의정부교구 서춘배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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