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수필문학협회 대구·전북 지회 자매결연 가져
2012. 5. 5(토) 오전 11시 청라언덕에서
글/수필가, 계간 『영남문학』편집인
영호남 수필문학협회는 대구, 부산, 전북, 전남, 광주, 울산 6개 지역 수필가들의 모임이다. 지난 1990년 발족하여 이듬해 부산 오스카 호텔에서 창간호 ‘완산벌, 낙동강에 핀 꽃’ 출판식 후 오늘에 이르렀다. 오직 ‘하나 되기’ 라는 창립목적을 가지고 매년 6개 지역이 돌아가면서 행사를 하는데 제21회 축제를 대구 손경찬 회장의 주최로 작년 10월에 경주 코모도 호텔에서 가진바 있다. 평소 손경찬 회장은 판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 판위에서 사람들이 만나서 신나게 놀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든 행사에서 탈피하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판을 만들고자한다. 그 일환으로 오늘 대구와 전북 지회가 자매결연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좋은 만남으로 이어질 그 판 속으로 걸어가 본다.
제90회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한 어린이 46명이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위치한 청라언덕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전북에서 활동하는 수필가로 평균나이 60을 훨씬 웃도는 중진 작가들이다. 두 달 전부터 약속된 만남으로 그들은 3·1운동길 90계단을 오르면서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설레고 뛰는 문학소년·소녀들이기에.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손경찬 회장은 며칠 동안 분주하였다. 6개 지역 중 첫 번째 자매결연을 갖게 된 그들과 어떻게 하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하는 숙제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그 염원이 장미 한 송이로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붉은 색 장미 한 송이를 바친다는 설이 있다. 손경찬 회장 역시 마음을 담은 선물과 함께 장미를 한 분 한 분에게 나눠주었다. 그것을 주는 사람도 받아든 사람도 진정 어린이의 맑은 모습 그 자체였다. 특히 이날 서상은 고문님, 허정자 고문님 그리고 허서경자, 김한성, 이은재, 손숙희, 백정혜 선생님 등 대구회원 10여명이 함께 회원들을 환영해주었다. 전북 김정길 회장은 “이런 만남이 영호남을 떠나 얼마나 좋습니까. 앞으로 진정한 문학교류와 협력을 하다보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구 손경찬 회장 역시 “상호 문학발전을 위해 노력하다보면 동서화합은 물론 남북통일의 염원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며 피력하였다. 오늘 자매결연 협약서에 두 회장 모두 일필휘지로 사인한 것처럼 두 지역의 앞날도 분명 밝을 것이다.
60여명 수필가는 김남옥 문화해설사의 도움으로 청라언덕 곳곳을 만끽하였다. 현제명 나무를 필두로 100년 전에 들여온 최초의 사과나무 중 한 그루를 보며 대구가 ‘능금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도 함께 알게 되었다.
한국의 몽마르뜨라고 불리는 청라언덕은 푸를靑 담쟁이羅 즉 푸른 담쟁이 언덕이란 뜻이다. 한편으로는 동산의료원 뒤편에 있다고 동산언덕이라고도 부른다. 청라언덕의 백미 박태준 시비 앞에서는 ‘동무생각’을 함께 합창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고, 노랫가락에 나오는 백합 같은 소녀 이야기로 웃기도 하였다. 담쟁이 넝쿨과 붉은 색 벽돌이 잘 아우러진 선교 박물관을 돌아 계단을 내려오니 왼쪽으로 드라마 ‘사랑비’에서 주인공 장근석이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던 세라비 다방이 보인다. 중구청 직원 오성희씨의 설명에 의하면 촬영당시 꾸며진 세트장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입장료가 5,000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당 옆 거리에 인물 벽화가 공공근로자의 솜씨라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계산 성당을 가로질러 영남대로를 걸어서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했던 서상돈 고택과 시인 이상화 고택으로 갔다. 현대식 고층 건물 사이에 비좁게 자리한 고택을 보노라면 가슴이 짠하였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루어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상화 고택 옆에 문화 체험관 ‘계산예가’가 새롭게 건축되었다. 이 전시실은 묻혀버린 근대 예술인들의 당시 생활공간과 활동상을 찾아 재구성해놓은 곳이다. 그런데 좋은 취지와 달리 건물이 고택과 어울리지 않은 너무나 현대적인 것이 어쩐지 불편하였다. 한국 근대문화를 이끌었던 예술인들의 문화유산의 보고답게 좀 더 멋스러울 수는 없었을까하고. 칼로 잘라놓은 듯 깔끔한 것이 때론 어설픈 솜씨보다 못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한국문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이상화, 현진건, 백기만, 근대 서양음악의 기틀을 다진 박태준, 현제명 , 대구에 서양미술의 뿌리를 내린 이상정, 박명조, 서동진,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 등은 계산동과 남산동 일대에서 살았다. 오늘 영호남 자매결연행사와 대구약령시 축제가 겹쳐 볼거리가 많아진 회원들은 몸과 마음이 더욱 분주하였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평소 보지 못하였던 갖가지 체험을 함께 하는 행운을 가진 셈이다.
시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팔공산 부인사로 향했다. 부인사는 동화사에서 수태골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위치해있으며, 신라 선덕여왕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근래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 부인사는 초조대장경의 봉안처로 유명한데 몽고침입 때 불타 소실된 것을 판각된 지 꼭 1000년 만에 복원 간행한 것이다.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 거란의 침입으로 전란의 위기에 처한 고려인들은 불력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염원을 담아 대장경 조성에 나섰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긴 불교 경전의 총서다. 1011년에 판각을 시작한 초조대장경은 선종 4년(1087)까지 장장 77년에 걸쳐 완성됐다. 흔히 고려 대장경이라면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떠올리지만, 이는 초조대장경 목판이 소실된 후 다시 제작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1236~1251)이다.
부인사 경내를 둘러보는 것으로 전북회원들과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떠나기 전 손경찬 회장은 버스에 올라가 대구를 찾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헤어지는 아쉬움보다 다음 만남의 설렘으로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산허리를 휘돌아 넘어갈 때까지.
날씨가 참 좋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만나고 헤어지며 또 만날 것을 약속하고 그렇게 내일로 이어지는. 이상화와 현진건의 자치동갑내기들의 우정, 박태준과 이은상의 동무생각으로 이어진 인연. 그들의 운명 같은 인연이 과거를 넘어 현재로 흘러 들어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값진 만남이 먼 미래엔 그들처럼 아름다운 일화가 되어 또 다음 세대로 흘러가길 바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