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풍권벽력상구천(風卷霹靂上九天) - 구천에 닿도록 벼락같이 바람을 일으킨다 1 파파팟! 이청악은 엉뚱하게도 앞으로 구르며 뒤쪽의 다섯에게 덮쳐갔다. 허점을 찌른 것인지 잘못 판단한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우측에서 빠져 나온 다섯까지 합쳐서 좌측의 10명이 그대로 칼을 내리쳤다. 슈아악! 번개같았다. 슈욱! 하나의 음향만 들렸다. 그러나 허공에서 찔러오는 5개의 칼끝이었다. 게다가 다섯은 덮쳐오는 이청악을 맞받아치지 않고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공격권 밖으로 이미 옮겨간 것이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이청악은 혼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스물은 완벽하게 바깥과 차단하게 되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절묘하더니만 결국은 이런 그림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림잡아도 기운상과의 거리는 20장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 그림이 그다지 이청악 일행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청악은 움찔했다. '영리하군.' 지혜로운 그조차 이런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서둘지는 않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으로 검을 더욱 힘없이 늘어뜨렸다. 1호는 자꾸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상황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니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는 있었다. '이십 대 일이다.' 그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무사라 해도 자신과 19명의 무사도 만만치 않다고 여겼다. 지금은 이름과 별호를 모두 버리고 들어왔지만 한때 밖에서는 알아주던 무사들이었다. 이제 그것은 과거가 되었지만 머지않아 찾아갈 것이라 여겼다. 반드시! 그것을 그는 믿는다. 꽉! 칼자루를 굳게 움켜쥐었다. 이제 결판이다. 그 시점이 찾아왔고 이 한판에 모든 것을 걸겠다. 그들은 그렇게 각오했고 다짐했으며 장담했다. '무엇이 두려우랴!' 츠앗! 눈짓에 따라 다섯이 이미 좌측으로 휘돌며 칼바람을 일으켰다. 도풍(刀風)은 날카로웠다. 이청악은 우측으로 따라 도는 다섯을 보면서 솟구쳐 오른 다섯은 무시했다. 뒤쪽에 남아 노려보는 다섯을 오히려 더 경계했다. 바로 1호부터 5호까지였다. 츠르르...... 파파팟! 옆으로 휘돌고 어깨를 비틀며 허리까지 뒤틀어 피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공격은 계속되었고 이청악은 조심스럽게 움직여 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검은 땅을 내려다보며 숨을 죽였다. 스파앗! 다섯의 칼끝이 오묘하게 좌에서 우로 그어 들어온다. 핏! 귀밑의 살갗이 얼얼했다. '자칫했으면.......' 목이 달아날 뻔했다. 피리릿! 칼끝이 휘어지며 이제는 꽈배기처럼 꼬아져 들어온다. 그것도 10개씩이나! 어디로 방어해야 할지 주춤했다. 츄츄ㅊ......! 세 번의 어깨가 비틀렸고 그의 몸은 껑충 뛰듯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더니 겨우 피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이청악의 검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파라라랏! 10자루의 칼이 하체를 집중적으로 쓸어왔다. 그것도 2개씩 1조가 되어 연달아 펼치는 것이었다. 여인이 마치 고무줄 뛰기 하듯이 이청악은 뛰어올랐다가 내려가곤 했다. 멀리서 본다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바로 앞의 1호는 잔뜩 긴장했다. 몸은 형편없이 움직이고 동작까지 우습기까지 했다. 그러나 1호는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눈이 살아 있어!' 그것이 두려웠다. 어디에도 한 점의 미흡한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뛰어오르는 그의 몸을 향해 16호부터 20호까지 허공을 공략하며 그대로 내리꽂혔다. 그 그림이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사족(蛇足)같이 보인 것이다. "아니야!" 그가 소리쳤지만 그 방향을 향해 하나의 검이 그대로 움직였다. 그냥 움직인 게 아니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두려워서인가, 흥분됨인가? 그런데 떨고 있음은 그 검뿐만 아니라 1호의 전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은 뻗어나가며 거침이 없었다. 스가각! 무엇이 끝난 것인가? 어떤 게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가? "물러서!" 방어가 먼저였다. 1호는 흥분하여 움직이려는 모두를 멈추게 하고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허공엔 핏방울이 여울져 하늘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유명객들의 표정도 우울했다. 5개의 머리통, 5개의 몸통...... 그리고 죽음. 이청악은 1호를 주시했다. '덤볐으면?' 아주 수월하게 보내줄 수 있었다. 인간의 무모함이란 바로 이런 곳에 있었던 것이다. 한번 내친걸음이라면 '에잇' 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람. 끝장을 봐야지. 그러나 그런 무사안일한 마음을 단 한마디에 잠재웠다. 바로 1호였다. 그것이 1호의 무서운 점이었고 그가 1호가 된 점이었다. 탈혼마객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런 자를 어디서 뽑아왔으며 어떻게 인정하게 되었는지 안목이 새삼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청악은 모른다.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 하나는 알고 있었다. '저자의 상관은 아주...... 무서운 자다!' 5명이 죽어서 15명이 되었지만 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1호 때문이었다. 1호가 건재했기에 그들은 무심할 수 있었다. 이미 다섯은 다시 채워졌다. 그런데 왜 그들은 20명만으로 그를 공략하려 하는가? "더 늘리지 그러나?" "알면서 말한다면 어리석소." 이청악은 1호의 대답에 머쓱했다. 사실이었다. 이 통로의 구조상 20명의 인원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인원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기운상과 설부용, 유흥립에게 보낸 20명의 숫자도 그렇다 1호의 안목은 정확했다. 1명이 늘어나면 1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그렇게 대칭시키면 아마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청악은 난처했다. 그러나 어차피 승부는 결정지어야 이 난관이 타개된다. '할 수 없지!' 피앗! 그의 몸이 검과 일체가 되어 그대로 솟구쳐 날아갔다. 그곳은 20명의 정중앙이었다. 1호는 잠시 당혹했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저 자식이 또 무슨 공작을......?' 슈슈슉! 생각은 멀어지고 그들은 그대로 칼을 내뻗었다. 떨어지는 감 찔러보자는 심산이었다. 그것이 제일 안전하고 적절한 방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진정으로 찔리도록 들어오는 게 아닌가? 10명의 복면인들은 흠칫했다. 칼을 철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찔러!" 어차피 죽이는 게 승자가 아닌가? 콰콱! 슈카카칵! 2개의 칼날이 이청악의 어깨를 파고들자 그대로 이청악의 검이 원형을 그린 것이다. 일컬어 흔한 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저런 무식한!" 1호는 놀라며 뒤로 2장이나 물러섰다. 저것이 이청악이 마음먹은 것이었다. 무자비하고 저돌적인 공격성이었다.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10명의 복면인들이 어른거린다. 목과 분리된 채 피떡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중앙에 이청악이 피를 뒤집어쓰고 그대로 서 있었다. 찌익! 상의를 찢어 십자(十字)로 한 뒤, 그의 어깨를 그렇게 묶었다. 지혈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입에 문 검을 다시 손으로 집어들었다. 1호는 당황했다. 그의 옆에 모두 모여들었지만 두려움이 눈빛에 아롱졌다. 이청악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매달았다. '됐다!' 슈잇! 그대로 솟구쳤다. 선제공격만이 재정비를 막고 빨리 끝낼 수 있다. 타타타......! 흩어진다. 그대로 파고든다. 검날이 어지러이 허공에 검기를 피워 올렸다. 따다당! 6개는 퉁겨 나가고 5개는 잘려 나갔다. 머리통도 함께 어우러져서 그렇게 허공에 수놓고 있었다. 나머지 복면인들은 두려움에 질리며 뒤로 물러났다. 1호의 통제도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침착해!" 그러나 이청악의 두 눈과 동작은 위험수위로 다가온다. 걸리는 족족 죽어 나가니 그들로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냉혹하고 빙정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은 인간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30명의 복면인. 삭! 하나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일제히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노가 극에 다다른 1호가 피묻은 칼을 들고 있었다. "또 물러난다면...... 내가 죽이겠다!" 순간, 정지했다. 그토록 주춤거리던 그들이 멈춘 것이었다. '저 빌어먹을 새끼!' 다된 밥에 콧물 빠뜨리는 새끼였다. 이청악은 자신의 이 행동이 잘 먹혀 들어간다고 판단, 빨리 마무리지으려 했다. 한데 1호란 자가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재수 없는 과정이지만 1호란 자, 대단했다. 그건 인정했다. 그러나 그래도 별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어떤 광채가 그의 머리를 타통시켜 놓았다. 그는 이 대결 도중에 괴이한 것을 발견했고 읽은 것이다. '광야검을 읽었다!' 자신에게 무한한 저 무공의 세계인 검법의 정수가 한눈에 보인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의 뇌리를 뚫고 지나간 섬광처럼 머리를 맑고 환하게 만들었다. 마치 설중경이 중주일도의 도법을 읽어 버렸듯이 그렇게 읽어 버린 것이었다. 마음이 괴이했다. 들뜬 것은 아니지만 미묘한 흥분이 고조되었다. - 베는 대로 흐르고, 흐르는 대로 놔두어라! 일체무심결(一體無心訣). 아주 간단했다. 한데 그 안에 깊은 묘결이 숨어 있을 줄이야....... 스잇! 검이 움직이는가, 마음이 움직이는가? "어엇! 이게 뭐야?" 스각! 2개의 머리통이 떠오른다. 본인도 모르는 검의 움직임인데 감히 상대가 어찌 알겠는가? 마음이 일면 검도 움직인다가 아니라 마음도 몸도 일지 않는데 검은 저절로 상대를 향해 움직인다. 상대가 본다면 황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청악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마치 하늘을 얻은 기분이었다. 패리릭! 어느새 앞을 가로막고 흐르는 대로 간다. 정심(精心)인가, 검심(劍心)인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걸리는 대로 목은 날아가고 모두들 다시 허둥대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절묘하여 안정된 그들을 다시 불안하게 만든 것이었다. 깨달음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이치라 누구도 알 수는 없었다. 오로지 이청악만이 알 뿐이었다. 1호의 다급한 음성이 이어진다. "가다듬어!" 무엇을 가다듬으라고 한 건지도 잊어버린 건가? 3열로 나뉘어 움직이는 30명. 그 옆으로 물 흐르듯 흐르는 이청악과 10명씩 3개조의 담벼락. 물은 항상 담을 타고 흐르고 그 담벼락은 물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쓴다. 그게 세상 사는 이치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막는 담벼락은 있었고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언제나 어디서든지 있었다. 이치의 정설이다. 그러나 그 이치는 어느 순간 깨어지고 만다. 물은 반드시 흘러 들어가고 담벼락은 넘쳐서 들어오는 물의 범람을 결국은 허용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또 올바른 이치였다. 슈카악! 섬뜩했지만 듣기는 그리 거북하지 않았다. 5개의 목이 휘돌 때, 궁설지는 이청악이 구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기괴한 것을 발견했는데? '저 사람은 눈으로 보지 않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인가? 눈으로 보지 않고 무엇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검이 사람을 판단한다?' 그녀도 말해 놓고는 어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따다당! 스물다섯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철벽을 수월하게 뚫고 나가는 것이었다. 인간의 눈빛으로는 그걸 파악하여 뚫으려면 어림도 없었다. 인간의 눈은 한계가 있었다. 보지 못하는 것도 있고 볼 수 없는 것도 있는 게 시야의 한계다. 한데 눈으로 보지 않고 검으로 먼저 움직여 뚫어 버린 것이다. 퉁겨 나가는 25개의 검과 아울러 그의 몸도 솟구쳤다. 슈익! 몸이 움직이는 각도와 엇갈린 듯하지만 검의 방향은 괴이하게 휘둘러졌다. 사람이 휘두르는 각도와는 전혀 달랐다. 사람이 휘두르면 일정한 각도가 있어야 하고 방향과 거리감각이 계산된 한도 내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이 검은 그렇지가 못했다. 25명은 생각도 못한 곳으로 검이 파고들자 허둥거렸다. "도대체?" 스가각! 허공에서 회오리처럼 휘도는 이청악의 몸체. 검은 따로 놀고 있었다. 몸체와 같이 돌아야 마땅한데 검은 휘어져 들어오고 있었다. 5개의 시신을 만들어 놓은 검이 다시 들어오자 20명의 복면인은 정신이 없었다. 마치 귀신이나 유령과 싸움하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1호마저 허둥댔다. 일정한 격식이 사라져 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도 몰랐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격식에 맞춰서 배우고 익혀 나간다.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당황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에 범벅이 된 얼굴은 차마 정면으로 볼 수조차 없었다. 본다면, 보는 사람마저 물들어 버릴까 겁이 난다. 슈슈슉! 그들은 되는 대로 찔러 넣으며 몰려다녔다. 그나마 뭉쳐서 있으니 희생자가 조금 줄었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 깨어질지 모른다. 상대가 워낙 천방지축으로 튀어 들어오니 안심이 되지 않는다. 슈르르......! 이제는 흩어진다. 사람의 몸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1호와 수하들의 갈림길이었다. "흩어져!" 파파파......! 20명이 5보 간격으로 원형을 그렸다. 아니 20명이 훨씬 넘어 버렸다. 30명...... 아니 40명에 가까웠다. 어떻게 된 일인가? 궁설지는 어리둥절하여 눈을 비비는데, 그녀 옆에 세 사람이 내려서는 게 아닌가? 기운상과 설부용, 유흥립이었다. '이들을 막아서던 자들?' 그들은 포위하던 인물들까지 모두 이청악에게 모여들었다. 이제는 40대1이 되었다. 그러나 이청악은 처음의 그대로였다. 10이든 100이든 마찬가지라 생각한 그였다. 네 사람의 눈길은 이청악에게 쏠려 있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소저?" 기운상이 어색하게 물었다. 그는 한때 그녀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몰랐고 지금도 그건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덮으려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덮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궁설지가 말했다. "검이 먼저 움직여요!" '검이......?' 기운상과 유흥립은 동시에 놀라고 있었다. 검이 스스로 움직여 오히려 사람을 이용한다? '주객이 전도됐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실제로 보이니 할 말도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시 동시에 소리질렀다. "일체무심검!" 광야검을 높여 부르는 것일 게다. 어떠한 사정이든 모양새든 광야검이 정통한 것이었다. 그들의 눈길이 이청악을 향하자 그 상황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이청악은 그냥 검을 쥐고 있었고 검이 저절로 움직이듯 너울거리는 것이었다. 40명의 고수들이 한꺼번에 그에게 몰려가자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들도 오랜 시간 동안 겨우 세 사람밖에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40명이나 된다면 누군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 불안은 이청악을 보자마자 해소되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스파팟! 검이 휘돈다. 사람이 휘돌고 허공에는 4개의 목도 같이 휘돌고 있었다. 검이 뻗치면 그건 어김없었다. 피하지도 못하고 방어도 불필요했다. 마치 파도가 휩쓸면 피해 가는 물고기들이 있고, 미처 피하지 못한 몇 마리가 떠내려가는 현상과 흡사했다. 그 상황은 반복되고 있는데도 물고기들은 어떻게 할 방도를 모르고 있었다. 이미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듯했다. 차차창! 20개의 칼날과 하나의 검날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 허공 높이 떠오른 이청악은 마치 정점에 다다랐다가 힘이 없어 떨어지는 물체와도 같았다. 일체무심경. 검은 일체무심검, 몸은 일체무심경이 된 것이다. 떨어지면 떨어지고, 흔들리면 흔들리고, 흐르는 물결대로 흐르는 그의 몸은 무엇인가? 슉! 그의 몸이 떨어진다. 츄츄ㅊ! 20개의 칼날이 그대로 솟구친다. 찌르는 각도가 절묘하여 빠져 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웠다. "오...... 빠!" "저런!" 검옥(劍獄)이었다. 검으로 만든 감옥에 이청악이 갇혔다. 그러나 이청악의 표정은 담담했다. 칼끝과 겨우 반 자 사이. 팽그르르......! 칼끝이 받쳐주는 격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대로 몸이 빙그르르 돈다. 그리고 솟구친다. 반탄력인가, 탄성력인가? 누구도 몰랐지만 그가 돌았던 게 아니라 검이 먼저 돌자 그의 몸도 따라 돌았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츄칵! 4개의 칼이 잘리고 4개의 목도 떠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었다. 32명의 인명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드디어 이청악이란 존재의 부각을 나타내는 것인가? 그의 무공이 살아나는 것인가? 이청악 앞에 서 있는 32명은 무사가 아니었다. 칼을 들었다고 모두 무사는 아니었다. 그들은 칼만 들고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가 되어 버렸다. 그 칼은 무용지물이고 막는 대로 잘려 나가고 움직이는 대로 허수아비의 목은 떨어져 나갔다. 30명......, 25명......, 20명....... 숫자는 어김없이 줄어들고 그들은 더 이상 물러날 데도 없었다. 덤벼들 수도 없었다. 그렇게 강한 그들이 저토록 나약하게 변했단 말인가? 휘릭! 그대로 내려섰다. 그의 검은 여전히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아니, 절대적으로 두려운 검이었다. 이청악은 슬며시 궁설지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1호를 보았다. "네 상관에게 전해라. 직접 나서라고!" 그것뿐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1호와 20명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주춤거리며 두 눈에 불안이 비쳤다. '적진으로......?' 쫘아앗......! 한데 기가 막히게도 20명이 물살이 갈라지듯 비켜주는 것이다. 그녀는 멍했다. 기운상과 설부용, 유흥립도 멍청이 있다가 움직였다. "빨리 가지." 이청악이 말하고 난 뒤였다. 궁설지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가능성이...... 있어!' 그녀는 더욱 그의 팔 안으로 어깨를 들이밀었다. 2 '느낌이 오는군.......' 설중경은 들어갈수록 그런 감각이 몸에 와 닿고 있었다.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이 없었다. 이 지루한 상황을 빨리 마감시키고 싶었다. 언제까지 쫓아가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누구든지 다가오리라 여겼다. 그는 다시 생각해 보니 딸이나 제자를 만나는 게 급선무가 아니라 판단되었다. '누구든지 명왕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그게 최관건이었다. 지금의 이런 허황한 시합 아닌 시합을 벌이는 과정도 모두 그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누가 먼저 시작했던 그건 상관이 없었다. 끝은 누구든지 죽어야만 끝이 나게 마련이었다. 만나지 않아도 된다. 자식이든지 제자든지....... 무사로서 태어나서 무림계에 몸을 담고 있다고 여기면 명왕 궁왕기를 먼저 죽이는 게 최우선이었다. 죽일지 죽을지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시도할 뿐이었다. 느껴지는 감각이 짙어온다. '두 명......?' 3 "허허허......!" 어처구니없는 웃음이었다. 그가 저렇게 웃어 보았던 적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의 저 웃음이 마음을 짓누르는 게 문제였다. 향금동은 탈혼마객의 미소 속에 비친 분노를 보았다. 웃고 있으나 극도의 분노는 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유명객이......!" 기가 차는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가르쳤는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 밤잠을 설쳐가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한데 패배라니, 그것도 그들이 가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움직이지 조차 못했다지 않은가? 이런 괴변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약하게 가르쳤는가? 적을 두고 물러서라 일렀는가? 그가 가르친 교훈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디서 튀어 나온지는 모르지만 엉뚱한 결과만 그에게 보고 되었다. 그 엉뚱함이 그를 분노케 하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않은 결과론이 나오니 그들로서는 엉뚱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이길 수 있었고 잡아오기는 벅차겠지만 머리통은 들고 올 줄 알았다. 한데 머리통은커녕 순순히 가도록 비켜주지 않았다 하던가? 말문은 이미 막혔지만 헛웃음은 흘러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허허......!" 향금동과 상무재는 긴장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호법이란 고귀한 명칭을 부여받았다. 그런 자리에서 저런 결과를 보고 받고 있는 탈혼마객은 어떤 심정일까? 그러나 잠시의 폭풍은 거세었지만 이내 사그러들었다. 역시 무표정의 그대로 돌아갔다. "향 호법, 그 아이들은?" "철령도와 파풍지가 설중경을 만나러 갔습니다." 상무재가 먼저 대답을 했다. 그의 제자들이 갔으니 으레 그가 말을 꺼낸 것이었다. 탈혼마객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상무재는 뭔가 미비점이 있다고 발견, 즉시 말했다. "살아 돌아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어라! 그런 각오라면, 됐군." 탈혼마객은 그의 한마디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문득, 입을 열었다. "갈라놓도록 하시오." "소저께서 그자와 동행하고 있으니 철저하게......." "괜찮을 것이오."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기운상과 그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두 호법께서 직접 처리하시오!" 향금동의 낯빛이 괴이하게 변했다. 상무재는 탈혼마객의 음성에 의미 모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말했다. "설중경의 심경이 엉망이 되겠군요." "그걸 노리는 것이니 그자라도 별 수 없을 것이오." 상무재는 철령도와 파풍지가 어쩌면 이번 싸움에서는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기운상과 설부용, 유흥립을 고립시켜 죽여야만 한다. 상무재가 고개를 들자 이미 향금동은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이제 시작이다.' 4 그긍! 기관 작동 소리 같은 데 이상했다. 지축이 흔들리는 감은 있었지만 그다지 강하지는 못했다. 이청악이 돌아보며 물었다. "설지, 이런 현상이 자주 있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끔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지금의 진동은 괴이했다. 드드드......! 갑자기 흔들렸다. 땅이 요동치고 천장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듯 난리를 쳤다. 주요 부분은 이청악과 기운상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부분이 산악처럼 불쑥 솟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겹쳐지는 것이다. 마치 그림과 영상이 겹쳐지듯, 사람이 지나가고 그림자가 따라가지 않고 흩어졌다 겹쳐지는 묘한 현상이었다. 철커...... 덩! "오...... 빠......!" 설부용의 음성만 메아리치고 있었다. 궁설지는 당황했으나 눈빛만은 침착하게 빛이 났다. 이청악은 그 순간, 도약하려는 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이려 했어도 결국은 갇히게 될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청악은 침착하게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설지 대체......?" 그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는 줄 그녀는 안다. 한데 그녀도 막막했다. 이런 기관장치가 있는 줄도 몰랐고 그녀조차 한 번도 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슉! 다짜고짜 이청악은 검을 찔렀다. 푹! 그대로 쇳덩이에 박혀들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뚫릴 만한 여분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이 광망을 뿌렸다. '두께가 무려...... 일 장이나?' 암담했다. 어떠한 힘으로라도 한계가 있었다. 천지를 개벽시키는 힘이 없다면 이건 어림도 없었다. 도전조차 허용이 불가능한 두께였다. 차라리 집채만한 바위를 부수는 게 낫지, 응용하자면 타란지석(打卵之石)이었다.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저쪽에 그들이 있다. 아직도 그 메아리가 들리는 듯한데 어떻게 갈 수도 저쪽에서는 올 수도 없었다. 막막했다. 이청악이 저렇게 안타까워하는 것을 처음 본 궁설지는 마음이 괴이해져 가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끝내 입을 열었다. "이 상공,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청악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저건 무엇인가? '이 불길함은?' 그녀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 그렇다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오. 혹시 저곳이 어딘 줄 모르오?" 그는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하고 물었다. 그녀는 흠칫하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녀도 감이 잡히는지 전신이 떨려옴을 어쩔 수가 없는 듯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 그녀도 모른다. 이렇게 갈라 버려 막아놓는 저곳이 어딘지 그녀도 몰랐다. 가슴이라도 갈라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처연한 눈빛으로 이청악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어떤 방법도 논리적인 도리도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보이는 곳은 모두 깜깜했다. 저게 무엇인가? 암흑 같은 그곳에서 한 장의 하얀 백지가 보이고 그 백지 위에서 갈팡질팡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수천 개의 칼날이 들쑤셔지고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들....... 그들의 모습이 그녀의 망막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고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설부용, 기운상, 유흥립이었다. 가엽게도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동행했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미래가, 그들의 불운이 그녀의 눈에 보인단 말인가? 아니면 지나친 걱정에 의해서 보이는 환상이 아닐까? "상공!"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이청악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이청악도 그녀의 아픔이 얼마나 심려한지 안다. 그의 아픔은 더욱 극대화되었지만 참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차제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순서가 있을 것이야.......' 어떤 계획이든지 순서에 입각하여 실천하는 게 당연지사였다. 이렇게 하는 그들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이청악의 눈빛이 팽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설방주의 고립? 기운상과 설부용의 죽음? 나와 설지의 퇴출......?'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오랫동안 방치해 둔, 쓰지도 않던 기관을 쓰게 했는가? '나?' 그는 문득 그렇다고 느꼈다. 자신을 떠올리자 진실이다 라는 표현이 와 닿았다. 최근에 한 큰일은 무엇인가? 자신은 100명의 최정예를 물리쳤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니 상관이 있는 듯했다. "나로 인해서야!" 그녀는 흠칫했다. 갑자기 큰소리치며 말하는 이청악을 눈을 크게 뜨고서 보고 있었다. "상공! 무슨 말이에요?" 그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설부용의 고립, 그리고 죽음으로...... 설중경의 당혹감을 부추기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누구인가? 사대 흉기가 적합하다면 기운상과 설부용, 유흥립의 죽음을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직접?" 그녀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헷갈려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박혀들었다. "설부용이 죽는다고요?" 갑자기 그가 조용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대 흉기가 직접 설부용에게 죽음을?' 그들 개개인의 능력으로 비추어 보아 2명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설중경은?' 역시 2명이 붙을 것인가? '나에게는?' 2명이 올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보낼 것인가? 무궁무진한 인력을 가진 그들이 누군들 보내지 못하겠는가? 그렇데 이청악은 안심하고 있었다. '사대 흉기라면?' 설중경이든, 기운상의 일행이든지 그렇게 처참일로의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한데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문제는 향금동과 상무재가 직접 나선다는 것을 배제한 것이다.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
첫댓글 잼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