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2013,04,28.가끔 구름 낀 맑은 날씨 소재사-대견사지-조화봉 왕복-팔각정-월광봉-마령재-비슬산정상(대견봉)-유가사 정산악회 따라~~ 산행거리;14km(조화봉 왕복,팔각정 경유,유가사에서 1.5km 포장도로 내려 선 길 포함) 산행시간;11;00-15;50(유가사 도착시간은 15;25) 참꽃을 보겠다고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이 너무나 많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진행도 더디고 페이스를 잃으니 힘도 든다. 아직 꽃도 다 피지 않았고 연무로 인해 조망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일주일 만의 산행으로 두어번 왔었던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능선산행에 볼것이 많아 괜찮았던 하루였다.
주차장을 올라서니 분수대가 나오고 소재사가 좌측으로 나타난다 비슬산 암괴류(Block Stream, Boulder Stream 지금으로부터 약 1만∼8만년 전, 지구상에는 마지막 빙하기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기후는 빙하기후지역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빙하기대 후대에 해당하며, 비슬산 암괴류는 이때 형성된 지형이다. 본 암괴류는 사면경사 15도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괴류이다
대견사지 삼층석탑이 멀리 올려다 보여 당겨보았다 조화봉도 올려다 보이고 990봉(左측 그림 중앙)과 관기봉(右측 그림 중앙) ▲▼ 삼거리 능선에 올라서서 보이는 대견사지 대견사지는 비슬산 주봉에서 약 2km 떨어진 해발 1,000m의 산정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절은 허물어지고 빈터에 삼층석탑, 석축, 우물, 마애불 등만 남아 있다. 대견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중국 당나라 황제가 절 지을 곳을 찾던 중 세숫물을 떠놓은 대야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나 이곳을 발견하고 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大見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대견사의 장육관음석상이 땀을 흘렸다고 조정에 두 차례 보고된 기록(1416년, 1423년)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절이 폐시된 시기 또한 명확하지 않으며, 1900년(광무4)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융희 2)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09년에 다시 폐사되었다고 한다. 특히 출토된 암막새에서 '大見寺'의 명문이 확인되어 그 동안 전설로만 구전되어 오던 대견사의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와편에 남아있는 '만력 39년' (1611년), '숭정 6년'(1633년) 등의 연호를 통해 1633년까지는 사찰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대견사는 통일신라 혹은 고려 초기에 세워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중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규모가 길이 37.5m, 최대 높이 6.56m에 달한다. 석축의 동쪽과 서쪽에는 암반이 단애면을 이루고 있는데, 석축은 양쪽의 절벽을 연결하여 평탄면을 조성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는 석축 중앙부의 일부분이 토압에 의해 약간 밀려나와 있는 상태이다. 석축의 축조방법은 막돌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 허튼층쌓기(각 단의 층구분없이 쌓음) 수법을 사용하였다. 부처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추노』 촬영지라고 홍보하고 있네요
대견사지 삼층석탑 해발 약 950m에 위치한 이 탑은 일반적인 탑과 달리 절벽의 바위를 바닥돌로 하고 그 위에 2층 기단의 3층탑을 세웠다. 하층 기단에도 양쪽 모서리 부분과 가운데에 기둥무늬를 돋 새김 했고, 윗층 기둥돌과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만 기둥무늬를 돋새김 했을 뿐 별다른 꾸밈이 없어 소박하다. 지붕돌에는 4단의 지붕돌받침과 2단의 괴임을 조각하였다. 기단부에 퇴화 현상이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탑 모양이 가늘고 높게 올라가 상승감이 있다. 이 탑은 절의 창건과 같이 하는 통일신라 후기(또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층석탑도 허물어져 있던 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도에 높이 3.67m의 3층탑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랜 세월 무너져 있었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산세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 위엄이 우러난다.
대견사지 마애불(大見寺址 磨崖佛) 이 마애불은 대견사터와 접해 있는 암굴의 남쪽 입구 우측 바위 위에 음각 되어 있다. 그 문양을 살펴보면 하부에는 연화대좌를 새겨놓고 대좌의 상면으로 아래가 넓은 5개의 원형을 중복되게 새겨놓고 원형의 아래로는 고사리 분양을 대칭되게 새겨놓아서 화염문에 휩싸인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양은 연꽃 좌대 위에서 부처가 선정에 드는 모습을 수행의 다섯 단계로 그려낸 것으로 남원 승련사 뒷산에서 발견된 밀교문양인 유가심인과 거의 동일하다. 승련사의 유가심인은 그 옆에 '옴마니반메홈'의 글귀가 새겨져 있는 반면, 이 곳의 암각은 하단부가 인위적으로 훼손되어 유실되었는데, 유실된 부분에 '옴마니반메홈'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문양이 새겨진 바위의 상면에도 정을 박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문양을 절취하기 위해 시도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 정통 밀교수행법이 전래되었슴을 말해주는 유가심인은 극락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깨달음의 최고 순간을 공(空)으로 표현하고 그 위쪽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 하는 등 우주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밀교문양의 존재는 주변의 유가면, 유가사 등의 지명과 관련지어 볼 때, 비슬산 일대의 밀교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톱바위 약 1만∼8만년 전 지구상에는 마지막 빙하기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기후는 빙하기후대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 빙하기후대에 해당되며, 이 시기에 비슬산의 암괴류(Block Stream, Boulder Stream), 애추(Talus) 및 토르(Tor) 등이 형성되었다. 톱(칼)바위는 이 시기에 형성된 지형으로서 애추로 분류되고 비슬산 일대 여러 곳에 분포한다. 톱(칼)바위와 같은 애추는 길이가 암괴류에 비해서 훨씬 작은 반면 사면경사는 30도 내외로 비교적 급경사이다. 바위 형태는 암괴류가 둥근 맛을 보이는 반면, 애추는 각이진 바위들이 대부분이어서 두 지형간의 구분이 쉽다. 특히 현지에 분포하는 톱(칼)바위는 애추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지형자원이다. 비슬산에는 톱(칼)바위와 같은 애추 외에 대견사지 부근에서 볼 수 있는 각종 형상의 토르(Tor)와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된 비슬산 암괴류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조화봉 정상
▲▼조화봉에서의 조망은 별로였고...
조화봉에서 본 대견사지와 전망봉 달성군 유가면 일대,대통령의 지역구라 그런지 개발이 한창이였다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비슬산 강우 레이더 관측소'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는 홍수예보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홍수 예보용 강우레이더를 2009년 6월 10일 낙동강유역 경북 청도군 비슬산 조화봉에 설치하였다
해마다 늦은 봄(4월말 - 5월초)이면 달성군에서는 비슬산 정상 1,000,000m²(30여만평) 참꽃군락지와 비슬산 자연휴양림 일원에서 비슬산 참꽃제를 개최한다.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참꽃군락지의 황홀함에 도취되기 위해 해마다 전국에서 10여만명 이상의 관광객과 등산인들이 찾아오는 등 날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기(氣)바위
비슬산(대견봉) 형제바위 소원바위
뽀뽀바위 월광봉 비슬산 전망대로 가는 길 전망대(1034m峰)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현풍IC 근처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강우레이더 관측소와 조화봉 꼬불꼬불~~유가사에서 부터 조화봉 정상까지 올라오는 임도
♥♠참꽃 군락지
월광봉(988m,1004,1005,1003봉등 지도에 따라 그 높이가 다르게 표시 되어있다) 그 흔한 정상석도 없어...그 누군가가 이렇게 돌에다... 당겨서 본 암봉과 가서 본 암봉
월광봉을 뒤돌아 보고
대견봉을 줌인해 본다 ▲▼대견봉 비슬산은 대구시 달성군, 청도군에 걸쳐 산자락을 드리우고 있으며, 유가사 쪽에서 올려다 보면 거대한 수직 암릉이 정상을 받치고 있는 듯 우뚝 솟아 있다. 정상인 대견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월광봉(988m) - 조화봉으로 이어진다. 조화봉 능선에서 서쪽으로 대견사 터 - 1034봉으로 이어지며 1034봉에 팔각정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앞산으로 가는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정상에서 조화봉 까지 약 4km에 걸친 능선은 988봉 주변에 바위가 있을 뿐 육산(흑산)으로 큰 나무들이 없는 시야가 탁 트이는 초원 같은 이 능선에 가을에는 억새가, 봄에는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붉게 물들인다. 진달래 군락사이에 싸리나무 등 잡목들이 섞여 있으나 진달래가 더 많다. 대견사터 북쪽 광활한 30여만평의 산자락이 대규모 진달래 군락지이며, 진달래가 가장 곱고 밀집되어 있는 곳은 988봉 부근 아래 산자락이다. 진달래는 4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해 4월 말에 절정에 달한다. 4월 하순경 참꽃(진달래)제가 열린다. 석탑과 미완성의 연화대석 큰 규모의 돌 축대들만이 옛 사찰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높은 벼랑 끝에 세워둔 대견사지 삼층석탑은 붕괴되어 있었던 것을 1986년 달성군에서 수습하여 재 건립한 것이다. 대견사터 주위에는 스님바위, 코끼리 바위, 형재바위 등 여러 바위들이 널려 있다. 이 석탑은 이층 기단위에 삼층석탑을 올린 형식이며, 절벽의 암반을 지대석으로 하고 그 위에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된 기단을 설치하였다. 대견사 터에서 동쪽으로 솟은 조화봉 봉우리 아래 능선에 잡석더미 같은 바위들이 보이는데 이를 칼바위 또는 톱바위라한다. (琵瑟山."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비슬이란 말이 인도의 범어의 발음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비슬의 한자 뜻이 포라고 해서 일명 포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정상석에 올라 사진 찍겠다고 줄을 길게 서있어 포기하고 겨우 아래에서 인증샷 한방 날리고...
낙동강 현풍 일대...♥♠ 연무가 잔뜩 끼어 조망이 넘 안좋아서 카메라 조작을 통해서 이 정도로... 유가면 대구테크노밸리 개발이 한창이다
줌인으로 뒤돌아 본 비슬산 정상
날머리 유가사와 그 주변이 보인다
유가사 입구 날머리에서 올려다 본 비슬산 유가사에서 포장도로를 한참 내려 선 곳에 제법 멋드러진 폭포가 있었다. 차가 세워진 곳에서 하산주 한잔 먹고 논으로 올라 섰더니 건너편에 폭포가 있어 당겨 보았다. |
첫댓글 비슬산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함께 저두 산행했는데 넘 잘 정리하셨네요. 많은 참고 자료되겠습니다.
넘 잘 정리해주셔서 고향친구들 카페에도 소개됨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