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날 |
흰떡, 떡국, 만둣국, 전유어, 빈자떡, 편육, 족편, 누름적, 떡찜, 떡볶이, 생치구이, 전복초, 젖국지, 동치미, 장김치, 약식, 약과, 다식, 정과, 강정, 숙실과, 생실과, 수정과, 식혜.. |
2. 정월 초사흘(3일) |
승검초편(당귀말편), 술찬떡, 두텁떡(봉오리 떡), 삼색주악, 단자, 오리알 산병. |
3. 대보름 |
오곡수라, 아홉 가지 나물, 약식, 유밀가, 원소병, 부름 |
4. 3월, 삼질 |
청주, 현과삼색, 육포, 어포, 조기면, 절편, 녹말편, 진달래 화채, 진달래 화전, 화면. |
5. 4월 초파일 |
느티떡, 눅두찰떡, 쑥편, 화전, 청홍주악, 석이단자, 술실과, 색실과, 가련 수정돠, 순채화채, 청면, 비빔국수, 양동구리, 해삼전, 양지머리 차돌박이, 편육, 신선로, 도미찜, 웅어회, 도미회, 미나리 강회, 햇김치, 장김치. |
6. 5월, 단오 |
증편, 어알탕, 준치만두, 앵두 화채, 제호탕, 생실과. |
7. 6월, 유두 |
편수, 봉선화 화전, 감국 화전, 색비름 화전, 맨드라미 화전, 밀쌈, 구절판, 깨국탕, 어채, 산딸기 화채, 떡수단, 보리수 단, 참외. |
8. 7월, 칠석 |
밀전병, 증편, 육개장, 게전, 잉어 구이, 잉어회, 오이 소배기, 오이 막두기, 복숭아 화채. |
9. 7월, 삼복 |
깨찰떡, 밀설구, 편수, 육개장, 깨국탕, 냉면, 영계찜, 어채, 장김치, 열무 김치, 주악, 떡수단, 산딸기 화채, 수박. |
10. 8월, 한가위 |
오렵송편, 밤단자, 백화채, 밤, 대추, 사과, 배, 감, 토란탕, 가리찜, 갖은 나물 |
11. 9월, 9일 |
감국전, 밤단자. 유자화채. |
12. 10월 무오일 |
팥죽, 녹두전, 전약, 식혜, 수정과, 무오병(고사떡), 동치미. |
13. 섣달, 그믐 |
골무병, 주악, 정과, 장김치, 쌈김치, 떡국, 만두, 갖은 전골, 비빔밥. |
◆ 도별, 고장별 음식들.
경기도 |
송이궁, 꽃게찜 |
충무 |
갓김치 |
무주 |
산채 |
강원도 |
감자고추장,옥수수인절미,도토리묵 |
마산 |
가재쑥국 |
순천 |
곰베젖 |
충청도 |
담뿍장, 더덕구이 |
경주 |
관메기 |
무등산 |
수박 |
전라도 |
생합찜,비빔밥, 꼬막회, 잣죽 |
포황 |
가자미 회 |
해남 |
감태 |
경상도 |
유과, 찹쌀강정 막장 |
행주 |
웅어 |
자리산 |
도라지 |
제주도 |
소라볶음,고구마떡 |
연평도 |
조기 |
황주 |
사과 |
전주 |
비빔밥 |
성환 |
개구리 참외 |
사리원 |
번사과 |
대구 |
육개장 |
고산 |
곶감 |
개성 |
쌈김치 |
강릉 |
방풍죽 |
김제 |
게장 |
금상산 |
느타리 |
평양 |
냉면 |
고창 |
고추장 |
여주 |
산병 |
개성 |
엿,돼지고기 |
영광 |
굴비 |
대화 |
강냉이 |
의주 |
만두 |
순창 |
고추장장아찌 |
공주 |
대추 |
춘천 |
메밀막국수 |
풍기 |
준시 |
부여 |
종어 |
수원 |
소갈비 |
봉화 |
산갓채 |
백마강 |
뱅어 |
천안 |
천안호두 |
안동 |
건진국수 |
서천 |
목김 |
진안 |
제육 |
언양 |
미나리 |
강경 |
감 |
진주 |
깨집국 |
동래 |
멸치회 |
덕유산 |
더덕 |
나주 |
녹두술, 배 |
목포 |
꼬락젓 |
완도 |
문어, 김 |
원산 |
잡채 |
함흥 |
회냉면 |
|
|
2.3 세시풍습
2.3.1 부럼먹기, 귀밝이술
가. 부럼먹기 (부름 먹는다. 부름 깬다.)
- 대보름날, 새백에 일어나자마자 미리 준비한
1) 생밤, 2) 호두, 3) 잣, 4) 은행, 5) 땅콩 등을 깨물어 먹는 풍습.
- 이 때, 생밤, 호두 따위를 입 속에 넣고,
“ 일 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이나 종기 같은 것이
하나도 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깨문다.
- 의주에서는, 대보름날, 엿을 깨무는데 이것을 [이내기]라고 하며,
또 이날, 고기를 구워 먹는데, 이것을 [이굳이 산적]이라 한다.
(이를 여물게 하려는 목적으로 먹는 고기음식)
- 중국에서도, 이굳이 엿을 먹는 풍습이 있고,
- 일본에서도 이를 튼튼히 하는 예식이 있어, 찰떡, 감, 밤 따위로 조정이나
민간에서 설날에 제사 지낸 후 나눠먹었다.
-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이를 튼튼하게 하는 행사와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하는 행사가 따로 있었지만, 그 후 두 풍속이 합쳐져 [부럼먹기]가 되어 내려
왔다.
‘부스럼’과 ‘부럼’, 또 ‘부럼’과 ‘보름’의 발음이 비슷해, 먹는 것이라 한다.
- 이것은 근세, 조선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 이후로 [호두를 깨문다]는 것은,
‘오랑캐 머리를 부순다’란 뜻이라고 한다. 누르하치 등 오랑캐 만행이 치가 떨려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백성의 분노가 타올랐다고 한다.
나. 귀밝이 술 (이명주)
- 어른들은 이 날 아침, 술을 한 잔씩 마시는데, 이 술을 마시면, 한 해 동안에
[귀도 밝고], [정신도 맑게] 지낸다고 믿어 온다.
2.3.2 약밥
가. 약밥이란,
- 오곡 찰밥(찹쌀, 참수수, 검정콩, 붉은 팥과 다른 한 가지 곡식을 합
쳐서)과 찹쌀을 꼬들꼬들하게 한 다음, 꿀이나 참기름, 진간장, 밥, 대추, 따위
를 넣어서 다시 찐 것이다.
나. 유래
- 신라 제21대 임금, 소지왕이 천천사(天泉寺)란 절에서 쉬고 있을 때,
절 담 위에서, 까마귀와 쥐가 서로 마주보며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서로 사람처럼 말을 주고 받는데, 왕이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쥐가 ‘저기 날아가는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보아라.’하고는
쥐는 간 곳이 없어졌다.
- 왕의 분부를 받은 기사가 말을 달려, 남산 동쪽에 있는 마을까지 왔을 때,
그 마을의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것을 구경하느라, 당황한
기사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길 옆 못 속에서 갑자기 백발노인이
나타나더니, 그에게 편지 한 장을 주는 것이었다.
- 편지 겉봉에
‘이 편지를 펴보면, 두 사람이 죽고, 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왕은 ‘펴 보아 두 사람이 죽느니보다, 펴 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옳다.’
- 그러자, 곁에 있던 일관(日官,날씨 천체를 맡아보는 관리)이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아뢰었다. “그 편지 봉투에 적힌 두 사람이란,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한 사람
이란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이 말을 듣고 왕이 편지를 펴 보았더니,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씌여 있었다.
왕은 활에다 화살을 쟁여 가지고 거문고가 있는 왕비 방으로 들어갔다.
왕은 방의 구석 쪽에 세워져 있던 거문고 갑을 겨누어 활을 쏘니 갑 속에서
뜻밖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왕은 거문고 갑을 뜰에 내놓게
하고, 열어보니, 대궐에서 분향하고 불공을 드리는 일을 맡아 하는 중이 그 속에
서, 죽어 있었다. 이 때, 왕비는 정신을 잃고 뜰에 엎드려 있었다.
- 왕은 즉시 사실을 알아보도록 했더니, 왕비와 중이 서로 짜고 왕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 날도 두 사람이 그 일을 은밀히 수군대고 있다가 갑자기 왕이 들어오므로
급한 대로 중을 거문고 갑 속에 숨게 했던 것이었다. 왕비는 반역 죄, 죽음을 당하였다.
- 그 때 만일 왕이 무기도 없이 혼자서 왕비 방으로 들어갔더라면, 중에게 죽음을
당하였을 것은 뻔한 일이고 그 날이 음력 정월 보름날이었다고 한다.
- 백발 노인이 나온 연못을 편지가 나왔다고 해서,
[서출지, 書出池]라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 경주시 내용 남산리에 있는 연못이 그 못이다.
- 소지왕은 까마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약밥을 비롯,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담 위에 얹어두었는데 까마귀가 날아와 맨 먼저 약밥을 먹었다고 한다.
- 그래서 해마다 정월보름날, 약밥을 지어 담 위에 얹어 놓거나,
꾸러미에 담아 뽕나무 가지에 얹어 놓았다가 이웃끼리 나누어 먹기도 한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 정원 보름날 아침, 약밥과 함께 햇볕에 잘 말려 둔,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
오이꼭지, 가지 껍질, 무시래기 따위를 잘 씻어서 삶은 다음 양념과 간을 곁들여
나물을 무쳐 먹는다.이를 [나물쌈]이라고 한다.
- 이상한 일은, 이처럼 정월대보름날 아침, 사람들은 약밥을 해 먹지만, 개에게는
먹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이날 개에게 약밥을 먹이면, 파리가 꾈 뿐 아니라 개
가 파리해진다는 말이 있기 떄문에 사람이 굶는 것을 일러, [개 보름쇠듯 한다.]
는 속담이 생겼다.
2.3.3 풍어놀이와 수레 싸움
가. 풍어놀이
1) 어촌에서 하는 풍속으로,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하는 놀이다.
2) 부락의 넓은 마당에 기와 등을 달고, 동네 사람들이 장구에 발마
추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노는 것이다.
3) 이 놀이는, 사해용왕(모든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위로하여,
부디 사나운 물결이 일지 않고, 고기잡이가 무사하여,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축원하는 풍속이다.
나. [수레 싸움]
- 춘천, 안동, 가평 지방에서는 [수레 싸움]이라는 놀이가 있었다.
1) 음력 정월 대보름날, 나무로 외바퀴 수레를 만들어 각 마을이 동서,
두 편으로 갈려, 싸우는 놀이다.
2) 넓은 광장에서 양편이 각각 외바퀴 수레에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태우고
여럿이 메고 나선다.
3) 상대편의 외바퀴 두이에 않은 주장을 땅에 떨어뜨리려고 싸우는 것이다.
4) 진편은 그 해 흉년을 만난다고 한다.
2.3.4 제웅
1) 정초에 액땜을 하는데, [제웅]이라는 것이 있다.
2) 제웅은 신라 때, 유명한 화랑으로 나중에는
역신(천연두를 집집마다 가져다 앓게 하는 역신)을 물리치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처용량]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3)제웅직성 (사람 나이에 따라, 그 해 운수를 맡아 본다는 아홉 직성별의 하나)을
지닌 사람은 액땜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초에 처용의 인형을 짚으로 만들어,
이 것에 그 사람 옷을 입혀, 며칠 동안 그 사람의 머리맡에 두었다가
대보름 전날 밤에 길가에 내버린다.
4) 이렇게 하면, 그 사람 액운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아간다고 믿는 풍습이다.
5) 나중에는 이 풍습이 변해, 제웅의 머리나 가슴, 배, 다리 등에 돈을 널어 두고
기다리면, 보름 전날에 그 돈이 탐나서 제웅을 길에 버리기 전에 문을 두드리
며, 받아 가기를 청하는 이가 많아졌는데, 이 제웅을 받아가는 사람은
[제웅치기]라고 하는데, 제웅치기는 대개 가난한 집의 어린 소년이 많았다.
2.3.5 복흙 훔치기
1) 경기도 지방에서는 [복흙 훔치기]라는 풍습이 있었다.
2) 이것은 부자집에서는 복이 많지만, 특히 그 집 대문 안에 흙은 사람들이 많이
밟고, 드나들기 때문에 복이 많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해서, 이 흙을 [복흙]이라
하고, 이것을 훔치는 것이다.
3) 정월 열나흗날, 저녁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집 대문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그 주인이 눈치채지 않게 대문 안 흙을 한 웅큼 훔쳐 온다.
4) 이 흙은 자기 집 부뚜막에다 펴둔다.
2.3.6 줄다리기
1) 해방 전만 해도 매우 성했던 놀이로 특히 경상도 지방에 많았다.
2) 정월 열사흗 날이 되면, 동네 청년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짚을 모아
긴 줄을 만든다.
3) 큰 엿가락처럼, 세 가닥으로 틀어서 줄 머리 둘레는, 어른 가슴통 만하게,
굵게 드리고, 길이는 삼사십 미터 정도로 길게 꼰다.
그리고 줄 몸통에다가 [종줄]이라고 해서, 손잡이 줄을 따로 달아서, 백여 명이
잡아 당길 수 있게 만든 아주 커다란 줄인 것이다.
4) 보름날 오후, 풍악대를 앞세운 청년들이 웃마을과 아랫마을에서 저마다 거창한
줄을 어깨에 나누어 메고 나온다.
“어리사 저리사, 우이여 우이여!” 하고 소리치면서 마을을 몇 바퀴 돈다.
5) 해가 지면, 줄다리기를 할 넓은 광장에 양편이 모여든다. 그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흥겹게 뛰며 논다.
6) 줄싸움은
- 양편이 줄을 메고 돌아다닌다가, 어느 편이든 틈을 보아 줄 머리를
상대편 줄 머리에 덮어 씌우는 것이다.
- 이렇게 해서 상대편 줄 머리가 땅에 닿으면, 이기게 되는 것이다.
서로 온 힘을 다해 상대편 줄머리를 땅에 뉘려고 하기 때문이다.
- 이 줄 싸움에 두세 번, 계속한 다음에 마침내 줄다리기에 들어간다.
줄다리기를 할 때는 우선 아랫마을과 웃마을 줄을 연결한다.
- 두 줄을 연결할 때는, 으레 아랫마을 줄 구멍에다가 웃마을 줄 머리를 넣어서
고로 뀌에 연결하기로 되어 있다.
- 줄이 연결되면, 힘이 센 청년들이 줄 머리 부분, 종줄을 쥐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줄 꼬리를 붙잡는다.
-“어엿사 어엿사!” 하는 소리에 맞추어
있는 힘을 다하여 서로 잡아 당긴다.
또 구경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열심히 응원을 한다.
그러다가 어느 한 편이 끌려가게 되면,
구경하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도 달려들어 함께 줄을 당기게 된다.
-구경 나온 이웃마을 사람들은 줄다리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약속에 되면 함께 당길 수 있는데 이 약속을 [사통]이라고 한다.
- 이긴 편은 신이 나서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농악을 울리면서 밤이 이슷하도록
흥겹게 놀다가 헤어진다.
2.3.7 횃불놀이
가. 우리나라 구석구석 모든 곳에서 즐겨오던 놀이는 햇불놀이었다.
나. 횃불놀이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 강원도 같은 곳에서는 [횃불 놀이] 였다.
마치 전쟁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그 고장에서는 청소년들이 모여 농악을 울리면서
떼를 지어 동산 봉우리로 올라가 서로 진을 치고 맞선다.
- 이렇게 마주 진치고 선 채, 달이 뜨기를 기다리는데,
그러다가 먼저 달이 뜨는 것을 본 편에서 “술령수!”하고 소리치면,
다른 판 쪽에서 “꼴래 꼴래!”하고 소리치며
갖은 욕설을 퍼붓는다.
- 얼마 동안 욕설을 퍼붓다가 풍악 소리가 울리면,
젊은 이들은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상대편을 향하여 돌진해간다.
여기서 서로 횃불을 든 채, 싸우게 되는데, 그야말로 불꽃 튀기는 싸움이 된다.
싸움은 서로 상대편의 횃불을 때려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 이렇게 해서 결국, 횃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편이 지게 되고 싸움은 끝난다.
- 이 횃불 싸움은 젊은이들은 젊은이끼리 싸우고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끼리 싸운다.
- 이 산 저 산에서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싸우는 모습은
마치 전쟁과 같으면서도 아름다운 야경을 이룬다.
- 이 놀이는 매우 위험한 놀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고,
이따금 옷을 그슬리거나 옷을 약간 태우는 사람이 생길 뿐이다.
이 놀이에 진 마을은 그 해 흉년을 만난다고 한다.
2.3.8 더위팔기
가. 정원대보름 아침,
-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친구네 대문간에 가거나 또는 길에서라도 마주 칠 때,
느닷없이 친구 이름을 불러, 그 친구가 얼떨결에 대답을 하면, 얼른
“내 더위 사가게.” 또는 “내 더위!”하고 외친다.
나. 이렇게 하면,
‘더위’를 판 것이 되어, 그 해 여름, 자기는 더위를 먹지 않고
무사히 건강하게 넘긴다는 것이다.
다. 그런데 만약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또 대답 대신에 재빨리, 이쪽에서 먼저,
“내 더위 사라!”해버리면, 오히려 먼저 걸어온 쪽이 더위를 사게 된다고 하며,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 하면, 비겨서 서로 무사하게 된다고 한다.
2.3.9 다리밟기
가. 고려 때부터, 이조 끝 무렵까지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는 풍속이 성했다.
나. 그 후에도 지방에 조금씩 ‘답교 (踏橋)’라고 하는
이 다리 밟기 풍속이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이것도 거의 볼 수 없다.
다. 정월대보름날 밤, 밝은 달빛을 받으면서 동네 다리를 건너면,
다리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 그래서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온통 동네다리가 시끌거리는 것이다.
- 너무 길거리가 혼잡해서 그 후 여자의 다리밟기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 그러자 어느덧 여자들은 보름날 다음날인 여샛날에 다리밟기를 했다고 한다.
- 이조 때 일부 양반들은 혼잡한 보름날을 피해, 하루 압당겨 열나흗날 밤에
다리밟기를 하였다.
라. 다리밟기는 여러 지방에서도 하던 풍습이지만,
특히 성했던 곳은 서울이었다.
- 온 서울 안, 남녀가 종로 거리로 몰려 나와서
- 보신각의 저녁종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청계천에 놓인 여러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고 하였다.
- 그 중에서도 [광교]와 [수표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었다.
- 다리 밟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피리를 불기도 하고, 북을 치기도하면서
이날 밤을 마음껏 즐겼다.
- 그런데 다리를 밟을 때에는
자기 나이만큼 다리를 건너기 마련이었으므로,
나이가 짝수일 때는 그래로 괜찮지만 만일 홀수 인 때는 다리 저편으로 건너간
채 돌아올 수가 없게 되어 어떨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업어 오곤 했다.
2.3.10 볏가릿대 세우기
가. 농사가 잘 되기를 비는 뜻에서 하는 행사가 여러 가지 있는데,
‘볏가릿대 세우기’도 그 중 하나이다.
나. 이 풍속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대보름 전날이 되면, 짚을 묶어서 기(旗)모양을 만들어 벼, 기장, 피, 조 따위의
이삭으로 싸고, 또 목화꽃을 긴 장대 위에 씌워서
집 옆이나 마당 한 가운데 세운 다음, 넘어지지 않도록 새끼를 늘여 놓는다.
이것을 ‘볏가릿대 세운다.’고 한다.
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농사를 으뜸으로 하는 농가에서,
올해에도 오곡이 풍성하여 거두어 들인 곡식이
마치 볏가릿대처럼 많이 쌓이게 해 달라는 뜻에서 세우는 것이다.
- 이 볏가릿대는 2월 초하룻날이 되면, 아침 일찍이 내리는데,
이 때 쌓아 놓은 곡물을 섬에 집어 넣으면서 큰 소리로
‘벼가 수천 석이요, 조가 수백 석이요!’ 하고
멋대로 부르면서 “올해는 대풍년이다!”하고 소리친다.
라. 이외에도
1)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워두고,
오곡의 이삭과 목화꽃을 걸어 놓은 다음,
아침 일찍 이러나 그 나무를 싸고 돌련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것은 주로 어린이들이 한다.
2.3.11 모심기 놀이
가. 황해도 지방에서 정월 보름날에 하던 놀이다.
나. 정월 보름날이 되면, 아침부터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서 윷놀이를 하였는데,
이때 두 편으로 갈라, 한 편은 산편, 한 편은 갯(바닷가)편이 되었다.
다. 그래서 윷놀이를 한 결과, 만일 산편이 이기면, 그 해 농사는 산 편이 잘되고
갯 편이 이기면, 갯 편의 농사가 잘 된다고 해서 서로 이기려고 열심히 윷놀이
를 하는 것이었다.
라. 이 윷놀이가 끝나면, 젊은 이들은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나와, 모심기 놀이를 하였다.
마. 이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산신인데 이 산신이 된 남자는 암소를 거꾸로
타고 산 쪽에서 내려온다. 이 산신은 몸에 도폴 걸치고 머리에 유관(儒冠)을 쓰고 있었다.
이 산신이 내려오면, 젊은이들은 이를 맞아 한동안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바. 그러다가 모 심을 때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종이와 짚 같은 것으로 잘 익은 벼 이삭 모양을 만들어 저마다 손에 들고
풍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모심기 시늉을 한다.
사. 이렇게 흥겨운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산신은 여전히 암소 등의 거꾸로 탄 채,
놀이터 가운데를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닌다.
아. 모심기가 끝나면, 다시 악기를 울려, 춤을 추면서 흥겹게 논다.
자. 이날 산신으로 뽑힌 사람은,
그 날만은 동네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모셔지기 때문에
모든 동네 사람들로부터 높이 대접을 받게 된다.
- 종일토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 등에 탄 채,
노는 장소를 왔다갔다하면서 돌아다니기면 한다고 한다.
지금은 휴전선 저 쪽으로 되었기 때문에 알 수 가 없다.
2.3.1 동신제, 장군제, 수신제
가. 동신제,
- 전국 어느 지방에서나 있는 풍습.
- 마을에 들어서는 어귀에 느티나무나 소나무 같은 것이 우거진 숲이 있는데
이 숲속에 큰 돌을 쌓아 올려 제단을 만들어, 그 마을을 지져준다는 [수호신]
을 모시고 있다.
- 이 수호신에게 해마다 정월 보름 때,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이 [동신제]이다.
- 제사를 지낼 때는 먼저 제주가 될 사람을 뽑는다.
- 제주가 될 사람은
1) 비교적 나이가 많은 어른이어야 하며,
2) 상중의 몸이 아닌 사람이라야 한다.
- 제주가 되면,
약 1주일 전부터 깨끗이 목욕하고, 고기도 먹지 않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다듬어야 한다.
또 상제의 신분인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하고, 궂은 일도 보아서는 안 된다.
이처럼 조심하는 가운데, 정월 열나흗날을 맞이할 때까지
며철 전부터 제단 언저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황토를 편 다음,
소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매달아, 금줄을 쳐 놓는다.
-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데에 쓸 제목을 살 때에는
값을 깎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사가지고 돌아올 때에
한눈을 팔지 말고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온갖 잡스러운 생각이나 궂은 것들을 피하기 위해
이처럼 준비하는 모든 일에 조심하고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 열나흗날 저역이 되면, 제주는 새옷을 갈아입고 제단에 올라가 불을 켜 놓는다.
- 그리고 자정이 되면, 동신 제문을 읽으면서 제사를 지낸다.
- 재미 있는 것은, 동신제에 쓴 종이를 가져다 글씨공부를 하면, 명필이 되고
불 종이를 가져다가 밤윷을 놀면, [모]가 잘 난다고 하는 말이 있어서
약삭 빠른 젊은이들이 동신제를 지내고 있을 때,
벌써 그 근처에 숨어 있다가 몰래 가려가는 일이 있다고 한다.
- 보름날에는 동네 일을 맡아 보는 유사(有司, 공동의 일을 책임 맡은 사람)가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제물을 나누어 먹고, 다음 해 유사를 뽑고 난 다음
동네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을 의논하기도 한다.
- 이처럼 동신제를 지내는 것은 동네 사람들이
새해를 맞아 그 해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기도록 빌고,
또 그 마을에 풍년이 들기를 빌기 위한 것이다.
나. 장군제
- 마을 어귀에 나무나 돌로 장군상을 세워놓고,
해마다 정월보름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그 중 운수가 제일 좋은 사람,
복을 많이 누리기로 제일로 꼽히는 사람이 제관이 되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 동네 어귀를 통해서 못된 잡귀와 나쁜 병마가 들어오지 못하게
힘센 장군의 힘을 빌려 했던 데서 생긴 풍습이다.
다. 수신제
- 동신제나 장군제와 역시 비슷하지만,
이것은 냇가, 강가 둑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지내는 것이다.
- 수신제도 정월 보름날에 지내는 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 해에 수해가 나지 않도록 해주기를
수신(용왕신이라고 함)에게 정성껏 비는 제사이다.
2.3.13 하회 병신굿
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만 있는 정월보름날 놀이의 하나다.
- 하회라는 곳은 안동에서 예천으로 가는 도중 풍산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낙동강 물이 휘돌아 흐르고 사방이 절별을 둘러 싸인 아담한 마을이다.
나. 이 마을에서 전해오는 하회 병신굿은 10년 마다 한 번씩 정월 대보름날에
온 마을 사람이 모여서 즐기는 놀이였다.
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동신에게 신주라고 부르는 제주가 10년 마다 한번 씩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병신굿]이라 부른다.
라. 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1) 동신이 제사 지내기를 바라는 경우이고,
2) 10년 마다 동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동신의 벌을 받아, 마을에
병자가 많이 생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병신굿]은, 이 동리 제사를 지낼 때, 동신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였다.
3) 제사를 지내는 시기는
동네 어른들 회의에서 결정하며, 전 해 섣달 그믐날 제사 준비를 시작한다.
4) 산주, 광대, 간사들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고기를 먹지 않고 깔끔하고 맑은 생활을 지킨다. 동제를 지내는 집인 동사의
둘레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사람들 출입을 금한다.
5) 그리고 산주(산 주인)가 중심이 되어서 산으로 올라가 신간을 만드는데,
알맞은 소나무를 골라 잘라온다. 이 소나무로 역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목수를 시켜 조심스럽게 신간을 만들게 한다.
6)다음에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아침 일찍 산주가 가면을 보관해 둔 방에 들어
가 가면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
7) 제사를 마치고나서 신령님과 가면을 꺼내면, 광대들이 각자 가면을 쓴다.
산주는 신령을 가지고 동네 대표와 광대 악공 등 16명이 산에 있는
성황당(城隍堂, 한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드는 신을 모신 곳)에서
서, 가게 된다. 일행이 성황당에 다다르면, 제단 앞에, 술, 과일과 같은 많은
제물을 차려놓는다.
8) 그런 다음 산주가 신령을 새로 만든 신간에 매달아 신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데, 이 때 탈을 쓴 광대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가면놀이를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내려온 신을 맞아 광대들이 춤과 노래로 에워싸서 동네로 맞아
들여, 동사 마당에 만든 신당에 모셔 놓는다. 동네 대표와 광대, 악공 등 16명
은, 신당에다 신을 모셔 놓고 나면, 이 날부터 신을 다시 보내는 날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산 안에 있는 방에서 신주와 광대가 따로 갈려서 자게 된다.
9) 신간에 옮겨간 신령님은 광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동네를 두루 다니는데
매일 아침, 일찍 한 번씩 어미 신인 삼신에게 가서 이마를 조아려 문안을 드
린 다음, 산주 집으로 돌아간다.
- 이 때 이들을 맞는 집에서는 그 해의 악귀를 쫓고 복음 맞게 된다고 하여,
기뻐하면서 여러 가지 물픔을 바친다. 대개 곡식, 삼베, 비단, 음식 같은 것인
데, 삼베나 비단은 신간에 매달고, 곡식이나 음식은 신간 앞에 내 놓는다.
- 이 음식은 그 자리에서 광대들이 먹거, 곡식과 삼베, 비단은 ‘동신제 비용’
이나 동네를 위한 일에 쓴다.
10)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동사 앞마당에서 [가면극]을 하며 즐겁게 논다.
11) 가면은 고려 말기에 이 마을에서 한 때, 기세를 떨치던 순흥 안씨 집안에
안 도령이라는 총각이 있었는데, 이 총각이 탈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 안 도령은 이 탈을 만들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고요한 곳에서 석 달 동안이나
혼자 잇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 도령은 이매(관청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탈을 만들 때, 다 만들고 마지막으로 턱을 만드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
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또 그가 마지막으로 이매 탈을 만들 때, 다 만들고 턱을 만들려 할 때, 어떤
여자가 몰래 문구멍으로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말도
있다.
-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탈에는 [이매] 이외에 [각시, 부인], [부내(첩)], [중],
[초란이, (하인)], [선비], [백정], [할미] 등의 탈이 있다.
- 이 가면극에 나오는 사람들은, 장삼에다가 목탁을 쥐고 있는 중, 저고리에다
분홍 치마를 입고, 흰 명주 수건을 든 각시, 오색 색동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
은 부내, 흰 치마저고리에다 다시 지팡이와 쪽박을 쥐고 있는 할미, 이 밖에 영
감, 칼과 도끼를 가진 백정, 그리고 초란이, 이매와 주지, 소 등이다.
- 이 가운데, 다른 것은 모두 한 사람씩 나오지만, 주지만은 두 사람씩 나온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신분에 알맞게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나와서 장구, 북, 소
고, 치리, 젓대, 꽹과리, 징 등을 가진 악공들과 함께, 타령, 굿거리, 세마치 등
의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춘다.
12) 한 바탕 제멋대로 자유롭게 여러 가지 춤을 추다가, 간단하게 꾸민 무대 위에
서, 가면극을 시작하게 된다.
13) 가면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고,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
사람 중에서 임시로 뽑은 사람들이다.
14) 표정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고, 탈을 쓴 사람이 얼굴을 자우나 상하로 흔들며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표정이 잘 나타나게 된다.
15) 이 가면극은 주로, 그 당시의 사회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중이 자기 할 일은
안하고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것, 양반이 사납게 굴러 일반 평민이 이에 반
감을 가지고, 양방이 헛된 위엄과 형식만 찾는 것을 비웃고 나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6) 이 가면극에 쓰이는 탈은, 우리나라 여러 가지 탈 중에서도 가장 잘 되어
있으며 현재 12개가 남아 1964년 11월 17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2.3.14 산대도감놀이
가. 경기도 양주에서,
- 정월 대보름날 외에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8월 추석 등
명절과 그 밖에 이 지방, 즐거운 일이 있으면 탈놀이를 하였는데
이 탈놀이를 [산대도감놀이]라고 하였다.
나. ‘산대 놀이’, ‘산두 놀이’, 나례 도감‘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또 ’딱딱
이‘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천하게 부르는 이름이다.
다. 매우 성대한 놀이로서 오후 3시에 시작, 새벽 3시 까지 즐겼다고 한다.
- 밤이 되면, 산골짜기에 모닥불을 놓고 이슥하도록 놀았다고 한다.
라. [신대도감놀이]라는 이름은, 이조 시대, [나례도감]이라고 하다가 나중에 [산대
도감]이라고 이름을 고친 기관을 두고 이 놀이를 맡아 본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나례’란 옛 중국에서 시작된 풍습으로 ‘새해, 악기를 좇기 위해 했던
것인데, 나중에는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임금이 행차가거나 궁정으로 돌아
올 때,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 그 밖에 여러 가지 경사 또는 잔치가 있을 때,
RNL를 쫓기 위해 하게 되었다.
마. 이처럼 처음에는 중국의 풍습을 본떠, 대궐에서 하다가, 고려 예종 때부터는
연극으로 꾸며, [산대 잡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바. 이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궁중 연극으로 하게 되었는데, 측히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서 임금이 도감이라는 관청을 두어 상연하게 되어 [산대도잡극]이
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 이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궁중 연극으로 하게 되었는데, 특히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게 위해 임시로 [도감]이라는 관청을 두어 상영하게 되어 [상대 도감국]이
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 그러다가 병자 호란 후부터 폐지되었으며, 이에 따라 산대도감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각 지방에 가서 가설무대를 만들어 놓고 평민극을 꾸몄
기 때문에 그 고장 풍습으로 남게 되었다.
자. 이 놀이는 종이나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들이
풍악소리에 맞추어 춤과 노래와 재담 등으로 꾸민다.
차. 이 놀이 내용은, 악귀를 물리치는 것, 삐뚤어지고 어긋난 중을 비웃는 것, 양
반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 가난한 평민 생활을 그린 것들을 보여준다.
카. 나오는 사람은 상좌 2명, 음중, 먹중 4명과 완보연잎, 눈꿈쩍이, 신주부, 왜장
녀, 애사랑 소무 2명, 노장, 신장사, 원숭이, 해산어멈, 샌님, 도령님, 서방님, 말
뚝이, 쇠뚝이, 포도부장, 신할아비, 미얄할미, 도끼, 도끼누이 따위로 불리는 32
명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역할을 맡는 가면이 있으므로,
실상 쓰이는 가면은 20여 개가 된다.
- 나오는 사람은 전부 남자들로 여자 역도 남자가 맡아
한다.
- 이 놀이에 쓰이는 가면은
우리나라 가면을 대표할 만한 것이며, 이조 이후에 바가지 탈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의 솜씨와 재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타. 산대놀이는 야외서 하는 극이며, 지금은 우리 예술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파. 산대별 도감놀이에 쓰이던 가면은, 우리 풍속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나라에서는 1964년 [양산 별산대놀이 가면극] 제2호를 무형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으며, 양산별산대놀이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나라에서 자
금을 주어 이 기술을 이어받는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2.3.15 오광대 가면극
가. 해안지방에서 성했던 탈놀음이다.
나. 이 놀이는
-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에 줄다리기 놀이를 끝낸 다음에 그 축하 행사로 하는 지방도 있고
- 병신굿 놀이 때에 하는 지방도 있었다고 한다.
다. 마산 지방에서는 3월 그믐께와 혹은 4월 초순에 했다고 한다.
라. 오광대 가면극은 경상도 바닷가 지방인 동래, 수영, 부산진, 김해, 마산, 창원,
통영, 고성, 초계 같은 곳에서 옛날부터 계속되어 왔었으나, 지금은 모두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마. 오광대 가면극은, 수영, 동래, 부산진 같은 곳에서는 [들놀이]라고 불렀고, 다른
지방에서는 [오광대 탈놀이]라고 불렀다.
바. 들놀이라고 하는 것은,
이 놀이를 넓은 들판의 논밭이나 타작마당 같은 광장에서 했기 때문이며,
오광대 탈놀이라고 부른 것은, 다섯 광대가 중심이 되어, 노는 놀이었기 때문이다.
사. 지방마다 다른데
- 동래지방에서는
줄다리가 끝난 뒤, 한 해 농사라 잘되게 해달라는 뜻으로 밤중에 하였고,
- 마산에서는
병신굿이 끝난 다음에 바다가 평온하고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달라는 뜻에서
했는데, 3년 마다 작은 제사를, 10년 마다 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아.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대개 이 지방에 살고 있는 주민들인데 대개 이 놀이를
오랫동안 해오던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하낟.
자. 이 가면극에서는
염불, 타령, 굿거리, 도돌이, 세마치, 중머리, 단머리 등을 연주하며,
연주된 악기로는 북, 장구, 해금, 젓대, 피리, 꽹과리, 징 등이다.
차. 춤으로는 긴춤, 문둥이춤, 사자춤, 담비춤, 양반춤, 중춤, 북춤, 손춤 같은 여러
가지 춤이 있었다.
카. 무대는
- 달 모양의 무대, 반달 모양의 무대가 있고, 가설 무대가 있었다.
타. 내용은,
- 오방신장무 (五方神裝舞, 동서남북 사방과 중간의 5방을 맡은 장수신의 춤),
- 중들의 춤놀음, 문둥이 놀음, 양반놀음, 할미영감놀음, 사자 춤으로 이뤄져 있다.
파. 그리고 염치없는 중이나, 양반들을 비웃는 이야기, 본부인과 첩 상이에 일어
나는 슬픈 이야기, 원한을 품은 문둥이 이야기 따위의 장면이 나온다.
하. 정부에서는 1964년, [산대놀이]와 함께,
[통영 오광대, 가면극 6호], [고성 오광대, 가면극 제 7호] 등을 무형문화재로 정했다.
2.3.16 지신밟기
가. 영남지방에서, 정월 보름날이나 그 이튿날에 [지신밟기]를 한다.
나. 이 놀이는
- 동네 젊은이들이, 갖가지로 가장을 하고, 농악을 치면서,
동네 부잣집을 차례차례로 찾아다니면서, 지신을 밟아 주는 것이다.
다. 지신을 밟는다는 것은, 땅의 신을 가라앉혀, 일년 내내 무사하기를 비는 것이다.
라. 이렇게 지신을 밟아주면, 그 집 주인은 고맙다는 뜻으로
곡식이나 돈이나, 또는 술 같은 걸 내놓고 대접을 한다.
마. 술은 그 자리에서 모두 함께 마시고, 곡식이나 돈은 마을을 위해 쓰게 된다.
사. 지신을 밟는 모습을 보면,
고깔과 여러 가비 모습으로 가장을 한 사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아보는
사람인 [사대부, 士大夫, 선비, 지체가 높은 벼슬아치]는 커다란 관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있다.
아. 사대부는 맨 앞에서 느릿느릿 걷고, 그 뒤에는 망태기에 죽은 꿩을 넣고,
나무로 만든 총을 둘러 맨 포수와 여러 가지 모양의 가면을 쓴 많은 사람들이
농악읓 치고, 울리며, 흥겹게 춤을 춘다.
“좋고 좋은 지신아, 잡기 귀신은 물 아래로, 천행만복은 이 집으로” 그러면서
그 집의 마당, 부엌과 또는 광에서 지신을 밟는 것이다. 이 때, 주문을 외운다.
그 한 가지를 소개한다. (생략)
2.3.17 샘굿
가. 강원도 삼척 지방에 있던 풍습이다.
나. 산골인 만큼, 온 마을이 함께 우물물을 쓰고 있는데
이 우물이 동네사람으로서는 매우 소중한 설비다.
물이 말라 잘 나오지 않거나 수질이 나빠지면 동네 사람들이 해를 입게 된다.
다. 옛날에는 우물을 아주 신성하게 여기고 우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전에는 음력 정월 중에 수신이 내려온다는 날을 정해
놓고 수신(물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라. 이 때는,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집의 호주 이름을 낱낱이 부르면서,
종이로 만든 돈을 한 장씩 불살랐다고 한다.
마. 그리고 농악대가 풍물을 치면서 우물 둘레를 돌았는데, 이 때,
“뚫려라, 뚫려라, 물 구멍만 뚫려라”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바. 이렇게 우물을 돌면서 수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샘굿]이라고,
샘굿을 하면 물이 잘 나오고, 물맛이 항상 변함없이 좋으리라고 믿었다.
2.3.18 놋다리 밟기
가. 정월보름날 다음날인 열엿샛날 저녁에 하는 놀이다.
나. [기와 밟기]라고 하는데, 이 놀이는 경상북도 군위군 의홍에 남아 있다.
전에는 이웃고을인 의성군, 안동군 지방에서도 많이 하였다고 한다.
다. 정월 열엿샛날 초저녁이 되면,
의홍의 학교가 있는 마을과 이웃 마을 처녀들이 모두 모여들기 시작한다. ‘
라. 동서로 나누어, 모두가 한 줄로 늘어선 다음, 허리를 구부리고
뒷사람은 앞 사람의 허리를 뒤에서 붙들어 껴안는다. 이렇게 수십 명 모두가 허리를 구부리고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으니, 마치 다리처럼 된다.
라. 그런 다음 양편에서 한 사림씩, 소녀를 올려 세워놓고
각각 한 사람씩 붙들어 서서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마. 그렇게 밤새도록 놀다가 새벽이 가까워지면,
위에 탄 소녀들이 서로의 막대기 빼앗기를 한다.
바. 이 놀이는 고려 말, 공양왕인 공주와 함께 청주를 거쳐, 안동지방에 왔을 때
그곳 여자들이 공주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한 것이 최초였다고 하며,
그 후 이 지방의 독특한 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사. 부르는 노래
어느 새에 청계상에
놋다리야 놋다리야.
이 터전은 누 터전이고?
나랏님의 옥터일세
이 기와는 누 기완고?
나랏님의 기와일세.
손이 왔네 손이 왔네,
경상도서 손이 왔네.
무슨 곳에 싸여 왔노
여기 곱게 싸여 왔네,
몇 대간을 발고 왔노
쉰 대간을 밟고 왔네.
무슨 옷을 입고 왔노?
백마사주 구두 바지 곱게 누벼 입었드네.
무슨 띠를 띠고 왔노?
관대 띠를 띠고 왔네.
무슨 버선 신고 왔노?
타래 버선 신고 왔네.
무슨 신을 신고왔노?
봉만화를 신고 왔네
그 무엇을 쓰고 왔노?
마라기(청나라 때 관리들이 쓰던 모자의 하나)를 쓰고 왔네.
손이 시려 어이 왔노?
풍시염에 싸여 왔네.
입이 시려 어이 왔노?
문어 전복 물고 왔네.
무슨 반에 차려 주노?
채죽반에 차려 주네.
무슨 수저 놓았더뇨?
은수저가 놓였더네.
몇 접시를 차렸더뇨?
칠첩으로 놓였더네.
어디에도 밥 담았도?
식기 굽에 담아 주데.
어이다가 반찬 주도?
접시 굽에 담아두데.
어디다가 김치 주도?
증발(조그만 밥 주발) 굽에 담아 주데.
어디다가 숭늉 주도?
삼청 쟁반 굽쟁반에 뚜에 열어
갖다 주데.
놋다리야, 놋다리야.
3. 맺는 글
가. 일제 지배와 해방 이후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 이와 같은 미풍양속이 대거 사라졌다.
나. 전통이 현대적인 풍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다.
그래서 유엔의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 인류유산이란
이름 아래, 자연과 문화 보존에 나셨지 않은가?
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난히
전래풍습을 무시하거나 하대하고 외국의 [수입품]을 환대하는 기풍이 강하다.
이웃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며, 음력조차 없앴지만,
전래풍습의 상당부분을 보존하고 있고,
- 중국도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인데도
바탕에는 도교 풍습이 널리 깔려 있고, 향을 치우고 야단법석으로 축제를 벌인다.
춘절에 엄청남 인구이동과 대륙이 흔들릴 정도의 폭죽과 명절 쇠기, 긴 연휴 등을
비교하면, 며칠 연휴를 얻는 우리나라는 소박한 편에 속한다.
라. 이제 우리문화를 중심에 두고, 줏대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바.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기름지고 풍성한,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나온 삶의 역사를 알려주어야 한다.
사. “그런 의미에서 [정월대보름]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로 다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