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밤 식탁 / 송수권
소복소복 흰 눈이 내리는 긴 겨울밤,
대숲 바람에 서걱서걱 댓잎 스치는 소리
안방에서는 천식을 앓는 아버지의 밭은 기침소리에 잠을 못 이루시고 작은 방 구석에 대나무 얼기설기 엮어 담아놓은 고구마 꺼내 쇠죽 끓는 솥에 삶고 얼음 동동 동치미 국물로 긴긴 밤 허기를 달랬다.
소 값이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싸울듯이 목소리 높이며 소리지르다가
낮에 들에서 봤던 이웃 동네 처녀이야기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내기 화투로 친구집 담 넘어 몰래 닭장 뒤져
사위넘 오면 주려던 씨암탉은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마당에 묻어둔 무 꺼내 먹고 난 후 트림과 방귀에 킥킥 웃어대며 코를 막았지.
가난하던 시절, 대가 휘어지게 눈이 내리는 남도의 겨울은 시리고 불발기 창 아래 곁두리 소반상에 맵고도 지린 홍어에 탁배기 한잔으ㅡ로 배고픔을 달랬다.
차고 넘치는 풍요와 쉽게 너무 쉽게 차려지는 배달음식의 시대, 음식의 글로벌화는 다양성을 없애고 표준화시켜 입맛도 통일시켜버렸다. 지역의 정서와 식재료가 만들어내는 특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거기에 핵오염수 방류로 수산물을 대하는게 껅그러워지는 슬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제철음식, 토착음식이 점점 더 애정이 가고 그리워진다.
첫댓글 남도의 밤 식탁, 이 귀한 시집을 갖고 계신 지안오빠, 고오맙습니다.
스승님의 이름 만으로도 허리 깊숙이 숙여 절합니다. 그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