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나이가 서른이 넘어가면 '끝' 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30대를 넘은 여배우들은 여전히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고 보통 20~30년을 연기한 '중견 여배우' 들도 창조적인 캐릭터와 이미지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06년을 빛낸 중견 여배우들에게 바치는 글이자, 언제나 열정적인 그녀들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는 글이다.
★김해숙★
"배우는 작가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방송작가도 사람이다. 배우가 작가가 쓴 글 이상으로 연기하면 거꾸로 작가도 배우를 보면서 캐릭터를 진전시킬 수 있다. 드라마는 유기체와 같아서, 모든 제작진이 합심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사전제작이 되면 좋겠지만, 환경이 안 좋다고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연기자는 프로다. 배우들이 영화를 선호한다지만, 드라마 작업이야말로 젊은 연기자들이 배울 것 많은 곳이다. 같이하는 공동작업이고, 기다림도 배우고, 나는 내 인생처럼 드라마를 사랑한다. 우리네 삶을 가장 현실적으로 화면에 옮기는 일이 아닌가." (배우 김해숙)
2006년을 가장 '빛낸' 여배우가 아닌가 싶다. 작년 <부모님 전 상서><장밋빛 인생> 에 이어 올해도 KBS 주말연속극 <소문난 칠공주> 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흥행불패의 신화를 이어나갔기 때문. '조연'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비중 때문에 이미 <소문난 칠공주> 에서는 빠질 수 없는 배우가 되었고 드라마의 작위적인 설정 속에서도 가슴 절절한 연기로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영화 <해바라기> 에서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초월한 '모성' 을 보여 100만 관객의 눈물샘을 쏙 빼 놓는 연륜의 위대함을 보여주기도. 최근 KBS 연기대상의 강력한 대상후보로 떠 오르며 지치지 않는 "승승장구" 를 이어나가고 있는 김해숙은 밀려드는 시나리오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라 한다. 세월의 부침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그녀의 찬란한 연기가 꺼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나문희★
"나문희 선생님은 어떠한 역할을 갖다 줘도 100% 아니, 200%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다. 나는 그런 나문희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한 평생 한 분야에서 그 정도의 '신기' 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문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다." (드라마 작가 문영남)
60이 넘은 나이에도 출연 자체만으로 작품의 무게를 달리 할 수 있다면 그녀는 우리에게 '배우' 그 이상의 존재다. 때로는 가공할 만한 폭발력으로, 때로는 웃음이 절로나는 코믹스러움으로 극 전반을 휘어잡는 유려함을 지니고 있는 나문희는 올해 KBS <굿바이 솔로><소문난 칠공주>, MBC <거침없이 하이킥>,영화 <열혈남아> 에 출연해 작년과 같은 활발한 연기생활을 지속했다.
특히 <굿바이 솔로> 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배우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가슴 먹먹하게 만들수 있구나' 를 절실히 깨닫게 했던 명연기 중 명연기였다. 물론 <소문난 칠공주> 의 푼수떼기 할머니 역도 좋지만 나문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가슴 속 깊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그 감동을 눈빛으로 전해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이제는 배우라는 차원을 지나 우리 시대의 '장인' 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대 배우에게 찬사의 박수를.
★김영애★
"이 대본을 쓰면서 처음으로 제가 황진이의 작가인 것을 후회했습니다.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기구한 명운을 타고난 여자들의 인생을. 그 슬픔을 훔쳐보자 작정을 한 것인지…. 허공에 멈춘 백무의 그 가녀리지만 당찬 발이 너무도 슬퍼 글귀를 이어 붙이지 못하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님의 연기에 언제나 감명을 받았으며… 졸고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여 기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당신은 저에게 배우 김영애가 아닌 인생의 대 선배이자 스승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35년 기나긴 연기 인생… 언제나 처음처럼 늘 고민하며 연기에 임하신다는 말씀 자주 전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드라마 작가 윤선주)
올해 방영됐던 드라마 중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고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황진이> 에서의 '백무' 의 죽음을 꼽아야겠다. 그렇기에 실존인물이 아닌 상상의 인물을, 아무것도 없이 오직 대본에만 의지해 스스로의 캐릭터를 생명력이 넘쳐흐르게 창조해 낸 배우 김영애에게는 기립박수를 쳐도 시원치 않을 정도다.
황토 사업을 이유로 연예계를 은퇴한 지 2년만에 연기에 대한 열정에 목말라 다시 브라운관에 컴백한 김영애는 <황진이> 에서 냉철하고 차갑지만 한(恨) 을 품고 사는 기녀 '백무' 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18회, 백무의 죽음에서는 극본의 힘을 넘어서는 아우라로 시청자들을 전율케 했으니.....이것이 '배우' 김영애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드라마 <황진이>에 황진이는 없고 백무만 있다." 던 한 방송 평론가의 말......실감난다, 실감나.
★김혜자★
"작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받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주인공 외에 인물을 제대로 살려주는 작가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외 인물들은 도대체 왜 나오는지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청룡상 배우 황정민씨의 수상소감을 보니 ‘잘차려진 밥상에서 떠먹기만 했을 뿐’이라는 인상적인 소감을 들었다. 그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잘 차려진 밥상에서 연기자는 잘할 수 있지만, 초라한 밥상이라면 그저 척만 할 수 있다. 내가 실망하는 작품이라면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것이 낫다." (배우 김혜자)
드라마 <궁> 이 주연배우들의 형편 없는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황인뢰 감독의 영상미 뿐 아니라 황실을 구성하고 있던 중견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대왕대비' 김혜자는 캐릭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엄한 시어머니' 와 '인자한 할머니' 의 중간에서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해줬다.
70년대 MBC 전속으로 시작해 지금까지도 끈끈한 우정으로 수많은 히트 드라마를 제조하고 있는 김혜자는 '배우' 를 넘어서 이제는 배고픔과 질병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품어 줄 수 있는 자원활동가로 변신했다. 작품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항상 소녀 같은 순진무구함과 선(善) 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여인. 뭇 사람들이 그의 웃음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혜숙★
"임성한 작가는 '지독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정말 지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올인'을 했다.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고춧가루, 겨자'와 같은 입맛이 있듯이 <하늘이시여>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배우 한혜숙)
<토지> 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활약했던 한혜숙은 '히트 제조기' 임성한과 손을 잡으면서 '임성한의 페르소나' 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인어아가씨><왕꽃선녀님><하늘이시여> 까지 내리 출연하고 있는 그녀는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고 있는 임성한의 드라마에서 때로는 악독한 이미지로, 때로는 절절한 모정으로 변신하며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혹자는 "왜 한혜숙 같은 배우가 임성한 드라마에만 출연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임성한의 드라마가 빛날 수 있는 이유가 한혜숙이 있기 때문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최근 하명중 감독과 함께 스크린에 복귀한 그녀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로 '모성' 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줄 예정이라 한다.
★정애리★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난 배우이고, 그렇다면 연기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남에게 베풀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돕고 또 돕는다. 그것이 내가 연기하는 이유이고, 봉사하는 이유이다." (배우 정애리)
맨 처음 <사랑과 야망> 에서 정애리가 '엄마'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87년 '김용림의 엄마' 를 떠올렸을 것이다. 현대적이고 진취적이며 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정애리가 과연 김용림이 보여줬던 억척스럽고 강한 그 시대의 '어머니' 를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한번 쯤은 떠올렸을 테니까.
그러나 정애리는 제작지의 믿음 아래, 몸집은 작지만 카랑카랑한 그 시대의 '어머니' 에게 다시 한번 넘치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자신만의 가능성을 폭발시킨 정애리.......이것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기 해 온 중견 여배우의 '깊음' 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런지. 개인적인 가정사의 아픔에도 꿋꿋하게 걸어 온 외길 연기인생에 새삼 숙연해 지는 마음이 든다.
★김보연★
그녀는 "99% 밖에 연습이 안되면 촬영장에 못나간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손에 들린 대본은 군데군데 찢겨지고 더러워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리허설인데 대사를 빨리 외워야 한다" 며 조바심을 냈다. "후배들 앞에서 해야되니까 더 긴장된다. 연기는 조금만 게을러도 금방 티가 나니까…."
아름다워 보이지만 위험한 가시를 숨기고 있고 그 가시에 언젠가 스스로 찔리게 될 기녀들의 기구한 운명을 그녀는 속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경향신문)
배우 김보연은 팔색조 같은 배우다. <부모님 전 상서> 의 '고모' 가 <황진이> 의 '매향' 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때로는 백무보다 더 독한 면모를 보이는 매향은 권력에 집착하는 기녀지만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누구보다도 '쿨' 한 매력적인 '악녀' 다.
그렇기에 백무의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곧 자네의 뒤를 따르겠네. 평생 자웅을 겨뤘던 지기가 없는데 내가 무슨 힘으로 명줄을 이어붙이겠나" 라며 눈물을 머금던 김보연의 연기는 그야말로 영혼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울림이었다. 드라마는 대본의 힘을 뛰어넘는 배우가 있을 때 '드라마' 의 범주를 벗어나 '삶' 의 범주로 들어온다. <황진이> 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본의 힘을 뛰어넘는 배우가 두 명이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런지.
이 외에도 2006년에는 많은 중견 여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다. 윤여정, 심혜진, 윤유선, 박해미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이들의 연기는 이제 우리에게 '연기' 라는 차원을 넘어서 '생활' 자체로 다가오고 있다. 삶이 주는 고통에 펄펄 뛰고, 울고, 발악하고 때로는 시퍼렇게 날카로운 칼날처럼 한 무더기의 말을 쏟아내는 TV 속 그녀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도 우리와 많이 닮아있는지....
중견 여배우에 대해 말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연기의 밀물과 썰물을 동시에 가르며, ‘여배우의 주름살은 삶이 주는 훈장’ 이라는 명언을 입증하며, 그 충만한 에너지와 자의식으로, 신경질적이면서도 바늘 끝에 서 있는 듯한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그녀들은 대한민국의 중견 탤런트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임을 줄기차게 예증하고 있다."
김보연님. 김영애님완전최고! 황진이보면서감동했어요
진짜... 장난 아니더라구요 특히 황진이에서 백무 죽을때... 헉...ㅋㅋ
진짜 황진이 백무보는 재미로 봤는데.. 백무 죽을때 순간 숨이 컥! 막히던.. 김영애씨 연기 너무 잘하세요~~ 김보연씨도 요새 나오는데 많으시던데~진짜 짱!!!
황진이의 두 히로인은 말할것도 없지만... 전 주몽에 견미리님도... 좀 기대했는데^^;
내가 실망하는 작품이라면 차라리 집에서 노는 것이 낫다. 이말멋있어요 ㅠ 김혜자씨?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