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을 잘 디뎌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듣습니다. 처음 직장을 어디서 시작하느냐, 또는 무슨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느냐 등등. 시작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내보면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직장 바꾸기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고 업종을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자라며 공부할 때야 이것저것 해볼 수도 있지만 사회에 발을 디뎌놓고 보면 바꾼다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좀 나을 수도 있지만 30대에 접어들면 점점 어려워지고 더구나 결혼하여 가정까지 세우고 나면 더욱 어려워집니다. 당장 생활의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지요. 웬만하며 한 자리에서 버티려 합니다.
특히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가 그 집단에서 벗어나려면 일반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소위 그 무리들의 의리라는 것이 발목을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들 속에서는 일반적인 양심보다는 조직의 유지와 그에 따른 연대감 같은 것이 다른 이유들을 삼켜버립니다. 범죄 집단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한번 발 디뎌놓으면 빠져나오기 어렵게 됩니다. 이야기 속에서도 많이 경험합니다.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소위 손 뗐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서 떠났다고 다들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핵심 구성원이었다면 그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미첼’은 다시 그런 일에 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배운 것이 그 일이고 아는 것이 그것뿐이니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조직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출감 기념 파티까지 열어주며 반깁니다. 생각이 다른데 말이지요. 어느 날 잘 아는 술집으로 들어가려다 입구에서 한 여성이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물론 여성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정을 확인한 여성은 미첼을 괜찮게 보고 자기 사람으로 끌어당깁니다. 그 다음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집을 지키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을 제의합니다. 마침 따로 하는 일도 없고 직장을 찾던 차입니다. 어려울 것도 없지요.
이미 그 집에는 집사 역할을 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첼이 해야 할 일을 이것저것 설명하고 챙겨줍니다. 알고 보니 주인여성은 한 때 꽤나 잘 나가던 배우입니다. 그래서 집 주변에 그녀를 감시(?)하는 파파라치들이 늘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종일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도무지 사생활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이전 에로배우로서의 경력도 있기에 그것을 빌미로 단순히 감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막말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주변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더럽고 치사하지요. 이렇게 모욕까지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가 싶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살면 정이 생기고 정이 듭니다. 그래서 이웃사촌이고 때로는 형제보다도 가까워집니다. 사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훨씬 정겹고 어려움을 나누기도 쉽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겠지만 정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신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자주 보며 자주 대화하고 자주 어울리면 신분조차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과 귀족 사이에도 사랑이 싹틀 수 있고, 우리 고전에도 나오지만 머슴이 주인마님과 썸을 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경호원은 특히 고객의 가장 가까이서 그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첼과 ‘샬롯’은 잠자리까지 함께 하게 됩니다. 샬롯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알게 된 미첼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살 것을 권합니다. 샬롯은 함께 가기를 청합니다.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이제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면 자기네 사정을 아예 모르는 나라로 피신하여 훨씬 편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야 샬롯이 대단한 부자이니 걱정할 일도 아닙니다. 그냥 옆을 지켜주며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쉽게만 풀리지를 않습니다. 미첼은 계속 조직의 두목에게 위협을 받으며 시소게임을 합니다. 벗어나야 한다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일이고 해야 합니다. 결국 이판사판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합니다.
미첼이 평소 도와주던 나이든 노숙자가 청소년들의 집단 폭행을 당해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그 뒷수습을 미첼이 다 감당합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자신의 조직의 도움까지 받으며 찾아 나섭니다. 또 한편 막무가내로 살고 있는 여동생까지 돌봐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얽혀서 미첼의 삶을 옥죕니다. 조직의 두목은 처리하지만 엉뚱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악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못돼먹은 놈들은 어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떠난 샬롯은 아마도 기다리다 잊으리라 생각은 합니다. 세상 참 더럽다 싶지요. 영화 ‘런던 블러바드’(London Boulevard)를 보았습니다. 2013년 작입니다. ‘블러바드’는 그냥 ‘큰길(大路)라는 뜻인데 영화제목에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