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 Missa brevis, for 2 sopranos, chorus, organ & strings in F major, H. 22/1
하이든 - 짧은 미사 F장조 Hob. XXII / 1
Franz Joseph Haydn [1732 ∼ 1809]
James Bowman Counter Tenor (Vocal)
Martyn Hill Tenor (Vocal)
Emma Kirkby Soprano (Vocal)
Shirley Minty Contralto (Vocal)
Judith Nelson Soprano (Vocal)
David Thomas Bass (Vocal)
Christ Church Cathedral Choir, Oxford Choir
Academy of Ancient Music Orchestra
Simon Preston Condu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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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a brevis, for 2 sopranos, chorus, organ & strings in F major, H. 22/1
1 Kyrie
2 Gloria
3 Credo
4 Sanctus
5 Benedictus
6 Agnus Dei
하이든 14편의 미사곡
하이든은 14편의 미사곡을 남겼다. 모두 경건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일부, 정확히는 여섯 편은 에스터하지 사람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 공주의 명명일(name day)을 축하하여 작곡한 미사곡들이다. 교회음악, 특히 미사곡은 하이든의 생애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하이든은 어린 시절, 비엔나 슈테판성당의 소년합창단원으로서 미사에 참여하고 미사곡을 불렀다. 이로부터 하이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음악적 전통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이든은 요즘 음악가들처럼 정규 대학에서 작곡이나 연주를 전공한 것이 아니며 해외유학을 간 일도 없다. 가톨릭 교회는 하이든의 음악적 재능을 훈련시켜준 곳이었다. 이탈리아어에 능숙했던 것은 다행히 그가 하숙하고 있던 집에 이탈리아의 시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울수가 있어서였다. 그가 직업음악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에스터하지 공자에게 봉사하고서부터였다. '교향곡의 아버지' 또는 '현악4중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은 약 40년이나 되는 에스터하지 봉사기간에 미사곡과 종교음악도 다수 작곡하였다. 그가 에스터하지와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비엔나에서 생애의 마지막을 보낼 때에 작곡한 작품도 실은 미사곡과 오라토리오였다. 불후의 명곡인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말년에 비엔나에서 완성한 것이다. 하이든은 참으로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가 작곡한 악보들을 보면, 특히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부면 악보의 첫 장에는 In Nomine Domine(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썼으며 마지막 장에는 Fine Laus Deo(주님을 찬양하며 마치도다)라고 썼다. 그의 미사곡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작곡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심의 표현이었다. 하이든은 '하나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 하이든이기에 우리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호보켄(H 또는 Hob)은 모든 미사곡을 XXII(22)번에 넣고 다시 연대별로 분류하였다. 독일어 미사곡은 없고 모두 라틴어로 된 미사곡이다. 하이든의 14개 미사곡 중에서 12개는 완전한 형태의 것이지만 2개는 미완성이다. 하이든은 17세 때인 1749년에 첫번째 미사곡을 완성한 이래 1802년까지 미사곡 작곡을 계속하였다. 다만, 중간에 갭이 있다면 1783-1795년이었다. 영국에 가서 몇년 동안 살았던 것도 그 시기였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사곡은 하이든이 가장 오랜 기간동안 손에서 놓지 않고 작곡했던 장르이다. 1782년 이전에 작곡한 여섯 개의 미사곡은 스타일에 있어서 다른 것들과 상당히 다르다. 두개의 짧은 미사곡인 Missae breves in F와 Sanctis Joannis de Deo(리틀 오르간 미사) 사이의 작품들은 비엔나 교회 트리오(Viennese church trio: 바이올린 2와 베이스 콘티누오 1)의 소박한 연주관례에 따른 작품들이다. 하지만 풍부한 오케스트라의 미사곡들도 있다. 예를 들면 Missa Cellensis in honorem B.M.V.(그로세 마리아첼러메세)이다. 반면에 1796년 이후에 작곡한 후기의 여섯 미사곡을은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Missa rorate coeli desuper는 하이든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호보켄 카탈로그는 31번(XXXI)까지 정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XXII이 미사곡이다.]
1. F 장조. Missa brevis. H. XXII/1. (1749)
[Missa brevis는 짧은 미사곡이라는 의미이다.]. 미사 브레비스는 미사를 집행하는 시간이 짧아서 정규 미사곡을 연주할 필요가 없을 때, 미사곡을 연주할수 있는 인원이 부족할 때, 미사곡을 완성하지 못해서 미완성된 자체로 연주해야 할 때 등에 해당된다. 하이든의 첫번째 미사곡인 F 장조 미사 브레비스는 대단히 짧은 미사곡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벽한 미사곡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런데 이곡은 사실 하이든이 10대의 청소년으로서 아직도 비엔나의 슈테판성당(슈테판스돔)의 소년성가대원으로 있을 때에 작곡한 것이다. 그때 하이든은 17세였다. 물론 초보적인 작품이다. 구성도 바이올린 2, 콘티누오, 4부합창, 두명의 보이스 소프라노로 되어 있다.
하이든은 변성기가 되어 더 이상 소년합창단에서 노래부르기가 어렵게 되자 슈테판성당에서 나와야 했다. 하이든은 마리아첼교회로 순례를 가서 그곳 음악감독에게 미사 브레비스를 보여주었다. 마리아첼교회 성가대가 하이든의 미사 브레비스를 연주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에는 이 미사곡의 악보가 손으로 필사되어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이든이 자기의 소년시대 작품을 다시 만난 것은 한참 후인 1805년이었다. 비엔나 교외의 로사우(Rossau)에 있는 제르비테(Servite) 수도원에서 F장조 미사 브레비스의 악보를 찾았다면서 누가 보여주었기 때문에 재회할 수 있었다.
그때 하이든은 이미 63세의 노년이었다. 건강이 악화되어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하이든은 수십년 전에 처음 만들었던 미사곡을 보고 감개가 무량해서 악보에 'di me Giuseppe Haydn mpri 1749'라는 글을 직접 썼다. '나에 의해서, 요제프 하이든, 내 손으로, 1749년'이라는 내용이다. 하이든은 반주부분을 수정하고 싶었지만 노년에 병세여서 이루지 못했다. 하이든은 특히 반주부분에 목관악기를 추가하고 싶어했다. 반주부분은 훗날 요제프 하이덴라이히(Joseph Heindenreich)라는 사람이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팀파니를 추가하는 반주부분을 완성했다. 연주시간은 12분에 불과하지만 키리에(Kyrie), 글로리아(Gloria), 크레도(Credo), 상투스(Sanctus), 베네딕투스(Benedictus), 아누스 데이(Agnus Dei)로 완벽하게 구성된 미사곡이다.
2. D 단조. Missa Sunt bona mixta malis. H. XXII/2 (1768?. 1770년 이전)
3. G 장조. Missa Rorate coeli desuper. H, XXII/3. (미확인 또는1750)
Votivmesse zu Ehren der Gottesmutter in der Adventszeit (강림절에 즈음한 성모 봉헌 미사). 하이든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4. E 플랫장조. Grosse Orgelmesse (대 오르간 미사)
Missa Cellensis in honorem Beatissimae Virginis Mariae. H. XXII/4. (1766-73)
Cäcilienmesse 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성체칠리아를 위한 미사곡이 아니라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B.V.M)를 위한 미사곡이다. 하이든이 에스터하지 궁전의 정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임명되고 나서 첫 작품이다.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하이든 하우스의 화재 때에 악보가 소실되었다고 믿어졌으나 나중에 안톤 브루크너가 부다페스트에서 발견했다.
5. C 장조. Cäcilienmesse (세실리아미사)
Missa Cellensis in honorem Beatissimae Virginis Mariae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위한 셀렌시스 미사). H. XXII/5. (1766)
1761년부터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터하지가에 봉사하기 시작한 하이든은 처음에 부음악감독의 직위에 임명되었다가 1766년에 정음악감독이던 그레고르 요제프 베르너(Gregor Joseph Werner)가 세상을 떠나자 곧이어 정음악감독에 임명되었다. 이 미사곡은 바로 그 시점에 작곡한 것이다. 오리지널 악보는 1970년경에 부다페스트에서 발견되었다. 그 오리지널 악보에 의하면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슈티리아에 있는 마리아첼(Mariazell) 순례교회의 순례자 미사를 위해 작곡했다고 되어 있다. 오리지널 악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사본 악보들을 통해서 이 미사곡을 '성세칠리아미사곡'(Missa Sanctae Caeciliae) 또는 독일어로 '체칠리엔메세'(Cäcilienmesse)라고 알려졌다.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아마도 비엔나의 음악인조합인 '장크트 체칠리아 모임'(St Cecilia's Congregation)이 성세칠리아 축일인 11월 22일에 연주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오리지널 악보는 1768년 아이덴슈타트에서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하이든은 기억을 되살려서 이 미사곡의 악보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오리지널의 음악을 좀 더 확대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오리지널 악보에는 키리에와 글로리아만이 있었으나 하이든이 나중에 다른 파트들도 추가했다는 주장이다. 하이든이 다시 적은 악보는 훗날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가 처음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미사곡을 브루크너 미사곡이라고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세실리아미사'의 구성은 일반 미사곡들과 마찬가지로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누스 데이로 되어 있다. 전체 곡은 15곡이다.
6. G 장조. Missa Sancti Nicolai (성니콜라이 미사). H. XXII/6. (1772)
니콜라이미사(Nicolaimesse)라고도 부른다. 하이든이 말년인 1802년에 수정하였다. 수정버전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추가하였다.
7. B 플랫 장조. Missa brevis Sancti Joannis de Deo (성요한 미사 브레비스). H. XXII/7. (1778 이전)
'Kleine Orgelmesse'(작은 오르간미사곡)이라고도 부른다. 아이젠슈타트의 의료봉사형제단(Barmherzige Bruder: Brothers Hospitallers)를 위해서 1775년에 작곡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형제단의 수호성인이 포르투갈 출신의 성자로서 박애주의자인 John of God(João de Deus: 1495-1500)이어서 성요한 미사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작은 오르간 미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베네딕투스 파트에서 오르간 솔로가 상당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아이젠슈타트의 병원채플에서 열렸던 이 미사곡의 초연에서 오르간을 직접 연주했다. '작은 오르간'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병원채플의 오르간이 페달도 없이 여섯 스톱으로만 되어 있는 소규모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포르투갈의 성요안은 의료형제봉사단을 설립한 사람이다. 하이든은 여러 편의 짧은 미사(미사 브레비스)를 작곡했는데 성니콜라이 미사는 마지막으로 작곡한 미사 브레비스이다. 만일 미사 브레비스 로라테 코엘리 데수퍼(Missa brevis Rorate coeli desuper)도 하이든의 작품으로 확정된다면 하이든이 작곡한 미사 브레비스는 전부 다섯편이 된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합창, 현악기, 오르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나중에 수정할 때에는 트럼펫, 팀파니, 클라리넷이 추가되었다. 이 미사곡이 잘츠부르크에서 연주될 때에는 가사가 너무 압축되었다고 해서 연주할 수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하이든이 글로리아 파트에 가사를 덧붙여서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하엘 하이든이 연장한 스코어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고 하이든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연주될 뿐이다. 한편,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헤츠버거는 베네딕투스 파트를 새로 작곡해서 붙이기도 했다.
8. C 장조. Missa Cellensis, Mariazellermess (셀렌니스 미사, 마리아첼미사). H. XXII/8. (1782)
이 미사곡의 풀 네임은 Missa Cellensis Fatta per il Signor Liebe de Kreutzner이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 미사곡을 안톤 리베 폰 크로이츠너(Anton Liebe von Kreutzner)라는 장교가 그의 귀족서훈을 기념해서 하이든에게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슈티리아의 순례교회인 마리아첼에게 헌전하였다. 그러므로 이 미사곡은 '마리아첼 미사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이든은 이미 1773년에 Missa Cellensis in honorem B.V. M.를 마리아첼교회에 헌정한 바 있다.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후기 다른 미사곡들에 비하여 전통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글로리아, 크레도, 아누스 데이의 말미에 푸가를 넣은 것과 글로리아와 크레도 솔로 파사지를 넣었고 베네딕투스에는 솔로적인 아리아를 넣은 점도 이채롭다. 한편, 하이든은 이 미사곡에 여러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키리에의 도입부에 느린 템포의 교향적 음악을 넣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초기 미사곡들과 후기 미사곡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 말할수 있다.
미사곡 9번부터 14번까지는 에스터하지 가족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즉, 에스터하지의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인 마리아 헤르메네길트의 명명일(9월 12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이다. 마리아 헤르메네길트 공주는 하이든의 친구이기도 했다. 명명일은 주로 같은 이름의 성인의 축일을 자기의 축일로 정해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오피다의 성베르나르드 미사'는 성모명명축일인 9월 11일에 연주되었다고 하지만 9월 12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파우켄미사'는 1797년 12월 26일에 초연되었다. '불안한 시기의 미사'는 1798년 9월 23일에 초연되었다. '천지창조 미사'는 1801년 9월 13일에 초연되었다. 이 미사곡에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특히 글로리아에서 등장한다. '하모니 미사'는 1802년 9월 8일에 처음 연주되었다. 하이든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주요작품이다. 하이든은 '하모니미사'를 완성하고 나서 곧이어 병세가 악화되어 거동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더 이상 작곡할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9. C 장조. Missa in tempore belli (전쟁시기의 미사). H. XXII/9. (1796)
1796년에 완성한 하이든의 〈전시 미사〉는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 평화에 대한 염원 등이 깃들어 있다. 하이든 후기에 완성된 6곡의 미사의 포문을 여는 이 작품은 아뉴스 데이에 등장하는 팀파니 독주로 인해 ‘파우켄(큰북) 미사’라는 부제로도 알려져 있다.
'전쟁미사'(Mass in Time of War)이다. Paukenmesse(팀파티 미사곡: Kettledrum Mass)이라고도 부른다. 나폴레옹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오스트리아군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지은 곡이다. '팀파니 미사곡'이라고 불리는 것은 마지막 파트에서 팀파니의 연주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팀파니는 독일어로 파우켄(Pauken)이라고 하기 때문에 '파우켄메세'라고도 부른다. 이 미사곡은 하이든의 전체 14개 미사곡 중에서 아마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 것이다. '전쟁시기의 미사'라는 타이틀은 하이든의 오리지널 악보에 하이든의 친필로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하이든이 이 미사곡을 작곡하던 1796년에는 오스트리아 전국에 전쟁동원령이 내려졌던 때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은 4년이라는 기간 동안 프랑스가 주도하는 전쟁에 휘말려야 했다. 오스트리아군은 북부 이탈리아와 동부 독일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패배했고 이어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것으로 여겨져서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이든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베네딕투스와 아누스 데이에 표현하였다. 이 미사곡은 179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비엔나 8구 요제프슈타트의 피아리스텐가쎄 43-45번지에 있는 피아리스텐키르헤(Piaristenkirche)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마리아 트로이(Maria Treu)교회라고도 불리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이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아이젠슈타트의 버그키르헤에서 비엔나 초연이 있은 다음 해인 1797년 월에 연주되었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함께 양대 종교음악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쟁시기의 미사'는 하이든의 반전 감정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전체 가사 중에는 그런 메시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하이든 자신도 이 미사곡이 반전 주장을 담은 것이라고 언급한 일도 없다. 다만, 음악 자체가 하이든의 음악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하이든이 당시의 불안감을 표현하지 않았겠느냐고 짐작할 뿐이다. 두려움과 불안감은 베네딕투스와 아누스 데이에서 특별히 인식할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 미사곡도 전반적으로 서정적이고 명랑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든이 이 곡을 작곡할 즈음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포고령을 내고 '오스트리아 국민이라면 적군이 자기들 본래의 국경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어느누구도 평화를 말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작곡한 것이기 때문에 '전쟁시기의 미사'라는 타이틀이 더욱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전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아누스 데이에서 팀파니가 단조로 연주하는 것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때에 울리는 심연으로부터의 팀파니 소리는 어떤 운명적인 예감을 나타내주는 것처럼 들린다. 훗날 베토벤도 그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에서 '전쟁시기의 미사'에서의 팀파니 음향을 다시 들려주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팀파니의 운명적인 음향이 끝나면 트럼펫의 팡파레와 함께 마치 환희에 넘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이 나온다. 평화가 이미 온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시에 탄생한 걸작
어린 시절, 빈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했던 하이든은 미사 음악을 비롯한 교회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는 열여덟 살인 1750년에 첫 번째 미사 음악인 〈미사 브레비스 F장조〉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작곡 연대가 분명히 기록된 그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일자리를 얻은 후에는 미사 음악을 쓸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하이든이 다시 미사 음악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1796년 이후의 일로 이때부터 1802년까지 6년 동안 하이든은 1년에 평균 한 편 꼴로 여섯 곡의 미사를 작곡했는데, 이 후기 미사들은 오늘날 그의 성악 음악의 걸작으로 꼽힌다.
‘전시 미사’는 미사 음악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기 시작하던 1796년에 작곡되었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으로 곳곳이 전시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가 다스리던 북 이탈리아 지역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하이든은 이렇게 전쟁과 공포,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 등을 담아서 미사 음악을 작곡하고 ‘전시 미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미사 음악은 또한 ‘파우켄’(큰북)이라는 부제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뉴스 데이’에 독주 팀파니의 음색이 인상적으로 등장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곡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후작 니콜라우스 2세의 의뢰로 작곡되어서 1796년 12월 26일 빈 근교의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팀파니를 통한 극적인 전개
하이든의 〈전시 미사〉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솔리스트와 혼성 4부 합창, 그리고 오르간과 팀파니까지 가세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편성으로 연주 시간은 약 40여 분에 달한다.
첫 곡인 ‘키리에’는 소나타 형식을 바탕으로 마치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전개된다. 두 번째 곡 ‘글로리아’는 첼로와 바리톤의 저음역이 깊은 서정을 드러낸다. 특히 시작 부분의 화음이 무척 아름답다.
‘크레도’는 박진감 있는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데, 가사의 음절에 따라서 리드미컬하고 확신에 찬 선율이 이어진다. 4박자로 흐르던 음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단어가 나오는 부분에서 3박자로 바뀐다. 전통적으로 3박자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 숫자로, 깊은 신앙심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베네딕투스’와 마지막 곡 ‘아뉴스 데이’는 전시의 미사라는 제목을 음악으로 가장 잘 구현한 악곡이다. 특히 ‘아뉴스 데이’는 B♭단조이며 도입 부분에 팀파니 연타가 독주로 등장하면서 불안함과 긴장이 깊이를 표현한다. 이 부분에 나오는 팀파니의 음형과 극적인 표현은 훗날 베토벤의 〈장엄 미사〉의 ‘아뉴스 데이’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사 전시(戰時)
Mass in Tempore Belli, Paukenmesse
1796년에 쓴 하이든의 후기 미사곡 중 첫 번째 곡이다. 1796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Eisenstadt)의 베르크 교회(Bergkirche)에서 초연됐다. 초연 당시의 악기편성은 오보에, 파곳, 트럼펫 각각 2개, 팀파니, 현악기, 오르간 등이었으나 같은 해 12월 빈(Wien)에서 재연되었을 때는 클라리넷 2개가 추가되었다.
1796년 3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에 임명되자 위협을 느낀 오스트리아는 그해 8월에 프랑스와의 전쟁을 대비해서 총동원령을 공표했는데 그 때 만들어진 곡이 전시미사다. 이 명칭은 하이든 자신이 직접 명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어권에서는 <큰북미사Paukenmesse>로 불려지고 있는데, 제5악장 <하느님의 어린양 Agnus Dei>에서 팀파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뉴스 데이에서 연주되는 팀파니와 트럼펫의 팡파르는 나폴레옹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연상시킨다는 해석도 있다.
하이든의 후기 6곡의 미사곡이 지닌 공통점은 구성이 견고하고 선율과 화음의 밀도가 높고, 독창과 합창, 인성(人聲)과 악기와의 대조의 묘미가 그의 만년의 교향곡을 방불케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미사들은 미사 전례를 위한 <인성이 붙은 교향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1악장 키리에(kyrie)는 교향곡 제1악장의 서주와 같은 느리면서도 장엄한 서주로 시작되어서 하나의 주제가 펼쳐진다.
제2악장 글로리아(gloria)는 3부 구성이다. 빠르고 힘찬 첫 부분의 합창과 관현악의 주고받는 부분은 협주곡을 연상케 할 정도다. 느린 중간부분은 첼로 솔로의 서주에 이어 “이 세상의 죄를 사하여주소서 Qui tollis paccata mundi”에서 첼로의 오브리가토와 함께 노래되는 베이스 독창의 멜로디는 아름다움과 격조가 높으며 오페라 아리아를 능가한다.
제3악장 크레도(credo)도 3부 구성이다.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템포가 빠르고, 느린 중간부분은 4중창이 중심이 되어 있다. 첫 부분은 합창의 대위법적 진행이 있은 후 느린 아다지오로 이행되며, 마지막 종결부의 합창은 대위법적으로 되어있다.
비교적 짧은 제4악장 상투스(sanctus)는 느린 전반부와 생기 넘치는 후반부로 구별된다. 짧지만 매력적이다. 베네딕투스(benedictus)는 느린 관현악의 전주가 먼저 나타나고 이어서 4중창의 간절한 기도가 전개된다. 소프라노에 의해 주도되는 4중창은 감동적이고도 아름답다.
제5악장 아뉴스 데이(Agnus Dei)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3번 간절히 부르는 기도로 시작, 후반에 팀파니의 불안한 반주가 나타난다. 이윽고 마치 전쟁을 암시하는 듯한 팀파니의 격력한 울림 속에 트럼펫이 힘차게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의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라고 강렬하게 외치는 부분은 춤추는 듯한 화려한 리듬에 실린 평화의 축전과 같은 강렬한 느낌을 준다.
10. B 플랫 장조. Missa sancti Bernardi von Offida (오피다의 성베르나르드 미사). H. XXII/10. (1796).
영국에서 귀국후 첫 미사곡이다. Heiligenmesse(하일리겐메세: 성미사)라고도 부른다.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카푸친 수도회의 성직자인 성베르나르드의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여 작곡한 것이다. 베르나르드는 사후 1백년만에 바티칸의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성자로 시성되었다. 이 미사곡을 하일리히겐메세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 미사곡의 상투스 파트에서 당시 유행하였던 오스트리아의 전통 멜로디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상투스는 독일어로 하일리히(Heilig)이다. 안톤 브루크너의 장엄미사곡 B 플랫 단조에서 쿠오니암(Quoniam)은 하이든의 이 미사곡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11. D 단조. Missa in Angustiis (불안한 시기의 미사). H. XXII/11. (1798).
하이든이 생애 말기에 작곡한 〈불안한 시대의 미사〉는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이 한창이던 1798년에 작곡되었다. 전쟁의 불안과 비극을 반영한 이 음악은 나폴레옹 함대를 무찌른 영국 함대의 넬슨 제독 이름을 따서 ‘넬슨 미사’라는 부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Nelson Mass(Nelsonmesse)라고도 부른다. 나폴레옹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하이든 연구의 대가인 미국의 로빈스 랜던은 '넬슨미사'를 하이든의 최대 걸작 중의 하나라고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이든은 에스터하지가를 위해 거의 해마다 한편씩의 미사곡을 작곡했는데 1797년에는 잠시 쉬었다. 요제프 2세는 1780년대에 여러 개혁을 추진하는 중, 교회와 수도원에 대한 개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도원을 줄이고 교회의 권한을 제한하는 와중이므로 미사곡 작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이든의 14개 미사곡 중에서 마지막 몇 작품은 하이든이 런던을 방문하고 나서 작곡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든이 런던 심포니로부터 얻은 경험이 반영되었다. 다시 말해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보다 화려해지고 웅장해졌다. '넬슨미사'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편,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적 정세는 불안하고 예측할수 없는 것이었다. 하이든의 파트론인 에스터하지의 니콜라우스 2세는 긴축재정을 하기 위해 에스터하지가에서 운영하던 펠트하모니(Feldharmonie), 즉 8중주의 목관악기 밴드를 해산하였다. 하이든이 '넬슨미사'를 완성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이든은 '넬슨미사'를 '어두운'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연주토록해야 했다. 즉, 목관이 없으므로 전체적으로 어두운 음색의 연주를 해야 했다. 다만, 하이든은 현악기 이외에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만을 추가하여 반주를 하도록 했다. 오케스트라가 빈약했기 때문에 이를 '어두운'(dunkel)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훗날 편곡자들이 목관과 금관악기들을 적당히 추가하여 완벽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지만 처음에는 오케스트라가 빈약했었다.
나폴레옹 정복 당시 불안한 사회 반영
하이든은 모두 14곡가량의 미사 음악을 남겼다. 100곡이 넘는 교향곡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작곡 연도가 정확히 명시된 하이든의 최초의 작품과 최후의 작품이 공교롭게도 모두 미사 음악이라는 점에서 미사 음악이 갖는 의미는 조금 특별하다. 어린 시절, 빈 소년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사 때마다 노래를 불렀던 하이든에게는 미사 음악이 가장 친숙한 음악이었으나 성인이 된 후 에스테르하지 궁정 음악가로 일하던 수십 년 동안 오페라와 교향곡, 실내악 등에 치중하느라 미사곡을 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은퇴 후에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으로부터 1년에 한 곡씩 미사 음악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섯 개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불안한 시대의 미사〉는 이 시기에 탄생한 여섯 개의 미사 중 세 번째 작품이다.
〈불안한 시대의 미사〉는 1798년 7월 10일부터 8월 31일 사이에 작곡되어 그해 9월 23일 아이젠슈타트의 한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이 해에 하이든은 자신의 대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 아리아 〈홀로 생각에 잠겨〉 등을 잇달아 작곡하고, 이듬해에는 오라토리오 〈사계〉를 쓰기 시작하는 등 성악 음악에 주력하고 있었다. “불안한 시대의 미사”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넬슨 미사”라는 부제로 더 유명하다. 넬슨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와 전투를 벌인 영국 해군 제독인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하이든이 한창 이 곡을 작곡하던 1798년 8월 1일에 넬슨 제독은 나폴레옹의 함대를 격파시키면서 영웅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하이든이 넬슨 제독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회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전쟁의 종식과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 곡을 〈넬슨 미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실제로 이 미사 음악의 연주회에 넬슨 제독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넬슨 미사
Nelsonmesse
하이든의 6곡의 후기 미사곡중 3번째로 작곡된 곡으로 미사곡중 유일하게 단조로 작곡된 곡이다. 하이든은 그의 열열한 후원자였던 에스텔하치가의 니콜라우스 2세의 부인의 명명일을 축하하기위해 매년 1곡씩의 미사를 작곡하기로 약속했다. 이곡은 6곡의 후기 미사곡 중 3번째에 해당되며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초연 직후인 1798년 7월 10일에서 8월 31일 사이의 극히 짧은 기간내에 아이젠 스타드에서 작곡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넬슨 미사는 “시련의 시기의 미사”(Missa in Angustis)라는 원명을 갖고 있다. 이곡이 완성될 당시 1798년 8월 2일 영국해군의 넬슨제독은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의 아브기르(Abukir)만에서 프랑스 해군을 격파하였다. 나폴레옹의 위협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인에게 넬슨제독은 영웅으로 존경되었다. 이 미사곡의 <베네딕투스> 악장에 나타나 있는 트럼펫의 팡파레가 넬슨제독의 승리를 나타내는 나팔소리로하여, 또 1800년이 넬슨 제독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에스텔하치 후작의 초청으로 아이젠슈타트에 들렸다. 그 때에 이 미사곡이 연주된 이래 넬슨미사로 불리워지게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곡의 원보에는 3개의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과 현악기들로 파트가 기록되어 있으며 목관악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이 미사곡이 작곡될 당시 아이젠슈타트 악단의 관악기주자의 태반이 휴가를 갔거나 에스텔하치공이 하이든이 필요로 했던 악단을 해고했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곡에서 하이든은 오르간을 곡전체를 떠받치는 저음악기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관현악의 일부로서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후 제자들에 의해 하이든은 생존시에 플루트 1, 오보에 2, 파곳트 2을 첨가한 개정판 악보를 출판하였다. 이 넬슨미사의 크레도에는 불가사의하게 “우리는 믿습니다. 유일하신 주, 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과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기사가가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다.
후기 미사곡에서 볼 수 있는 하이든 특유의 소박하고 경쾌한 스타일에 더하여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도 웅장한 수법이 이 미사곡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 미사곡의 <글로리아>에서 볼 수 있는 열광적이고도 아름다운 선율의 전개는 실로 눈부시다. 그외 장중하고도 웅장한 스타일의 <키리에>나 <베네딕투스> 등은 66세 노대가의 작품이라고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젊음과 신선함에 충만하다.
첫악장의 키리에는 전체적으로 매우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되어있다. 트럼펫과 팀파니의가 특징적인 리듬의 서주로 시작되고 키리에 에레이존이(Kyrie eleison) 합창에 의해 간절하게 노래된다. 소프라노 독창의 중창 또는 합창에 의해 지탱되면서 진행된다. 그다음 합창을 동반한 아름다운 콜로라투라에 의한 크리스테 엘레이존이 짧게 나타난다. 이어 다시 처엄의 키리에 엘레이존이 재현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글로리아는 솔로의 부분이 오페라 아리아 풍으로 전개되는 경쾌한 악장이다. 이곡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악장으로 경쾌한 리듬과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차 있다. Qui tollis로 시작되는 아다지오의 느린 중간부분은 곧이어 전개될 베토벤의 종교음악을 예견케한다. 크레도는 대위법적 처리의 옛 코랄 선율에 기초하고 있다. 주제는 소프라노와 테너 성부간의 캐논의 모방대위법으로 되어있다. Et resurroxit 부분의 마지막 부분의 "et vitam venturi saeculi, Amen"은 합창에 의한 힘찬 노래를 부른다.
상투스는 느린 아다지오의 매우 엄숙한 부분으로 시작되어 알레그로 부분으로 넘어가면 강약의 대비를 보이면서 “높은 곳에서는 호산나“의 힘찬 끝맺음을 한다. 대부분의 베네딕투스 악장은 서정적으로 작곡되는게 보통인데 하이든은 이곡의 끝부분에 트럼펫과 팀파니의 연타를 집어넣어 전쟁을 암시하고 있어 이곡이 1769년에 작곡된 「전시미사」와 동반작품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아뉴스 데이에 들어가면 온화한 선율이 엘토에 의해 시작된다. 이어 소프라노가 받아 전개한다.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가 전개되면서 조용히 끝맺는다.
확장된 미사 통상문
〈넬슨 미사〉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부분적으로 소프라노 독창자 한 명이 추가)와 혼성 4부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성으로 작곡되었다. 관현악에는 석 대의 트럼펫과 팀파니, 그리고 오르간 등이 가세해서 화려하고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내며, 초판 악보에는 플루트와 오보에, 바순, 호른 등이 포함되었으나 개정된 토마스판에는 바순이 두 대에서 한 대로 줄고, 대신 클라리넷 두 대가 보충되었다.
〈넬슨 미사〉는 가톨릭교회의 정통 미사 통상문 구성에 따라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까지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영광송’인 ‘글로리아’와 ‘크레도’를 세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 보다 세부적으로는 열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불안한 시대의 미사〉라는 제목을 반영하듯 전체적으로는 비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는 d단조가 지배적이며, 여기에 승리와 희망을 상징하는 D장조의 음악이 대비를 이룬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Kyrie)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시작하는 ‘키리에’는 서주부에 이어 1주제와 2주제가 등장한 후 두 개의 주제 발전과 변형이 이루어지다가 다시 주제가 제시되는 등 전체적으로 소나타 형식과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소프라노 솔로와 합창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서주부의 바이올린 선율이 아름답다.
대영광송(Gloria)
이 부분은 “글로리아”(Gloria),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자 누구인가”(Qui tollis peccata mundi), “주님만 홀로 거룩하시다”(Quoniam tu solus)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천상의 위엄을 상징하는 활기차고 밝은 D장조로 펼쳐지며 전체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금관 악기의 음색이 돋보인다. 첫 부분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콘체르토 양식을 바탕으로 작곡되었으며,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에서 이어져 오던 교창 스타일의 전통을 반영해 독창자와 합창, 오케스트라가 교대로 등장한다. 두 번째 부분인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자 누구인가”는 앞부분과 대조적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D단조로 펼쳐진다. 오보에와 플루트의 서정적인 선율이 독창 선율과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부분인 “주님만 홀로 거룩하시다”에서는 첫 부분에 나온 ‘대영광송’의 주제 선율이 재현되며 넬슨 미사 전체에서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푸가가 등장한다.
사도신경(Credo)
이 부분은 “사도신경”(Credo), “인간의 몸으로 나셨다”(Et incarnatus est), “부활하셨다”(Et ressurexit)까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엄격한 모방 형식으로 펼쳐진 후에 두 번째 부분인 “인간의 몸으로 나셨다”는 수직적인 화성의 어우러짐을 강조한 호모포니적인 성격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몸을 빌어서 태어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는 과정을 묘사한 이 부분에서 특히 ‘십자가’를 뜻하는 “crucifixus”라는 가사가 나올 때는 반음계적인 하행 진행을 통해 가사의 내용을 음악적으로 암시한다. 이러한 기법은 마지막 부분인 “부활하셨다”에서도 적용되어 ‘부활’이라는 뜻의 “ressurexit”라는 가사는 위로 상행하는 선율로 활기차게 시작하며 “죽은 자”(Mortuos)와 “산 자”(Vivos)라는 가사 역시 음역과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대조적으로 표현된다.
거룩하시다(Sanctus)
‘거룩하시다’라는 뜻을 가진 ‘상투스’는 느린 템포와 빠른 템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트럼펫과 팀파니 등으로 웅장하게 시작해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어진다.
축복하소서(Benedictus)
축복송으로 불리는 ‘베네딕투스’는 독창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호모포니 형식의 악곡으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사용되었다.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호산나’(Ossanna)는 D장조에 알레그로의 경쾌한 템포 아래 합창이 환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표현한다. 축복 악장 후에 호산나를 반복하는 것은 하이든의 미사에서 보기 드문 시도이다.
천주의 어린 양(Agnus Dei)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솔리스트들의 독창과 앙상블만으로 이어지는 곡으로 G장조로 시작해 d단조로 마무리된다. 관악기 사용을 배제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
앞선 ‘천주의 어린 양’에 이어지는 곡으로 주제 선율이 전체적으로 하행하는 분위기로 전개된다.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무반주 합창은 거룩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하이든이 '넬슨미사'를 완성한 1798년은 하이든의 명성이 정상에 있을 때였지만 유럽의 정치정세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서 1년 동안에 네번이나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전해인 1797년에는 나폴레옹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와서 비엔나를 위협했었다. 이어 나폴레옹은 1798년 5월에 이집트를 침공하여 영국의 아시아 무역로를 차단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1798년 여름은 오스트리아로서 대단히 두려운 시기였다. 하이든이 11번째 미사곡을 완성하고서 제목을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Missa in Angustiis: Mass for troubled times)라고 붙인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였다.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그해 9월 15일에 처음 연주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하이든과 청중들은 나폴레옹이 8월 1일의 나일 전투에서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Admiral Horatio Nelson)에게 크게 패배하였다는 소식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저런 연고로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넬슨경 미사'(Lord Nelson Mass)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넬슨경 미사'가 이 미사곡의 제목으로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넬슨경이 1800년에 비엔나를 방문해서 영국인 정부인 레이디 해밀튼과 함께 팔레 에스터하지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을 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이 미사곡의 원래 제목인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은 하이든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하이든이 그런 제목을 붙였다고 내세우기도 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공식적으로 1799년 3월에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처음 연주되었지만 그로부터 하이든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갔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하이든은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을 빈약한 오케스트라를 대상으로 작곡했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통스런 시기의 미사곡' 또는 '넬슨 미사곡'은 1798년 9우러 23일 아이젠슈타트의 교구교회(Dom St. Martin in Eisenstadt)에서 초연되었다. 원래는 예에 의해서 버그키르헤에서 연주되는 계획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장소가 변경되었다.
12. B 플랫 장조. Theresienmesse (테레지아미사). H. XXII/12. (1799).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며 오스트리아 대공인 프란시스 2세의 황비 마리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제목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 앙뚜아네트의 어머니인 저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시실리 왕국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말한다. 두 시실리 왕국(Regno delle Due Sicilie)은 나폴리 왕국과 시실리 왕국을 함께 부르는 명칭이다. 프란시스 2세 황제의 부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 자신이 소프라노여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가 1801년 5월에 비엔나의 궁전에서 사사롭게 연주되었을 때에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었다. 하이든이 원래 이 미사곡을 작곡했을 때에는 '테레지아미사'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에 다만 라틴어로 미사(Missa)라고만 적었다. 그러다가 훗날 이 미사곡을 마리아 테레지아 황비를 위해 작곡한 것을 알고 '테레지아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테레지아미사곡은 1799년 9월 8일 아이젠슈타트의 버그키르헤에서 초연되었다. '테레지아미사곡'은 '넬슨미사곡'이나 '전쟁미사곡' 만큼 자주 연주되고 있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작품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13. B 플랫 장조. Schöpfungsmesse (천지창조미사). H. XXII/13. (1801).
'천지창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이 미사곡의 글로리아 파트에서 Qui tollis peccata mundi라는 가사의 노래를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에서 아담과 이브의 마지막 듀엣의 음악을 가져다가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듀엣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부군인 프란시스 1세를 은근히 비유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프란시스 2세의 황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하이든에게 글로리아의 듀엣 대신에 특별히 자기만을 위한 새로운 듀엣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프란시스 2세의 황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에게 손자 며느리가 된다.
14. B 플랫 장조. Harmonienmesse (하모니미사). H. XXII/14. (1802).
1796년부터 1802년 사이에 완성된 하이든의 후기 미사 여섯 편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으로, 1802년에 작곡되었다. ‘하르모니’라는 말은 관악 앙상블을 뜻하는 말로, 이 미사 음악에 풍부한 관악기가 사용되었다는 의미에서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목관악기밴드 미사곡'(Wind-band Mass)라고도 부른다. 하이든은 이 미사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 미사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독일어에서 목관 앙상블을 '하르모니'라고 부른다. 이 미사곡은 목관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 작품이어서 '하모니 미사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첫번째 곡인 키리에의 도입부는 하이든의 후기 성악작품 중에서 가장 놀랄 만큼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것이다.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다른 미사곡들에 비해서 긴 편이지만 말이다. 아누스 데이 파트는 교향곡 98번의 아다지오를 연상케 하며 동시에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연상케 한다. '하모니 미사곡'은 2009년 5월에 바티칸의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성령강림 미사를 드리는 중에 연주되었다. 2009년은 마침 하이든 서거 200주년을 맞는 해였다.
하이든 미사의 최후 걸작
오늘날 하이든의 작품으로 알려진 미사 음악은 열네 곡 정도이다. 처음에 작곡한 〈미사 브레비스〉를 제외하고 1750년부터 1782년 사이에 완성한 작품이 중기 미사곡에 해당하고, 1796년부터 1802년 사이에 완성한 여섯 곡의 미사를 후기 미사곡으로 분류한다. 이 시기, 하이든은 이미 7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두 차례의 영국 여행을 통해 명성과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을 시기였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위해 이전처럼 왕성한 작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1년에 한 번씩 선보이는 미사 음악을 통해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하이든이 완성한 여섯 곡의 후기 미사 음악들은 모두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니콜라우스 2세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예술적인 가치와 완성도에서 한층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후기에 완성된 미사음악 중에서도 〈하르모니 미사〉는 가장 마지막인 1802년에 완성된 곡으로 9월 8일 아이젠슈타트 베르크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하르모니’라는 제목은 하이든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며, 이 곡에서 관악기가 곳곳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하르모니’라는 부제가 붙게 되었다. 관악기가 중심이 된 앙상블 음악을 독일어권에서는 흔히 ‘하르모니’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풍부한 관악기의 울림
〈하르모니 미사〉의 악기 편성은 현악기 외에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이 사용되었다. 작품 곳곳에서 관악기가 특징적으로 사용되면서 활기를 더하고, 이러한 관현악이 다시 합창과 어우러지면서 장대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연출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일반적인 미사 음악의 구성에 따라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까지 여섯 곡이다. 느린 템포의 악곡 사이사이에 빠른 템포의 악곡들이 등장해서 곡에 긴장감과 생기를 더한다. 비바체의 빠른 템포와 느린 아다지오가 대조를 이루는 ‘크레도’의 극적인 변화, 상투스와 아뉴스 데이 사이에 등장하는 몰토 알레그로의 베네딕투스 등이 특히 그러하다.
글 : ⓒ 음악세계 & 음악사연구회(사) & 정준극
글 출처 : 필유린의 클래식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