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안에 머물러 기꺼워하기도 했고 또 생생하게 손에 잡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낯선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지고,
처음 배우는 외국어처럼 제대로 된 사랑의 말이
한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두려움에 질려 버린 모습과도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하여 그리 많이 듣고 체험하면서도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는 사랑에 신뢰하고 응답하기보다는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나를 보호하려 드는 유혹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사랑은, 사실은, 수수께끼나 모순이 아니라
신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한 가톨릭 작가 체스터튼은
그의 추리 소설에서,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명탐정 브라운 신부의 입을 빌려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신비한 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모두 드러내는 법이지요.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으니까요.”
사랑의 신비는 나에게 숨겨 있지 않습니다.
또한 내가 억지로 장악하고 비밀을 밝혀낼 도전의 대상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일 때만이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완전한 사랑의
불가능에 대한 질문의 긴 시간을 졸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마음을 열고, 두려움을 쫓아내는 사랑의
신비 앞에 조용히 머물며 그 사랑과 함께 숨 쉬고 싶은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