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조랑말의 젖으로 빚는 마유주를 특산품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그 술의 고향인 몽고에 조사단을 파견할 것이라 한다.
몽고말로 말젖을 삭혔다는 뜻인 이시크(액속길)라는 이 술은
몽고 유목민이 옛날부터 마셔온 토속음료로
알콜성분은 겨우 1~3%에 불과한 말젖술이다.
말이 젖을 내는 기간은 철새가 날아드는 6월말부터
추위가 몰아닥치는 10월말까지의 짧은 동안이다.
그동안에 안사람들은 열심히 젖을 짜 가죽부대에 담아
끝이 열십자로 된 막대를 저어서 발효시켜야 한다.
각 가문마다 비법이 있어 그 술맛이 다르다던데
보통 하루에 3천번씩 열흘동안 저으면 발효가 시작된다.
저을때 나는 소리만을 듣고도 발효정도를 알 수 있어
젓는 강도와 방법을 조절한다고도 한다.
또 손님이 오면 자리에 앉기전 마유주 부대에 먼저 가서
몇번 저어주는 것이 주인에 대한 예의로 돼있다 한다.
이렇게 10월까지 양조시킨 마유주는
큰 통에 담아 저장해 두었다가 겨우내 마신다.
이 세상에 술마시는 방법으로 문화인류학에서는 세 유형으로 대별한다.
서양 사람들처럼 자기술잔에 자기가 마시고 싶은만큼 따라 마시는 자작유형,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들처럼 각기 술잔을 들고 건배하며 마시는 대작유형,
그리고 한국 사람들처럼 술잔을 주고 받아가며 마시는 수작유형이 그것이다.
한데 마유주 마시는 법은 이 세 유형에 속하지 않은 특유한 주법으로 마신다.
환배라 하여 한잔에 가득 따라 돌려가며 조금씩 마신다.
그렇게 마시게 된 연유에 대해 두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부족간의 반목이 심한 유목민족인지라
한잔술 더불어 마심으로써 독살의 혐의를 벗으려는 수단이라는 설과
한잔술 더불어 마심으로써 동심일체 공생공사를 다지는
칭기즈칸의 부하통솔 수단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그것이다.
이 몽고의 마유주와 우리 나라의 관계는 고려시대로까지 소급된다.
고려사 에 보면 충렬왕때 세자(충선왕)가 원나라에 갔을때
마유주를 적지않이 5백동이나 내려 큰 잔치를 베풀어주고 있다.
충렬왕과 결혼한 몽고의 제국공주가 고려의 궁정에서 잔치를 베풀었을때
마유주를 썼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나라와 교류가 잦았던
귀족사회에서는 마유주를 들여다 마셨을 확률이 높다.
우리 나라에서 소주를 아랑이 아랑기 아락주 아리길주라고도 했는데
바로 몽고에서 마유주를 증류해만든 아이락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마유주는 우리 한국 전통주와 혈연관계에 있는 술이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