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박해한 로마의 황제들(7) 한평우
막시미누스 황제
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체적으로 역사가들은 그리고 싶은 대상을 자신의 주관적 성향으로 진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한다 해도 자신의 문화적 성향과 사상적 주관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고로 우리는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어떤 대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런 것은 지극이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역사관 이란 존재할 수 없지 싶다.
막시미누스(Maximinus235-238)황제는 스물다섯 번째로 로마의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는 전임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더가 암살당하자 부하들의 지지로 게르마니아의 국경지대인 마인츠에서 군인 신분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당시는 군대의 지지는 황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 되었던 시대다.
그런데 막시미누스는 겨우 3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트라키아(발칸 반도 남동쪽)사람으로 농민 출신이었다.
당시는 낮은 신분의 사람이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군대에 나가 공을 세우는 길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분의 격상을 꿈꾸는 자마다 너나없이 군대를 지원해야 했다.
그는 야심이 있었기 때문에 군 생활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자질 중에 하나인 괴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성경에 골리앗이 용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도 강한 힘의 소유자였다.
당시 하층민이었던 그는 어느 날 전선에 시찰을 나온 황제 앞에서 자신의 괴력을 보여드리겠다고 나섰다. 흥미를 느낀 황제는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싸워 보라고 했다.
흔히 전선은 볼거리가 없는 곳이기에 그런 행사는 잠깐 동안 병사들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스포츠였기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막시미누스는 힘깨나 쓰는 황제의 친위대 대원들을 연속적으로 24명이나 쓰러 뜨렷다.
친위대는 당시에 내로라하는 무장들이었는데 말이다.
황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막시미누스를 마음에 깊이 기억하게 되었다.
다음날 황제가 떠나는 데 막시미누스가 황제가 타고 가는 마차를 쫓아갔다.
그는 황제 앞에 엎드려 자신을 장교로 써달라고 간청을 드렸다.
그는 수 킬로를 달려왔는데도 기운이 여전이 남아있었다. 황제는 농담으로 아직도 레슬링을 할 기운이 있느냐고 묻자 막시미누스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자리에서 친위대 7명을 순식간에 넘어뜨리고 굵은 나무를 맨손으로 뽑아버리는 괴력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황제는 감동하여 그를 그 자리에서 장교로 임명했다.
기네스북에는 사람의 최고의 신장을 2M 40Cm라고 한다.
그런데 막시미누스의 신장이 그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로는 괴력의 소유자로 손색이 없었다.
골 족들은 로마인의 작은 키를 보고 업신여겼다고 했는데 그 당시는 키가 크다는 것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군인에겐 큰 장점이었다.
그는 야심이 있었기 때문에 성실하게 근무하여 인정을 받았고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장군이 되었고 결국 군인들의 지지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황제에 오르자 폭군의 본성의 길을 선택했다.
준비되지 않은 황제였고 인품과 식견도 부족했기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명령에 살고 죽어야 하는 군대를 다스리는 일과 수시로 제 목소리를 내는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충분히 고민하지도 않고 법을 개정하여 성직자들을 처형했고 황제에 오른 지 3년이 되는 해에 모든 사람은 공개적으로 신전으로 나와 희생제물을 드려야 할 것을 공표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는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리겠다고 했다.
고로 황제의 명령에 타협 하지 않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큰 수난을 당해야 했다.
황제는 자신의 임기 동안에 기독교인들을 사형에 처하기보다 투옥을 많이 시켰다.
막시미누스 황제로 인해 당시 로마의 감독이었던 힙포리티스와 폰티아누스(Pontinanus 230-235,칼릭투스 카타콤베에서 그의 무덤이 발견됨)는 이탈리아의 서쪽에 있는 섬 사르데냐의 금광에 유배되어 노예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히폴리투스(Hippolytus218-235,로마 최초의 대립 감독)와 우르술라도 순교를 당해야 했다.
이들은 기독교의 지도자로 핍박을 받았지만 고난을 당한 성도는 많았다.
그러나 황제 막시미누스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도나우 강과 라인 강 유역의 여러 부족을 물리치는 지도력을 보였으나 그런 자부심 때문인지 원로원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그는 로마의 안위는 변방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 비해 원로원들이야 말로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생산적인 무리들이라고 우습게 여겼다.
더구나 자신은 로마의 원로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층 계급출신이었기에 이들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들을 무시하는 정책을 시행하곤 했다.
그는 후에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을 향해 무력을 시위하려고 이탈리아로 진군하던 중 부하들에 의해 피살당하고 말았다. 고로 로마는 또 다시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과거 그 뛰어났던 황제들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 까?
자만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원로원과 가까이 하면서 정치를 했더라면 현명한 황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자리만 앉으면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착각하여 객기를 부리다가 허무하게 일생을 끝내는 사람들,
이런 황제들의 폭정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더욱 주님의 재림을 앙망하였을 것이다.
결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찬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