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 해미읍성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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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 |
▲ 해미순교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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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축성된 읍성, 천주교 박해의 아픔이 서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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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0여 리 떨어진 곳에 이름도 이쁜 '해미'란 고을이 있다. <'해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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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 동쪽 성곽 |
▲ 청허정 |
해미읍성이 본격적으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정조 이후이다. 전국적으로 천주교도가 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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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 북쪽 성곽 |
▲ 해미읍성 호야나무 |
1914년 왜정(倭政)은 해미현을 서산군의 일부로 통합시키면서 충청좌도를 담당했던 해미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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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가옥 초가 |
▲ 남문에서 동헌까지 곧게 이어진 길 |
※ 해미읍성 찾아가기 (2017년 12월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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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둘러보기 (1) - 진남문, 호야나무, 민속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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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의
속살로
들어서려면 진남문(남문)을 지나야 된다. 읍성 성문이 3개나 있지만 속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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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거의 5년 만에 와본다. 10년이면 정말 강산도 변한다고 이곳도 나처럼 크게 변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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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바로
안쪽은 예전에 공터였다. 허나 그새 여러 초가들이 뿌리를 내려 조촐하게 초가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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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개의 화살을 동시에 날리던 화차 |
▲ 기병을 때려잡는데 효과적인 검차(檢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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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과 동헌
사이에는 해미읍성의 상징이자 천주교 박해 기념물인 회화나무가 초췌한 몰골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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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야나무 옆에 있는 순교기념비 |
▲ 순교기념비 |
천주교도들은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며 순교라 불리는 죽음을 택했을까? 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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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죄인들을 가두던 감옥으로 남녀 구별하여 2동으로 재현되어 있다. 충청도 서부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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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을 바라보는 여자 옥사 |
▲ 옥사 안에 재현된 죄수 디오라마 |
◀ 옥사 죄수들이
볼일을 보던 뒷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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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사와 죄인을 관리하는
포졸(捕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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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 모락모락 풍길 것 같은
가마솥을 |
▲ 부농의 집 뒷쪽에 자리한 토끼와 닭의 |
▲ 닭장 안을 서성이는 닭 |
▲ 뒷간에서 볼일 보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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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 집 텃밭 |
▲ 전통 윷놀이 체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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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삼매에 빠진 서리 아저씨 |
▲ 집 뒤쪽 장독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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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둘러보기 (2) - 동헌, 청허정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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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문에서 정면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가면 그 길의 끝에
담장을 두른 해미읍성 관아가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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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 관아 내삼문 |
▲ 동헌 부속건물과 닫혀진 우물 |
동헌은
지금의 시청, 군청 등의 행정기관과 경찰서, 군부대 기능까지 포함된 관청이다. 해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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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정문
우측에 자리한 객사는 조정이나 출장나온 관원의 숙소이다. 건물 가운데
정청(政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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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언덕 꼭대기에 청허정이 자리해 있다. 청허(淸虛)란 '잡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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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정
주변에는 붉은 피부의 장승과 나무색 피부의 장승 20여 기가 옹기종기 모여 장승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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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왔을 때는 소나무숲이 상당히 짙었는데, 머리의 탈모 현장 마냥 빈 틈이 많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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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 동북쪽에 소리 없이 자리한 암문 |
▲ 굳게 입을 봉한 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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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을 지키던 여장은 오래전에 없어진 상태라 성곽길을 거닐 때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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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지성루)의 성문 홍예와 문루는 근래 복원된 것이고, 홍예문 좌우 성돌은 옛날 것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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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안쪽 활터와 소나무숲 |
▲ 서문 성 바깥 부분 |
이렇게 하여 2시간에 걸친 해미읍성 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예전에 남겨놓은 미답 공간도 말 |
♠ 천주교의 주요 성지로 천주교 박해의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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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내 서쪽, 해미천 건너에 우리나라의 주요 천주교 성지이자 충청도 굴지의 천주교 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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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순교성지 표석의 위엄 |
▲ 기와를 얹힌 해미순교성지 정문 |
▲ 우람하게 지어진 해미순교성지 대성당 |
▲ 초가로 이루어진 '이름없는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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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가 있는 노천 야외 성당 |
▲ 연못으로 이루어진 '진둠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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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은 1935년 이곳에서 발견된 순교자의 유해를 담은 것으로 인근 상홍리 공소 뒷산의 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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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성지 가운데 자리에 무덤 봉분처럼 생긴 순교기념전시관이 자리해 있다. 위에는 봉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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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내 마음을 앗아갈만한 존재도 없는지라 바깥에 풀어진 존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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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억에 잠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이 있으신가보군여.
해미향교의 추억
해미향교는 아직 안가봤습니다.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까요.
우선 해미읍성의 복원은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 중 최악의 사례로 기록 될 것입니다.
돌아보신 동헌, 객사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고증 된 건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해미읍성의 복원은 제대로 된 발굴을 거치지 않고 1872년 규장각 해미읍성 지도를 토대로 복원되었습니다.
최근에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지금 복원된 객사터 주변이 동헌이 위치한 곳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동헌이 객사보다 크게 복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디에도 없는 졸속 복원입니다.
그냥 참고 하셨으면 하여 올려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졸속 복원이 어제 오늘일도 아니지요. 이 땅의 의 위정자와 공무원들이 하나같이 밥버러지 수준들이니ㅉㅉㅉ 해미 같은 경우는 복원보다는 재현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