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진 창 / 나기철
그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어제도 불이 안 켜져 있었다
오늘은 켜져 있다
남편 따라 육지서 와
오년 전
혼자 된 여자
오늘은 시내 딸네 집에서 왔나 부다
온통 가족사진으로 도배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
그녀의 집
- 시집 『담록빛 물방울』 (서정시학, 2023.09)
* 나기철 시인
1953년 서울 출생. 제주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시문학』 등단
시집 『섬들의 오랜 꿈』, 『남양여인숙』, 『뭉게구름을 뭉개고』, 『올레 끝』, 『젤라의 꽃』 『지금도 낭낭히』 등
제5회 풀꽃문학상. 서정시학상 수상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재직 중 명예퇴직
***********************************************************************************
나기철 시인은 제주에 살고 있다. 열두 살 때 제주로 이주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나기철 시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제주도를 지키는// 과묵한 시인 한 사람 있어// 제주도가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겠다.”
이 시에서처럼 나기철 시인은 제주에 살면서 제주의 자연과 삶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한 집을 관심이 있게 바라본다.
이 집은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를 온 집인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내 혼자 살고 있는 집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제도 어제도 불이 꺼져 있다.
시인은 괜히 걱정이 되고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 불이 켜져 있어 시인은 비로소 안심을 한다.
가족사진을 잔뜩 걸어둔 집의 실내가 환해진 것이다.
시인의 생의 이력처럼 제주로 이주해 온, 타지로 와 뿌리내리려는,
이웃해 사는 사람에 대한 염려와 배려가 불빛처럼 따스한 시이다.
-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