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한국영화의 산업 환경은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사협상 타결로 인한 스탭 처우개선의 여파도 있겠지만 한국영화 위기탈출을 위한 대대적인 자정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산업 전반의 다이어트,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벌써 5월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몰아치고 나면 금세 하반기가 도래한다. 한국영화계 곳곳에서는 하반기 급변하는 한국영화산업 환경에 발맞춰 거품을 꺼뜨리고 군살 빼기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대규모 건강 다이어트가 온갖 부분에 걸쳐 어마어마하게 진행되고 있다. 방만한 경영으로 제작일정이나 배급일정을 엿가락 늘이듯 늘였던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물론이요, 그간 나름 효율적으로 제작을 진행해왔던 제작사들까지 적정 제작비와 더 효율적인 제작방식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고, 더 질 좋은 영화들을 제작하기 위해 이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스탭 전문화를 위한 방안은 물론, 감독과 배우, 스탭들의 개런티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2일 한국영화산업 노사협상이 타결되면서 합의안 조항들이 효력을 발휘하는 7월 1일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제도적 정비도 가파르게 진행될 터. 올 한 해 급변하는 하반기 한국영화의 산업 환경변화에 적응, 대비하려는 한국영화 각계각층의 움직임은 정말 다양하다.
고효율 제작을 위한 전신 다이어트의 물결
5월 1일 개봉하는 장진 감독의 신작 <아들>은 지난 1월 22일 크랭크인 전에 이미 배우 개런티와 촬영, 조명감독의 개런티를 절반가량 낮춰 계약했고, 순 제작비 20억 원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아들>의 이진영 프로듀서는 “이전과 같은 시스템으로는 26억 원 정도가 들 영화였다. 하지만 배우와 스탭들의 개런티를 줄였다"고 설명한다. 촬영기간은 총 40일, 24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예년과 같은 경우라면 평균 50회차 정도에 끝마쳤을 촬영이다. 촬영회차가 짧아지니 스탭들과 배우들도 낮춰진 개런티에 대해 수긍했고, 제작비가 줄어드니 손익분기점이 낮아져서 제작사는 흥행에 대한 부담도 다소 덜게 됐다.
올해 초 제작에 들어간 영화들 중에서 이런 사례들이 꽤 된다. 게다가 5~6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에 개봉하게 될 신작 영화들 가운데에도 이런 사례들이 즐비하다. 김혜수, 박해일이 캐스팅된 정지우 감독의 신작 <모던보이>(제작 KnJ엔터테인먼트) 또한 <아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애초 순 제 85억 원의 제작비를 62억 원 수준으로 낮춰 잡게 됐다. <모던보이>의 곽신애 프로듀서는 "상황이 어렵다고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산업이 훨씬 악화될 수 있다. 어렵지만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작비를 낮추게 됐다”고 설명한다. <약속> <와일드 카드>의 김유진 감독이 연출하고, 정재영, 허준호, 한은정이 출연하는 시대극 <신기전>(제작 KnJ엔터테인먼트) 역시 당초 100억대 규모에서 제작비를 73억 원 수준으로 줄였다. <남극일기> 임필성 감독이 연출을 맡은 천정명 주연의 공포영화 <헨젤과 그레텔>도 개런티를 낮추고 회차를 줄인 케이스에 속한다. 백윤식, 임하룡 주연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역시 50회차로 예정된 촬영회차를 40회차로 끌어내려 순 제작비 20억 원 수준의 예산으로 작업하게 됐다. 지난 한 해 한국영화 평균 순 제작비가 30억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군살 빼기에 도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 전신 다이어트의 시작은 위기의 2007년을 돌파하고자 하는 한국영화계 전체의 열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충무로 ‘전신 다이어트’의 움직임은 일견 긍정적이다. 한국영화 전체가 가내수공업에서 이제 막 비싸지만 꼭 필요한, 반짝반짝 빛나는 새 기계들을 들여놓고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변화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국영화 산업화, 체계화로 가는 길에 혼자 고민하지 말고, 그 방법을 같이 고민하자고 제안하는 프로덕션 전문업체 TPS(Total Production Service) 같은 회사도 생겨났다. 쉽게 말하자면 영화 프로덕션 과정만을 따로 관리해주는 인력회사다. TPS의 이종호 대표는 “영화산업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 결과로 인해 한국영화 제작비 상승이 우려되는 반면, 투자 상황은 수익 악화로 경색국면에 들어서는 게 2007년 영화시장의 상황이다. 예산 절감이 절박한 제작사의 고민과 산업의 합리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스탭 처우개선 문제가 충돌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제작관리 전문인력의 필요성이 커져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각 영화사에 파견을 나가 조단역 캐스팅, 로케이션 헌팅, 촬영회차와 촬영시간 등의 효율적인 제작 스케줄을 짜고, 각각 촬영기간에 들고 나는 스탭들을 관리하는 전문 제작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시키는 전문인력들을 양성하는 일까지 도맡겠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 제작현장에서 3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제대로 굴려줄 능력 있는 제작실장, 조감독, 프로듀서의 부족은 공공연한 문제로 제기돼왔던 게 사실이다. TPS의 김현철 프로듀서는 "30여 편의 현장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로 꼼꼼한 제작 매뉴얼을 작성하고, 7월 1일부터 시행될 임단협에 대한 대처방안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은 충무로 스탭 전문화시대 가속화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TPS 같은 회사들에 의해서 프리프로덕션부터 포스트프로덕션까지 각 분야의 스탭들이 언제 들고 날지, 그들을 어떻게 결합시켜서 현장을 진행할지에 대한 철저한 사전계획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잘만 된다면 스탭들은 받을 걸 다 받고,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누수 없이 규모 있게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건 '시간' 문제
하반기 한국영화계 현장의 가장 큰 화두는 ‘시간’이다. 모든 스탭이 새벽 6시에 집합했는데, 오전 10시에 슛을 들어갈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한국영화현장에서 이제 그런 낭비를 방관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돼가는 추세다. 임단협이 적용되면 촬영을 시작하는 ‘콜타임’과 끝내는 ‘쫑타임’의 시간이 곧 임금과 제작비로 직결되기 때문에 제작자,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명감독 이하 모든 제작진이 시간문제를 뼈저리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미 많은 현장이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변화가 빨리 올 수도 있다”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감독들의 요구 때문에 대충 대충 회차가 늘어나는 일이나 비숙련 스탭들의 실수로 감독과 배우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식의 누수가 관리될 수만 된다면 그처럼 이상적인 프로덕션 관리도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에서 준비하고 있는 제작 스케줄 관리, 출퇴근 관리, 그리고 스탭 임금계산 시스템이 될 CINE-ERP도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돌파하려는 방법 중 하나다. 개발비 1억2천만 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그램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제협에 사업비를 50% 가량 지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제작 스케줄 관리, 출퇴근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각 제작사들이 300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오는 7월에 완성해 배포할 예정이다.
시간문제는 촬영회차와도 직결된다. 현재 한국영화의 주당 평균 촬영회차는 3.5~3.6회다. 하루건너 하루씩 찍는 셈이다. 왜? 밤샘 촬영해 24시간을 꼬박 찍고, 또다시 촬영에 들어갈 수는 없어 하루 정도 쉬는 현장이 빈번하다는 얘기다. 7월 1일 이후로는 이렇게 되면 스탭들 야간수당이 늘어나 제작비 상승만 초래하는 결과가 된다. 야간 촬영이 주된 영화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낮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집에 가는 스케줄로 주당 5회나 6회를 찍을 수 있다면 스탭들은 짧은 촬영기간 내에 몸 상하지 않고 받을 돈은 다 받게 되고, 제작사도 쓸데없는 야간수당의 지출 없이 적정 기간에 촬영을 끝마칠 수 있다. 이런 시도를 하려는 제작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MK픽처스에서 제작하는 임순례 감독의 핸드볼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런 케이스다. 프리프로덕션을 철저히 한 후 영화에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부분과 핸드볼 경기 장면을 나눠 주당 6회차 정도로 촬영을 해 10주간의 촬영기간을 계획, 논의 중이다.
또 한편, 하반기 충무로의 가장 큰 변화로 예상되는 것 중의 하나가 빈익빈 부익부 스탭이 명확하게 나눠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장 인력의 전문화와 슬림화로 가는 과정이랄까. 작품 평균 스탭이 60명. 한 해 한국영화 적정 편수 70편이라고 하면 전체 한국영화산업 내 평균 스탭수가 4,200명. 대부분 스탭들이 1년에 2편을 작업한다고 하면 적정 스탭 인원은 2,500명 정도다. 잉여 인원이 필요하다 치면 3,500명 정도가 지금 한국영화산업 현장에 필요한 적정 스탭 수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충무로엔 1만 명은 훌쩍 뛰어넘는 스탭들이 있다. 하반기가 다가올수록 촬영현장에 상주하는 60여 명의 스탭이 정말 다 필요한 인원인지, 그들 각자의 ‘전문성’이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현장에 꼭 필용한 A팀을 소수정예로 ‘슬림화’하고, 특수 촬영이나 야간 촬영 때 B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노는 스탭이 늘어나고 스탭들끼리의 빈익빈 부익부 차이가 더더군다나 커지겠지만 전문성을 인정받고 고액 개런티를 받을 수 있는 스탭들 역시 확실히 늘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선 제작사들도 해법을 찾고, 노조도 노조원인 스탭들을 언제든 현장에 보내줄 수 있는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취하면서 한국영화의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우 개런티도 거품을 빼고
배우 황정민이 스탭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 ‘밥상 수상소감’은 한동안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간혹 현장에서는 “배우 누구누구가 스탭들에게 단체복을 선물했다더라, 모 배우는 현장에서 몇십 인분의 삼겹살 회식을 마련했다” 등의 훈훈한 미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스탭들의 열악한 처우와 임금체계에 대한 문제들이 불거지는 한편에선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던 게 사실이다.
톱스타의 경우 적게는 2~3억 원, 많게는 6~7억 원의 개런티를 받게 되고 이는 근래 한국영화 평균 제작예산에서 30% 정도를 차지해왔다. 최근 다이어트 바람이 불고 있는 충무로에선 제작비 절감의 한 방법으로 배우 개런티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개런티 100% 중 70%만 받고 30%는 투자로 돌리자거나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보너스 형식으로 지급하겠다, 혹은 개런티를 아예 과거의 70%만 받으라고 제시하는 제작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제작사들의 강력한 의지이기도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배우들과 매니지먼트 측에서도 한국영화의 현재 상황에서 책임의식을 갖고 동참하려는 정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싸이더스HQ의 김상영 영상사업본부장은 “잘되면 같이 가고, 안 될 때의 리스크도 같이 감수하자는 뜻으로 이해한다. 시장에 맞는 적정한 제작 편수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해서 합리적인 선에서의 양보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매지니먼트와 배우들이 굳이 이런 시류에 참여하려 하지 않아도 지난해의 거품 낀 인건비가 자연히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하다”고 말한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목요일의 아이>를 거쳐 영화 <걸스카우트>의 출연계약을 진행한 배우 김선아는 계약금의 일부인 1억을 영화가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받기로 했다. 영화사 측에서 리스크를 공유해서 몇 %의 인센티브는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고 보너스로 받겠다고 합의한 상태다. 최근 싸이더스FNH의 HD영화 <죽어도 해피엔딩>에 캐스팅된 예지원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경우에는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 세 주연배우들이 계약금 일부를 투자형식으로 돌린 상태다. 쇼박스와 바른손영화사업부에서 제안한 방식이고, 각 매니지먼트에서 별 이견 없이 계약을 받아들여 성사된 케이스다.
팬텀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제작사들이 개런티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협상을 요구해온다”며 “어차피 현실적인 부분에서 영화배우들이 영화를 찍어야 할 게 아니냐. 영화사들 사정이 어려워진 부분에 대해 탄력적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말했다. 나무액터스의 이석준 이사는 “각각의 매니지먼트와 배우마다 개런티의 액수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조심스레 조율하는 상황”이라며 설명한다. 일각에서는 “영화노사의 임단협과 관련해서 제작비 상승분을 배우 개런티에서 보상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거나 “배용준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흥행 파워가 있지 않나. 배우 개개인에 대한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현재 산업의 위기 상황에 배우와 매니지먼트사가 공동으로 책임지겠다는 인식이 있다는 얘기다. 한 매니지먼트업계의 관계자는 “이 같은 방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을 못 했던 부분이다. 현재는 공동책임에 대한 의식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다”며 “차후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에 따라 또 어떤 식의 새로운 배우 개런티 지급방식이 모색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도 덧붙인다.
최근 한국영화시장의 투자 악화와 제작 편수 감소 그리고 영화산업의 체질개선은 충무로 매니지먼트사들의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매니지먼트 업계 내부에서도 지난 10년간의 매니지먼트 체제에 대한 전면 개편, 자성의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싸이더스HQ 박성혜 매니지먼트사업본부장은 “매니지먼트들이 과도한 계약금 경쟁, 비용 지불로 거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개런티는 줄어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할리우드는 제작사에서 배우들에게 차량 지원이 되고, 개인 트레일러를 만들어주는 비용을 부담한다. 그런데 국내는 그게 어려우니 매니지먼트도 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임단협이 적용되는 하반기 합리적인 제작 스케줄 관리가 이뤄진다면 배우들도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김상영 싸이더스HQ영상사업본부장은 ”이전에는 배우만 잡고 찍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이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배우들도 제작 스케줄이 확실하게 나오면 더 좋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편수의 영화를 찍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 많은 화보촬영과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사생활까지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이 변화하면 배우들도 일하기 편해질 거다“라고 전망한다.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올해의 시장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매니지먼트들은 방송 쪽으로의 돌파구도 찾고 있다. 하반기 배우들의 드라마 진출이 더 빈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스타급 배우들이 고령화돼 있고, 20대 아이돌 스타나 신인 배우 층이 허약한 상태에서 배우 발굴을 위한 방안들도 올해 매니지먼트들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렴한 후반작업, 새 윈도우를 찾아서
얼마 전 충무로 제작사에는 낯선 공문이 날아들었다. 조명 렌털회사 라이트림과 한빛 라이트가 각각 조명장비 1일 대여료를 평균 40~50% 정도 낮추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돌린 것이다. 대여료가 만만치 않았던 고급 장비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영화 제작현장에서는 상당히 환영할 만한 시도다. 특정 회사들의 덤핑 전략 아니냐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 이유는 대여료 인하의 취지 자체가 공생이기 때문이다. 라이트림의 대표이자 충무로 현장의 최고참 세대인 임재영 조명기사는 "회사의 운영자이기에 앞서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인으로서 현재 한국영화가 처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임재영 조명기사뿐만이 아니다.
최근 사운드 업체들의 과거 편당 7~8천만 원 하던 작업료가 1천만 원에서 1천2백만 원 정도 낮아진 상태다. 지난해에 비해 제작비 40억 원 이상 되는 영화가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료를 조절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젠 영화뿐 아니라 HD드라마 등 다각적인 작업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CG업체나 현상소, DI작업을 하는 후반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이런 식의 단가 조절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쩔 수 없는 출혈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선 긍정적으로 공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현상과 DI작업을 하는 후반업체 HFR의 옥임식 실장은 "영화가 극장 스크린 외에 DVD, IPTV, 방송용 컨버전스 콘텐츠로 변화될 때의 수익을 보장받아 출혈을 만회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다.
급격하게 닥친 한국영화산업의 환경변화를 긍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영진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영진위는 ‘단체협약 체결 이후의 위원회 정책과제’를 통해 하반기 한국영화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사업을 마련 중이다. 이와 관련한 핵심사업 중 하나로 영화분야의 노사정위원회 역할을 하게 될 영화산업협력위원회(이하 ‘협력위원회’)의 구성이 있다. 협력위원회의 구성은 영진위 위원장, 제협과 영화노조, 영화인조합 등의 대표가 참여하며 협력위원회의 산하에는 정책추진과 관련된 실무협의팀이 꾸려질 예정이다. 협력위원회는 향후 영화 스탭들의 복지와 제작 시스템의 합리화 등의 정책을 논의하고 단체협상안과 관련 현장에 분쟁이 생길 시 이에 대한 조정 작업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현재 영화노조에서 현장의 불합리에 관한 고발사항을 관리하는 ’영화인 신문고’의 업무를 협력위원회를 이관할 예정이다. 협력위원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영진위 국내진흥팀의 김홍천 씨는 “영진위는 이미 2년에 걸쳐 스탭들의 교육과 관련된 인적자원육성과 제작과정합리화에 대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이번 단체협약 체결 이후 관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협력위원회는 향후 영화산업의 합리화사업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협력위원회의 추진일정은 4월 내로 임무와 구성원칙을 협의, 5월에 1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영진위는 스탭구성합리화 시범사업, 표준근로계약서 홍보, 영화인력 DB 및 경력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위 사업에 대한 연구보고서인 인적자원육성과 제작환경합리화 사업 로드맵을 마련해 2007년 하반기 내로 영화계에 공표할 계획이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영화 현장인력 교육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담당하고 있는 영화인 교육프로그램의 평가와 해외 사례를 살펴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연구 중에 있으며, 현장 스탭들의 경력인증과 관리 모델의 기초가 될 인력 DB는 올 12월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각계각층의 노력을 비롯한 이 모든 변화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며 제대로 구현된다면 올해 한국영화의 위기는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거대한 밑거름이 될 만하다. 오래 오래 살아남기 위해 건강한 다이어트만큼 좋은 방법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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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것과 깎는 것은 다르다" TPS 이종호 대표
어떻게 프로덕션 전문회사를 만들었나? 1999년부터 명필름 제작실에서 일했고, MK픽처스로 합쳐진 이후에도 제작실에서 근무했다. 5~10명의 제작실 인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모든 인력을 직원화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한 작품이 끝나면 기껏 만든 시스템이 제대로 보존되지도 않고. 현장에서 몇 작품 경험하지 않고 직급만 올라가는 스탭들도 많았다. 사실상 너무 싼 값에 직급이 상승되면 그 스탭의 전문성도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충무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프로덕션 매니저들이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들 고액 개런티를 받을 수 있도록 자신감을 키우고, 시스템 전문화를 추구하자는 생각에서 회사를 만들게 됐다. 전문화된 서비스를 하고, 전문화된 인력을 양성, 제공하겠다는 것이 모토다.
전문 인력회사인데, 인적 구성은 어떻게 되나? 2명의 프로듀서, 6명의 라인 프로듀서(프로덕션 매니저), 1명의 기획실장이 현재 멤버다. 그리고 내부에 4개 분과를 두고 있다. 계약 법무, 캐스팅, 포스트, 로케이션. 이 각 분과마다 각 담당 프로듀서들이 있고 이들이 각 영화마다 프로듀싱 업무를 하면서 자신의 분야를 특화시켜 일하게 할 생각이다.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체제를 만들려고 한다.
이상적이긴 한데, 실제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을까? 토털 프로덕션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외국 영화계에서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회사다. 시나리오 분석을 심도 있게 해서 예산을 짜고, 그 근거를 고민한 후 가장 적절한 예산과 일정을 잡아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덤핑 전략을 쓰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듣지 않나? 덤핑 전략은 절대 안 할 거다. 아끼는 것과 깎는 것은 다르다. 싸다는 얘기는 능력이 없고 경험이 없다는 얘기와 같다. 현장에서 준비가 늦어져 예산을 갉아먹는 경우도 있지만 싼 값에 쓴 스탭들이 영화 전체의 퀄리티를 깎아먹을 수도 있다. 이제 고액 연봉의 전문적인 라인프로듀서들이 등장해야 할 시대다. 비싼 인력들이지만 우리가 개입하면 회차도 줄어들고, 경제적이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 우리도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TPS는 시장에 진입할 때 정확하게 마진을 얻고 대신 그 마진을 적정선으로 줄일 수 있다는 개념을 시장에 꼭 이해시키고 싶다. 그래야 향후 이런 회사들이 시장에 진입했을 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을 내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현장에서 절대 권력자인 감독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할까? 세팅시간이 너무 길거나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감독이 자기 연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최악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프리프로덕션을 잘해서 제작관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프로덕션을 조율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 때문에 TPS라는 회사를 충무로에 던진 것이다. 향후 TPS가 모든 충무로 제작사들의 제작실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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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시간이 돈이다 싸이더스HQ 박성혜 매니지먼트사업본부장
최근 배우들의 출연계약 관행에 변화가 꽤 큰 것 같다 확실히 배우들이 전작 개런티를 고수하며 다음 작품 개런티를 더 받으려는 관행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작품예산을 감안해서 심정적으로 개런티를 조절하려는 배우들이 많다.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배우들에게는 매니저들이 직접적으로 돌아다니며 이런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에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제작사들의 배우 개런티 절감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계가 공생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약이 성사된 경우도 있다. 제작비 절감을 배우 개런티에서 주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엔 문제가 있다. 절감을 하겠다면 이쪽 주체자들과 깊은 대화를 해본 다음에 시도할 수는 없었는지.
향후 제작사와 배우 간의 계약에선 시간이 곧 돈으로 인식될 텐데. 배우도 사실 시간이 돈이다. 3개월에 촬영을 할 수도 있는데 굳이 7개월을 붙잡아놓은 영화들이 그간 얼마나 많았나. 그러면서도 배우들에게 오버 차지는 보장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배우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는 건 문제 있다. 박중훈 선배가 <찰리의 진실>을 할리우드에 작업한 직후 충무로에 돌아와 촬영시간에 대한 주장을 했을 때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제작사인 갑의 권리가 있다면 의무도 있는 법이다.
최근 대표 소속 배우이던 황정민이 싸이더스HQ를 떠났는데.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매니지먼트는 언제나 배우와 재계약을 하기 마련이고,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면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매니지먼트들은 각각 너무 출혈 경쟁이 심하다. 싸이더스HQ 설립한 지 8년이 됐는데, 요즘이 가장 힘들다. 과도하게 요구하는 배우들과는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고, 중간급이나 신인급 배우들의 저변도 확대할 생각이다. 매니지먼트들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건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