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에 포함된 극렬 친일 작가에서 월북 사회주의작가로 점핑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2. 금홍이 가출하고 다방 '제비'가 파산한 후 이상은 부모의 집을 저당잡혀 다시 인사동 카페 '쓰루'를 인수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늦게 일어나고 제때 출근도 않고 영업장 관리도 하지 않아 개업과 동시에 망필;;;
이 카페에 종업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권영희 라는 신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고리끼 전집을 모조리 독파한 인텔리였어요. 물론 이상의 연인이었구요.
3. 이상의 절친 중 정인택이라는 작가가 있었는데 정인택은 권영희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4. 도쿄 메이지 신궁 옆 일한합방기념탑에 일한합방 공로자로 이름을 올린 친일부역자이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주필 아빠 아래서 곱게 자란 정인택은 절친의 애인을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다 자살을 선택합니다.
5. 정인택의 수면제 자살 시도는 이상이 정인택을 업고 병원에 달려가면서 실패합니다. 문인들의 중재로 정인택과 권영희는 결혼합니다. 이상은 이 결혼식에서 사회를 봅니다.
6. 오늘의 주인공 이 사람은 이상과 정인택의 문인 절친 3인방 중의 한 명이었어요.
7. 1930년대에는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람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이 이때 작품. 하지만 일제의 압력이 심해지는 194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친일문학의 길로 접어듭니다.
8. 하지만 느닷없이 해방이 찾아오자 남로당에 가입하고 공산주의 계열 문학단체의 간부가 되어 활동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을 남겨둔 채 정인택과 함께 월북합니다.
9. 3년 후 정인택은 후 병사하고 이 사람은 권영희와 재혼합니다. 자상한 아버지로서 남겨진 정인택의 자녀들을 보살폈다 해요. 하지만 종전 후 김일성의 남로당 계열 숙청 작업으로 4년간 집단농장으로 하방됩니다. 1960년 다시 대학교수로 복권되지만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의 후유증으로 건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입니다. 1975년 전신불수의 상태에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합니다. 부인 권영희가 남편의 구술을 받아 쓰다 1986년 사후 그녀가 완성했다고 합니다.
10. 이 사람이 월북한 후 남쪽에 남은 부인의 둘째 딸 박소영은 영남대 미대 교수이자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지낸 봉상균 교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이 아들은 자라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됩니다~
첫댓글 박태원 남로당가입 역시 월북을 왜 했는지 남로당가입을한것으로 보아 사상적으로 북한을 동경하고있었던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오늘도 쉬시면 글좀 올려주세요.레페브라운님.
@메이에흐 전 레페님이 아니라니까요 제 가입일을 보세요
@간짜장 다른 분인데 사상이 많이 비슷하세요.
@메이에흐 일부분 의견이 비슷하거나 같을수도 있지 예를들어 모든남자들은 나이많은 늙은여자보다 젊은여자를 더 좋아하는데 그럼 수많은남자들은 모두 동일인물이냐 이것입니다
미남이었냐는 댓글 질문이 삭제되어 답글만 올립니다. 일단 키가 컸어요. 훤칠~
얼굴은 직접 확인하세요.
박태원
컨닝 맞음
댓글을 읽어보니 이상의 쓰루처럼 이 글도 망필입니다ㅋ
박태원소설 유투브로 많이 들었네요ᆢ
봉감독외할아버지래서 오홋~ 했죠
정작 봉감독은 외할아버지와 자기를 연결시키는 걸 꺼려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하다가 월북한 것도 아니고 친일작가 42명에 콕 찝힐 정도의 부역작품을 쓴 작가이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