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3박4일
간 생에 혼자 모처럼 나들이를 하였다.
금번 여행간 주요 소감은 다음과 같다.
1. 나 혼자 장거리 국내여행은 난생 처음이다.
30년전 장인어른을 모시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법주사ㆍ직지사ㆍ불국사ㆍ용궁사ㆍ해
인사 등을 나들이 했다.
그러나 금번 여행코스는 나혼자 서울에서 영천
충효사~ 양산 산소(장인ㆍ장모)~ 통도사~고창
~ 귀경이었으니 우리나라를 한바뀌 일주한 것이
며 약 1000km를 달린것이다.
장인어른과 사랑하는 아내는 모두 고인이 되
었으니 세삼 세월이 유수함을 절감한다.
2. 영천 충효사 해공스님 친견(1박)
● 해공스님과 인연
영천 충효사(忠孝寺) 해공스님을 친견한지도 5~6년이 지난것 같다.
필자는 충효사(忠孝寺)라는 절이름을 보면 신라통일에 절대기여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생각난다.
특히 충효사 절명중 충은 사군이충(事君以忠)
에, 효는 사친이효(事親以孝)에 해당된다.
그래서인지 해공스님은 다른 스님들과 달리
나라의 안보와 효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스님과 인연은 1990년 초로 기억되니 어언간
30년 이상이 지난것이다.
30년전 해공스님께서는 유독 미남이셨고, 지
금도 연세(85세)에 비해 건강관리(매일 1만
보 걷기)를 잘하셔서 곱게 보인다.
● 전국 최대의 지장도량
해공스님의 원력으로 충효사는 전국 최대의 지장도량으로 절 규모도 놀랍게 확장되었다.
충효사에는 무려 3003개 불상들이 계시며
세계 최대 백옥으로 500여 이상 나한전(일명 아라한/부처님 500여명 제자들이 불전을 편
찬)과 함께
고인들 유골을 나한전 백옥속에 모시며, 충효
사 해공 큰스님께서 매일 영가들 극락왕생을 기도드린다.
영가 모시는데 별 비용부담도 안되어 영가를 백옥
나한에 모시게되니 영가의 극락왕생에 더없이 좋은것이다.
● 저녁 만찬
해공스님은 필자에게 저녁에는 외식을 하자
는 각별한 배려를 주셨다.
보살 두 분을 포함하여 다섯분이 인근 음식점
에가 해물찜으로 저녁을 하였는데 필자는 난
생 처음 스님께 저녁을 모실수 있어 멀리 서울
에서 300km 이상을 달려온 보람을 느낀다.
● 기와 불사
충효사에서 모처럼 일박은 나의 버킷리스트
하나(200여 종류/국내외 여행 150가지)를
이룬셈이다.
장인ㆍ장모ㆍ아내 세 분에 대한 극락왕생과
아들ㆍ며느리ㆍ손주들 건강을 기원하였다.
24일 아침 기와불사후 해공스님께서 필자에
게 조계종 종정스님과 해공스님의 친필 및 스
님께서 손목에 차고다니시는 염주를 주셨다.
손목에 차는 염주는 매우 향기로운 냄새가 나
는데 이는 필자에게 매우 향기로운 삶을 살으
라는 해공스님의 죽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에 또 충효사에 올것을 기약하고 서둘러
양산으로 향했다.
3. 양산 통도사
통도사 인근 장인ㆍ장모묘소 참배후 부산 처
형ㆍ처제랑 통도사에 들려 대웅전에 큰절을 올렸다.
장인ㆍ장모와 아내의 극락왕생과 식구들 건강
을 기도드렸다.
통도사는 대한민국 3대 사찰(통도사ㆍ해인
사ㆍ송광사)중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시는
명사찰이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고, 순천
송광사는 고승들을 많이 배출한 명사찰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주위에 즐비한
적송들은 보면 볼수록 대장관이다.
사찰 구경후 사찰인근식당에서 시원한 냉면
으로 점심을 한후 처형ㆍ처제와 만나자마자
석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필자 고향(전북
고창)으로 출발하였다.
통도사 산책로(정문~ 대웅전)
부산 처형ㆍ처제와 함께
4. 남해고속도로와 K-8 자가용
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남해고속도로를
달린것은 수 십년이 지났고, 7년전 예비역 대
령단에서 사천 비행장등에 안보관광이 기억
난다.
양산에서 고창까지는 300km에 이른데 양산
~ 김해~ 창원~ 함안~진주~사천~광양~ 순
천~담양~고창에 이르는 남해 고속도로를 달
려 단한번도 휴계소에 들리지않고 4시간만에 고창에 도착하였다.
승용차로 남해고속도로를 달린것은 난생처음
인데 주요 소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담양~고창간 도로망이 발달되어 광주를
거치지 않아 이동거리가 대폭단축되었다.
정치는 엉망이어도 나라는 발전하고 있다.
둘째, 필자는 2023년 6월에 K-8 승용차를 구
입했는데 하이브리드가 아닌데도 L당 무려
20km를 질주한다.
영천~고창간 400km를 달리는데 휘발유 비
용은 단지 3만2천원 정도니 값싼 가성비에 정말 놀라웠다.
금번 3박 4일 1000km를 달리는데 휴발유 비
용이 단지 9만원이면 그저 먹기다.
K- 8 새차의 또 다른 편리한점은 레인체인지
할때는 백미러에 뒷차가 지근거리에 있으면
빨간불과 경고신호가 울여서 좋고,
고속도로에서는 오토크루즈를 누르면 지정된
속도에서 앞차와 안전거리를 자동으로 통제
하여 크게 안전운행에 기여하고 있다는것이다
현대자동차 수출이 세계 5위권에 무척 자랑스
럽다.
셋째, 남해고속도로는 사통팔달로 발달되고
매일 인적ㆍ물적교류도 엄청난데 영호남간
마음의 장벽은 여전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6.25 전쟁시 별 피해가 없는 영남지역은
보수가 강한데 순국과 호국의 성지인 호남지
역이 좌편향 된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5. 고향방문(전북 고창)
● 음식문화
24일 고향에 도착하여 동생들과 4명이 아꾸찜(대)
를 주문했는데 아구고기도 많은데도 가격은 단지 4만원이며, 반찬도 모자라면 무제한 제공한다.
서울에서 이정도 아구찜은 적어도 6만원이상
될 것이다.
아침 해장국은 8천원 정도지만 밑반찬도 다체
롭고 맛도 참좋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후하면 이에 비례하여
민심도 후하다고 본다.
필자가 본 전남지역은 사람들이 억세지만 단
결이 잘되고, 전북지역은 전남에 비해 온순하
지만 인심은 보다더 후하게 보인다.
● 초등학교 등하교길을 걸으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것이 엇그제 같은데 무려 65년이 지났다.
녹음방초한 5월하순이라 모내기가 한창이다
옛추억이 그리워 초등교 등하교길을 걸었는데
옛 오솔길은 우마차 통행이 가능한 시멘트길
로 바뀌었다.
도로변 주변산들은 개간후 특용작물들을 재배
하였고, 초등교 인근 당산느티나무(수령 325
년)는 세월이 아파서 그런지 밑뿌리와 몽통만 건제하고, 당산나무 윗부분 몸통은 벼락맞아
사라졌고, 나머지 큰 나무줄기들은 잘라나갔
다.
나무도 그러하니 모든 생명체들은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나보다.
반면 필자는 초등교 모교 파란잔디 운동장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걸을 수 있으니 눈물
겹게 감사하고 세상모든것을 얻은 기분이다.
예컨데 큰맘먹고 걸(9000보)은것은 어쩌면 금번 대장정에 압권이며, 오늘의 오솔길은 영원한 추억
으로 남을 것이다.
초등교 인근 당산 느티나무
초등교 건물을 배경으로
초등교 인근 황산마을 입구에서
● 동생 칠순
정읍에 있는 토지(한식 전문점)식당에서 만찬
을 하였고, 나는 집안 어른으로서 선친과 선
비의 뜻을 담아 간단히 축사를 하였다.
축사에는 하루하루를 매일 생일날 처럼 축제
분위기로 살아가고, 선친의 유언인 "형제끼
리 우애하라"를 삶의 화두로 삼자고 하였다.
칠순이 넘다보니 어렵지만 보람을 느끼는것
이 화해와 용서더구나.
춘수동생은 오늘 관광으로 인해 참석치 못했
지만 조카 연지의 사회로 간단히 행사를 마무
리하였다.
● 친구(진호) 묘소 참배
진호친구는 나의 중ㆍ고 고향친구중 절친중
한명이다.
친구의 조사를 읽은지도 엇그제같은데 어언
5년이 지났다.
바쁘지만 동생차로 서둘러 진호묘소를 참배
하고 묘소위에 장미꽃 다섯송이와 노란꽃 두 송이를 놓았다.
진호친구에게 너와 나의 영혼은 언제나 함께
하자고 하였으며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였다.
6. 귀경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이니 시골에서 귀
경시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안전운행을 하
여 무사히 서울집에 도착하였다.
서울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반기는자는 없어도
금번 여행의 추억이 나의 고독을 달래준다.
아내영정에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니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금년 2월 호주ㆍ뉴질랜드 여행에 이어 금번
3박4일 나들이는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이들면 추억들은 더욱 아름다우니 추억을
쌓는것은 또 다른 소중한 자산이다. -- 끝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명수(육사 31)박사
2024년 5월 26일
첫댓글 두루두루 훌륭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