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장. 보이지 않는 손 황진의와 당리는 그 말을 듣고 다함께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백철우의 음성에서 왠지 영혼을 도려내는듯한 무서운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백방생은 도리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네가 알고 있군. 그렇다. 이것은 다소 특별한 피지. 즉 색깔도 없으며 맛도 없고 투명한, 말하자면 하늘 에서 쏟아지는 듯한 성스러운 피다. 너는 마셔보지 않겠느냐?" 백철우는 눈빛이 괴이하게 변하더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믿을 것 같으냐"그것은 물이다. 피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그것을 마실 것 같으냐?" 백방생은 가볍게 웃었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군?" 백철우는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내가 뭘 모른다는 말이냐?" 백방생은 말했다. "이른바 하늘에서 내리는 피는 그야말로 귀하기 때문에 빨리 말라버리 는 것이다. 네가 이미 마셔버렸던 그 성스러운 피도 이미 거의 말라버렸 을 것이다. 너는 생각할 수록 빨리 달아난다는 말을 모르느냐?" 백철우는 문득 안면을 일그러 뜨리고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뭘 모르냐는 말이냐?" 백방생은 말했다. "너는 이미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불경을 저질렀다. 그는, 네게 더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그랬으므로 너는 빨리 이 성스러운 피 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화를 낼 것이다." 백철우는 온 몸을 덜덜 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그 옆의 백방도나 백철산의 눈빛도 괴이해 지기시 작한다는 사실이었다. 현명한 황진의는 이내 그것이 백방생이 일종의 최면술로 상대의 심마(心魔)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한 심마는 종종 멀쩡한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녀 는 즉시 전음을 날려 당리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상공께선 지금 장난을 하고 계시는 거야.) 백방생은 다시 말했다. "너는 감히 그의 위업을 거스르려고 하는구나. 그러지 말고 어서 이리 와서 조금만 마시는 것이 어떠냐"그러면 이내 마음이 편안해질 텐 데?" 백철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옆의 백방도와 백 철산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었다. "아냐, 난 마시지 않겠다." 마치 세 사람이 입술을 움직이지만 말은 한 사람이 하는 것과도 같았 다. 백방생은 물을 한바가지 떠서 그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지"그러다간 몸속의 그 성스러운 피 가 고갈되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가"어서 빨리 피가 말라버리기 전 에 마셔보는게 어때?" 이상하게도 백철우 등은 백방생이 한걸음 다가가자 이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는데 아주 심한 공포에 젖은 듯한 표정들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마?" 소리치는 백철우의 두 눈알이 하얗게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백방생 은 말했다. "너희들은 너무 두려워 하는군. 하지만 사실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 야. 자, 어서 이 피를 마셔보는 게 어때?" "이, 이 자식이...!" 백철우 등은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등이 벽에 닿아 깜짝 놀랐다. 그 때 갑자기 앞으로 다가가던 백방생이 발에 무엇이 걸려 넘어질 듯 하며 바가지의 물을 그 쪽으로 확! 쏟아버렸다. 그 때였다. "으악!"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세 사람은 크게 경악하여 비명을 지르 며 일순간 벽을 뚫고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백방생은 그것을 보고 일순 가볍게 냉소를 터뜨렸다. "하하, 이제 녀석들은 감히 다시 이곳으로 오기 어렵겠지?" 당리는 사실 조금전의 그 광경을 보며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다. 이제 그들을 몰아내자 그녀의 입에서는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황진의가 이것을 보고 있다가 그녀에게 손으로 진기를 주입시켜 주었 다. 그러자 당리의 안색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대강 바닥과 천정, 벽면 등을 치우고 정리한 뒤에 황진의가 백방생에 게 말했다. "상공, 조금전의 그 수법은 범상치 않았어요. 대체 뭐라는 거죠?" 백방생은 웃으며 말했다. "별 것 아니오. 그저 그들의 심리를 이용했던 것이오." 황진의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백방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대체 누가 그들의 무공을 회복시켜 주었을까 하는 생각 을 해 보았는데, 결론은 역시 그 신화상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즉 천 선은 그들의 무공을 회복시키면서 아울러 심령금제술(心靈禁制術)을 걸 었으리라는 생각이오. 즉 그는 그런 것으로 아예 천하의 인간들을 개조시 켜서 자신의 이상제국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본래 이 심령금제라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간혹장애(障碍)가발생하 게 되고, 또한 그것에 의해 심마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오. 나는 그 방 법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어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하 게 한 것이오." 당리는 그들이 파랗게 질리던 모습을 상기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씀들은 이상하여 멀쩡한 사람들도 공포감이 들게 만들었 어요." 백방생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건 염려 마시오.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니 곧 잊게 될 것이 오. 또한 무공이 최상승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런 것에 대항할 힘이 강 해지게 되오." 당리는 그제서야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래서 황언니는 멀쩡했던 것이었군요?" 백방생은 미소하며 말했다. "최상승의 경지에 오르면 선천(先天)이라고 소위 말하는 진기(眞氣)를 얻게 되지. 그 경지에 오르게 되면 몸과 마음이 다 강해지게 되어 병마 (病魔)들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오." 당리는 의아해 져서 말했다. "헌데 그 천륭무가는 어째서 오히려 무공이 높은 데도 일찍 단명하게 되는 거죠"정말로 그 천형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인가요?" 백방생은 말했다. "그 원인은 바로 번뇌에 있소. 번뇌가 있기 때문에 무공이 높으면서도 오히려 단명하게 되는 것이오. 사실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하 나 있기는 하오." 황진의가 놀라 말했다. "그게 뭐죠?" 백방생의 대답은 간단했다. "달마역근경(達摩易筋經)이오." 황진의와 당리는 다 함께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정말인가요?" 백방생은 미소하며 말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연마하여 대성한 바가 있소.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가 있는 것이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달마역근경에 대해서 잘못 이 해하고 있소. 더러는 아주 기초적인 도인공(導引功)으로, 혹은 절정의 내 공으로, 혹은 최상승의 무학으로, 그 모든 것들이 적용이 가능하오. 그러 나 기실 달마역근경은 근본부터 무학의 원리(原理)를 꿰뚫은 것으로 사 실상 무형검(無形劒)의 무학인 것이오. 진실로 지혜가 있는 자만이 그 속의 이치를 알고 그 무공을 터득하곤 하오." 백방생은 어리둥절해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천륭무가주가 그 달마역근경을 수련한 적이 있었었소. 그런 데 그가 만일 진실로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고 그 내용에 파고 들었더 라면 그래도 약간의 성과가 있을뻔 했소. 그는 사실 진짜 황금을 돌멩이 로 착각한 것이지." 점차로 사위가 어두워 지자 황진의는 방과 거실 등에 촛불들을 밝혀 놓았다. 당리를 성수곡으로 보낸 뒤에 백방생은 다소 마음이 초조해 지기 도 하여 아래층의 탁자앞에 앉아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대략 술시가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한 사 람이 익숙한 태도로 안으로 들어섰다. 백방생은 그녀가 혹시 당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당리는 아니었 고 바로 석채릉이었다. 백방생은 석채릉이 그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기 에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황진의는 부엌을 정돈하고 있다가 그것을 보고 즉시 백방생에게 다가왔다. 백방생은 읽고 있던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이오"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거실의 한쪽에서는 아직도 난로를 때고 있어서 화덕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석채릉은 그 불꽃을 한 번 바라본 뒤에 천천히 걸어서 촛불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빼어난 미모를 잘 보여 주 려는 것 같았다. 촛불의 옆에 서서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내가 대체 무슨 볼일로 왔을 것 같아요?" 백방생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 아직도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오?" 석채릉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과거의 일 때문에 온 것은 아니예 요. 나는 지금의 일 때문에 온 것 이죠. 저는 현재 남궁세가의 둘째공자와 정혼한 상태예요. 그러니 그 일 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겠어요?" 남궁세가의 둘째공자라면 바로 남궁검상이었다. 백방생은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남궁검상은 용모가 빼어나서 아마도 석채릉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 다. 이번에 남궁검상 등이 그녀와 함께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석채릉은 기묘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을 보니 자연 두 사람이 비교가 되는 군요. 나는 당신이 이렇게 멋있게 변할 줄은 미처 몰랐어요. 당신도 내가 이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백방생은 조용히 응대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이오?" 석채릉은 말했다. "나는 그와의 정혼을 취소하고 당신과 혼인하고 싶어요. 물론 당신의 두 여자도 인정하는 것으로 하죠. 당신은 물론 이 일에 찬성하겠지요?" 백방생은 옆의 황진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묵묵히 곁에 앉아서 듣고 있었다. 백방생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연히 찬성하리라고 생각하오?" 석채릉은 말했다. "물론이예요.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할 거예요." 백방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오. 나는 오히려 반대하오." 문득 석채릉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이어 냉랭한 표정으로 백방생을 주시하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의 그 말에 책임질 수가 있나요?" 백방생은 이 일은 처음부터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뜻밖에도 석 채릉은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필시 그녀 가 믿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백방생은 그게 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 며 은근히 근심했다. 마침 걱정하고 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줄곧 책임을 져 왔소." 석채릉은 이에 가볍게 한 숨을 불어 쉬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안됐군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정조는 무너지 게 되어 있으니까." 백방생은 일순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라고"지금 당신들이 아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오?" 석채릉은 차갑게 냉소했다. "아리인지 당리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달아나려는 한 암코양이는 데리 고 있죠. 당신의 결정은 뒤집을 수가 없는 것이겠죠?" 당리는 지금 임신중이었다. 비록 초기의 위험한 단계는 지났다고는 하나 그래도 백방생의 마음은 초조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녀는 돈을 구하러 간 것이었소.당신들도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 았소?" 석채릉은 싸늘하게 조소했다. "당신은 감히 거짓말을 하는군요. 우리를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 나요"아마도 그녀는 성수곡으로 구원병을 청하러 갔었겠죠?" 백방생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들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소?" 석채릉은 가볍게 웃었다. "아 무사해요. 만일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그녀는 나의 형님이 될 것인데 내가 감히 몸을 건드릴 수야 있나요"게다가 그녀는 호호, 아이 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백방생은 당리가 필시 그녀의 일행에게 잡힌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 당리가 무사한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백방생은 말 했다. "우리가 그대를 제압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오?" 석채릉은 황진의를 돌아 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 "저 언니가 나 보다 무공이 약간 고강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당신들 이 감히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것 같아요"만일 내가 어떻게 되면 당 신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하게 될 거예요." 백방생은 기실 석채릉의 그 말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그녀를 들어오는 순간부터 제압하라고 했었 을 것이었다. 백방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소. 우리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대가 원하는 조건은 뭐요?" 석채릉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그러나 다시 귀가 먹었다는 말인가요 "내가 그 조건을 말하지 않았나요?" 백방생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오히려 그대에게 불리할 것 같구려. 생각해 보시오. 나는 이미 여자가 둘인 유부남이고 그대는 아직 순결한 처녀인데 상대 가 될 수 있겠소"게다가 그대는 지체도 높고 무공도 그리 높은데?"하 하, 그렇게 장난하지 말고 어서 나의 부인이나 돌려 주시오. 돈은 원 하는 대로 드릴테니." 석채릉은 약간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할 수 없군요. 우선 내가 가서 당신의 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부터 보내 드리지요." 백방생은 그녀가 신형을 돌리는 것을 보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 다. "좋소! 그대가 이겼으니 그대의뜻대로 하시오"내 당신과 혼인을 하 겠소. 그러니 어서 그녀를 데려 오시오." 석채릉은 그제서야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녀의 입가에는 득의한 미소 가 퍼져 있었다. "호호, 당신은 제법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군요. 하지만, 그렇게 말만 가쟝고는 믿을 수가 없어요." 백방생은 의아해 졌다. "그럼 무슨 보증금이라도 내라는 말이오?" 석채릉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예요. 내가 혼인만 하면 그 돈들이 모두 내것이 될 텐데 보증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난 다른 분명한 보증을 원해요. 그건... 바로 당신 과 내가 지금 바로 잠을 자는 거예요." 백방생은 그 말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 졌다. 황진의를 바라보니 그녀는 그저 가볍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 는 것은 그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백방생은 아무리 해도 일단은 따르는척 하는 도리밖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어 다시 생각했다. "만일 정말로 그녀와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반드시 혼인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일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주는 것이 유리한 법이었다. 백방생은 두말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서 침실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따라 오시오!" 석채릉은 즉시 그의 뒤를 따라왔다. 황진의는 아까의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석채릉은 침실의 안으로 들어서자 급히 방문을 안에서 닫아 걸며 백방생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서 말했다. "백방생, 당신은 사실 나의 악마이고 보기 드문 영웅호걸이예요. 당신 은 전에 나를 그토록 괴롭혔죠. 그래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괴롭힌다 면 어쩌려고 그러죠?" 석채릉은 말과 함께 백방생의 혈도를 제압하는 시늉을 했다. 백방생은 웃으며 침상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이미 당신에게 패배한 사람이니 당신이 괴롭히든 마음대로 하시 오. 패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석채릉은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백방생의 겉옷을 벗기며 그녀는 말했 다. "좋아요. 당신이 이렇게 순순히나오니 나도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우 리는 지금 정당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며 거래가 성사되면 부부가 되 는 거예요. 이것은 당신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 아닌가요?" 백방생은 속옷 차림으로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오. 헌데 당신은 정말로 이것을 후회하지 않겠소?" 석채릉은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그녀는 고 혹적으로 웃었다. "후회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당신은 그날 나를 이미 발가벗기고 이곳 저 곳을 만져보지 않았나요" 호호, 나의 순결은 사실 그 때 깨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요." 백방생은 속으로 설마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석채릉이 그와 잠을 자려고 할 줄은 몰랐다. 그 점에 대해서 그는 자연 어리둥절해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석채릉은 왜 하필이면 그렇게 일부러 자신과 관계를 가지려는 것일까" 백방생은 멍하니 속옷 바람으로 침상위에 앉아서 옷을 벗는 석채릉 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기실은 혼자서 그러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몹시 난처했다. 역시 어쨌든 당리를 혼자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녀와 아이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지금 석채릉과 관계 를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실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것과도 같이 될 지도 모른다. 백방생은 짧은 순간 에 가능한한 해결책을 생각해 내려고 했으나 해결책은 급한 마음이라 더욱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은 시간을 좀 끌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석채릉은 이미 속옷까지 벗고 두 개의 작은 속곳인 젖가리개와 아래 의 고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방안은 어두웠다. 그러나 무공을 익혀서 시력이 좋은 두 사람에게는 그 어둠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석채릉 은 일단 거기까지 벗고 백방생에게 보라는 듯이 몸을 자극적으로 움직 여 보였다. 은은하게 창문으로 스며들어 오는 별빛에 반사되어 그녀의 육신은 흡사 은빛의 인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어 고혹적으로 웃으며 손을 젖가리개로 가져갔다. 헌데 바로 그 때의 일이었다. 마악 젖가리개를 떼어 내려던 석채릉은 갑자기 안색이 돌변해서 차가운 시선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침상의 아 래쪽을 보고 있었다. "어서 나와라!" 백방생은 처음에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줄로 알았다. 역시 그녀의 본심이 나오는가 싶어서 석채릉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석채릉이 두 눈에 살기(殺氣)까지 떠올리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정말 죽고 싶단 말이냐?" 순간 갑자기 침상이 절반으로 쫘악, 갈라졌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그 속에서 한자루의 장검과 함께 둥그런 물건이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 둥그런 물건은 바로 사람의 머리였다. 백방생은 갑자기 자신의 아래쪽에 서 사람이 튀어 나오자 깜짝 놀랐다. 게다가 정작 놀랄 일들은 계속 이 어지고 있었다. 순간 쏴쏴쏴!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섬광(閃光)들이 백방생의 몸을 뒤덮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장검으로 펼쳐내는 강력한 검기(劒 氣)들이었다. 백방생은 이미 무학의 조예가 높은 상태였다. 그는 벌써 그것이 남궁세가의 절예들 중의 하나인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劒雷)라는 것을 알았다. 그 섬전십삼검뢰는 바로 최상승의 절학으로 빠르고 강한 파괴력을 지 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것을 대성하려면 시전자는 검강의 경지에 이르 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전자는 전혀 그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 했다. 비단 주요장점인 빠르기와 파괴력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백방생은 벌써 그 가운데의 헛점을 수십 곳이나 발견했다. 그러나 비록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실천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백방생은 비록 그것을 파해할 수법은 알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파 해할 능력은 없었다. 그는 현재 공력이 거의 상실된 상태인 것이다. 순간 침대의 이불 전체가 갈가리 찢겨져 날아갔다. 백방생의 의복에도 검세가 침투하여 붉은 선혈들이 튀어나고 의복이 찢겨지기 시작했다. 백방생은 다급한 순간이라 급히 몸을 굴려 아래로 떨어졌다. 그 검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끈질기게 그의 뒤를 추격했다. 헌데 바로 그 때 였다. 갑자기 희미한 옥색(玉色)의 손바닥들이 나타나더니 꽃잎처럼 그 검세에 부딪쳐 가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육장(肉掌)으로는 병장기의 예리한 날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그 옥장(玉掌)들은 괴이하게도 거꾸로 검세들을 부수고 녹여가는 것이었다. 츳츳츳" 하는 가벼운 소리 와 함께 옥장은 삽시간에 검세를 파해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뒤덮었고 그 시전자는 그만 손을 거두어야 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시전 자의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얼굴을 바라본 백방생은 내심 아"하고 놀랐다. 그 시전자는 다름아 닌 바로 남궁검상이었던 것이다. 남궁검상은 이미 그녀와 정혼까지 했 다고 하지 않은가" 석채릉은 남궁검상이 장검을 들고 멍청히 서있자 그대로 그의 따귀를 쫙쫙쫙"하고 수십차례나 갈겼다. 이내 그의 양 뺨이 찐빵처럼 부풀어오 르고 코와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내 그의 두 눈이 허옇게 변해서야 석채릉은 손을 거두었다. 남궁검상은 갑자기 그렇게 수십차례 의 따귀를 얻어맞게 되자 내상까지 입어서 전신을 비틀거렸다. 석채릉은 크게 노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네 놈은 정말 죽고 싶으냐"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냐?" 남궁검상은 이미 퉁퉁하게 변한 양 뺨을 어루만지다가 문득 입을 우 물거리며 부러진 이빨을 세 개나 뱉어냈다. 그리고 멍하니 반 나체의 석채릉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대의 지아비가 될 사람인데 이럴 수는 없소?" 석채릉은 그가 멍하니 자신의 벗은모습을 바라보자 이내 발길질로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검상의 몸이 뒤로 날려가고 벽이 허물어 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뭐가 이럴 수가 없다는 말이냐"내가 하면 하는 것이지 네까짓 것이 무엇인데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냐?" 남궁검상은 등이 벽에 부딪치자 입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일어났다. 그런데 그는 괴이쩍게 웃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서 멍청하 게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하지않고 석채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방생은 얼른 겉옷을 찾아서 입은 다음에 일어나며 석채릉에게 말했 다. "그는 당신에게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사랑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좀 너무한 것이 아니오?" 석채릉은 크게 분개하여 바라보다가하는수 없이 옷을 도로 입으며 말했 다. "일편단심이라고요"웃기는 소리 말아요. 녀석에게 만일 그런 것이 있 다고 하면 개가 다 웃을 거예요. 감히 내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백방생은 석채릉의 두 눈에 정말로 살기까지 비치는 것을 보고 혹시 그녀가 진짜로 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백방생은 말했다. "이제 그만 내 아내를 돌려주는 것이 어떻겠소?" 석채릉은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요. 그래 아직 우리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나 요?" 이어 그녀는 옷을 다 입자 천천히 남궁검상에게 다가갔다. 남궁검상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백방생은 문득 석채릉의 태도가 뭔 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주위에서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일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그녀가 공력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 연 그녀는 남궁검상을 죽이려는 것일까"남궁검상은 그것을 아는 지 모 르는지 여전히 그렇게 멍청히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마도 조 금전에 벽에 부딪쳤을 때 뇌에 어딘가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헌데 석채릉이 미처 남궁검상의 앞에 이르기도 전의 일이었다. 느닷없 이 창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드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남궁지약과 황보헌이었다. 그들은 각기 경신술을 전개하여 날아서 남궁검상의 앞을 가로막았다. 석채릉은 그것을 보고 분노하여 말 했다. "너희들이 감히,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황보헌은 창백한 안색이 되어서 말했다. "그를 죽이지 마시오. 저 백가녀석을 위해 그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니오?" 석채릉은 안면에 기이한 빛을 떠올렸다. "너는 내가 그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황보헌은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나 어쨌든 소저의 선처를 바라오." 석채릉은 문득 두 눈에 강한 살기를 떠올렸다. "지금 너희들이 이러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 지 아느냐" 실로 멸 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할 것이다?" 황보헌은 그말에 크게 안색이 변했으나 그래도 자리를 비켜 서지는 않았다. 석채릉은 문득 남궁지약을 바라보더니 황보헌에게 다시 말했 다. "너는 이 계집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 겠지?" 황보헌은 그 말에 흠칫하며 은근히 두렵고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석 채릉이 무슨 짓을 하려는 지 대강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다. 석채릉은 즉 시 남궁지약의 옷을 부욱, 찢어 버렸다. 설사 무공의 힘이 아니더라도 남궁지약이 입고 있는 의복은 연청색의 얇은 의삼이어서 쉽게 찢겨져 나갔다. 남궁지약은 스스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가만히있었 다. 석채릉은 이어 그녀의 젖가리개도 찢어버렸다. 출렁 하고 두개의 젖 무덤이 소스라쳐 일어났으며 남궁지약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황 보헌이 놀라 소리치며 달려 들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그러나 그와 석채릉과의 무공의 격차는 너무나도 심했다. 미처 황보헌 의 주먹이 석채릉의 옷깃에 닿기도 전에 이미 석채릉의 발바닥이 그의 면상을 걷어차고 있었다. 황보헌은 그만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코에서 피 를 흘리며 뒤로 날아갔다. 황보헌이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보고 석채릉은 능공섭물의 절기로 남궁검상의 장검을 손에 잡아들었다. 황보헌 은그것을 보고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소리쳤다. "그녀를, 그녀를 해치지 마시오?" 석채릉은 장검으로 봉긋하게 치솟은 남궁지약의 한쪽 유방을 도려냈다. 비록 그녀의 솜씨가 대단하여 깨끗하고 빠르게 도려냈다고는 하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남궁지약은 으악, 하고 눈을 까 뒤집었으며 그곳에서는 선혈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 을 보았기 때문인지 황보헌은 일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석 채릉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대로 놔두면 죽는다. 그러니 어서 데려가서 지혈이나 해라 만일 그렇지 않고 계속 나의 일을 방해한다면 즉시 그녀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 황보헌은 일순 정신이 번쩍드는 것 같더니 벌벌 기어서 일어났다. 그는 미친 듯이 말했다. "아, 알겠소. 그녀를 건드리지 마시오. 내 모든 일을 하라는 대로 할 테 니 그녀를 해치지 마시오?" 석채릉은 잔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식의 웃음이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느닷없이 이제까지 가만 히 있던 남궁지약이 두 눈에 원독의 광망을 발산하며 소리치는 것이 아 닌가" "아헌(阿軒)! 나를 상관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를 죽게 하지 말아요?" 말과 함께 느닷없이 석채릉의 앞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석채릉은 그것을 보고 일순 크게 놀랐다. 가슴에서 피를 내뿜으며 흉악하게안면을 일그러뜨리고 덤벼드는 그 모습은 흡사귀녀(鬼女)를 보는 듯 했기 때문 이었다. 석채릉은 자신도 모르게 공포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수를 휘저었 다. 그녀의 장검에서는 대번에 츳츳츳! 하는 검강이 뻗어나가 남궁지약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았다. 그녀는 전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황천의 객이 되고 만 것이었다. 대번에 피와 살들이 범벅이 되어 흩어 지고 장내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참혹의 극치를 이루었다. 남궁지약 의 얼굴과 몸매는 무척 아름다운 편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에도 그 흔적 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황보헌은 다가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일순 멍청해졌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괴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황보헌은 그것을 보고 미친듯이 날뛰어도 부족하겠건만 돌연 허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웃으면서 석채릉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이 미쳤군?" 석채릉은 이미 상황이 글러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더이상 주저 하지도 않았다. 다시 장검을 휘두르자 황보헌의 허리도 반쪽으로 갈라지 며 넘어갔다. 황보헌은 그렇게 죽으면서도 얼굴의 표정은 여전히 허 허, 하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석채릉은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소름이 오싹 끼쳐지는 것 같았다. "미친, 미친 놈들이야?" 석채릉은 마치 그들에게서 벗어나기라도 하듯이 연이어 장검을 휘둘렀 다.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던 남궁검상의 얼굴이 돌연 바 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윽고 몸뚱이는 머리를 잃고 흔들거리다가 잠 시 후에야 피를 내쏟으며 쿵, 하고 쓰러졌다. 석채릉은 내던지듯 장검을 버리고 나서 대강 옷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낸 뒤 백방생에게 돌아갔 다. 백방생은 워낙 순식간에 그 일이 벌어졌는 데다가 또한 시간이 있었 다고 해도 그것을 말릴 능력이 없었다. 그는 길게 탄식을 하고 있다가 석채릉에게 말했다. "그들은 낭자에게 나쁜 마음이 없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겠 소?" 석채릉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차갑게 말했다. "흥! 그들이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해도 감히 항명을 하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잘 보아 주려고 했더니 비천한 것들이 감히 하늘 꼭대기 까지 기어 오르다니?" 백방생은 그녀가 추호도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실로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은 온갖 고생쯤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석채릉이 문득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내가 두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신은 만족하시겠 죠?" 백방생은 어이가 없어 하며 말했다. "아니 그럼 내게 그런 안심을 시켜주기위해 그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이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