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날
- 김미숙(아호: 팔음)
읍내 오일장 서는 날
새벽밥 지어 놓고
십 리 길 나선 엄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 넘어간다
이리저리 해종일 보내다가
산그림자 길게 내려오면
엄마는 보따리 이고 지고
험준한 고갯길 넘느라
작은 키가 더 작아진다
바다가 없는 산골 마을
저녁 밥상에 노릇노릇 구워 놓은
고등어 한 마리에
여섯 식구 얼굴들이
달빛처럼 환해진다
▲ 어머니가 장날에 사온 고등어 한 마리, 어아들 얼굴엔 웃음 한가득(그림 유주연 작가)
우리나라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기 이전 온 나라 곳곳에는 닷새마다 ‘오일장’이라는 장이 열렸다. 인천 강화군에 에 ‘강화풍물시장(매 2, 7일)’이 서고, 경기 화성에 발안만세시장(매 5, 10일),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시장(매 2, 7일), 전남 순천 ‘웃장(매 5, 10일), 경남 함야 ’함양토종약초시장(매 5, 10일) 등이 현재도 열리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조 때 펴낸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770년대 당시의 전국 장시의 수를 1,064개로 헤아리고 있고,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는 1,057개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서 오일장이 운영 중인데 김동리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이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은 소설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보부상들은 오일장을 돌며 물품을 팔았다. 보부상은 값이 비싸지만 들고 다니기 쉬운 방물과 같은 물건을 팔던 봇짐장수와 소금ㆍ미역ㆍ생선과 같이 무게가 나가는 물품을 팔던 등짐장수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보부상을 오일장을 오가며 장사를 한다고 하여 ’장돌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장터에는 좌판을 열 수 있는 넓은 마당뿐 아니라 숙식하거나 장꾼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국밥과 같은 음식을 파는 주막이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오일장 가운데 송파장, 양주장, 칠패장 같은 곳에는 송파산대놀이나 양주별산대놀이가 열려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은 물론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 김미숙 시인의 <장날>이란 시에도 우리의 어머니는 새벽밥 지어 놓고 십 리 길 나섰다. 어머니는 장에 내놓을 푸성귀들을 짊어지고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를 넘어간다. 그렇게 장터에서 하루를 부대끼던 어머니는 달빛처럼 환해질 여섯 식구 얼굴들을 생각하며. 고등어 한 마리를 사 들고 다시 재를 올랐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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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에 제가 글을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뵙게되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회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며 시인님의 방입니다
아무도 간섭 안합니다.
비록 답글이 인색하더라도 나만의 공간이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시인의 작품으로만 알게 된 지 수년만에 뵙게 된 것이 억겁의 인연입니다.
저물어가는 길에 문학인이라는 동반자로 오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옛날에는 그랬지요
이십리 길을 걸어서 장을 볼 때 이지요
생선이라도 한 마리 사오면 아버지 가운데 토막 주고 대가리 꽁무니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