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공화국 E세대들] 공부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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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공공화국 E세대들] 공부 권하는 사회

기사입력 2008-11-04 09:41 

커리어 컨설턴트 양성과정 수업 중인 석용승 강사. / 서울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 커리어 컨설턴트 양성과정 수업을 듣고 있는 여성 직장인들.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나이 불문, 직업 불문, 지위 불문 공부…공부… 또 공부!

2008년 대한민국은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의 은어)’ 중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직업 유무에 관계없이, 뚜렷한 목표가 있든 없든 ‘(무언가를) 배우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취업·경력포털 스카우트와 공모전 전문미디어 씽굿이 20대 이상 성인 684명을 대상으로 ‘지식정보 활용 스타일’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지식정보를 머리에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절실했던 순간은?”이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0.8%가 “아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라고 응답했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옛말이 현대인에게도 고스란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신학습족(族)’ 혹은 ‘E(Education)세대’의 출현이라고 할 만하다.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뜻의 평생학습은 이미 ‘돈 되는 사업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앞다퉈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하는가 하면 구매력 있는 직장인의 향학열을 노린 수익모델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해야 하는 게 대세라지만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이대로 휩쓸려가도 괜찮은 걸까? 혹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없을까? 배움에 임하기 전 어떤 자세를 갖는 게 현명할까?’…. E세대의 등장을 둘러싸고 제기될 법한 다양한 화두(話頭)들을 정리했다.

‘커리어 컨설턴트 양성과정’ 참관해보니

공무원·회사원… 환갑의 수강생…

“업무에 도움” 저녁도 거르고 주경야독

지난 10월 14일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강북구 수유동 소재). 고등학교 교실 하나만한 강당에 여성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 주 2회 진행되는 ‘커리어 컨설턴트 양성과정’ 수업이 있었다. 총 14명의 수강생 중 참석자는 11명. 이들이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필기구를 꺼내는 사이, 단상에 오른 강사 석용승씨는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가로세로 선을 엇갈리게 긋고 능숙한 솜씨로 공백에 숫자와 문자들을 채워 넣었다.

“우리나라에 커리어 컨설팅(career consulting)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80년대 들어서입니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요즘은 기업 인사 업무 중 특히 퇴직자나 퇴직예정자 관리 분야의 비중이 크게 느는 추세입니다. 몸은 비록 떠나지만 전 직장에 우호적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일종의 ‘친구집단(peer group)’을 만들려는 노력이에요.” 강사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했다.

숨죽인 1교시가 끝나고 돌아온 10분간의 휴식시간,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수강생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환갑이 된 진남희씨였다. 진씨의 현재 소속은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지난해 1년짜리 계약제 직원으로 고용돼 직업진로팀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고교생부터 직업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심리검사와 직업선호도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직업상담사가 배치돼 있긴 하지만 상담 인력이 충분한 건 아니거든요. 여기에 근무하며 커리어 컨설팅을 배우면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어렵게 찾아 등록했습니다.”

수업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9월 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주 2회 하루 3시간씩 총 69시간의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단순 강의 형태도 있지만 심리검사와 직무분석 등 실습 프로그램도 있다. 평일 밤 시간(19~22시)을 활용하기 때문에 수업이 있는 날은 저녁도 거르기 일쑤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면 어느덧 시계는 밤 11시를 훌쩍 넘어간다. 그러나 진씨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수업 수준이 높아 따라가기 버거울 때도 있지만 업무와 연계되는 공부라 재미있습니다. 과정을 수료한 후 직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도 느끼고요.”

이 수업의 수강생들은 저마다 ‘본업’이 따로 있다. 구청 취업정보은행, 고용지원센터 취업 담당, 종합사회복지관, 세무사 사무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커리어 컨설팅이 이들의 업무수행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줄 거란 사실이다. 차현주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은 “노동부 지원사업의 경우 출석률이 80% 이상 돼야 수강료의 80%를 환급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수강생의 학업의지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학습에 대한 현대인의 열망은 기업 인사업무의 트렌드 변화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인사업무는 크게 인적자원관리(HRM·Human Resource Management)와 인적자원개발(HRD·Human Resource Development)로 나뉜다. 그런데 최근 기업의 주된 화두는 단연 후자 쪽이다. 조형래 스카우트 이사는 “요즘은 중소기업도 복리후생 중 직원교육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며 “최근 구직자들이 기업에 가장 원하는 것도 교육을 통한 자기계발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교과부, 평생학습에 전체 예산의 7%인 3808억 지원

노동부, 온·오프라인 통해 직업능력개발사업 진행

‘교육’은 정부 차원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10월 2일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도 재정규모를 확정·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평생학습사회 기반 구축 및 직업능력 제고 지원’ 명목으로 배정된 예산은 전년도보다 258억원 늘어난 3808억원이다. 전체 예산(45조5896억원)의 7.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노동부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폴리텍대학, 한국기술교육대학 등과 손잡고 근로자와 사업자, 실업자의 능력개발을 돕는 일명 ‘직업능력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근로자가 직무교육이나 외국어교육 과정을 수료하면 수강료를 환급해주는 근로자 수강지원금 제도, 대학에 진학한 직장인에게 학비를 낮은 이자로 빌려주는 근로자 학자금 대부 제도, 고용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훈련기회를 제공하면 해당 근로자의 인건비와 훈련비를 지원하는 유급휴가 제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서울 강남의 한 어학원에서 퇴근 후 원어민 강사에게 1대 1 영어수업을 받고 있는 직장인./한 시립도서관이 마련한 평생학습강좌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는 수강생들.

온라인에서 도움받는 방법도 있다. 노동부가 한국고용정보원과 함께 운영하는 HRD-net(www.hrd.go.kr)에 접속하면 구직자와 재직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검색, 이용할 수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직업능력개발사업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면 직업능력개발사업 홍보 블로그(blog.naver.com/upgrade_u)를 참조하면 된다.

자치단체도

주민 위한 교육콘텐츠 개발에 팔 걷어붙여

대학과 손잡고 개설한 시민자치대학도 호응

최근엔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을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에 한창이다. 지난 10월 11일 끝난 ‘제8회 전국 주민자치 박람회’에서 경기 구리시 교문2동 주민자치센터가 프로그램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센터 측은 ‘평생교육의 실천, 그 중심에 교문2동 주민자치센터가 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업 및 취업기반 조성강좌’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열린교실’ ‘성인 문해교실’ 등 다양한 주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해 왔다.

서울 서대문구는 연세대·이화여대 등 관내 대학과 연계한 시민자치대학 등을 개설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05년부터 연세대 행정대학원과 손잡고 운영 중인 시민자치대학이 대표적인 예. 주 1회 오후 시간을 활용해 각계 저명인사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진행 중인 4기의 경우 접수 마감일도 되기 전 모집정원 250명이 다 차서 조기 마감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구청 측은 지난 10월 15일 홍제3동, 홍은1동 주민센터와 서울여자간호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제3기 홍은·홍제 권역 주민건강대학’도 시작했다.

지난 10월 13일엔 서울 구로구가 평생교육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주민과 주민자치위원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평생교육 지역리더 양성과정’을 신설한 것. 이를 위해 구청은 숭실대, 한국지방발전교육연구소와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위탁협약을 체결했다. 약 1개월간 주 2회 진행되는 과정 수료자 중 평생교육사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주민에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입학 시 등록금 할인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교육과 실습을 연계해 프로그램의 실용성을 꾀한 것이다.

대학도

부설 평생교육원만 전국 375개… 지역평생학습 거점

숭실대·숙명여대 연구소 개설, 중앙대는 전문대학원 운영

각 대학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은 이미 지역사회의 대표적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교과부가 내년도 예산 배정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학 평생교육원을 지역평생학습 거점기관으로 육성하기 위해 일정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힐 만큼 평생교육에 공헌해온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1986년 이화여대가 국내 최초로 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을 설립한 이후 대학 평생교육원은 양적·질적으로 급격하게 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10월 교과부가 한국교육개발원과 함께 전국 2221개 평생교육시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7 평생교육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 부설 평생교육원과 평생학습관은 375개였다. 이 보고서는 “시·도교육청 산하 평생교육시설이 1532개(69%)로 가장 많지만 대부분이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돼 있는 데 반해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은 전국적으로 균형있게 분포돼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평생교육원을 부설기관으로 두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평생학습을 정규과정에까지 도입하는 대학도 생기고 있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시와 함께 ‘평생학습중심대학’을 운영하기로 한 순천향대가 그런 경우다. 순천향대는 이미 학교 내에 평생교육학부를 신설하는 한편, 학위과정과 비학위과정을 구분해 수강생 모집에 나섰다. 개설이 예정된 프로그램은 ‘디스플레이 산업기초 과정’ ‘스파테라피(spa therapy) 과정’ ‘농촌체험 학습전문가 과정’ 등. 수강 자격은 아산시에 거주하는 26세 이상 남녀로 수강자에겐 최대 30만원까지 학비가 지원된다.

인적자원개발을 역점 사업으로 정해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한 대학도 있다. 숭실대가 2005년 한국평생교육&HRD연구소를 설립한 데 이어 숙명여대는 2006년부터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과 여성HRD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같은 해 중앙대는 국내 최초 인적자원개발 전문대학원인 중앙대 글로벌HRD대학원을 개설했다.

인터넷도

사이버대학 수강생 7년 만에 11배로… 사이버MBA도 인기

영어회화·자기계발 등 주제별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

교육에 목말라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는 E세대에게 온라인 공간은 구세주 같은 존재다. 평생교육 분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어학(2007년 10월 현재 6551개 11.3%, 2007 평생교육통계조사)은 물론, 각종 자격증 획득과 자기계발, 학·석사 학위까지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첫 등장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사이버대학이 대표적 사례다. 사이버대는 인터넷 강의 수강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위를 딸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학기 등록금이 100만원 내외로 4년제 일반대학의 3분의 1 수준이다. 사이버대 수강생은 2001년 6400명에서 6년 만인 2007년 10배 규모인 6만7636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7만4806명으로 또 다시 급증했다. 현재 국내에 운영 중인 사이버대학은 모두 17개다(4년제 15개, 2년제 2개).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2007 서울평생학습축제’ 행사장에서 시민들이 대형 책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5월 강릉시가 평생학습도시사업의 일환으로 개관한 ‘성덕반딧불 도서관’에서 책읽는 어린이들. photo 조선일보 DB

사이버 MBA(경영학석사)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자체 사이버 MBA를 운영하는 대학으로는 성균관대, 아주대, 한국외대, 서강대 등이 있다. 온라인 교육업체 휴넷의 ‘온라인 MBA’, 크레듀와 성균관대가 제휴한 ‘Value MBA’, ‘중앙일보 사이버 MBA’, 서울아트스쿨 문화예술원의 ‘문화마케팅 MBA’, EBS와 경영교육업체 ‘매니저 소사이어티’가 공동 운영하는 ‘EBS-MS MBA’ 등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많다.

휴넷 온라인 MBA의 경우 첫 수강생을 모집한 2003년 이후 참가자 수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2003년 559명이었던 수강생은 지난해 1241명으로 두 배가 넘게 늘었다. 올해 예상치는 1875명. 6년간 누적 수강생은 6000명에 이른다. 휴넷에서 100학점 이상의 과정을 이수한 회원에게 주어지는 특혜 ‘골드클래스’ 회원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01년 161명으로 출발한 골드클래스 회원은 2008년 10월 현재 5196명. 무려 32배나 몸집이 커졌다. <그래픽 참조>

E세대에겐 온라인 커뮤니티도 훌륭한 정보 교류의 장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선 1만5000명에 육박하는 회원 수를 자랑하는 직장인 영어회화 커뮤니티 ‘퇴근 후 영어 광내기(cafe.naver.com/golssyenglish)’를 비롯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교육(cafe.naver.com/cspeople)’ ‘HRD를 실행하는 사람들(cafe.naver.com/madangsos)’ 등의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또 다른 포털사이트 다음에도 ‘공부하는 커뮤니티’는 꽤 많다. ‘지식콘서트 사람들(cafe.daum.net/ylv)’ ‘성공하는 자기관리(cafe.daum.net/success)’ ‘프랭클린 플래너 유저들의 모임(cafe.daum.net/fpuser)’ 등이 유명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E세대의 교류는 일반적인 인터넷의 특성과 달리 폐쇄적인 게 특징이다. ‘퇴근 후 영어 광내기’는 가입 자격을 ‘1970~1985년 출생자’로 제한하고 있다. ‘끌리는 여성들의 자기계발(cafe.naver.com/habbits)’은 여성만 가입이 가능하다. 신뢰할 만한 ‘공부친구’ 모집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걸로 유명한 커뮤니티 ‘이화이언(www.ewhaian.com)’은 이화여대 재학생과 동문에게만 회원 아이디를 부여한다. ‘선후배나 동기’란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사이트 내 ‘스터디룸’엔 게시자의 실명은 물론,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된다.

E세대의 고민과 문제

“배운 만큼 대접 받겠다”… 취업 눈높이만 높아져

 목적 없는 과도한 학습 집착은 강박증 부를 수도

조형래 이사는 얼마 전 경기 성남시청이 마련한 관내 전문계 고교생 교육에 강사로 나섰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전문계 고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인 만큼 당연히 수업의 초점은 ‘취업’이었다. 그런데 정작 수강생들의 고민은 엉뚱하게도 ‘대학 진학’이었다. “고교과정에서 특화된 교육으로 전문성을 익힌 후 곧바로 취업할 수 있게 하자는 게 전문계 고교의 설립 취지인데 학생들 대부분이 취업보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더라고요.” 배움을 향한 의지가 오히려 전문계 고교와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9년째 강북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근무해온 차현주 관장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여성의 생계형 취업이 크게 늘어 대부분의 여성 구직자가 소정의 교육을 수료하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수강생의 학력이 올라가면서 교육과 취업에 대한 기대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어요. 좀 더 많이 배우면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들을 하는 거죠. 단기과정보다 3개월 이상의 전문자격교육이 훨씬 인기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는 “구직자들이 자기 경력을 디자인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과연 고용자 측에서도 각종 교육으로 무장한 구직자를 무조건 반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을 위한 각종 전문대학원이 난립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를 야기한다. 직장인 최지영(가명·27)씨는 지난해 큰맘 먹고 등록했던 K대학 언론홍보대학원을 이번 학기엔 휴학하기로 했다. 400만원을 훌쩍 넘기는 학비를 내고 퇴근시간에 상사 눈치를 보며 학교로 달려가는 것까진 견딜 만했지만 막상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동기생 중 상당수는 ‘가방끈’을 늘리고 자신의 ‘스펙(specification)’을 화려하게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4교시 수업 후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자리(일명 ‘5교시’)도 그에겐 고역이었다. 빠지자니 어렵게 사귄 동기생들과의 인맥이 끊어질까 두렵고 참석하자니 체력이 달렸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생활로 소진되는 느낌이어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와보니 학교도, 학생들도 ‘공부’가 목적이기보다는 프로필을 한 줄 더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더라고요. 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야간과정으로 운영되는 전문대학원 제도 중 상당수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직장인과 새로운 수익 창출에 목말라 하는 대학 사이에 성립되는 일종의 ‘거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직장에 다니며 공부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목표를 세운 후 복학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자칫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뭐든 배우면 도움이 되겠지’ ‘배워놓지 않으면 앞서갈 수 없어’란 생각으로 교육에 매달리면 강박과 불안을 동반한 심리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걸 배우는 행위 자체가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다른 목표를 향한 수단이나 계기가 되면 곤란합니다. 늘 더 새로운 것, 더 어려운 것만 추구하다 보면 정작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놓치기 십상이죠. 그런 증상이 심해지면 책을 덮고 인터넷 검색을 중단하는 순간 불안과 몰입,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해법은 뭔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이왕 하는 공부, 기회로 만들라

불필요한 지식은 버리자… 내게 진짜 필요한 공부에 집중하라

조영탁 휴넷 대표는 요즘 한창 ‘성공스쿨’이란 신규사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성공스쿨은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성공요인을 분석, 이를 콘텐츠로 가공해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는 성공스쿨의 슬로건을 내내 고민하다가 최근에야 “학습하는 즐거움을 누려라!”라고 확정했다.

“처음엔 ‘평생학습을 즐겨라!’로 할까 했어요. 그런데 습관적으로 쓰는 ‘평생학습’의 의미를 한번 제대로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앨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곧 쓸모가 없어지는 무용지식(obsoledge)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한 스트레스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타고난 배경과 학벌만 있으면 안락한 삶이 보장됐던 예전과 달리 이젠 누구나 똑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니까요. 어차피 할 공부라면 어쩔 수 없이 밀려 다니기보다는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손석한 원장은 배움의 자세에서 제일 중요한 게 ‘가지치기’라고 말했다. “세상에 배울 게 얼마나 많습니까. 어차피 평생 공부해도 그걸 다 익힐 순 없죠. 그렇다면 중요한 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가 뭔지 파악하는 것, 핵심을 비껴나는 주제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려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완벽주의를 버려야 해요. 늘 모든 걸 잘할 순 없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는 열린 마음으로 임한다면 E세대가 겪을 수 있는 혼란과 고통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습니다.”

/ 최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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