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공개되었던 머틀리 크루의 7번째 풀 렝쓰 앨범.
닥터 필 굿 앨범 이후 탈퇴했던 빈스 닐이 극적으로 돌아와 만들어진 작품으로 앨범이 처음 공개되었을땐 많은 팬들로부터 폭발
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한동안 머틀리 크루를 한물간 왕년의 챔피언으로 홀대했던 일렉트라 레이블의 총수 '실비아 론'은 거액을
투자하여 97년 1월 American Music Award에서 머틀리 크루가 shout at the devil 97을 연주할수 있게 해주었다.
97년 6월 24일 공개되었던 제네레이션 스와인 앨범은 앨범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차트 4위에 등극하였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50만장을 팔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급추락하며 존 코라비 시절과 별 다를바 없는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리유니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빨이 먹히지 않는 이 사태에 대하여 머틀리 크루측은 사장이 돈되는 R&B쪽만 신경쓰고 자신
들의 홍보는 별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했지만 전술했다시피 이 시기에 실비아 론은 머틀리 크루에게 많이 신경을 썼다.
문제는 머틀리 크루와 제네레이션 앨범에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심지어 밴드의 멤버중 몇 명 까지도.....
빈스 닐이 돌아오기 이전부터 머틀리 크루 내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오랜 시간 동안 똥을 닦아주던 매니저 독 맥기가 경질되었고 새로운 매니저 Allen Kovac가 기용되었으며
프로듀서 밥 락과도 역시 결별하였다. 결별이유는 당시 메탈리카의 성공으로 그렇지 않아도 높았던 명성이 너무 높아져버린
밥 락의 인건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듀서는 니키 식스와 타미 리, 그리고 당시로서는 프로듀서 경험이 전무했던
키보디스트 혹은 프로그래머였던 Scott Humphrey가 기용되었다.
이 사람은 이후 그 유명한 롭 좀비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데 그가 처음으로 프로듀싱에 참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제네레이션 스와인부터였다. 제네레이션 스와인 전에 스캇은 나인 인치 네일즈의 싱글 Closer의 리믹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인더스트리얼과 테크노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니키 식스와 타미 리에게 많이 어필했던것 같다.
앨범 전반을 을씨년스럽게 감싸고 도는 테크노적인 분위기는 바로 이 스캇의 신디사이저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하여 연출되는
것이다. 앨범을 만들어가는 내내 스캇과 니키 식스는 크게 다투었고 믹 마즈같은 경우는 스캇이 머틀리 크루를 말아먹고 있다고
고소까지 하기 이르렀다. 타미 리 같은 경우는 스캇의 이러한 테크노 매직에 제법 흥미가 동했는지 머틀리 크루를 탈퇴한 이후로
그와 손을 잡고 솔로 활동, method of mayhem을 같이 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머틀리 크루의 내부에 있는 경혈을 찔러 내부로부터의 충격을 초래한 북두강장파같은 놈이라 할 수 있겠다.
스캇의 참여는 타미 리의 머틀리 크루 탈퇴를 초래하였고 그로 인하여 머틀리 크루의 영광은 더더욱 현실과 멀어지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이르러~~
머틀리 크루를 둘러싼 일렉트라 레이블 고위급 간부들은 한 바탕 긴급 회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한때는 레이블의 간판 스타였고 떼돈을 벌어다주던 머틀리 크루가 전혀 약빨이 먹히지 않고 애물단지로 전락하자 레이블 측에선
이 사태를 계속해서 두고볼순 없었던 것이었다.
워너 브라더스의 총수였던 덕 모리스는 머틀리 크루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존 코라비를 자르고 빈스 닐과 다시 하길 바란다.
존 코라비 그 녀석은 스타성이 없어.'
하지만 이 시기에 니키 식스와 타미 리는 빈스 닐과 다시 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니키와 타미는 이 시기까지만 해도 존 코라비와 하는 것을 상당히 즐거워했다.
원래 Personality #9으로 약정되어있던 머틀리 크루의 신보는 밥 락과 함께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 앨범의 레코딩은 전작 셀프 타이틀 앨범보다 더욱 공격적이고 강력한 락킹한 앨범이었다고 한다.
존 코라비의 말에 의하면 그 시절에 머틀리 크루는 녹음을 하고 나면 존나게 꼴려버린 성기를 진정시키느라 스튜디오를 한 바퀴
돌 정도로 익싸이팅한 음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밥 락에서 스캇 험프리로 교체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타미 리 하나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은 스캇 험프리와 항상 다투었다.
특히 믹 마즈는 그동안 밴드 내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사운드의 비중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짜증이 이빠이 나기 시작했으며
존 코라비 역시 스캇 험프리가 요구하는 신세대적인 감성(인더스트리얼과 테크노적인)으로의 전환을 도무지 수용할수 없었다.
녹음이 계속 진행되면서 머틀리 크루는 윗 선으로부터 빈스 닐과의 리유니온에 대한 압박을 계속 받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앨범의 레코딩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며 스트레스만 잔뜩 받던 존 코라비는 결국 탈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머틀리 크루의 멤버로서 활동한 것에 대하여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한편 이 순간 빈스 닐은 솔로 앨범 두 장을 공개하며 나름대로 솔로 커리어를 구축하느라 분주하였다.
빈스 닐 역시 머틀리 크루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판매고에 허덕이고 있었고 또한 그는 이 무렵 사랑하는 딸을
하늘로 먼저 보내는 괴로운 나날(빈스 닐의 두번째 솔로 앨범 Carved in Stone에 있는 Skylar's Song은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과는 달리 빈스 닐이 혼자 프로듀싱한 곡으로 자신의 딸인 skylar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있다.)을 보내
고 있었다.
처음에 빈스 닐 역시 머틀리 크루와의 리유니온에 별로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았지만 새로운 매니저 알렌 코벡의 현란한 말빨에
현혹되어 결국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니키 식스, 타미 리와의 간략한 만남을 가지고 빈스 닐은 다시 머틀리 크루로 돌아오게 되었다.
빈스가 돌아오면서 앨범 타이틀이 Generation Swine으로 변경되었다.
앨범의 거의 모든 곡들은 존 코라비 시절 쓰여진 곡들로 빈스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목소리인 코라비의 보컬을 자신의 키와 톤에
맞추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앨범은 완성되었지만 준엄한 팬들의 심판은 냉정하게 가해졌고 80년대의 영광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이 앨범은 당시 주류였던 일렉트로닉(즉 인더스트리얼과 테크노)과 얼터너티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앨범으로
너무나도 과도하게 실험적인 사운드로 욕 뒤지게 처먹었다.
그 시절의 평론가들은 머틀리 크루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드디어 미쳤다고 입을 모으며 이 앨범을 혹평했다.
팬들 역시 이 앨범을 듣고 다시는 머틀리 크루를 듣지 않겠다고 이별을 선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밥 락이 계속 프로듀싱을 한 상태에서 빈스 닐이 자연스럽게 밴드에 들어와서 뉴 태투 정도의 사운드만 들려주었어도 어느 정도
팔렸을텐데~~ 그 시기에 니키 식스와 타미 리가 진짜 확실히 정신이 나갔던것같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신청도 거의 받은 적이 없고~~ afraid나 shout at the devil 97같은 경우는 몇 번 신청받은적 있긴 하지만~~
차마 머틀리 크루의 곡이라 할만한 것들이 단 하나도 없다.
고로 한 곡씩 치밀하게 파헤치는 소돔 특유의 전법은 하지 않겠다.
이 앨범에서 그런걸 하면 욕밖에 할 게 없다.
머틀리 크루의 앨범에 대해 이곡은 이래서 좆같고 이곡은 또 이래서 좆같고 이런 말은 차마 하고 싶지 않다.
고로 그냥 넘어간다.
첫댓글 Born to lose, lived to win~!!
흑역사~~~*^^
낫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