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섯 살인 김주영군은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을 앓아 엄마와 눈도 맞추지 않을 뿐 아니라 말도 안하고 웃지도 않았다.
놀이방에 가서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만 놀았다. 그러던 아이가 3개월 동안 음악 치료를 받고 나서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게다가 요즘에는 ‘엄마’ ‘아빠’라는 말도 하고 ‘짝자꿍’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일명 ‘뮤직세라피’라 불리는 음악 치료는 사람의 몸과 정신에 음악으로 자극을 주어 치매로 기억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하고 중풍이나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신체 기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 방법이다.
이런 음악 치료에는 단순히 감상만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악보나 가사를 읽고,
작곡과 같은 창작 활동을 하는 등의 다양한 음악 활동이 포함된다. 즉 환자 스스로 즉흥 연주를 하도록 해서 자신의 문제를
재인식하게 하거나, 음악치료사와 함께 즉흥 연주를 하게 하거나, 치료사가 연주를 통해 환자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분야지만 음악 요법이 질병 치료에 도입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고대 이집트 문헌을 보면 음악을
정신 요법에 이용한 기록이 있고 구약 성서에도 사울왕의 우울증을 다윗이 하프 연주로 치료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음악 치료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어 효과를 거둔 것이
계기다. 그후 미국의 캔자스대학에 처음 전공학과가 개설되었고, 현재 미국에서만 5천여 명의 음악치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음악 치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음악 치료를 도입한 병원들이 속속 생겨나고, 올해부터 숙명여대와
이화여대 대학원에 음악치료학 석사 과정이 개설되어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다. 음악 치료를 임상 분야에 활발하게 적용해온
인제의대 신경정신과 정영조 교수는 “환자와 친밀한 관계 형성에 음악은 큰 촉매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환자의 사고 행동 감정
등을 관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유광 박사도 “인간적인 감정들을 솔직히 표출하는 데 재즈가 가장 효과적인 매체”라며 환자와의 면담 치료 때
조용한 재즈 음악을 틀어놓는다. 젊은 환자들이 오면 케니 지나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곡을 틀고, 남편의 외도나 배신 등 결혼 문제를
호소해오는 주부들에게 빌리 헐러데이의 ‘당신을 원하다니 내가 어리석었지’ 같은 처연한 곡을 틀고 상담을 시작하면 대부분 마음을
열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응한다고 한다.
이처럼 음악 치료는 사람과 접촉을 피하고 말문을 열지 않는 환자들과의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오랫동안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만성 질환 환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종합병원의 모든 영역이 치료 대상
일반적으로 음악 치료라고 하면 신경과나 정신과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종합 병원의 모든 영역이 치료 대상이다.
교통사고나 뇌 질환으로 재활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효과를 발휘하는가 하면 정신분열증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의 증상을
호전시키고 뇌성마비 지체 장애 경련성 질환 환자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암 환자의 경우 환자의 투병 의지를 높여주고 약물이나 방사선 치료의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음악 치료가 담당하기도 한다.
통증이나 마비를 느끼는 신체의 특정 부위에 음악으로 직접 자극을 줌으로써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다. 걸음이 불편한 중풍 환자가
음악을 이용해서 리듬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발 운동을 하면서 걷는 능력을 회복할 수도 있다. 또 혼수 상태에 빠진 중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듯 음악 치료가 폭넓게 적용되고 있지만 병에 걸린 환자가 다른 치료는 받지 않고 음악 치료만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음악 치료는
음악을 도구로 하여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는 환자가 빨리 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질병 자체를 낫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은 들었을 때 긴장이 풀리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음악이 있는 반면 흥분을 고조시키고 활동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있다. 전자의
음악을 들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과 맥박이 느려지고 근육이 이완되는 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혈압이 상승하고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며 근육 수축을 가져온다. 따라서 이 두가지 음악을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히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 치료 방법은 이미 작곡되어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수동적인 방법과 환자가 직접 악기를 가지고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능동적인
방법, 음악치료사가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거나 환자 스스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능동수동적 방법 등이 있다. 모든 종류의
악기가 사용 가능하다. 피아노 오르간 전자 오르간 아코디온 기타 하모니카 클라리넷 트라이앵글 북 드럼 종 방울 꽹과리 등.
음악도 클래식뿐 아니라 동요 민요 가요 팝 재즈 등 장르에 상관없이 아주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록이나 랩 등 정신 상태를
흥분시키는 음악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한 음악만 계속해서 듣기보다는 여러 음악을 바꿔가며 듣는 것이 좋다. 악기와 음악을 선택할 때
는 환자 상태에 따라 달리 해야 한다. 같은 질병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나이나 문화적 환경, 음악 선호도 등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언어청각임상센터의 김군자씨는 “경련성 뇌성마비 환자의 경우에는 활기차고 딱딱 끊어지는 음악을 들려주고, 경직성
뇌성마비 환자는 리드미컬하면서 흐르는 듯한 음악을 감상시키는데 치료용으로 만든 곡을 사용하거나 즉흥 연주하는 것이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한다.
음악 치료를 받기 위해서 음악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음악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해
반응하고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누구나 음악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어떤 상태의 환자에게는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음악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므로 환자 자신이 좋아하거나 즐겨듣던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음악 건강법
감미로운 음악은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특히 클래식은 심신의 긴장과 피로를 덜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요즈음 시중에는 음악의 정신치료적 효과를 이용한 스트레스 해소용 음반들이 많이 나와있다. 고양시
화정동에 사는 정미숙씨(32)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할 때 음악치료용 음반을 듣는데 한동안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밝아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음악치료사들에 의하면 음악 치료는 음악 감상과 악기 연주를 포함하는 활동이지만 가벼운 증상의 주부 우울증 정도는
음악 감상만으로도 괜찮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악을 소개한다.
⊙ 피로가 누적되었을 때
육체적인 피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금방 풀리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근육 피로에 마사지가 효과적이듯 정신적인 피로에도 음악으로 마사지를 해주면 좋다.
-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비롯, 베토벤의 <
웰링턴의 승리>, 하이든의 <현악 4중주>, 바그너의 <탄호이저> 중 ‘순례자들의 합창’,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루빈스타인의 <멜로디 F장조>,
파데레프스키의 <미뉴에트 G장조> 등이 효과가 있다.
⊙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뚜렷한 증세가 없다는 이유로 자칫 무시하고 넘어가기 쉬운 스트레스. 이것이 오래 누적되면 각종 질병을 초래한다.
평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베르디의 <아이다> 중 ‘개선 행진곡’,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 d단조>,
바흐의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등이 효과적이다.
⊙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불안하거나 초조하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는 음악을 들으면 좋다.
- 바흐의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2악장>이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헨델의 <오르간 협주곡 13번>, 바흐의 <마태 수난곡> 등이 대표적.
⊙ 편두통으로 고생할 때
머리가 욱신욱신 쑤시고 아플 때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거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악을 듣는다.
-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바흐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3번 d장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등이 효과가 있다.
⊙ 밤에 잠이 안올 때
잠이 오지 않는 밤은 괴롭다. 또 그런 경우에는 피로의 누적으로 질병을 유발한다.
쇼팽의 <야상곡>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슬픔은 일의 의욕과 삶의 의지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슬픔이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슬픔을 딛고 더욱 강인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6번 d장조>,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5번 f장조> 등이 좋다.
⊙ 혈압을 내리게 하는 음악
흥분하거나 화를 자주 내면 혈압이 오른다. 혈압을 낮추는 길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진정하는 것이다.
-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아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 위장 장애를 극복하는 음악
위는 신체 내에서 정신의 영향을 가장 받기 쉬운 기관인데, 하루 종일 긴장을 강요당하는 생활이 계속되면
제일 먼저 위장에 장애가 일어난다. 위장 장애는 주로 만성적으로 나타나므로 마음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이때 실내악이 가장 좋은 음악인데,
- 슈베트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를 들으면 위장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
⊙ 우울증을 해소하는 음악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경우가 있다. 기분이 울적하고 만사 의욕이 없으며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증을 가져오고, 식욕 부진 소화 불량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 베르디의 <리골레토 서곡>,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비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하이든의 교향곡 94번 <놀람>, 베토벤의 <교향곡 8번 f장조> 등이 우울증 해소에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