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낙안읍성- [2013.09.11. 금강일보]

[정승열]

문화

<정승열의 힐링여행> (6) 순천 낙안읍성 - 시간이 멈춘듯 ··· 옛 선조들의 숨결 고스란히
고려 후기 왜구 참입 막기 위해 태조 6년 김빈길이 흙으로 쌓은 성 인조 4년 임경업이 해자·옹성 중수 민가·관아 등 전통문화유적 한눈에

데스크승인 [ 12면 ] 2013.09.11

정승열 | chungsyl@paran.com

어느 해보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도 9월이 되자 날씨가 한결 누그러졌다. 우리 사회가 서구화 문물이 밀려오고 산업화 되면서 해가 갈수록 전통명절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고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조상 전래의 추석이 돌아오고 있다.

사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다고 하지만 밤늦도록 뛰놀던 고향마을의 골목길도,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고향집도, 굽이쳐 흐르는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모습도 모두 사라지고 국적 불명의 마을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끼기는 어려운데, 이럴 때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을 찾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원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낙안읍성은 1983년 6월 14일 국내 최초로 성과 마을이 함께 사적지로 지정된 민속마을인데(사적 제302호), 조선 성종 때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전국에 179개의 읍성이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낙안읍성이 유일하다. 전북 고창읍성과 충남 해미읍성이 보존 혹은 복원되었어도 성 안에 주민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은 낙안읍성이 유일하고, 또 충남 아산시 외암리 민속마을에도 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지만, 낙안읍성은 순수한 민가 이외에 관아 등 읍성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임경업 송덕비각.

 고려 말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왜구가 남해안을 자주 침범했는데,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 이곳 출신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읍성을 처음 쌓았다고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424년 9월부터 넓은 평지에 1~ 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으로 높이 4m, 너비 3~4m 규모로 총 둘레 1410m의 석성을 쌓으면서 성읍마을을 원래보다 넓히면서 □자 모양을 이뤘는데, 약6만 8000여 평의 성 안에는 우물 2개·연못 2개가 있었으나 지금처럼 성 밖에 깊은 인공개울인 해자(垓字)도,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壅城)도 없었다고 한다.

임경업 송덕비.

그러나 인조 4년(1626) 먼 훗날 장군이 된 임경업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해자와 옹성 등을 현재처럼 중수했고, 현재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옹성은 남·서문 터에서만 볼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 승주나들목을 빠져나와 857번 지방도를 약20분 달리면 낙안읍성인데, 순천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22㎞쯤 떨어져 있는 낙안읍성에서 승주 선암사까지 25km거리이다. 읍성 앞의 넓은 주차장은 무료이고, 주차장 부근에는 숙박업소와 음식점이 즐비하지만 성 안에도 민박집이 수두룩하다.
입장료는 어른이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인데, 금전산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낙안읍성 주민들은 농작물 수확만으로도 생활이 풍족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도 산에 금 광산이 있어서 상거래가 활발했다고 한다.

지금도 성안에 주민 120세대 288명이 살고 있는 읍성의 정문인 쌍청루(雙淸樓=남문)로 들어가려면, 좁은 해자 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서 옹벽을 안고 돌아야 한다. 해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지에 쌓은 성이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천연 혹은 인공 물길을 만들어서 쉽게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옹성은 적으로부터 성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성벽을 성문 앞에 덧쌓은 것이다.

조선시대 민가 풍경.

관광객들은 낙풍루에서 동헌이 있는 곳까지 걸으면서 양쪽에 늘어선 전통 한옥으로 지은 가게 난전(亂廛)에서 장거리 국수며 국밥 등 토속음식은 물론 기념품을 살 수 있는데, 최근 TV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나 제주 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 마을이 아닌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서 더욱 친근감이 넘친다.
 남문인 쌍청루를 비롯하여 1536년(중종 31)에 지은 객사, 동헌, 내아(內衙)등 관아 6동과 낙민루(樂民樓=읍성 안의 정자), 낙풍루(樂豊樓=동문), 서문(樂秋門), 임경업 군수 비각 등 누각 4동 등 이외에 전통 초가집 192채, 기와집 3채와 근래에 지은 슬레이트 집 31채, 함석집 5채 등 민가 231채와 미술관, 자료관, 민속실 등이 있다.
 관광객들은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조선시대의 살아있는 읍성으로 돌아가듯 옛 생활을 실감하게 되는데, 특히 남부 지방의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 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어렸을 적에 동네친구들과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공예 체험모습(왼쪽)과 낙안읍성 정문 낙풍루.

 낙안읍성은 민속 고유의 전통마을로서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읍성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려면 성의 정문인 낙풍루에 올라서 성벽을 따라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또, 동헌 앞마당에서 옥사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짚물공예, 국악 판소리, 가야금병창, 길쌈공예, 서당, 대장간 체험 등을 무료로 할 수 있고, 목공예, 한지공예, 도자기 공예, 전통악기와 천연 염색공예 등은 유료체험이다.

낙안읍성에서는 민속 문화의 계승을 위하여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 민속한마당큰잔치를 벌이고, 매년 5월에는 낙안 민속 문화 축제를 벌인다. 특히 1994년 처음 시작한 낙안민속문화축제는 조선 인조 때 낙안군수로 선정을 베푼 임경업 군수의 부임을 기원하는 행렬을 시작으로 이 지역 출신 가야금병창 명인인 오태석 기념 전국 가야금병창경연대회, 낙안 두레놀이, 큰 줄다리기 등 다양한 경연, 공연 및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성안에는 민박집이 많아서 누구든지 손쉽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지만.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