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밤 출발해서 6일을 소록도 봉사로 보내고, 집에 돌아 오니 7일 새벽 4시 30분정도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안양교도소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이다.
큰 아이 학교 가는 것도 못 보고 정신없이 자다 보니 11시가 다 되었다.
놀라서 일어나 급하게 씻고 옷 갈아 입고 약속 장소인 소사역으로 달렸다.
아이들까지 해서 26명이 참가한 소록도 봉사, 거의 대부분 직장인들이이라 쉬지도 못 하고
일터로 나갔을 텐데 혼자 피곤한 척 늦잠을 잤다.
따님이 선물하셨다는 최영천 목사님의 페인트 냄새도 마르지 않은 새 차에 간사장님과,
최영천 목사님, 정승훈 목사님이 타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큰샘물님은 공동체 짓는 문제로 화성에 아침일찍 갔다가 바로 교도소로 오신다고 하신다.
최영천 목사님도 거제도에서 소록도로, 소록도에서 서울로 회원들을 태워다 주고 새벽같이
부천으로 오셨다는데, 피곤하신 기색이 전혀 없으시다.
정승훈 목사님또한 철야를 하셨다고 하시는데 얼굴이 환하시다.
아마 미인 옆자리에 앉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가는 안양교도소 한 시간 길이 짧다.
첫 번째 정문을 통과하는데 경비병의 거수 경례가 우렁차다.
아직도 소록도 다녀온 '5호차'라는 표시가 앞 유리창에 붙어 있어 놀랐나 보다고 웃었다.
두 번째 정문을 통과해서 조금 기다리자 민국주 강도사님이 언제 오셨는지 인사를 건네 오시고,
큰샘물님이 정장차림으로 예쁘게 웃으며 걸어 온다.
신분증과 핸드폰을 걷는데, 무릎을 덮는 검은색 반바지를 입은 내게 나눔님은 자신의
청바지와 바꿔 입자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짧은 반바지나 치마는 교도소에 갈 때는 입지 않는 게 그분들에 대한 예의다.
여전히 온화한 표정의 교도주임님이 철문 밖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교도소 담장 안으로 통하는 문을 하나 더 통과하면서 성경 두 권과, 다이어리가 들어 있는
두툼한 가방 검사까지 받는다.
현관문과 철 창살문 하나를 더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 가장 끝에 있는 교실로 들어서자
방금 전에 식사를 하고 나오신 재소자 여러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계셨다.
앞에 마련되어 있는 책상위에는 성경 필사한 양면지가 두 뭉치 올려져 있고,
우리들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이번에도 음식물 반입을 하지 않았음을
미리 말 하고, 전 날의 소록도 봉사와 지을 공동체에 대한 기도를 부탁하시는 나눔님.
1부에는 민국주 강도사님의 대표기도를 시작으로 정승훈 목사님의 예배인도와,
2부에는 나눔님의 하모니카 연주 '사나 죽으나'를 시작으로 멀리 거제도에서 오신
해병대출신 최영천 목사님의 간증 시간을 갖기로 한다.
쉽고 짧지만 강한 내용의 설교와, 눈높이를 맞추시려는 최 목사님의 간증 시간은
들킨 죄와 들키지 않은 죄라는 고백으로 시작해서 내내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간증이 끝나자 재소자 한 분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와 편지를 건네 주셨다.
성경 암송대회에서 1등을 하셨다며 상품으로 받은 성경과 찬송가를 자오나눔을 통해
예수를 영접하시는 분께 드리고 싶다는 내용...
재소자 한 분의 특송과 함께 몇 분들은 어느새 가족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다음 달에도 음식물 반입이 없을 거라고 알리고 나오는 발걸음들이 무겁다.
자오에서 안양교도소 교화 행사를 시작하고 부터 장애인 재소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두 팀으로 나뉘어 격월로 교화행사에 참석시키겠다는 말에 많이 답답했었다.
궁리한 끝에 음식물 반입을 중단해서 음식이 없어도 자오나눔의 교화행사를 정말로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매달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그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담장 밖으로 배웅 나오신 교도관님과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했다.
전에 한 번 교도소 예배당에서 집회를 했었는데, 앞으로 그 건물을 쓰면 좋겠다는
큰샘물님의 의견에 우리쪽만 괜찮다면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대답해 주는 교도관님...
지금껏 답답했던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 진다.
음식물이야 조금 더 준비하면 그만이다. 나오고 싶어 하는 모든 분들을 만날 수가 있다.
안양교도소 안과 밖에서 재소자들과 자오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를 들어주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