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종주의 개념
(san001의 견해)
① 대서문(大西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해발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입니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958년에 당시 경기도 지사 최헌길의 주도로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서문(大西門)의 앞 모습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서문(大西門)의 뒷 모습입니다. -----------------------------------------------------------
담쟁이넝쿨이 우거진 한여름의 대서문(大西門) 모습입니다. -----------------------------------------------------------
대서문 육축(陸築) 윗부분에 배수를 위한 시설물로 성문 안쪽의 빗물이 흘러나가도록 성벽에 돌출되게 설치한 석루조(石漏槽)의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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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산능선 해발 488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서 부근 산성안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령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리웠답니다.
※ 암문(暗門)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 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입니다. 성안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할 때 이 통로를 사용한답니다. 참고로 현재 북한산성에는 모두 7개의 암문(暗門)이 남아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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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 사이 산 능선 해발 521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 암문(暗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입니다. 최근까지 성문 우측에 '소남문'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듯이 이 암문(暗門)은 처음에는 소남문(小南門)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었기 때문에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부왕동(扶旺洞)이란 이름은 성안 동쪽에 있는 부왕사(扶旺寺)로 내려 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던 이름으로 보입니다.
※ 홍예(虹霓)란 성문 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같이 반원형(半圓形)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 즉, 홍예문(虹霓門)을 말합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홍예형태로 이룬 성돌 위쪽에 우에서 좌로 '小南門'이라 새겨 놓은 글자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門'자는 마멸되어 잘 안 보이나 '小南'이란 두 글자는 육안으로도 식별할 정도로 드러나 보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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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文殊峯)과 나한봉(羅漢峯) 사이 해발 694m 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의 앞 모습입니다. 청수동암문은 1999년에 해체 된 후 보수 되었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의 뒷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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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입니다. 해발 715m 의 보현봉(普賢峯)과 해발 727m 의 문수봉(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鞍部)에 위치 해 있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남문(大南門)의 앞 모습입니다.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주년을 계기로 북한산성 복원계획을 세워 1991년에 첫 번째로 문루(門樓)등 성문을 복원했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남문(大南門)의 뒷 모습입니다. -----------------------------------------------------------
여름철 구기동쪽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앞 모습입니다. 참고로 대남문의 복원된 문루에 걸린 현판의 '대남문'이라는 커다란 액자(額字)는 서예가 조재호라는 분의 글씨라고 합니다. -----------------------------------------------------------
겨울철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대남문의 앞 모습입니다. -----------------------------------------------------------
성 안쪽, 대남문 뒷 편 공터에는 두 개의 문루주춧돌이 놓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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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대성문(大城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서 가장 큰 문입니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暗門)이었으나 성문 위치가 문 북쪽 기슭 행궁(行宮)이 있는 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과 보토현(輔土峴-현재 북악터널 위쪽)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편리한 코스에 위치하고 있어서 임금이 이문을 출입하게 됨으로써 뒤에 성문을 더욱 성대하게 개축하여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 이름도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답니다.
※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국도(國都)의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別宮)으로 북한산성 내 행궁은 산성을 축조하던 조선 숙종37년(1711년)에 지워졌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대성문(大城門)의 앞 모습입니다. 대성문은 대남문에 이어 1992년에 복원되었고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로 걸었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성문(大城門)의 뒷 모습입니다. 대성문은 높이 13척(4m)에 폭 14척(4.5m)으로 대남문(11척/11척) 과 대서문(11척/13척)에 비해 월등히 규모가 큰 성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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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보국문(輔國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의 해발 567m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 보국사(輔國寺)가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보국문(輔國門)의 앞 모습입니다. 보국문은 1993년 완전 해체된 후 복원 되었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보국문(輔國門)의 뒷 모습입니다.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할 당시인 1711년에 공사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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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이 끝나는 해발 5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문은 1993년에 문루(門樓)를 갖추는 등 화려하게 복원되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대동문(大東門)의 앞 모습입니다. 대성문과 마찬가지로 1993년에 복원 당시 현판의 글씨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어필을 집자해서 걸었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동문(大東門)의 뒷 모습입니다. 보국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안쪽 성돌에 축조 당시인 1711년에 공사 책임기관과 구간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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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용암문(龍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답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용암문(龍岩門)의 앞 모습입니다. 용암문은 1998년 보수가 완료되어 복원 되었습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용암문(龍岩門)의 뒷 모습입니다. 특이하게도 성문 뒷편에도 현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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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위문(衛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위문(衛門)이라 일컫고 있는데, 일제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합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위문(衛門)의 앞 모습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위문(衛門)의 뒷 모습입니다. 용암문과 마찬가지로 위문 뒷편에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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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중 북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의 해발 430m 지점 안부(鞍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문루(門樓)가 폐기되어 없어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문루(門樓)는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유사시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성 밖의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건축물입니다.
성 밖, 정면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앞 모습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뒷 모습입니다. 북문을 동·서·남쪽의 방위를 대표하는 다른 성문들처럼 큰 대(大)자를 앞에 붙혀 대북문(大北門)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순전히 조선시대의 관례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서울 도성(都城)도 마찬가지로 다른 문은 동대문·서대문·남대문이었으나 북문만은 북대문이 아니고 숙정문(肅靖門)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
성문 위에서 바라본 북문(北門)의 바닥이 없는 상단부 모습입니다. -----------------------------------------------------------
늦은 오후의 햇살에 그림자를 드리운 북문(北門)의 모습입니다. 아직 복원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여타 다른 성문들 보다 더 고색창연한 유적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성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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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시구문(尸柩門) 정확한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주민들에게 시구문(尸柩門)이라고 불리웠고 이 이름이 원래 성문이름인 서암문(西暗門)을 대신하여 고착화(?) 되어 현재도 성문에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시구문(尸柩門)의 앞 모습입니다. 부왕동암문과 마찬가지로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장대석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성문입니다. -----------------------------------------------------------
성 안쪽에서 바라본 시구문(尸柩門)의 뒷 모습입니다. 북한산성 암문중 유일하게 뒷편도 홍예(虹霓)형태 띄고 있습니다. -----------------------------------------------------------
시구문(尸柩門)과 연결된 성벽은 'ㄱ'자 모양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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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수문(水門)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폭 50척(15.5m)에 높이 16척(5m)인 큰 규모의 수문(水門)으로 1925년 8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 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보이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옆 산비탈에 남아있는 성곽의 흔적만이 이 두 성곽 사이의 협곡에 웅장했던 수문(水門)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할 뿐입니다.
※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水門)이라고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을 수구(水口)라 합니다.
산성 바깥인 수구정 부근에서 바라본 수문지(水門地)입니다. 사진 왼쪽에 원효봉과 시구문을 거쳐 이곳 북한산성계곡 산비탈에서 끊겨버린 성곽의 흔적이 보입니다. -----------------------------------------------------------
산성 안쪽인 덕암사 부근에서 바라본 수문지(水門地)입니다. 사진 속 2층 건물은 '수구정'이라는 음식점으로 안내표지판이나 이정표조차 없는 이곳이 수문이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초봄, 산성계곡에 있는 수구정에서 바라본 수문지(水門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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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중성문(中城門) 원효봉(元曉峯)과 의상봉(義相峯)을 직선으로 그은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현재 산성주차장 일대에서 산성안 중심부에 위치한 중흥동 계곡을 향하여 오르는 중간 지대 길목에 위치한 성문입니다. 중성문(中城門)은 1998년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됐습니다.
산성매표소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중성문(中城門)입니다. 특이한 점은 문 이름에 가운데 중(中)자를 써 중성문(中城門)이지만 이곳에 쌓았던 중성(重城)은 무거울 중(重)자를 쓴다는 것 입니다. 중(重)자는 '겹'이란 뜻도 있기 때문인데 북한산성에서 가장 수비가 취약한 부분인 대서문(大西門)방면의 수비를 보강 하기 위해서 안쪽에 쌓은 내성(內城)을 뜻하고 그 내성의 성문이 중성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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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종주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정답은 없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인마다 코스가 다를 수 있다. 「월간 산」에서는 우이동에서 시작하여 위문, 보현봉을 거쳐 형제봉 능선까지를 종주코스로 잡고 있지만 일반적인 산꾼들은 비봉능선을 주능선으로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종주의 조건이 무엇일까?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나열해보면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음 네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1. 그 산의 가장 기본 줄기가 어디인가? 2. 다른 산과의 연결은 어떠한가? 3. 정상을 포함하고 있는가? 4. 파생능선이 여럿일 경우 능선마다의 길이와 독립성, 차별성이 어떠한가?
이 네 가지 조건을 전부 충족하면 주능선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사실 이 조건을 전부 충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주능선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구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파생구간은 각 산의 특성 및 능선의 형태등을 고려 연결시켜 생각하여야 한다.
북한산은 기본줄기는 북한산 북쪽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800m급 봉우리에서 보현봉, 문수봉의 700m급이 모여있는 남쪽까지 이어지는 산성주능선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능선은 북쪽, 남쪽 봉우리군에서 각각 파생되는 여러 능선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쪽에서 파생되는 능선을 살펴보면 다음 다섯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1. 백운대-원효봉능선 2. 백운대-숨은벽상봉-숨은벽능선(사기막능선) 3. 백운대-숨은벽상봉-인수봉-설교능선 4. 만경대-하루재-상장봉능선 5. 만경대-하루재-우이령-(도봉주능선)
이 중 백운대를 중심으로 보면 단연 원효봉능선이 압권이지만 다른 산과의 연결성이 단절되어 일반적으로 주능선종주코스보다는 12성문종주코스로 대신되고 있다.
보통 도봉산과의 분기점인 우이령에서 시작되는 코스를 주능선코스로 보지만 북한산만을 놓고 가장 뚜렷하고 긴코스를 택한다면 단연 상장봉능선을 포함하여야 한다. 500m대의 높이로 장벽처럼 북한산과 도봉산을 가른다.
이렇게 상장봉능선을 북한산주능선에 포함시키면 북한산의 또다른 이름인 삼각산을 가리키는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삼각 봉우리중 백운대와 인수봉이 주능선에서 제외된다. 행정구역 또한 백운대와 인수봉은 고양시, 만경대는 서울시와 고양시 경계에 있다.
한편 남쪽에서 파생되는 능선을 살펴보면 다음 네가지 능선 정도로 볼 수 있다. 1. 대성문-보현봉-형제봉능선-(북악산)-(인왕산)-(안산) 2. 대성문-보현봉-사자봉능선 3. 대성문-대남문-문수봉-비봉능선 4. 대성문-대남문-문수봉-의상봉능선
이 중 다른 산과의 연결성을 보면 형제봉능선이 좋으나, 북한산 범위내의 형제봉능선은 형제봉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너무 특징이 없고 밋밋하다. 사자봉능선은 짧고, 의상봉능선은 가장 산세도 좋고 굵직하나 맞은편 원효봉능선과 더불어 12성문 종주산행으로 대신하고 있다. 비봉능선은 가장 능선 길이가 길고 능선상 봉우리마다의 개별성이 뚜렷하여 주능선으로 취급된다. 비봉능선은 문수봉에서 시작하여 승가봉, 비봉,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 또한 향로봉에서 여러 지능선이 갈라진다.
1. 향로봉-탕춘대성-상명여대 2. 향로봉-족두리봉-불광동 3. 향로봉-기자촌능선
길이로 보면 탕춘대성능선이 가장 길지만 향로봉에서 급격한 내리막이후 너무 평이하다. 기자촌방향은 산세가 제법 굵지만 너무 삭막한 느낌을 주는 반면, 족두리봉은 작은 인수봉이라 할 만큼 독립성이 좋고 우뚝한 산세가 주능선에 포함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북한산 주능선으로 가장 적합한 코스는
상장봉능선-우이능선-산성주능선-문수봉-비봉능선으로 정리 할 수 있으며, 자세한 코스는 솔고개-상장봉-육모정고개-영봉-하루재-깔딱고개-만경대-용암문-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승가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불광동
을 잇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론적인 주능선과 실제 산행을 할 수 있는 주능선과는 차이가 있다. 솔고개에서 상장봉을 거쳐 육모정고개까지는 군사시설 보호구역, 육모정고개에서 영봉을 거쳐 깔딱고개까지는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만경대와 용암문까지는 암벽구간으로 일반인들이 산행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용암문에서 대동문까지는 등산로가 주능선의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능선을 걸을 수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적으로 상장봉에서 만경대까지의 주능선코스는 그나마 가깝고 비슷하게 가는 우이동-하루재-백운대피소-위문으로 대체될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주능선과는 거리가 먼 완전한 딴 길.
하지만 가지 말라는 길을 남들이 다닌다고 몰래 간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산 주능선코스는
우이동-하루재-백운대피소-위문-용암문-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승가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불광동
코스가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즉 「북한산주능선종주」라기보다는 「가능한 주능선과 가장 가까운 코스로 걸어가는 능선 이어 나가기 산행」이라 부를 수 있다.
(신경수님의 견해)
백두대간에서 갈래친 한북정맥이 도도히 서해안을 향해 흐르다가 우이령부터 시작되는 북한산 상장능선 550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상장봉을 거쳐 노고산으로 빠지고 왼쪽으로 흐르는 다른 한줄기는 육모정 고개를 지나 영봉을 거쳐 백운대로 오른다.
북한산 주능선을 아우르면서 숫한 지능선을 흘리니 그중 하나는 인왕산 안산을 거쳐 한강으로 잦아들고 다른 한줄기는 서울시와 경기도 경계선을 그리며 앵봉 봉산을 거쳐 역시 한강으로 잦아든다
그 외 여러 지맥들이 있을 수 있으나 이중에서 확실하고도 제일 길게 뻗어내린 능선이 봉산을 거쳐 비산비야를 달리다가 한강변에서 그 맥을 다한다 도시개발로 논이 되고 주택가가 되고 군부대 훈련장이 되고 철로로 완전히 차단된 구간을 제외하면 은평구 수색동과 고양시 향동리의 경계가 되는 조그만 개천변에서 북한산은 그 맥을 다한다고 할 수가 있다 이는 다분히 나의 주관일 뿐이니 그저 그렇게도 북한산을 종주하는구나 하고 믿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읍니다
김형수저 222산행기 북한산편 내용을 참고삼고 나의 견해를 더하여 정리해 보면
북한산은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한북정맥이 운악산 남쪽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내려 도봉산을 이루고 마지막으로 결승을 이룬 것이 북한산이며 그 여맥은 인왕산과 안산으로 이어져 수도 서울의 서쪽면과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진산(鎭山)이다
이 산은 서울 일원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주축으로 삼각을 이루면서 우뚝 솟아 있어 일명 삼각산으로도 불리어진다 또한 여기에다 노적봉을 합하여 내삼각 외삼각으로 불려지고 있기도 하다
세 봉우리에 대한 명칭의 유래는 태조 이성계가 잠구시(潛邱時)에 이 산에 올라
손으로 넝쿨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로 올라가니 백운 가운데 암자 하나 높이도 자리잡고 있네 눈에 보이는 곳 다 가져다 우리 땅 삼는다면 오월(吳越)의 강남땅 어찌 받아들이지 못하리
라고 읊은 시귀 중의 백운을 따서 백운대라고 붙여진 이름이며 남쪽의 만경대는 태조가 무학대사와 함께 이 곳에서 국도(國都)를 논의했다 하여 국망봉이라 불리어졌는데 왜 만경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동쪽의 인수봉은 인자요산,인자수(仁者樂山,仁者壽)의 뜻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 산은 많은 암봉과 험한 절벽 및 준엄한 지세를 이용하여 삼국시대 백제의 개루왕이 처음으로 북한산에 성을 쌓았다(132년) 그 후 여러 봉만(峯巒)을 연결한 지금의 석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축조된 것이다 높이 약 6m 폭 약 3m 길이 약 12.7km의 폐쇄곡선을 그리며 성곽이 이어진다 이 성곽에는 정문이 되는 대서문을 비롯하여 대남문 대동문 등 큰문과 보국문 용암문 등 암문을 합해 14개의 성문이 있다 여기서 중성문 옆 암문 수문은 제외시킨 숫자다
날씨가 청명한 날 정상 백운대에 오르면 서해의 강화도 개성의 송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일산 신시가지 외 주변 도시들의 아파트 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북한산, 우이동 세검정 삼천리골 등 계곡미를 뽐내는 승경(勝景)이 있고 행궁터 진흥왕순수비 승가사 도선사 태고사 진관사 삼천사 등 많은 명소가 있다
등산로로는 효자리 진관동 구기동 평창동 국민대학 수유리 우이동 등에서 오르는 수많은 코스가 있으며 나름대로 연구 및 답사를 하다보면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찾아 볼 수가 있다 산이 크니 심산유곡에 든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제일 드릴있는 암능코스로는 원효릿지와 만경대릿지 숨은벽코스가 있으나 유능한 안내자와 자일 등 장비를 갖추고 올라야 한다 맨짜로 릿지를 하다 해마다 몇 명씩 산화하여 산으로 영원히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는데 바로 이 릿지를 하다 찰나의 실수로 영면의 길로 가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하여 내 곁을 떠나가곤 하였다
그 중에서 나하고 워킹 등산을 가끔 같이 가곤 하던 8년 정도 후배 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 해살거리던 웃음속에 항시 천진난만을 가지고 다니던 친구로서 항시 나이가 어려 총무 일을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거절을 못하던 친구였다
어느날 북한산 효자리에서 숨은벽계곡 염초봉어깨 백운대 옆사면 약수터 만경대 옆사면 노적봉 노적사 부왕동암문 삼천사계곡 사모바위 향로봉 탕춘대능선 독바위능선 홍은동 유진상가로 하산하는 약 7, 8시간의 산행을 같이 할 때 나한테 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 견디는 끈기가 부족했던지 힘들어하면서 형님만 보면 악마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의식적으로 같이 가지 않은 것인지 내가 정맥종주 산행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지 못한 것인지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의 부음을 들었다
혼자 릿지를 하러가서 원효릿지로 하산하던중 원효봉 치마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죽다니 이해가 안되나 만에 하나 작은 돌이라던지 나뭇가지를 밟아 그대로 급경사 바위 사면을 굴렀던 것 같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젊은 나이에 찰나의 방심(?)으로 가는 길을 달리해야 했다
너는 워킹 체질이니 릿지를 하지말라고 선배들이 누차 권고를 했으나 누구든지 그렇겠지만 이 친구도 한두번 릿지를 해보니 그 맛이 보통이 아니라 푹 빠졌던 것 같다 죽어서라도 북한산 바위봉들을 훨훨 날아다니며 북한산 산신령의 반열에 들어 후학들의 안전을 도모하리라 나는 믿는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채.....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악하면 사람들은 그 산 이름에다 악(岳)자를 집어넣어 부르고 있다 송악산 치악산 설악산 관악산 운악산 월악산 등 등... 물론 그렇지 않은 산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험악하기로 따진다면 북한산을 빼어 놓을 수가 없는데 왜 북한산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다만 오랜 예전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부른적이 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산 소나무 이파리만큼이나 참나무 이파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없어지며 천고의 세월을 이고 미래를 향하여 가고 있는 북한산이다 이러한 북한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것도 풍요한 삶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그 맥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서 그 맥이 다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조그만 야산에서 발원하여 수색산 반홍산 봉산 벌고개 앵봉 박석고개 은평경찰서 폭포동 선림사 오산약수 324봉 475봉 향로봉 관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580봉 대동문 동장대 북한산장 일출봉 용암문 용암봉 만경대 족두리봉 깔닥고개 하루재 영봉 500봉 육모정고개 510봉 550봉 552봉 565봉 545봉 상장봉 325봉 다리고개에 이르는 산줄기
로써 하루에 주파하기가 좀 빡빡한 일정이지만 준족이라면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중요한 점은 정상인 백운대와 인수봉 노적봉 등이 종주 코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이다. 주능선에서 다시 지선으로 빠져버린 봉우리인 것이다 그래서 경기도와 서울시 경계능선이 만경대에서 하루재를 거쳐 영봉을 지나 한북정맥이 시작되는 550봉 우이령을 넘어 도봉산 주능선으로 연결된다 혹자는 백운대 인수봉 소재지가 서울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런 연유에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산인 것이다 여기서 웃지 못할 실화 한마디를 곁들이고자 한다
모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고양시에서 제일 높은 산이 무슨 산이냐는 문제를 내었는데 나의 아들네미가 번쩍 손을 들고 북한산 백운대입니다 자신 만만하게 대답을 했겠다
이 순간 선생님이고 학생이고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버린 것이다 북한산은 당연히 서울에 있는 산으로 고양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데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웃음인 것이다 나의 아들 체면은 도대체 어디로 갔겠습니까? 가르쳐준 애비 체면은 또 뭐가 됬겠읍니까? 잘못된 정보를 맹신하고 뇌리에 각인되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데서 나온 희극적인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답변이 더 걸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고양시에서 제일 높은 산은 행주산성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허다못해 일산에 있는 고봉산이라고만 했어도 조금은 이해를 해 줄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 더...
이 사실을 알고 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하여 올바로 잡으려 하자 마누라나 아들녀석이 극구 말리는 것이다 챙피는 한번 당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왕따는 오래간다는 것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렇게 쓰린 가슴을 가지고 우리 식구는 살아가고 있다 애들이 뭘 배우겠는가 알고 있어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그리고 하지 않아야 된다고 하는 사실에 무슨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으며 당당하게 살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북한산 백운대는 고양시에 있는 산이다
◆ 소요시간 및 거리
우이동입구∼(3.0km,40분)∼백운매표소∼(0.6km,20분)∼하루재∼(0.3km,5분)∼인수대피소∼(0.7km,25분)∼백운대피소∼(0.2km,10분)∼위문∼(0.3km,15분)∼백운대∼(0.3km,15분)∼위문∼(0.5km,20분)∼노적봉안부∼(0.7km,15분)∼용암문∼(1.0km,15분)∼동장대∼(0.5km,10분)∼대동문∼(0.6km,10분)∼보국문∼(0.63km,20분)∼대성문∼(0.3km,15분)∼대남문∼(0.3km,10분)∼청수동암문∼(1.8km,45분)∼비봉∼(0.4km,15분)∼향로봉∼(1.0km,25분)∼탕춘대성갈림길∼(10분)∼불광매표소갈림길∼(0.7km,20분)∼족두리봉∼(1.3km,25분)∼불광매표소
: 산행거리 15.1km, 산행시간 6시간25분
◆ 산행안내
우이동입구∼백운매표소(도선사광장)
우이동으로 갔을 경우 백운매표소까지 약3km의 아스팔트길이 참으로 걷기 싫은 길이다. 걸어가면 30∼40분 지나가는 차량들을 피해 오르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우이동 입구에 도선사까지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금방 오를 수 있지만 휴일에는 등산객의 승차를 통제함으로 이용하기가 어렵다. 만약 차를 얻어 탔을 경우 도선사광장 하차시 불전함에 1000원정도 시주하는 것이 예의상 좋다.
백운매표소(도선사광장)∼하루재
백운매표소를 지나 조금 오르면 곧 폐쇄된 우이대피소. 이후 하루재까지 계단길이 계속된다. 원래 백운대로 가는 가장 지름길은 깔딱고개로 가는 길이지만 현재 휴식년제로 묶여있다.
하루재∼인수대피소
하루재는 영봉에서 만경대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의 고개로 영봉과 깔딱고개 방향이 모두 휴식년제로 되어 길다란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다. 하루재에 오르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겨울에는 북풍 한파를 만날 만큼 기온이 완전히 달라지는 곳이다. 하루재부터 인수대피소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길이 좌로 휘어지는 곳에서 인수봉의 거대한 암릉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인수대피소∼백운대피소
암벽등반가의 집합 장소로 유명한 인수대피소. 유일하게 야영이 허용되는 장소로 번호가 달린 야영장이 등산로 주위에 널려있다. 작은 암자인 수덕암을 지나 「인수봉 안내판」이 있는 장소에서는 인수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인수대피소 7∼8분 오르면 깔딱고개에서 올라오는 지점과 만난다. 여기부터 만경대까지의 주능선은 사실 산행이 가능하지만 울타리가 쳐 있어 실질적으로 산행이 불가능하다. 갈림길은 지나면 30여미터의 슬랩바위 옆으로 철난간이 설치된 돌계단길이 시작되며 우이동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온다. 깔딱고개갈림길에서 백운대피소까지는 오르막길로 약15분 소요된다.
백운대피소∼위문
인수봉 아래 자리잡은 백운대피소는 북한산에서 유일하게 숙박이 되는 대피소이며, 음식을 파는 곳이다. 이 곳 약수물은 특이하게 우물로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린다. 대피소를 지나면 잠시 바윗길을 지나 위문까지는 계속 오르막이 지속된다.
위문∼백운대
위문은 북한산성 14성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문이다. 입산금지 안내판이 있는 좌측으로 오르면 주능선상의 만경대이다. 우측길은 백운대로 오르는 길. 나무계단길을 지나면 아주 가파른 쇠난간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일반인들이 오르는 유일한 구간으로 길이 좁아 휴일에는 평상시보다 2∼3배 지체된다. 물론 이 길에도 호랑이굴 방향으로 오르는 길이 있지만 일반인들은 이용하기 어렵다.
위문∼노적봉안부
위문 옆의 만경대에서 용암문까지는 위험한 암벽구간이어서 일반 등산로는 우측 사면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설치된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어 위험하지는 않다. 이 길에서의 바라보는 원효봉과 북한산성계곡의 전망도 상당히 좋다. 북한산성계곡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암봉인 노적봉도 여기서보면 한갓 작은 봉우리에 불과?求?.
노적봉안부∼용암문
안부에서 노적봉까지은 약 10분 거리. 대다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지만 조금만 땀을 흘리면 생각지도 못한 북한산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멋진 봉우리이다. 안부에서 용암문 직전까지는 거친 바위길이어서 속도를 내기 어렵다. 「대남문 2.1km, 백운대 1.2km」팻말이 있는 지점부터 용암문까지는 평탄하다.
용암문∼동장대∼대동문
용암문을 지나면 길이 평탄해져 대동문까지는 이어진다. 용암문에서 100미터만 가면 북한산대피소. 통나무집과 주위에 평탄한 장소가 많아 쉬어가기 좋으며 능선상에서 유일하게 샘터가 있는 곳이다. 이후 대동문까지도 역시 주능선상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북한산대피소에서 동장대까지도 편안한 길. 동장대 가기 직전부터 드디어 길은 능선의 성벽과 나란히 한다. 장대(將臺)란 전투시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축조된 장군의 지휘소이다. 동장대는 북장대, 남장대 등 북한산의 3대 장대중 가장 규모가 크며 유일하게 복원된 장대이다. 동장대에서 대동문까지도 편하다. 대동문 또한 여러갈래의 등산로가 집결하는 장소로 북한산에서 가장 등산객이 붐비는 장소이다. 여기 역시 공터가 많아 쉬어가기 좋다.
대동문∼칼바위능선갈림길∼보국문
대동문을 지나면 등산로는 산성과 같이 한다. 칼바위능선 갈림길까지도 비교적 완만하다. 날카로운 바위가 능선을 이룬 칼바위. 이름보다는 위험하지는 않다. 칼바위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성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갈림길에서 보국문까지도 편안한 구간.
보국문∼대성문
정릉계곡으로 내려가는 보국문을 지나 대성문으로 가는 길이 산성주능선상에서 가장 힘든 길이다. 대성문의 고도가 높아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산성주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안내판이 있다. 가장 적절한 위치에 세워진 안내판. 웅장한 삼각봉우리와 유연하게 이어지는 주능선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 대성문. 일반적으로 4대문을 이야기할 때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라 하며 북문을 제외한 나머지 문에 대해서는 큰 大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4문을 제외하고 특이하게 大자를 붙인 대성문. 4대문보다도 오히려 규모가 크다. 확실히 전해오는 기록은 없지만 충분히 추측은 가능하다. 보현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형제봉을 거쳐 경복궁이 있는 북악산을 거쳐 인왕산으로 직접 연결된다. 보현봉이 험하여 성문을 세울 수가 없어 약간 내려와 만들어진 성문이 대성문이고, 대성문에서 산성계곡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비상시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터가 있다. 즉 왜란이나 호란등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왕이 형제봉능선을 통해 북한산성으로 들어오는 성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큰 大자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도 대성문에서 형제봉능선으로 가는 등산로는 보현봉의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다.
대성문∼대남문
대성문에서 대남문으로는 숲속길로 가는 편안한 길과 성벽길이 있다. 성벽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역시 힘든 구간이다. 성곽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보현봉이 갈린다. 성곽이 있는 지점중 위문 다음으로 높은 고도이다.
대남문∼청수동암문
대동문과 더불어 북한산 성문중 등산객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구기계곡, 산성주능선, 비봉능선, 의상봉능선이 갈리는 교통의 분기점이다. 산성을 따라 조금 오르면 문수봉이다. 비봉능선이 문수봉에서 실제 갈라지지만 문수봉의 암벽구간이 위험하여 일반 등산로는 문수봉을 우회하여 청수동암문에서 갈라진다. 청수동암문으로 바로 가는 길은 아주 편안한 길이다.
청수동암문∼승가봉
청수동암문을 지나면 가파른 내리막 너덜길 비슷한 길이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겨울이면 한참동안이나 눈이 녹지 않는다. 내리막을 다 내려오면 한동안 평탄하다가 석문을 향해 잠시 오른다. 석문을 지나면 잠시 내리막 이후 승가봉으로 짧게 오른다. 바위봉우리 승가봉에서는 승가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승가봉∼사모바위∼비봉
승가봉에서 잠시 내려오면 사모바위를 지나 비봉까지는 평탄하다. 사모관대에서 유래된 사모바위는 예전에 군부대가 있던 매봉능선의 갈림길이다. 이 곳 역시 휴일이면 도시락 먹는 등산객으로 그 넓은 공터가 등산객들로 가득 찬다. 사모바위에서 7∼8분 가면 비봉길과 우회길이 갈린다. 비봉을 넘어가면 좋지만 비봉 서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다. 우회길은 거의 평탄한 길이다.
비봉∼향로봉
향로봉까지는 평탄한 길. 중간에 비봉매표소, 진관사매표소, 불광매표소 갈림길이 있다. 향로봉 직전에서 좌측으로 우회길(불광매표소 2.1km, 청수동암문 2.3km, 비봉 0.4km)이 갈라진다. 가능한 우회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향로봉의 세 봉우리를 넘으면 탕춘대성과 족두리봉으로 가는 갈림길을 쉽게 만나지만 마지막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이 매우 위험하다. 일년에도 몇 명씩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향로봉 날등을 조심스럽게 가면 길쭉한 바위를 잡고 내려서는 구간이 있다. 초심자들은 여기서도 가끔 지체가 일어난다. 이 곳을 지나면 키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온갖 풍상을 이기며 굳굳히 서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여기가 또 하나의 분기점. 여기서는 좌측 바위길로 우회하면 최초 우회길과 다시 만난다. 마지막 직벽은 정말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향로봉∼탕춘대성, 족두리봉 갈림길∼구기매표소, 불광매표소 갈림길
탕춘대성상의 이정표(「119안내판(66-04), 위험구간 안내 : 비봉 1.4km, 상명대 1.9km」)에서 길이 갈라진다. 만약 (향로봉 암벽길 위험구간, 비봉 1.32km, 상명대 1.82km)이란 안내판이 보인다면 이미 탕춘대성으로 접어든 길이다. 이 때에는 다시 향로봉 방향으로 올라야 한다. 119안내판(66-04)에서 좌측은 탕춘대성, 족두리봉을 보며 직진하는 길이 주능선길이다. 이 후 구기매표소, 불광매표소 갈림길까지는 내리막 바윗길이지만 전혀 위험하지는 않다.
구기매표소, 불광매표소 갈림길∼족두리봉
갈림길에서 족두리봉을 거치지 않고 좌측으로 구기터널매표소, 우측으로는 불광매표소로 하산하는 길도 있다. 족두리봉을 향하면 철탑을 지나 358봉. 잠시 내리막 후 족두리봉 앞에 서게 된다. 여기서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바윗길 또한 위험하여 우측으로 우회하는 편이 좋다.
족두리봉∼불광매표소
족두리봉에서에서 조금 내려오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서릉(좌측)은 불광동 방향이고, 북서릉(우측)은 불광매표소 방향이다. 하산 도중 갈래길이 많지만 우측 길만을 향하면 불광매표소로 떨어진다. 불광매표소에서 도로로 나와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독바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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