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timate Handel CD 1
궁극의 헨델 CD 1 (수상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George Frideric Händel [1685∼1759]
Stuttgart Chamber Orchestra
Karl Münchinger - Conductor
Label - Decca
전체 이어듣기
Water Music Suite in F Major
Ouverture
Adagio e staccato
Allegro - Andante
Presto
Air
Minuet
Bourée and Hornpipe
Allegro
Water Music Suite in G Major
Menuet & Trio
Rigaudon I and II
Minuet I - Minuet II - Country Dance
Water Music Suite in D Major
Allegro
Hornpipe
Minuet
Lentement
Bourée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HWV351
1. Ouverture
2. Bourrée
3. La paix
4. La réjouissance
5. Menuet I-II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유명한 작품 <수상음악>(Water Music)은 18세기 초 영국 왕실의 뱃놀이 연회가 열렸을 때 연주되었던 곡이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헨델은 바흐와 동갑인 독일의 작곡가로 1710년 6월부터 하노버의 게오르크 선제후(選帝侯) 악장의 지위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하노버에서는 그의 주특기인 ‘오페라 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수가 없었다. 헨델은 악장에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1년의 휴가를 얻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헨델의 음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성공 후에 일단은 하노버로 다시 돌아왔으나 15개월 후 재차 휴가를 얻어 또 한 번 영국 땅을 밟았다. 이번에도 그의 음악은 크게 호평을 받았고, 국왕인 앤 여왕의 총애를 받은 후 런던이 완전히 마음에 든 헨델은 휴가가 끝난 후에도 귀국 명령을 무시하고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국 왕실의 뱃놀이 연회에서 연주되었던 음악
그런데 공교롭게도 1714년 49세의 앤 여왕이 갑자기 사망했다. 이후 그가 이제까지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거듭해 왔던 하노버의 게오르크 선제후가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아 조지 1세가 되었다. 헨델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국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헨델은 1717년 여름 템스 강에서 국왕의 뱃놀이 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헨델의 친구인 킬만세기 남작은 이때를 이용해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조지 1세 앞에서 연주해 볼 것을 권했다.
이런 창작 배경을 가진 헨델의 <수상음악>은 3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진 관현악 악장들의 조합이다. 1717년 7월 17일 여름에 런던의 템스 강에서 초연됐다. 헨델과 함께 배에 탄 50명의 연주자들이 조지 1세가 탑승하고 있는 왕의 배 근처를 맴돌며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당시 왕의 배에는 볼턴 공작부인, 뉴캐슬 공작부인, 고돌핀 백작부인, 킬마녹 부인과 오크니 백작 등 조지 1세와 절친한 귀족들이 모두 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행스럽게도 조지 1세는 헨델의 <수상음악>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램버스에서 출발해 첼시에 도착할 때까지 배가 왕복하는 약 한 시간 동안 세 차례, 갈 때 두 번, 돌아올 때 한 번 연속으로 연주를 주문했다고 한다.
왕은 작곡자가 헨델이라는 것을 알고는 과거의 섭섭함을 흔쾌히 털어버렸고, 이후 앤 여왕 이상으로 헨델을 우대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조지 1세가 하노버 선제후 시절 자기가 영국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을 알고 헨델을 미리 런던으로 장기간 휴가를 보냈으며, 헨델이 휴가기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헨델이 독일에서나 영국에서나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곡의 유래 그 자체에도 진위를 알 수 없는 면이 있으나, 영국 왕실의 뱃놀이 연회는 1715년과 1717년, 1736년의 3회에 걸쳐서 개최되었다. 그 당시 헨델이 작곡한 음악을 모은 것이 오늘날 <수상음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행한 춤곡을 모은 합주 협주곡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전부 스무 곡 남짓한 소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유행한 춤곡을 모은 합주 협주곡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외에서 연주되는 음악처럼 낭랑한 울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현악 합주 외에도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와 플루트, 오보에 등 목관악기가 각각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남성적인 강인함과 여성적인 차분한 정서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국 혹은 독일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산뜻한 이탈리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거대한 뱃놀이의 선상 연주를 위해 바로크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모든 악기들이 배에 실렸다. 단, 하프시코드는 그 크기로 인해 선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악장에 따라 주도적인 악기들이 달라지지만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대의 플루트, 두 대의 오보에, 한 대의 바순, 두 대의 호른, 두 대의 트럼펫, 현악기와 콘티누오가 필요하다. 이러한 악기 구성으로 야외연주에서 좀 더 효과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수상음악>의 일부는 좀 더 작은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보로 보전되기도 했지만 작은 편성의 오케스트라 버전은 야외 공연에는 부적합하다. 현악기 위주의 편성만 가지고서는 음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상음악>의 형식은 프랑스 풍의 서곡이 곡의 처음을 열고 미뉴에트와 부레, 혼파이프 등의 악장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크게 HWV(헨델 작품번호) 348, 349, 350 등 세 곡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모음곡 F장조 HWV 348
1. 서곡(라르고 – 알레그로) 2. 아다지오 에 스타카토 3. 알레그로 - 안단테 - 알레그로 다 카포 4. 미뉴에트 5. 에어 6. 미뉴에트 7. 부레 8. 혼파이프 9. 알레그로 10. 알레그로 11. 알라 혼파이프
모음곡 D장조 HWV 349
1. 서곡(알레그로) 2. 알라 혼파이프 3. 미뉴에트 4. 렌토 5. 부레
모음곡 G장조 HWV350
1. 알레그로 2. 리고동 3. 알레그로 4. 미뉴에트 5. 알레그로
그러나 당시 뱃놀이에서는 이와는 다른 배열로 연주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조지 1세 앞에서 연주되었을 때는 왕이 탄 배와 놓여 있는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서 연주 스타일과 곡목이 정해졌다고 한다. 즉, 왕의 배와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느리고 조용한 음악을, 왕의 배와 멀어졌을 때는 좀 더 크고 강인하고 빠른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이다. 출판업자 프리드리히 크리산더가 출판한 헨델 전집 악보에 의하면 D장조와 G장조 모음곡이 각 부분의 춤곡들을 섞어서 연주되곤 했다고 한다.
이런 배열은 1788년 사무엘 아놀드가 출판한 헨델 당대의 필사본 카피에서부터 연유한다. 크리산더의 판본을 보면 HWV 349의 첫 두 악장이 1715년에 작곡된 F장조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편성은 원래 두 대의 내추럴 호른과 두 대의 오보에, 바순, 현악과 콘티누오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른의 팡파르와 오케스트라의 응답 말고도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협주곡과 유사한 바이올린 파트도 등장하지만 나중에 삭제되었다. 오늘날 연주시에는 각각의 모음곡에 특별한 순서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추천음반
해석은 원전연주가 대세이나 조지 셸 지휘, 런던 심포니 음반(Decca)에서 하티가 편곡한 화려한 관현악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먼저 언급하고 싶다.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Philips)은 간결하고 명쾌하며 참신한 곡상을 전개하고 있다. 트레버 피노크 지휘(Archiv)도 이 곡의 필수 음반으로 빠지지 않는다. 시원스레 뿜어내는 내추럴 호른 연주와 현악의 앙상블은 물보라가 튀듯 상쾌한 물 위의 분위기와 부합된다. 예르베 니케(Glossa)는 원전연주이면서 야외음악에 걸맞게 110여 명 연주자들이 박진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명연이다.
글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전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전 <객석> 편집장 역임.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누비길 즐겨 한다.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HWV 351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독일 작센 지방의 소도시 할레에서 태어났다. 바흐의 고향 아이제나흐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동부 독일의 시골 마을이었지만, 바흐와 헨델은 생전에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바흐는 평생 독일 땅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며 지낸 반면, 헨델은 전 유럽을 무대로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그의 독일 이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조지 프레데릭’이 되었다. 국제적인 활동을 많이 해서인지 헨델의 음악은 개방적이고 광범위하며, 감정적이고 선율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위법적이고 드높은 이지적 고양감을 이끌어내는 바흐와는 대조적으로 헨델의 음악에는 대중적인 면이 많다.
헨델이 추구한 음악세계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중심으로 한 성악곡과 무대음악이었다. 고향 할레를 떠나 함부르크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한 헨델은 1702년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린 주자가 됐고, 북스테후데를 비롯한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연주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이탈리아에서 3년간을 지냈고,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의 궁정에 들어가 궁정악장으로 활약한다. 헨델은 종종 자리를 비우고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느라 게오르크 선제후의 눈치를 봐야 했는데, 1711년부터는 아예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그러다가 영국 앤 여왕이 급히 서거하자 불편한 관계였던 게오르크 선제후가 조지 1세로 등극하는 위기가 닥친다. 그러자 헨델이 <수상음악>을 작곡해서 조지 1세를 달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수상음악'과 쌍벽을 이루는 헨델의 걸작 관현악
<수상음악>과 더불어 헨델의 야외 음악으로 쌍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왕궁의 불꽃놀이>이다. 18세기 중엽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위를 마리아 테레지아가 계승하는 것을 반대하며, 그것을 빌미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일으키고 유럽 각국이 참여한 전쟁이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주요 지원 세력은 영국이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가 유럽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영국의 식민지 상업 제국이 위협받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은 1689~1815년 동안 지속된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 다툼의 한 국면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며 1748년 10월 체결된 엑스 라 샤펠 조약은 이후 영국과 프랑스 간의 분쟁의 불씨를 남기기도 했지만, 오스트리아의 영토 대부분에 대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속권을 확증했다. 오스트리아를 지원한 영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평화를 되찾은 1749년 4월 27일, 런던의 그린 파크에서는 불꽃놀이가 열렸다. 이 날을 기념해 헨델이 작곡한 곡이 <왕궁의 불꽃놀이>였고 같은 날 불꽃놀이 개최 전에 이 곡이 초연되었다.
헨델은 24대의 오보에와 12대의 바순과 콘트라바순, 9대의 트럼펫, 9대의 프렌치 호른, 3대의 케틀드럼, 숫자가 지정되지 않은 사이드 드럼(스네어 드럼, 작은북)들을 가지고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이 곡을 작곡했다. 초연 시에는 100대의 관악기가 참여해 야외용 음악을 위한 거대한 음향을 구축했다. 초연 전에는 이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대규모 리허설을 보기 위해 1만2천여 명이 넘는 구경꾼들이 런던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 날을 런던 역사상 최초의 교통체증이 일어난 날이었다고 보는 흥미로운 시각도 있다. 당시 신문에는 “런던 브리지가 어찌나 막히는지 3시간 동안 단 한대의 마차도 지나갈 수 없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축제 당일의 불꽃놀이는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곡을 연주하고 101발의 캐논포가 발사된 뒤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고, 로켓과 온갖 불꽃들이 공중으로 쏘아 올려지는 모습은 대단히 훌륭했지만, 불꽃놀이의 핵심이었던 회전불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머지 불꽃탄의 색과 형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많아 축제는 애처로울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화재도 일어나 화가 난 불꽃놀이 기획자가 축제 집행관에게 덤벼드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야외무대를 위해 구성된 거대한 오케스트라 편성
제1곡은 프랑스풍의 서곡으로 D장조의 4/4박자 행진곡풍으로 펼쳐진다. 제2곡은 빠른 템포의 프랑스 춤곡 부레(Bourée)로 이루어져 있고, 제3곡은 시칠리아 풍(Alla Siciliana)의 느리고 엄숙한 춤곡이 빠른 환희로 바뀌는 형태를 갖는다. 제4곡은 레주이상스(Réjouissance, ‘기쁨’이란 뜻으로 18세기 경쾌한 소곡에 붙는다. 제5곡은 우아한 춤곡 미뉴에트 두 곡이 이어진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작품에는 24대의 오보에와 12대의 바순과 콘트라바순, 9대의 트럼펫, 9대의 프렌치호른, 3대의 케틀드럼, 숫자가 지정되지 않은 사이드드럼(스네어 드럼, 작은북)들이 사용됐다. 헨델은 악보의 파트마다 악기의 수를 명확하게 지정했다. 서곡에서는 3명의 연주자가 3대의 트럼펫을 연주하고 24대의 오보에는 12대, 8대, 4대로, 12대의 바순은 8대와 4대로 나뉘었다. 헨델은 사이드드럼을 레주이상스와 두 번째 미뉴에트에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서곡’에서도 사이드드럼이 연주된다. 나중에 출판된 현악기가 사용된 스코어에 헨델은 바이올린이 오보에 파트를,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바순 부분을, 비올라가 저음 목관악기나 베이스 부분을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악단의 모든 연주자들이 연주에 참여하지만, 우아한 부레와 첫 번째 미뉴에트에서는 오보에와 바순, 현악 주자들만 연주한다.
<왕궁의 불꽃놀이>는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벤트 전문 ‘헨델기획’의 행사음악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악보가 출판되었을 때 헨델은 이 곡을 서곡의 형태로 소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국에서는 행사의 선전을 위해 ‘왕궁의 불꽃놀이를 위한 음악’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결과만 본다면 잘된 일이다. 만약 헨델의 의도대로 됐다고 하면 <왕궁의 불꽃놀이>는 딱딱하고 관료적인 ‘그들만의 음악’만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이 곡은 <수상음악>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의 명지휘자 해밀턴 하티가 편곡한 것이나 자이페르트의 편곡, 혹은 지휘자가 독창적으로 다양한 편곡을 결합시킨 경우가 많아 연주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음반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