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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역사는 동아프리카로서부터 시작해, 중동, 유럽, 인도등으로 퍼지면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커피가 퍼진 기록을 가리킨다.
커피의 시작[편집]
커피가 확실하게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커피나무는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의 카파 주에서 발견되었고 서기 850년쯤에 시작된 것으로 증명되었으나, 어떤 지식가들은 중동의 예멘에서 서기 575년쯤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1] 에티오피아의 산 속에 있던 유목민족들이 음료로 대신 커피열매를 통체로 먹었을거라고 하며,[2] 에티오피아의 갈라 족 (오늘날 오로모 족)은 이 커피나무의 열매랑 동물비계를 정전력을 가하려는 뜻에 섞어 먹었는데, 이와같이 커피의 섭취하는 문화는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했다는 점에 더욱 확실해진다.[3]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커피를 발견했을때 '번' (ቡና)이라고 불렀으며, 이 커피열매를 다양하기 섭취하기 위해 퀴시르 (قشر)라는 달콤한 커피와인이나 돼지비계랑 커피를 섞은 간식처럼 커피같고 요리를 많이 만들었다.[4]
커피는 생 상태로는 빨갛고, 체리같이 생긴 베리형태다. 대부분 커피의 설들은 이 열매로 시작을 가리킨다. 커피의 설로 제일 인정받고 가장 오랫동안 알려진 얘기는 11세기[5]에 아비시니아 제국 (현재 에티오피아)의 어느 설이다 (어떤 설들은 서기 850년이라고도 주장한다[3]). 에티오피아의 높은 지대에서 칼디라는 염소지기가 그의 염소들이랑 같이 음식 찾으러 산책하러 갔으며, 산책이 끝날쯤 되면 원래 돌아오는 염소들이 그날에는 안 돌아왔다. 칼디가 염소들을 찾어러 갔는데, 어느 관목에서 빨간 베리를 따먹고 활기차게 뛰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4] 그 베리를 먹은 염소들은 그날 밤에 계속 활발했으며, 불면증으로 수면을 못 취했다고 한다[6]. 칼디는 이 베리들의 효능을 보기 위해 직접 베리들을 섭취했고, 정력적인 효과를 주었다고 한다. '천국에서 온 베리들' 이라고 믿었던 칼디는 자기 지역의 수도원장에게 이 베리들을 소개했지만, 칼디의 급하고 변한 성격으로 인하여[7] 수도원장이 그 베리들은 신의 저주라고 대신 설득되어 화로불에 태워버렸다. 그러나 불에 타고 있었던 그 베리들은 커피콩으로 구워지면서 커피향 냄새가 수도원에 퍼졌고, 수도원에 있던 사람들은 커피콩에서 흘려나오는 카페인으로서 활발해지며 같이 효능을 느꼈다.
일본 나고야에 위치되어 있는 어느 커피샵. 가게 이름이 에티오피아의 설의 칼디(Kaldi)를 주목한다. 며칠 후, 한 수도자가 칼디가 소개한 커피베리들이 자기의 기도들이랑 예배들에 해결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8] 다시 그 화로불에 남아있었던 커피콩들을 건져내어 물이랑 섞어 마셨다. 다른 수도자들도 피곤함을 쓸어내려고 직접 빨간 커피베리들은 가꾸기 시작했으며[9], 커피콩에다 물을 섞어마시기 시작했다. 이렇게 커피음료가 탄생했다고 한다.[10]
“ | Encompassed on all sides by the enemies of their religion, the Ethiopians slept near a thousand years, forgetful of the world by whom they were forgotten. (그들의 종교의 적들이 전면에 포함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수면을 거의 천년동안 취하는 사람들이었고, 자기가 사는 세상을 몰라보던 사람들이었다.) | ” |
—에드워드 기번 |
칼디외에도 또 다른 커피의 대한 전설들이 있다:
- 중동에서 전해지는 설이다. 이슬람 종교의 어느 데르비시가 적들한테 사막으로 추방당했을때 근처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어떤 남자의 목소리를 환장하기 시작했다. 데르비시가 결국 커피나무의 베리랑 물을 섞어 마시려고 했지만, 열매가 원낙 딱딱하고 물에 녹지 않아서 그냥 우려낸 물을 대신 복용했다. 정력적인 효과로서 사막에서 나올수 있었고, 그의 고향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데르비시는 이 정신드는 효능이 알라신의 축복으로 믿었으며, 고향에서 이 커피음료에 대한 소문을 그 때부터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커피가 유명하게 됐다고 한다.[11]
- 예멘의 모카라는 도시에서 전해지는 설이다. 이슬람 종교의 제자였던 오마르가 기도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는데, 어느날, 그가 모카에서 추방 당했으며, 오사브 동굴 속에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굶어죽는걸 피하기 위해서 오마르는 옆에 있던 관목의 열매를 섭취하려 했는데, 너무 써서 열매들을 구웠고, 열매들이 너무 딱딱해져서 뜨거운 물에 우려 먹었다고 한다. 커피의 활발력이 가하면서 계속 동굴 속에서 살아 남았으며, 이 '마법의 열매' 소문이 모카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로서 모카에 추방을 내렸고, 오마르보고 돌아와달라고 요구했다.[12]
확장기[편집]
에티오피아 내[편집]
커피의 본고장인 에티오피아의 카프카에서 나중에 하라르로 퍼지기 시작했다.[1] 15세기에 에티오피아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3]
예멘, 터키와 아라비아 반도[편집]
13세기때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14-15세기에는 예멘으로 퍼졌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수피파 무슬림 순례자들이 예멘으로 돌아갈때 예배할때 쉽게 피곤하려 하지 않으려고 커피를 같이 들고 갔다.[2] 수피파들이 커피를 만들떼 커피콩을 골고루 구워서 갈은 후에 끓였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대적인 커피의 형태랑 방식이 아마 여기서 전해졌을거다.[3] 예멘에서는 커피를 잘 자라기에 흙이 매우 좋았다고 한며, 나중에 예멘의 커피는 너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커피를 예멘 밖으로 수출했을때 검사를 매우 깔끔하게 했다. 생 커피나무를 수출하는건 불법이였다[11]. 11세기때, 페르시아 (현재 이란)의 의사였던 이븐 시나는 커피를 약으로 삼았으며, 또 다른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알 라지는 '번천' (مجنب)이라는 약용음료도 개발했다. 15세기 말의 무슬림 할례자들이 에티오피아의 커피를 페르시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터키등으로 커피를 퍼트렸다.
아라비아 반도뿐만 아니라 터키에서도 커피가 가난부터 귀족까지 골고루 인기가 퍼졌다. 귀족들은 커피를 위해 잔치용 다방이 따로 있는 한, 돈 덜 있는 일반 시민들은 "카베 컨즈" (Kaveh Kanes) 아니면 "카베 카네"(Qahveh Khaneh)[6]라는 전통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터키의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소개 받았으며, 터키의 첫 커피하우스는 타타칼리 거리 (Tahtakale)의 키바 한 (Kiva Ha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체스나 백개먼등 보드 게임 했으며, 뉴스를 소통하거나 음악연주, 연극, 대화로 시간을 떼웠다. 커피랑 커피하우스가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터키랑 아라비아인들의 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위치가 되어, "위대한 자의 학교"라는 명칭까지 붙어졌고, 터키의 법에서 남편을 위해 커피를 안 끓어주는 부인을 이혼하는데 합법시켰다.
터키는 16세기때 오토만 제국으로 승격했다. 1536년에 예멘을 지배했으며, 오토만 제국은 예멘에서 자라고 있던 커피농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멘의 모카지방에서 자란 커피는 그의 독특한 맛으로 그 지역에서 만든 커피를 모카라고 불렀다.[4] 또한 오토만 궁전 (아마 톱카프 궁전)에서 커피를 끓이는 새로운 비법을 발명했는데, 커피콩을 불에다 바로 구워서 얇게 갈은 후, 석탄가루로 불을 떼워 물이랑 같이 끓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터키 커피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5]
커피를 즐겼던 방법
커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기575년과 850년 사이에 나타난다. 이때 커피는 음식으로 쓰였다. 분쇄된 원두를 동물의 기름과 섞고 공 모양으로 빚어 오랜 행군이나 전쟁 중에 힘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복용하였다. 공 형태로 만들어진 지방,단백질, 카페안은 힘과 주의력을 복돋아 주었는데 말하자면 초기 형태의 에너지바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