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2013년에 제작된 영화 변호인 중에서)
영화 명량을 또 봤다. 스테어가 가장 사모하는 님 이순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인지라
TV에서 나온다면 안 볼 수가 없다. 이순신 스토리중 스테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김명민의 연기가 빛났던 KBS '불멸의 이순신이다'.
난중일기에 가장 가까운 버전이고 이순신의 내면 연기가 돋보였던 드라마다.
스테어는 이순신을 연모한다. 그가 교과서에서 이미지 트레이닝 시키듯,
전쟁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그가 충신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스테어는 이순신이 충신이었다면 원균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테어가 이순신을 좋아하는 것은 성웅이나 충신이 아닌 인간으로써 지닌 그의 보편적 인간애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바른 사나이일 것 같은 이순신도 첩이 둘 있었다.
(첩을 둘씩이나 거느린 것도 스테어가 존경하는 이유중 하나다 ^^)
스테어는 어린시절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현충사에 가서 놀았다. 아마 그때는 이순신을 지금 대분분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처럼 나라를 구한 충신이자 영웅으로 존경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무미건조한 난중일기를
읽겠다고 설친적도 있다. 결국 끝까지 못읽었지만...
이후 이순신이 을 연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준 책은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다. 칼의 노래를 읽고 난중일기를
읽으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본론으로 이순신 영화중 가장 어색한 장면은 '충신'을 고문하는 장면이다.
조선은 왜 '충신'을 고문 했을까?
교과서에서 심어주는 이순신의 모습은 성웅이자 '충신'이다. 교과서에서 심어준 이순신의 모습으로만 볼 때,
왜란통에 아무리 당쟁이 거세고 무식했다손 치더라도 나라를 구하고 왜적을 물리친 '충신' 이순신을 포박하여
고문하고 삭탈관직하여 내쫓을 순 없다.
게다가 이순신은 당파와 관련이 없으며 당시 조정을 장악했던 사림파에 의해 추천된 인물이다. 하지만 이순신
탄핵엔 당파를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왜 그랬을까? 나라를 구한 충신 이순신 영화에서 이순신이 고문 당하는
장면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라를 구한 영웅을, 무엇보다 '충신'을 고문 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이순신은 충신인가?
이순신이 고문 당하는 장면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이순신의 행보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400년전 이땅은 공화국이
아닌 전제주의 국가였다. '짐이 곧 국가'인 시대이다. 이런 시대 이순신은 왕을 국가로 보지 않았다. 이순신은 급진주의자였다.
이순신이 급진주의자란 점을 받아들이면 이순신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풀린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쫒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 '명량' 중에서
이순신의 이런 생각은 현대 민주공화국 헌법 1조 2항에 등장하는 국가관이다. 21세기 2013년이 되어서
등장한 영화 변호인에서 등장하는 국가관이다. 20세기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조차 이런 국가관은 금기시
되어왔다. 하물며 16세기 전제주의 국가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상인 것이다.
이순신은 이런 국가관을 몸소 실천했다. 어명보다는 백성의 안위를 생각했다. 전제주의 국가인 조선은 엄격한 신분사회 였지만,
이순신의 군영에선 출신 성분 따위는 무시하고, 인재를 발탁했다. 이런 인재 발탁이 있었기에 이순신의 수군은 강했다.
이런 이순신이 조선의 왕이나 수구 세력의 눈에 충신으로 보일리 없다.
이들의 눈에 이순신은 국가 전복을 꿈꾸는 역도로 보였을 것이다.
이순신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이를갈며 때를 기다리던 왕과 수구세력은 명군이 합류하고 전쟁의 기운이 사그러 들자
이를 틈타 조정은 이순신을 압송하여 '네가 네 죄를 알렸다' 식의 고문을 한다. 선조와 수구들의 이순신에 대한 분노는
극에 치달았을 것이다.
이때 조선의 역도 이순신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다행히 살아 남았는데, 칠천량 원균의 대패와 왜군의 존재 때문 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왜군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했던 이순신은 왜군 때문에 왕과 수구세력으로 부터 목숨을 보호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선조는 원균의 패배에 어쩔수 없이 반성문과 함께 이순신을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한다. 이순신에게
반성문 쓰는 선조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
영화 명량은 이때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나라가 어찌되든 조선의 수구세력은 이순신이 공을 세우는게 싫었다.
수구들은 왕을 충동질하여 이순신으로 하여금 육군으로 복속하라는 어명을 내리게 만든다.
어명을 받은 이순신은 단칼에 어명을 씹어버린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언듯보면 대단한 충성심이 깃든 문장으로 보이지만,
스테어가 보는 문장은 이렇다 '임금이 뭐라 지껄이든 난 해군으로 이기는 전쟁 할꺼다' 라고 한 것처럼 보인다.
조선시대에 어명도 단칼에 씹을 수 있는 장수는 이순신 뿐이었다.
이렇게 어명을 한귀로 흘려버리고 이순신은 13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에서 왜군과 붙는다.
이순신이 어명을 씹는 장계에 12척이라 해서 명량해전 조선 전함이 12척으로 알려졌지만 1척이 더 있었다. 12나 13이나...
명량에서 이순신은 13척으로 330척(또다른 기록은 130척)의 왜군을 맞이하여 대승을 거둔다..
이 영화에선 회오리바다로 인한 자연의 도움으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한것으로 전해지고, 또 하나는 강강수월래와
쇠사슬을 이용한 승리 였다 전해지나, 실제 어떻게 승리했는 지는 기록에 없다.
쇠사슬 이야기는 전란후 세월이 흐른뒤 생겨난 전술이다.
스테어가 보는 영화 명량에서 감흥이 떨어지는 부분은 백병전 전투씬이다. 이순신은 천년간 자국에서 전쟁을 하며 실전
경험이 풍부한 왜군에게 백병전으로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은 장수가 아니었다. 명량의 바로 앞전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백병전 한다고 까불다가 조선 수군은 개죽음으로 전멸당했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백병전은 철저하게 피했다.
대신 화포를 운용하기 편리한 판옥선의 장점을 이용해서 일정거리를 두고 화포로 조근 조근 왜선을 작살내는 전술을 구사했다.
전투의 치열함을 나타내기 위한 어쩔수 없는 연출이었겠지만 스테어에게 이 부분이 옥의 티로 남는다.
명량 후속작으로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노량을 기대해 본다.
이순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이순신은 이 때도 어명을 씹고 출전한다. 이순신은 보통 출전하라는 어명을 씹었지만
이때는 출전하지 말라는 어명도 씹는다.
이순신은 한차례 겪은 고문으로 조선의 수구세력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살아
남아봐야 한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시칼 든 망나니 뿐이란 걸.....
이순신처럼 치밀한 장수가 작정하지 않았다면 적의 흉탄에 맞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또다른 비사처럼 전사한것으로 꾸미고 다른곳에 피신 해서 남은 여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공화국의 관점에서 '충신'이었겠지만, 전제국가에선 충신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특히 그가 당시 살아 있었다면....
------2019년.
첫댓글
스테어님 다운 분석입니다
공감이 가는ㆍ
그 한심한 간신배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그 끈을 끊어내지 못하고
이리도 설쳐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이순신 정예의 후예들이
그들 보다 더 많이 우뚝 서 있기에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글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오네요~^^
스테어님 오랫만에 멋진 글 올려주셨네요. 항상 깊이 있고 메시지 울림있는 멋진 글 감사히 읽습니다~^
이순신을 읽는 법을 알려주시는 군요..
근데.. 우리의 이순신도 첩이 둘씩이나.. 에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