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대 제27회 본부간부회 * 제33회 SGI총회 * 전국청년부 * 장년부간부회 (2009.3.4)
인생은 투쟁! 단결해서 나아가라
오늘 참석하신 세계 SGI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봄이다! 벚꽃이다!
꽃이 활짝 피었다!
희망이다! 승리다!
청춘 벚꽃이다!
엄한을
극복하고 꽃피우는
행복 벚꽃이다!
이 시(詩)는 소카(創價) 대학교를 창립하고 나서 2년인가 3년쯤 지난 봄에 몇몇 소카대생과 함께 벚꽃을 보며 읊은 그리운 추억이 담긴 시입니다.
평화로운 일본열도에 피는 벚꽃은 아름답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나도 벚꽃을 좋아합니다.
"벚꽃이 지네 / 남은 꽃잎도 / 언젠가는 떨어지리"라는 시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 시를 전쟁에 이용한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벚꽃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정말 싫었습니다"하고 개탄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꽃잎이 지지 않는 광선유포의 벚꽃을 피워야 한다! 꽃잎이 지지 않고, 영원한 행복과 평화로 가득한 묘법(妙法)이라는 벚꽃을 가슴속에 꽃피우며 이 인생을 꿋꿋이 살자! 웃는 얼굴과 용기와 그리고 승리를 가슴에 품고 승리해 나아가야 한다!"
이 말씀이 유언과 같은 도다 선생님의 외침이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오늘은 유럽에서도 벗이 참석하셨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음악가 구노가 작곡한 음악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겨울이 사라진 그대의 노래가 들리네"
"행복은 봄과 함께 오리라!"
우리도 날마다 부른다고 해도 될 만큼 학회가를 부릅니다. 노랫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며 계속 전진합시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명랑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승리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노래를 부릅시다! 용기와 희망이 가득한 노래를!
근행에서 독송하는 경전도 이른바 '시'입니다. '영원을 읊는 시'입니다.
'니지세손, 주산마이.' (爾時世尊 從三昧)라는 식으로 경전에도 리듬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철학자도 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덴마크SGI 멤버도 참석하셨습니까? (덴마크 벗이 일어서자 성대한 박수가 울려 퍼졌다.) 덴마크 민중교육의 아버지 그룬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늘 노래하노라, 내가 품은 마음을 / 투쟁심이 있기에, 투쟁이 내 노래일진대"
그룬트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육자입니다.
이 말은 학회정신에도 깊이 통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세계 60개국에서 모인 위대한 광선유포의 지도자 여러분! 먼 길을 오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직장 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상황도 있었을 텐데, 그런 속에서 구도심을 불태우며 연수에 참석하러 일본에 오신 일은 대단히 불도수행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바로 광선유포를 순조롭게 진척시키는 '부처'와 같은 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어느 청년부 벗이 "60개국의 '6'이라는 숫자는 불전(佛典)에서 '구족(具足)'이라는 뜻이 있다고 밝혔는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이번 연수 자체가 세계광포의 존귀한 축도이며 결정(結晶)이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용자(勇者)가 모였습니다. 신심의 뜻만큼은 일본의 여러분도 뒤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오늘은 우리 예술부 여러분도 참석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예술부 벗의 활약은 동지의 긍지입니다.
모두 소중한 분입니다. 권력자보다 위대하고, 최고의 사명과 힘을 지니셨습니다. 모두 예술부를 격려하고 선양하며 진심어린 응원을 보냅시다.
오늘은 후계인 청년부의 간부회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당히 청년이 성장하고, 견고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인재가 속속 자라서 광포의 무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훌륭히 승리한 모습입니다.
학회의 미래는 양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장래가 명확히 보입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여자부 이케다화양회도 세계로 확대회고 있습니다.
여자부의 웃는 얼굴과 목소리는 정말 상쾌합니다.
광선유포와 사회의 '황금기둥'인 장년부 여러분, 수고하십니다!
장년부가 가장 중요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젊으시군요. 훌륭합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청년층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장년부'즉 '청년부'라고 할 정도로 의기 드높게 나아가야 합니다. 이 점을 남보다 먼저 실천하며 젊고 활기찬 기개로 불타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단체든, 국가든 청년의 마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몇살이냐'고 묻거든 한 서른살쯤 빼고 대답해도 좋을 성싶습니다.
아프리카의 세기
이번에는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에서 존귀한 SGI 동지가 처음으로 연수에 참석하셨습니다.
가봉의 연락책임자인 크리스타안 디디에 무이티 씨는 최고 학부인 국립 오마르봉고대학교 교수이자 교무부장이십니다. 잘 오셨습니다!
가봉은 적도(赤道)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으며 태양이 빛나고 미래가 기대되는 천지입니다. 실은 내가 대담집을 발간한 대과학자 폴링 박사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59년에 부인과 함께 가봉을 방문하셨습니다. 대담에서도 그 추억을 말씀하셨습니다.
가봉의 국장(國章)에는 '단결' '노동' '정의'라고 씌어 있습니다.
또 "단결해서 전진하자."라는 말도 씌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가봉의 번영을 그리고 '아프리카 세기'의 영광과 승리를 기원하고 응원합시다.
올 봄에 남미 브라질 천문학자 모우랑 박사와 내가 천문학과 불법(佛法)에 관해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발간할 예정입니다.
서양에서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계승한 제자 플라톤을 근원으로 하는 철학이 커다란 흐름을 이뤘습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의 진실한 제자로서 불법의 인간주의를 현대에 전개하며 말하고 또 말하고, 쓰고 또 썼다고 자부합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전집>은 전 150권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또 SGI회장의 인간주의를 연구하는 기관이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생기고 있다.)
지금 태양의 불법이 확대된 곳은 192개국입니다. 세계 끝까지 광선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 시대는 일본이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니치렌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세계광포를 '반드시 달성해 보이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도다 선생님도 "다이사쿠라면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으면 "다이사쿠(大作), 다이사쿠"하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광포의 역사를 '크게(大) 만드는(作)' 투쟁을 의탁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홍교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기에 선생님은 "이대로 가다가는 광선유포를 하는 데 5만년은 걸리겠다."고 개탄하셨습니다.
가마타에서도, 분쿄에서도, 내가 절복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용감하고 힘찬 행진곡에 울려 퍼지도록 승리에 이은 승리의 전진을 이어갔습니다.
'오사카 투쟁'에서는 '설마가 실현'이라는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말년에 "이 투쟁으로 역사를 남길 수 있었다. 모두 자네 덕분이다."하고 기뻐하셨습니다.
권위를 휘두르는 중이 있었습니다. 증상만에 찬 간부가 있었습니다. 군부에 투옥됐던 스승은 몸이 몹시 상하신 상태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20대인 내가 광선유포의 대지도자인 스승의 활로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찬란한 창가(創價)의 신시대를 구축했습니다.
"나는 좋은 제자를 두었다." "다이사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은사(恩師)의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에 울려 퍼집니다.
진실한 제자의 투쟁은 누가 보지 않아도 어본존이 칭찬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마음의 벽을 뛰어 넘어
브라질 모아랑 박사는 대답집 간행에 즈음해 얼마전 '후기'를 써서 보내셨습니다.
후기에는 "그 어떤 일보다 이 대담집이 발간되기를 몹시 기다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중요한 보배입니다."하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은) 행동하는 지도자로서 세계 192개국으로 SGI를 확대하고, 평화와 문화 그리고 교육이라는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회원의 탁월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셨습니다. 회원들은 스승의 뒤를 이어 이 '세 기둥'을 더욱 확대하며, 모든 신조와 종교의 벽을 초월해 인류의 '철학적 중심 사상'으로 만들려고 건투하고 있습니다."
나에 관한 일은 차치하고, 전 세계 동지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대와 높은 평가를 담은 목소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소개했습니다.
(모우랑 박사는 이렇게 썼다.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과 SGI, 그리고 회원 여러분 덕분에 나는 '한 사람'의 마음에 간직한 위대한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확신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에 맥박치는 엄청난 애정과 가치관, 그리고 '선(善)'을 창조하고 소생시키는 훌륭한 가능성을 다시 한번 통감할 수 있었다."
또 2005년 일본 방문을 회상하며 "SGI 회장을 비롯해 친절하신 가네코 부인을 직접 만나 뵈었다. 그야말로 우주와 혹성이 '인간의 편이 되어주는 마법(魔法)과 같은 순간'을 맛보았다."라고 썼다)
현재 나는 미국 교육철학을 이끌고 있는 존 듀이협회 게리슨 회장과 대담을 진행 중입니다.
게리슨 회장은 은사 도다 선생님이 청년에게 장래를 의탁한 기념일인 '3.16'의 의의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회장은 청년이 바로 창가학회를 영원하게 만드는 '열쇠'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것은 청년입니다. 청년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으며 청년만이 달성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늙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지금 다시 한번 청년에게 초점을 맞추어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청년을 위해 정의와 진실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학회를 덮친 수많은 파화합승의 움직임에도 준엄할 정도로 현증(現證)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불법'이고 '승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승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게리슨 회장의 말씀을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3.16은 청년과 같은 도다 회장의 기개와 그곳에 모인 젊은 날의 이케다 박사를 비롯한 청년들의 '마음'이 만나 영원한 것이 창출된 의식이 아닐까요."
참으로 올바르게 보고 계십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을 혼신을 다해 모셨습니다. 말도 다 할 수 없는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스승을 지키며 끝까지 모시자고 각오하고 투쟁했습니다. 그러했기에 학회는 어떠한 난이 있어도 제천선신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스승을 경시하고 학회를 얕본다, 요컨대 신심이 없다, 이것이 퇴전자의 본질이었습니다.
(게리슨 박사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케다 박사의 모습에서 순간순간을 스승과 함께 꿋꿋이 사는 진실을 보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의 정신은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쉽니다."
"이케다 박사의 리더쉽으로 SGI는 각국의 풍습을 폭넓게 받아들이며 불법의 '수방비니(隨方毘尼)'의 법리를 세계에서 실천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것과 교류함으로써 개인도 단체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SGI는 그 가능성을 어제까지나 열어갈 것입니다.")
20여회에 걸친 '태양의 노래' 퇴고
청년부가 애창하는 노래 중에 '태양의 노래'가 있습니다. 여기서 다같이 불러보면 어떨까요.
(소카 글로리아 취주악단의 연주로 남자부 참석자를 중심으로 '태양의 노래' 1절을 합창했다.)
훌륭한 노래, 고맙습니다.
일전에도 어느 유명한 사회적 지도자가 이 '태양의 노래'를 듣고 "굉장한 노래입니다. 감명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학회에 관해 여러 각도에서 알아왔지만 이 노래로 다시금 매료되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태양의 노래'는 28년 전 (1981년) 가을에 탄생했습니다.
노래가 있는 곳은 발전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곳은 행진하는 기세도 강하고 행동도 민첩합니다. 투쟁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밝고 힘찬 노래소리가 없는 세계는 언젠가 쇠퇴할 것입니다.
어쨌든 '태양의 노래'가 탄생한 해는 내가 '계관시인' 칭호를 받은 해이기도 합니다.
(1981년 세계시인회를 주재하는 세계예술문화아카데미가 SGI 회장에게 '계관시인' 칭호를 수여했다.)
이해(1981년) 11월, 보름달이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나는 가가와 아지의 시코쿠연수원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청년부 대표가 모였습니다.
여러분은 아지에 있는 연수원을 아십니까.
(시코쿠에서 온 참가자가 "예!"하고 대답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시코쿠 동지 여러분에게 안부 말씀전해 주십시오.
그날 저녁, 나는 청년부 대표와 간담을 했습니다. 청년부 대표들은 '선생님,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하며 밤새 적성한 가사 안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시코쿠(四國)는 '시코쿠(詩國)' 즉 시인의 지방이라고도 읽습니다. 말은 지혜가 있으면 얼마든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청년들과 이야기하며 '아, 학회 청년들은 훌륭하구나!'하고 생각했던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악한 무리에게 반전(反戰) 공세를 펼치겠다는 투혼을 불태워 만든 가사였습니다.
밤을 새서 눈이 빨간 청년들 앞에서, 가사를 한번 읽고서 '그다지 좋지 않군.'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알았어요. 여러분을 위해 돕지요."하며 함께 퇴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격려로 각지를 돌면서도, 수일 동안, 시코쿠를 떠나기 직전까지 20여 회에 걸쳐 진지하게 퇴고를 거듭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현재 온 천지에서 불리는 '태양의 노래'가 완성됐습니다.
원래 제목은 '여명의 노래'였습니다.
그것을 '태양의 노래'로 고쳤습니다.
첫 행도 원안에서는 "아아 여명의 때는 왔다"였습니다. 이 '여명'이라는 말은 빈번하게 사용되어서 최종적으로 "아 아 저 붉고 붉은 태양이 솟아"로 바꿨습니다. 사소한 작은 곳이 중요합니다. 가령 회합에서 '지도' 내용이나 사람에게 말은 건네는 '목소리' 등 무엇이든 조금만 마음을 써도 더 좋게 바뀝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극단적으로 다르거나 역량에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 하나로 그 사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또 '태양의 노래' 원안에서는 "비평하는 자들 있어도"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이 가사라면 비평하는 사람들을 한편으로는 긍정해 버리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비평하는 자들아 물러나가라"고 강하게 표현해 그런 존재와 투쟁하고 간언하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검토하면서 모두에게 '투혼'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월사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퇴고를 했습니다.
작곡할 때도 내가 "아아 절 붉고 붉은 … … "이라고 가락을 흥얼거리자 곁에 있던 시코쿠 음악대 벗이 오선지에 그려 넣었습니다.
그 부분을 첫머리로 해서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태양의 노래'는 나와 청년부가 사제불이(師弟不二)의 마음으로 만든 '정의의 노래'이기에 불멸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광선유포는 세계평화의 근본이 되는 길입니다.
나는 광포를 달성하는 창가학회를 지키는 존귀한 여러분의 일을 결코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오늘 남자부 '아성회(牙城會)' 여러분도 참석하셨나요?
그럼 이전에 '아성회'에서 분투하신 분?
(장내에서 많은 벗이 "예"하고 힘차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아성회는 정말 잘 분투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도 잘 분투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장년부 '왕성회(王城會)'도 '회관 엄호(嚴護)' '학회 엄호'라는 사명을 맡고 계십니다.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긍지도 드높게 사명을 완수하고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학회는 아성회가 있었기 때문에 지킬 수 있었습니다. 증상만에 찬 간부가 지킨 것이 아닙니다. 아성회가 지켰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설령 눈곱만큼 작은 일이라도 모두 마음을 썼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보더라도, 그 본질을 간파해서 승리하도록 손을 쓰고 가치를 창조하지 않으면, 세계광포의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도다 선생님은 엄하게 훈련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옷차림이나 머리가 단정하지 못한 점을 비롯해 세심한 부분까지 주시하셨습니다.
때로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꾸지람 듣는 일이 두려워서 멀어지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떠날 자는 떠나라! 겁쟁이는 쓸모 없다. 진정한 제자가 한 사람 있으면 족하다. 그 한 사람에서부터 수천, 수만, 수백만이라는 인재가 배출된다."
선생님은 이렇게 확신하셨습니다. 참된 제자는 홀로 일어섰습니다.
학회에는 지금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엄호의 깃발도 드높이
1971년 1월의 일입니다. 남자부 리더가 당시 각지에서 '회관경비'라고 일컫던 그룹을 전국단위 조직으로 결성하기 위해 내게 상의하러 왔습니다.
나는 "광선유포 아성을 지키는 인재 육성의 조직이므로 '아성회'로 하면 어떻겠는가."하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같은 해 2월 1일에 아성회를 결성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학회 초창기부터 '아성'이라는 말을 대단히 중시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과 나는 1954년 2월 20일에 이튿날로 예정된 오사카, 사카이, 야메 세 지부총회에 참석하게 위해 오사카에 갔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지도를 구하며 속속 달려오는 간사이 지구부장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사이는 도쿄에 버금가는 아성이어라!"
나는 '젊은 날의 일기'에 '오사카의 아성' '선생님의 아성' 등으로 수차례 '아성'이라고 썼습니다.
(이케다 SGI 회장이 집필한 '젊은날의 일기'에는 "오사카의 아성도 해마다 견고해진다." "광포 아성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도다 선생님의 아성인 일본정학회에 편집부원으로 입사."라고 씌어 있다.)
'아성'은 '대장이 거처하는 곳' '성의 중심이 되는 건물' '투쟁의 근거지'라는 뜻입니다.
'아기(牙旗)를 세운 성'입니다. '아기'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대장이 거처하는 곳에 세우던 깃발을 말합니다. 맹수가 엄니로 몸을 지킨다는 상징으로서 깃대 끝을 상아로 장식했습니다.
이렇듯 '아성'에는 중요한 뜻이 담겼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명(冥)의 조람(照覽)'을 깊고 강하게 확신하기 바랍니다.
모두 아성회 여러분의 고생을 아직도 잘 모릅니다. 진지하고 철저하게 경비에 임하는데, 그 진심을 몰라주는 경우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과 치하하는 마음을 담아 여러분의 공로를 다시 한번 찬탄하고 싶습니다. 아성회, 왕성회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대학자이자 명문 모스크바대학교 창립자는 누구일까요? (장내에서 "로모노소프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모스크바대학교는 창립 25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합니다. (1755년 창립)
나는 여러분을 대표해 이 세계적인 학부의 '명예박사' 학위와 '명예교수' 칭호라는 두가지 영예를 모두 받았습니다.
창립자 로모노소프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투쟁한 횟수와 승리를 거둔 횟수를 똑같이 여기고, 생애를 싸움터에서 살며 투쟁하는 사람은 커다란 상찬을 받을 만하다."
인생은 영원한 투쟁이고, 반드시 승리해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정확히 35년 전인 1974년 9월에 당시 소련을 처음으로 갔으며, 이때 모스크바대학교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변함없이 모스크바대학교와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대학 본관은 학내 중심에 우러러볼 정도의 초고층 건물로 우뚝 서 있었고, 규모가 장대했습니다.
당시 소카대학교는 개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소카대학교는 1971년에 개교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세계적인 명문대로 만들자.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위대한 학부로 만들자.'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지금 소카대학교는 바라던 대로 신시대에 걸맞은 이상적인 학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기쁩니다. 관계자 여러분에게도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첫 방문에 이어 나는 그 이듬해 5월에 다시 모스크바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캠퍼스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때 나는 장려한 본관 9층에 있는 총장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모스크바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을 열었습니다.
나는 총장실 중앙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 대학 수뇌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호흐르프 총장이 날렵한 동작으로 일어서셨습니다.
그리고 엄숙한 어조로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을 개최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어서 대학 수뇌가 인사를 했는데, 모스크바대학 측이 모든 면에서 엄격히 심사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한 경과보고를 상세히 발표하셨습니다.
총장에게 건네 받은 학위기에는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 많은 수확을 거둔 활동과, 여러 나라 국민의 평화와 우호 심화를 목표로 한 적극적인 활동을 기리며 모스크바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하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해외에서 받은 1호 명예박사 학위입니다.
당시 중국과 소련이 서로 대립하는 시대였습니다.
나는 불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평화를 바라고, 중소 양국의 우호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또 일본에서도 소련이나 중국에 편견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든 타개하고 싶다는 부득이한 심정으로 1974년 5월 이후로 약 1년간에 걸쳐 중국을 세 차례, 소련을 두 차례 방문했습니다. 미국도 방문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문화와 교육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용감하게 대화를 하러 나서고,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일이 '몰이해의 벽'을 부수는 근본적이 힘입니다.
모스크바대학교가 그런 활동을 진지하게 바라보시고, 최고 영예를 안겨주셔서 황송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무거운 책임도 느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모두가 도다 선생님이 훈도해주신 덕분이라는 생각도 깊이 들었습니다.
나는 '도다대학' 졸업생입니다. 선생님은 일대일로 모든 학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수여는 그대로 은사에게 바치는 보관(寶冠)입니다.
또 나는 이런 수여식 때마다 평화와 문화 그리고 교육 활동에 온 힘을 다 쏟으시는 전 세계 동지 여러분과 영예를 함께 나눈다는 심정으로 받습니다. 그 마음을 부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스크바대학교 '명예교수' 칭호 수여는 2002년 6월. 또 중국의 첫 명예학술 칭호는 베이징대학교가 1984년 6월에 수여했다.)
스승의 위대함을 끝까지 밝혀야만 제자입니다.
나는 마키구치 초대 회장, 도다 제2대 회장을 세계에 선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평생 두 선생님의 제자로서 사는 삶을 관철할 작정입니다.
스승은 이용해서 자기가 잘난 것처럼 뽐내는 인간.
스승의 은혜를 잊고 스승을 얕잡아보는 인간.
더 나아가 스승을 질투하고, 스승을 괴롭히려는 인간.
그런 은혜도 모른 인간만큼은 결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장래를 위해 엄격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지내신 셀리그먼 박사를 아십니까?
(미국 멤버가 "예"하고 대답했다. 이어서 소리를 맞춰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미국의 벗은 쾌활해서 즐거운 기분이 드는군요.
학회의 조직은 자유분방함과 명랑함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곳에서 정말로 전진하는 힘이 생깁니다.
나와 셀리그먼 박사는 '마음'이라는 우주를 둘러싸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박사는 우리가 사업이나 인생에서 실패하거나 힘든 일을 겪거나 할 때,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장내에서 "마음입니다" "신념입니다" "체력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훌륭한 대답입니다.
모두 우수하군요.
셀리그먼 박사는 "그것은 바로, 모두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낙관주의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낙관주의는 '희망'을 말합니다.
대성인은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어서 1253쪽)고 말씀하신 것처럼, 불법에서는 온갖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낙관주의가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역경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여러분도 사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론 연구로 유명한 미국 관슨 박사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요청을 받아 1995년 1월, 하와이에 있는 국제 학술기관인 '동서센터'에서 강연했습니다. 그때 관슨 박사도 참석했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리더는 조직이 커지면 사소한 일은 남에게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커져도 사소한 데까지 두루 마음을 쓰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학회로 말하면 간부 자신이 조직의 제일선에서 투쟁하는 여러분에게 어디까지 마음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발전의 열쇠입니다.
초창기에는 조직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홀로 서서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점점 커지다 보면 그 위에 느긋하게 앉아 으스대는 간부가 나타납니다.
무엇 하나 훌륭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해 열심히 활로를 여는 제일선의 투쟁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다며 하찮게 여깁니다.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거기에 파멸의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다리가 없으면 걷지 못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어디까지나 '제일선에서 투쟁하는 사람'이 훌륭합니다.
착실히 광포에 면려하는 '무관(無冠)의 사람'이 위대합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간부는 절대로 오만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의 훈도가 있기에
러시아 극동국립공과대학교 투르모프 전 총장이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대학교는 2007년, 이케다 SGI회장에게 명예교수 칭호를 수여했다.)
여기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있습니까? ("예"하며 몇 사람이 일어섰다)
수고 많습니다!
전 총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역직이 있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온 사랑하는 대학사업에 앞으로도 내 인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대학은 내 고향이 되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대학 발전을 위해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교육자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교육자는 학생이나 생도를 절대로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청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자는 결심이 없으면 전정한 교육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교활하고 요령만 피우는 인생을 절대 걸어서는 안 된다고 내게 각인시키셨습니다.
그런 위대한 선생님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대지도자론, 인간의 미세한 데까지 미치는 마음을 모습을 배웠습니다.
그런 훈도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 광선유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보다 은혜를 아는 개가 낫다."
이 말은 페르시아의 격언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엄하게 지도하셨습니다.
또 독일의 철학자 칸트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악마적 악덕은 인간의 악행을 훨씬 뛰어 넘을 만큼 그 정도가 나쁘다. 그러한 악행의 대열에 드는 것이 다음 세가지 즉 질투, 망은,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법난의 옥중에서 마지막까지 읽으신 책이 칸트입니다. 도다 선생님도 자주 칸트의 철학을 인용하셨습니다.
'질투'가 화합을 어지럽힙니다. '망은'이 불법을 파괴합니다.
내가 회장을 사임했을 때도 절정기였던 학회의 발전을 질투하는 비열한 반역자기 있었습니다.
악의 말로는 엄합니다.
악을 보고도 못 본척하고 투쟁하지 않는 인간은 영원히 후회를 남길 것입니다.
악에게 속아 자비심도 사제 정신도 사라지면 이미 불법의 세계가 아닙니다. 두 번 다시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미래를 위해 이것만은 말해 두고 싶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힘차게 나아갑시다! 여러분의 힘찬 모습이 내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엄하게 외치셨습니다.
"권력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해일과 같다. 어설픈 인간의 신념 따위는 잠시도 버티지 못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승리해야 한다!"
이런 기개로 나아갑시다!
말법은 오탁악세입니다. 우리가 창가학회라는 민중의 '안전지대'를 넓히기 위해 용감하게 투쟁합니다!
도다 선생님 지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듣지 않으면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법이다. 그곳에서 잘못이 생긴다. 그러므로 거듭, 거듭 주의시켜라."
주의시켜야만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주의를 주는 일이 자비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합에서 우쭐해져서 으스대지 마라! 혼자서 수다를 떨어 독무대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제 끝냅시다."하고 말하고 이 지도를 보여주면 됩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신심을 하므로 서로 질투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며 어본존을 섬긴다. 이 정신을 화합승(和合僧)의 정신이라고 한다."
함께 기원한다. 신심으로 단결한다, 이것이 광선유포의 동지입니다.
보기 흉한 질투로 동지를 분단시키는 것은 파화합승의 대죄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신심을 실천하지 않는 간부를 늘 훈계하셨습니다.
"신심이 고인 물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인 물은 흐르지 않아 썩고 만다.
간부도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다. 가장 조심해야 할 중요한 점이다."
남에게 고생을 강요하고 자기는 움직이지 않은 간부, 말뿐이 간부는 필요없다. 선생님은 참으로 엄하셨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황폐해진 들판에 서서 도다 선생님은 학회를 재건하셨습니다.
모두 가난했습니다.
모두 궁색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모두 그것을 잊고 있다.
물론 집에 가서, 식사도 형편없다. 집도 궁전처럼 크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이라며 비하하겠지만, 당치도 않다!
인간 그 자체가 위대하다.
더군다나 광선유포를 끝까지 관철하는 학회원이 바로 숭고한 부처다. 최고의 인간이다."
이런 긍지로 나아갑시다!
(장내에서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은 대단한 일도 하지 않고서 부인에게 으스대다 오히려 꼼짝 못하게 되지 않도록 슬기롭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도다 선생님은 부인부 벗에게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표층(表層)이 아니라 근본의 생명을 응시해야 합니다.
진실한 생명을 응시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부처가 될 몸이 아니라 우리 몸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아무쪼록 굳은 신심에 서서 명랑하고 유유하게 영원한 행복을 확립하기 바랍니다."
장래 언젠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포를 위해 투쟁하는 바로 내 자신 속에 부처의 위대한 생명이 약동합니다.
부인부 여러분은 영원한 대복덕을 쌓아 올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은 청년부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지금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더 좋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묘법을 똑바로 믿고 생애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살아간다면 반드시 최고 불멸의 인생이라는 행복의 결승 점에 다다를 것이다."
이 대확신을 젊은 여러분에게 드리며 스피치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아무쪼록 몸을 소중히 하세요.
끝으로 다 같이 제목을 부릅시다.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기원하면 됩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유복해지도록'이라든지 뭐든지 좋아요. 어본존에게 열심히 기원해야 합니다.
기원하는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소원만족의 경애가 빛납니다. 그것이 묘법의 힘입니다.
(SGI 회장을 중심으로 참석자 전원이 창제했다.)
장시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랍니다!
(여기서 SGI 회장의 제안으로 해외동지를 칭찬하고 부인부, 여자부, 음악대, 합창단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한 벗의 행복과 승리를 기원해 만세를 불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외 여러분도 정말로 고맙습니다!
보답하는 의미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리겠습니다.
(SGI 회장은 피아노로 가서 사명의 싸움에 나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미래의 승리를 의탁하는 '다이난코', 그리고 '벚꽃'을 연주했다.)
해외에서 오신 여러분은 존귀한 분입니다. 세계 광선유포를 실현하고 계십니다. 부처와 같은 존귀한 분입니다.
다 함께 정중하게 경례하며 최대로 감사하고 최고로 상찬합시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또 만납시다! 오늘은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여러분, 만세! 만세! 생큐!
2009.3.4
-화광신문 820, 2009.3.20-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