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엠에프 시대때 발생된 노숙자 라는 용어 는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훨 넘게 사회의 단면으로 자리 잡고 정착되었다.
하기야 세존도 사회적 용어로서는 노숙자 이다.
예수도 노숙자 아니던가.
이것은 온 인류의 다양한 직업관으로 보아도 지탄을 받을 대상은 아닌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가 있고, 어떤 과도기가 필요하다면
신문덮고 박스깔고 잘 수 도 있고,거리의 스산함과 일신을 의탁할
지점이 상실되면 언제나 그렇게 과정을 겪을 수 도 있다.
나는 딱 3 일간 노숙자 신세가 된 적이 있었다.
출감하고 사랑하는 내 여동생 집에 들어 가 있었는데
오빠의 초라한 몰골과 가족적 연민에서 많은 회한과 아픔이
동시에 표출되고 , 나를 위해 정성들여 편안하게 당분간 살면서
생각하자고 하였다.
살다보면 그렇다 . 그래도 가장 힘이들때는 동기간이 최고이다.
그것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머무르기로 하고, 여정을 풀고자 징역보따리를 풀고있는데
아파트에 왠 낮선 남자가 들어왔다.
알고보니 여동생의 남편인 매부가 아니였는데 동생과 같이 산다고
인사를 했다.
동생은 이러한 사실을 오빠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당시 오빠가 두려웠던 사실에 의하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그 때를 회자 했다.
당시 어머니도 이 사연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음에도 말을 해주시지도 안했기에 몰랐다.
그러다 보니 머무를 장소는 아닌것을 직감하고. 못나도 오빠인데
사실파악이 안되는 시점이라 이해의 관점으로도 같이 동거한다는 사실은
가능한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못나도 집안가장인데 이해될때까지 격을 풀 수는 없는 일이였다.
갱생보호소를 찾아갔더니 하루를 재워주었는데 다음날
리어카 하나와 현금 30 만원을 주고 장사나 해 보라 하였다.
과일 몇점 도매시장에서 매입해 돌아당기며 팔아보라고 말 했다.
리어카 현물보관소에 갔더니 돈 5만원 에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
구비되어있었는데 이를 활용하고, 징역출감당시 통장에 기록된
월금이 43 만원 도합 78 만원이 되었다.
동생이 걱정할까바 어디 여행이라고 가 보아야 겠다고 했더니
20 만원을 주었다,
안양으로 내려와 방한칸 구하고자 하였으나 방이 없었고
지하 방 의 허술한 헛간 같은 곳이 있었는데 한 삼일 지나야만
방이 빈다는 주인할머니 말씀에 5 만원을 주고 계약하고
보증금 15만원 월 20 만원 짜리 보금자리를 만든 계기는 되었지만
3 일간이 문제였다. 안양공원에 가서 한 삼일 노숙한 기억이 난다.
여관도 몇일 거 할 수도 있었지만 주어진 재산을 한달간이라도 유지하려면
최소의 잉여비도 모자랄 판이니 계획이 설때까지 여타 심정이 복잡하게
굴러가는 마당인데 노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 차를 구입한 시절에 차안에서 보름간 잠을 잤던 시절이 있는데
총괄적으로 18 일간 노숙을 한 셈이다.
노숙의 기본 은 우선 땅 위에서 자야지 콘크리트 바닥에 잠을 자면 병이 걸린다
공원 구석 으슥한 땅을 찾는 자리는 어떤 밭이였는데 도열된 나무 곁가지를 치고
ㄱ 역자로 꺾은다음 그 속에서 박스와 신문지를 깔고 밤을 견디는 것인데
추우면 공원 공중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남 모르게 샤워도 해 보았다.
캠핑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어머님도 동생 집에 머물고 계셨는데 찾아는 뵈어야 했으니
가끔은 찾아 뵈어야 했고, 동생 모르게 태연하게 친구집에 간다는
식으로 회수를 점점 줄이면서 모색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이러한 지점역시 위기로 보아서는 아니된다는 어떤 바운다리는 있었으므로
철저하게 이성적이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내게 있어서 당시의 목표는 갱생이지 다른 어떠한 것은 사치 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 보게되면 짦은경험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다. 내 아버지가 6,25 때 인민군으로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내려오셨다가 포로로 잡혀 거제도 계시다가 반공포로 석방 단행에 의하여 이승만 에 의해 미군정의 감시를 피해 탈출했는데,
이북에 가족이 있었던바, 탈출하면 아니되었는데 친한이들이 튀어 나가니까
멋도 모르고 도매금으로 석방된 것이 내가 존재되어진 이유이다.
당신께서는 당시 갈곳이 없어
기차는 공짜로 탈 수 있었던바,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다리에서 지게 하나 구해서
3일간 지게를 의탁하고 노숙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3일 밤을 얼매나 고향을 생각하면서 울었던지 새삼기억이 난다시며 회상했던
그 말씀을 보면 철저히 인생유전인자를 답습했던 그런것이라 할까
아버지 생각이 내내 나기만 했다.
어쨌든 간에 그 새출발 지점으로 낙점된 노숙자의 심정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는 확보 했던 것인데 요즈음도 지나가다 노숙자를 보게 되면
빵도 사주고 옷도 사주곤 한다, 예전에는 무엇인가 드리면 감사의 표시를 한다거나
그렇게 되는데 과부심정은 과부가 안다고 진정성을 있었고, 오직 하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몇달전 구로역 근처에 기계설비소를 가던중 노숙자 를 보았는데
차를 세우다 발견하여 차에 보관했던 여러가지 과일과 파리바케트에서
구입한 빵봉지를 꺼내 갖다 드리면서 아직 싱싱한데 같이 나누어 먹읍시다
하면서 공손하게 내 밀었는데. 받지 않아 옆에다 그냥두고 가려는 참인데
어이 양반! 하고 불러세우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를 째려보듯이 보더니만 옆에 둔 빵봉지 등을 손으로 툭 밀어내듯이
하면서리 이런거 말고 한 5,000 원 짜리나 하나 주고 가시오... %&*^ 웅얼
거리는 것이였다.
최소한 필요치에 감당될만한 것을 내 놓고 가든지 아니면 빵 도로 가지고
가라는 이야기 였다. 적정거래가가 5,000 원이면 명함도 못 내민다.
아가리에 그냥 구둣발 자체를 처 넣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빵이 아까웠다, 격식은 이미 거래형태로 바꾸어진 시대상황과
맞물리고 있음을 알았다.
다시 수거해서 차에 갖다 놓고, %^&&****# 가장 본능적인
구석기 시대 용어로 거나하게 퍼붓고 욕값은 치루어야했다, 1000원짜리 5 매를 주고
온 적이 있다. 내 몸속에도 똥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시익 웃는다.. 이보소 양반 요즈음 어떤 시대인줄 알아?
나가면 밥주고 옷주고 ... 이게 왜 이래 시방...%%^%^^&# 아주 소화안되는
쌩똥 소리 듣다 보니 괜히 내 차에 험 줄까바 차를 빼서 유료 주차장에
가서 세우고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하는말이 이양반아 뭘 주려면 기성상표식품이거나 소주 등의
메이커를 주어야 저짜 구멍가계단골점에서 바꾸어 먹기라도 하지
말이야....무심코 내민 내가 잘못인가 를 한참 생각하게 만든다.
그 이후부터는 노숙자를 대하기가 좀 사회적 알력처럼 코로나 19 의
거리두기 식으로 그냥 스치게 된다. 십원짜리 욕 한것도 후회되고..
나는 잘못한 처신으로 그 인간한테는 낙점되어버렸다.
요즈음은 노숙자로서 편린을 구가할 수 있는 많은 헤택만 즐비하게 그런 요소들이
많게 되었다, 그 상태를 만족하는 안일함도 정당화 되고, 하나의 직업으로
나타나는 이 기이한 현상들,,, 처 잡아 입은것은 아웃도아의 명품 메이커를
입고 있었다. 일부분이겠지만 인간적인 사회의 교류성은 이렇게 타락되어져
가고 있었다.
얻어먹는 심정의 데드라인은 살피지를 못한 나의 자만일까?..내가 헷갈린다.
무신 별 생각이 다 든다. 세상은 이미 근대사 중국의 아편시대의
몰골을 대한민국이 벌써 내 밀고 있었다.
지 정신으로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억울함의 팽창지수..
기타줄 입바이 당겨 조으면 괴상망측한 소리 나다가
끊어지는 그런 격감의 변이성... 너덜한 자존심...
쓰레기만 뒤져도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이 시대의 자화상의 대변자 들이다.
한 나라의 국가의 위상은 인간들의 가장 기초적인 밑바닥 심성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달려 있다.
주변에도 보게되면 어떻게 하면 실업급여를 타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사가 더 팽배 해 있지, 직장을 구하여 좀더 발전할 수 있는 의지로서
노동이라도 제공하여 발판을 딛어야 겠다는 사상은 이제 애시당초 없다.
우리나라 의 가장 가난한 서민들의 분포가 어떤수치인지 모르지만
전부다 거지사상에 물들었고, 거지사상은 거래 일환의 살아가는 방식으로
여과없이 자리잡았다. 거기에 대하여 당연하다는 의식이
점점 정착화 되고 있는 작금을 우리는 개혁시대라고 이름한다.
아래가 있다면 위가 있는 사회적 수위의 계단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격세지감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말이다 공유되어진다.
이것은 인간들이 구가하는 공존개념은 진정 아닌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이들에게는 ,배고픔을 진정성있게 느끼지 못하고 항상 풍요의 우월의식이
고생하고 살아가며 식솔을 지키는 그 고생들을 감수하는 의지마져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해의 최대분량선상을 논 한다 하여도 이해문제로 해결 할 수 없는
파렴치성이다.
하기사 민주주의 꽃인 선거권 표 한표는 동등하기에
저런 환장하고 미친 녀석들의 당당함은 민주주의 꽃으로 합세 되고 있으며
배고픔의 인식을 거지사상으로 상계 되어지고 있다는 현실들,,,
자율의지의 황당한 타락진 계곡에서 물이 콸콸 흘러가고 있는 것과 같다.
과학도 기초과학이 발전해야 하며
주가도 바닥을 칠때 일어서야 하는 것이고
못산다는 인식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는 희망은 보이게 되어있다.
아이를 길러도 기초소양이 중요한 것 처럼
끈 떨어진 운동화 끈이지만 그대로 구멍사이에 끈은 매달려 있는 같은 표정들..
사회보장제도의 개념 목적이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은 지금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다.
기반조성의 기초의지를 부여해야 하고, 국민의 4 대 의무와
책임에 따른 한도 내에서 기초의식의 카트라인을 전제하고
서민들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현 수준에서 일만하면 배고픈 국민들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현실적으로 생각 해 보자.
국민을 뒤에서 밀어부칠 수 가 없다
앞에서 당겨야 한다, 딸려 오는 사람은 딸려 오고
이탈하는 사람은 이탈 한데로우선 놔두어야 한다.
실컷 올라가는데 이탈한 자 들 때문에 다시 스톱하고 바꾸기아 넣을까?
무신 성인정치를 하는가 말이다.
사람이 못 살게 되고 궁지에 몰리면 사기라도 처야 하고 도둑질이라도
해야 식솔을 부양할 수 있다는 긴장감은 모순적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목적과 의지는 다분한데 이 들은 애시당초그런것이 없다.
사기 안치고 도둑질 안해도 주워먹지 않아도 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지표의 확립에 노숙자를 당연하게 그 지위를 얻는 세상이 되어진다.
감방 갈 일도 없네... 얻어먹는게 당연하니까
감방 들랑날랑하면서도 계속 사업부도내고 또 시도하고
또 감방가는 사람보다 더 깊숙하게 타락한 징조가 당위성을 가지는 세계!
대한민국의 유토피아 세계이다.
요즈음 위안부 횡령문제가 사회를 시끄럽게 한다
그게 왜 그런가 하며는
어떤 대상한테 자선단체나 시민들이 모금해서 하루에 100 만원 들어왔다
치자, 맨처음은 아주 감동한다.
다음날도 100만원 그 다음날도 100 만 들어 온다고 하면
자꾸 세월에 가게 되면 이 100 만원 모금은 아주 당연하게 된다.
마땅히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모금이 한 10 만원정도 더 안들어오면 서서히 화가 나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감동지수인데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감동자체가 없어지다 못해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거 회게조작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고 결국 돈 전쟁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보조금 주고 하니까 빼 먹는 방법을 다변화 시키고
복지 엉터리가 되고 위안부 할머니가 뻥 터뜨리는 것이다.
꺼떡 하면 무신 모금단체 어쩌고 저쩌고 사회운동일환 어쩌고 저쩌고
이런것들이 노숙자들을 영 배려 놓은 것과 같은 번지라는 사실이다.
사회에서 딱 끊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기관에서 줘야 한다
무신 홍보고 지랄떠는가. 무슨 단체가 필요한데...
지금 문제인은 국부 증강의 일환으로 부동산 가격을 아주 높이 평가하면서리
세금을 와장창 거두워 적자를 메우려 하고 있고
없다는 빈곤 서민이라고 있지도 않는 신 개혁용어를 갖다 부치고
그 돈 가지고 나누어 주고 단체를 이용하여 부추기며 사회적
영향이 정책으로 이용수단화 되는 것이다.
맨날 옛날 소리만 우라먹고 그 넘의 뼈가 골병든것 역사지관으로
우라먹어도 얼매나 우라먹었는가
솥에 넣고 끓어도 뼈 진액은 하나도 없다. 개혁이라는 국물은
멀건 물만 가득하다, 괜히 불때고 솥단지 얹고 야단질 한다.
이상하게 이 정부는 항상 억울한 요소를 찾기에만 바쁘다.
그리고 남탓 한다. .
뭐 역사줄기 건드리는 것 마다 억울한 것 밖에는 없는 듯 하다.
이를 의학용어로는 피해망상증 이다. 물귀신 작전...
이것은 사실 양아치 정책이다.
있는 넘 들꺼 빼먹는 것은 분배의 정의를 명분으로 삼는지는 모르나
통괄적인 국민의 의식구조 부터 보편적인 양아치 사상만 길들여 지게 하는 것인데
나라는 나중에 어떻게 되겠는가?
있는 층 들이 조금 불리한 사람들에게 자율의지로 조금씩 주게 만드는 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 복지이지. 산길 목 지키고 바리케이트 치고 세금내놓으라는
산적 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나라 경제적 기원은 사유권의 보호정책과 시장자유주의를 채택한
정부에 의해서 그 법령에 기인하고 악쓰고 고생하고 피땀흘린자들이
전부 돈을 벌며 가정을 일구어 내고 자식들을 공부가르켰다.
지금 사회의 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
인권 인권 ... 이젠 개들도 개권 개권 하고 외칠때가 온다.
무슨 소리인가
개는 사람들 얼굴만 보고 산다.
그러므로 자기가 개 인줄 모른다, 자기도 사람인줄 아는 것이다.
자빠자 자는 꼴을 봐도 그렇고 우유나 비스켓 쮹쮹 빠는 일련의
개들의 일상사....
없는 자 들이 있는 자 들만 노리고 사는 것도 그러하다.
있는자들의 얼굴만 처다보니까 그들도 있는넘으로 착각하고 산다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미투? 이거 한근에 얼매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 밖에 없는 냄비 가 그렇게 소중하고 생명을 지키는 정서로
일관하는 자세라면 그런 정숙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실컷 만질 것 다 만지게 해 놓고 자기가 불리하고 토사구팽당한것
같으면 그때 억울해 한다. 여지없이 보상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결국은 냄비가 무기화 다.
이것이 습관하 되면 한 여자의 인생을 망처부린다. 이것 공갈협박의
일환이 목적이 되므러 그렇다.
성 치욕감을 느끼면 바로 고발하던지 해야 한다.
가만히 간 보다가 싹수가 자기한테 안 맞으면 그때 신파극을 하고
염병질 한다.
진정하게 한 남성을 사람하면 헤어져도 억울해도 고유한 사랑은
남는것이고 진정한 상처라면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그런 정의가 따르는 것이지
이게 말이되는가?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어요 하고 하얀손주건을 흔들어
주는 정신,,, 지금 어데갔노?
조명빨에 몸 흔들고 섹시한 옷 몇개 보일랑 말랑 걸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유흥하는 여성들이나 남성은 오로지 솔직한 냄비 고추 거래 목적 아니던가
그것이 더 좋고 그럴 수 있다.
직업으로 고려해서 돈 벌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성문화도 직업관이 있다면 그거 나쁜거 아니다.
미투 운동가들 보면 이건 직업도 아니고 표정으로는 청순하고
뒤로 호박씨발랑 까고 껍데기 영혼 디리밀고 춘향이 표정 지어서 되겠는가?
미투 운동하기전에 자기 몸을 정숙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보일랑 말랑 줄똥 말똥 어지간히 유혹점의 미감을 부여 해 놓고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입가심하다가
걸리는 과정들... 나는 너무 연약한 여자라서
여자란 이름으로 이렇게 당 합니다, 언론에 팍팍 게제하고 말이다.
보호해주세요, 경호를 부처 주세요...
얼마나 양면성이고 이중적인가 말이다.
이것이 사회에 아주 비중있게 혼재 되어져 있다는 사실.
한국의 문화세계는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제일 심하다.
비견할 것은 아니지만 인도나 중동에 가게되면 여성이 홀 서빙하는
자 들이 없고 전부 남자들만 드글드글하다.
여성을 격하시키는 것도 있지만 보호측면도 있는 철정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중간정도만 진행시키면 되는 거 아이라.
있는 그대로 버티는 증산층들의 가정행태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
남자들 진짜 정신 차려야 한다.
여자들 한테 다 주어도 정신은 주어서는 아니된다.
사회적 제도의 약점과 코만 거는 생활관은 어디에서 써 먹을 때가 없다.
서울에서 새는 물이 대구에서는 안 새겠는가.
단지 그 물에 노는 자 들만 노니까 다행이지 말이다
이런 것들은 이슈화 해서는 아니되는 치부들이다.
미투 운동중에서 유별하게 추종하는 자 들과
노숙자 들과의 관련된 팩트를 한번 연구해야 한다.
너무 심한 말 것 같지만 주소는 다르지만 번지가 같다.
인권의 최약발을 조장하는 대상들은 끼리 끼리 혼재 되면 된다.
노숙자 한테 보상을 걸어? 아에 조용할 것이다.
미투 목적의 대부분은 여기서 다 보이는 것이다. 쩐 의 전쟁에 귀착된다.
건드리게 해 놓고... 노래도 있잖아, 그래놓고 난 다음
건드리면 너 날 건드렸어? 이게 뭔가?
어머 태기를 느껴.. 산부인과 사진 제시하고
은밀한 말 녹음하고 공개하고 협박공갈질 아니여?
노점에 콩나물 하나 파는 억센 손 마디를 보여주는 그런 여성의
미관과 정신이 이 나라를 유지하는 철옹성이라는 사실을
빨리 재 인식 해야 한다.
이러한 국민들이 보편적인 일상을 가지고 사회를 지키고 있기에
나라가 이나마 유지된다는 것을 말 한다.
남성들이 건전한 이상
화장빨로 세상을 시비걸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사실을 빨리 알게 해야 하고
노숙자들은 없으면 얻어먹으로 당기게 해야 한다.
그래도 미투 처럼 줄똥 말똥 멀건 국물 몇 숟가락 주어야 한다.
일곱집 돌아당기면 한끼 되게 말이다.
더러브면 어데가서 일을 하던지 휴지를 줍던지 하면서
단계를 밟아가면 요렇게 살아서는 아니된다는 자괴감이라도 심어주어야 하지
건질 대상은 결코 아닌것이다.
인간문화는 자꾸 모순을 제거 해 나아가는 여행이지
모순을 인정하고 그 모순을 이해하는 관점으로서는
저 높은 도리천 세상에 이주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인간에게서는 전혀 용인해서도 아니되는 사상의 범람은
정치를 잘못하면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 이런 몰꼴이라는 사실을 알고
국민들은 한표 한표를 잘 던져야 한다.
일부분이겠지만 절대적으로 경계해야한다, 세균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