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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동철학 제28집 2004.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정 용 환*1)
요 약 문
이 글은 순자의 경험주의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첫째로 순자는 당시에 만연하
던 자연을 의인화 하는 천인합일적 신화를 깨트리면서 인간을 삶의 해석학적 주체로서 복권시
켰다. 순자의 천인분리 사상은 맹자나 노자와 같은 천인합일론자의 선천주의적 특징을 비판하면
서 후천적 경험을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중국철학사적 의의가 크다. 둘째 그러한
중국철학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순자는 절대 권위적 삶의 원본을 옹립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합일적 신화를 신비적으로 쓰고 말았다.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절대에 가까운 유교텍스트를
신봉하면서 그에 대한 부단한 모방을 표준적 삶의 양식으로서 정당화하려고 한다. 필자는 유교
텍스트에 대한 모방적 재생산을 추구하는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독단이 인간의 경험에 내
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약하는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순자는 유교 텍스트의 권위화에 의거
하여 동일한 모범을 유포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적 시도를 위험한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 내재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에 대한 욕구는, 마치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서 전혀 다른 양식으로서의 영화 춘향전을 만들어내려는 욕구와 마찬가지
로, 변형과 새로움에 대한 희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어떤 권위적 텍스트라도 경험을 지배하
는 유일한 원본일 수 없으며, 경험이야말로 자신의 앞길을 전개하기 위하여 여러 텍스트를 해석
학적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주요어 : 순자, 경험, 권위, 재생, 다양성
1. 서론
순자는 유전학적 본능이나 형이상학적 본성에 의해서 인간의 후천적
경험을 연역적으로 해석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후천적
경험 그 자체의 가치론적 우위를 주장했다. 또한 순자는 경험론자이면서
도 인간에게 주어진 생득적 내용을 경험의 출발조건으로 여겼다는 점에
서 선천성과 후천성의 균형 있는 분별을 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순자
*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
2 정 용 환
는 선천적 조건들을 인정한 상태에서 후천적 경험지의 개발을 주장함으
로써 현실 적용가능성 혹은 현실 설명가능성이 훨씬 높은 경험주의 이론
을 구조화하였다. 이와 같이 순자는 후천적 경험을 철학의 대상으로서 적
극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중국 사상사적 참신성을 갖는다.1)
그러나 그러한 참신성이 순자의 경험주의적 한계를 보상해주는 것은
아니다. 순자는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적 사례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함으
로써 후천적 경험을 독단적으로 축소하는 획일화의 편향을 벗어날 수 없
었다. 순자의 사상은 권위 있는 성인이 전래한 예법이나 지식을 최고의
모범으로 삼아서 삶의 가치를 제고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권위
적 경험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순자는 공자와 같은 유교의 성인을, 혹
은 5경과 같은 종래 유교의 텍스트를 절대적 경험의 지표로서 강권함으
로써 경험주의가 취할 수 있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사장하고 말았다.2) 이
점에서 순자는 후천적 경험에서 유래하는 여러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수
용하지 못하고, 오직 유교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여 거기에 순종하려는
1) 중국철학사를 기술할 때 풍우란(풍우란, 박성규 번역, 중국철학사 상권, 까치, 1999, 453
쪽.)과 임계유(임계유 편저, 전택원 번역, 중국철학사, 까치, 1990, 168쪽-171쪽.)는 순자의
철학을 유물론으로 평가한다. 그러한 평가는 순자 철학의 경험론적 특성과 관련되지만 너
무 소략하여 여전히 철학적으로 세밀한 분석을 가할 필요가 있다. 한편 노사광(노사광, 정
인재 번역, 중국사상사 고대편, 탐구당, 1991, 327쪽-346쪽)의 기술은 순자의 경험론적 특
성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노사광은 결정론적 입장에서 순자의 성악설을 비판
하면서, 순자의 주장처럼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하다면 어떻게 선왕의 모범적 법도가 나
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노사광의 성악설에 대한 결정론적 비판은 순자가 제시
한 선천성과 후천성의 구분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순자의 사상에서는 선천적 본
성이 후천적 경험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고, 오히려 후천적 경험은 조련을 통
하여 새로운 가치를 적극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순자
철학의 경험론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분석해 내고 아울러 그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순자 경
험론의 중국철학사적 위치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2) David S. Nivison, The Ways of confucianism,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996, 210
쪽. 필자는 니비슨이 파악하는 순자를 보는 시각에 동의한다. 니비슨에 의하면 순자는 결과
론(consequentialism)을 취하면서도 의무론적(deontological) 도덕과 등치될 수 있는 권위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순자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천적 조건에 만족하
지 않으면서 후천적 좋은 경험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그와 더불어
유교 텍스트를 의무론적 지침으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순자가 제시한 권위로서의 유교 텍
스트를 모든 개인에게 의무적인 것으로서 적용할 경우 경험 이전의 탈경험적 혹은 초경험
적 선택(meta-choice)을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순자의 지침에 대한 초경험적 선택은 자신
의 경험론적 결과론과 모순을 일으킨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짝을 사랑하기 전
에 그 짝과 결혼하기로 결정하고서 그 짝이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가설
적 확신 이상의 것이 아니다. 순자의 사상에서 그러한 괴리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유일의 지
침을 무조건적으로 강권하기 이전에, 경험론에 기반을 둔 행위의 지침을 어떻게 마련할 것
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3
소극적 경험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우선적으로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모든 인간이 순종할 수 있는 유일의 권위를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 할 수 있는가? 또한 기존의 권위적 모델이 나중에 고안
된 창의적 삶의 양식들보다 미래에도 우월할 것이라고 어떻게 미리 예단
할 수 있는가? 유교 텍스트를 앞세운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그 유일
성이 어떻게 경험론적 다원성과 창의성보다 우월한지 먼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선결문제가 논증될 때까지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보편적으로 일반화되어서는 안 될 논리적 취약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필자가 보기에 순자의 권위적 모델은 절대적 자리를 버리고 임시적 자
리로 하향 조정되어야 마땅하다. 어떠한 권위가 인간의 삶의 양식과 관련
된다고 한다면 즉 인간의 경험적 가치와 관련된다고 한다면, 그러한 권위
는 임시적으로 유력한 대안일 수는 있어도 절대적으로 유일한 대안인 것
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 어떤 특정의 권위가 공동체적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유력한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혹은 다른 곳에
서는 더 좋은 경험의 방식이 창안될 수 있다. 즉 권위의 옹립이란 인간의
경험에 내재하는 창조성과 다양성에 따라서 선택적이면서 가변적인 것이
다. 그렇다면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인간 삶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유
력한 수단을 넘어 유일한 권위로 자리매김 하려고 할 때 인간의 자유로
운 창의성에 대한 근원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험이 다양성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면 순자의 권위적 경험
주의는 그러한 다양성의 제약을 수용해야만 정당한 경험의 조련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경험적 다양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정
당한 권위적 표준을 마련하기란 극히 어렵다.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식은
여러 시공간적 조건에 따라서 무한에 가까울 만큼 찾아낼 수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기존의 권위는 특수한 다양성이 등장할 때마다 끊임없이 재
고되는 부정의 변증 앞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훈장을 떼고 다시 또
다시 논쟁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2. 경험의 선천적 조건
순자는 경험주의를 취하고 있지만 인간이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고 보
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백지상태의 완전한 무지에서부터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획득한다고 가정하면, 도대체 최초의 경험은 어떤 이유로 일어나
4 정 용 환
게 되었는지 그 동인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순자는 그러한 경험주의적
무한소급의 함정에 빠졌던 맹목적 경험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억지로 모
든 것을 후천적 경험에 짜 맞추려는 무모한 경험주의 신화를 쓰려고 하
기보다 본능이나 본성과 같은 선천적 특성을 수용하여 경험의 출발점으
로 삼고 있다.
순자가 제시한 인간 경험의 선천적 조건으로는 자연의 즉자적 운동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본능이 후
천적으로 경험하기 이전에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먼저 순자는 자
연운동의 필연성에 인간의 자의적 의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
다.
자연 운동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니, 성군이었던 요() 임금 때문에 존재하
는 것도 아니요, 폭군이었던 걸(桀) 임금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3)
순자에 의하면 자연의 운동은 인간의 목적론적 의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
이 그 자체에 운동법칙이 내재적이다. 이와 같이 순자는 자연과학적 필연
성의 문제를 인간의 감정적 좋음과 싫음의 영역에서 분리하였다. 순자는
인간이 자연의 외피에 덧칠해 놓은 맹목적 해설들을 헛된 집착이라고 비
판하면서 인간의 후천적 가설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당부
한다.
펼쳐진 별들이 하늘을 돌고, 해와 달이 번갈아 비추고, 사철이 계속 바뀌고, 음
양이 크게 변하고, 바람과 비가 널리 내리니, 만물은 각기 그러한 조화를 얻어서
생하고, 그러한 양분을 얻어서 성장한다. 자연이 왜 그렇게 운동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연 운동의 결과는 알 수 있으므로 신비하다고 부른다. 자연 운동이 이
루어 놓은 결과를 알 수 있으나 자연 운동 그 자체는 형체가 없어서 알 수 없으
니, 그것을 일러 자연 운동이라고 부른다. 오직 성인만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
는다.4)
자연운동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것에 의해서
인간의 삶을 해석해 내려는 시도는 맹목적으로 자연운동에 의존하게 하
3) . , , 桀. (본 논문에서 인용한 , , 老
, 老 등은 모두 참고문헌에서 밝힌 大系를 참고하였다.)
4) . ,, 代, 大, , 各得其, ,各得
其. 見其見其功, . 皆其, 其, .
求.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5
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순자는 자연과 인간의 영역을 분리
함으로써 지나친 자연환원론 혹은 물리환원론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순자의 천인지분() 사상은 자연 운동의 필연성을 그 자체로
확실하고 신비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보다 더 상위의 절대적 확증 체
계를 알려고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순자는 인간이 자연의 필연성을 넘
어서는 비사실적 절대담론을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인간의 헛된 몽환으
로써 자연을 인격화(anthropomorphism)하려는 미신적 주술쯤으로 생각하
였다. 순자는 자연 운동의 체계 자체를 넘어서는 메타적 확실성을 찾기
위하여 무한순환의 끝없는 여행을 떠나는 대신에, 물리적 법칙을 삶의 필
요조건으로 수용하면서 인간의 경험적 활동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치중하였다.
순자가 자연의 물리법칙을 수용했다고 하여 물리법칙 자체를 형이상학
적 토대에 의해서 절대적인 것으로 상승시킨 것은 아니다. 순자는 일상적
경험의 체계 전체를 확증하는 절대적 체계, 즉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원동자와 같은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를 무모하게 생각한다. 환언하자면 순자는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자
연법칙을 가능케 하는 그러한 토대에는 관심이 없었다. 현상적 자연 법칙
의 절대적 근거로서의 형이상학에 대한 순자의 부정은 “어떤 하나의 가
정에 대한 모든 검사, 모든 확증과 반증은 이미 어떤 하나의 체계 내에서
일어난다.”5)는 비트겐슈타인의 언명과 궤를 같이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반적으로 별들과 태양이 만유인력에 따라서 천체를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왜 그러한 만유인력의 관성적 운동이 있어야 하는지 그 이
유를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경험주의적 지식의 한계를 지적하면
서 자주 등장하는 일출의 예에서도 자연 운동의 필연적 인과성을 확증할
길은 없어 보인다. 즉 하루에 한 번씩 하늘에 떠올랐던 태양이 내일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예측은 경험적인 근거에서 볼 때 그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확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지동설과 만유인력의
원리에 의거하여 현재까지의 태양 운행의 주기를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내일 태양이 그러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순자의 자연 운동에 대한 불가지론 역시 인간의 지식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 한계에 대한 매우 솔직한 표현이다. 자연 운동의 근
원적 확실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칸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성의 한계를 넘
5)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번역, 확실성에 대하여, 서광사, 1990, 33쪽.
6 정 용 환
어서 사유하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변증에 불과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사유에 한계를 설정하여 자연 운동의 필연적 법칙을 인간의 기획에서 분
리함으로써 사유와 경험이 형이상학적 독단이나 미신적 맹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험주의자의 필수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순자가 제시하는 선천적 조건에는 자연 운동의 필연성과 더불어 인간
의 본능이 있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의 본능에 대하여 후천적 경험 이
전에 주어진 선천적 조건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순자는 성악설을 통
하여 (1)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욕망이 있으며, (2)그러한 선천적 본
능이 인간의 후천적 경험을 지배하는 본질적 원인일 수 없다고 하는 두
가지 전제를 취한다.
먼저 순자 성악설의 첫째 전제인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욕망이
란 신체의 다섯 감각기관의 활동, 식색과 같은 생리적 욕망, 구쾌피고의
심리적 반응 등이다.6) 이러한 본능은 그저 심리적 혹은 생리적으로 주어
진 것으로서 동물에게도 있는 생득적 욕구에 관련되며, 인간의 도덕적 가
치와 같은 고차원의 이념적 가치와는 관련이 없다. 맹자의 성선설에서는
인간의 본성으로서 선천적 도덕 감정인 인의예지()가 인간의 심
성에 보편적으로 내재한다고 봄으로써 도덕적 본질주의를 옹호하고 있지
만, 순자의 성악설에서 말하는 심리적 생리적 본능은 적극적으로 구현해
야할 절대적 가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폐기해야할 죄악의 뿌리도 아니다.
순자의 사상에서 인간의 심리적 생리적 본능이란 그 자체로는 어떠한 가
치론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자연 운동에 필연적 법칙이
내재하듯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삶의 출발점일 뿐이다.
성악설의 두 번째 전제에서는 후천적 경험을 선천적 본능에서 분리하
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순자는 선천적 본능을 필요조건으로서
인정하였지만, 그렇다고 선천적 본능에만 의거하여 인간을 해석하지 않
는다. 왜냐하면 순자는 인간의 본능이란 후천적 개발을 통해서 훨씬 상위
의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자는 勸
편에서 “배우기를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을 쪽에서 취했으나 쪽보다
푸르고, 얼음이 물에서 나왔으나 물보다 차갑다.”는 명구로써 경험의 중
요성을 역설하였다. 순자가 보기에 인간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기술과
윤리적 덕성은 선천적 가능성(potentiality) 안에 선취적으로 짜여져 있는
결정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히려 후천적 개발과 행위에 의해서 새롭게
6) , 천병돈 번역, 순자의 철학, 예문서원, 2000, 70쪽-71쪽.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7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경험이 결정적 가능성(determinate
potentiality)에 좌우된다고 한다면, 마치 중력에 의해서 떨어지는 돌을 숙
달된 훈련에 의해서 위로 치솟게 할 수 없는 경우처럼, 인간 삶의 행로는
정해진 운명처럼 진행될 것이지만, 순자는 그러한 결정론적 사유를 따르
지 않는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경험은 후천적인 학습에 따라서 상이한
결과를 야기하는 비결정적인 과정이다. 마치 집을 지어봄으로써 건축가
가 되고, 거문고를 탐으로써 악사가 되는 것과 같이,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7)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순자는 자연의 필연성과 인간의 선천적
조건으로서의 심리적 신체적 본능을 삶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순자는 자
연을 신화화 하려는 어떠한 미신도 부정하였으며, 인간의 선천적 조건에
본질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본질주의자들의 맹목성도 비판하였다. 순자
는 자연의 필연성과 인간의 작위성을 분리하였고, 나아가 인간의 선천적
조건과 경험적 개발이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하였다. 순자는 경
험적 가치를 자연적 필연성과 인간의 선천성에서 분리함으로써 본격적인
경험주의 철학을 예고하였다.
3. 경험론적 가치의 출현
순자의 경험적 가치는 인간의 선천적 조건에 대한 냉엄한 시선에서 비
롯한다. 순자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타고난 선천적 감정이나 욕구 등은 조
야한 것이어서 그대로 방치해서는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순자의
현실인식은 사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노자의 무위() 사상이나 맹자의
성선설적 낙관론과 상충된다. 그러므로 순자의 후천적 경험주의를 노자
의 소박한 자연주의와 맹자의 동기주의 사상에 비교할 필요가 있다.
먼저 노자의 무위지치()는 인위적 지식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
을 취하고 있다. 노자에 의하면 지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현자를 높이지
7) 아리스토텔레스, 최명관 번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1984, 제2권 1장, 61쪽-63쪽. 순자의 가
치의 습득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이나 기술처럼 후천적인 개발에 의해서만 성취된다. 아
리스토텔레스는 선천적 능력으로서의 본성과 후천적 습득으로서의 덕(혹은 기술)을 내용상
분명하게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도덕적인 덕들은 본성적으로 우리 속에 생
기는 것도 아니요, 본성에 반하여 우리 속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본성적으
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으며, 또 그것들은 습관에 의하여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또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능력을 얻고 그 후에 활동
을 전개한다. 그러나 덕의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덕을 얻게 된다. 여
러 기술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8 정 용 환
않아야 백성이 다투지 않으므로, 아무런 인위적 가식이 없을 때라야 세상
이 평안해진다. 같은 맥락에 따라 노자는 언표할 수 있는 도(道)에 대해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한다.8) 노자는 무위자연에 입각하
여 과도한 인위적 욕망을 해체하고 소박한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서
삶의 행복을 찾는다.9) 노자는 오직 과도한 사유욕와 소유욕을 버리는 길
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평안에 안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0) 맹자 역시
노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행복의 조건으로 미화한다. 다
만 맹자는 노자와 달리 인간의 사회적 예법 등이 인간의 심리적 동기에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다고 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맹자는 고자가 생리
적 욕구만을 인간의 본성으로 삼는 학설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윤
리야말로 제일 중요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역설한다. 맹자는 인간의 사회
적 윤리를 가장 중요한 선천적 동기라고 보면서 후천적 가공보다는 주어
진 본성을 정당화 하는 철학을 전개하였다.11)
순자가 보기에 위에서 언급한 노자의 무위와 맹자의 심리학적 동기주
의는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에 대한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노자
는 사람이 땅과 하늘을 본받으면서 자연의 도와 합일되려고 하였고, 맹자
8) , 老 1장. 可道道, 可, , 其.
9) 老 3장. , , 敆難得, 盜, 見可, 亂.
, 其, 其, 其, 强其骨. , 敢. , .
10) David S. Nivison, "Hsun Tzu and Chuang Tzu", Chinese Texts and Philosophical
Contexts(Edited by Henry Rosemont, Jr., Open Court, 1991), 136쪽, 니비슨은 순자와 장자
사상의 관련성을 ‘’의 관념에서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순자의 사상이 마음을 비운다는
측면에서는 노장의 사상과 유사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순자의 ‘’은 노장과 같이 탈권력
적이고 탈욕구적인 마음의 평정으로서의 종교적 ‘ataraxia’와 같은 관념을 추구하지 않는다.
순자의 사상에서 마음을 비우는 ‘’은 명확한 사고와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편견에 집착
하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11) 맹자의 선천적 본성론은 告장에 나오는 고자와의 논변에서 뚜렷하게 제시된
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이 중성적인 것 혹은 생리적인 욕구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
면,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인의예지()가 구비되어 있다는 선천적 도덕동기론을 펼
친다. 그 중 하나의 예를 들자면 고자는 인간의 본성이 자연상태의 버드나무와 같다면 인의
()의 정신은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이 후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맹
자는 버드나무의 본성적 결을 따라서 그릇을 만드는 것이지, 고자의 주장처럼 버드나무의
본성에 해악을 끼쳐서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즉 맹자에 의하면 고자와 같
이 도덕의 후천성을 주장한다면 선천적 도덕동기인 인의에 화를 끼치게 된다.( 告
. 告, 杞, 桮. , 杞桮. , 能杞
桮? 杞, 桮, 杞 桮, ,
? , .) 맹자와 고자에 대한 논변에 대해서는 임헌
규가 지은 유가의 심성론과 현대철학(철학과현실사, 2001) 71쪽-100쪽에 상세히 언급되
어 있다.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9
는 하늘에서 부여한 선천적 동기를 실현함으로써 하늘과 합일하려는 사
상을 펼쳤지만, 순자가 보기에 이들은 인간의 가치가 후천적으로 규정되
는 측면을 주의하지 못하였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은 생리적으로나 본성
적으로 태어난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인위적 가공을 통하여 그 이상
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순자는 노자나 맹자와 다르게 인간이 자연을 이
용하기 위한 경험론적 구도를 고안하였다. 순자에게 자연은 개발되어야
할 대상이고, 인간의 조야한 본성은 극복되어야 할 취약한 조건이었다.
순자는 지적인 창조를 통한 기술의 습득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았다.12) 이
와 같이 순자 사상의 특징은 이미 주어진 가치에 그대로 순종하기보다
새로운 가치를 인위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데 그 참신함이 있다.
자연이 인간의 가치를 창조하지 않고,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창조한다
는 순자 사상의 방법론적 전제 성악설에서 출발한다. 순자는 자연을 차가
운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인간의 심성 역시 적극적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조야한 상태라고 인식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나쁘다. 사람의 좋은 것은 인위적 노력()이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득을 좋아한다. 그러한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양보가 사라진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쁜 것을 싫어한다. 그러한 본
성을 따르기 때문에 강탈과 도적이 생기고 충신이 사라진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구가 있어서 소리와 여색을 좋아한다. 그러한 본성을 따
르므로 음란함이 생기고 예의와 법도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과 감정
을 따른다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 분수를 범하고 이치를 어지럽혀서 폭력으로
귀착된다.13)
12) 김형효, 물학 심학 실학, 청계, 2003, 119쪽-129쪽, 135쪽. 김형효는 맹자 사상은 본성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존재의 철학(philosophy of being)으로, 순자 사상은 지능에 의한 세상
의 소유라는 측면에서 소유의 철학(philosophy of having)으로 분류한다. 나아가 그는 가브
리엘 마르셀의존재와소유에나오는두가지소유양식인점유적소유(l'avoir-possession)
와함유적소유(l'avoir-implication)를소개한다. 점유적 소유란 대상을 자기 밖에서 소유하
는 것이고, 함유적 소유란 기술이나 능력을 자기 안에서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보기에 순자 사상은 점유적 소유뿐만 아니라 함유적 소유를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
다. 왜냐하면 순자는 고대의 모범적 예법이나 기술을 내면화시키는 함유적 습득을 통하여
존재됨의 가치가 상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맹자와 비교한다면 맹자의 함유적 소유
는 본성에서 기원한 것인 반면에 순자의 함유적 소유는 후천적 경험을 통하여 습득된다는
차이가 있다.
13) . , 其. 今, , 故,
, 故, , , 故亂
. , , , 亂歸.
10 정 용 환
경험론자인 순자는 인간의 자연 상태가 본래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연 상태라는 개념은 가설적인 것이어서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나기는
어렵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한 사회적으로 학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의 천진난만함이란 상상의 개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자가 말한 성
악설은 ‘만약 인위적 노력이 없다면’이라는 가설적 전제를 취하고 있다.
순자는 그러한 가설을 통하여 선천적 본성의 조야함을 지적하면서, 인위
적 노력에 의해서 삶의 양식을 더 가치 있게 변형시킬 수 있다고 본다.
순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 본성의 구체적 형태는 이기적 욕구이며,
이기적 욕구는 그 자체로 적극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순자는 인간의 가
치는 이기적 욕구를 넘어서 사회적 학습을 통해서 획득된다고 보았다.
사람의 본성은 배고프면 배부르게 먹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고자 하고, 피곤
하면 쉬고자 하니, 이런 것들이 사람의 성정()이다. 이제 굶주린 사람이 어른
을 보고서 감히 먼저 먹지 못하는 것은 사양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고, 피곤하여
도 감히 휴식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대신하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대저 자식
이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동생이 형에게 양보하고, 자식이 아버지의 수고를 대신
하고, 동생이 형의 수고를 대신한다. 그러한 두 가지 행동은 모두 본성에 반하고
감정에 거스르는 것이다. 따라서 효자의 도리는 예의()로 꾸민 질서이다.14)
순자는 인간의 이기적 상태를 선천적인 것으로 보는 한편, 인간의 사회적
질서에 대해서는 후천적인 것으로 해석하면서 후천적 가치를 선천성에서
분리한다. 순자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동생이 형에게 양보하는
윤리조차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서 성취된다고 본다. 순자는 사회적 질서
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효도와 공경의 정신
역시 선천적 감정에 반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순자가 보기에 인간이 타
자를 수용하는 사회적 관용으로서의 윤리는 경험적 습관의 결과일 뿐이
다.
이와 같이 순자는 인간의 선천적 이기성과 후천적 학습을 구분함으로
써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를 분리하였다. 순자 편에는 인간
의 소망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사실 세계의 객관적 세계상을 자세히 기술
하고 있다.15) 자연의 운행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어서, 사람의 소망과 관
14) . 今, 飢, 煖, , . 今飢, 見
敢, , 敢求, 代. , , 代,
代, , 皆. 道, .
15) 지음, 천병돈 번역, 순자의 철학, 예문서원, 2000, 43쪽-88쪽.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11
계가 없이 사계절의 변화가 나타난다. 순자는 사실의 세계에 인간적 가치
를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가장 몽매한 짓이라고 본다. 순자의 천인지분의
사상에 의하면 하늘과 인간이 인격적으로 소통한다는 애니미즘적 천인감
응설은 자연운동의 비인격성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서 취급되어 마땅하
다.
예를 들어 하늘은 사람들이 추위를 싫어한다 하여 겨울을 없애지 않고,
땅은 사람들이 광야를 싫어한다 하여 그 광야를 없애지 않는다.16) 사람
들 중에는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지만, 그것
은 천지 음양의 조화이므로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한 기우제를
지내어 비가 오는 것은 요행일 뿐으로 기우제를 지내지 않더라도 비는
내릴 것이다. 순자는 사람의 관상을 보고서 귀천을 판단하는 것 역시 사
실 세계와 가치 세계를 혼동하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다.17) 나아가
인간의 귀천 역시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김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
니라 인간의 후천적 활동에 의해서 좌우된다.
옛날에 폭군이었던 걸왕과 주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잘생긴 천하의 걸물로, 근
력이 매우 강하여 백 사람을 대적하였다. 그러나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해 천하의
큰 죄인이 되었으니, 후세에서 악인을 언급할 때 반드시 그를 떠올렸다. 이것은
용모에 의한 근심 때문이 아니라 견문이 적고 논의가 비루한 까닭이다.18)
순자는 사람의 선천성에 의해서 후천적 결과를 해석하려는 어떠한 자연
성의 권위화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부정한다. 순자는 자연에서 제공한 신
체의 아름다움은 인간 사회의 적극적 가치를 도출하지 못하며, 오히려 견
문을 넓힘으로써 인간의 자질이 발전한다고 보았다. 옛 폭군인 걸왕과 주
왕처럼 기골이 장대한 걸물이더라도 후천적 경험이 천박하다면 조야한
자연상태에 머물 뿐이다. 이와 같이 순자는 인간의 경험적 가치를 자연법
칙에서 분리하여 철학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경험론적 철
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16) . 冬, 廣,
17)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를 혼동하는 것에 대한 순자의 비판은 편에서 집
중적으로 드러난다.
18) . 古, 桀巨, 傑, 筋勁, . 國,
大僇, ,稽. , 見, !
12 정 용 환
4. 권위적 도구주의
선천적 사실과 후천적 가치의 세계를 분리하는 순자의 ‘천인지분(
)’의 이분법을 따를 경우 자연 그 자체는 더 이상 인간의 가치를 향상
시키거나 저하시키는 요인일 수 없다. 사실로서의 자연은 인격적 자유의
지가 모두 박탈당한 물리법칙으로서의 의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오
히려 인간 존재에 대한 가치론적 평가는 후천적 학습 여하에 따라서 결
정된다. 인간은 하늘에서 폭우가 내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
라, 우임금처럼 수로를 내어 폭우를 관리하는 자에게 가치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그러한 사람을 권위자로서 취급하는 것이다. 순자에 따르면
합리적 권위자는 인간이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후천적 학습을 통하여 삶
의 가치를 고양하는 자여야 한다.
순자는 자연적 사실과 후천적 가치를 구분을 통해서만 더 인간적인 인
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순자의 경험주의에 따르자면 인간의 삶
의 방식은 선천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므
로, 마치 사물을 사용하는 기술이 다종이듯이, 다양한 방식만큼 다종의
것이 생성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존재론적으로 심성에 주어진 일점 근
원을 향해야할 당위성은 없으며, 다종의 삶의 양식에서 끊임없이 선택하
는 것이다.19) 순자는 좋은 수단을 선택함으로써 더 인간다운 삶의 양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순자는 인간의 경험이 좋은 도구를 만남으로써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경험론적 도구주의를 취하고 있다.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사유한 적이 있으나 잠시 배우느니만 못하였다. 내가 일
찍이 발꿈치를 들고 멀리 보려고 하였으나 높은 곳에 올라가 널리 바라보는 것만
못하였다. 높이 올라가 손짓을 하면 팔뚝이 더 길어지는 것은 아니나 멀리까지
보이고, 바람을 따라 부르면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더라도 뚜렷하게 들린다. 수레
와 말의 힘을 빌면 빠른 발이 아니더라도 천리 길을 갈 수 있고, 배와 노를 이용
하면 물에 익숙지 않더라도 강을 건널 수 있다. 군자는 선천적으로 남과 다른 것
이 아니라, 사물을 잘 이용할 줄 아는데 그 특징이 있다.20)
19) David S. Nivison, The Ways of confucianism,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996, 115
쪽-116쪽.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도 순자는 도덕적 삶의 방식을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적당한 훈련을 함으로써 도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장과도 동일하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 이외에 후천적 지적 능력이 또 다른 인간 삶의 가
치적 원천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인간을 두 개의 재료(two sources)에 의해서 해석하였다.
순자의 그러한 인간관은 맹자가 인간의 심성적 동기 하나에 의해서만 인간의 도덕적 정당
성을 확립하려는 것과는 다르다.
20) 勸. , , , 登高見. 登高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13
순자에 의하면 인간은 주어진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넘어서 자연을 도구
화하는 더 좋은 기술을 취할수록 더 많은 가치를 얻는다. 순자의 경험주
의에 따르자면 인간이란 경험을 통하여 더 좋은 가치를 축적함으로써 발
전한다. 순자는 ‘발전’ 혹은 ‘진보’ 등의 개념이 인간의 경험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성립되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순자는 勸편에서 경험을 통한 질적 진보로서 학문을 규정한다.
배우기를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을 쪽에서 취했으나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만들어지나 물보다 차갑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에 들어맞을지라도 굽혀서
수레바퀴를 만들면 곱자에 맞게 구부러지니, 비록 볕에 바싹 말리더라도 다시 펴
지지 않는 것은 굽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대면 반듯해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롭게 되니, 군자는 널리 배워서 날마다 세 번씩 자신을 반성한
다면 지혜가 밝아지고 행동에 과실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다는 것을 모르고, 깊은 계곡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텁다는
것을 모르고, 선왕이 남긴 말들을 듣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모른다.21)
순자의 학문관은 사실의 차원에서의 바탕이 되는 자연과 그 바탕을 수식
하는 문화와의 차이를 진리의 원본으로 삼고 있다.22) 순자는 후천적 경험
을 고차원적으로 단련함으로써 선천적인 조야한 조건을 더 가치 있게 개
발하려고 한다. 순자는 이제 본능으로서의 욕구가 아닌 인위적 경험을 어
떻게 할 것인지로, 즉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의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로 사유를 전회하고 있다.
순자는 후천적 경험을 통하여 진보적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이유로
서 사려와 작위를 든다.
성인이 사려()를 쌓고 과거의 작위(故)를 익힘으로써 예의와 법도가 생겨
났다. 그렇다면 예의와 법도는 성인의 작위에서 생겨난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성인이 일반 대중과 같으면서 다르지 않은
것은 본성이고, 일반 대중과 다르면서 더 뛰어난 것은 작위이다.23)
, 加, 見. , 加 ,. 假, , .
假, 能, 江. 君, 假.
21) 勸. 可. 藍, 藍. , . , ,
其曲規, 槁, , . 故, 金, 君
己, 過. 故登高, 高, 谿, , ,
大.
22) 김형효, 물학 심학 실학, 청계, 2003, 103쪽.
23) . ,故, 起度, 度, ,
故. (---) 故同其, , 過, .
14 정 용 환
순자는 성인의 사려와 작위로부터 사회적 가치인 예의와 법도가 생겨났
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사려란 여러 생각들 중에서 더 좋은 것을 골라
내는 정신적 활동이고, 작위란 더 좋다고 생각되는 가치를 직접적인 실천
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순자에 의하면 성인이 필부보다 뛰어난 점은 더
좋은 생각을 고안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 있
다. 이와 같이 성인이란 사려와 작위를 통하여 경험적 가치를 극대화 한
자이다. 순자는 사려와 작위라는 경험론적 전제를 편에서 도식화
한다.
본성()의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 등을
감정()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감정이 드러나면 마음이 선택하는 것을 사려()
라고 부른다. 마음이 사려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能)을 작위()라고 부른다.
사려가 쌓이고 능력이 익숙()해진 뒤에 이루어지는 것을 작위()라고 부른
다.24)
순자의 사려와 작위가 구체화된 경우를 옹기장이와 목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순자는 옹기장이가 흙으로 항아리를 만들고, 목수가 나무를 깎
아서 그릇을 만드는 비유로써25) 자연물이 경험적 가치물로 변화하는 과
정을 설명한다. 자연물인 흙과 나무는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
물일 수 없는 무작위의 존재이지만 거기에 인간의 사려와 노동이 들어감
으로써 항아리와 그릇과 같은 상품가치를 탄생시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
서 순자의 사려란 자유로운 선택의지를 가리키고, 작위란 기술의 습득을
통한 가치의 구체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순자는 자신이 찾아낸 사려라는 경험론적 보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단순한 반복학습을 위한 도구로 하락시키고 말았다. 순
자가 주장한 ‘사려의 쌓임’이란 새로운 가설의 창안이라기보다 기존의 학
자들이 만들어놓은 개념적 모델들을 이해하는 이해력의 증가를 의미한
다. 그런 의미에서 순자가 말한 사려는 기존 지식을 수용하는 소극적 사
려만을 의미하며 창조적 지식의 창출에까지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한
다.
순자가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적 정신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이
24) . 怒樂. . 能動.
能.
25) . 陶器, 器工, 故. 故工器,
器工, 故.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15
유는 그의 사상이 강성한 국가를 건립하는 데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순자에 나오는 편명을 보더라도 , 國, , 君道, 道
, 强國 등 국가론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가
중요시 했던 후천적 경험 중에서 자유로운 창의적 사려의 기능은 거의
제 기능을 잃었음에 비하여 학습 이론은 강성국가를 위하여 크게 극대화
되었다. 순자가 보기에 마음의 사려는 기존의 성현을 이해하는 도구였고,
몸은 마음이 이해한 모델을 실천하는 학습의 용기와 같이 생각되었다. 즉
몸과 마음 모두 창의적 활동체이기보다 옛 이론을 흡수하는 스폰지와 같
은 수용적 도구로서 자리매김 되었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서 마음에 안착하고, 온몸에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
다. 단정히 말하고 점잖게 움직여 한결같이 법도로 삼을 만하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가 4촌()밖에 안 되니, 어찌 7척()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옛날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으나, 요
즘 학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
지만, 소인의 학문은 동물이 되려고 한다.26)
위의 인용문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몸에 성현의 학문을 수용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순자의 주장을 해석하자면 마음이란 정보를 모방하여 흡
수하는 기능을 하고, 몸이란 마음이 흡수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은 마음과 몸을 통해서 더 고차원적 정보를 흡수하여
실행하지만, 동물은 그러한 지적 수용력과 몸의 훈련이 불가능하므로 인
간보다 저차원의 상태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래서 순자는 소인의 학문은
미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상태에 비유하고 있다. 순자에
의하면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것은 전대의 좋은 가치를 학습에 의하여
마음과 몸에 재생한다는 사실에 있다. 순자는 모방과 학습을 통한 수용적
재생이야말로 인간의 후천적 경험이 지닌 중대한 가치라고 판단한다.
순자의 경험론의 화두는 견문에서 얻은 좋을 지식을 이해하여 현실로
재현하는 것이다. 순자는 경험론적 가치의 재생산을 위하여 권위적인 역
사적 모델에 안착하는 길을 택했다. 순자의 경험론적 학습 이론은 권위적
모델의 모방과 반복을 통하여 옛 성현이 창시한 가치를 동일하게 재생산
하는 것을 함축한다.
26) 勸. 君, , , , 動, 端, 動, 可
. , , 口, 口間, 曷軀? 古己,
今, 君, 其, , 禽犢.
16 정 용 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모방하여 군자의 언설을 익힌다면 존엄함이 널리 퍼져
서 세상에 편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은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보
다 편리한 것이 없다고 한다. 학문의 요체는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
보다 빠른 것이 없고, 예를 존중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27)
절대적 지표로서의 스승을 닮아가려는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깃대와
같은 하나의 목적론적 모델을 설정한다. 순자는 유가의 성인과 5경(經)
이 바로 그러한 깃대라고 생각하였다.
성인이란 도의 중추(管)이다. 천하의 도의 중추가 이것이다. 모든 왕의 도가 하
나로 관통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 , 記, 記 등의 귀착처
가 이것이다. 시에서는 성인의 뜻을 말하고, 서에서는 성인의 일을 말하고,
예기에서는 성인의 행위를 말하고, 악기에서는 성인의 조화를 말하고, 춘추
에서는 성인의 미언대의(大)를 말하였다.28)
애초에 순자의 경험주의적 발상은 인간의 모든 가치를 선천적인 본성
으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에서 출발하였으나, 이제 순자는 역사의
모델로 인간의 경험을 소급하려는 다른 형태의 환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
러한 순자의 경험에 대한 권위주의적 환원의 일차적 목적은 유교라는 사
상적 분파를 지향하는데 있다. 그 때문에 중국사상사에서 일반적으로 순
자를 유가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도 그가 유가의 경전을 권위적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순자의 권위주의는 유교 경전에 따라서 인간이 학습
될 때 가장 훌륭한 삶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유교적 권위주의로
귀결된다.
5. 권위적 재생의 도그마
필자는 이제까지 순자의 권위주의적 경험철학에 대해서 설명했으나,
그 부조리한 측면을 비판할 때가 되었다. 순자는 후천적 경험을 유교 텍
스트의 모방적 재생산으로 규정함으로써 실천의 목표를 확연하게 정했으
나, 한편으로는 경험에 내재하는 자유로운 창의적 정신을 무화시키는 일
방적 도그마를 전제하였다. 순자 경험주의의 교조적 성격은 인간의 후천
27) 勸. 其君, , . 故, 近其. 經,
其, .
28) . , 道管. 道管, 道, 故樂歸.
其, 其, 其, 樂其, 其.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17
적 경험을 유교 텍스트에 한정함으로써 인간의 경험을 닫힌 경험으로 고
착화 하는데 있다. 순자는 인간의 선천적 본성에 인간의 목적론적 비중을
크게 두지 않고 후천적 경험을 중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후천적 경
험을 유교 텍스트에 묶고 말았다. 순자가 내세운 유교 텍스트는 인간의
경험을 지배하는 전능자라기보다 다양한 경험의 방식들 중의 하나로 취
급되어야 마땅하다. 필자는 인간의 후천적 경험을 인도하는 어떤 가치 있
는 도구로서의 텍스트, 혹은 순자가 말하는 유교 텍스트가 비록 경험의
방법을 교훈적으로 지시할 수 있을지라도, 그러한 텍스트는 유일한 것이
라기보다는 다종 가운데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유교 텍스
트가 유력한 경험의 인도자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좋은 경험의 방법을 알
려주는 표시적 도구(denotative instrument)29)로서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순
자가 지정한 텍스트가 인간의 경험에 대한 유일의 권위적 지표로서 옹립
된다면, 인간의 삶은 그 텍스트의 수단으로 전락됨으로써 후천적 경험의
깊이와 폭은 고정적 도그마의 형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
에서 순자가 절대의 권위로서 제창한 유교 텍스트 역시 여러 텍스트 중
의 하나인 표시적 도구로서 자리매김 되어야만 권위적 도구주의의 도그
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순자의 모방적 재생산에서 동반되는 경험의 교조화는 ‘유교 텍스트가
인간의 후천적 경험을 전적으로 지도할 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문제를 넘
어서, 더 근원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는 인
간이 처한 환경 혹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해석에서도 그 다양성에 대하
여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한비자가 제시했던 수주대토(待)의 어리
석음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한비자에 따르면 성인이란 옛날 방식을 그대
로 따르지 않고, 영원불변한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그 시대에 알맞은 방
안을 찾아서 적용하는 사람이다. 만약 우 임금 시대에 나뭇가지를 엮어서
새둥우리 집을 지었다고 하여 후대에도 그와 똑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와 같이 옛 선왕의 정치를 단
순 반복을 통하여 재생산 하려는 행위는 마치 우연히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은 토끼를 얻었다고 하여 나중에도 그러하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과 마찬가지다.30) 옛 선왕이 정치에 썼던 옛 방식은 현대에 그대로 재
29) 표시적 도구(denotative instrument)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자 죤 듀이의 학설을 참고. 죤 듀
이, 신득렬 번역, 경험과 자연,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2, 21쪽.
30) . 耕, , , 頸. 其, 冀得,
可得, 國. 今, 當, 皆. 한비자는 순자의 경
18 정 용 환
현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순자의 유교 텍스트 결정론은
인간의 사려 기능을 하나의 고정된 울타리 안에 제약함으로써 새로운 상
상력과 가설을 부정하는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순자의 유교 텍스트 결정
론은 인간의 경험에서 새로운 가설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경험을 강요하고 말았다. 이러한 순자의 일방성은 인간에 대하
여 스스로 상상하고 인정하고 선택하는 자율적 존재로 이해하기보다, 어
떻게 하면 원본을 닮은 복사본이 될 것인가라는 재생의 차원에서 이해한
다.
듀이는 경험을 단순히 대상을 지각하는 일차적 경험과 그러한 일차적
경험을 반성적으로 설명하는 이차적 경험으로 나누었는데,31) 이 구분에
따르자면 순자의 모방적 재생은 인간의 반성적 사고의 폭을 위축시키고
있다. 순자가 말한 경험이란 오관에 의한 감각적 지각으로서의 경험에 모
방적 재생으로서의 학습을 부가한 것으로, 창조적 사유로서의 경험을 간
과하고 있다. 순자의 방식대로 유교의 텍스트만을 경험의 원본으로 수용
하게 된다면 인간의 사유에 창조적으로 머리를 내미는 가설과 상상의 체
험을 매장하고 말 것이다. 나아가 순자의 유교 텍스트가 인간의 반성적
체험에 앞서 권위자로서 옹립된다면, 그것은 비경험적인 방식으로 경험
론을 구성하는 형식상의 오류까지 범하는 것이다. 어떠한 모범적 텍스트
가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행위자 스스로에 의해서 실험되고 검증되는 경
험의 과정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정당한 것임에도 순자는 선경험적 구조
로서 경험의 지표를 획정하고 말았다. 그와 같은 고정된 선경험적 지표의
주입적 반복에서 발생하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험적 체
험의 과정에서 행위 주체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독단적 교조주
의의 맹종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과학적이든 철학적이든 사고의 목적은
선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덜 독단적이게 하는데 있기 때문이
다.32) 순자적 권위 모델은 기독교에서 신의 왕림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
이는 것과 같이 주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어떤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도그마를 생성한다. 맹자가 인간의 선천적 본성으로 후천적 경
험론을 계승하면서도 경험의 창조성을 부각시킴으로써 훨씬 진취적인 경험론을 전개하였
다. 순자는 고대의 권위적 모범으로서의 텍스트에로 현재의 경험을 환원함으로써 모방적
경험으로 고착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한비자는 고대의 권위적 모범들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창의적 경험을 철학의 화두로 제시하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31) 죤 듀이, 신득렬 번역, 경험과 자연,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2, 20쪽.
32) 전게서, 42쪽.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19
험을 정초하려고 하였다면, 순자는 권위적 텍스트로 인간의 후천적 경험
을 정초하려고 하였다. 비록 순자의 권위 모델이 맹자의 본성주의적 정초
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역시 선경험적 권위로서의 텍스트에 근거하여
행위 주체의 선택적 경험의 자유를 앗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권위적 텍스
트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권위를 형성해가는 경험적 과정이 없이 무조건
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데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있다. 고대 주 나라 시
대에 쓰이던 윤리와 도덕률이 순자 당시의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 물음의 피드백을 거치지 않은 채 고대의 텍스트만을
절대적인 권위로서 옹립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적 경험에 대한 폭력으로
서 기능할 뿐이다.
인간의 현실을 해석할 때 후천적 경험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기
존 권위의 적용 가능성이 현실에 대한 해석 가능성보다 선취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선천적으로 주어진 자연 환경과 본능이 경험을 절대적으로 규
정하지 않는다는 순자의 조건을 따른다면, 후천적 경험은 인간의 사려 혹
은 다양한 해석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초막을 짓고 부모의 삼년상을
행하던 옛 유가의 예법을 오늘날 다시 찾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초막을
짓지 않고 삼년상도 지내지 않았던 흉노의 풍습을 동물과 같은 오랑캐의
풍습으로 여기던 화이()관은 정당한 것인가? 조선 말기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던 서양인을 동물로 여기었지만, 지금에는 왜 머리에 염
색을 하고 맨살이 드러나는 짧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일까?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된 사실에서 볼 때 인간의 사려와 작위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
고, 오히려 다양한 해석가능성에 의해서 부단히 새로운 모델로 교체되어
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순자가 제시한 역사적 권위 모델
인 유교 텍스트는 경험의 해석가능성을 풍부하게 하는 도구의 하나로서
자리매김 되어야 정당할 것이다.
6. 결론
이제까지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에 내재하는 선천적 조건, 유교 텍스
트의 권위화, 순자적 권위주의의 도그마 등에 대해 고찰하였다. 우선 순
자 사상은 자연의 물리적 법칙이 인간의 가상적 두려움에 의해서 맹목적
으로 신화화 되는 것에 대하여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철학사적 특징을 갖
는다. 순자의 천인분리는 자연이 인간 삶의 목적을 실현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다.
20 정 용 환
자연이 욕구하는 것을 따라 인간이 욕구한다는 천인합일의 자연신화적
유치함은 고대의 애니미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순자의 천인분리의 사
상은 자본주의적 상품과 인간의 관계에도 시사점을 준다. 현대의 자본주
의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들은 인간의 행위양식을 훌륭하게 제어하면서
주체의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관련한 예술적 갈망을 망각의 저편으로
데려가고, 그 대신에 상품에 내장된 욕구 프로그램대로 인간의 욕구가 잘
구동되기를 강요한다. 천인합일의 사상이 인간의 자율적 사고를 옥죄듯
이 자본주의적 상품의 소유와 인간의 욕구 실현을 동일시하려는 시도들
은 인간의 자발적 창의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고대 인디언들이 독수리의
깃털을 머리에 꽂았다고 하여 독수리의 날개와 부리가 제 몸에 생겨나지
않은 것처럼, 자본주의 상품을 많이 소유하였다고 하여 주체의 미적 가치
가 반드시 상승되는 것은 아니다. 순자의 주장처럼 인간이란 전적으로 자
연에 귀속될 수 없듯이, 전적으로 상품에도 귀속될 수 없는 자기 창조적
행위의 영역을 갖기 때문이다.
순자 사상은 자연신화의 외피를 벗겨낸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범적 사
례에 절대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에 근거하는 또 다른 신화에
기대고 말았다. 즉 순자 사상의 부정적 측면은 권위적 모범의 절대화에
있다. 그는 유교의 5경에 의해서 삶을 반복한다면 가장 유익할 것이라고
하면서 또 다른 절대주의 신화를 구가하였다. 필자는 어떠한 권위라도 행
위 주체의 창의성과 다양성 앞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유일의 철옹성과 같은 권위의 옹립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왜냐하
면 주어진 모델로서의 권위 이외의 다양한 형태의 경험 방식을 인간의
사려가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인간이 동일한 원본을 선망하고
재생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새로움이 동반될 때 예술적 실천으로 상
승할 수 있다. 마치 조선 말기의 권위자인 신재효의 판소리 춘양가가 현
대에는 임권택의 영화 춘향전에 자리를 내주듯이 인간의 경험이란 반복
조차도 창의적 변형이 가해진다. 이와 같이 인간의 경험에서 변형과 창조
란 좋음과 아름다움을 상승시키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삼년상을
지내던 유교 전통의 장례문화를 비롯하여 대부분 삶의 경험 방식은 이제
이미 새로운 차원으로 형태변화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
이란 권위에 의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험이 권위에 종속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다양한 삶의 양식을 모색하는, 로티의 말을
빌자면 일종의 아이러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의적 경험을 수용
한다면 “올바른 서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철저한 아이러
순자의 권위적 경험주의의 도그마 21
니스트가 더 나은 재서술이란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용어의 적용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올바른 서술이란 개념
을 사용할 수 없다.”33) 올바른 서술은 차치하고라도 후천적 경험의 과정
에서 진리의 최근사치처럼 행세하려는 절대 권위의 모델이란 몽상적으로
안일을 희구하는 변형된 천인합일의 헛된 욕심일 뿐이다. 인간의 후천적
경험이란 다양성, 창조성 등에 열려 있으며, 인간이란 고정된 모델을 수
동적으로 재생하려는 나약한 모방자를 넘어서, 여러 가치 혹은 더 나은
가치를 고려하면서 실험적 도전을 계속하는 탐구적 존재여야 건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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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리처드 로티, 김동식 이유선 번역,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민음사, 1996, 189쪽.
22 정 용 환
Abstract
The dogmatism of Xunzi ‘s authoritative empiricism
― Chung Yong Hwan ―
Xunzi ‘s empiricism has two aspects. One is the positive fact that Xunzi gives human
beings the hermeneutical rights on the purpose for his life, cracking the anthropomorphic animism
constructed by the theory of the unification of heaven and man (). Chinese philosophically
speaking, his assertion of separation between natural laws and human purposes gave human
empirical experiences invaluable position. Another is the negative fact that he recreates the
absolute authoritative texts, made up by the Confucian Five Classics (經), to control individual
whole conducts. I tried to criticise that Xunzi's authoritative empiricism would write mystical myth
by making human a posteriori experience subordinated to authoritative texts, and could drive out
the experiential plural creativity. Accordingly Xunzi'’s authoritative texts must be deserved to be just
one of the many references for human hermeneutical choices.
※ Key Words : Xunzi, experience, authority, mimesis, plurality
<본문;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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