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겨울, 슬픈 직녀/ 이순원
나뭇가지마다 눈이 쌓여 있었다. 자동소총수는 노래를 불렀다. 그는 러시아의 어느 숲 속, 앞으로 길게 내민 초소에 서 있었다. 그는 성탄절 노래를 불렀다. 때는 이미 2월초였다. 그런데도 그는 성탄절 노래를 불렀다. 눈이 일 미터 남짓 내려 쌓였기 때문에...... 많고도 많은 눈이. 그래서 이미 2월인데도 자동소총수는 성탄절 노래를 불렀다.
-보르헤르트의 <많고도 많은 눈> 중에서-
얼마 전 보르헤르트를 읽다가 가만히 눈을 감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러고 말았는데, 그보다 일찍 20 년 전에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2월 한밤중 너무도 적막한 초소에서 성탄절 노래를 부르며 그 적막함 때문에 아무 곳에나 총을 쏘는 병사의 이야기를 또다른 2월, 또다른 눈 속에서, 또다른 노래를 부르곤 했던 내가. 그 병사처럼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아침 점호 때나 행군중 군가를 부를 때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만 크게 딱딱 벌리고 마음 속으로 그 군가가 아닌 또다른 노래를 부르다 한밤중 눈 쌓인 숲 속 초소에서 그렇게 아무 곳에나 총을 쏘아댔던 내가. 눈 속에, 기숙이가 나를 찾아왔던 또다른 그 2월에.
처음 기숙이가 면회를 왔을 때 나는 헌병대 영창에 있었다. 그래서 기숙이가 날 보러왔다가 그냥 돌아간 일을 알지 못했다. 보름 전 영창으로 들어가던 날에도 눈이 내렸고, 나오던 날에도 눈이 내렸다. 바람만 조금 세졌을 뿐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그 사이 기숙이가 나도 모르게 면회를 왔다갔다.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중대 선임하사였다. 영창에서 나올 때, 그곳까지 날 데리러 온 선임하사는 그것도 감옥에서 나온 것이라고 헌병대 정문을 벗어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온 두부를 꺼내 내 입에 물렸다. 그때 나는 아직 작대기 두 개의 일병이었고, 선임하사는 작대기 네 개 위에 갈매기 세 개를 얹은 마흔일곱 살의 늙은 상사였다.
"눈 딱 감고 집어넣어. 앞으로 남은 군대생활 액땜이라 치고......"
선임하사는 한 모를 다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겨우 한 입만 베어물고 나머지는 꽉 다문 입술과 입가에 문질러 아래로 흘려버렸다. 턱밑을 쓰다듬자 목으로 흘러내리는 두붓물 속에 손바닥 가득 까끌하게 수염이 밀렸다.
"억지로라도 집어넣으라니까."
"죄송합니다. 많이 먹는다고 하는 게......"
"눈도 참 더럽게 내리네."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눈 속에, 헌병대 담장 한곁에서 두부를 먹이는 아비 같은 상사와 그것을 받아먹는 아들 같은 일병이 액자도 없이 담아내는. 선임하사는 군화발로 눈을 긁어 내 발밑에 흩어진 두부를 덮었다.
"가자, 그만."
정말 어떻게 눈이 내리면 더럽게 내리는 것일까. 지금처럼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면 그렇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린 눈을 미처 치울 사이도 없이 그 위에 다시 내리고 또 내리면 그렇다는 것일까. 원래는 대대 행정과의 황개(황중사)가 나왔어야 했다. 영창으로 들어갈 땐 마치 제 손으로 잡은 포로라도 인계하듯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그가 입창 서류를 들고 따라왔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그날도 참 더럽게 눈이 내렸다.
"운 좋은 줄 알아."
그는 헌병대로 가는 길에 내게 말했다.
"너 같은 놈은 남한산성으로 보내도 할 말이 없는 거야. 대대장님 마음이 좋아 봐주신 거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임마, 총질을 하기는 어디다 대고 총질을 하는 거야. 숙영지에서......"
나는 다시 피식 웃어보였다. 만약 웃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내게 했던 말보다 더 야비한 말을 그대로 그에게 했을 것이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고, 누구집 개처럼 훈련장에 여자까지 끌고 들어온 사람도 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이번엔 내 스스로의 야비함에 또 한번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황폐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앞뒤 가릴 것 없이 공격적이 되는 것......
"어라, 이게 웃어? 그래, 어디 보자. 언제까지 니가 그렇게 픽픽 웃을 수 있는지."
어쩌면 그는 그 웃음까지 자신에 대한 비웃음으로 알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신병 인도를 끝낸 헌병대 교도과에서도 그는 일부러 보란 듯이 그곳에서 근무하는 하사 한 명을 붙잡고 말했다.
"어이 박하사, 니 밑에 애들 시켜 저 자식 혼 좀 단단히 내줘."
"얼마짜린데요?"
"보름."
"그럼 얼마 되지도 않네요."
"그러니까 바짝 달궈 버릇 좀 단단히 고쳐달라는 얘기지. 제대로 하자면 남한산성으로 보내야 할 걸 인생이 불쌍해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니까."
"어떤 놈인데 그래요?"
"애초 끌려올 때부터 '특자(교련 거부, 혹은 집시법 위반으로 강제 징집된 특수관리 사병)'로 끌려온 놈인데, 거기 다 적혀 있어. 한동안 사고 없이 지내나 했더니 동계훈련 나가 숙영지에서 총질을 하지 않나......"
"그런 거라면 걱정말고 놓고 가십시오. 지가 밖에서 어떤 물건이었든 일단 여기 들어온 다음에야 우리가 머릿속까지 확 뜯어고쳐 보낼 테니까."
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 가장 크게 두려움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돌 만큼 서러운 생각이 들었던 건 그런 황개나 헌병대 하사의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거야 황개를 따라 부대에서 헌병대로 오는 동안에도 수십 차례 스스로 각오를 다졌던 터였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갈 것이고, 보름이야 똥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게워내게 하더라도 열다섯 번의 낮과 밤만 견뎌내면 되는 것이었다. 황개가 그런 말로 헌병대 하사를 향해 짖고 떠드는 동안에도 나는 이 순간에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굳게 먹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외에는 그것을 견뎌낼 어떤 힘도 위안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이 약해졌던 건 다른 부대에서 온 또 한 명의 입창자와 그 부대의 선임하사를 보고서였다. 황개가 나를 놓고 헌병대 하사를 향해 짖고 떠드는 동안 그 선임하사는 자기가 데리고 온 상병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도 하고, 옷깃을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그러다 황개가 다 짖고 나자 조용히 하사를 불러 낮은 소리로 자신이 데리고온 상병에 대한 이런저런 몇 가지의 부탁을 했다. 하사에 대한 평소 안면도 황개보다 더 있어 보였다. 하사가 일부러 상병 앞으로 다가가 그의 명찰을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그와 나는 이곳에 끌려온 죄질도 다르고, 평소 행동도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울컥, 서러움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내 어금니를 꽉 물어버렸다. 나를 견디게 하는 건 그런 감상적인 생각들이 아니라 애초 다졌던 대로의 각오와 국방부 시계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입창 마지막 절차로 더플백을 풀어 개인 소지품을 검사받고, 하사에게 허리띠와 군화끈(그것도 자해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다)을 반납하는 것을 지켜본 다음 선임하사들은 각자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그들이 가면 우리는 저쪽 문을 통해 영창으로 들어가야 했다. 상병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괜찮아. 그동안 몸 조심하고......"
저쪽 선임하사가 마지막으로 상병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예....."
상병은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내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다. 겁먹지 말고 얼굴을 펴고 들어가자. 얼굴을......
"선임하사님."
나는 저쪽 선임하사보다 먼저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황개를 불렀다.
"왜 그래?"
헌병대 하사와 두 명의 선임하사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오는데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야, 임마. 이제와서 그런다고 내가 너 위해서 좋은 소리 해줄 것 같아서 그래?"
"아닙니다. 그런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뭐야?"
"그냥 조심해서 돌아가시라고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훈련중에 애쓰신 것만큼 진급도 하시고......"
순간 황개의 얼굴이 벌겋게 달라올랐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반쯤 조롱을 섞어 거수 경례를 붙이는 순간 내 얼굴에 번쩍 불이 났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 어따 대고......"
헌병대 하사였다.
"일병 놈의 새끼가 겁도 없이 선임하사한테 놀자는 거야 뭐야?"
아마 진급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도 나는 피식 웃어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 상병과 다른 여유를 갖고자 했을 것이다. 아무리 황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해도 그러지 않고서야 그 선문답 같은 말만으로 하사가 부리나케 내게 달려들 리가 없었다.
"봤지, 박하사. 그 새끼가 그런 놈이라고. 위 아래도 없이. 아주 죽여놓으라니까. 아주......"
황개가 그렇게 말했을 땐 이미 하사의 주먹이 여러 차례 내 얼굴과 명치끝을 파고든 다음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곳은 이런 곳이다. 그래서 다들 이곳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두려움 속에 그것이 언제일까 가다리기보다 차라리 시작부터 이러고 나면 훨씬 더 잘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보름 후에 다시 만날 내 모습을 보란 듯이 더 독하고, 더 차분하게.
자, 봐라, 황개.
내가 쓰러지는가 쓰러지지 않는가. 네가 보는 앞에서는 쓰러지지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그 오기로 보다 독하고 지독하게 오직 한 생각으로 국방부 시계만을 생각하며 보름의 낮과 밤을 견뎌냈던 것일까. 원통 읍내로 들어선 다음에도 눈발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정말, 바람 속에 눈도 참 더럽게 내리고 있었다. 표내지 않고 걸으려고 해도 자꾸만 왼쪽 발이 땅에 끌리듯 절룩였다. 철창타기를 하다 생긴 가래톳 때문일 것이었다.
"이은수."
두부를 먹인 다음 읍내로 들어설 때까지 눈 속에 묵묵히 내 보폭에 맞추어 걷기만 하던 선임하사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지난번 올 때 황중사하고 무슨 일 있었나?"
"없었습니다."
"니 몸 니가 아껴라. 느 눈엔 언제 그날이 올까 아득해보여도 삼 년, 그거 그렇게 길지 않다."
"......"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호적에 줄 긋지 않고, 몸 골병들지 않고 제대하면 젊은 날엔 그게 남는 거야."
"......"
그래서 선임하사를 의식해 걸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가래톳이 아랫배 쪽으로 올라오듯 당겼고, 그것을 아래로 풀어주면 다시 절룩이듯 발이 땅에 끌렸다.
"스물두 살이라고 했나?"
"아닙니다. 스물넷입니다."
"그래. 우리 큰애보다 두 살 위라고 했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느들 마음은 다 똑 같지 않아도 부모 마음 다 똑 같애. 남의 자식 바라보는 부모 마음도 다 똑 같고."
"......"
"아까는 두부 한 모로 때우고 말랬더니, 어디 가서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씩 먹고 가지. 이놈아, 육군 상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늙은 사람 돈을 쓰게 하고 그래?"
"죄송합니다."
"그거 알면 이제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내 두부값은 아껴주는 거야?"
"예."
선임하사는 앞으로 사고치지 말라는 말을 육군 상사의 월급과 '내 두부값'으로 말했다. 중국집에서도 그는 자장면 곱배기와 보통을 시켰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잠시 들를 데가 있다면서 밖으로 나가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왔다.
"먹고 나서 붙여. 내 새끼 내가 패면 아프지 않은데 남이 건들면, 쩟......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패버리고 말 걸 말이지."
자장면도 내 곱배기의 그릇 위에 자신의 것을 반이나 더 덜어 얹어주며 이 늙은 호박 같은 상사가 기어이 자식 같은 일병을 울리고 마는 것이었다. 코끼리 같은 하사의 린치에도, 시도 때도 없이 가해지던 철창 속의 기합과 구타에도, 그 기합을 받으며 한밤중 단체로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면서도 저들이 오락처럼 즐기며 강요하는 거짓 감상에 져서는 안 된다고, 입으로는 그 노래를 불러도 마음 속으로는 또다른 노래를 따라 부르며 끝까지 혼자 이를 악물며 참았던 눈물이었다.
"이런 녀석도. 난 또 특자씩이나 찍고 와서 독종이나 되는 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이것도 영 맹물이네. 임마, 자장면 먹는데 뭔 국물이 필요하다고 눈물까지 짜붓고 그래?"
"죄송합니다......"
"알면 얼른 먹어. 불어터지기 전에."
"......"
"황중사 미워하지 마라. 그 놈도 처자식 두고 그러고 싶어 그랬던 게 아니고."
"......"
"느가 황중사 미워한다고 황중사가 힘들고 애닯은 게 아니야. 그럴수록 오히려 느가 힘들고 애닯지. 군대는 그런 거야. 밖에서 내가 뭐였든 일단 그렇게 들어오면 사병은 사병인 거고, 하사관은 하사관인 거야. 또 더러워도 장교는 장교인 거고. 그래서 계급이 있고, 계급대로 행동하는 데가 군대인 거고."
"그래서 총을 쏜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알아, 아닌 줄. 왜 그랬냐고 묻는 거 아니니까 얼른 먹기나 해."
그때에도 며칠 째 눈이 오다 말다 하고 있었다. 혹한기 훈련을 나가 있는 지난 닷새 동안 거의 매일 그랬다. 이상하게도 눈은 한밤중부터 내리기 시작해 새벽녘이 되면 감쪽같이 멎곤 했다. 녹지 않고 쌓인 것은 많아도 새로 내리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어느 고참의 말대로 한밤중 애인 생각을 하거나 여자 생각을 하며 보초를 서다가 총들고 탈영할 마음이 들기 딱 좋을 만큼 내리는 눈이었다. 매일 삼사십킬로미터의 행군 끝에 숙영지를 옮기는 훈련이라 마지막 날엔 대원들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추위도 그랬고 얼마 내리지 않은 눈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 닷새 동안 세수라는 것은 아예 할 수 없었고, 야간 훈련 때 얼굴에 묻힌 검정조차 장교들이 머무는 지휘부 텐트에서 얻어온 끓인 물을 묻힌 수건 하나로 몇이 돌아가며 닦는 정도였다.
쉬지 않고 훈련을 하거나 이동을 해야 하는 낮 동안은 그래도 몸에 땀이 흘러 나았다. 새로운 숙영지에 도착해 언 땅을 고르고, 거기에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군데군데 찢어지거나 구멍 뚫린 개인용 텐트를 치고 담요 두 장으로 향로봉의 칼바람을 견뎌야 하는 밤이면 덜덜 떨리는 이빨 사이로 저절로 욕이 터져나오곤 했다. 불을 피우고 싶어도 지휘부 텐트 말고는 불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처음엔 진지 노출을 핑계대다가 그러면 왜 지휘부엔 불을 피우냐고 말하자 그것도 다 너희들이 잘못한 때문이라는 식으로 그렇게 해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해 주면 사병들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씨팔, 시거든 떫지나 말라고, 그런 말이나 말고 못 피우게 하지."
"임마, 몰라서 그래? 그냥 못 피우게 하면 장교하는 재미가 나냐? 그런 말 하는 재미로 장교된 사람들인데."
바람이 송곳처럼 텐트와 담요를 뚫고 들어왔다. 지난해 여름, 이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아 왔을 때 고참들로부터 가장 먼저 들은 얘기가 바로 이곳의 바람 얘기였다.
"느들은 아직 모르지? 여기가 어떤 덴지."
그 고참은 연대 본부가 있는 산 아래는 그렇지 않지만 산 위로 올라가면 5월에도 눈이 내리는 데가 바로 여기라고 했다. 육 개월마다 교대로 철책 근무를 들어가게 되는데 바람이 얼마나 센지 동해 바다의 오징어가 바람을 타고 여기까지 날아와 철책에 걸린다고.
"너희들 이제 다른 건 몰라도 오징어 하나는 물리도록 먹을 거다. 오징어 다리 하나 물고 오분만 건너뛰면 바로 저쪽이야 임마, 여기가."
그러면서 고참은 너희들 어젯밤 대남 방송 나오는 거 못 들었어? 하고 물었다. 얼마간 과장된 줄 알면서도 그 말에 다들 겁을 먹고 있는데, 그때에도 왜 혼자 피식 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징어 이야기를 하는 고참의 말이 웃으웠던 것도, 또 그런 말을 하는 고참을 비웃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웃은 게 있다면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특자'로 이곳으로 내몬 다음 뒤늦게 그 일을 후회하듯 그런 자신의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스물세 살의 내 젊음에 대해서였다. 그래, 어차피 망조가 들기 시작한 것 될 대로 되라지. 어쩌면 그런 심정으로 비어져 나온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참은 어, 이 새끼가 고참이 말하는데 웃어? 하고는 곧바로 나를 불러일으켜 원산폭격을 시켰다. 고참은 신병들에게 겁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바람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팔려온 이곳이 철책과 얼마나 가까운 전방인지 얘기하려고 바람과 오징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일년이거나 육개월마다 교대로 철책 근무를 들어가야 하는 곳. 그건 이미 입대 때부터 들어서 알고, 또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강제 징집의 '특자'가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데가 바로 그런 곳이라는 걸.
오징어는 날지 않았지만 유류 야적장 한구석에 쌓아둔 빈 드럼통들은 바람에 꼭대기의 것들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고, 막사의 슬레이트 지붕이 저만치 날아가 돌에 부딪쳐 깨어지기도 했다. 이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봄이 오면 곧바로 철책 근무를 들어가야 했다. 나로서는 그곳의 첫 근무인 셈이었다.
"씨팔,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 장교들이야."
훈련 마지막 날 밤, 지휘부에 다녀온 강병장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이미 예비군복까지 지급받은 제대 말년의 고참 병장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훈련에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지난 주 위에서 열외 병력 없는 훈련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그래서 애초엔 A조인 그가 이번 D조의 마지막 훈련에 참가한 것이었다.
"뭐가요?"
나는 방한모를 쓰고도 머리끝까지 덮어썼던 담요를 눈 밑으로 끌어내리고 물었다.
"저쪽 말이야. 아까 김상병이 소주 한잔하자고 해서 갔더니, 씨팔 대대장하고 3중대 골통이 말이지......"
본부중대 소속의, 대대장 당번병인 김상병도 먼저 훈련에 빠졌다가 이번 훈련에 강병장처럼 참가한 사람이었다. 훈련 책임자는 몇 년째 소령 진급에서 물을 먹고 있는, 골통이라는 별명의 3중대 중대장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지휘부 막사엔 훈련 감독을 위해 대대장도 함께 나와 있다고 했다. 대대장은 아까 오후 늦게 1종(주식 및 부식) 지원 차량이 나올 때 함께 나와서 오늘밤 여기서 잘 거라고 했다.
"아까 안 돌아갔습니까?"
"뻔하지. 오늘이 훈련 마지막 날이고, 연대에서든 사단에서든 감독 확인 무전이 오면 그걸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저녁 때 지휘부 텐트가 있는데도 새로 9인용 텐트를 친 모양이었다. 아까 나온 1종 지원 차량에 철제 책상과 의자, 야전침대, 난로 등이 함께 실려 있었다.
"안에 들어가 봤습니까?"
"들어가긴 뭘 들어가봐. 김상병하고 골통도 지금 먼저 친 텐트에 가 있는데. 황개도 와 있고."
"그럼 대대장 혼자 새로 친 텐트에 있습니까?"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니까 대단한 대한민국 장교들이라는 거지."
강병장은 텐트 입구에 쭈구려 앉아 언 군화를 벗었다. 신발을 신으면 더 따뜻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낮동안 축축하게 젖어 밤이면 그것이 다시 콧등부터 허옇게 얼어붙었다.
"그럼 누구하고 있는데요?"
"여자."
강병장은 서화리 다방에 있는 여자가 찻쟁반을 들고 이 밤중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쌓인 눈을 뚫고 산중까지 들어온 여자도 그랬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훈련중에 여기까지 여자를 불러들인 사람들도 대단했다.
"안 봐도 뻔한 거지. 대대장이 여기에 와 잔다니까 3중대 골통하고 황개가 여자를 불러온 거지. 여자도 조금 전 황개가 데리고 들어오고."
"황개는 이번 훈련도 아니잖습니까?"
"바깥에 있다가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니까. 저러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다시 여자를 데리고 나갈 거고."
"정말 대단한 개네요. 달리 황개라고 부르는 것도 아닐 테고."
"골통도 골통이지만 황개도 목이 말랐거든. 지난해도 진급 심사 올라갔다가 밀리고."
"달아봐야 갈매기 하나 더 다는 걸 가지고......"
"작년 진급 심사에서 밀린 다음 얼마나 울고불고 했는데. 2중대 선임하사하고 대대 작전과 정상사는 진급하고 자기는 떨어지니까."
"나이 차이도 있잖습니까?"
"누가 아니래. 그런데도 울고불고 말이지. 그때 우리 영감(선임하사)이 달랬는데, 영감이 말이 멋있어. 보병 준위는 하늘의 별보다 더 귀한 건데 니나 나나 보병 주특기 가지고 노란 밥풀 달 것도 아니고, 언제 달아도 달 거 하나 더 달 수 있도록 비워두고 있는 게 낫지, 그거 하나 달고 나면 앞으로 더 달 것도 없는데 미리부터 꽉 채워놓으면 남은 세월 동안 무슨 재미냐고 말이지. 장교들이야 위로 달 게 많으니까 진급하는 맛에 윗사람 집에 이것저것 갖다 바치고 마누라 식모살이까지 시킨다지만 우리는 그럴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중대장이고 대대장 쫓아다니며 애쓰냐고."
"그러니까 황개가 뭐래요?"
"황개 말도 명언이지. 같은 호봉이라도 중사 상사 월급 차이도 있는 거고, 자기도 얼른 남들처럼 똥싸계(인사계, 중대 선임하사)하고 싶어 그런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해?"
"황개답네요. 그런 쪽으로 솔직하기도 하고."
"그거 똥싸계 되면 그 중대 애들은 다 죽는다. 가만히 보면 갈고리 체질이거든. 우리 영감은 너무 무르고."
"왜요? 영감도 무섭죠, 화나면...... 우리한테야 안 그러지만 황개고 꽥꽥이고 다른 하사관들 휘어잡는 것 보면."
"예전엔 그랬겠지. 영감 본인이야 직접 말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월남에 가서도 대단했던 것 같고. 작전 나가 부하 죽였다고 대위 하나 피떡으로 엎어팬 다음 그것 때문에 중간에 귀국했는데, 지금이야 나이가 성질 죽이는 거고."
"그런데, 황개가 여자 데리고 온 거 다른 사람들도 압니까?"
"알기는 어떻게 알아. 나도 김상병이 약속 못 지켜 미안하다면서 얘기해 주니 알았던 거지."
하긴 장교나 하사관들은 알아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지만 사병들이 알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아직 다 끝나지 않은 훈련 상황도 그렇지만 부대 책임자로서의 대대장 체면과도 관련되는 문제였다.
"좀 전에 우리가 저쪽 아래에 모였을 때 황개가 몰래 데리고 들어온 거지. 그런 다음 천막에 가둬놓으니 알 턱이 없는 거고."
그래서 아까 아홉시 쯤, 저녁 때까지도 아무 얘기가 없다가 갑자기 야간 훈련을 실시한다고 했던 것이었다. 중대별로 인원 점검을 한다며 텐트 당번조차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저 위쪽 산등성이로 집합하라고 했다. 일단 모이기는 했지만, 당연히 볼멘 소리가 터져나왔다. 3중대 골통은 몇 번이고 인원 점검을 하며 시간을 끌다 무얼 크게 봐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며 훈련을 취소하고 병력을 해산했다.
왜, 관심 있어?"
"관심은요."
"임마, 니나 나나 거저 먹으라고 텐트에 넣어줘도 못 먹어. 아래가 얼어 쪼그라들어서."
"그거야 빨아서 펴면 되겠지요."
나로선 모처럼만에 한 농담이었다. 지난달 작대기 하나에서 두 개로 진급하고, 이제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뜻도 되겠지만 상대가 곧 전역을 앞둔 강병장이라는 점도 많은 부분 그 여유에 틈을 주었다. 그는 곧 떠날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졸병에 대한 태도도 다른 고참들보다 너그러울 수 있었다.
"어쭈. 이것도 이제 늘었어."
바람은 여전히 텐트 속을 파고 들었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전번 보초인 박상병이 텐트를 열고 군화발로 툭툭 머리를 차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자 교대 시간보다 20분 빠른 0시 40분이었다. 보나마나 그는 자신보다 전번 근무자가 졸병이었다면 일어나는 시간도 20분쯤 미적거렸을 것이다. 부대 내무반에서도 그랬다. 불침번 시간도 꼭 졸병들 중간 시간을 잡았고, 보초도 하급자면 10분이나 20분쯤 늦게 나가곤 했다.
"꾸물거리긴."
텐트 속을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미적거릴 사이도 없이 일어났는데도 그는 졸병이 '빠져서' 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자 바람은 아까보다 잦아들었는데, 다시 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었다가 후번 근무자한테 확실하게 전해. 우리 중대 경계 구역이 지휘부에서부터 저쪽 2중대 숙영지 사이인데, 지금 대대장님이 와 주무시니까 신경쓰이게 텐트 가까이 가서 발자국 소리 내지 말고 아예 저기 큰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거기 가서 서 있어. 위의 지시사항이니까."
"예."
"그리고 이거 받고."
그는 자신의 탄띠에서 탄창 두 개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내 딴띠 주머니에 넣었다. 각기 열다섯 발씩 든 경계 근무자용 탄창이었다.
"다음 보초는 누군지 알지?"
"예. 구병장입니다."
"내가 일찍 깨웠다는 얘기는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황중사님은 돌아가셨습니까?"
"황개는 왜?"
"아뇨. 그냥 아까 얼핏 보이는 것 같길래......"
"안 가고 여기서 잘 모양이야. 조금 전 저쪽 텐트에서 나와 오줌싸고 들어가는 걸 봤으니까."
그렇다면 아직 여자도 돌아가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질질 끌며 골통과 다른 장교들이 머물고 있는 텐트 앞을 지나 저쪽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그곳에서 나도 모를 오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때까지 한 시간 동안 나는 오직 한 생각으로 여자와 관련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아침까지는 있지 않을 테고 황개는 언제쯤 여자를 데리고 갈까. 지금쯤 대대장과 여자는 일을 끝냈을까 끝내지 않았을까.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무얼하고 있었을까. 또 끝낸다면 왜 아직까지 여자를 보내지 않고 잡아두는 것일까. 여자는 커피 한 잔 값으로 얼마를 받고 이 산중까지 눈을 뚫고 따라왔을까. 서화리에도 다방이 여러 개 있던데, 어느 다방에서 온 여자일까. 혹시 지난번 사수를 따라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러 나갔을 때 쌍화차 한 잔에 사수 옆에 바짝 가슴을 붙이고 앉아 부산에서 살았다는 사람이 서화까지는 어떻게 왔느냐니까 자기도 유관순처럼 나라를 지키러 왔다고, 만약 전쟁이 나면 자신이 인민군 일개 사단을 맡아 온몸으로 그들 모두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어놓을 거라고 음탕한 농담을 주고받던 그 여자는 아닐까. 그 여자가 아니라면 인제 가면 언제 올지 원통한 동네를 지나고, 육이오 때 별이 일곱 개 졌다는 칠성고개를 넘어 이제는 더 가고 싶어도 갈 데가 없는 다방과 술집 여자들의 막장이라는 서화까지 흘러들어와 거기서도 눈을 파고 이 산중까지 따라온 저 여자는 지난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대대장이 부르라고 했을까, 아니면 골통과 황개가 미리 알아서 불러왔을까.
나는 또 상상했다.
아직 여자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밤이 더 깊을 때를 기다리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중대마다 보초들이 서 있는데, 황개는 그 보초들을 어떻게 따 돌리고 여자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날까. 그러나 그건 큰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이쪽 초소의 초병들에게까지 지휘부 텐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는 지시사항을 내렸을 정도라면 저쪽 마을로 통하는 개활지로 내려가는 길목엔 일부러 보초를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장교 천막 앞에서부터 나 이제 간다, 하는 식으로 플랫쉬를 켜들고 저쪽 아래 개활지로 내려간다면 누구도 일부러 그곳까지 뒤쫓아가 플랫쉬를 들고 가는 그의 앞을 가로막고 수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암구호가 '달빛'과 '청자'이던가. 아니면 여자에게까지 군용 외투를 입히고 몇 사람의 하사관이 황개와 여자를 개활지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온다면 그건 황개 혼자 여자를 데리고 가는 일보다 더 감쪽 같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시간이 1시 20분인데, 여자는 언제 이곳을 벗어날까. 황개는 언제 여자를 데리러 텐트 밖으로 나올까. 여자가 먼저 나올까, 아니면 황개가 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데리고 나올까. 대대장과 여자가 든 새 지휘부 텐트에서도, 그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 팩을 박은 장교 텐트에서도 가느다랗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램프가 아니라 석유난로 불빛일 것이다.
그 불빛을 보며 나는 또 상상했다.
여자가 이곳에 와 있는 걸 여기 있는 사병들 모두 다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때 대대장의 얼굴은 어떻게 되고, 골통이나 황개의 얼굴은 어떻게 될까. 그것을 모두가 알게 되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우리에겐 진지가 노출된다는 핑계로 불도 피우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기들은 여자까지 끼고 들어온 모습을 우습게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 여자는 옷을 입고 있을까 벗고 있을까. 이 산중, 눈 속의 정사는 어떤 것일까. 여자의 얼굴은 이쁠까 미울까. 몸은 뚱뚱할까 날씬할까. 나이는 많을까 적을까. 그때 우리가 들어갔던 서화리 다방 여자의 말처럼 저 여자도 자신을 타고 넘어간 남자들의 군번표를 다 모아놓으면 얼마나 될까. 그때 그 여자는 사수에게 철모라면 거짓말이지만 바둑통 하나는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했다. 저 여자도 그 여자처럼 지독한 실연 끝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이 바닥으로 나와 이제 더 갈 데도 없는 막장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다 생각이 총에까지 미쳤다. 만약 내가 여기서 총을 쏜다면, 정말 그러기만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그러면 총소리는 적막한 밤공기를 찢을 것이고, 숙영지는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나지 않을까. 대원들 모두 자다가 놀라 일어나 밖으로 나오게 되고, 여자가 들어가 있는 대대장 텐트도, 그곳에서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교 텐트도 그 총소리 한 방으로 쑥밭처럼 발칵 뒤집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걸로 이렇게 말이지, 하고 나는 탄띠 주머니를 열어 탄창을 꺼내 들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손바닥 가득 제법 서늘하고도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 긴장 속에 나는 스스로 만들어 즐기고 있는 적당한 비장감을 다시 내 몸속에 채우듯 탄창을 소총에 끼웠다. 철컥. 그 소리가 다시 위험하고도 은밀하게 내 상상을 자극했다. 총소리가 나게 되면 여자도 더 이상 그곳에 감추어둘 수 없게 되고, 그 소리에 놀라 몰려든 병사들도 저절로 그곳에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아까 강병장은 다른 장교들이나 하사관들은 알아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라지만 그것도 총소리 한 방 이후엔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무 일 없으면 모른 척할 수 있지만 총소리 이후엔 그럴 수도 없는 일 아닐까. 그것이 바로 모른 척할 수 있는 상황과 모른 척 할 수 없는 상황의 차이가 아닐까. 만약 내가 여기서 방아쇠 잠금장치를 풀고 총을 쏘기만 한다면, 정말 그러기만 한다면 한다면......
눈은 여전히 애인 생각을 하거나 여자 생각을 하다가 총들고 탈영할 마음이 들기 딱 좋을 만큼 내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 산은 적막했고, 내리는 눈은 하염없었다. 이 적막함 속에 이것만 풀고 방아쇠를 당기면...... 손가락은 이미 방아틀 뭉치 안에 들어가 있었다. 1단 격발, 2단 격발..... 그래, 이것만 당기면, 이 손가락에 힘만 넣으면...... 아니, 그러기 전에 이 잠금장치만 풀어버리면.......
모두 잠든 밤, 이 산중에 눈이 내리고, 나는 눈을 맞으며 보초를 서고 있고, 여자는 지금 저 불빛 안에 있다. 그것을 아는 사병은 대대장 당번병인 김상병말고는 강병장과 나밖에 없다. 그래, 이것만 풀고, 이것만 당기면...... 그러다 그 위험한 상상 속에 나도 모르게 의식의 어떤 공황 같은 마비가 왔을 것이다. 기어이 나는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고 만 것이었다.
"탕탕탕탕......."
그 소리에 누구보다 내가 제일 놀랐을 것이다. 한 발이 아니라 여러 발이었다. 몇 발이었는지도 모른다. 방아쇠 안에 손가락을 넣기는 했어도, 그래,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당기기는 했어도 보초를 나온 이후 결단코 잠금장치에 손을 댄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 소총의 잠금장치는 '잠금'에서 '반자동'을 지나 '자동'에 가 있었다. 그것이 평소 늘 확인하던 대로 '잠금'에만 가 있었다면 그날의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왜 거기에 가 있었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아는 건 오직 하나 어처구니뿐일 것이다. 그의 장난이 아니고선 그게 거기에 가 있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뒤의 일들 역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한밤중, 콩을 볶듯 자동으로 갈겨댄 총소리에 놀라 일어난 대원들은 내가 총을 쏜 것에 대한 놀라움과는 또 다르게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 호기심으로 뒤늦게 대대장 텐트에서 나와 황개를 따라 빠르게 개활지로 내려가는 여자를 보았고, 다음날 나는 귀대 즉시 대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경계근무중 총기 오발 사고. 그게 내 비행 죄목이었다.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말똥 하나의 부대대장과 대대의 대위급 장교들은 결론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식으로 자꾸만 사고를 나의 '특자'와 연관지으려고 들었다. 나는 완강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재학중 집시법을 위반해 강제 징집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미 입대와 동시에 잊어버리고 있는 일이라고. 후회하느냐고 물어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위 하나가 후회 좋아하네, 느들이 그걸 후회할 놈들이야. 오히려 더 자랑으로 여길 놈들이지, 라고 말했다. 나는 거듭 아니라고 말했다. 소령은 그러면 사고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물었다.
"부끄럽지만 한 시간 내내 여자에 대한 상상을 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자라니?"
"그때 대대장님 텐트에 와 있던......"
그러자 거기 모인 장교들 모두 입이 써서 민망하다는 얼굴로 서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천정을 바라보거나 벽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 뭐, 후회? 내가 저것들을 겪어봐서 알아. 어떻게 하든 찰거머리처럼 남의 약점을 붙들고 늘어져 자기 살 길 찾으려드는 거 말이지."
소령도 손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나는 교활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게 정식으로 군법회의에 회부해 남한산성으로 가야 할 걸 사단 헌병대 입창 정도로 일막음을 하게 해주었던 것일까. 회의가 끝나고, 행정과 선임하사로서 그 징계회의에 서기로 참여했던 황중사가 뒤늦게 달려들어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발목을 걷어찼다.
"일어나 이 새끼야. 이 빨갱이 같은 새끼들......"
전날 밤, 느닷없는 비상 호출에 영문도 모른 채 훈련 숙영지까지 불려온 중대장과 선임하사도 사병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여러 차례 대대장에게 발목을 까였다고 했다. 애들을 대체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훈련 숙영지에서 오발 사고를 내게 하는 것이냐고. 적이 만약 그 총소리를 듣고 덮쳤다면 대대 병력의 4분의 1은 그냥 희생되지 않았겠느냐고. 그래, 어쩌면 한 부대의 책임자씩이나 되어 사병들에게까지 훈련중 자신의 텐트에 여자를 불러들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화풀이를 그런 식으로 하고, 또 그걸로 우습게 되어버린 자신의 위신을 일부라도 추스리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거기에 여자가 없었다면 인명 피해도 없는 그 총기 오발 사고를 대대장도 단순 사고로 보다 너그럽게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어쨋거나 그날 밤, 나는 경황이 없는 상태로 장교 텐트로 끌려들어가고, 다음날 아침 고참 중대원으로부터 어젯밤 대대장에게 발목이 까인 영감이 사병 텐트에서 자신의 어깨 계급장을 붙잡고 막내동생뻘밖에 안되는 것한테 이게 무슨 봉변이냐며 이놈의 갈매기들 어서 날려버리고 제대하고 말아야지, 하고 새벽까지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신 군대라니까 이 새끼들이 위 아래도 없이......"
황개는 다시 내 발목을 걷어차며 '유신 군대'라는 말을 '자유 군대'거나 '민주 군대'의 다른 표현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똑바로 황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건 황개뿐 아니라 제법 그 정도는 알 만한 내무반의 고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상부에서 구타 금지나 가혹행위 금지에 대한 전언통신문이라도 내려오면 세월 좋아진 유신 군대가 졸병들의 군기를 빼고, 또 졸병들을 겁대가리가 없게 만든다고 했다.
이제 남은 일은 미리 꾸려놓은 더플백을 메고 그를 따라 영창으로 들어가는 일뿐이었다. 정말 언제 끝날 것인가. 이 지겹고도 암울한 내 유신 군대 시절은. 평소에도 나는 아침 점호 때나 행군중 군가를 부를 때마다 다른 군가는 더러 따라 불러도 '유신의 국군'만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만 크게 딱딱 벌리고 마음 속으로는 그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창밖엔 여전히 어지럽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장면 그릇을 밀치고 선임하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필 줄 알지? 알면 너도 한 대 피워."
"괜찮습니다."
나는 선임하사가 내미는 담배갑을 사양했다.
"괜찮아. 자."
그래도 나는 그것을 사양했다. 아버지보다는 어리지만 처음으로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동생 같은 대대장에게 발목이 까이는 봉변을 당하고도 두부를 들고 날 데리러 온 영감이었다.
"이은수."
"예......"
"아까 나올 때 얘기하려다가 못했는데...... 너 애인 있지?"
"아닙니다. 없습니다."
"뭐, 없어?"
"예."
영문을 모르는 내게 선임하사는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
"그럼 내일 모레 토요일에 애인이 면회와도 면회 안 시켜줘도 되는 거지?"
"예."
그거야 올 사람이 없으니 어떤 내기를 걸고서라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정말 같은 학교 다니는 애인이 없어?"
"예. 없습니다."
"허어이, 이거 왜 이러나. 늙은 상사가 졸병 애인 달랄까봐 감추는 것도 아닐 테고. 곧 미국으로 유학가는 애인이 없단 말이야?"
"예."
애인은 고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그런 여자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헌병대에 있는 동안 내무반에서 잘못 이야기가 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에게서 오는 편지는 두 살 아래의 여동생 정혜의 것밖에 없었다.
"하긴 뭐, 유학간다는 얘기는 아직 너한테 안 했다니까 그렇다 치고, 이거 여자 친구가 너무 많아 누군지 모르는 거 아니야? 너는 딴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 혼자만 일편단심이다가 유학가겠다고 그러는 거 말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유학 얘기는......"
"아니긴. 너 거기 들어가 있는 동안 지난주 토요일에 면회까지 왔는데."
그렇다면 더욱 모를 일이었다. 찾아올 여자도 없었고, 내가 먼저 이곳 부대 주소를 알려준 여자도 없었다. 같은 과에 몇 명의 여자들이 있긴 했지만 동급생 중 누가 군에 갔다고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가볼 여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서로 꿈꾸는 세상이 달라 나하고는 강의실에서조차 서로 소 닭보듯했던 사이들이었다. 그러면 함께 어울리던 서클 메이트 중의 누구일 수도 있겠지만 그쪽 역시 입대 이후 내가 편지 한 통 보낸 적이 없었다.
"정말 생각이 안 나?"
"예."
"허허, 큰일이구만. 애인이 면회를 왔는데 정작 본인은 면회온 애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혹시 다른 사람한테 온 걸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닙니까?"
"다른 사람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는데."
여자가 면회를 온 것은 지난주 토요일 오후였다고 했다. 그날 영감이 일직 근무를 했는데, 위병소에서 1중대 이은수의 애인이 면회왔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영외 훈련중이거나 교육 파견 같으면 다른 사병을 시켜 상황만 설명하고 그냥 돌려보냈겠지만, 입창자에게 온 면회라 따로 전할 얘기도 있고 들을 얘기도 있을 것 같아 영감이 직접 위병소로 내려갔다고 했다.
"나도 올해 대학 들어가는 딸이 있지만, 내려가 보니 뉘 집에서 키운 딸인지 얼굴이 여간 곱지 않아. 이쪽에 이렇게 백을 메고 가슴에 책 몇 권을 들고 서 있는 태도 여간 곱지 않고. 위병소 애들이 근무는 않고 흘끔흘끔 니 애인 얼굴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고 말이지. 이렇게 말하는데도 누군지 모른단 말이야?"
"예. 잘......"
"니 애인도 참...... 이런 걸 애인이라고 되지도 않을 면회 천리길 찾아 여기까지 오고...... 너하고 같은 학교래. 너 어떻게 군에 왔는지도 다 알고."
영감이 내려갔을 땐 위병소 근무자들이 여자에게 이미 내 이야기를 한 다음이라고 했다. 이은수가 지금 총으로 큰 사고를 저지르고 영창에 들어가 있어 면회가 안 된다고. 그래서 다음주 다시 온다고 해도 영창에서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근신을 해야 하므로 그때에도 아마 면회가 어려울 것이라고. 거기에다 그 안에 들어가면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까지 다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면회객한테 그런 말 해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녀석들이야 일부러 더 그러는 재미로 거기 붙어 있는 놈들이거든. 거기다 남의 이쁜 애인 보니 샘도 나고 말이지. 그래서 날 붙잡고 사정을 하는데 딱하긴 하지만 낸들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이번 달 지나 3월이면 유학을 가는데, 그 전에 널 꼭 보고 가야 한다고."
오긴 분명 누가 온 것 같은데, 나로선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영감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자의 모습도 입대 전 바깥에서 그런 여자와 옷깃이라도 스쳤던 적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기회는 다음 주밖에 없는데 그때 다시 오면 널 만날 수 있느냐는데, 어떻게 할 말이 있어야지. 온다 해도 위에서 너 면회온 걸 알면 다들 잘코사니다 하고 일부러라도 더 통제할 게 뻔하고."
"......"
그런데도 나는 그게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누구다 하고 얼굴부터 떠올라야 하는데 그런 현실감이 없다보니 다만 영감이 말하는 그 얼굴도 모르는 여자의 일만 남의 일처럼 안되고 안타깝게 생각될 뿐이었다.
"니 사정보다 그렇게 찾아온 여자 사정이 딱해 우는 걸 달래느라 일단 그렇게 해주겠다고는 했는데, 그게 말이지......"
영감은 부대에 들어가서도 토요일 면회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
"니 애인한테도 말해두었어. 이번 토요일 다시 면회올 땐 부대로 찾아오지 말고 그냥 서화리 장미 다방에 와 있으라고. 그러면 내가 널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이지. 그래서 어제 중대장한테도 니 얘기를 좀 하고. 여자 얘기는 안 하고, 이번 기회에 내가 널 사람으로 좀 만들어볼 테니 토요일 오후에 나하고 외박을 좀 허락해달라고 말이지. 부대에서 얘기해도 되겠지만 말이라는 게 하는 시간 틀리고 장소가 틀린 건데 우리집에 데리고 가서 없는 반찬이더라도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인간적으로 좀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이지."
".......감사합니다."
"식사만 하고 말면 저녁 점호 때 데리고 들어와도 되겠지만, 얘기중에 술도 한잔하다보면 얼굴에 표도 날 텐데 남들 보는 앞에 금방 영창에서 나온 놈을 그런 꼴로 부대에 들어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다음날 아침 일과 시작 전까지는 들여보내겠다고."
"그런데 면회온 여자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이런 녀석도. 니가 모르는 니 애인 이름 내가 어떻게 알아?"
"혹시 물어보셨나 해서......"
"암만봐도 니 애인도 사람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잠깐 봤지만 서로 정성을 들여도 니가 더 들여야 할 것 같던데 이건 오히려 거꾸로 되었으니. 천리 밖에서 눈길 헤치고 찾아와도 누가 왔는지 아나, 이름을 아나......이따가 부대 들어갈 때 위병소에 물어봐. 거긴 누가 누굴 찾아왔는지 적어놨을 테니까."
부대엔 오후에 들어갔다. 원통에서 서화리까지는 버스를 타고 들어가고, 서화리에선 마침 대대로 들어가는 부식 트럭이 있어 선임하사는 앞에 타고 나는 앞자리에서 내린 사단 병참대의 하사와 함께 짐칸에 실은 고추장과 된장통 사이에 앉았다. 눈은 어느새 멎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몰아쳤다.
부대 정문에서 내려 다리를 절룩이며 위병소로 다가다자 그 앞에 총을 들고 섰던 초병이 이제 오냐며 안 됐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위병소 창구로 다가가 거기에 앉아 있는 하사에게 지난 토요일 나를 찾아온 여자에 대해 물었다.
"가만있어봐. 어디 좀 찾아보고. 몸은 괜찮아?"
"예."
"지난 주면 여기 어디쯤 적혀 있을 텐데. 1중대 일병 이은수...... 그래, 여기 있네. 16시 40분 정기숙......"
정기숙?
"임마, 밖에 있는 애인 생각해서도 군대생활 똑바로 해야지. 우리 부대에 면회오는 여자들 중에서 제일 이쁘던데."
그러나 이름을 듣고도 얼른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정기숙이라니. 학교에 나하고 알고 지내던 그런 이름의 여자 친구가 있었던가. 더구나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래서 다시 면회 신청자의 주소를 적어놓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사는 마포 연남동이라고 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렁각시가 온 것도 아닐 테고 같은 학교의 정기숙이라니......
그러다 그 이름 끝에 혹시, 하고 스치듯 붙잡히는 한 얼굴이 있었다. 같은 학교의 정기숙이 아니라 시골 옆집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 기숙이의 얼굴이었다. 기옥이 누나 동생 기숙이. 그 기숙이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정기숙'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없었다. 그 기숙이라면 어릴 때부터 몸매도 여리여리한 데다 시골 아이답지 않게 얼굴까지 하얗고 이뻤으니 처녀가 된 지금도 옷태만 잘 낸다면 영감이 본 대로 어느 집 딸보다 귀하고 곱게 자란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가 갑자기 왜 날 면회왔을까. 거기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또 유학을 간다는 말은 무엇일까.
"거봐. 맞지?"
위병소에서 물러나자 더풀백을 받아들고 기다리고 섰던 영감이 말했다.
"예......"
"나 같으면 이 참에 아예 고무신 거꾸로 신고 말겠다. 얼굴이 아깝고 배우는 게 아깝지, 이쪽에서 매달려도 부족할 판에 이름을 봐야 겨우 누군지 아는 놈을 애인이라고......"
"......"
아직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저기 적힌 '정기숙'이 그 기숙이가 맞다면 영감에게 왜 같은 학교를 다닌다고 말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내가 학교를 다니다 왔으니 그런 나의 애인이라고 말하자니 기숙이도 어쩔 수 없이 이쪽과 가방끈을 맞춰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학이라니. 면회가 되지 않는다니까 절박한 마음에 그렇게 말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외국으로 떠나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그래서 예전 옆집에서 살았던 정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 얼굴이 보고 싶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거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무리 옛정 때문에 그런다 하더라도 그동안 서로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어느날 이렇게 갑자기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애인이 없다고 했으니 와도 면회시키지 말까?"
"......"
"아까 한 얘기 명심하고."
"예."
일단 부대 안으로 들어가 중대장에게 복귀 신고를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고, 중대장은 다른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남은 기간 동안 언제나 근신하는 자세로 군대생활 착실하게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선임하사가 잘 좀 지도하도록 해요. 아무래도 사병들하곤 선임하사가 더 가까울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어제 했다는 얘기를 그런 식으로 짧게 다시 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일은 없지요? 다친 데라든가......"
"다리를 좀 절기는 하는데, 그런 거야 뭐...... 속 골병만 들지 않는다면......"
"그럼 가봐."
중대장실에 들어갈 때와는 또다른 긴장감으로 내무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최하사와 김병장만 그곳 침상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충성. 일병 이은수,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오늘 나오는 날이라고 그랬지. 얼른 와라."
이쪽에 앉았던 최하사가 더풀백을 받아주며 험한 곳에 가서 고생이 많았겠다고 위로했다. 김병장도 내 저는 다리를 보고 많이 다쳤느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다들 어디에 갔느냐니까 조금 전 눈 그치기 무섭게 연대 장교 관사로 제설작업을 나갔다고 했다. 나는 텅 빈 내무반을 둘러보았다. 저쪽 구석자리에 있던 강병장의 관물대가 비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제대했구나, 나 거기에 가 있는 사이에. 미리 예비군복을 지급받던 날 그것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좋아하던 강병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마음 속으로 가만히 내 제대 날짜를 따져보았다. 이제 겨우 8개월이 되어가니 앞으로 꼭 26개월 남은 셈이었다. 지난해 그런 일이 없었다면 한 학년에 2개월씩 6개월의 교련 단축 혜택이 주어졌겠지만, 그 당근마저 내 손으로 뿌리쳤으니 온전하게 달력 두 뭉치를 썩혀내고도 두 장을 더 찢어내야 할 시간들이었다. 과연 내 앞날에 그런 시간이 올지. 1980년 5월이라, 그때에도 꽃피고 새가 울까.
그러다 페치카 옆에서 앉은 채로 깜빡 관물대를 기대고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건 뭐하는 놈이야?"
그 소리에 놀라 얼른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황개였다.
"임마, 영창 갔다온 게 무슨 벼슬하고 온 거야? 헌병대서는 그렇게 잘도 인사하더니 상관보고 인사도 안하게."
"충성."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왔다니까 어떤 꼴로 왔는가 보러 일부러 내무반까지 들어와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미워한다고 그가 힘들고 애닯은 게 아니다. 그는 내게 무어라고 한마디 더 할 것 같은 얼굴이더니 이내 최하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야, 최창호. 너는 하사라는 새끼가 졸병들 군기를 이렇게밖에 못 잡아? 암만 유신 군대라지만 졸병놈의 새끼가 일과 시간 내무반에 퍼질러 앉아 꾸벅꾸벅 졸아도 내버려두고."
그래, 짖고 싶은 대로 짖어라. 내 영혼은 지레 지쳐 있고, 청춘은 언제까지일지도 모르게 이곳에 저당잡혀 있으니. 그때, 밖에서도 '유신의 국군' 군가 소리가 들려왔다. 보람찬 하루 일을 관사 제설작업으로 끝마치고 돌아오는 중대원들의 군가 제창 소리였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워 나는 기숙이를 생각했다. 황개는 영창 갔다온 게 무슨 벼슬이냐고 했지만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불침번 근무와 보초 근무자 명단에 이름이 빠져 있는 밤이었다. 부대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린 탓일까. 이제 자다가 기상, 그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철창에 매달릴 일은 없지만 몸은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더 쑤시고 아픈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기숙이는 왜 날 찾아왔을까.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내일 모레 다시 온다고 했을까. 선임하사에겐 내 애인이라며 가방 끈을 늘여 말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기숙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기숙이의 언니인 기옥이 누나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시집가기 전까지 낮이면 일 많은 우리집 부엌에 와 거의 살다시피했다. 어릴 땐 늘 봐 왔던 모습이 그것이라 나는 기숙이 집의 가난을 봄 다음엔 여름이 오는 일만큼이나 당연하고도 익숙하게 여겼다. 그 뒤 기숙이는 이태 훈가 삼 년 후 동네 언니를 따라 서울 공장으로 돈벌이를 하러 떠났다. 그땐 추석이나 설 명절 때 고향을 다니러온 서울 아이처럼 얼굴이 하얀 기숙이를 보곤 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시골집마저 이사를 가 지금은 거기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텐데, 내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군대 또한 그런 식으로 끌려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기숙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렇게 기숙이 집이 이사를 가던 해 가을 추석 때였다.
그런 기숙이를 생각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밤이 있다. 꼭 십년 전, 내일같이 기옥이 누나가 시집을 가던 날, 그날 밤에도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아버지는 바람처럼 집을 떠나 있었고, 어머니는 내일 잔치 준비를 돕기 위해 기숙이 집에 가 있었다. 형도 그땐 나처럼 군에 가 있어 어른도 없는 우리집 뒷사랑에 내일 아침 기옥이 누나의 가마를 메고 갈 동네 가마꾼들이 들었다. 모두들 형 또래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밤이 이슥해졌을 때 군에서 휴가를 나온 운래라는 동네 형이 시내에서부터 한 여자를 데리고 친구들을 찾아 우리집에 왔다. 운래 형이야 동네에서도 제쳐놓았을 만큼 그 방면으로 이미 호가 날 대로 난 사람이지만 다른 형들은 어린 내가 보아도 하나같이 순박하기 짝이 시골청년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밤, 무릎을 덮을 만큼 내리는 눈 속에 세 사내가 차례로 여자를 덮쳤다. 내일 아침 새 신부의 가마를 메고 가야 할 시골 가마꾼들이. 내가 잠든 척 누워 있는 방 바로 옆방에서 여자는 읍, 읍, 하며 울음 같은 신음을 참았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여자의 울음 소리도, 그것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상황인지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안방엔 잔치꾼들로 집안이 비좁아 우리집으로 건너온 기숙이가 정혜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번갈아 여자를 덮치면서 사내들은 여자 모르게 하나씩 우리집을 떠나고, 그것을 모른 채 여자는 혼자 골방에 있다가 뒤늦게 그 방으로 건너간 내 도움으로 언덕을 내려갔다.
여자 혼자 있는 골방에 남포를 가져다 주기 위해 성냥을 찾으러 안방으로 갔을 때, 여리여리한 몸에 이제 막 봉긋하게 가슴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기숙이는 정혜와 함께 집안에 어떤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얕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아니, 자고 있었던 것인 줄로만 알았다. 여자가 그 골방에서 내 방을 거쳐 마루로 나가고, 내가 남포를 들고 여자의 뒤를 따라 나갔다. 차례로 여자를 덮쳤던 동네 형들도 떠나고, 나는 그 일을 나만 알고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잔치의 뒤끝까지 끝난 며칠 후, 기숙이가 내게 가만히 그 일에 대해서 물었다.
"그때 느 집에 누가 왔다 갔지?"
"언제?"
"우리 언니 시집가기 전날 밤...... 내가 느 집에 가서 잤을 때."
"가마꾼들이 와서 잤잖아. 욱태 아저씨랑 인서 아저씨랑, 뭐 다른 형들도......"
"아니, 가마꾼들말고."
"......"
"왔다갔지?"
"아니."
"아니긴. 다 아는데."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숙이도 묻지 않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기숙이가 그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꼭 십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때 운래 형처럼 군인이 되어 이 눈 속에 있고, 기숙이가 나도 모르게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땐 십년 후 눈 오는 밤 내 앞날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기숙이는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그 '정기숙'이 그 기숙이기나 한 것일까.
토요일 오후 늦게 선임하사와 함께 서화리로 나갔다. 그때에도 부대에서 외출증을 끊어주며 황개는(행정과 선임하사니까 당연히) 지나가는 거지를 불러다 먹이는 게 낫지 저런 새끼 밥 한끼 먹여 무슨 덕을 볼려고, 했다. 그는 단지 지난 주 내 애인이 면회왔는데 내가 영창에 가 있어 면회를 하지 못했다는 것만 고소하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누가 나를 면회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 면회온 여자를 내가 대신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너는 먼저 설악여관에 가 있어. 그래도 이 동네에선 거기가 제일 깨끗하니까."
토요일이라 대대에 다른 면회자들도 몇 명 있을 테고, 그러면 그들 모두 서화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손바닥처럼 빤한 동네에서 다방에서든 음식점에서든 서로 얼굴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관사에 들어가지 못한 영외 거주 하사관들이나 장교들도 대부분 서화리에 방을 얻어 살아 내가 여자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면 금방 누구 눈엔가 띄일 것이었다.
"저녁도 밖으로 나오지 말고 거기서 시켜 먹고. 좁아빠진 동네 돌아다니며 구경할 데도 없으니까."
"예."
"내일 아침 일과 시간 전에 부대 들어가는 거 잊지 말고."
"예."
그래서 나는 여관으로 가고, 선임하사는 그곳으로 가는 길목 중간에 있는 장미다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그 앞을 지나며 나는 유리창 안으로 혹시 기숙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러나 유리창엔 푸른 군모를 쓰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내 얼굴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러다 여관에 와 혼자 방을 잡고 들어앉자 이번에는 또다른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여관비도 없는데 혹시 그 아이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는 길 중간 어디에 눈이 막힌 것은 아닐까, 실제 우리가 꼭 봐야 할 일도 없는데 지난 주 어쩌다 마음먹고 왔다가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벌써 다섯 시가 지나가는데 이러다 정말 안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뾰족하게 키를 키웠다. 게다가 눈까지 내린 길이었다. 지난 주 기숙이가 정말 여기에 오기나 했던 것일까.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기숙이는 내가 기다린 지 한 시간 20분만에 여관으로 왔다. 복도로 오가는 발자국 소리만 여러번 들리다가 노크 소리가 들리자 반가운 마음 속에서도 왠지 한순간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예.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 고칠 것도 없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삐끔히 문을 열었다.
"은수야......"
"......"
얼굴을 보니 틀림없는 기숙이었다. 그런데도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모습이어서 내가 알고 있는 기숙이가 아니라 지난 주 면회를 왔다는 또다른 '정기숙'이처럼 생각되었다. 기숙이는 베이지색 자켓에 체크무늬로 된 나무색 치마를 입고, 그 아래에 이번 겨울부터 막 유행하기 시작한, 치마에 반쯤 가린 긴 부츠를 신고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가도 돼?"
"그래. 많이 기다렸다......"
문 안으로 들어온 다음 기숙이는 가슴 쪽으로 안았던 책과 핸드백을 놓고 한 손으로 벽을 짚고 선 채 허리를 구부리고 부츠를 벗었다. 피아노 <체르니> 교본과 국내에 연두색 하드커버로 보급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원서였다. 예전 내가 알고 있는 기숙이는 그런 기숙이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내겐 낯설게 보였지만 선임하사의 눈엔 곧 유학을 앞두고 졸병의 면회를 온 어느 있는 집 딸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부츠를 벗느라 소매가 당겨 올라간 손목에도 '가슴엔 자유, 왼손엔 컴퓨터'라는 광고 카피대로 서울의 웬만한 집 한 달 하숙비보다 더 비싼 가격의 디지털 손목시계가 감겨져 있었다.
"몰랐어. 니가 올지는...... 여기서 기다리면서도 넌지 아닌지 긴가민가했고."
"왜, 나는 너 면회오면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뜻밖이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 뜻밖인 건 그렇게 면회온 기숙이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왜, 정말 애인이 아니어서?"
"아니.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왔다니까."
"그게 나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나중에 위병소에 물어봐 가지고."
"그냥 널 꼭 한번 보고 싶었어."
신발을 벗고 들어와 악수를 나누느라 손 한번 잡은 것말고는 구석에 놓인 이불뭉치를 사이에 두고 이쪽 벽과 저쪽 벽에 서먹한 모습으로 기대앉아 정작 궁금한 것은 서로 묻지도 못하고 이곳 날씨와 서울 날씨, 험한 길 얘기 같은 것만 나누었던 것도 그곳이 남녀가 함께 잠을 자는 여관방이어서가 아니라 몇 년 만에 보는 반가움과는 다르게 왠지 편하지 않은 무엇이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가로놓여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 진전된 이야기도 우리 둘만의 것보다 어른들의 안부를 묻거나 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시골 친구들의 근황을 주고 받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었다. 나는 예전과 다른 기숙이의 모습이 낯설었고, 그걸 내색하지 않더라도 기숙이도 그런 내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지금 무얼 하시느냐고는 물을 수 있어도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을 수가 없었다. 기숙이가 어떻게 서울로 올라갔는지를 아는데, 저 책들과 달라도 너무 달라진 기숙이의 모습이 쉽게 그것을 물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지난 가을 서울에서 정혜를 만났어."
"길에서?"
"아니. 내가 아는 애 중에 정혜하고 고등학교 때 한 반이었던 애가 있는데 그 애한테 정혜 하숙집 전화번호 알아가지고. 그래서 니 소식도 듣고."
"정혜가 뭐래?"
"지난 여름 니 군에 간 거 얘기하더라. 학교에서 뭔 일이 있어서 갑자기 끌려갔다고."
"쓸데없이......"
그리고는 또 할 이야기가 없었다.
"어머. 벌써 여섯 시 반이네."
저 책들만큼은 아니지만 기숙이가 손목을 틀어 바라보는 시계도 낯설었다. 대체 이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 면회 또한 그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은수야."
"왜?"
"니 배고프지?"
"......"
"아까 그 아저씨한테 들었어. 너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
"먹고 싶은 거 말해. 내가 시켜줄게."
"아무 거나."
"그래도."
"난 괜찮아. 아무 거 먹어도."
"그럼 내가 나가서 알아서 시키고 올게."
잠시 후 돌아온 기숙이는 주인 여자에게 물으니 이곳엔 양식집이 한군데밖에 없는데 그곳은 배달이 안된다고 해서 한식집에 된장찌게를 시켰다고 했다.
"여기서 먹으니 고기를 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괜찮아. 먹으러 나온 거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커피도 다방에 시켜서 마셨다. 안 마시면 어떠냐고 하자 기숙이는 이따가 다 얘기할게, 난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셔야 돼, 라고 말했다. 차를 배달나온 여자는 여관 주인 여자로부터 그냥 몇호실 커피 두 잔이라는 소리만 듣고 나와서인지 내가 문을 열어주자 그 안에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커피 이 방에서 시킨 거 맞아요?"
"예."
"풋...... 난 또 아저씨 둘이 심심해서 사람을 불렀나 했더니......"
"왜요?"
"왜긴요, 아님 일찍 들어가봐야 하니 그렇지요."
얼핏 여자의 얼굴에 스쳐가는 실망을 보고 나는 이 여자가 지난번 눈 속에 훈련장까지 따라왔던 그 여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쟁반을 내려 커피를 타며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저쪽에 핸드백과 함께 놓아둔 기숙이의 책과 기숙이의 얼굴을 몇 번이고 번갈아쳐다보았다. 잔도 세 개를 준비해 왔지만 두 개에다가만 커피를 따랐다.
"아까 우리 다방에 오지 않았어요? 장미다방......"
"맞아요."
"봤어요, 아까. 창쪽에 어떤 분하고 앉아 있는 거."
그러면서 여자는 다시 내 얼굴을 표나지 않게 유심히 바라보았다. 함께 앉아 있던 사람이 달라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자가 잔에 크림과 설탕을 넣으려고 하자 기숙이는 자기 것은 그냥 두라고 했다.
"그렇게 마시면 속이 안 좋은데......"
"괜찮아요. 버릇이 돼서......"
여자가 말하고 다시 기숙이가 말했다. 그 모습도 옛날의 기숙이 같지 않았다. 많이 변했구나, 정말...... 내 눈에 그런 기숙이의 모습이 저 책을 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그렇게 마셔야 더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선임하사 앞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남았으면 함께 마실래요?"
"아뇨. 우리는 하루에도 열몇잔씩 마셔서......"
이번엔 기숙이가 말하고 뒤에 여자가 말했다.
"그냥 아저씨 담배 있으면 담배나 하나 줘요."
'화랑'밖에 없다고 하자 여자는 그건 뭐 담배가 아닌가요? 했다.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애인 면회오셨어요?"
"예."
"아저씨는 좋으시겠다. 아가씨는 멀어서 앞으로 면회다니자면 힘드시겠고."
그러면서 여자는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다시 기숙이가 놓아둔 책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누구나 저런 삶이고 싶을 것이다. 기숙이도 여자도......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우리는 커피잔을 비웠다. 여자가 다시 쟁반을 싸자 기숙이 커피값을 지불했다. 배달은 더 비싸지 않느냐니까 여자는 금방 일어서는 것은 같은 값이라고 말했다.
여자가 가고나자 다시 대화가 끊겼다. 짧은 시간이지만 차라리 낯선 여자가 있을 때가 더 편했던 것 같았다. 기숙이도 그걸 느끼는 것 같았다.
"은수, 니 술 한잔할래?"
"알잖아. 나 밖에 나갈 수 없는 거."
"그럼 내가 밖에 나가서 사 오지 뭐. 니 담배도 한 갑 사오고."
"많이는 못 마셔. 난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돼. 아홉시까지 부대로 들어가자면..... 여긴 차도 없고......"
"얘기 들었어. 그러길래 왜 그래 가지고......"
"누구나 그러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니야. 여기 있고 싶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숙이는 자켓을 벗은 블라우스 차림 그대로 방문 앞에 놓인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술기운을 빌어 나도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기숙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너 피아노 치니? 그런 것도 묻고 싶고, 너 외국으로 가니? 그런 것도 묻고 싶었다. 기숙이 역시 단순히 예전과 달라진 저 모습만 보이고 싶어 눈길을 뚫고 온 것이 아닐 것이었다. 밖에 나갔던 기숙이는 금방 비닐 봉지 안에 맥주 다섯 병과 조미오징어, 담배 두 갑을 사왔다. 컵은 저쪽 쟁반에 주전자와 함께 놓인 것을 가져왔다.
"은수야. 우리 지금까지 같이 술 한잔한 적이 없지?"
"그러기 전에 너희집 이사 갔으니까. 그땐 우리 아직 어렸고."
"받아. 처음으로 내가 따라주는 술이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나는 묵묵히 잔을 내밀어 기숙이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그리고 병을 받아 나도 기숙이의 잔을 채워주었다.
"정말 널 꼭 보고 싶었어."
"......"
"넌 아니겠지만......"
잔은 내가 먼저 받았는데 비운 건 기숙이가 먼저였다.
"그냥 편하게 얘기할게. 이왕 그런 얘기하러 온 거......"
"그래......"
나도 잔을 비우고, 다시 서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은수야."
"왜?"
"나 지금 니가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는 거 알아. 나도 그게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닌 거 알고."
"......."
그 말을 듣고 바로 기숙이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이번엔 내가 먼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거...... 일부러 저러고 싶어 들고 온 거 아니야. 나는 피아노 같은 건 칠 줄도 모르고, 너도 알다시피 그 위에 있는 책 같은 건 더더욱 몰라."
"......"
"널 만나러 오는데, 그냥 친구라고 하면 얼굴만 보고 돌아서게 할 것 같고, 그래서 애인이라고 말해야지 생각하니까 니 애인이면 학생일 텐데 그냥 내 모습만으로는 그렇게 안 보일 것 같아서 나도 학생처럼 보일려고 저걸 들고 온 거야. 이번에 다시 가져온 것도 저번엔 들고오고 이번엔 안 들고오면 그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가져온 거고. 위에 영어로 쓴 책은 대학교 앞 책방에 가서 니 얘기를 하고 그런 사람한테 선물할 책을 찾는다니까 저걸 준 거고. 내일 부대로 들어갈 때 그건 니가 가져가. 피아노 교본은 여기 아무 데나 버리고 갈 거야.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나도 영어로 된 책 못 읽어. 사전 없이는......"
"그래도 그건 니가 가져가. 처음부터 너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
"그리고 유학간다는 얘기를 한 것도 지난 주에 왔을 때, 너 사고를 내고 그런 데 들어가 있어 다음 주에 다시 와도 면회가 안 된다길래 아까 만난 분한테 그렇게 말하면 그래도 널 보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말한 거고. 그리고 나 정말 다음달 초에 일본 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널 보러왔던 거야.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지만 나 거기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본?"
"응...... 가면 언제 올지도 모르고, 또 아주 안 올지도 몰라."
"무슨 일로 가는데?"
"그건 이따가 얘기할게. 나 잔 채워줘. 니 잔도 이리 주고."
"그래......"
"나, 열여섯 살 때 처음 서울에 왔어. 아랫말 명진이 언니 따라서. 그 공장이 뭘 하는 덴지도 모르고 그냥...... 나중에 가보니 직물 공장인데 그땐 옥양목을 짜는 회사였어. 그런 것도 짜고 발이 조금 성긴 광목도 짜고, 또 소창도 짜고. 처음엔 기계 앞에 앉지도 못하고 다른 언니들 시다를 했어. 하루 종일 북실을 감던가 다른 언니들이 짠 거 실밥을 뜯으면서 일을 배운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하루 2교대인데, 기계는 밤낮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반년 넘게 시다를 하며 북실 감고 실밥 따고 하다가 다른 언니들 몇이 공장을 나가는 바람에 기계를 맡았는데, 베 짜는 일은 기계만 조금 알면 그 다음엔 북실만 그때그때 잘 감아주고 중간에 실만 끊기지 않도록 신경쓰면 되거든. 실이 끊기면 얼른 이어주고 또 이어주고 하면서. 그래서 기술보다는 기계하고 실 쪽에 누가 더 바짝 신경쓰는지에 따라 물건이 다르게 나오는 거야. 한 사람이 보통 베틀 다섯 개를 맡아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러면서도 베를 짜며 그런 생각을 했어. 착실하게 얼른 돈을 모아서 엄마 아버지한테 시골집 다시 지어주어야겠다고. 은수 너도 알잖아, 그때 우리가 어떤 집에 살았는지......"
"천천히 마셔. 반씩...... 나도 천천히 마실 테니까."
"다른 건 다 참겠더라. 힘든 것도 참겠고, 여름에 더워서 살이 물커지는 것도 참겠고. 그런데 쏟아지는 잠은 참을 수 없는 거야. 낮조 일할 땐 그래도 덜한데 밤조 일할 땐 말이지. 일하는 내내 실 끊어지는 데가 없나 신경쓰다보니 눈은 두 배로 피곤하고. 내가 공장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놀랐던 게 거기 일하는 언니들 커피마시는 걸 보고서야. 밤이든 낮이든 열 두시간 일하는 동안만도 적게는 너서 잔이고 많게는 대여섯 잔도 더 마시는 거야. 잠 때문에 말이지. 그런데 나도 금방 그렇게 되는 거야. 밤일하다가 졸음만 오면 커피를 찾게 되고 말이지. 아까 우리 커피마실 때 그때도 넌 날 이상하게 봤을 거야."
"......"
"너 같으면 없으면 안 마셔도 될 것 같은데도 굳이 배달해서까지 마시고, 그게 뭐 좋은 꼴이라고 설탕도 크림도 넣지 않고 마시고 하니까. 나 그렇게 늘 커피를 마셨어. 맛으로 마신 것도 아니고 낭만 찾자고 마신 것도 아니고, 잠 쫓자고 입에 쓴 줄 알면서도 아무 것도 안 넣어서 말이지. 또 이 기계 저 기계 쫓아다니다 보면 그냥 맨커피만 타기도 힘든데 언제 입맛대로 설탕 넣고 크림 넣고 할 사이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이젠 아주 그렇게 인이 박힌 것 같아. 너 내가 내 몸 중에 제일 부끄러워하는 데가 어딘 줄 아니?"
"어딘데?"
"은수 너도 술이 약하구나. 나보고는 천천히 마시라더니 넌 벌써 얼굴 빨갛게 되었어."
"그게 내 부끄러운 데니까. 나이도 부끄럽고, 지금 하고 있는 꼴도 부끄럽고......"
나는 방금 비운 잔에 내 손으로 술을 따라 채웠다. 그러자 기숙이는 이제 자기 것은 자기가 따라 마시기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그냥 그것이 편해서 그런다고 말했다.
"부끄러운 데 얘긴데 나는 손이야."
"손?"
"예전엔 내 손도 참 이쁘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러고 보니 아까 기숙이가 들어와서부터 아직 그 아이의 손을 제대로 못본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그랬다. 내가 무심히 본 탓도 있겠지만 지금도 기숙이는 주먹을 쥐듯 손가락 끝을 말아쥐고 있었다. 보이는 건 작고 하얀 손등뿐이었다.
"우리가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욕하는지 아니? 우리 손보고 쟤들 공장에 다니는 애들인지 술집에 다니는 애들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몇 년이고 하루 종일 베틀 기계를 만지다 보니까 손끝부터 험해지거든. 그래서 다들 외출할 때면 색깔있는 매니큐어를 바르고 그래. 그냥 두면 더 험해 보이니까. 우리 손은 부끄러운 손이 아니야.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부끄러워해야 했어."
"보여줘봐."
"그냥 손 내밀어 보여주는 건 싫어. 내가 술잔을 잡을 때라든가 오징어를 집을 때 봐. 이제 감추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기숙이는 반쯤 술이 남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일부러 바라보았지만 조금도 험한 손이 아니었다.
"내 눈엔 이쁘기만 하다."
"이제 나 그 일 하지 않으니까. 남자들 술 자기가 따라 마시는 걸 자작이라고 하지?"
"그런 것도 알아?"
"남자에 대해서도 이젠 모르는 것 말고는 다 알아. 니는 내가 싫다고 니가 따라마셔도 나는 내 잔 내가 안 따라 마실 거야. 오늘은."
"그래."
나는 다시 기숙이의 잔을 채워주었다.
"나, 어떻게 일본 가는지 얘기할게. 너한테는 얘기하고 가고 싶어."
"나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라면 안해도 괜찮아."
"아니. 하고 싶어. 나 일본으로 시집 가. 결혼식 같은 것도 안 하고."
"......"
"회사는 작년 여름까지 다녔어. 두 달 빠지는 꼬박 7년을. 열여섯 살 때 추석 쇠고 올라가 스물세 살 때까지 다녔으니까. 그동안 회사도 규모가 커져서 옥양목이나 면직물 말고 다른 섬유도 하고, 또 그걸 수출하기도 하고."
"회사 이름이 뭔데?"
"그건 말 안 할래. 공단에 섬유하는 회사 한둘도 아니고. 내가 따라가는 일본 사람이 우리 공장 물건을 일본으로 수입해 가는 사람이었어.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얘긴지 잘 모를 거야. 재작년부터 이쪽 회사하고 거래하기 시작했는데, 작년 봄에 우리 회사하고 거래하는 일본 회사의 높은 사람이 우리 회사로 왔어. 와서 물건만 보지 않고 우리가 일하는 공장도 둘러보고. 그때 그 사람이 우리 사장과 함께 공장을 둘러보면서 내가 일하는 자리에 한참동안 서 있는 거야. 나는 내가 일하는 게 잘못돼서 그러나 싶어 얼굴이 빨개져 정신이 없고. 나중에 사장하고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반장하고 과장도 내 자리로 와서 거기에 뭐가 잘못된 게 있나 하고 다시 살펴보고 했을 정도로 말이지. 그런데 그날 퇴근시간도 아닌데 사장이 불러. 나는 왜 부르는지도 모르고 갔고. 그렇게 해서 영문도 모른 채 그 사람과의 저녁 식사에까지 나가게 되었던 거야. 거기가 어떤 자리인지도 몰랐고, 또 그런 자리로 가는지도 모르고 말이지. 그러기 전에 사장과 회사의 간부들이 말했어. 불러 무조건 잘해라, 너 하나의 행동에 회사의 장래가 달린 일이다, 우리 공장 같은 데는 많다, 이제까지는 별탈없이 잘해왔지만 저 사람들이 거래선을 옮기면 회사가 하루 아침에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겁을 주고 말이지."
"......"
"나중에 알았던 거야, 그게 무슨 얘긴지. 식사 자리에 사장은 처음부터 빠지고, 상무가 나왔는데 처음엔 둘이 술잔을 주고 받다가 조금 있으니까 그 사람이 자꾸 내게도 술을 주는 거야. 그때마다 상무가 잔을 받으라고 나한테 눈치를 주고. 나는 잔뜩 겁을 먹고 먼저 들은 말만 생각하고. 그러다 한참 있다 보니 상무도 자리에 없는 거야. 일본말 한마디도 모르는 나만 거기에 남겨놓고 말이지. 그리고는 밖에서 나한테 전화를 했어. 자기가 나오고 싶어 나온 게 아니고 그 사람이 나하고만 얘기하고 싶어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그러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제 우리 회사 올 수출 목표량이 나 하나 하기에 달려 있다고......."
"그래서?"
"그래서는. 더 말 안해도 알잖아. 다음 달 내가 일본 가는 것만 봐도 알고.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어. 그때 놀라서 뛰쳐나왔다면 회사 그만 다니는 것 말고는 그 사람과 아무 일도 없었겠지. 아주 나중에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어. 그때 정말 내가 말을 듣지 않았으면 거래하는 회사를 바꿀 생각이었느냐고."
"그러니까 뭐래?"
"아니라고. 자기가 날 한참동안 뒤에 서서 봤던 건 남자로서 여자가 이뻐서 봤던 건 사실이지만 저녁 식사 자리에 내가 나올 거라는 건 전혀 몰랐다는 거야. 그날 그런 분위기도 상무가 다 잡아주고. 나야 일본말 모르니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거기에 바보처럼 앉아 있었던 거지. 그 다음 일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회사로 나가고, 얼마 후 그 사람이 이쪽 회사를 통해 집을 얻어주자 거기 들어가고, 그 사람은 예전보다 더 자주 한국에 드나들고, 그러다 이제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되고......"
"너, 따라간다는 사람 나이는?"
"많아. 쉰셋이니까. 이쪽 회사 드나들기 이태 전에 사고로 부인은 죽고 없지만 나보다 큰 자식들도 있고. 은수야, 나 바보 같지?"
"......"
"그래서 대답 안하는 거야?"
"아니. 그건 니가 판단할 문제니까."
"니가 여자라면 안 그러지?"
"......"
"그래, 너라면 안 그랬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그랬어. 그 무렵 우리 아버지가 큰 수술을 하셨는데 집에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그렇게 해준 줄 알아. 병실에도 가끔 회사 간부들이 드나들고 했으니까. 지금 내가 일본에 가는 것도 회사에서 뽑혀 무슨 큰 기술이나 배우러 나가는 줄 알고. 그렇지만 그 얘기만 하러 온 건 아니야."
나는 잠시 긴장했다. 그 얘기만이 아닌 또다른 얘기는 무엇인지. 아무리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옆집 친구고 동갑이라도 그렇지 그냥 그 이야기만 하러 몇 년 동안 서로 잊은 듯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내던 나를 찾아왔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앞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것말고 기숙이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작 따로 있으라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말해. 하고 싶은 얘기 다."
"한번도 누구한테 그런 얘기 안했지만, 다음달 일본 가는 것도 내가 나쁘게 되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보다 더 좋아지게 되어 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지만 마음 속에 어떤 응어리 같은 건 있어. 오늘 아침에도 저 책들을 들고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정말 내가 제대로 배워 이런 책을 들고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지. 그때 처음 그 사람과 그러고 나서도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이 내가 제대로 배웠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야, 하는 거였어. 그 전에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을 때에도 그랬고. 그 사람이 그랬거든. 자기는 그래도 내가 중학교는 나온 줄 알았다고. 그때에도 그 사람 원망보다는 우리집이 왜 그렇게 가난했는지, 아버지 원망부터 먼저 했어. 그러면 내 머릿속에 늘 떠오르는 그림이 있고. 은수 니가...... 아까 우리 동창 얘기하면서 은선이 얘기도 했지만 니하고 은선이가 그렇게 떠올라."
"......"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 바로 전이었을 거야. 너 중학교 다닐 땐데, 하루는 우리 엄마 하고 건넌골에 가서 밭을 맸어. 그때 우리 밭이, 우리밭도 아니지, 남의 땅 빌려서 지은 거니까. 그 밭이 시내로 나가는 길 바로 위에 있었어. 그 밭에서 하루 종일 쇠스랑으로 마른 땅을 쪼는데 배우지도 못하고 이렇게 땅만 쪼면 뭐하나 그런 생각만 드는 거야. 그때 나 정말 너무 학교에 다니고 싶었거든. 그러다 얼굴에 땀이 흘러 그걸 훔치려고 고개를 드는데 길 저쪽에서 너하고 은선이가 오는 거야. 생각날 거야, 그때 너 자전거 타고 다녔던 거."
"그래. 학교가 너무 머니까."
"그런데 니 자전거 뒤에 은선이가 타고 있는 거야. 옆으로 앉아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뒤에서 널 안고.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 나도 내 책가방 들고 니 자건거 뒤에 그렇게 한번 타 봤으면 하고. 나는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자꾸 그때 생각이 나. 그때 은선이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니 자전거 뒤에 타고 있었다면 지금 같지는 않을 거야, 하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더욱 널 보러 온 건지도 몰라. 와보니까 너는 너대로 아픈 것 같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이제 자전거도 없는데."
나는 진심으로 기숙이게 물었다.
"얘기할게, 들어줘."
"그래."
"이따가 내 옆에 누워줘."
"......"
"누워서 나 기운내라고 안아주고. 그러면 어디 가서든 또 힘을 낼 거야. 쇠스랑으로 마른 땅을 쪼다 울지는 않을 거야."
그러면서 기숙이는 내 앞에 눈물을 보이고 울었다.
그 밤, 자리에 누워 나는 내 옆에 누운 직녀의 손끝을 하나하나 더듬어 어루만졌다. 십년 전 어느 밤처럼 내 마음 속에 또 하나의 램프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밤이었다. 눈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