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철학 혹은 화엄사상은 이 우주를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등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난 2천년 가까이 불교철학의 진수 혹은 화엄경의 진수로 추앙되어 왔다. 중국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번역한 승려는 동진의 각현(覺賢=佛馱跋陀羅, 359-429)이다. 그 뒤 한역본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단이 두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필자는 중국불교는 불경 번역 초기부터 인도철학에 대한 관심 없이 위진현학으로 불교를 재단하였다고 주장하여 왔다. 이들의 심성론의 핵심은 맹자와 노장사상이다. 두순 지엄 징관으로 이어지는 화엄철학의 시작과 끝은 철저히 중국의 철학이다. 이들은 화엄경의 교주 비로자나불의 불국 혹은 천상세계와 이 현상계를 理와 事로 나누고 비로자나의 무애자재한 능력을 현실에 반영하는 것을 사사무애라고 정의 하였다.
필자는 1990년부터 국내에 나온 화엄철학 책들은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화엄경도 같이 보면서 대굴빡이 터질뻔 했다. 도데체 화엄경 어디에 理가 있고 事가 있는가? 화엄경과 무관한 철학사상이다. 도데체 이게 뭔가? 이 고민의 해결은 10년이 넘게 걸렸다. 결국 화엄철학은 화엄경의 이름만 가차한 맹자 심성론과 노장 사상이다. 조사선과 똑같다. 이글은 두개로 나누어 글을 쓴다. 첫째, 화엄경의 성격. 둘째 理와 事는 맹자와 노장사상으로 만든 철학이다.
1. 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
결론 : 베다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들어오는 서사시다.
화엄경은 초지일관 각양각색의 부처와 보살들의 이야기와 찬양이며 천신들의 장엄세계를 보여준다. 화엄경 약찬게를 봐라 모두 천신들 이름으로 가득이다.
근본화엄전법륜 근본적인 화엄교설 법의바퀴 굴리심은
해인삼매세력고 해인삼매 평화롭고 드넓으신 힘이어라
보현보살제대중 보현보살 모든대중 하나하나 열거하면
집금강신신중신 금강저를 손에드신 집금강신 신중신
족행신중도량신 만족하고 실천하는 족행신과 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성과 땅을 주관하는 주성신과 주지신
주산신중주림신 산과 숲을 주관하는 주산신과 주림신
주약신중주가신 약과 곡신 주관하는 주약신과 주가신
주하신중주해신 하천바다 주관하는 주하신과 주해신
주수신중주화신 물과 불을 주관하는 주수신과 주화신
주풍신중주공신 바람과 허공을 주관하는 주풍신과 주공신
주방신중주야신 밤과 방향 주관하는 주방신과 주야신
주주신중아수라 낮을 맡은 주주신과 다툼의 신 아수라
가루라왕긴나라 용의 천적 가루라왕 노래의 신 긴나라
마후라가야차왕 음악의 신 마후라가 흡혈귀인 야차왕
제대용왕구반다 여러 모든 용왕들과 정기 먹는 구반다
건달바왕월천자 가무의 신 건달바왕 밤 밝히는 달의 천자
일천자중도리천 낮 밝히는 해의 천자 도리천왕 함께 하고
야마천왕도솔천 야마천왕 도솔천왕
화락천왕타화천 화락천왕 타화천왕
대범천왕광음천 대범천왕 광음천왕
변정천왕광과천 변정천왕 광과천왕
대자재왕불가설 새계천의 대자재왕 헤아릴 수 없으시네
보현문수대보살 보현문수대보살
법혜공덕금강당 법혜보살 공덕보살 금강당과
금강장급금강혜 금강장과 금강혜와
광염당급수미당 광염당과 수미당과
대덕성문사리자 대덕성문 사리자와
급여비구해각등 해각비구 함께하고
우바새장우바이 우바새와 우바이와
선재동자동남녀 선재동자 동남동녀
화엄경의 주인공은 하늘의 33천의 천신들과 기타 허공과 지상의 신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부처와 보살이 있으며 불교를 믿고 따르는 불자들이 함께 화장세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 비로자나 노사나를 비롯한 모든 부처와 보살은 도데체 누구인가? 지난 2천년의 역사에서 누구도 규명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진실은 그들이 베다의 신들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33천은 초기 베다의 33 천신을 말한다. 즉 대승불교는 필자가 항상 주장하듯 베다의 신들이 만든 불교이다. 한글 화엄경이 이미 오레전 번역되었으니 그 번역이 다소 부족하다 해도 필자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 줄것이다. 문제는 화엄경을 왜곡시키는 친일파 동국대 교수들과 조사선 승려들이다. 그들은 화엄경의 세계를 석가모니로 치환하고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는 우바새 우바이라는 남녀 불자의 경지에서 천신의 세계에 업그레이드로 올라가 비로자나와 한 몸이 된다. 즉 이 육신을 가지고 비로자나불이 된다고 사기를 친다. 그 시선으로 화엄을 보니 안 읽혀지고 설사 보아도 뭔 말인지 모른다.
화엄경의 처음에
제 1권/ 1.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1)
제 2권/ 1.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2)/찬불기행원(讚佛起行願)
제 3권/ 1.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3)/건달바들의 덕과 찬송
제 4권/ 1.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4)/주화신들의 덕과 찬송
제 5권/ 1.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5)/보살들의 찬송
이 1품이 세주묘엄품인 이유가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세주묘엄품에 나오는 것은 수천 수만명의 神이다. 즉 천신들이 이 우주를 다스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천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임을 천명한것이 세주묘엄품이다. 해서 이 세주묘엄품에 천신들과 보살들만 나온다. 그 천신들이 경배하는 분이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는 아미타불이다. 이것도 전세계에서 필자만 유일하게 아는 것이다. 필자가 1990년에 화엄경을 한문으로 읽기 시작하자 후배 언니가 말한다.
58년생 여자 :
유명한 학승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게 화엄경을 읽으면 마장이 너무 심해 대체로 처음 조금 읽다가 포기 한다고 하는데 대단하네요...
이유는 간단하다. 베다의 신들을 찾으며 읽어야 하니 그렇다. 수만명의 천신들이 나열된 것이 세주 묘엄품이다. 해서 대다수 학자나 승려들은 이 품을 패스한다. 그리고 주로 마지막 입법계품 만을 읽는다. 제미있는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만나 깨달음을 얻어나가는 서사에 소설이다. 여기서도 神들이 등장한다. 화엄경의 신들을 중국불교는 화엄성중(화엄신중)이라고 부르며 법당에 신중단을 만들어 예배하면서 지낸다. 이건 상관 없다. 대승불교를 제대로 받아들인 거니까. 베다의 신들을 화엄신중(華嚴神衆)으로 받들어서 기도하는거니까. 문제는 화엄사상이다.
2. 理와 事는 맹자와 노장사상으로 만든 철학이다
인도불교에는 理라는 말이 없다. 성리학이 만들어 질 때 정호 정이 형제와 성리학자들은 理를 철학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런데 화엄종에서 불교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1990년대 말까지 조계종 중놈들과 동국대 교수들이 성리학은 불교의 표절이라고 용천지랄을 떨었다. ㅎㅎ 사실 표절은 지들이 한 것이다. 理는 주역과 유교의 중요 개념이었다.
설문해자에 보면 理의 기원이 나오는데 주나라이전 약 3천년 전에 옥돌을 갈아 옥구슬을 만드는 것을 理라고 하였다.
《说文解字》中“玉”为玉石,“理”从玉,表示与玉石有关;“里”为里面、里边,表示内部、内在。“理”为加工玉石,即把玉从璞石里剖分出来,顺着内在的纹路剖析雕琢,引申有纹理之意
옥 가공기술이 발달하자 옥에 무늬를 새겨 넣는 것을 理로 표현 하였다. 그리고 춘추시대를 거치며 내부를 표시하는 의미로 쓰인다. 즉 마음 본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확대된다. 춘추시대부터 한대 이전까지 증보되며 만들어진 예기에 보면 다음 글이 나온다.
예기 악기편《礼记·乐记》 好恶无节于内,知诱于外,而不能反躬,天理灭矣 =안으로 좋고 나쁨을 절제하지 못하고, 밖으로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면, 자기 몸(욕망)을 이기지 못하니 천리가 없어진다.
이미 예기를 통해서 천리라는 말이 성립되었고 理는 마음 내면의 道 혹은 진리를 상징하고 있다. 知诱于外는 천리를 밖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知는 천리를 아는 지식 지혜이다. 남송시대 성리학자들의 모토 존천리멸인욕(存天理滅人慾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라) 이라는 모토의 중간 글이 天理滅이다. 사람의 욕심이 천리를 멸한다는 말은 이미 예기 악기편에 나온다. 줄여서 예악이다. 예악은 천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예의와 음악이다. 유가사상은 음악과 예절을 통해 神과 하나 된다고 보았으니 그 신을 그들은 천리 혹은 道라고 보았다. 인간본성에 내재한 고유한 선함과 진리를 그들은 천리 혹은 道라고 보았다. 유학자들은 하늘에 있는 아버지로서의 신을 믿지 않고 인간 본성에 내재한 천리 혹은 天을 믿은 것이다. 즉 중용의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하늘이 명명한 것이 性이며 性을 따르는 것이 道다)라고 했다. 인간본성에 天이 있고 그 天性을 다스리는 理는 곧 천리이다.
맹자 진심하에 大不理於口라는 말이 나온다. 구설수를 말하고 남들 입에 나쁘게 표현된다라는 뜻이다. 不理는 不利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이미 理가 좋다 옳다 이치에 맞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증거다.
《易·坤》:“君子黄中通理。
주역 곤괘 : 군자는 황색 가운데서 이치를 통한다.
《易·说卦》:“發揮于刚柔而生爻,和顺于道德而理于義
주역 설괘전 : 강과 유를 발휘해서 효를 생한다. 도덕을 따르니 의에 이치가 있다.(의가 理다. 의로움이 진리다. 義理라는 용어 생성)
성리학에서는 의와 리를 의리로 표현하기도 의와 리를 떼어서 말하기도 한다. 성리학을 의리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易·系辞上》:“仰以观于天文,俯以察于地理。
역 계사전 : 우러러 천문을 보고 고개숙여 지리를 살핀다. (地理 땅의 이치)
<장자 29 잡편 도척편>
无為小人,反殉而天;无為君子,從天之理
소인의 무위는 순국하지 않아 천명대로 산다. 군자의 무위는 천의 이치에 따른다.
(장자에도 천리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춘추 전국시대에 이미 理와 天理는 보편화된 관념이다.)
<장자 29 잡편 도척편>
鮑子立乾,申子不自理,廉之害也
춘추시대의 隱者 鮑焦는 고결하게 행동하고 세상을 그르다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은 채로 말라 죽었고, 殷代의 은자 申徒狄은 임금에게 간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짊어지고 황하의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되었으니 청렴함의 해악이다.
(여기서 申子不自理의 理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죽었다고 해석도 되지만 자기의 理(진리 진실)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석 가능하다.
<장자 16 선성(繕性) 편>
古之治道者,以恬養知;生而无以知為也,謂之以知養恬。知與恬交相養,而和理出其性。夫德,和也;道,理也。德无不容,仁也;道无不理,義也;義明而物親,忠也
옛날 도를 다스리는 자는 고요함으로 知를 길렀다. 살면서 知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을 知를 가지고 편함을 기른다고 한다. 知와 편안함(고요함)은 서로를 길러주어 理에 조화를 이루니 본성이 나타난다. 대저 덕은 和(조화)다. 道는 理다. 덕은 용서하지 않음이 없으니 仁이다. 도는 理가 없을 수 없으니 義다. 의는 밝아서 物(만물)이 친하려 하니 忠이다.
여기서 道는 理이니 불도도 理이다. 화엄철학은 중국 철학의 理를 가지고 지맘대로 화엄경을 견강부회하여 화엄경의 종지를 왜곡하였다. 理는 유교 도교(장자)에 보편적 개념이다. 인도불교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리를 화엄종이 보편적 실체로 규정하였고 후일 북송대에 성리학이 생기면서 형이상학적 실체로 발전하게 된다. 화엄종에서 성리학이 불교의 표절이라고 하는데, 화엄종 자체가 불교가 아니라 도교다. 즉 신흥 도교철학이 화엄철학이다. 理는 인도불교하고 아무 상관 없는 장자의 철학이고 예기와 사기 주역에 등장하는 유교의 개념이었다. 그냥 중국 고유사상의 변형발전이다.
《史记·乐书》:德辉动乎内而民莫不承听,理发乎外而民莫不承顺。
사기 악서 : 덕행이 내면에서 발휘되면 백성이 듣지 않는 자가 없으며, 理가 밖으로 발휘되면 따르지 않는 백성은 없다.
모든 예들에서 理는 모든 영역에서 사용되었으며 특히 내면의 본성과 진리 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있다.
화엄경이 번역되자 두순 지엄 징관 등은 理를 활용하고 적용하여 우주를 해석하였다. 사법계(事法界)는 물질세계 중생세계·이법계(理法界)는 내면세계이자 불교의 가르침·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는 걸림이 없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는 이사무애가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내 맘대로 해도 걸림이 없다. 특히 사사무애를 무애행으로 간주 조사선에서 술먹고 여자랑 섹스하고 고기먹고 해도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유는 깨달음이다. 깨달은 자는 사람 죽여도 죄가 아니며 여자들 백명을 강간해도 죄가 없다. 이 조사선의 모토와 일치하는 것이 사사무애다. 사사무애는 위 인용된 <사기 악서 >편의 글과 통한다.
《史记·乐书》:德辉动乎内而民莫不承听,理发乎外而民莫不承顺。
사기 악서 : 덕행이 내면에서 발휘되면 백성이 듣지 않는 자가 없으며, 理가 밖으로 발휘되면 따르지 않는 백성은 없다.
덕행은 理다(理法界). 백성은 事다(事法界). "내면에서 발휘되면 백성이 듣지 않는 자가 없다"는 이사무애(理事無礙)의 경지다. "理가 밖으로 발휘되면 따르지 않는 백성은 없다"는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다. 이 글 속에 화엄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즉 정치철학이다. 화엄사상은 불교를 빙자한 정치철학 정치사상이다. 따라서 정치철학인 유학이다. 화엄철학이 나오기 500년전 이미 화엄사상과 철학이 유학자들과 제자백가 사상을 거치며 만들어져 있었던것이다. 중국제자백가의 사상이 한대 유학으로 흡수 통합되고 위진남북조시대 위나라 왕필에 의해 형이상학적 실체 無가 만들어지자 이를 계승한 축도생과 승조가 조사선의 사상적 기반을 완성하고 그들의 몇백년 후 그들의 제자 육조혜능이 조사선을 만들어 불교를 문란하게 했다. 그리고 유학자들의 개념 理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만든 것이 화엄철학이다. 춘추전국에서 한대까지 이어진 理와 天理라는 개념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확장한 점에서 축도생 승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있는 게 지엄과 징관등 화엄사상가들이다. 허나 이는 중국 고유의 철학일 뿐이다. 맹자 심성론을 논리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인도불교를 왜곡한 사이비 불교이며 유가철학의 계승발전이다. 이는 언젠가 쓰게될 천태종도 매일반이다. 유가철학을 계승발전 했으니 정호 정이 형제를 거치며 주자에 이르러 성리학의 理가 나타난다. 성리학은 性理學이라는 한자대로 본성과 그 본성의 실체인 理에 대한 탐구다. 유학의 理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만들었으니 성리학 성립에 화엄철학이 기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철학은 결국 유학이며 맹자 심성론이지 불교와는 무관하며 더우기 화엄경과 아무런 공집합이 없다는 것이 팩트이며 진리이다.
사기 악서편의 "덕행이 내면에서 발휘되면 백성이 듣지 않는 자가 없으며, 理가 밖으로 발휘되면 따르지 않는 백성은 없다"라는 글로 돌아와 살펴보면, 내면에 덕행과 理는 다르게 표현하면 불성이며 이법계(理法界)가 된다. 덕행이 내면에서 발휘된다는 것은 불성을 깨우침이고, 理가 밖으로 발휘되는 것은 완성된 불리(佛理: 불교의 이치 진리)가 만 중생을 구제하니 곧 사사무애다. 화엄종 종자들 두순 지엄 징관등은 이미 지식인 사대부들 사이에 익숙한 理라는 개념으로 화엄철학을 만들었다. 德辉动乎内而民莫不承听,理发乎外而民莫不承顺(덕행이 내면에서 발휘되면 백성이 듣지 않는 자가 없으며, 理가 밖으로 발휘되면 따르지 않는 백성은 없다)는 이법계 사법계 이사무애 사사무애의 경지가 열거 되어 있다. 덕행과 理를 理하나로 만들면 일치한다. 사사무애는 깨달은 성인 즉 왕이 지맘대로 다스려도 만백성이 듣고 따른다는 뜻이 된다. 理를 얻은 자는 무애(無碍 -걸림없다. 맘대로다)다라는 주장이며 정치가들과 왕들이 할레루야~ 한 것이다. 理를 얻은 자는 살인 방화 약탈 뭐든 가능하다. 사사무애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간섭못하고 걸림이 없다. 잘 들여다보면 정치철학이며 왕조 찬양의 철학이다. 화엄경과 아무 상관이 없는 정치사상이 난데 없이 화엄철학? 화엄사상?
위진현학의 찌꺼기들은 불교식 용어로 치밀하게 조작하여 사대부와 왕족들의 찬탄을 받고 화엄사상 화엄철학을 만들었다. 결국은 유학과 노장사상의 결합이다. 필자가 중국불교에는 불교가 없고 오직 유학과 노장사상만 있다고 주장해 온 이유다. 사실이다. 해서 명나라때 고승들 학자들이 유불도 삼교는 하나다라고 삼교 일치를 주장하였는데 사실은 유교와 도교(노장사상) 밖에 없다.
<윤지환불교학 방 글들 참고>
조금더 첨언 하면 화엄종 성립 이전에 축도생이 쓴 "법화경소"에 보면 理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 https://cafe.daum.net/Wahrheit/LpDV/128 >
夫未見理時。必須言津。既見乎理。何用言為
대저 理를 보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나루터(금강경의 언덕 비유)를 말해야 하지만, 이미 理를 보았다면 어찌 말(경전=금강경)이 필요하겠는가. < 見理를 육조혜능과 제자들은 견성(見性)으로 변용한다. 理는 이미 진리 본성으로 사용된다. 통발의 비유를 들어 금강경을 버리고 모든 경전을 버리고 오직 견성(見性)만 하면 성불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축도생(見理)이며 그 후계자 조사선(見性)이다. 그리고 이 見理를 이법계(理法界)로 조작한 놈들이 화엄철학 화엄종이다. 見理는 이법계를 깨닫는 것이 된다. >
금강경 6분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나의 설법은 땟목과 같으니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라는 말에서 땟목은 배이니 나루터에 정박해야 한다. 해서 축도생은 津(나루터)이란 단어를 쓴 것이다. 금강경의 이 귀절을 장자의 통발의 비유(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린다.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버린다= 말과 경전은 이치를 깨달으면 필요없으니 버린다)로 재해석 한건데 이 해석은 그의 정신적 스승 왕필의 주역주(周易注)라는 주역 해석서에서 말한 것이다. 왕필의 철학으로 학습한 이들이 축도생 승조 등이고 후일 모든 조사선의 어버이다. 해서 필자는 無를 형이상학적 실체로 만든 최초의 인물이 왕필이기에 중국철학은 왕필에서 시작 왕필에서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조의 위나라 출생에 위진현학을 학습 계승한 축도생(미상 ~ 434년)의 글에서도 이미 理가 나타나니 현학자들에게 理는 이미 일반적인 용어였다는 것이 증명된다. 화엄종은 시조 두순(557-640)이고 2조 지엄(智儼, 602년 ~ 668년)과 현수법장(賢首法藏647-712)에 의해 완성되었다. 모두 위진현학자 축도생 사후 100년 이후에 나타난 인물들이다. 결국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理와 天理를 가지고 철학적 사유를 한 것이 위진현학이며 이를 불교와 접목한 것이 화엄사상이다. 당나라때 선종이 완성되고 화엄종 천태종(지의 538~597가 만듬) 이 완성되는 것이다. 중국 최고의 불교철학이란 것이 모조리 위진현학의 계승발전에 지나지 않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의 학자들의 한문해석 능력과 혜안이 전무하니 한국불교는 아직도 눈먼자들의 종교철학이다. 이 위진현학으로 재단한 철학을 불교자체라고 숭배하여 온 것이 한중일 삼국불교의 역사다. 산스크리트어 번역, 특히 금강경 번역만 제대로 했어도 모조리 탄로날 허접한 철학에 혹세무민으로 살아왔으며, 1천5백년이 지나 필자의 손으로 중국불교를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부처님은 필자가 이 작업을 해주기를 천오백년이나 기다린 것이다. .
관우 장비가 날뛰던 삼국시대에 조조의 위나라에서 탄생한 위진현학은 유교와 노장사상 주역을 결합 玄學을 만들었다. 그리고 천태화엄 조사선 등등 모든 불교교학들은 이 현학을 변형시켜 불교로 만들었다. 그래서 임제의현의 삼현삼요가 나오는 것이다. 의현의 현도 玄이고 삼현삼요의 현도 玄이다. 이리보면 삼국을 사상적으로 통일한 나라는 조조의 위나라다. 실지로는 조조의 책사 사마의의 손자가 삼국통일을 잠깐 이루었다가 후삼국이 되었다. 필자가 볼때 조조의 치적은 사실 위진현학이다. 이후 모든 중국사상 특히 불교철학은 모두 위진현학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친일파 겸 모화주의 불교학자 승려들은 미망의 늪에 산다. 화엄사상은 결국 불교랑 무관한 중국철학이다. 理와 事는 화엄경 어디에도 없다. 인도 불교철학에 충실한 종파는 중국에서 밀교와 현장의 제자가 만든 법상종이 있었을 뿐이며 흔적 없이 미미하게 사라져 갔다. 중국인들은 유교 도교로 만든 불교(사실은 신흥도교)가 좋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어느 놈이 복 줄건가가 관건이고 사대부들은 불교라는 껍데기에 숨은 위진현학(유교+주역+노장사상)을 보면서 하오하오(好好)였었다. 위진현학의 철학을 불교라고 정의하고 따랐다.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간취봉두괴뢰 추견도래이유인)
무대 위에서 노는 꼭두각시를 봐라 그를 줄로 조정하는 것은 숨은 인간이다.
승복입은 조사(승려)들이 만백성을 봉두괴뢰(棚頭傀儡)로 만들었다. 승복입은 도교 조사들이 만백성을 괴뢰도당으로 만들어 줄로 조정하며 부와 명예를 축적하여 왔다. 이때 조사는 수괴(首傀)다. 진정한 괴뢰도당은 중국불교 특히 선종 조사선이 아닌가?
2023년 2월 4일 紫霞仙人 遊於世間
첫댓글 중국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지금이라도 친일매국노들을 처단하고 식민 사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겠습니다.(민처협)
또한 불자들에게 진정한 불교의 진리와 사상을 전해지기를 바라겠습니다.(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