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세브란스 정태섭교수-
매일 X레이 필름과 씨름하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정태섭 교수(50·영상의학과)는 소문난 화폐수집가다. 특히 과학자가 들어간 외국 지폐가 정교수의 주요 관심사다.
정교수는 서울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국내 화폐를 모았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서울로 전학온 정교수는 낯선 환경 탓에 적응이 쉽잖았다. 또래들과 어울리는 대신 청계천 등지를 돌며 고서적을 뒤지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유자후(柳子厚) 교수가 쓴 ‘조선화폐고’를 발견했다.
“헤이그특사 이준 열사의 사위인 유선생님의 책에 감명을 받았죠. 어린 마음에 저도 화폐와 관련해 뭐든 남겨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정교수는 화폐 수집에 몰두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화폐수집업체인 화동양행의 화폐 경매에 참가했다. “당시 은행장 같은 거물들이 경매에 참여하곤 했지요. 까까머리 학생인 제가 입찰하니 다들 양보해 주셨죠.”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다행히 성동공고 교장이던 부친의 도움으로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전기제품을 만들어 팔아 용돈을 벌었다.
“대당 약 2만원 하던 전축을 한 30대는 만들었어요. 진공관 설계도를 따라하며 매달렸죠. TV도 두어대 조립했고, 측량기도 만들었습니다.” 정교수는 이런 경험을 거쳐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공인 방사선과도 기계 만지는 일이 좋아 선택했다.
1973년 연세대 의대에 진학하면서 공부하느라 6~7년 동안 화폐수집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87년 교수가 된 뒤 화폐수집을 재개했다. 그때 국내 돈에는 과학자 얼굴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때부터 과학자가 나오는 외국 지폐를 모았다. 학회 때문에 해외에 나갈 때 사거나, 경매로 주문했다. 최근 10만원권 발행검토 소식에 정교수는 동료들과 조선 세종 때 과학자 장영실을 새 지폐 초상화의 후보 인물로 정부에 추천했다.
정교수는 “유로화가 나오기 직전 서양의 107종 가운데 26종 지폐에 과학자 초상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영국은 지폐 4종류 가운데 3종류에 과학자가 나온다. 단, 앞면은 여왕이 나오고, 뒷면이 뉴턴·다윈·스티븐슨 같은 과학자 몫이다.
정교수가 수집한 과학자 지폐는 24종. 68년 아인슈타인 얼굴의 이스라엘 지폐부터 최근의 것까지다. 그리스의 조지 파프니칼라우(의사)와 스위스의 아우구스테 포렐(의사·생물학자) 얼굴이 찍힌 2종류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한국돈은 1897년 구한말 조선은행이 발행한 1원짜리 지폐부터 소장하고 있다.
그의 지폐에는 서양 과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돈을 보면 서양이 어떻게 선진국가로 발돋움했는지 뚜렷이 나타납니다. 과학 문명의 발전과 과학자를 중시한 덕분이죠.”
그는 ‘과학 전도사’를 자처한다. 정교수는 “과학자로 성장하려면 사춘기 이전에 과학의 재미에 푹 빠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6년째 울릉도종합고와 하동의 옥종고, 서울 도곡중 등 11개 중·고에 과학잡지 ‘뉴턴’을 매달 총 400권씩 보내고 있다. 또한 매년 가을 병원 주차장에서 지역 주민·학생 1,000여명과 함께 자신이 직접 깎은 망원렌즈로 천체를 관측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정교수에게 화폐수집은 단지 오래된 취미생활이 아니다.
- 경향신문 2월 22일자 발췌
- 취미가 그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경우도 자주 볼수있습니다. "화폐수집"과 "과학자"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위의 분처럼 자신의 미래를 바꾸어 버린 경우입니다. 요즘 어린분들이 회원으로 등록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분들의 미래가 이 분들처럼 밝았으면 합니다
첫댓글 화폐를 통한 자아를 실현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네요, 저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뭔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