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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과제)
소설 이어 쓰기
김승후
(해변의 하루가 간다. 유나는 팬션의 방을 정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이나 영화를 본다.
엊저녁에 방을 내어준 청년들이 있다.
석양이 뒷산에 남아 있을 무렵 왔다. 일주일 묵겠다고 계산했다. 여자 하나 남자 둘. 흰색 벤츠를 타고 온 20대다. 그들은 낚시하러 온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고급 사진기를 들고 있다. 나갔다 들어오면 어디서 사다 나른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버린 쓰레기가 그것을 말해 준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다. 젊은이들은 방에서 조용하다.
유나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 이들 사이에 심각한 긴장감을 눈치챈다. 평소보다 경계심이 많다. 주변을 정리하다 쓰레기통 속에서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그것을 꺼내 살펴보니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있다. 차에 치인 것을 누가 갖다 넣었나 . 불쌍해서 어째....문소리가 들린다. 빈 양주병을 버리러 나온, 파마한 헤어 스타일에 노란 블라우스와 갈색 펜츠를 입은 여자애가 보는 앞에서 유나는 그것을 땅에 묻는다.)
땅을 다지던 유나는 시선이 느껴져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걸 땅에 묻었나봐요?” 파마 머리의 여자애가 물었다. “아,,,고양이가 사고를 당한 것 같아요. 여긴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 어쩌다가....어찌 되었든 땅에 묻어 줘야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은 동물에 대한 예의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 아이가 까르륵 웃는다. “예의가 참 밝으신가 봐요?”라며 비아냥 섞인 어조로 묻는다. 순간 기분이 몹시 불쾌해져 버린 유나는 입을 꾹 다물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니 어쩌니 하는데 다 가식이죠 언제인가부터 사람 보다 개나 고양이를 더 위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유나는 이미 상해버린 기분으로 무슨 말로 대꾸할까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가 운영하는 펜션에 들어 온 손님과 생각의 차이를 굳이 꺼내들어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는 어리다는 이유로 충분히 이해 받을만 한 사람 아닌가? 그러나 그 아이의 동조를 구하는 질문이 황당하고 기분 나쁘지만 짧게라도 대답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느꼈군요?.... 죽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아이죠. 위생상으로도 이대로 두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라며 일을 마무리 지었다. 곁에 서서 지켜 보던 파마머리 아이는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한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구푸렸던 몸을 일으킨 유나는 비로 인해 축축해진 옷을 갈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서려는데 퍼머머리 아이가 크지 않지만 갸름한 눈으로 유나를 마주 보며 말한다. “저기 언니...괜찮으시면 비용을 지불할테까 부침개 해줄 수 있나요?” 조금전 까지 당돌하고 불쾌한 말을 하던 아이는 간 데 없고 매우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유나는 건물 처마 밑으로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부침개요?....네..재료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준비해 볼께요. 그런데 일행 분들은 아직 안 일어 나셨나봐요?” “아...오빠들은 깊은 잠에 빠졌어요. 일어나기 쉽지 않을거에요”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싱끗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룸에 가 있으면 만들어다 줄테니 기다리세요” “네 고마워요 언니”
유나는 손 씻기를 마친 후 방에 들어가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주방의 냉장고를 열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주방과 거실에 가득했다.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적당히 질축한 반죽을 국자로 떠서 부으면 그 소리가 마치 비 내리는 소리와 닮아있다. 습한 날씨 때문에 기름 냄새가 더 미각을 돋구기도 하지만 비오는 날은 부침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유나는 과거로 잠시 동안 여행을 한다. 이미 3년 전 사고로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는 것이다. 유나에게 아빠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뭐든 허용적이어서 엄마와 가끔 훈육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엄마에게도 역시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친구는 자신이 죽은 아빠에 대한 향수에 젖을 때면 “야야 추억은 다 아름다운거다. 바람펴서 나간 우리 아빠라는 인간도 내 추억엔 다 그립기만 하다. 그래...너는 오죽하겠냐...이해한다. 근데 이제 아빠 얘기는 좀 줄여라...나이 먹은 여자 둘이 앉아서 맨날 떠나간 아빠들 이야기해 봤자 발전도 없잖아 안그래?” 그말이 맞다. 그러나 유난히 좋아하던 부침개에 막걸리를 늘 곁들여야 했던 유나의 아빠를 부침개를 부치면서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펜션에 손님들이 오기 하루 전 유나의 엄마는 친구들과 함께 유럽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유나의 아버지가 3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 하면서 남기고간 보상금으로 이곳에 펜션을 마련하고 두 모녀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배경이 훌륭한 곳에 위치한 펜션들은 가격이 워낙 비싸고 매물이 잘 나오지 않기에 조금은 바닷가에서 멀지만 딱히 손 델 곳 없는 이 건물이 마음에 들었다. 단 한가지, 투숙객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경제적 유익은 크지 않았다. 유나가 대학 졸업 후 10여년을 도시에서 몸 담아 왔던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 둘 수 있었던 것은 혼자 남은 그녀의 엄마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소녀 감성을 가지고 큰 고생 없이 순하게 살아 온 엄마를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복잡한 도시 생활도 지쳐 있었기에 지금 상황에 대해 나름의 만족감을 느꼈다.
“같이 가자 유나야. 우리도 유럽가서 좋은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응?” 엄마의 성화에도 몇 번을 거절했다. 분명 중년의 어른들이 모여 하하 호호하는 분위기도 내키지 않았지만 펜션을 일주일 넘게 닫아야 하는것도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오래 묵을 손님을 받게 된 것이니 남아 있는 것에 명분은 만족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은 처음부터 계속 있었다. 또한 오늘 아침에 일어난 고양이 죽음과 그들에게 펼쳐진 긴장감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유나의 머릿속을 헤짚어 놓았다.
‘이유나! 정신차려! 무슨 상상을 하는거니? 지금은 여기 너 혼자야. 더이상 상상의 나래를 펴다간 공포감에 사로 잡힐거다. 그냥 편하게 있자. 할 일 하면서’ 유나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스스로 보호 하고자 마음을 컨트롤 하기 시작했다.
눅눅한 습기가 목조건물을 애워쌓다.
객실로 들어 선 여자는 가랑비로 축축한 자신의 머리와 옷을 타올을 가져다가 털어냈다.
물기 먹은 여자의 머리카락은 방금 롯트를 푼 머리처럼 더 곱슬거렸다. 그 여자는 문이 굳게 닫힌 큰 방을 지나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이 사용하는 작은 방으로 들어 갔다. 눅눅해진 옷을 벗고 엷은 회색 트레이닝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카메라 가방을 열어 촬영된 사진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사진 속 젊은 남자들이 고른 치아를 들어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훤칠한 키가 비율 좋게 카메라에 저장되어 있었고 드문드문 퍼머머리 여자가 끼워져 있는 모습도 보였다. “흠....따분한 사진들이네...예술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여자는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넣고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남은 양주와 캔 맥주 서너 개를 꺼냈다. 부침개 냄새가 빗소리와 함께 자신이 묵고 있는 2층까지 올라왔다. ‘똑똑’ 현관문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여니 유나가 부침개가 담긴 둥그런 큰 접시를 들고 있었다. “입에 맞을까 모르겠어요. 그냥 있는 재료 이것저것 넣어서 만든거라...” “어머! 너무 맛있겠어요! 고마워요 언니” 여자는 부침개 접시를 선뜻 받았다. “언니, 여기 손님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잠깐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잔 대접하게요 네?” 아까 까지만 해도 냉소적이던 여자의 말투는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부드러움이 더했다. “아...저 고맙긴 한데 저는 할 일이 좀 있어서요” “여기가 불편 하시긴 하죠? 저 혼자 있는게 아니라서...그럼 제가 이따가 아래층으로 갈께요. 상의하고 싶은게 있어서요...아까는 제가 좀 예의가 없었죠? 그런데 언니는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여자는 시야를 아래로 향하면서 예의 바르고 매우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아...아래층엘요?...뭐...그럼 그러세요” 유나는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유나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여자는 손에 든 부침개를 탁자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양주병 뚜껑을 열었다. 트레이닝 바지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약통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통을 꺼내 열었다. 흰색 가루로 보이는 그것을 양주병 속에 넣고 병을 흔들었다. 흰색 가루는 술병 속에서 천천히 녹아 들었다.
유나는 주방을 정리하고 창 밖의 날씨가 조금씩 개어 가는듯 하다가 다시 비를 뿌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름의 성수기를 지나 가을의 기로에 선 계절은 펜션을 찾는 손님들이 뜸하다. 특히 다소 외진 이곳은 날씨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빗길에 차를 더 몰아 펜션을 찾는 수고를 사람들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이다.
방으로 들어간 유나는 읽던 책을 열어 읽기를 시도했지만 이내 닫아 버렸다. 곧 TV리모콘을 집어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왁자지껄 예능 프로를 건너뛰고 한껏 고조된 목소리의 홈쇼핑 쇼호스트를 지나고 뉴스가 펼쳐졌다. “속보입니다. 수개월 종적을 알 수 없었던 서울 용산구의 살인 용의자들이 3일 전 경남 해안지방 도로 CCTV에 포착 되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이 용의자들은...” 순간 유미는 심장이 멈추는 듯 강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손이 덜덜 떨리고 뇌 전두엽 기능에 마비가 온 듯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했다. 뉴스에 나타난 그들의 얼굴은 바로 3일전 이곳에 묵기로한 남자들이었던 것이다. 유나는 휴대폰과 차 키를 챙겨 서둘러 방을 나갔다. 차고에 있던 자신의 소형 자동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파출소로 향했다. 유나는 달리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엄마가 차를 두고 가서. 그런데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되는거지? 정말 그들이 살인자들이라면 그 여자애도 가만 두지 않을텐데 어쩌면 좋지? 아니야 함께 도망 할 수는 없어. 그 앤 이미 숙소안에 있고 그 애를 불러 냈다가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해?’ 앞 유리가 금새 뿌옇게 변한다. 와이퍼 작동도 잊은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와이퍼를 작동 시키며 처음 보다 다소 평정을 찾은 듯 했지만 경찰서에 먼저 신고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게 아직 이성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것이었다. 112를 누르고 상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가 펜션에 다다르자 조심스레 시동을 끄고 몇몇의 경찰관들이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핀 후 긴장한 모습으로 건물을 주시했다. 사복 경찰관 두 사람은 펜션 이층 계단을 단숨에 올라 문을 두드렸다. “안에 계십니까?” 곧이어, “누구시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여기 혹시 이유나씨 계시나요? 친척인데요 아래층에 아무도 없어서요” 문이 열리자 퍼머머리의 여자가 경계하는 눈으로 경찰관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사장님 말씀이신가요? 잘 모르겠는데...저는 여기 놀러 온 사람이라서요 아까 까지만 해도 계셨는데...” 경찰관들은 손에 든 긴급체포 영장을 내밀었다. “남자 둘 어디있어요?” 경찰들은 두리번 거리며 큰방 문으로 성큼 다가갔다. 방문이 잠긴 것을 알고 “여기 방문 키 어딨어요?”라고 물었다. “몰라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 안되겠어” 동료의 얼굴을 보며 경찰은 말했다. 그리고 이내 몇 걸음 뒤로 물러 나더니 힘껏 문에 체중을 실어 충격을 가해 밀었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떨어져 나가고 방안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두 사람은 순간 굳어 버렸다. 이윽고 객실 밖에서 들리는 차 엔진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흰색 벤츠가 요란스럽게 후진과 전진을 이어 하며 도로로 달아나고 있었다. “아우씨~저 차! 잡아! 잡아!” 누구에게 말 하는지도 모르게 두 사람은 소리쳤다. 하지만 이내 방안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봐야 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들의 몸 보다 그들의 입 주위에 흘러나온 검붉은 선혈이 더 압도적이었다. 경찰들은 서둘러 무전을 치고 자신들이 순간적으로 본 차 번호판을 생각나는 숫자만 이야기하고 “흰색 벤츠”만을 강조했다.
유나는 경찰서 강력계 형사와 마주 앉아 떨리는 마음을 어느정도 진정 시킨후 진술을 이어갔다. “오늘 아침에는 너무 조용했어요. 그저 어제 술을 많이 마시고 늦잠을 자나 했거든요. 그런데 같이 온 여자애는...여자는 괜찮을까요? 무슨일을 당하면 어쩌죠?.” 그 말에 대한 답변을 막 시작하려 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야기 했다. “우경장한테 연락 왔는데...하...이거...” 하며 유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진술서를 노트북에 올리던 사람이 “괜찮아 이야기해”라고 하자, “현장에 들이닥쳐서 잠긴 문 부수고 보니까 두 놈 다 죽어 있더래. 그리고 여자애는 차로 도망갔다네. 도대체 뭐야 이 상황?” 진술서를 작성하던 담당자는 이마를 치푸리며, “그래서 차는 따라 간거야?”“응응 바로 연락 취하고 쫒아 갔는데 바닷가 쪽으로 튀었다는군.”
“아이구 이게 뭔 상황이라냐...” 유나는 그들에게 오갔던 내용들을 들으며 그아이가 내뱉았던 이상한 이야기들을 떠 올렸다. “저..지금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죽은 놈들은 감식반에서 오면 밝혀낼 거고요 도망친 여자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글쎄요...너무 개인적인 느낌이라 도움이 되실까 모르겠어요” 담당자와 또다른 경찰관은 유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듯 했다.
바닷가를 향해 과속으로 몰고가던 흰색 벤츠는 도로 한편에 차를 세운다. 땀으로 흥건한 회색 트레이닝 웃옷이 끈쩍이며 몸을 휘감았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맨발인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쉬운게 없네....좋은 작품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아씨,,,,경찰 새끼들이 내 카메라 다 가져가겠네. 아 진짜!”라며 고함을 지르더니 절벽 쪽으로 다가갔다. 경사가 그리 가파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와 태풍이 빚어낸 바위들이다. 여자아이는 조심스럽게 발을 아래로 딛고 한 발작씩 나갔다. 울퉁 불퉁한 돌출된 바위와 안으로 들어가 앉은 바위들은 몸을 숨기기에 충분했다.
멀리서 경찰차의 경광등과 함께 사이렌 소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 왔다. 이윽고 벤츠 차량을 발견하고는 그 옆에 차를 멈추었다. 차 안을 여기저기 살피고 사람이 없어진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기에 이르렀다.
여자는 바위 뒤에 최대한 몸을 숨기고 숨죽이며 귀를 기울렸다. 그러나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나 그들의 발자국 소리마저 삼켜 버렸다. 아침부터 추적거리던 빗줄기는 점점 약해져갔다. 비에 젖은 여자의 몸은 한기가 느껴졌다. 이미 흙과 풀이 엉겨붙은 바지단 밑으로 얼마전 네일샾에서 꾸민 발톱의 메니큐어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것이 흙 묻은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유나는 지친 몸으로 펜션에 돌아 왔다. 한바탕 쓸고 간 경찰들이며 감식반 사람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포진되어 있었다. ‘오지 말걸 그랬나? 밤이 되면 더 힘들어 질텐데...’ 유나는 이곳이 자기 집인 것이 분명 하지만 오늘 일어난 엄청난 사건 앞에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들이 묵었던 객실 쪽을 바라보자 기분이 오싹했다. 앞으로 어떻게 원래대로 돌려 놓아야 할지 막막했다. 빗물에 젖은 마당에 선 채로 물끄러미 펜션 건물을 바라보다가 순간 벨 소리에 놀란다. 그녀의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유나야, 별 일 없지? 꿈자리가 하도 이상해서 전화 한거야.” “어....엄마....흐흐흑.....” “유나야! 왜그래! 무슨일 있는거야 엉? 말해봐! 얘!”
유나는 당장 귀국하겠다는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늘 아기 같은 엄마라 생각하고 돌봄을 받기 보다 돌봐 주어야 할 대상이라 생각했기에 사춘기가 지난 고등학생 무렵부터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엄마에 대한 유나의 염려는 더 강해지기만 했다. 그런 엄마를 이젠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곁에 있었더라면 더 강해져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일, 엄마가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너무 충격을 받아 엄마인 그녀가 잘못 될까봐서 유나는 더 강한 모습을 연출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유나에게는 유일한 핏줄인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유나는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 목소리에 울음이 베어 나오는 것을 알고는 곧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떡해 어떡해를 연거푸 반복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밤은 이곳에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아무래도 시내에 모텔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경찰서를 향해 가던 똑같은 길을 달렸다. 얼마쯤 달리다 보니 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었다. ‘어? 왜 이러지? 아...이러면 안되는데 하필...’ 그동안 차를 돌보지 않은 탓이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도로가에 겨우 세운 자동차는 꿈쩍하지 않았다. 전화기를 찾아 보니 방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를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자동차 케비넷을 열어 보험사 명함을 찾았다. 신호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자동응답기로 안내를 한다. 전화기는 방전이 곧 된다고 신호를 보낸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상담원 연결은....’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는 꺼져버렸다.
서서히 낮에 보이지 않던 태양이 바다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기운이 다한 눈으로 아름다운 석양을 꿈 꾸듯 바라보았다. 경찰들에게 잡히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라 여겼다. 비록 이곳이 발을 헛 딛는 순간 바다로 굴러 떨어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다면 그 다음 문제는 그 후 생각해도 되는 것이었다. 천천히 웅크린 몸을 일으켰다. 온 근육과 관절 마디가 다 아파왔다. 오늘 새벽 고양이의 머리를 가져온 망치로 내리친 일과 두 남자를 영원한 잠에 가둔 일들이 꿈결에서 생긴 것처럼, 아니면 어떤 영화에서 나타났던 일들처럼 막연하게 느껴졌다. 뻑적지근한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손으로는 돌들을 의지해 아까 들어 왔던 통로를 감각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 자신의 발자국을 찾아내어 다시 딛고 올라갔다. 금새 어둠은 주변에 내려 앉았다. 도로에 맞 닿은 곳까지 올라온 여자는 주위를 살폈다.
유나는 난감했다. 지나가는 차량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고 싶어 도로 끝을 응시했다. 저 멀리서 저녁 노을에 아직 반사되는 차 한 대가 달려 오고 있었다. 유나는 손을 흔들었다. 입 속으로 ‘여기요 여기’라고 했지만 차는 급하게 사라져 갔다. 이번에는 꼭 어떤 차든지 세워야겠다고 마음먹고 도로변으로 한 발짝 더 나가서 준비하고 있었다. 차 한 대가 또 달려 오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한 발 더 차도로 내딛었는데 달려 오는 차가 매우 크게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는 유나 앞을 빠르게 지나며 손가락 욕을 했다. “저런! 빌어먹을 인간!... 그래...부딫힐까봐 놀랐겠지 이해한다” 혼잣말을 하며 어두움이 내려 앉는것과 함께 유나의 불안도 점점 짙어져 갔다. 미국 영화에서처럼 도로에서 차를 세우면 태워주는 일은 그후로도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아....그냥 걸어야 할까? 걷는다면 한 시간 이상을 걷게 될 텐데 이 도로는 게다가 인도가 없으니 어두워서 위험 하기도 하고...어쩌면 좋지...’ 그런데 저만치서 무언가 사람이 보였다. 약간 부자연스러운 걸음 걸이인듯 보이기도 하지만 걸어오는 대상이 사람임에는 확실했다. 그러나 유나는 지금까지의 불안보다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해 왔다. ‘왜 이런데 사람이 걸어 다니는 거지? 여긴 펜션도 카페도 아무것도 없는 도로인데’ 점점 사람이 유나의 시야에 들어 왔다.
여자는 경찰관들이 벤츠에 남을만한 증거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견인해 가는것을 소리로 들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파도소리에 묻혔어도 차량이 굴러가는 소리만큼은 분간 할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까마득하게 맨발로 걷다 보니 발이 몹시 아파왔다. 뾰족한 돌맹이에 찔린 발 바닥이 바닥에 닿을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걸어야 했다. 간간히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거나 짐을 실은 1톤 트럭이 앞서서 자신을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알려서는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자신은 수배 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아니, 오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큼은 절대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장담한 두 남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 인물이지만 타인의 폭력이나 경찰들로 부터는 충분히 자신의 보호막이 되었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범죄의 시작 점에 여자는 늘 좋은 도구였다. 여자라서 특히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은 그녀를 의심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산역 뒷골목에서 일어난 유명한 타투샾의 범죄 역시 문 닫는 시간을 기억했다가 막 가게 문을 나서려는 주인에게 매우 순진한 표정으로 ‘오늘 꼭 하고 싶은 문신을 해야 한다고’ 매달렸었다. 난처해 하는 주인에게 값을 두 배로 준다니 곧 승낙을 얻어냈다. 샾에 불을 끄고 불켜진 작업실에 들어가 팬츠를 벗고 누었다. 벽면에 놀랍도록 화려하거나 난해한 샘플 그림들을 보며 주인이 큰 돈을 벌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했다. 그의 가게 앞에 세워둔 포르쉐가 그랬다. “사장님 엄청 부자시죠?”라며 애교 섞은 목소리를 냈다. “하하 뭐 꼭 그런건 아니구요 애쓴만큼 버는거죠 뭐” 멋적어하는 그의 목소리는 겉모습과 다르게 가늘고 여리게 느껴졌다. “저 근데요 사장님...부탁이 있어요” “네에..” “제꺼 끝나고 친구꺼 하나만 지금 이어서 더 해 주시면 안되나요?” “에? 지금 또요?...아이쿠...죄송합니다 이게 워낙 예약제라 하루에 여러번 할 수가 없는 일이라서요...고객님도 특별히 해드리는거에요” “아잉...단번에 거절? 흥흥...내 친구는 단순한건데...안되요?네네? 해주세영...” 여자는 교태스러운 목소리로 가게 사장의 귀를 울려댔다. “그럼 딱 한 번만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해도 야간 업무는 수당이 붙는다는 것 아시죠?”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계산이 확실해야 한다는 영업의 철칙을 준수하고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귀여워 보이는 젊은 아가씨라도 아니 지금 이 여자가 내게 흔하게 줄 수 없는 것을 준다 해도 말이다.
작업실의 구조는 남자 중 하나가 미리 말해 두었다. 그가 전에 이곳에서 타투를 받으며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CCTV가 작업실에 없을뿐더러 작업실 출구 반대편으로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는데 그곳은 철제 계단을 내려가면 곧장 어두운 골목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 골목 또한 이미 낡은 방범 카메라가 형식적으로 달려 있을 뿐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했지만 거사를 위해 이미 부서버린 후였다.
“그런데요 사장님, 저기 문은 밖으로 나가는데인가요? 친구를 저 문으로 들어오라하면 어때요? 제 친구가 사실 결혼한 남자거든요 하하 그렇다고 이상한 오해는 마시고요 그냥 남사친이에요 그래도 아는 사람이 혹시 이동네 온 거 볼까봐 조심 스럽더라고요 와이프가 완전 저렴이(저렴한)거든요” “아...그래요? 뭐...그러라고 하시죠”주인은 여자의 말에 무슨 기대감을 가지고 생각했던 조금전까지의 자신에 대해 정신이 든듯했다.
타투샾 주인은 칼에 찔려 출혈이 심해 죽어 있었는데 발견한 것은 다음날 오전 예약 손님이 찾아와도 문을 열지 않자 이미 단골이 되어 알고 있던 작업실 뒷 문을 찾아 문이 열어진 것을 보고 들어 갔다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신고한 것이다.
저 만치에 희끄므레한 사람의 형제가 여자의 눈에 들어 왔다. 그 곁에 자동차도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펜션 주인이었다. 둘은 순간 그 자리에 굳은 채 아무말 하지 않다가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흑흑흑” 유나는 뒷 걸음치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는요 오빠들이 놀러가쟤서 온 것 뿐이라고요” “근데 왜 도망 친거죠? 죄가 없다면 말예요” 순간 여자는 도로에 힘 없이 풀썩 쓰러졌다. 유나는 놀라서 그녀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두 눈은 감겨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얼굴은 창백한 듯 느껴졌다.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 오고 있었다. 유나는 있는 힘을 다해 여자를 도로변 안전한 곳으로 끌어 들이려 힘을 썼다. 단 발의 차이로 자동차 운전자도 심하게 놀란 듯 큰 경적 소리와 함께 핸들을 반대로 꺽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 가는 것이 보였다.
유나는 여자의 뺨을 두드렸다. “이것봐요! 아가씨 정신 차려요!” 유나는 생각난 듯 자동차로 달려가 안에 있던 생수병을 꺼냈다. 언제 적 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것을 생각할 겨를이 아니었다. 반 쯤 남은 생수병의 물을 입에 넣고 어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여자의 얼굴에 뿜었다. 여자가 눈을 뜨며 의식이 돌아 왔다. “정신차려요” 유나는 조금전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 보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차에 가서 좀 앉아있을래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유나의 부축을 받고 자동차 뒷 자석에 몸을 비스듬이 뉘였다. ”아가씨 기절 했었나봐요...경찰들을 피해 도망친거죠? 차는 어디다 두고...“ 곁에 앉은 유나가 물었다. ”걔네가 가져 갔겠죠뭐...“ ”이제 어떡할거에요? 경찰에 가서 자수...아니 진술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도망치면 의심받을텐데...“ ”그래야겠죠...뭐가 됐든....“ 기운 빠진 목소리로 아침과는 다르게 헝클어진 머리를 유나의 어깨에 기댔다. 여자의 머리 냄새가 유나의 코 끝에 전해졌다. 바다 냄새와 샴푸 냄새, 또는 엉망이 된 그녀의 알 수 없는 삶의 냄새가 느껴졌다. ”언니....낮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지금 이야기 할게 들어줄래요?“”그래요..들어 줄게요...“ 유나는 자기 어깨에 기댄 불편한 대상이 더이상 불편 보다는 측은함과 연민이 더 커버려서 그녀 이야기를 마치 의무인냥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과 낮, 그리고 밤에 느끼는 대상의 이미지는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무척 당돌하고 예의 없어 보였다가 자신에게 먹을거리를 부탁하며 급격히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보였다가 지금은 금방이라도 사그라들것처럼 가녀린 생명체로 보였다.
여자는 한참 호기심이 증폭될 시기인 3살 무렵 젊은 엄마와 함께 어떤 남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신에게 아빠라고 소개한 남자는 가느다란 눈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입술 살이 풍부한 남자였다. 그가 이쁘다며 여자아이의 볼에 입을 자주 맞추었는데 아이는 그 행위가 결코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의 노릿한 얼굴 기름 냄새와 입술이 볼살에 닿을 때 느낌은 민달팽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남자의 입술 세례는 점점 발전되어 갔는데 자신의 엄마가 외출하고 나면 더 거세졌다. 여자가 7살 되던 무렵, 급기야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한 달에 두어 번씩 벌어졌는데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더욱 선명하고 불쾌한 감정은 밤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수면제를 처음 처방 받고 잠을 청했던 날은 신기하게 숙면을 했다. 그 아침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햇살이 자신의 옥탑방 창문을 비추었던 것이 그렇게 따스한 줄 예전에는 몰랐었다. 사람에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밤’이라는 프로그램은 낮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의붓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은 쉽지 않았다. 그는 그여자에게 집착했으며 남자를 만날까봐 두려워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학교생활이 불량하다고 그녀의 엄마가 수시로 불려다녔다. 그런 날이면 의붓 아버지는 여자에게 폭행을 가했다. 자신의 엄마는 그저 혀를 쯧쯧 차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 까지 성적으로 유린당한 것을 밝힌들 엄마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어쩌면 알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어느날 밤 여행에서 다녀온 여자의 엄마가 피곤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든 적이 있었다. 그날 밤도 어김 없이 짐승같은 헐떡임이 여자의 몸을 타고 다녔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마치 그녀의 커다란 눈은 아무 감정도 속이지 못할정도로 솔직해져 보였다. 슬픔이 고인 듯 하면서 분노가 보이기도 하고 무시하는 듯한 회피의 눈빛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의 남편에게는 너무 상냥하고 친절했다. 반찬의 가짓수도 더 많아졌다. 추측하기로 그녀가 누리는 중산층의 호사가 모성애와 의로움으로 해서 사라진다는 것을 견딜수 없었을지 모른다. 집을 나온 여자는 한참을 숨어 지내야 했다. 비슷한 이유로 가출해서 온갖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선배 언니가 자신의 셋집 방 한칸을 내 주었다. 그곳에서 기거하며 그 동네에 작은 카페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카페 사장은 동글동글한 몸에 인상이 좋아 보였다. 그의 아내 역시 부지런하며 사람들에게 상냥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가게에 자주 나오지는 못했다. 주방 한켠에는 커피 원두를 볶는 기계가 있었다.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워 돈 벌면 카페를 차릴 수 있다고 사장은 희망을 넣어 주었다. 그러나 그 희망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영업이 끝난 어느날 밤, 카페 사장에게 커피 볶는 공간으로 밀려 들어가 그곳에서 유린을 당했다. 미안하다며 담배를 피워 문 한 손과 다른 한 손에는 봉투가 들려있었다. ”너 그만 둬라. 내가 죄를 지어서 아무래도 네가 여기 있으면 안될 것 같애.
우리 와이프한테는 내가 적당히 둘러댈게 아, 저번 주일날 교회 갔는데 설교 중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거라고 예수님이 그랬다는군. 그게 말이되? 그럼 이세상 남자 전부 간음자들이잖아 안그래? 하하“
펜션에서 시체로 발견된 남자들을 만난 것은 한 달전, 그러니까 타투샾 강도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이었다. 여자가 사창가에 드나들기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어서였다. 그들은 좀 더 쉬운 범죄의 접근을 위해 여자가 필요했고 거기에 퍼머머리 여자가 낙점 된 것이다. 인상이 순진해 보이고 세상을 체념한 듯 살아가는 여자가 맞춤이라고 본 것이다. 그들은 여자와 몇 번의 성매매를 하면서 화대를 매우 후하게 쳐 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감격해 하지도 않았고 기분 좋은 서비스도 없었다. 한숨 섞인 웃음소리를 작게 내며 싱끗 웃을 뿐이었다. 남자들 중 하나가 여자에게 은밀한 계획을 말하기 시작하려고 하자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말을 꺼내기도 무섭게 자기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 했다. 그리고 매우 명쾌하게 자신들의 일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남자들은 기분이 좋았고 인간적으로도 여자가 마음에 든다며 매일 만나서 먹고 마시고 소비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자 이제는 한 탕 할때가 됐다며 둘 중 하나가 계획을 세웠다. 둘은 반대 성향이라서 죽이 잘 맞다가도 크게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자의 언변에 녹아 둘은 금방 화해했다. ‘열심히 일한자는 떠나야 한다’며 유나의 펜션을 오게 되었다. 되도록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오게 된 것이다. 해외도 아닌 국내 여행의 기간을 길게 잡은 이유는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의 범죄가 어떨지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많은 집에 침입할 계획을 둘 중 하나가 말하자 ”야 새끼야, 무슨 늙은이들 꼬린네나는 푼돈 벌려고 온 줄아냐?“라며 핀잔을 주었다. 적어도 읍내 금은방 정도는 되야한다고 했다가 더 나가서 은행을 털자고 했다. 그들이 쉴 새 없이 잡담과 심각한 범죄 계획을 떠들 때면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가 있거나 밖에 나가 먹을거리를 사 날랐다. 무슨 일이든 미리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지시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거였다.
어제 밤에 차를 몰고 나가 마트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와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펜션으로 돌아와 차를 주차한 뒤, 2층 계단을 올라 숙소 현관문을 열려고 할 때 그들의 목소리가 여자의 귀에 들려왔다. ”아 C 8....그때 너만 아녔어도 걔가 죽지 않아도 됐었어.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긴 사람만 하기로 해놓고...새끼가 왜 반칙을 해서 찝찝하게...크크크 근데 10살 치곤 꾀 튼실했어 그치?“ ”마자...쬐꼬만 년이 살려만 주면 시키는대로 다 한다잖아 맹랑하더라고...“
그들은 1년 전 옷이 벗겨진 채 수로에 살해되 버려져 있던 여자아이를 간강 살해한 범인들이기도 했다. 여자는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리자 자신이 움켜 쥐고 있었던 쇼핑 봉투가 바닥에 떨어져 내용물이 쏟아져 나와 딩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랬동안 잠자고 있었던 분노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문 밖 인기척을 느낀 남자 중 하나가 문을 빼꼼히 열고 여자를 바라봤다. ”뭐냐?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아 C 8 비닐 봉투 터졌냐?“ 남자는 바닥에 떨어져 딩구는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여자는 사 온 물건들을 탁자 위에 놓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들, 오늘 내가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일찍 좀 쉬어야겠어 이해해 줄 수 있지?“ ”야, 너 오늘 마법에 걸렸냐? 크크.. 그래라 에너지좀 비축해 둬야 일도 할테니까“그들은 상관 없다는 투로 사온 물건을 이리저리 살폈다. 마른안주와 양주를 꺼내려던 참이다. ”아 참! 오빠들 낮에도 대충 먹어서 배고프겠다 그치? 오빠들 몸 생각 해야지.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오빠들 밥은 해주고 쉬더라도 쉬어야겠어“ ”히야...왠일이래? 가시나 이거 철 들었나보다 그래! 우리 해주는 밥 먼저 먹고 술도 먹고! 히히힛“
여자는 그들이 새로운 범죄를 모의 하느라 정신을 쏟는 사이 자기가 묵는 방으로 들어가 짐가방 안에 지퍼로 채워진 포켓을 열었다. 그리고는 작은병 하나를 꺼내 주머니에 넣은후 주방으로 향했다.
그들의 은밀한 계획은 방안에서 준비한다. 혹여 비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간 범죄 행위는 다 들리게 왜 떠드는 것일까? 펜션 주인여자가 듣게 되면 어쩌려고....병신들...’여자는 싱크대 수납장에서 냄비를 꺼내고 마트에서 사온 김치 봉투를 가위로 잘라 냄비에 쏟아 넣었다. 썰어진 돼지고기도 넉넉히 넣었다. 큼큼하고 구수한 찌개냄새가 진동하자 그들이 거실로 나왔다. ”히야...냄새 죽인다 그치? 아 배고파 빨리 밥먹자!“ ”알았어 금방 되니까 조금 기다려“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찌개를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저었다. 식탁에 두 사람의 밥을 차려낸 후, ”이젠 방에 들어가서 쉴게. 설거지는 먹은 사람들이 하기“ 여자는 피곤한 표정으로 작은방으로 사라졌다.
두 남자는 개걸스레 찌개를 퍼 먹었다. 밥에 국물과 김치 건더기를 건져 비비듯 말아버리듯 모처럼의 한식에 빠져 버린 듯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는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와 식탁의 음식이 쏟아지거나 그들의 얼굴에 묻은 채 자유롭게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응시했다.
여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 가더니 카메라를 들고 나와 벌어진 광경을 찍었다. ”결코 아름답지 않군. 그러나 이것도 추억이니까“ 여자는 쓰러진 남자 하나의 양 어깨죽지에 줄을 감아 큰방으로 옮기기를 시도했다. 사람이 늘어지니 무게가 엄청나게 나갔다. 여자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때 그 의붓 아버지를 이렇게 죽일수만 있었다면 감옥에서 평생 썪어도 만족할 것 같았다. 그렇게 70kg이 넘는 사내들은 여자의 과거 분노가 괴력이 되어 짐짝처럼 큰방으로 옮겨졌다. ‘무색무취’ 독살하기 좋은 약이 여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려는지 후덥지근했다. 여자는 거실 청소를 마치고 잠긴 큰방 문을 응시했다. 밖은 어둠이 깔리고 고양이 소리만 요란하게 청각을 괴롭혔다. 펜션 주인여자는 잠이 들었는지 불이 꺼진 아래 층은 조용했다. 여자는 다시 큰방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그들의 가방을 뒤지니 목이 짧은 망치가 나왔다. 안주에 섞여있던 마른 오징어를 몇 가닥 챙겨 그것을 들고 숙소를 나섰다. 건물 뒤편에 번뜩이는 고양이의 눈이 보였다. ”얘 이리와 이거 줄게“ 여자는 손에서 마른오징어를 꺼내 고양이를 유혹했다. 이미 유나의 손에 길들여진 고양이는 경계심 없이 다가 왔다. 순간, 이미 여자의 머리 위 높이에 손으로 들고 있던 망치는 쏜살같이 내리쳐 졌고 그 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피묻은 망치를 욕실에 들어가 씻으며 생각했다. 눈이 크고 예쁜 엄마는 고양이를 닮았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어떤 이는 엄마 눈을 닮았더라면 훨씬 이뻤을거라고도 했다. 단 한사람, 의붓 아버지는 ‘매력적인데 뭘?’하면서 음흉하게 바라 봤었다. 그 짓을 하고나서 여자에게 다정하게 굴며 거울 앞에 서서 ”봐봐 너랑 나랑 눈매가 닮지 않았어?“라고 말을 하곤 했었다.
그날 밤은 마치 처음으로 수면제를 처방 받아 먹던 날처럼 깊은 잠이 왔다. 그리고 빗소리에 눈을 뜨고 밖을 내려다 보니 펜션 주인이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고 있던거였다. 아래로 내려가 그 행동을 바라보며, 엄마를 닮은 아니, 엄마가 닮은 그 동물에 대해 그렇게 생을 마감한것에 대한 당위성이 인정되었다. 왜? 그 둘은 서로 닮았으니까...
결국 저들이 살인자 범죄자라도 여자는 자신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쯤은 잘 안다. 국선 변호사라도 자신에게 최고형은 내리지 않게 할 것이고 젊고 아직은 어린 여자이니 형량이 많지 않을수도 있다. 대형 로펌 변호사를 쓸 수 있다면 집행유예도 가능할지 모른다. 말을 꾸미기 나름이니까. 그러나 여자는 그런것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술에 약을 섞어 마시기전, 그 어느날인가? 주방 아줌마가 비오는 날 구어 주던 부침개를 먹고 싶을 뿐이었다. 결국 먹지도 못하고 도망 나오긴 했지만.
유나는 말 하기도 벅차 기운이 다해 간간이 쉬어가는 여자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그녀를 살려내고 싶어졌다. 자신이 애정을 쏟던 고양이를 죽인 것은 괘씸하지만 어쩐지 용서 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군것질 좋아하는 엄마가 차 속에 사다 넣어 둔 초콜릿이 생각났다. 조수석 버켓을 여니 포장지에 싸여진 초콜릿이 눈에 들어 왔다. 포장지는 이미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날 초콜릿에 엉겨 붙어 있었다. 그것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여자에게 먹였다.
먼 곳으로부터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붉은 빛은 어제의 빛과 다르게 두 여자가 앉아 있는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여자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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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많이 써본 솜씨군요. 작은 단락 하나로 이렇게 장문을 이어쓸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내공이 이미 세워져 있다고 봅니다. 본 소설수업과정을 통하여 조금만 더 연마하면 보다 차원높은 소설을 창작하리라 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