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진 집사님 대법원 승소의 숨은 주역들 - 조상익 의사
저는 재림 청년의사 조상익입니다. 저를 다시 한 번 이 귀한 예배 시간에 초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잠시 잊고 있던 사이에 화창한 봄을 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마음에도 계절만 봄인 것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 한 분 한 분의 마음 모두가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만개하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이제 교회에서 또는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때에 제가 하는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나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부족하게 하지 못하는 일들을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내 친구들이 해줄 때 그것이 저한테 또 너무 큰 감동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제가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힘이 되곤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릴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너무나 아끼는 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 친구들이 매번 자기들 허락 없이 이야기한다고 저작권을 달라고 하는데 그거는 하늘나라에서 아마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어떤 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이야기는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짧은 시간 그 긴 역사에 하나님의 작품을 여러분께 선보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 제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이들 궁금해하셨는데 제 와이프의 아주 어릴 때 모습입니다.
네네네 맞습니다. 진짜 맞습니다. 제 와이프가 어릴 때 정말 이뻤대요.
정말 예쁘죠. 그런데 제가 아이를 놓고 보니까 이때 요만한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알겠는 겁니다.
저희 장애인 장로님 얼마나 예뻐했을까요? 근데 이 어린 아이가 스쿨버스를 타고 통근하는 길에 차가 전복이 돼서 크게 다쳤는데 그 버스에서 제 와이프 아내만 얼굴이 찢어진 거예요.
얼굴이 얼마나 많이 찢어졌냐면 사람이 다 피범벅이 돼서 제 아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피범벅이 된 거예요.
그래서 쿵 하고 버스가 전복이 됐는데 너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 제 아내는 피보험복인 겁니다.
그래서 이제 병원에 급히 실려가고 병원에서 저희 장인 장모님을 급하게 호출을 했는데 저희 장애인 장로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말을 못 하시는 거예요.
얼굴이 너무 많이 찢어져가지고 막 눈물밖에 나지 않더래요.
근데 수술을 했는데 4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 두 달간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그래서 제 와이프의 이마를 보면요. 정말로 그 흉터가 이만큼 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다행히 그거를 잘 아물게 해주시고 다행히 남편은 콩깍지가 씌어서 흉터가 있는지 모르고 결혼했어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그때 4시간 동안 그 얼굴을 봉합하는 찢어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얼굴을 다 봉합하는 그 과정에서 정말 저희 장로님은 차마 보지 못하고 저쪽 복도 코너에서 울고 울고 또 울고 계시고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근데 와이프가 회복했을 때 저희 장인어른께서 저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해요.
우리가 지금 이해할 수 없지만 왜 이런 일을 겪어야 되는지 알 수 없지만 현정아 하나님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단다.
제 와이프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과대학에 입학할 때 제 와이프랑 저랑의 큰 차이점이 한 가지가 있는데 제 와이프는 원칙주의자였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하지 않는 신앙을 했었습니다.
저는 굉장히 융통성 있는 신앙의 저 끝에 있었어요.
이런 말 정말 부끄러운데 제가 고백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안식일날 시험도 보고 할 거 다 했었습니다.
안식일날 시험이 있으면 금요일날 제 와이프는 공부를 안 했을 텐데 저는 금요일은 만나가 두 배로 나오는 날이니까
나는 두 배로 공부가 잘 되겠지 이러면서 하나님께 오히려 능력을 구하는 그런 기도를 하고 했었어요.
이 이방인들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막 이러면서 이제 기도를 했었거든요.
와이프가 이제 의과 대학에 입학을 했더니 모든 시험이 다 안식일인 겁니다.
그래서 제 와이프는 이 안식일날 시험을 보지 않았었어요.
그냥 시험을 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저처럼 그냥 눈치를 보고 무섭거나 뭐가 안 될 것 같으면 이건 안 되겠다.
근데 제가 하나님께 했던 기도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하나님 저는 겁이 많아서 제가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바꿔주지 않으면 저절로 바꿔주지 않으시면 저는 그냥 모르는 척할래요라는 기도를 했었어요.
저는 정말 용기가 없어요. 그런데 제 와이프는 모든 시험에 해당 담당 교수님한테 다 편지를 썼었어요.
저 편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 편지를 써서 교수님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이 우주를 창조하신 ...저 편지는 정말 가관입니다.
대학생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글들이 있어요.
교수님 이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거든요.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거든요. 저는 그 말씀을 들어야 되거든요.
시험 안 보게 해주세요. 그런 내용들이에요. 그리고 저 편지를 그냥 메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들고 교수님 방 앞에서 오실 때까지 서 있습니다.
편지를 주고 어떤 교수님은 이런 걸 보내는 너 같은 개념없는 얘는 처음이라고 욕하는 교수님도 계시고 온갖 핍박이 난무했었죠.
그런데 6년 동안 단 한 번도 시험을 보지 않고 졸업을 했어요.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심지어는 도중에 시험을 안 바꿔주려는 교수님이 계셔서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서도 냈어요.
어린 학생이 탄원서를 내서 안 들어주니까 탄원서를 내는 겁니다.
근데 학교에 어느 날 교수님이 난리가 난 거예요. 조현정이 누구야
왜요? 그랬더니 야 너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서는 썼다면서! 학교가 뒤집혀진 거예요.
야 그럼 말을 해야지 그랬더니 말을 했는데 안 바꿔 주셔가지고 그래서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었죠.
그런데 큰일이 한 번 생겼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이 이제 정형외과 시험인데 이제 본과 4학년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시험이에요.
다 아무 일 없이 시험을 보지 않고 통과를 했었고 제 아내가 정말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모든 핸디캡을 다 가지고 최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어요.
이것만 통과하면 이제 끝이 나는 상황이었고 친구들도 너무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제 와이프가 이제 공부를 하고 있거나 이제 이제 저희 슬라이드 보는 그런 이제 공부가 있는데 정말 많이 이만큼 슬라이드를 주고 다 외워야 돼요.
그림을. 근데 이제 금요일날 공부를 해야 되는데 남들은 막 밤새서 공부하고 다 못 보니까 밤새서 공부하는데 제 아내는 해가 지면 이제 공부를 끝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친한 오빠가 이제 같이 공부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현정아 빨리 내 차에 타라고 내가 해지는 반대편으로 달려줄 테니까 그냥 너 입장에서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는 거 아니냐고 이쪽으로 달려가 보자고 그런 식으로 이제 농담하고 했다고 해요.
친구들도 좋은 친구들이죠. 그런데 이 마지막 시험이 있었는데 이 교수님에게도 어김없이 편지를 썼습니다.
근데 교수님이 제 와이프를 불러서 절대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바꾸지 않겠다. 이건 너의 교만함이다.
우리 대학 교수들이 만만하게 보이냐 지금까지 너한테 이렇게 해주니까 그게 당연한 건줄 아냐 그 특혜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냐 절대 못한다.
너는 그냥 나를 선택할 생각하지 말고
이 시험을 통과 못하면 그냥 유급이 아니라 졸업 아예 못해요.
우리는 모든 거를 다 패스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졸업을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퇴할 생각을 해라. 난 아예 타협할 생각 없다.
아니면 니가 우리 학교의 법칙에 수능해서 시험을 봐라 그 방법밖에 없다.
그게 이제 그렇게 너무 완고하게 말씀하셔서 와이프가 이제 기도를 한 거예요.
밤새 울며 기도를 했죠. 근데 여러 가지 이제 삶 속에서 저 기도가 나오더래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할 것이며 끈질기게 그분을 기다릴 것이다.
우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우리가 소망하는 만큼 빨리 오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요구한 대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믿음을 잃고 낙담하지만 않는다면 그분의 자녀들의 최고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께서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이제 저희 장인어른께서 저희 제 와이프가 얼굴이 다 찢어져 있어서 울고 불고 할 때 했던 그 얘기를 기도 중에 깨달은 거예요.
제 와이프가 그 용기가 있어서 안식일 시험을 다 거부했던 것이 아니고, 대학교 2학년 때인가 방학 때 정말 하나님과 단판 승부를 지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혼자 절에 들어가서 왜 절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시골에 있는 빈 어떤 그런 공간에 들어가서 대쟁투총서를 완독했대요.
혼자서 식음을 전해 너무 재미있어서 물도 못 먹겠더래요.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데 마음속에 큰 은혜가 오더래요.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확신하고 그 말씀을 이제 순종해는 가는 과정이었거든요.
근데 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속에 있고 하나님의 그 약속이 확신으로 느껴지셨던 거예요.
그래서 제 와이프가 썼던 마지막 편지인데 이 편지입니다.
제가 어제 새벽에 이거를 이제 보면서 나는 그렇게 못했는데 저 조그마한 여자가 적다는 게 너무 대견하고 미안하더라고요.
근데 교수님 저는 여기서 의학의 길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안식일에 시험을 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예배에서 부르던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찬양이 제 삶의 간증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교수님의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걸 정리하고 이제 자퇴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게 여기까지라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저는 믿겠습니다.
이게 제 와이프의 깨달음이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교수님이 너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이 따위 편지를 써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제 와이프를 교수실로 부르는 거예요.
불러서 뭔가 이제 나가라는 소리인가 하고 갔는데 그 교수님께서 하는 말씀이 야 현정아 내가 사실은 내 친척 중에 재림교회는 있어 그러더래요.
근데 그 사람이 너무 장사가 잘 되는데 안식일만 되면 문을 닫아 너무 이해가 안 돼.
내가 그 문 열라고 돈 떼돈 번다고 얼마나 많이 말했는데도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안식일에 대해서 약간의 그런 답답함이 있었대요.
그래서 현장에 너를 봤는데 그게 딱 매치가 되면서 너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대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여기서 접어라. 세상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그리고 손해 보고 살 필요 없다. 안식일 교인으로서의 고지식함을 버려라.
그게 너한테 이롭다. 토요일 날 문을 열어라. 왜 문을 안 열고 고지하게 문을 닫고 있느냐라는 답답한 마음에 얘기를 했대요.
근데 이 편지를 보고 알겠다. 안식일 교인들이 하는 신앙이 어떤 건지 내가 이제 알겠으니까 시험을 봐라.
내가 어떻게 내 제자의 앞길을 맞겠니? 그러더래요.
어느 교수가 자기 제자의 악귀를 막으려 하겠니? 그러면서 제 와이프가 시험을 보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이제 충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했고요.
그리고 이제 아산병원에 근무를 하게 되었죠. 아주 오래전입니다.
그런데 이때 재미난 일이 또 있었어요. 이다음에
저는 부산대학에 비슷한 시기에 갔는데 좀 더 늦게 갔죠.
근데 부산대학에서 단 한 번도 안식일을 지킨 적이 없어요.
근데 제 뒤로 간 후배들이 상익 형이 있으니까 제 이미지 아시잖아요.
있으니까 나는 이제 부산대 가면 좀 괜찮겠지 했는데 안식일날 시험 안 보려고 그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안식일날 시험 봐야지 이때까지 그런 적이 없었어.
그랬더니 그런 적이 없었다고요. 상혁이 형이 있었는데 했더니 우리는 한 번도 안식일날 시험을 미룬 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그 말 듣고 나서 제가 4년 다녔으니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제 후배들도 다 시험을 본 거예요.
근데 충북대는 제 와이프가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식한 시험을 보지 않아요.
인권위원회에서 해당 관련돼서 공문을 보냈고 충북대에서 그걸 받아들여서 우리는 그럼 앞으로 안식일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충북대 안식이 시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충실이라는 친구가 쟤랑 친한 후배인데요.
이 친구는 이제 저랑 삼육대 약대에 같이 나왔고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했는데 정말 공부를 잘해서 의학전문대학원의 상위 0.0001% 정도 성적이 항상 나왔었어요.
당시에 이제 서울대 진학 전문대학원이나 당시에 의학전문대학원은 모든 학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좋은 학교는 당연히 갈 수 있는 거기도 수석할지도 모를 만한 성적이 항상 나왔었는데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동안 안식일이어서 시험을 치지 않았었어요.
두 번이나 시험을 안 봤습니다. 두 번 다 안식일인 거예요.
저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두 번이나 시험을 안 보고 3수를 하니까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똑같은 공부를 세 번째 하고 있는데 세 번 다 타클에서 성적이 나와요.
그런데 저희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스터디를 많이 하는데 그 친구는 이제 할 때마다 스터디를 하는 거예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 형은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데 계속 스터디로 나오는 거예요.
모든 과목에 모르는 게 없어요. 처음부터 수석 점수인데 3수를 하고 있어요.
3년을 공부하고 있다고요 근데 물어봤대요. 형 형은 이제 스터디 안 나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성준 씨가 웃으면서 이런 말하기 좀 네가 좀 자존심 상할까 봐 내가 좀 말하기.
그런데 니가 떨어질까 봐 나오는 거야. 네가 떨어질까 봐 나오는 거야.
모르는 거 있으면 형한테 물어봐. 어떤 여자애는 오빠는 도대체 오빠는 손해 아니에요.
괜찮아 난 우리 다 붙었으면 좋겠어. 난 그게 되게 즐거울 것 같아 하면서 공부를 가르쳐주러 나간 거예요.
스터디를 재미있어서 모르는 게 없으니까. 근데 이제 그 마지막 시험도 이제 안식일이었는데 그래서 그 세 번째 시험도 포기하려고 했었어요.
근데 이제 그 국시원에 막 저희가 부탁을 드리고 또 많은 교회 관계자분들이 부탁을 드리고 하다가 이제 그런 과정에 이게 될지 모르는 그런 과정에 모든 친구들이 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당연히 시험을 봐서 이 스터디에 이름을 날릴 줄 알았는데 자기가 전국 수석하는 사람 안다고 얘기하고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르는데 시험을 또 안 보겠다는 거예요.
너무 놀래죠. 주변 사람들이 아니 왜 시험을 안 본다는 거야?
그러니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재림교회를 다니는데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
근데 시험이 안식일이라서 내가 볼 수가 없단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너무 놀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기적같이 안식일이 안식일 시험이 바뀌어가지고 세 번째 시험 때 안식일이 아닌 나 시험을 보게 됐어요.
거의 전국 수석했습니다. 진짜로 그 등수가 나오지 않는데 그 점수는 나올 수가 없는 점수 제가 먼저 봐서 알거든요.
저보다 몇십 점이 높아요. 그래도 점수를 맞았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저 전화가 왔어요. 저한테 제가 먼저 부산대를 갔으니까.
근데 제가 솔직히 너무 제가 오늘 부끄러운 얘기가 많습니다.
너무 부끄러운데 충실한 의학 이제 삼육대 약대 동문이란 말이에요.
저보다 후배지만 제 알량한 이 이기심과 이 교만함에 어떤 게 있냐면 내가 남보다 좀 더 잘 됐으면 하는 그런 교만함과 욕심이 다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좀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의학전문대학원 가면은 이런 길 이런 방법을 막 공유해 주고 후배들 챙겨주고 이래야 되는데 내가 간 거 남들이 쉽게 가면 전 그게 싫은 거예요.
저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근데 충실이가 진짜 공부 잘하고 정말 사람들이 좋아하는 친구였거든요.
소식이 끊겼는데 공부를 서로 공부를 했으니까
나는 음악전문대학원을 갔는데 연락이 없었고 얘가 며칠 동안 시험을 못 본다고 한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속에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어 했는데 내가 3년 앞섰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미안하다. 정말 부끄럽네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근데 이 전화가 온 거예요. 전화가 온 거예요. 전 그렇게 공부 잘하는 줄 몰랐어요.
그렇게 공부 잘하는데도 못 가는 줄 몰랐어요. 성적이 안 돼서 못 가는 줄 알았어요.
정신은 좀 부족한 애구나 물어보는 거예요. 형 부산대 좋아요.
좋지 이런 이런 장점이 있단다. 그럼 이런 대학은요.
이런 대학은요. 저는 이제 일상 세상적인 그런 안목에서 막 코칭을 해주고 있었어요.
근데 마지막 질문이 그거예요. 안식일 어떻게 지키고 계세요?
너무 그거 그냥 시험 보고 하는 거지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줬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럼 부산대는 안식일을 못 지켜요.
그러면 그럼 거기는 못 가겠는데요. 그러는 거예요.
이 친구는 왜 전화를 했냐면
혹시라도 이 모든 의과대학 중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대게는지 찾고 있는 거예요.
수소문하면서 그러다가 저는 토스가 되고 한 학생을 알게 됐는데 그게 제 와이프예요.
현정이한테 전화를 했겠죠 현정아 충북대는 어때?
오빠 막 이런 일이 다 얘기를 해줬겠죠 이런 일 때문에 그 뒤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시아 시험 본 적이 없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가 있는 6년 동안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모든 교수님들이 내 편지를 받았어요.
다 아실 거야. 그래서 충실에는 충북대를 갔어요.
충북대는 의학전문대학원에서는 좋은 성적으로 가는 학교가 아니었어요.
물론 가기는 어렵겠지만 그 학교 중에서는요. 그래서 충북대 면접에서 충씨가 처음 받았던 질문이 뭔지 아세요?
정말로 교수님들이 너는 왜 이 성적을 우리 학교 왔니였어요.
이성적이면 전국 수석일 것 같은데 왜 우리 학교 왔냐는 거예요.
충실했던 말이 안식일을 지키고 싶습니다가 면접 답변이었어요.
제 7일 안식일 예수살 교인인데 저는 안식일을 제가 다니는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학교를 가는 게 목표입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갑자기 답변이 뭐냐면 너 조현정 아니 그런 거예요.
면접에서 면접 내용이에요. 이게 알죠? 현정이가 추천해 줬습니다.
이 학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합격입니다. 근데 순실이는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안 쉬나 시험을 보지 않고 졸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충실와 스터디 했던 친구들은 도대체 이 교회가 뭐 하는 교회인지 궁금해서 저희 봉사대를 같이 갔었습니다.
저희 이제 스자봉사대라고 저희 이제 sda 스마 봉사대에서 이제 갔었죠.
저기 동그라미 친 친구가 그때 같이 스터디 했던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이제 제일 뒤에 있는 친구가 제 와이프고 앞에 있는 두 친구가 제 와이프와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인데 다른 학교들이죠.
근데 이제 우리가 이제 의과대학을 가면 신앙이 조금 멀어진다고 해서 의과대학을 간 우리 sda 친구들이 모여서 이제 모임을 만든 게 SMA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서 같이 만난 친한 친구들인데 이때 이 친구들이 했던 얘기가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핍박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면서 졸업한다는 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었어요.
전례도 별로 없고 이 친구들은 셋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졸업하기를 결의를 했고 목표가 10년 안에만 졸업하자였대요.
우리 10년 안에만 졸업하자 그것도 감사하다. 그리고 저게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저 강하라라는 제 친한 동생인데 저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서 계속 안식일날 시험을 안 보게 해주다가 어느 날 불만이 생긴 거예요.
학생들이 왜 쟤만 저렇게 우리가 편의를 봐줘야 돼 그래서 불만이 너무 많아지니까 과 대표가 하라야 넌 좀 나가 있으라고 한 다음에 이제
거수를 했대요. 그래서 다수결로 하자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하라는 이제 가서 엄청 기도를 한 거예요. 하나님 제발 이 다수결에서 제가 하나님의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전체 인원 중에서 딱 한 표 차이로 찬성이 된 거예요.
그래서 하나가 그때 했던 말이 뭐냐면 내가 생각 없이 나도 모르게 잘하는 그 한 명이 누군지 모르지만 그 한 명이 얼마나 귀한지 알겠다고 그래서 이 하라라는 친구도 안식일을 성수하면서 의과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 그리고 시간이 또 많이 흘렀어요. 제 와이프는 이제 산부인과 의사를 하고 있고 저도 그때는 이제 아산병원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 여러분이 들으셨던 그 간증의 그 순간에 제 와이프랑 똑같은 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고 있었어요.
같이 시간이 지나서 제 와이프가 산부인과를 마치려고 할 때 산부인과라는 전문의를 마치게 되면 자격시험을
통과해야지만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는 맞는데 전문의는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이때 저랑 그때 제가 제 아내를 좋아해가지고 좀 따라다니면서 좀 이렇게 약간 썸을 타고 있을 텐데 떡볶이를 먹으러 갔었어요.
떡볶이를 막 먹고 있고 저는 이제 저한테 집중해 주길 바라면서 이제 막 갖은 이제 플러팅을 하고 있을 그때 제 와이프가 갑자기 전화를 받는데 뭐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직 생생해요? 뭐라고 그러더니 근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어떻게 할래? 딱 그러는 거예요. 그 말 속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랬더니 아 오빠 이번에 자기가 보는 저 전문의 시험이 안식일이래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래서 어떡할 건데 그랬더니 글쎄 어떻게 해야지 그러는 거예요.
이때까지 겨우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이제 마지막 관문 이것만 끝나면 더 이상 시험이 없어요.
저희는
마지막 한문인데 여기도 또 안식일이 태클이 걸리는 거예요.
편지를 쓸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죠. 근데 그전에 했던 그 친구가 하라예요.
강아라라는 친구가 전화를 한 친구예요. 근데 하라는 뭐래?
그랬더니 하라가 시험 안 보면 되지 그러더래요. 뭐가 고민이야?
시험 안 보면 되는 거지 넌 어떡할 건데 그럼 같이 시험 안 보면 되는 거지 그러는 거예요.
저는 이해할 수 없어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뭐 하는 애들이지.
아니 10년을 공부했는데 시험 안 보면 된다고 뭐야 그런데 이제 그때 같이 시험을 보는 전문의들이 8명 있었어요.
8명한테 그날 밤에 서로 막 전화 전화를 하는데 전부 다 1분도 고민하잖아요.
시험 안 보면 되지. 그래서 그날 밤에 아무런 의견도 없이 8명이 다 시험 안 보기로 결심을 했어요.
근데 그 모습이 제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난 이런 애들을 보지를 못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니 자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가 있지. 근데 그때 했던 하라의 말이 더 과관이에요.
형 하나님께서 의사는 되게 해주셨잖아. 그럼 거기까지인 거야 내가 원해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신다면 그 길은 거기까지인 거라고 생각을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이 친구들을 엄청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이 친구들의 신앙은 내가 지켜주고 싶다. 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그래서 이때부터 저는 좀 약았거든요.
저는 고분고분하지가 않아요. 참을 수가 없는 분노가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착한 애들이 신앙을 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야 되는 분노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어릴 때 아빠한테 받았던 그 핍박부터 오만 핍박이 다 떠오르면서 이들은 잠잠한데 제 마음이 폭풍처럼 막 열받아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 다 모여 내가 참을 수가 없어. 너는 왜 참을 수 없는 거야?
너는 아무런 게 없는데 니가 왜 난리야 그랬더니 야 나는 못 참겠어.
그래서 이렇게 우리 가만히 있지 말자고 하고 이때 보시면 이제 이 발표가 난 날짜가 실제 시험일에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러니까 확정 고지가 나면은 바꿀 수가 없어요. 이거는 이제 신문 기사고 확정 고지 수험생들한테 오늘 확정 고지가 나기까지는 불과 1주 열흘에 한 열흘 정도밖에 안 남은 시기에 기사가 나온 거예요.
근데 확정 고시 저희한테 문자가 돌아가면 그건 끝난 거예요.
법이 집행이 되거든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지 말자고 하고 막 이 정말 얌전하고 순종적이고 양같은 아이들을 막 꼬이겨가지고 이렇게 하면 안 돼 했더니 이 친구도 해보자 그럼 우리가 해보자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그래서 저희들이 편지를 써서 국시원의 편지를 보내고 관련 국회의원들한테 다 편지를 보내고 교회를 찾아가고 목사님을 찾아가고 장로님을 찾아가고
엄마들 다 찾아갔어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전화하자고 전화 10일 남았는데 우리 때문에 일을 못하게 만들자고 그래서 5분만 전화 저도 한 10번 전화 또 전화하고 또 전화하고 또 전화해서 다음에 전화를 하면 담당 공무원이 시험 때문에 그러시죠 그만 전화하시면 안 되냐고 네 죄송합니다.
이제 팩스를 보내자고 팩스 보내고 팩스 보내고 팩스 보내고 그래서 저 혼자 보내게 안 되니까 10명이 자기 다니는 학교 동아리 선후배 다 전화하고 또 시험을 안 보면 의국에서도 문제거든요.
자기 의국 그 병원 내가 다니는 병원에 다 전화해가지고 병원에서 또 이 친구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했겠어요 다 팩스를 보내주고 우국장이 전화해 주고 얘는 시험을 봐야 되는 애인데 이렇게 하면 어떡하십니까?
탄원하고 하니까 다음에 제가 전화를 했는데 제발 그만 전화하시면 안 되겠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것도 부족해서 우리 교회에서 정말 뜻 있는 장로님들 목사님들은 국시원에 찾아가 주시고 막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게 많이 이제 이 사람들이 막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깨달을 그때 제가 전화를 한 번 연결이 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저는 그때 이제 삼성서울병원에서 이제 제가 치프였나 좀 높은 전공이었나 그랬을 건데 이제 그 치프의 명분을 빌려서 제가 이런 이런 이걸 하고 있는데 이건 부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 아냐고 말했던 말이 기억나는데요.
제가 그분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담당관님 혹시 병원에 가보셨냐고 병원에 가시면 정말 믿고 자기 가족을 맡길 만한 의사 보셨냐고 근데 이 친구들 제 친구들 제가 확신할 수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라고 자기 평생 공부한 거 종교적 신념 하나로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친구들인데 시험 안 보겠다 하는데 이런 친구들 한국에서 의사생활 못하면 그건 국가적인 손실 아니냐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 아니냐고 막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이제 이 국시원에서 정말 정말 저에게는 기적 같은 연락이 왔어요.
자기도 시험 바꿔주고 싶다 그 말 자체가 정말 믿기지 않는 말이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냐면 장소는 어떻게 할래 그러는 거예요.
장소를 구할 수가 없어요. 4천 명의 시험을 봐요.
근데 열흘 만에 4천 명이 시험을 볼 수 있는데 교통의 요지여야 된다.
전국에서 다 오니까 의사들 전국에 다 있잖아요. 모두 의사들 모두가 보는 시험이에요.
다 수술 허락을 거의 받으니까 전국 모두가 한 곳에 모이려면 서울에서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어야 되고 날짜는 지정돼 있는 그 날짜에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니네가 제공하면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저희 장소 찾기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온갖 수서에서 장소 장소 장소 근데 그때 제가 드는 생각이 번뜩 드는데 하나님 혹시
하나님이 큰 계획이시냐는 그런 의문이 저는 하나님이 그런 기적 같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일을 계기로 만약에 우리 삼육 대학에서 이 시험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기관이 세상에 이름을 낼 수 있고 의사 시험을 유치하는 건 특별한 거거든요.
모든 의사들이 와서 봐야 되잖아요. 하나님의 기별을 경험해야 되잖아요.
그 기관을 봐야 되잖아요. 그래서 기도를 했었어요.
그리고 그 얘기를 친구들한테 전했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교단의 관계자분들과 연락이 닿는 목사님 장로님에게 연락을 해서 제발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었어요.
그래서 총장님이랑 제가 잘 모르겠는데 원무과 쪽에 관련된 또 그런 직위 있는 분들과 저희 목사님 교단에서 대표 집사님 목사님들이 만나셔가지고 회의를 엄청 오래 하신 다음에 그 일정을 다 비워주셨어요.
대학을 써라. 고등학교 중학교까지 다 써라. 우리가 다 비워줄 테니까 여기서 시험 봐라.
그러고 나서 제가 이제
국시원에다 전화를 해가지고 장소 마련했습니다.
사천백 유치할 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하는 말이 너무 외지다는 거예요.
너무 외져서 갈 수 있을까요? 버스에 있습니다. 저희가 심지어 어떻게 했냐면 그거 보자.
우리가 우리 돈으로 버스 타 데 생각까지 했었어요.
버스 있습니다. 올 수 있습니다. 전철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러면 가보겠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금식 기도하고 기도를 기다렸어요.
목사님 학교 총장님 다 기다리시고 이제 국정원 관계자들과 그날 투어를 하면서 저희가 계속 기도했어요.
제발 하나님 제발 이것만 되게 해달라고 이거만 되라고.
이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어 보이지만 이게 하나가 뭔가 저한테 큰 문 같았어요.
제발 열려라. 제발 열려라. 그런데 오후가 될때까지 연락이 없어요.
너무 떨리는 거예요. 안 됐나 안 됐나 그런데 오후가 돼서 연락이 딱 오는 거예요.
다
와 그러는데 국시원장이 우리 이제 3등 대학을 다 투어하신 거예요.
중학교 고등학교 다 투어하신 다음에 끝나고 나서 딱 한마디를 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었습니까? 그러더래요.
여기서 보도록 하죠. 그래서 시험이 극적으로 안식일에서 금요일로 바뀌고 장소가 삼육대학으로 바뀌었었습니다.
이 친구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 친구들한테 그랬어요.
야 시험 안 보면 니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건데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이제 그때 모임에서 모였는데 보면은 누가 시험 보는 사람이고 누가 시험 안 보는 사람이고 얼굴 표정으로 모르시겠죠?
아니 웃고 있는 애들이 시험 보는 애들이에요. 심각한 애들이 저 같은 사람들이라고요.
시험 안 보겠다는 애들은 웃고 있어요. 여기까지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바꿔주셨고 58차 전문의 자격시험이 3500명이 응시하는데 삼육대학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거는요. 저희한테 온
시험 안내서 뒷장에 삼육대 교정이에요. 찾아가는 곳 니가 시험 봐야 되는 곳 그곳에 여기 보시면요.
삼육중학교 삼육 고등학교 삼육대학 다니엘관, 요한관, 바울 에스라관 사무엘관이 3500명 모두에게 다 적혀 있는 거예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이때까지 제 신앙을 잘 모르던 친구들이 야 상혁아 니네 학교 아니야 우리 학교지 우리 학교 이 정도야 이 정도 레벨이라고 근데 상희가 바울관이 뭐야 난 에스로관이래 에스라간은 뭐야 사무엘관은 뭐지?
그럼 설명해 주는 거예요. 제 와이프도 친구들한테 바울이 누구인지 사무엘이 누구인지 설명해 주기 바쁜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정말 기적같이 시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년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어요.
오늘 학생들의 피드백이 이렇게 깨끗할 거 처음 봤다.
왜 화장실에 담배가 없냐 너무 피곤해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커피를 찾을 수가 없다.
카톡에 자기 커피 어디 있냐? 야 거기 커피 없다 물 마셔 그게 몸에 좋아
그리고 집사님들이 오셔서 이 친구들에게 커피가 없으니까 녹차 물을 대접했던 그런 봉사 장면들입니다.
그다음에 시험이 이제 의사 국가고시였는데요. 이거는 이제 의사가 되는 시험입니다.
이제 의사가 돼서 전문의가 되는 게 아니라 의사가 되는 시험인데 이것도 안식일이나 걸렸었어요.
근데 그때 저희 후배들 여러 명이 이제 시험에 걸렸는데 그중에서 3명이 저희가 저는 아닙니다.
저 일하는 게 제가 아니고 제 친구들이 시험을 이제 불응하는 걸 보고 이 친구들이 시험을 안 보겠다고 결심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저를 찾아왔어요. 저는 시험 안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때 또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관련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막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저라는 건 제가 아니라 이제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친구들과 목사님 장로님, 우리 교회 관계자분들이 노력해 주셨는데 잘 안 됐어요.
근데 국시원장이 너무 너무 빡빡하셔가지고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절대 안 된다고
그리고 온갖 압력을 가해서 이 친구들을 밀어넣었습니다.
이 어린 친구들을요. 근데 이 3명은 끝까지 신념을 지켜서 시험을 보지 않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시험을 본 친구가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가 상처를 받은 거예요.
정말 시험을 안 보고 싶은데 부모님이 알아 누운 거예요.
제발 부탁인데 내가 니 신앙 가지고 뭐라 하지 않겠다 제발 시험만 봐주면 안 되겠니?
왜 이렇게 무모하니? 그래서 그 친구가 울면서 이 시험장에 갔었어요.
근데 국시원장이 얘네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보려고 그를 감독하고 있었어요.
근데 왜냐하면 너네가 이렇게 하는 것이 편법이고 결국에는 너는 이런 신념이 없는데 종교적으로 이용하는 거다 이런 거를 이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핍박을 했었는데 실제로 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시험을 열면 다 올 거다 생각한 거예요.
근데 보고 있는데 다 안 오는 거예요. 근데 마지막에 그 친구가 한 명이 오니까 엄청 만면에 환생해서 왔냐고 잘 왔다고 하는데 그 친구가 그 앞에서 펑펑 울면서 그 친구 이제 얘기하셨는데 펑펑 울면서 기분 좋으시냐고 저는 마음이 찢어집니다.
그랬대요. 친구들 다 시험 안 보는데 어머니 아버지 알아놓으셔서 시험 보러 오는 그 마음 이해하시냐고 그게 좋으시냐고 근데 울면서 시험을 봤다고 해요.
그 친구는 붙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도 다음에 안식일날 시험이 평일로 바뀌어서 다 의사가 되었어요.
지금은 훌륭하게 의사가 돼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멋진 친구들과 후배들이죠. 그리고 이 친구들이 신을 1년 동안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고 싶어서 저희 선배들이 따로 기금을 마련해서 해외 봉사활동을 보내주고 좋은 곳에 견학을 시켜주고 유학을 보내줬었습니다.
너희들의 신념을 지킨 것이 보답받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저희가 해줬었고요.
그 이후에 강기훈 선생님이 저희 부산대학교 선배님이신데
우리 목사님의 매제 되시는 아마 분입니다. 저분이 부산대 다니실 때 안식일날 시험을 보지 않았었어요.
아주 강력하게 그래서 학교에서 퇴학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현정이는 학교에서 감동받고 시험을 안 볼 수 있었고 강경 선생님은 퇴학당하셨죠.
그래서 미국에 가셨었어요. 미국에 가시면서 이런 종교적 권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료를 모으신 거예요.
너 너무나 안타깝고 이제 안타까우셔서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기회가 있어서 다시 한국에 오셔서 부산대 의과대학에 다시 재입학하셔서 졸업을 하셔서 지금은 의사생활을 하고 계세요.
그게 몇 년 거의 10년 가까이를 돌아가신 겁니다.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에 자기는 왜 내가 안식일을 지켜야 되고 왜 한국만 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지를 세계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계세요.
그 기간 동안에 그것만 모으신 거예요. 자료가 이만큼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미리 말씀드리는데 재판에 임하는 변호사나 관계자들이 아니 나도 보도 못한 이 자료들을 어디서 모으셨냐고 그래서 추후에 일어나는 모든 소송의 근간 자료는 강기윤 선생님이 모으신 자료로 다 저희가 그 레퍼런스를 내게 되었습니다.
강경 선생님이 오셔가지고 상혁아 그리고 우리 친구 너희들아 우리가 이게 너희들만의 승리로 단정지어서 되겠니?
삼육에는 엄청 많은 청년들이 이 일로 핍박받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 의사들의 안위만을 위해서 이렇게 투쟁해도 되겠니 우리가 우리 교단에 핍박받는 청년을 위해서 일해야 되지 않겠냐 해서 저희가 그때 만든 게 종교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위한 모임이었어요.
너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거를 동생들에게 나눠줘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저희가 만든 모임입니다.
그리고 가장 열정이 있는 강기영 선생님께서 거의 99% 일을 하고 계세요.
그리고 나서 이제 한지만 친구의 이 문제가 터진 겁니다.
경북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이 친구는 이제 안식이라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얘기를 했고, 경북대학은 우리나라에 있는 42개 의과대학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과대학입니다.
대구가 그렇거든요. 근데 그럴 만한 어떤 의학적인 권위와 그런 실력이 있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너무 훌륭한 교수님도 많이 계시고요. 그게 꼭 나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래 왔죠.
그런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한지만이 이제 교수님들한테 엄청 미움을 받고 있어요.
그때 너는 그냥 나가라 퇴학이다 수업도 들어오지 마라 그런 정도의 핍박을 받고 있을 때 강기영 선생님이랑 연락이 돼서 소송을 걸자.
그때 했던 말이 있어요. 소송이요 다들 낯설어하죠.
저보고 소송을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아니잖아요.
나를 핍박한 사람한테 소송을 건다고요? 그때 했던 게 뭐냐면
니가 소송을 걸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싸울 수가 없어 피해 당사자가 소송을 걸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네가 해줄 게 하나가 있는데 소송을 걸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주는 일이야 너 왜 학교 상대로 소송 걸라는 핍박도 친구들이 너는 왜 그렇게 불란을 일으켜야 하는 그런 비아냥도 니가 견뎌줄 수 있겠니?
그러면 우리가 일을 할게 너는 그 자리에서 니가 소송을 취하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우리는 기회를 잃는단다. 그래서 지만이가 소송을 걸어줬고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송에 끝까지 견뎌줬고요.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이 소송은 1심에서는 패소했었어요.
우리가 졌었어요. 그런데 그때 이제 1심은 패소했던 겁니다.
1심이 패소하면서 법원에서 저희가 이제 다시 항소를 했죠.
그 고등법원으로 항소를 했는데 법원에서 뭐라고 했냐면 저희가 이제 1심에 패소할 때 막 탄원서를 냈단 말이에요.
근데 그중에서
너희들이 실제로 안식일을 이렇게 지켰고 이렇게 지켰다는 말은 많은데 간증 같은 편지는 많은데 그거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한 건도 없었대요.
그건 내가 믿어줄 수가 없어. 니네 그냥 거짓말로 한 걸 수도 있잖아.
그게 굉장히 중요한 패인의 원인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소를 할 때는 변호사가 저한테 말하기를 이거 증명할 수 있는 서류 하나만 보내달라는 거예요.
근데 전국에 그 서류가 한 건이 없어요. 왜냐하면 친구들이 졸업한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교수님도 시험 보라고 하지 그걸 이 친구를 시험 보게 함으로 공문을 남겨두지 않잖아요.
증거 자료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법원에서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개인이 한 학교를 대상으로 그래서 모든 친구들 수소문해서 제발 학교에 편지를 써서 그런 고문인지 물어봐달라고 하는데 자기가 다닐 때 가르쳤던 교수님도 은퇴하시고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어디다가 편지를 써야 되면서
또 그런 막연한 거예요. 또 자기를 또 많이 도와주셨는데 졸업하고까지도 찾아가가지고 서류 내놔라 하기도 좀 그렇고 막 이상한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졸업한 선배들이 다 자기 학교에 문의하고 문의하고 알아보고 했는데 단 한 군데도 증명 자료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기적같이 법원으로 저희한테 온 게 아니라 법원으로 다이렉트로 한 통의 편지가 갔어요.
충북대입니다. 충북대에서 저 편지가 갔는데 우리 학교의 조현정이라는 학생이 입학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안식일날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때 6년 동안에 담당 행정관이었는데 너무나 이상해서 모든 자료를 기록해 놨습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마다 학과장 직인이 찍혀 있어요.
사실이 인정되는 거죠. 도무지 제가 이해할 수 없어서 이게 너무 이상한 일이어서 단 한 시험도 빠지지 않고 모든 시험을 다 정리해 놓은 거예요.
사유까지
몇 월 며칠 무슨 일 무슨 사유로 시험 보지 못함 어떻게 대체 시험함 대체 시험 이유까지 다 적어놓은 거예요.
이거 일 하나가 우리가 항소심에서 증거로 채택이 돼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 한 가지의 편지만을 이긴 게 아니에요. 이제 그때 나온 신명철 변호사라는 변호사가 저희 재판을 맡아주셨는데 정말 저보다 참 어린 친구예요.
이 변호사가 사실 이 재판을 맡을 때 우리 교단에서 이 재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부정적으로 봤어요.
너무 어리다 너무 어리다 경험이 없지 않냐 근데 이 신명철이란 변호사가 말을 할 때는 말을 한 건 뭐냐면 이 재판 맡으려고 하는 변호사가 없습니다.
국가 상대로 졌어요. 학교 상대로 졌어요. 학생이 학교 상대로 이기는 재판은 거의 많지 않습니다.
근데 1심에서 패소한 재판은 2심에서 이기는 경우가 손을 꼽을 만큼 없습니다.
패소하는 재판을 누가 맡으려 하겠습니까?
근데 맡은 친구예요. 신앙심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 부정적인 피드백이 들어가는 거예요.
바뀌면 좋지 않겠니? 자기가 기가 있는데 못 듣겠어요 너무 불안하다.
그냥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자 그런 얘기가 많이 있을 때 자기 자신감을 잃어버린 거예요.
변호사는 자기 캐리어에 패소가 찍히는 게 치명적이래요.
근데 그걸 감수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피드백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서 그만두려고 저는 그러면 모두가 원하는 거라면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하려는 그때 강기훈 선생님이 신명철 변호사님을 찾아갔어요.
신영철 변호사님 좀 만나자고 만났는데, 우리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일을 할 때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은 이 사람이 살 것 같으면 살리고 죽을 것 같으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뭐라고 해도 응급실에 접수가 되는 그 순간
일단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고 봅니다. 제가 만약에 이 사람 못 살릴 것 같다고 포기한다면 변호사님 어떠시겠어요?
안 되죠? 그러더래요. 같은 마음입니다. 질 것 같아도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 소송을 끝까지 가주시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신 변호사님이 마음을 바로잡고 이 소송을 완전히 정말 밤낮없이 올인해서 모든 자락 자료 다 모으고 정말 여러분이 보내주신 탄원서 한 장도 안 읽은 적이 없어 천장이 오면 천장 다 읽으세요.
다 정리해서 새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제 저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하는데 이제 조상 선생님이죠.
처음 저랑 통화한 게 그때였는데 저도 탄원서를 보셨어요?
제 탄원서를 읽고 전화를 준 거예요. 중동부 여행할 때 간증을 봤었습니다.
근데 선생님의 간증을 보고 저는 좀 고민한 점이 있는데 의사가 부러웠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일이 저절로 하나님 일을 하게 되잖아요.
저는 변호사인데
가끔은 신앙적 양심과 어긋나는 변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게 괴로워요. 그런 고민을 나눴었어요. 근데 제가 했던 얘기가 있어요.
이제부터 안 하시면 되죠. 이제부터 안 하시면 되죠.
그리고 지금 너무 멋있게 하나님을 하고 계시잖아요.
누구도 안 한다고 하는 일 다 질 거라고 하는 일 패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법이 옳다고 세상에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그거보다 더 값진 하나님 일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그리고 저는 질 수도 있어요. 그러더라고요. 웃으면서 이거 저 질 수도 있어요.
거의 질 수도 있어요. 일말의 희망이 있는 거라고 그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고 그래서 제가 탄원서를 보내주겠다고 보냈죠.
그러면서 했던 얘기가 뭐냐면 심명철 변호사님 저도 됩니다.
제가 탄원서를 보내고 이 일에 정말 응원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기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에 우리 같은 피조물이 하나님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죄밖에 못 짓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겁니다.
왜 우리가 말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준 기회입니다.
저는 그게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이기든 지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승리는 패배는 하나님께서 주관할 것입니다. 너무 고맙다는 거예요.
두려움이 사라졌대요. 해보자고 해서 끝까지 갔어요.
그리고 나서 제가 쓴 편지입니다. 저는 이때 조선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요.
제가 의학 전문대학원 다닐 때 하도 핍박이 많아서 어떤 한 교수님이 너 같은 놈이 무슨 북의 영화를 누릴 거라고 하냐 너는 이 학교에 미래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의과대학생들은 교수가 되길 꿈꾸니까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저는 그런 꿈이 없었어요. 일도 관심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저절로 저가 조선대학에서 교수가 되게 오히려 부탁하셨어요.
제발 와달라고
그래서 도와주러 갔던 거예요. 그래서 교수를 하고 있을 때 저 탄원서를 썼었습니다.
너무 긴 얘기인데 짧아서 짧게만 말씀드리면 핍박받는 제 후배들 제 친구들 그로 인해 제 주위에는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보면 우수한 성적을 차지하는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찾아가서 어떤 불이익도 달게 받겠으니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울며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 신념을 존중받지 못하면 한 지방 군처럼 10년 이상을 준비하고 꿈꿔온 의사라는 길을 포기하거나 유학을 떠나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토요일을 성인로 섬기는 20만 명의 재림 교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판결하는 재판입니다.
재판관님의 선하고 의로운 판결로 부디 이런 진실된 친구들이 이민을 가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선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편지를 썼었어요.
그리고 2심 판결이 날 때 다 같이 기도를 했고 2심 판결 물 정말
이거 하고 받고 어멍 펑펑 울고 제 와이프도 펑펑 울고 모든 친구들이 정말 목놓아 울었는데 2심 판결문이 나왔고 저희가 승소했어요.
이긴 거예요. 근데 그 판결문이 공개가 됐어요. 그냥 재림교회의 권리와 의무를 위해서 보장한다가 아니에요.
이 판결물에 대법관들이 저희가 쓴 모든 단서를 다 읽으신 거예요.
전부 다요. 그래서 그 탄원서의 한 장 한 자를 다 인용하셨어요.
서울대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임소민 최상일이라는 친구가 여러분 보세요.
최고 학점을 b불로 제한하고 안식일이 아니라 시험을 보았다.
이 친구들은요. 그 성적에 관심이 없어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저기 이제 박규현이라는 친구가 토요일이 아닌 다른 날로 시험을 봤고요.
연세대학 체육과 대학에서는 박은혜 송은교가 역시 다른 날로 특히 이 친구들은 교수실에 갇혀서 안식일 해질 때까지 감금되어 있다가 안식일 해가 지면 시험을 보는 형식을 택했었고요.
그리고 또 경희대도 있고 건국대도 있고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충북대학에서는 여기 보시면 모든 자료가 있기 때문에 이 길죠.
저걸 근거해서 있고 조선대학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강아라 저 친구가 안식일 아닌 날 시험을 봤다 해서 모두가 인용되었고 돼 있어요.
서남대 의과대학에서는 저기 이정빈이라는 친구가 안식일 아닌 날 시험을 봤는데 역시 시험 만점을 89점으로 제한하고 그런데 이 친구들 다 장학금 받고 졸업했어요.
제 와이프는 거의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최고 점수가 90점으로 제한되는데도 그거는 이 친구들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죠. 시간이 좀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는 정말 짧게만 이건 정말 짧은데 그냥 보시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재판관인 대법관들의 이름이 써 있는데 이 이름에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 역사해 주신 것 같아서
그리고 나서 제가 이게 너무 감동적이어서 이걸 가지고 삼육대학에서 이제 간증을 하고 있는데 간증회 마치고 나니까 한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만나면서 명함을 주시면서 자기가 의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이제 시험을 봤는데 안식일날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안식일날 시험인데 다른 날 보게 해달라니까 이제 불합격 처리를 해버린 거예요.
떨어뜨린 거죠. 그분이 이미진 집사님이셨어요.
그래서 이미진 집사님께서 저희 종기모를 이제 알려달라고 해서 그때 강기훈 선생님과 이미진 집사님을 제가 연결시켜 드렸었고요.
그리고 이제 저희 종기모는 단지 의사의 시험이라든가 이런 시험이 아니라 모든 안식일 성수에 관한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을 위해서 저희가 다시 힘을 합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이 세상의 관념상에서 이런 소송 1심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했었어요.
1심에서 역시 패한 겁니다. 2심에서는 1심에서 패했을 때 제가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신명철 변호사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전화가 왔는데 역시 이 재판도 신명철 변호사가 하고 있었고요.
근데 패하니까 사람의 믿음이 항상 약하죠. 또 교사 안에서 많은 분들이 이 친구는 경험이 없으니까 이 친구를 빼고 더 많은 변호사를 넣어야 된다는 의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또 심란해지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형 내가 그만하는 게 맞나 봐요. 전 이 분야에 경험이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서 베테랑 의사와 함께해야 된다 아니면 바꿔야 된다.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어요. 그때 저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1심 패소했잖아요. 저희가 항소하면 모든 재판비를 저희가 내야 돼요.
이제는 반대죠. 이기면 돈을 받게 되는 거고요. 지면 우리가 돈을 내야 되는데 신명철 변호사에 대해서 우호적이지가 않으니까 돈을 내겠다는 그런 얘기가 많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이 돈은 저희가 종기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는 그래서 저한테 전화를 한 거예요. 형 우리 회의를 했는데 두 가지 내가 하는 게 맞나 이런 고민이 들고 두 번째 그때 이제 저랑 굉장히 친해졌을 때 두 번째는 자금이 없어 형 우리가 질 수도 있는데 알 수 없잖아.
나는 이긴다고 하는 최선을 다하는데 질 수 있잖아.
졌을 때 돈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그런 경우에도 우리 종기모는 계속 갈지 아니면 돈이 모금이 안 되면 멈출지를 회의하고 와서 하는 거예요.
근데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찢어지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명철한테 그랬어요. 그게 얼만데 무슨 원빈처럼 돈도 없는 게 하나님이 주신 그런 개이에요.
그게 얼만데 형 왜 이렇게 흥분하고 저는 흥분을 잘해요.
왜 그랬더니
많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얼만데 몇 억이야 아니면 몇 천이야 그랬더니 몇 억까지는 아니지 사람끼리 피해가 나는 게 아닌데 몇 천이야 꽤 많을 수 있어 변호사가 많이 들어왔고 피해가 되니까 몇 천 명철아 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내가 전재산으로 안 될까 봐 물어봤어.
내 전재산으로 허락한 일이라면 내가 갚을게. 그러니까 제발 니가 포기만 하지 말아줘.
형이 의지할 사람 너밖에 없다. 명철아 네가 아니면 난 믿을 수가 없는데 네가 포기하면 나는 누구한테 의지를 하니.
그러니까 명철아 네가 제발 이 재판을 끝까지 소신 있게 가기만 해줘.
내가 전 재산을 걸게. 거기다가 근데 형은 또 확신이 있는데 내가 확신이 있는데 우리 교인들이 너 가만 안 둘 거다.
누군가는 마음속에 뜨거움이 있기 때문에 100% 도와준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다 생각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앞에 있는 저걸 두려워하지 말라 기도했었어요.
그리고 나서 저희가 이제 원심 때 2심 때 그러니까 위에 법원에서 고등법원에서 승소했죠.
그리고 이 승소해서 그 전문대학원이 이제 대법원으로 항소를 한 거예요.
이 승소는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승소여서 저희끼리 막 너무 놀랐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두 번이나 연이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첫 번째는 이제 위로 이제 대법원으로 올라갔을 때 대법원에서 한지만 사건은 그냥 바로 읽어보지도 않고 너네 항소한 게 그냥 타당하지 않아 하고 바로 그냥 처리해 버렸어요.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고등법원의 판결이 맞다고 그냥 끝나버린 거거든요.
이거는 대법원에서 우리가 다시 심사하겠다고 받아들인 건이었어요.
아예 원심까지가 그냥 물 건너간 게 되고 새로 이제 보는 게 됐는데 대법원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대법원과 3명이 같이 합의를 하게 되고요.
중요한 사건을 넘어서서
이게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아주 중요한 사건 그런 것들은 대법원에 있는 법관 전체가 같이 심사를 하는 전원합의체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근데 이 사건이요. 전원합의체 결정까지 올라간 거예요.
대법원에 있는 대법관 전체가 같이 상의해서 결정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것도 1차에 선고를 못하고 3차까지 유예가 됐었어요.
그래서 너무 애가 타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위대한 일이 벌어지는 거 이 일을 통해서 이 모든 대법관들이 논의하고 논의하고 논의해서 되는가 근데 저는 그때 두 가지 생각이 스쳤어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은 제 앞날만 보지 않으시더라고요.
하나님 혹시 이거를 한 대법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대법관이 다 봐야 되는 일이군요.
그렇다면 제 마음속에 정말 말하면 부정 탈까 봐 죄송한데 부정 탈까 봐 말도 못 꺼냈는데 이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뒤로 제가 이제 간증 강연 부탁을 두 군데인가 세 군데 받았는데 강연 제목을 안 정해놓고 있었어요.
이기면 이길 것 같으면 이 말을 전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늘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왔고 그 대법관의 판결이 여러 번 보셨지만 승소로 저희가 마무리되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여러분한테 부탁드렸죠. 탄원서 좀 부탁한다.
글을 내달라 했는데 제가 그때 신명철 변호사한테 했던 말이 있어요.
이 탄원서가 신민철 변호사가 한 50장 모일 줄 알았대요.
저희 천 장 정도 모였어요. 이렇게 많으면 반대로 그냥 뭉텅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탄원서가 많으면 좋아요. 아니면 작더라도 양질의 그런 좀 잘 쓴 글이 좋아요 했더니 아닙니다.
대법관들이 전부 다 읽어봅니다. 글 모든 대법관들이 여러분 쓰신 모든 탄원서를 전부 다 읽으신 거예요.
여러분 한 분 그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여러분은 어떤 누군가 한 분의 그
노력과 기도와 글로 인해서 이 판결이 난 겁니다. 저 그게 너무 감사해서 이 자리에 너무 기쁜 마음으로 목사님 저 다시 가면 안 되겠냐고 이거 꼭 피드백 드려야 된다.
꼭 전해드려야 된다고 온 겁니다. 저희가 강기훈 선생님이랑 저랑 나눴던 대화가 있는데 강기훈 선생님이 종기부을 만들 때 제가 물어봤어요.
형 왜 이렇게 소송 같은 걸 하고 우리 교단이 특별히 싫어하는 싸움으로 가시냐 했더니 했던 말이 뭐냐면 마지막 대 그게 언젠지 모르지만 어떤 마지막 때 누군가의 전쟁의 그 시기에 세상에 물어볼지 몰라.
너는 왜 지금까지 무슨 노력을 하다가 이제 와서 투정이니?
아니 니 자료를 보면은 인터넷 시대에 니가 이때까지 그런 거를 요청했던 자료는 하나도 없는데 왜 이제 와서 불평이야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자료를 만들어야 돼. 우리가 핍박받더라도 지켜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했음을 세상에 남겨놔야 돼.
그래야 누군가가 거기에서 혜택을 볼 수 있어.
그래서 저희가 그런 일을 하게 됐고요. 저는 전도를 하고 간증을 하러 다닐 때 우리 청년들한테 부끄러운 게 하나 있었어요.
간증을 하고 나면 반드시 한 청년이 돌아옵니다. 선생님 저는 안식일 때문에 직장을 못 가고 있어요.
직장에서 핍박을 받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건 니 일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괴롭고 제 마음이 양심이 개책 느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 친한 동생들 후배들 제 우리의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너희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켜라. 내가 최선을 다할게 질지 몰라.
근데 내가 니가 노력한 거 이상으로 니 앞에 서 있을 테니까 우리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보지 않을래 나도 최선을 다할게 너만의 고민이 아니란다.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로스쿨 불합격 수험생이 승소했다는 판결이 나게 되고요.
이거는 헌정사상 첫 승리입니다.
그리고 이거는 전원합의체 판결이기 때문에 그 한 번의 승리가 앞으로 우리 여러분들한테 우리 아이들한테 미칠 그 영향은 아마 무궁무진할 거라 믿습니다.
이다음부터는 우리와 여러분이 함께할 일이라고 생각이 돼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누가 이길 것 같으십니까? 골리앗이 이겨 보인다고 골리앗 편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다윗의 편에 있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지만 다윗의 믿음으로 정말 그 앞에 섰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다윗이 저 승리로 인해서 왕이 되고 싶었을까요?
다윗이 저 승리로 영광을 얻고 싶었을까요? 아니에요.
다윗은 온 땅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는 그 믿음 하나로 저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에 보답해 주셨어요.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 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선택한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배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그걸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에 더할 은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 제 와이프 이마가 다 찢어져서 울고 있을 때 저희 아버님께서 해줬던 가장 좋은 것의 위로고, 제 와이프가 안식일을 지키려고 했을 때 그 핍박 가운데 받았던 기도의 응답이고, 제가 여러분한테 부탁드릴 수 있는 한 가지의 보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킬 때
저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 말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나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