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순회강연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거지들은 이젠 전설이 되어 버린 낙양의 왕거지가
강연을 한다는 소식에 들뜬 마음으로 무두들 모여들었다. 장소는 금령지방
의 한적한 광장이었다. 호북성의 거지들이 다 모였으니 그 수는 결코 적지
않았는데 이 천명가량이나 되었다. 말이 좋아 이천명이지 거지떼들이 그처
럼 모여 있다 보니 멀리서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히 전쟁터의 패잔병들
이 누워있는듯한 형세였다.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
여 말로만 들어 왔던 왕거지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취삼(翠芟), 그 유명한 왕거지가 온다는 게 사실인가?"
삼십대의 중년 거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잔뜩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취
삼이라 불린 동료 거지에게 말했다. 취삼은 그말에 귓밥을 파내 입으로 후
하고 불면서 껄껄댔다.
"하하, 그렇다지 뭔가. 내 평생에 이런 날이 오리라곤 꿈도 생각지 못했네
. 자네도 알다시피 개방네에서는 앞으로 크게 될 어린 인재들만 뽑아서 낙
양 왕개촌으로 보내지 않았던가 말이네.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는데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구만."
"그런데 정말 왕거지가 소문만큼이나 그렇게 대댄할까?"
"말도 말게나 . 나도 들은 이야기네만 방주님꼐서는 틈만나면 왕거지 칭찬
을 하는데 그 칭찬이 한도 끝도 없어서 입안에 침이 다 말아야만 끝낼 지경
이라지 뭔가?"
취삼은 말하면서 이가 있는지 장동(長棟)의 머리카락 사이를 뒤적거렸다.
"허허 , 정말 놀랍군. 대체 얼마나 거지 같으면 그럴까? 괜히 가슴이 두근
거리는 것이 심장 까지 떨려 오네 그려."
"요 사이에 개방이 아주 더러워지고 있잖는가? 정말인지는 아직 보지 않아
서 모르지만 방주조차도 공개석상에서 코를 파는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고 하더군. 예전같으면 꿈에도 상상치 못할 일 아니겠는가?"
취삼은 코 파는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코가 근질거림을 느꼇다. 사람이란
어떤 이야긷를 듣거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멀쩡히 있다가도 연상 작용으로
인해 그 일이 하고 싶어지는 습성이 있는지라 취삼도 그 말을 듣고 코를 후
벼파기 시작했다.
"이거 이러다가 정말 개방이 구파일방의 무림방파가 되기보단 진짜 거지
소굴이 되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모르겟네."
장동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똑같이 코를 후비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히지말게. 그건 자네가 하는 알고 둘은 몰라서 하는 소리란
말일세.왕개촌으로 연수를 다녀온 거지들은 하나 같이 무공에도 빠른 성취
를 보였다더군. 분타주님이 이런말씀을 하시더구만."
취삼의 말에 장동은 호기심에 동해 손움직임을 빨리 하며 황급히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셔는데?"
"분타주님이 말씀하시길 각 문파마다 그 무공의 밑바탕이 되는 정서가 있
다고 하시더군. 예를 들어 소림파는 불도를 깊이 깨닫게 됨으로 해서 소림
칠십이절을 차례차례 터득할수가 있다는 것이야. 만약 불도를 깊이 이해하
지 못한 상태라면 더이상 진보가 없게 된다는 것이지. 그것은 소림의 무공
이 불도의 이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데 뛰어난 지혜와 근골이 있다 할지
라도 불경의 깨달음 없이 억지로 익히게 되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는 말
일세."
장동은 조금 둔한지라 취삼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엇다.
"무공만 열심히 익히면 되는것이지 그런게 그렇게 중요할까?"
취삼은 알 수없다는긋이 머리를 긁적이는 장동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쯔쯧, 잘생각해보게나. 달마역근경이라고 자네도 알고 있겟지?"
"달마역근경이야 소림 최고의 무학이 아닌가?"
"그렇지 . 사실 누군가가 소림의 장경각에 침입하여 달마역근경을 훔친다
해도 그사람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것이 된다네. 왜냐하면 달마역근경
이 실제로 불경의 내용이 태반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네. 그러니 그
오의를 깨치려면 불도를 이해해야 하고 불도를 의해하지 못하면 결코 그것
을 익힐 수가 없는 것이란 말이세. 그리고 단지 글자만 이해한다고 무공이
높아지거나 무공을 터득할수 있는것이 아니란말일세. 그런것은 소림뿐만아
니라 무당이나 화산파, 곤륜파등 모든 문파가 마찬가지로 통용되는것이지.
도가의 무공또한 도가의 이치에서 비롯되었으니 마음에 그 이치를 담지 못
할 그릇이라면 애초에 극강한 고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일세. 내말이 무슨말
인지 이제 알겟나?"
"음 조금 알것 같네 그려. 그럼 우리 개방의 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지간하면 이 정도 말을 듣고 이해 할법도 하련만 장동은 예상밖으로 미
련했던지라 연거푸 머리를 긁적이며 비듬을 눈처럼 땅바닥에 뿌려대고만 있
었다.
"개방의 뿌리란 자네와 나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바로 거지 , 밑바
닥의 인생의 애환, 그리고 무한의 자유로움 , 외향은 더럽기 그지없으면서
도 그 어떤 욕심도 갖지 않는 순수함, 무욕의 세계, 그것이 바로 개방 무공
의 근원이란 말일세. 예를 들어 개방의 무고이름을 생각해보게. 개방 최고
의 무공이라면 타고봉법과 강룡십팔장을 들수 있지 않나?"
"암, 그렇고 말고 .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무공들이 아닌가."
"타구봉법은 개를 때린다는 뜻으로 거지 생활을 단적으로 내포하고있지.
또한 강룡십팔장은 어떠한가? 구파일방중에 아마도 이보다 더 극강한 무공
은 없을 것이네.
강할수 있는것은 무한의 자유로움과 무욕에서 비롯되었기에 어디에도 얽매
이지 않고 강해질수있는것이지. 사람이란 욕심이 생기면 마음이 허해지고
힘이 분산되지. 게다가 수많은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몸을 사리
게 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되니 본연의 힘을 다 쏟지 못하게 된단말이네. 이
젠 알겟지?"
"아! 자네 말을 들으니 내눈이 열리는것같네 그려. 자넨 정말 똑똑한 친구
야."
장동은 매우 감탄하여 아까 코를 후볐던 검지손가란으로 취삼의 얼굴을 쿡
쿡찔러댔다.
"이 친구야. 나도 그저 분타주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주워 들은
것 뿐이야".
"그럼 혹시 왕거지도 대단한 고수가 아닐까?"
"글쎄 그건 모르는일이지. 과거에 그런일이 있었다더군. 소림파에서 외부
에서 침입자가 쳐들어왔는데 소림 방장까지도 손을 볓번 써보지 못하고 제
압당해 버리고 말았다더군.."
"아니, 언제 그런일이 있었는가?"
"이 친구야. 이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대보다 더
전의 일이란 말이야. 잠자코 내 이야기나 들어.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맞아
. 소림방장까지도 막을수 없었는데 뜻박에도 그들을 물리치고 위기에 처한
소림사를 구한 이는 내원을 청소하는 범강 대사라는 늙은 스님 이었다더군.
그 범강대사라는 분은 어릴적에 소림에 들어온 이래 한번도 무공을 익히지
않았었다네."
"놀라운 일이로세. 어떻게 그런일이."
장동이 잠자코 있지못하고 놀라 소리쳤다.
"범강 대사는 무공을 배울 자질과 근골이 되지 못해 백여살이 될때까지 불
경을 외고 청소하는 일만 했다고 하네. 그렇게 지내던 그분은 어느 순간 불
경의 이치를 깊숙이 깨닫게 되었는데 늘 소림 무공을 연마하는것을 지켜보
았던지라 자연스럽게 그 모든것을 터득해 버리고 만것이라네. 그래서 그때
부터 소림파에서는 무공에 대한 집착보다는 불도의 이치를 중요시하게 되었
다고 하더군. 지금도 소림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무공을 가르치지
는 않고 불도에 심득을 어느정도 이해한자라야 일정수준의 무공을 전수한다
고 하네. 그렇게 하고 나서 소림파가 한층 더 발전했다고 하더군. 이번에
개방에서도 추친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런것이라고 할수있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과거의 관습과 기존에 행해 오던일들을 깨뜨리지 못했는데 왕개촌의
왕거지가 개방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것이지. 어떻해 생각해보면 왕거지도
범강대사님처럼 숨은고수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렇긴 하군. 음, 근데 말이네. 왕거지에게는 거지의 삶만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 애초에 없지않은가? 그렇게 되면 거지 생활을 수백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것같은데 안됫네 그려."
왕거지 양정이 만선문의 후예로서 온 천하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선한길로
접어듬으로서 해서 무공이 상승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장동이었
기에 그는 애석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품은 것이엇다.
"하하, 자네 말이 그럴듯하네 그려 하지만 어쨋든 이번 왕거지의 순회 강
연은 우리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거라고믿네. 근데 자네 탄지 신통은
얼마까지 익혔나? 난 아직 삼성도 터득하지 못했다네."
"어이구. 말도 말게. 삼성이면 대단한것이지. 난 코를 파다가 코피만 주르
르 흘리고 이제 딱깽이가 지는 단계라네. 언제쯤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겟어. 휴우~~."
"조금만 참게나 . 딱지가 한 열번정도만 생기게 되면 그후에는 그 안쪽에
굳을 사리 박혀서 그떄부터는 코피가 절대로 나지 않을것이네."
이처럼 장동과 취삼이 이야기 꽃을 피우듯 다른 거지들도 들뜬 목소리로
친한사람들끼리 침을 튀겨가며 말하고 있을때였다.
누군가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방주님께서 오신다."
모든 거지들이 방주의 입장소리를 듣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살펴보니 방주
와 장로들 뒤로 십여명 가량의 거지들이 건들거리면서 뒤따라 오고있엇는데
추접스럽기가 말로 다할수 없을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당연히 왕개촌의 거지들임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을것 같았다. 개방에 수많
은 거지들이 있다 하여도 저지경이 될정도로 심각한 거지는 없었으니 말이
다.
"저기 저 추접스런 놈들중에 어느놈이 왕거지일까?정말 대단히 추접스럽네
그려."
" 내 살다 살다 저런 거지 새끼들은 처음보는군."
자기들도 거지이지만 오히려 화려해 보일 지경이었기에 모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주는 한쪽에 마련된, 귀빈석이라는 팻말이 붙은곳
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글시만 크게 귀빈석이라고 씌어져있을뿐,
단지 거적이 두겹으로 깔려 있는것외에는 다를것이 전혀없었다. 방주 단석
천이 특별히 방주라고해서 다른형제들과 구별지어 앉는것을 원치 않았기때
문이였다. 그나마 장로들의 권고로 팻말을 붙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
다면 누가 방주인지 식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었다. 호연참 장로가 호기심
에 가득 차 있는 뭇거지들을 둘러보며 큰소리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도록 하라."
모든 거지들은 왜 기다리라고 하는지 잠시 이해가 안돼 웅성거리기 시작했
다. 진짜 진짜 추접스런 거지떼들이 이미 등장했는데 또다시 누가 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때엿다. 웅성거리는 거지들의 눈이 일제히 한쪽을 향했고 곧이어 입에서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들이 바라보는쪽에
서 양정이 폴짝 폴짝 뛰며 달려 오고 있었던것이다.
"허거걱."
"뭐, 뭐야 . 저놈은 ."
여기 저기서 헛바람 소리에 이어 경악성이 터져나왔따.
"저럴수가 . 앞서 왔던 거지 새끼들보다 한 수위의 거지가 있을줄이야."
왕거지를 바라보고 느낀 소감들은 대부분 공통좀이 있었다. 아까 앞서 등
장한 거지떼들은 오히려 지금 나타난 거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요 폭포 앞의
오줌이며 벼룩의 간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 새끼가 바로 왕거지가 분명하다."
"소문보다 더 추접스런 놈이구나."
"허명이 아니었군."
수많은 개방 거지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양정은 잠시 소변을 보고 오느라
고 지체했던 것인데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겨운 목소리들이 들려오자 그 특
유의 간사한 웃음을 흩날리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개방 방주 단석천은 양
정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일어서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구걸도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수많은 개방 형제들이 바쁜 와중에도 이렇
게 자리해 주어 본 방주는 고맙기 그지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오늘 이와 같
이 모이게 된것은 개방이 본래 거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기상을 드
높이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익히 들어서 알
고 있겠지만 낙양의 왕거지를 초대하게 되었다. 모든 형제들은 힘써 마음의
문을 열고 거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 시키는 한편 내가 거지로서 지금 어
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모두들 한눈 팔지말고
성심을 다해주시해야 할것이다. 혹시나 점심 식사이후의 시간이라 잠 구신
이 눈썹에 매달려 철봉을 하게 되면 꾸벅꾸벅 조는 거지가 있을수 잇으니
그옆에 있는 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뺨을 갈겨버리도록 하라."
잠 귀신이 철봉을 한다는 말에 모든 개방 거지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들
은 웃으면서도 은근히 놀라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했다. 거지들 중에는 몇
년전에 봐왔던 방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앞에 나와서
연설할때에는 늘 권위적이고 경직되었는데 근년에 들어서는 눈부시게 변해
딱딱한 말투는 사라지고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기에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던것이다.
웃고 잇는 거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단석천은 말이었다.
"자, 낙양에서 멀이 이곳까지 온 왕거지 나오게나."
소개의 말을 받고서 양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지들은 마치 부채를 활
짝 펼쳐 놓은것처럼 대열을 갖추고 있었고 그 모든 눈길의 중심에 양정이
서있는 형태였다.
"네, 험험. 먼저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요. 갱방에는 그나저나
거지분들이 참으로 많으 시군요. 헤헤. 별것도 아닌 저를 이처럼 귀한 자
리에 오게 해주신 방주님과 장로님들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화주신 거지님들
꼐도 감사를 드립니다.
헤헤. 음. 제일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거지로서 자부심을 갖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요. 헤헤헤."
거기까지 말하며 헤헤거리던 양정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버리지만도 못한 거지 새끼들아 ~. "
기대에 충반하던 개방의 뭇거지들은 느닷없이 욕을 얻어먹자 황당함을 느
낌과 동시에 열을 받아 일순 술렁이다가 고성을 질러댔다.
"야 뭐라고? 왕거지 너 죽고싶냐?"
"저런 싸가지 없는 놈 보게나."
"당장 물러가라 썩을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아무리 왕거지라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는지 삽시간에 고함소리가 터져
나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개방 방주와 장로들이 없었다면 달려들
어 주먹이라도 날렸을 것이다. 양정은 그런 모습에 전혀 개의치 않고 손을
번쩍 들어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거지들은 방주가 그저 흐뭇하게 미소
만 짓고 있음을 확인하고 차츰 수그러 들었다. 양정의 말이 이어졌다.
"....... 라고 누군가가 우리들을 보고 말할지라도 화를 내거나 열받아서
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요. 우린 거지입니다. 거지가 당연히 거지라는 말을
듣는데 뭐가 그리도 화날것이 있겠습니까요?"
모든 거지들은 왕거지가 발설한 '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거지새끼들아 ~ '
라는 말이 자기들한테 한 말이 아니라 인용구엿음을 알고 머쓱해졌다. 역
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과 말을 할 때에는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순간 이엇다. 양정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모두 거지인데 스스로 거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
나는 거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하면 심마에 빠져 힘든 나날을 보낼 수가 있는거죠. 무공만 익
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지만 삶 속에도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단말
입니다요. 헤헤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려야 합
니다. 여러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태연히 받을 수 있었을 때 진정한
거지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입죠. 그래서 늘 거지 신공을 생활화해서 열
심히 갈고 닦아야만 비로소 진짜 거지의 공능을 얻을 수 있는 것입죠."
개방의 방주와 장로들 그리고 모든 거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
한 표정으로 변했다. 헤헤거리며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심오한 무학의 이치
를 듣는 기분이 들었던것이다.
"자, 백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시범을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같습니다. 그럼 먼저......"
그때였다. 양정의 말을 싹둑 자르는 음성이 들려 왔다.
"멈추어라."
모든사람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보니 뒤쪽으로부터 두개
의 그림자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거지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신법은 절묘하기 그지 없었는데 중간에 거지들의 머리를 살짝 밟으면서 두
번 도약하여 두 인영이 맨 앞쪽에 차례로 도달했다. 나타난이는 늙은 거지
와 새파랗게 젋은 거지였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개방방주 단
석천과 팔장로들은 안색이 급변했다.
"태, 태상 장로님!"
호연참 장로의 입에서 놀람에 겨운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바로 뒤를 이어
팔장로가 머리를 조아렸다.
"태상 장로님을 뵈옵습니다."
"하하, 그래 잘 있었느냐."
태상 장로라 불리는 늙은 거지의 출현으로 뭇 거지들은 어리벙벙해져 버렸
다. 모두들 개방에 유일하게 태상 장로가 한분 계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분타주들조차 한번도 그 실체를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갑작스레 모습
을 드러낸 것이다.
"주 사숙님! 그 동안 별고 없으셧습니까?"
방주 단석천도 느닷없는 막내 사숙의 출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내라는
말이 들어가서 좀 어리게 느껴지지만 사실 방주보다 열 살 정도 많아서 현
재 백여세 가량 되었다. 그의 이름은 주유생이고 별호는 동뢰서광(東雷西光
) 이었다. 동뢰서광이란 동에서 우레 소리가 들리고 서쪽에서 번개 빛이 번
쩍인다는 뜻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
할 수있었다. 방주 단석천의 마음에 사숙은 대단한 인물로 새겨져있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방주 자리는 주유생 사숙에게 내정되어있었는데 사십여세
쯤 되었을 어느 날인가부터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더니만 천방지축 좌충우돌
하는 성격으로 돌변하더니 급기야 갑자기 잠적하여 수년간 나타나지 않는
일이 잦아지게 되어서 부득불 현재 자신이 방주 자리에 앚게 된것이었다.
사실 무공 수준도 개방 최고의 자질이라고 불렸던지라 주유생 사숙의 돌변
은 아직까지도 이해 할수 없는 수수꼐기 같은 것이었다. 현재에도 개방에서
유일하게 통제 불가능한 사람으로 태상 장로라고는 칭해지나 개방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않아 나타나고 싶을 떄 나타나고 또 사라질 때도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옆에 함꼐나는 젊은거지는 그의 여제자인 이십세의 초운
이었다. 초운은 절강성에서 가장 큰 부자인 초무한의 셋째딸로 어릴적부터
천하제일의 고수를 꿈꾸는, 성격이 괴팍하기로 이를데 없는 말괄량이 였다.
그런데 초무한이 어떤 경로로 주유생과 인연이 닿았는지 딸에게 무공을 가
르쳐달라고 의뢰를 햇고 자유롭기 그지없었던 주유생은 혹을 하나달듯 제자
로 그녀를 받아들여 무공을 전수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된것이었다. 초운은
한참 아름답게 꾸미고 다니며 아가씨라고 불려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히 여자로 알아보기 힘들 정로로 추접스러웠다. 주유생이나 그녀나 거의
더러움의 수준이 왕개촌의 거지들과 맞먹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단지 가슴
이 조금 튀어나왔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여자로그는 생각지 않을 것
이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것이었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때로 뒤덮
여 있기에 그 미추(美醜)를 구분할수 없는 지경이었다. 분명 정상은 아닌것
이다. 팔장로중에 천표와 지승장로가 괴짜라는 소리를 듣는다고는 하지만
주유생과 초운에게는 가히 비할바가 아니었으니 그정도의 심각함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것이었다.
"하하, 너도 잘지냈느냐?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자리에 날 부르지 않았
느냐. 매정한 놈같으니라구."
눈을 가늘게 뜨고 흘기면서 주유생이 말했다.
"아니 어디계신지 알아야 소식을 전하든지 말든지 하지않겠습니까."
방주 단석천이 볼멘소리로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사숙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기에 이렇게 추접스럽게 변했을까?
게가다 전에 봣을땐 말쑥하여 귀엽기만 하던 초운까지 더럽기 그지없어니
참으로 이 사제지간은 알수가 없구나.'
주유생은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렷다.
"하하. 그렇기도 하구나. "
주유생은 크게 웃고서 몸을 돌려 양정을 노려봤다. 양정은 갑작스럽게 나
타난 늙은거지가 짐짐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노려보자 배시시 웃어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달리 지금
으로서는 할예기도 없엇기때문이었다. 이럴땐 그냥 웃음으로 때우면되는것
이다.
"도대체 개방이 어떻게 되어 이런 거지에게 교육을 받게 되었더란 말이냐!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일이다. 대개방의 체면이 무너져내리는구나. 이놈,
니가 바로 왕거지렸다. 썩 물러가거라. 이놈아. 아픙로 개방의 모든 교육은
내가 직접 맡도록 하겠다."
주유생의 말에 방주 단석천은 어이가 없엇다.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고 개
방이 작살나는일이 잇더라도 전혀신경 쓰지않고 나몰라라 하던 사숙이 개방
체면을 들먹거리며 모든 교육을 떠맡겟다니! 언제 그가 개방을 위해 힘을
쓴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사숙님, 왕거지는 제가 데려온것이니 그에게 너무 추궁하지 마십시오. 그
저 왕거로 부터 간단히 참 거지의 모습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것이니 제옆에
앉으셔서 재미나게 구경하도록 하시죠."
"뭐라고? 말도 안돼. 구경만 하라니? 넌 대체 웃어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 따위 버르장머리없는 소리를 지껄이느냐? 너의 사부인 헌원사형
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가만히 앉아있기나 하라구? 흥."
주유생은 방주 단석천의 사부까지 들먹인체 대뜸 화내며 쏘우밭우고는 멀
뚱멀뚱 쳐다보는 야정에게로 다가갔다.
"너 이 녀석,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이냐? 삼매진화 탄지신통을 하
려고 한 것이 아니더냐?"
"네, 그거 하려고 했는......"
"꽥."
양정의 대답은 주유생의 고함소리에 잘려 끝을 맺지 못했다.
"나는 지난 일 년여 동안 나의 제와 함께 거지 신공을 연마해왔따. 네 녀
석은 썩 꺼지거라."
양정은 늙은 거지가 대단한 고수라는 것은 알아보았지만 거지 신공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자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감히 왕거지인
자신앞에서 거지 신공운운하다니!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약간 떨진곳에 앉
아 있는 순두부나 마른 멸치등도 어이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것은 몰
라도 거지신공에 대해서 만큼은 그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오던
왕개촌이 아니던가!
'개미 옆구리 터져나오는 소리가 아닐 수 없구나. 오늘 한번 본때를 보여
주어야겟군. 고작 일년여 동안 익힌 거지신공으로 장장 칠년여를 연마한 나
에게 도전을 하겟다니. 허허. '
양정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거지 신공은 짧은 시간에 연마할수 잇는것이 아닙니다요. 늙은 할아버지
거지님. 늙은 할아버지꼐서는 그냥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구경이나 하는 것
이 좋겟습니다요."
할아버지는 원래 다 늙은 사람이기에 굳이 늙은 할아버지라고 할 필요가
없는데도양정은 '늙은' 이라는 말을 꼭 붙혔다. 이젠 젋은 사람에게 맡기고
뒷짐이나 지고있으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여유로움이 배어 있는 양정의
말에 거기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개방방주와 뭇 거지들 - 오! 자신만만하구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서려
있는 저 자부심을 보라. 역시 왕거지에 대한 소문은 헛되지 않았구나.
왕개촌의 거지들 - 음, 역시 형님이다. 가슴까지 시원하구나. 오늘은 그동
안 숨겨왔던 비전들까지 모두 보여 주는 날이 되겟구나. 음하하하. 그나저
나 저 노인장도 할일이 정말 없는가 보구나.
주유생 - 결전은 피할 수 없을것 같구나. 지금까지 일년여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마.
초운 - 뭐야, 저놈은. 너 이 자식. 오늘 임자 만난줄이나 알아라.
주유생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좋다. 이녀석! 오늘 누가 과연 진정한 거지인지 승부를 겨루어
보도록하자!."
방주 단석천은 말리고 싶었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사숙을 제지할
자신이 없었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단석천이 알고
있는 주 사숙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억지로 말리면 인정사정없이
싸움을 걸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리라.
"좋습니다요, 헤헤. 제가 지면 왕거지라는 칭호는 할아버지께서 받으시고
저는 이 바닥에서 그냥 삽시간에 은퇴하도록 하겠습니다요. 그리고 그와 더
불어 낙양에서 제일 토실토실한 개 다섯마리를 드리겠습니다요, 헤헤."
양정이 헤헤거리며 하는 말에 애매한 낙양의 개 다섯 마리의 목숨이 왓다
갔다햇다. 주유생은 개 다섯마리를 준다는 말에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다.
'진짜 이놈은 거지 중의 상거지가 분명하구나, 어째 내기를 해도 꼭 거지
같이 할까!'
"으하하하, 개 다섯마리가 뭐냐. 그것도 내기라고 거는것이냐?"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주유생이 별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양정은 고개
를 갸웃거렸다.
'음, 이거 너무 약했나?'
통박을 굴리고는 다시 말했다.
"헤헤, 좋습니다요. 그럼 스무 마리로 하죠. 됐습니까요?"
"이놈아 , 남자가 되어가지고 고작 개 스무마리내기를 해서 무엇에 쓰겟냐
! 내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음, 이렇게 하자. 만약에 내가 지게 되면
너의 부하가 되고 네놈이 지게 되면 평생 내 부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엄청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방주를 비롯한 뭇 거지들이 술렁거렸다.
왕거지로서는 진다 해도 손해볼 것이 없겠으나 연배로 보나 뭐로 보나 주유
생이 손해가 큰 내기였기때문이다. 방주 단석천이 얼른 주유생의 소매를 붙
들어 이끌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숙님! 왕거지는 보통거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절대 이길수없다니까요.
개방의 태상장로인 사숙이 왕거지의 부하가 되면 저도 난처해지지않습니까!
제발 다른 내기를 하세요."
주유생은 그 말로 인해 더욱 호승심이 솟구쳤다. 원래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는것이 사람의 마음인것이다. 그는 소매를 뿌리치고 단호히 말했다.
"안돼!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다. 절대 되돌릴수 없으니 잠자코 구경이
나해라."
양정은 허리를 두세바퀴 돌리고 목운동도 한 다음 제자리에서 폭짝폴짝 뛰
며 몸을 풀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삼매진화를 펼치도록 하죠."
"좋다."
심판으로는 호연참 장로가 지목되어 엉겹결에 중간에 나서게 되었다. 드디
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거지들은 일순 고요해졌다. 어떤거지도 침조차
삼키지 않았고 눈동자도 깜박이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는 자연스럽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준비"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양정과 주유생은 나란히 섯다. 그리고는 검객이 검
을 빼낼준비를 하듯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세운 채 삼
매진화를 펼칠 준비를 햇다.
"시작!"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둘은 시커먼 손가락을 코에 쑤셔박고는 한 웅큼 코
딱지를 파내더니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비벼댔다.
- 부스스.
손의 때와 함께 코딱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주유생이 고전하리라
여겼으나 뚜껑을 열고보니 의외로 막상막하였다. 누가 더 뛰어난지 가린다
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유생이 큰소리를 친이유를 알수있을것 같았다. 꽤나
많은 시간 남몰래 수련을 한 것이 분명했다. 둘은 그 작은 인간의 코안에
가히 존재하기 힘들만큼 많은 코딱지들을 연거푸 퍼내어 손으로 비벼 말리
느라 정신이 ㅇ벗었다.
"정지!"
호연참 장로는 삼매진화로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달고 여기고 멈추도록했
다. 아마 이 둘을 말리지 않는다면 하루 왠종일, 코가 헐어서 피가 철철
흐를떄까지 파고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삼매진화는 무승부!"
호연참 장로의 말에 개방 방주를 비롯한 뭇 거지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
나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가재는 게편이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설로만 여겨지던 왕거지에 맞설 자가 개방 내에 있다는 것에 그들은 태상
장로 주유생은 열렬리 응원했던 것이고 그가 무승부를 이끌어 내자 이기기
라도 한것처럼 열광햇던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왕개촌의 거지들은 가소
롭다는 듯이 웃었따. 그 웃음에는 이런뜻이 내포 되어있었다.
'왕거지 형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지금은 저렇게 좋아하고 있지만 숨
겨진 비전이 등장하게 되면 모두들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할 것이다.'
사실 왕개촌의 거지들에게 있어서 삼매진호와 탄지신통은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기에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신공이었다. 환호성이 그치고 자리
가 어느 정도 정리 되자 심판인 호연참 장로가 다음 시합의 주제를 말했다.
"이번 시합은 탄지신통입니다. 두 사람이 한조를 이루어 펼치도록 합니다.
"
과거 양정이 낙양의 토지묘에서 시범을 보인 이래 진정한 탄지신통은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널리 전해졌기에 심판으로 나선 호연
참 장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유생은 제자인 초운을 불렀고 양정은 마른 멸치를 불렀다.
"왕거지가 먼저 출수하도록!"
호연참장로의 말에 양정이 코를 벌름 거리다가 냅다 검지손가락을 쑤셔 넣
고 코딱지를 파냈다. 분명 아까 삼매진화를 펼치느라 코딱지가 다 소진되었
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한 움큼이 다시 나오는 것이었다. 그것만
보아도 왕거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뭇거지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
었다. 검지 손가락에 축축하게 달라붙은 누런 덩어리를 다시 빠르게 엄지손
가락으로 이통시키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누런 덩어리는 흐느적거리면서 열
보가량 떨어져 크게 벌리고 있는 마른 멸치의 입을 향해 날아갔다. 모든
거지들은 초조한 시선으로 덩어리를 지켜봤는데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정지된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직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코딱지 뿐잇듯 했
다.
- 슈우욱 ~.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없었으나 마치 그런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는
데 잠시 후 몇방울의 물기를 바닥에 떨군 코딱지는 빨려 들듯이 마른 멸치
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정확히 혓바닥 중간에 놓인 것을 확인한 마른 멸치
가 맛있는 생선회라도 먹는듯 씹어 대자 한순간에 일제히 탄성이 터져나왔
다.
"와아 ~."
"신기로다. 신기"
이것이 바로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탄지신통이었던 것이다. 과거 낙양 토
지묘에서 대결을 벌인 이후로 개방에서도 탄지신통에 대해 익히 들어 왔엇
고 꼭 한번 그신기를 보고자 했던것인데 드디어 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이루헤아리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개중에 비위가 약한 거지들은 넘어오
려는 것을 억지로 참거나 갑자기 벌떡 일어나 뒤로 뛰어가는 이들도 있었는
데 모두 속이 느걸거려 토하고자 하는 거지들이었따. 특히나 입안으로 들어
간 코딱지를 그대로 삼키는 것도 대단한데 자근자근 씹어대는데에는 어지간
한 사람들도 위장이 꼬이는 듯한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개방
거지들에 비해 왕개촌의 거지들은 따분한듯 땅바닥에 낙서를 해대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들 생각엔 애초에 이런시합자체가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
움만큼이나 격차가 많이 나는 것이어서 무의미 한일로밖에 여겨지지않았던
것이다. 주유생은 마른 멸치가 덩어리를 입에 받아 씹는것을 보고 흠칫놀라
기도 했지만 그도 오랜시간 연마한터라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이번에는 태상 장로님의 차례입니다."
호연참 장로의 말에 주유생이 별것 아니라는 듯 호탕하게 웃어 제꼇다. 그
는 방금 전 마른 멸치가 서 있던 곳으로가 입을 벌리고 섰다. 아무래도 어
린 여제자에게 덩어리를 받아먹게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역할을
이렇게 정하기로 한것이다. 초운은 비장감이 서린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자, 갑니다."
초운은 이날을 위해서 사부와 함께 야산에서 수없는 날들을 연마해 왔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코에 손가락을 쑤셔박고는 여지없이 누런 코딱지를 빼
내 튕겼다.
"얍!"
개방의 모든 거지들은 과연 이번에도 왕거지에 필적할만한 기량을 선보일
수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응원했다. 숫자만 하더라도 개방의 거
지들은 수만에 이르는데 반해 왕개촌의 거지는 십여명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대로 된 거지가 없다는 것때문에 개방 거지들은 은연중에 부끄러운 마음
을 가졌엇는데 뜻밖에도 태상 장로의 선전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햇던것이다
. 초운이 날린 코딱지는 양정의 것과는 달리 더 쫀득쫀득한 상태였다. 양정
은 탄지신통을 하기전에 삼매진화를 펼치면서 양질의 덩어리들을 다 쏟아
낸후였기에 제일 상태가 안좋은 덩어리, 즉 축축한 것을 사용할 수 밖에 없
었지만 초운은 지금 막 파낸것이라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엇던 것이다.
어렵기로 따지자면 양정이 날린 덩어리, 손에 진득하게 퍼져버린 쪽이 훨
씬 더 고난이도의 기술이라고 할 수있을것이었다. 어쨋든 모든 개방 거지들
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초운의 누런덩어리는 여지 없이 주유생의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주유생은 왕거지와의 결전을 위해 피나는 훈련을 해왔는데
원래 연습할때에는 그냥 통째로 삼키는 것이 주를 이루었지만 방금전 왕개
촌의 비짝 마른 거지가 보여준 자근자근 씹어서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기는
기술을 보았던 터라 이에 질수 없다고 생각해 코딱지를 씹어 대기 시작했다
.
그 모숩을 보고 모든거지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 개방만세!"
"오호, 놀랍다."
"우리도 할수있다 와아~."
휘익~ 피익~.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거지들은 신바람을
냈다. 주유생은 열렬한 환호소리에 답례라도 하듯이 치아와 치아 사이에
엉겨붙어 끈적거리는 코딱지 까지 아낌없이 혀로 훑어 열심히 씹어 댔다.
수천명의 거지들은 그 모습을 보고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자기 입
안에 코딱지가 들어오기라도 한것척럼 입안가득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그
중 삼분의 일가량은 이런 엽기적인 광경을 보고 사방팔방에 침을 뱉어내느
라 정신이 없었었다. 특히 주유생이 혀를 이리저리 돌리는 광경에서는 아찔
함이 밀려들어 눈을 꼭 감는 거지들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두번째 시합에
서도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말앗다.
"자, 이번 시합도 무승부입니다."
호연참 장로의 말에 다시금 개방의 거지들은 열광의 함성을 내질렀다. 방
주 단석천도 사숙이 이처럼 의외의 성적을 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가
참으로 잘 싸워 나가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열렬히 응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굳이 왕거지에게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것이라 여겼
기 때문이었다.
"자, 세 번째 시합은 타구봉입니다. 소품을 가지고 와라."
"네! 장로님."
호연참이 타구봉법을 위해 준비위원으로 옆에있던 중년의 거지에게 말하자
그는 개 두마리를 끌고 왔다. 개들은 충분히 마련되어있었는데 왕거지가
시범 보일때 사용하기 위해 십여마리의 개가 배치되어있었던것이다. 이 개
들은 금령지방에서 제일 성깔이 지랄 같은 놈들로 평소에 개방 거지들이 눈
여겨 두었는데 오늘의 희생 제물로 이곳까지 오게 된것이었다. 두 마리 개
는 양정과 주유생앞에 끌려왔는데 하나는 검둥이었고 하나는 누렁이였다.
양정 앞에 선 검둥이는 눈을 아래로 깔고 꼬리를 내린채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엇다. 그 이유는 낙양의 수많은 개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
고있는 양정에게서 정체를 알 수없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와 검둥이를 압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유생 앞에 놓인 누렁이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윗니를 드러내 보이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냈다. 주유생은 유독 자기
에게만 이빨을 드러내는 누렁이를 보며 몽둥이를 꼬나 쥐었다. 멍청한 개가
사람을 못알아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개새끼 보게나. 넌 오늘 죽었다.'
호연참이 준비가 다 끝낫음을 보고 시작을 알렸다.
"타구 봉법 개시!"
개시! 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양정과 주유생은 몽둥이를 사정없이 내
리치며 각기 검둥이와 누렁이를 작살내기 시작했다. 타구봉법은 '인정사정
없이'와 '쉰틈없이' 라는 두 구절로 특징지어지는 것으로 한번 걸렷다 하면
도망 칠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숨도 제대로 못쉬고 세상을 하직하고 마는
공포의 몽둥이질이었다. 그러니 애꿋은 개두마리만 어이없이 희생될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평상시에 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건만 그렇
지 못했기에 오늘날 이런 비극을 초래하고 만것이니 모든 개들은 이 일을
교훈삼아 마음에 새기고 대오 각성하여야 할것이다.
- 퍼퍽 퍼퍼퍽 퍽퍽
각자의 몽둥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개를 작살내고 있었다.
- 깨갱 깨갱 낑 낑 끼 기.
처음에는 나름대로 고통에 겨워 깨깽 대더니만 결국 그 소리마저 잦아들
며 두 마리의 개는 피떡이 된채 끝내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타구봉법은
그 몽둥이질이 가볍고 거침없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시원하게 해 주
는 것이 특징이랄수 있었다. 하지만 긑에가서는 거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데 수많은 개방의 거지들도 처음엔 개운
해 하다가 살과 피가 튀며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개들이 죽어가자 마음
한구석에 연민의 정이 피어오름을 금할수가 없었다. 개중에 마음이 여린
거지들은 눈물을 글썽이다가 끝내 주르르 눈물을 흘렷다. 반면에 왕개촌의
거지들에게는 타구봉법은 삶의 한부분이었다. 그들은 전혀 거림낌없이 자리
를 털고 일어나더니만 원래 개였다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형체가 변해버린
개들의 육편들을 빠르게 마대 자루에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양정은
그런 거지들을 격려하는 것을 잊지않았다.
"야 , 조각난것까지 빠짐없이 주워라. 그리고 두명은 저쪽뒤에 가서 끝난
후에 먹을수 있도록 불 피우고 지금부터 구워라. 힘썻더니만 배고프구나."
"네."
왕개촌 거지들의 힘찬 대답 소리를 듣고 한순간 멍해져있던 호연참 장로가
더듬거리며 말했따.
"이, 이번 셋째 판도 무승부입니다."
마음이 여린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 개들을 좋아했던 것인지 그는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개방의 거지들은 연민의 정을 느끼면
서 바라보고 있다가 왕거지가 그 개조차도 구우라는 말을 하지 진짜 거지
새끼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피떡이 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개의 주검앞에서 당당히 구워라 하고 말하는 것은 거지로서 신의 경지
에 이르지 않고서는 절대 할수 없는 말이라 여겨쪗던 것이다. 세 번쨰 판까
지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며 승부를 내지 못하게 되자 호 장로는 그 다음
에 무엇을 해야할지 난감한 지경에 빠졋다. 자신의 지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왕거지에게 물어 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음, 그 다음은 무엇으로 하는게 좋겠나?"
"제 생각으로는 구강악취공으로 한느 것이 좋을것같습니다. 입김을 불어
더 많은 사람을 기절시키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요."
"구, 구강악취공이라고? 음,그래 좋네. 태상 장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나도 좋다"
주유생은 구강악취공에도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엿던 터라 이번에도 자신만
만했다.이런날을 위해 주로 냄새가 많이 나고 입안에서 잘 썩을 것 같은 음
식을 골라 먹었던 그였다. 연마하는 도중에 스스로 질식할뻔한 고비도 넘기
면서 익혀왔기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네
번쨰 시합이 구강악취공으로 결정되자 장로들의 지시로 앞쪽에 앉아 있던
개방 제자들 백여명이 선발되었다. 그리고 절대 그럴리는 없겟지만 혹시라
다도 이들 모두가 구강악취공에 당해 쓰러지면 그 다음을 위해 후발대로 다
시 백여 명이 예비되었다. 먼저 뽑혀진 백여명은 불길한 마음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강한 불안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왕거지쪽 보
다는 주유생쪽에 자리잡히길 간절히 기도했다. 아무래도 왕거지가 더욱 위
력적이고 파괴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중간이나 뒤쪽에 있어 뽑히지 않
은 거지들은 , 역시 앞줄은 예나 지금이나 앉아서는 안되는 자리임을 실감
하고 줄을 잘선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두근거리는 마음
으로 구강악취공의 위력이 어떻게 펼쳐질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바라보
았다. 호연참 장로는 선발된 인원을 절반으로 나누어 오십명씩 양정과 주유
생 앞에 서게 했다. 그들이 선자리는 방금전 검둥이와 누렁이가 꺠갱 대며
죽어 갓던 자리엿는지라 핏자국과 몽둥이질에 의해 밀려 나가거나 뽑혀진
털들이 가득했기에 더욱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호장로가 그들에게 억지로
호흡을 참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음에 크게 외쳤다.
"네번째 시합, 구강악취공 시작!"
주유생은 시작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에 깊게 숨을 들이마신후 일렬
로 늘어선 거지들에게 다가가 숨을 토해냈다. 엄청난 악취가 풍겨 나온듯
하자 곧 맨앞에 있던 거지둘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 풀썩~.
순간적으로 풍겨온 강한 악취에 머리가 텅비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기절해
버린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십여명이 맥없이 쓰러져갔는데 개중에는 눈깔
을 뒤집으며 거품을 무는 거지까지 나와 급히 들것에 실려나가기도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거의 살인적인 악취였던 것이다. 주유
생이 그렇게 거지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있을때 양정은 옆에서 그 모습
을 지켜보고 있다가 씨익 하고 웄었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고
어찌 보면 가소롭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도 했다.
"자, 이리들 나오셔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열 명씩 서세요."
양정이 말하자 그 뜻이 무엇인지 짐작한 거지들의 얼굴 빛이 삽시간에 하
얗게 변했다. 귀찮으니 열명씩 한꺼번에 날려버리겟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
다면 그 위력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임이 분명하리라. 양정은 열
명이 엉거주춤 동그랗게 둘러서서 서로 어깨를 걸치고 있는 틈새에 끼여
들어 숨을 깊게 들이 마셧다. 그렇게 긴 호흡을 하는것은 위 그리고 대장,
십이지장의 외벽에 달라붙어 있는 찌꺼기들의 냄새를 밖으로 끌어내고자 함
이었다.잠시후 양정은 삽시간에 숨을 토해냈다. 시궁창 냄새는 차라리 아름
다운 백합꽃 향기로 느껴질정도로 썩은 냄새가 퍼져나왔따. 일체의 비명조
차 지르지 못하고 열명의 거지는 동시에 허물어졌다.
- 풀썩 ~.
"오호."
"우와."
여기저기서 역시 왕거지야 하는 말들이 터져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유
생은 한방에 십여명을 쓰러뜨리는 그 모습에 흠칫놀랏지만 이제와서 왕거지
를 따라하기는 싫었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명씩 쓰러뜨리며 서른명
째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양정은 처음과 같이 사람들을 무리지어 세운후
다섯번의 숨결로 오십명을 모조리 기절시켜 버렸다. 양정이 오십명을 쓰러
뜨렷을 때에 주유생은 마흔 두명째 거지를 쓰러뜨리고 있었는데 왕거지가
이미 상황을 종료한것을 보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ㅡ 후우~.
숨결을 토해내자 마흔 세번째 거지가 비틀하면서 뒤로 두걸음 움직였다.
하지만 앞의 거지들처럼 맥없이 쓰러지지는 않았다. 입김을 만히 불어내다
보니 그만큼 악취가 닳아져서 위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에 놀란 주유생은
아찔한 상태에서 헤메고 있는 거지에게 잽싸게 다가가 다시 숨결을 불어넣
었다. 그 거지는 이어서 펼쳐진 두번의 연속공격에는 당할수가 없었던지 끝
내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뒤로 주유생은 연속기를 사용하여 세명의 거지를
쓰러뜨렷다. 하지만 끝내 나머지 네명은 쓰러뜨리지 못하고 말았다. 악취가
모조리 바닥나 버렸던 것이다. 승부는 결정 났다. 누가 보더라도 왕거지가
이겼음을 부인 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호연참 장로는 선뜻 왕거지
가 이겼다고 말하기가 난처했다. 태상장로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무슨 역정
을 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눈치를 감지한 양정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
"거지 할아버지 , 이만 승복하시죠."
"안돼, 다시하자 . 잠깐 방심햇던것뿐이야. 흑흑"
주유생이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지켜보던 모
든 거지들은 왕거지가 한수 위임을 인정하고 있엇다. 역시 거지 중의 최고
는 왕거지임을 자시 한번 확인할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방주 단석천도 사숙
이 이정도까지 왕거지에 대적한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비록 승부를 겨
루기전에 지는 사람이 부하가 되리고 약속했지만 진짜로 그럴리는 없을것이
라 생각하였기에 그 문제는 깊이 생각하지않고 일단 승부를 마감지어야겠다
고 여기고 일어나 말했다.
"왕거지 , 자네가 몇수를 더 보여주게나?"
양정도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늙은 할아버지 거지의 마음까지 승복시킬수
없을 터이니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 하겠다고 생각햇던지라 흔쾌히 승낙했다
.
"좋습니다. 이번에는 신검출현을 보여드리도록하겟습니다."
"신검?"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방주를 비롯한 모든거지
들은 앞으로 펼쳐질 신검이 무엇일까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양정을 바라보았
다. 주유생과 그의 제자 초운도 구강악취공에서 현격한 차이로 졋음을 은연
중에 인정했기에 이제는 다른이들처럼 관람자가 되어 바라보았다. 양정이
순두부를 향해 짧게 외쳤다.
"신검(紳檢)을 준비해라."
순두부의 얼굴에 일순 당혹감이 서렸다.
"아니, 그런 엄청난 비전(秘傳)을 여기에서 보여 주어도 되겠습니까, 형님
."
"신검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왕거지의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것이다."
비장함까지 서려잇는 양정의 목소리를 듣자 순두부는 그 심각성을 느끼고
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양정이 느닷없이 큰소리를 질렀다.
"신(紳) . 검 (檢) . 출 (出) . 현 (現)"
그 말에 순두부 옆에 있던 마른 멸치가 얼른 순두부의 등쪽 옷을 걷어붙였
다. 그러자 가히 인간의 뜽짝이라고는 힘든 , 아니 사람의 살결이라고는 믿
어지지않는 , 칠흑 같은 밤보다 더 새까만 등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등
판에 손을 대고 뒤에 서있던 콩나물이 혼신의 힘을 다해 때를 밀어 올렸다.
오호 보라!.
놀랍게도 때가 밀려 올라가는데 어른 팔뚝 두꼐만한 때들이 둘둘 말려 올라
가는것이 아닌가? 눈으로 보지 않고 말로만 들었다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
았으리라. 순두부는 피같고 살같은, 그래서 차라리 분신 같은 때가 벗겨지
자 슬픔이 밀려왔지만 왕개촌의 영광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온
몸을 바쳤다. 인간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않는 엄청난 두꼐의 때를
벗겨낸 콩나물은 몽둥이마냥 형성된 때들을 침을 퉤퉤 뱉어가며 꼭꼭 눌러
검모양을 만들어 내더니 두손으로 양정에게 갖다 바쳤다. 정말이지 신검 출
현이라는 멋있는 말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출현이었따. 양정은 만족스
러운듯 때검을 받아쥐고는, 햇살에 반시켜도 전혀 빛이 나지 않을텐데도 높
이 쳐들어 보엿다. 마치 보검을 보며 감탄하듯이 말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
던 모든 거지들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 허거걱
- 훕!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보검과 신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접해보았지만 때
검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말은 고금을 통틀어 듣도 보도 못햇던 것이다. 그
런데 이윽고 터져 나온 왕거지의 말소리는 그들을 더욱놀라게 하고야 말았
다.
"어검술(御檢漱) ~."
어검술이라는 말은 모든 거지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어검술이란 극
상승의 검법의 경지로 기로써 검을 자유자재로 보내거나 회수한느 검술이었
기 때문 이다.
그때 양정의 앞에는 언제 준비해놨는지 덩치 좋은 개 한마리가 멍한눈으로
그를 바라보고있엇다. 그 개는 자신에게 전개될 불행한 미래를 전혀 예견하
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양정은 크게 외친 다음에 때검을 게에게 냅
다 던졌다. 때검은 직선으로 날아가 개의 면상을 정확히 맞췄는데 주로 개
의 콧구멍과 입을 틀어막는 효과를 보였다. 개는 갑자기 코와 입을 때로 얻
어맞자 숨쉬기가 곤란해지자 앞발로 정신없이 때를 떨구어 내려고 했다. 하
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때들은 콧구멍에 깊숙이 밀려들엇고 입 안으로도
꾸역꾸역 밀려들어갔다. 끝내, 끝끝내 개는 때들에 의해 숨이 막혀 질식사
해버리고 말았다. 죽는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 개의 경우는 참으로 더
럽고 황당하게 죽은 경우라 할 수있었다. 아직까지 시범에 사용되지 않고
대기중이던 개들은 그와 같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부들부들 떨며 오줌을 질
질거렸다. 또한 그광경을 지켜본 모든 거지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뜨악 ~.
그들은 진정한 신검과 어검술의 경지를 보게 된것이었다. 주유생은 숨이
막혀 질식사한 개를 보고는 낄낄거렸다. 자신의 경지로는 도저히 저 때검같
은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할뿐만 아니라 어검술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
이라 이제 승패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상황이 그저 재
밌기만 햇다.
"한가지 더 보여드리죠."
별것도 아니란듯 양정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뭇거지들을 바라보면서
여유있게 말했다. 아직까지 어검술의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던 모두는 한가
지를 더 보여준다고 하자 그저 입을 벌린 채 고개만 까닥까닥 할분이었다.
적어도 그 위력은 어검술을 능가할것이라 여겼기에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했다.
"네, 이번에 펼칠 종목은 천리미향(天里迷香)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에
조금만이라도 묻혀지게 되면 평생토록 추적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겁니다요,
헤헤헤."
그 말을 듣자 모두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평생토록 추적가능한 상태가 되다니?'
'그럼,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 깊은 뜻이 무엇인지 가늠해 보고 있을 때 양정이 말을 이었다.
"예들아, 천리미향을 펼쳐라."
왕개촌의 거지들은 자신들도 시범을 보일 기회가 주어지자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은 채 일제히 손을 바지춤에 집어넣엇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사
타구니 쪽을 맹렬히 긁더니만 작은공만한 크기의 때들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거지들은 그 큰때가 사타구니에서 긇혀져 나온때라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찌 저것이 사람의 사타구니라고 할 수있단말인
가? 아마도 방금전에 신검출현을 보지 못햇다면 정녕 보고도 믿지 못햇을것
이지만 이미 그들은 신검출현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녕 그들이 모
르는것이 잇으니 그 진실을 알게 되엇다면 그생각만으로도 놀라 기절해 버
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진실이란, 왕개촌의 거지들은 아직도 그런 뭉치 서
너개 정도는 충분히 더 꺼낼수 잇을만큼의 분량을 사타구니에 간직하고 있
음을 뜻하는 것이다.
"자, 가서 묻혀라."
양정의 명령이 떨어지자 십여명의 왕개촌 거지들이 일제히 개방거지들의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개방거지들은 난리가 났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때가 묻을까봐 신법을 최대로 전개하고 도망쳤다. 한마디로 난장판이었
다. 아까 왕거지가 말한 내용중에 '한번 묻으면 평생토록 추적이 가능한 상
태가 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묻으면 끝장이라는 생각, 그
러니 오직 이자리에서 도망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던것이다.
"모두들 흩어져라."
"튀어."
"서둘러."
고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거지들은 서로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벌떡 벌떡 일어나 무조건 뛰고 또 뛰었다. 그 와중에 뒤에 있던 거지
들은 미처 앞쪽에서 도망쳐 나오는 거지들의 기세를 피하지 못해 발에 밝혀
서 깔리는 사람도 부지기수 였다. 그 중에 재수 없는 오십여명의 거지들이
끝끝내 모가지에 때를 잔뜩 발림당하고야 말았다. 그 충격에 그들은 모두
혼절하고 말았는데 나머지 천여명의 거지들은 모두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가 버리고 광장에는 때에 발림당해 기절한 오십여명과 아까 구강악취공
에 당해 아직 꺠어나지 못하고 있는 백여명의 거지들 그리고 실실거리며 웃
는 주유생과 초운만이 남아 있을뿐이었다. 개방 방주 단석천과 팔장로들도
다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을수가 없었다. 모든 거지들이 대피하자 덩달아
일단 피신하는것이 상책이라 여기고 그들도 자리를 뜬것이었다.
"헤헤헤. 아직 보여줄것이 많이 남았는데, 헤헤헤."
양정은 주위를 둘러보며 뿌듯한듯 가슴을 펴고 연신 헤헤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