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하네 그리고 나
양달준
감식초 군번 땡감나무에 이파리 한개라도 없어 질 때마다
골목대장이라는 이유로 따 먹었다는데
그 집 앞에서 장난치며 놀던 날이었던가 영감이 염치좋게 날 부르더니 들고 있던 간지대를 툭 던지며 못따겠다는데 아따 하네도 못딴 감을 나가 어츠께 딴다요 잉 그래도 따보라는데
뒤집어쓴 일이 어저께 같아서 그라믄 하네는 소쿠리 들고 주서담으씨요 잉 손에 힘을 있는대로 써서 간지대를 휘두르며 나가 언제 따묵디야 따묵디야 맷맛하냐 맷맛하냐 감나무 한테 따지자 끄터리가 삐쭉한 땡감들이 소쿠리 들고 쳐다보고 있는 하네 볏겨진 머리로 우박에 질새라 툭툭 떨어지고
나는 싸게싸게 말해 나가 그라디야 안그라디야 감나무를 족치고 하네는 아이구메아이구메 도팍같은 감새끼들이 감새끼들이 잉잉 오마오마 니는 먼소락때기를 모락스럽게 쓴다야 하네는 머리에 쌩피가 여러군데 찔금찔금해 수건을 붕대처럼 칭칭 감았다
저녁 무렵 우려서 먹으라며 아짐찮게 준 땡감 한 바가지 들고 오면서 생각했다 성할랑가 몰라
ㅡ하네(할아버지) 전라도 고흥 사투리
ㅡㅡㅡ
벚꽃 오후
양달준
낚시터
매끈한 잉어 한 마리 공중으로 튄다
가출이다
잠잠하던 물이 파장을 일으키며 그물망을 쳐
다시 들어간 잉어를 가둔다
사단이 난 저 풍파는
누구나 한 번쯤은 비밀로 해보고 싶은 일이다
콜라택이었는지 숨겨둔 남자쪽이었는지
바같으로 튀었다 다시 들어간 이웃 집 여자는
저 물고기와 같은 처지
그 여진이 상당한지
이웃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지 못했다는
후담만 무성해 행방이 궁금한데
밖에서 보자며 던져 놓은 미끼줄에
타전을 기다리는 낚시꾼
벚꽃이 조급해 진다
ㅡㅡㅡ
칠월
양달준
궂은날이었지
떨어진 빗물 흩어지는 바닥을 보며
비 그치면 우리도 그럴거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그날의 비는 예보하고 있었던가
무겁게 입다물고 눅눅했던
우리 사랑 결별을
그때처럼 구름이 으르렁대고 장대비 쏟아진다
삭신이 아프고 몸이 쑤신다
오십견이라는 진단에 물리치료가 처방이라지만,
우기철이면 도지는 통증
그녀가 나를 관통하여
마음이 아픈거다
ㅡㅡㅡ
옛 사랑
양달준
능금을
좌판에 진열하려고
목장갑으로 쓱쓱 닦았다
누군가의 입술처럼
도톰하고 빠알간 것
문득
옛 여자 생각 들어 한 입 깨물었더니
핑돌던
그 첫 키스 같은
단 맛
맛있어
묻는 소리에
가슴이 덜컹했다
ㅡㅡㅡ
간고등어
양달준
싸락싸락 싸락눈 소리가 들린다
저 결정적 소리는 생선가게에서 소금 뿌려
간을 하고 풀을 죽이는 일이지
성질이 지랄이었던 나는
검푸른 심해를 휘젓고 다녔던 한마리 고등어였다
그러나 등푸른 시절 오래가지 못했다
한 여자 그물에 걸려
그가 뿌린 소금에 풀죽었으므로
그 입맛에 든 간고등어로 살고 있으므로
그나저나
생선가게서 휙휙 뿌리는 마술에
보기좋게 포개지는 고등어 두 마리
당신과 나 같으네
싸락싸락 눈뿌리던 그 밤
꼿꼿한 지느러미를 포기하고
나란히
같이 누웠던
ㅡㅡㅡ
다리미씨 세탁소
양달준
지난 어제도 구겨진 바지 대신 술병 들고온 화상들
골목 세탁소는 페업 직전이다
다림질로 먹고 사는 세탁소 다리미씨
바람난 여자 야밤 도주하고 앞날이 꼬이더니
다리미 잡어야 할 손이 술병만 잡고 있어
다리미가 열받았는지,
작업대에서 스팀을 연거푸 뱉어내고 있다
희뿌연 한숨 같기도 한데
그가 그만두지 못한건
다 이유가 있다지
구겨진 여자 제대로 다려 걸어두고 싶어서
수소문 중이라는데
다리미 판에서
시커머케 타는 흰 와이셔츠
타들어가는
그의 가슴팍이다
ㅡㅡㅡ
께냐
양달준
당신에 다리 구실을 했던 왕대나무 지팡이를 잘라 피리를 만들어 불어요 구멍이 숭숭 뚫린 대나무에서 신음이 흘러나와요 관절이 안 좋아 다리뼈가 쑤시고 아프다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나는 손마디가 떨리고 호흡은 험준한 고개를 넘어 고산지대에 들어서기도 해요 생을 마친 사람에 정강이뼈로 만들어 불었다는 잉카의 나라 악기처럼 당신이 두고 간 왕대나무 지팡이로 만든 피리에다 내 입술을 대고 인공 호흡을 하면 둥근 무덤에 뚜껑이 열리고 어느 영혼이 슬픈 음악을 주문해요 그럴 땐 나는 악보를 따라 찬 숨을 들이키며 당신의 몸 한 부분을 따습게 잡고 전설을 불어요 그러면 콘도르 한 마리가 마추픽추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여기까지 날아와 창공을 날다 가파른 협곡으로 날개를 틀어 저녁 바람을 재우며 빙빙 돌기도 해요 내 입술에 힘이 부칠때 까지 우리는 하늘과 지상에서 곡예를 해요 측백나무만한 인디오 여인 구멍난 다리뼈 그 까닭을 짚으며,
ㅡ께냐(죽은 연인의 정강이 뼈로 만든 잉카의 전통 악기 피리)
ㅡㅡㅡㅡ
어떤 평화
양달준
노점상들과 단속반들이 대치중이다
잡초는 짓밟혀 비벼진대도 다시 고개를 쳐들어야 잡초라며 끝까지 버티자는 사람들
저것들은 보도블럭에서는 클 수 없다며 뽑아야 한다는 관할 용역꾼들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속에
정오의 해가
다 같이 먹고 살자는 일에 일단은 점심이나 들고 보자며
카드를 꺼내들자
대치를 풀고
그늘을 찾아 도시락에 열중하는
저,
느긋한
평화꾼들
ㅡㅡㅡ
소하동에서
ㅡ기형도를 생각하며
양달준
냇가에 느티나무가 아침의 햇살을 받아
잎을 키우며 살았던
뚝방촌,
소식도 없이 고속철도 역이 생기고
쓰러지는 낮은 지붕들에 신음을
포크레인이 퍼다 버려
원주민들은 먼지로 흩어졌지만
가뭇없이 가버린 한 사람의 흔적은 남아 있어
안양천변에 개망초들이 해마다 찾아오지
별들도 저무는 밤중이면
숲속의 자작나무들이
흰 눈을 뜨고 지켜주던 뚝방에 앉아
샛강에 푸른 잉크를 뿌리며
가난한 날들을 기록하였을
안개의 시인
그는 먼저 갔으나 알고 있으리
개발 앞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뚝방촌의 절망을
다시 또 찾아와 희망으로 만발하는
들꽃들을
두 눈뜨고
지켜보고 있으리
ㅡㅡㅡ
올챙이 같은 누나
양달준
배에 복수가 차 임산부처럼 누워 있는 누님을 보며 해산날이 언제냐고 농을 건넸다 이 나이에 아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그말이 가루약처럼 쓰디쓰게 들렸다 지금 한 여자의 몸 안에는 복수 꽃 한창이다 그꽃 보러 여럿 다녀갔다 사람들은 꽃이 얼마 못 가 시들 것 같다며 조의금 같은 흰 봉투를 두고 갔다 채칵채칵 시계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불씨마저 꺼져가는 시간 가망이 없다지만 손을 써봐야지 작은 조카는 지몸의 일부를 덜어 한마리 올챙이에게 접을 붙여 주기로 했다 한고비 넘긴 병실 거죽이 쭈글쭈글한 눈만 꿈벅이는 외계인 배에 청진기를 대본 주치의는 복수가 빠졌으니 차차 사람이 될거라는데 죽었다 살아난 누님 어느 우주에 다녀왔을까,
ㅡㅡㅡㅡㅡㅡㅡ
대설특보
양달준
공장 굴뚝의 연기는 함박눈인가
지하의 기계들이 잘도 도는지 펄펄 날린다
굴뚝의 연기는
공돌이 공순이들에 노동이다
뭉텅한 연기는
지하에서 고단한 몸들이 두팔 벌리고 쳐다보고 싶은
공중에 눈발이다
대설특보가 내려지면 공장의 손과 발들은
쉴틈이 없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굴뚝은
허리도 비대해 사장을 빼다 박았다
굴뚝은 밤새도록 대설특보다
그 누군가의 명령으로
ㅡㅡㅡ
벌래와 황도
양달준
우주 한 개를 통째로 먹다
외계인을
만났다
ㅡㅡㅡ
탈출을 꿈꾸다
양달준
자고나면 잘려나간 산이 또 보인다
이 도시는 벌목으로 숨조차 가누기 힘들다
늦었지만
원시림 같은 산림으로 가야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송진 램프를 켜는 저녁이면
숲의 문장을 읽으며
황폐해진 마음을 싸목싸목 다스리고 싶다
의료보험증을 발급해준 이 도시는 사막
사람들은 고갈되어 누렇다
너나 모두가 나무 한 뿌리 없는 노숙자
뿌리를 찾아 가고 싶으다
사시사철 푸른 천등산 비자림은 나에 본적지
바람의 자양분으로 번창한 숲
거기 움막 하나 짓고
별뜨면 별을 불러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싶다
몰골이 누런 이 도시로 부터 추방 당해
망명하고 싶으다
ㅡ천등산 비자림(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산)
ㅡㅡㅡ
나무 관찰학
양달준
바람 부는 날
나무를 보시라
바람이 홈런처럼 빠른 속도로 담장을 넘어가면
나무 이파리들은 반짝이며
파도 타기를 하다가도
불던 바람이 병살타처럼 멈추면
고개를 숙이고 잠잠해진다
바람 부는 날
나무를 보면
한국 시리즈 결승전을 치르는
잠실구장 관중석이 보이고
함성과 탄식이
들린다
ㅡㅡㅡㅡ
청상과부
양달준
카랑카랑 바람 부는 전라도 담양 땅이다
대나무가 울고 있다
울음이 피리 소리 같다
유리에 금가는 소리다
휘어지는 아픔이 부러지는 일보다 고통으로 보이는데
자빠지다 다시 일어나는 탄력은
가늘디가늘다가 굵게
그러면서 길게 뽑아내는 남도의 명창 같다
일찍부터 혼자였던 내 엄니가 그랬다
뒤뜰에서 대나무가 울던 흐린 밤중이면
어린 나를 옆에 두고
육자배기를 구슬프게도 불렀다
흔들리며 한 대목 걸죽하게 우는
낭창낭창한 저 푸른 마디처럼 아슬아슬하게 한대목 꺾다
막걸리에 사카린을 타 마신 날은
더 시퍼렇게 울기도 했는데
대나무
막걸리 한 대접 자시고
저러시나,
ㅡㅡㅡ
외짝구두
양달준
길바닥에 신발 한 짝
원래는 밋밋한 구두였다지
시꺼먼 구두 약을 칠하고 부터
삐까삐까
놀음판에서 빛나는 광이었다나
광은 광인데
그것으로 부족해
똥광이나 비광을 잡으러 쏘다니다
결국,
길거리 신세
노숙자라지
ㅡㅡㅡ
유목의 마을
양달준
히히힝 히히힝 말들이 돌아오고
램프가 심지에 불꽃을 댕기는 저녁
둥근 텐트에서 밀빵 한 조각에 차를 마시며
걱정없는 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밤이면 설산 너머 우주들이 훔쳐보는
사람의 경전이
지구 한 쪽에 거처를 잡고 풀의 힘으로 살아가는데
문명의 접근을 마다한 초록은 더 무성해지고
땔감으로 쓰이는 가축의 똥은 넉넉해
그것으로 삶이 풍족한 그들은
가축을 숭배하는 유목민
북두칠성은 그 곳을 유적지로 점치고 있어
사람도 가축도 유물로 보이는
방목의 울타리에
도굴꾼들은 다녀가지 않았다는데
값으로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지
ㅡㅡㅡ
모텔 출판사
양달준
샤롯데 모텔로 배달을 갔다
명절 선물 사과 상자를 두고 돌아서던 차에
누가 독약 한 사발을 마시고 있는지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테르 연인 롯데 같은 여자가
저러겠지 짐작하며
자가용 번호판이 죄다 덮개로 가려져 있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생각했다
젊은 베르테르 슬픔은, 사랑인가
아니면 고전시대 불륜인가
어쨌건 간에
대낮에 작업 소리 요란한 모텔 샤롯데
첫 페이지만 읽다 덮어버려
끝장이 근질근질 했는데
괴테 어른 없이도 명작 한 권을 찍어대던
모텔 출판사
기승전결 확실한 수작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