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디타스.끊지 17:38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아멘!
하내영이 되고나서 한 가지 저를 찌르는 질문이 있었어요.
탐구적 성향이 강한 저는 (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좋다는 의미는 아님) 너무 답답하고 괴롭기까지 했지요.
왜냐하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직접 깨우쳐주셔야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때로는 허무에 빠지고 싶은 유혹도, 다 벗어던지고 부정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어느날인가 아버지께서 친히 저를 압도하시는 경험을 하게 해주셨어요.
'그대가 이해한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이 이런 뜻이었구나! 아버지의 압도하심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에 놀랐지요.
단순하지 못하고 머리 굴리는 성향을 가진 저의 성향에 딱! 맞게, 제가 무슨 신학생은 아니지만 마치 신학생인 것처럼 저를 공부시키고 교육시키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경배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 *
영적독서 노트성 비오 신부님의 어룩 미카엘라김복임 11.02.01 18:08
우리는 사랑으로 성 갈바리아 산을 올라가야 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거기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 입니다
어떻게 보속 하는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요 ? 그것은 우리 죄를 회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십자가를 사랑과 순종의 정신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여러분을 으스러 뜨리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무겁기는 하지만 힘이 있어서 똑바로 서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바친 시간은 결코 허비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기도에 대한 선물을 오른 손에 쥐고 계십니다 주님은 욕망에 대한 애착에서 우리가 해방된 정도에 따라 또 고집을 버리고 삶을 겸손의 터전 위에 세우는 정도에 따라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역경을 두려워 하지 마삽시요, 역경은 영혼들을 십자가 발 아래로 인도하고 그 역경을 하늘의 입구로 지고 가서 그 분을 만나게 해 줍니다 그 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그 역경도 영복에의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기도 하십시요 , 기도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 하는 사람은 위태롭습니다
평화를 누리십시요, 하느님은 여러분을 사랑 하십니다 은총중에 있는 한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련한 이 세상이 볼수만 있다면 모든 죄인과 불신자들은 그 자리에서 회게 할것입니다
사람들한테서 위안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요 그들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감실) 로 가십시요 , 거기서 여러분의 마음을 털어 놓으십시요 ,위안은 거기서 찿을 것 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강합니다 그는 고통스러워도 눈물을 참을줄 압니다 그는 이웃과 하느님께 자신을 희생하여 위안을 얻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한걸음씩 힘 써 나가십시요
;;가장 중요한 극기는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
주님은 때로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도록 하십니다 그 무게가 참을수 없는 정도라 하여도 그대는 그것을 지고 갈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사랑과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부러워 하는 것은 딱 한가지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고통을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고통만이 한 영혼에게 이렇게 말할 자격을 줍니다
" 저의 하느님 보십시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 하는지 ..."
그대의 인생에서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 십자가의 한 작은 조각만을 지고 가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가장 보기 역겨운 것은 가벼운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하느님을 향해 경건 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기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며 가정에서는 평화의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집으로 꿀을 나르는 꿀벌이 되십시요 그리하여 그대들의 집안에 온유. 평화. 조화 . 겸손 . 자비기 넘치도록 하십시요 )
moowee 11.02.01 22:43
저는 비오신부님의 말씀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비오신부님의 말씀은 "순서" 가 거꾸로 입니다!
비오신부님의 말씀대로 하면 하느님을 따르기에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순서가 역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다른 어떤 고통도 다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고통을 짊어지려 안간힘 쓰다가 떨어져나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비오성인같은 소수의 사람은 그것을 이겨낼 수 있어도 저와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가능"합니다.
비오신부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내맡김의 삶"은 "하느님"이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저의 글 - "과거 성인들의 묵상 방법에 반기를 듭니다." "나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합니다"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내맡긴 영혼은에서)
적어도 저의 경우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어도 인간이 하는 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고, 한계가 있음을 아는데 굳이 어렵게(역순) 헤쳐나갈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극기" 는 가정보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가장 바르고 안전합니다!
100% 내맡기면 예수님이 친히 "스승"이 되어 주셔서 모든 훈련을 다 시켜 주심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조금씩", "때로는 엄청나게" 말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눈물을 감추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계집애"가 된다고 가르쳐왔는데, 그 신화에 절대로 속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니, 영화에 나오는 그 강한 남자나 조폭 두목이나 심지어는 한 나라의 왕이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왜 무릎을 꿇고 찔찔 거리는가? 다른 사람이 앞에 없어서인가?
눈물은 性을 초월합니다. 동물도 눈물울 흘리는데 "사람 새끼"가 눈물이 없으면 어디 그게 사람새끼입니까?
남의 귀한 아들들을 "전쟁"에 몰아내고 죽이고,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나쁜 넘들이 많들어 놓은 "신화"에서 벗어납시다!
눈물은 하느님이 사람(남녀)에게 주신 아주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여성이 모든 면(힘만 빼고)에서 더 강합니다. 여성이 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눈물로 모든 상처를 씻어냅니다. 여성이 눈물이 마르면 그땐 끝입니다. 누구든 죽고 맙니당!
여성이 더 오래 삽니다. 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삶과 생명을 부드럽게 합니다. 물이 마르면 경직되고 경직은 곧 "죽음"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일부러 십자가 가지고 장난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 쓸데없이 십자가를 무겁게 느끼도록 하십니까?
십자가가 무거우면 무거운 것이고, 가벼우면 가벼운 것일 뿐입니다. 인간이 단지 그렇게 느낄 뿐입니다.
가장 가벼운 것이 역겨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가벼워도 하느님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십자가의 "경중의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겨운 것은 "죄"일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해 드려야 하는 것은, 이미 우리를 대신해 당신이 "갈바리 산"을 넘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갈바리산을 또다시 넘어야 한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갈바리산을 넘어야할 사람은 몇이 안 될 것이 뻔합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을 대신 넘어 주신 에수님을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인들의 말씀을 읽을 때 가장 잘못된 것은, 그 성인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처럼 "聖域化" 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쟈게 싸랑하셨던 성인도 하나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인의 말씀도 영적 성장의 초기에는 "낮은 차원"의 이야기도 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 성인을 본받아 그 성인들을 사랑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절대 안됩니다.
성인이 "하느님"을 가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성인들을 통하여 절대 장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