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 오기전 뭔가의 다른 직업을 더 갖기로 고민 하던 중 친구가 플리마켙에서 장사해보지 안겠냐고 물어오길래,
한번 가보자고,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잉글리쉬 타운 플리마켙에 같이 갔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자리 추첨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친구와 같이 줄을 서서 추첨을 했고, 제가 1등을 뽑아 나와있는 자리중에서 3군데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받았습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친구의 도움을 받아 첫번째 건물과 두번째 건물사이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 두자리는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당장 차도 사야되고, 장사를 할려면 물건도 준비해야되고, 우선 처가 오기전 친구와 같은 아이템으로 시작하기로 했고요,
차를 사야 되는데 마침 주유소에 오는 손님차를 사기로 하고 시운전을 해보기로 했는데요,
그 친구는 3시에 와서 휘발유를 넣고 기다리다가 간다고 하고 나의 근무시간은 4시에 끝나고,
그날따라 같이 일하는 펌핑가이가 나오지 않아, 정비사에게 시운전 좀 해보라고 부탁을 하니까,
기꺼이 하겠다고 손씻고 나오는데, 형님이 낮잠을 주무시다가 정비사가 잠깐 시운전 좀 하고 온다는 말에,
형님이 해주시겠다고 그러고는 차를 몰고 가시더니 5분도 안되어 돌아오시더니 차 좋다고 사라고,
정비사가 후드를 한번 열어보더니 부동액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순환기계통에 이상이 있다고 하면서 등을 가지러 간 사이,
차주를 돌려 보내고, 형님이 개런티 한다는 말에 뷰익 리세이버를 $ 3,800 을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차사고 일주일후에 도착하는 처를 JFK 공항으로 픽업을 가야되는데 모르니까 형수님이 대신 운전해주기로 하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
월리암스버그 브릿지에서 섰고 경찰의 도움으로 건넜고 물을 보충하고 겨우겨우 공항에 도착하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있다가 나를 보더니 울더라고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왜 똥차를 샀냐고 쫑알쫑알, 형님이 시운전해보고 산 차라고 그러면 조용히 있다가 차만 막히면 또 쫑알쩡알,
주유소에 들러 형님에게 인사하고 집에 가서 짐을 풀었는데 이런데서 어떻게 사냐고?
결혼전에 얘기했습니다, 난 돈도 없고 거지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그리고 미국에 올때 죽었습니다 하고 오라고,
못한다면 너와는 결혼할 수 없다.
남들은 형님이 주유소도 하고 브루클린이며 져지시티에 상업용 건물이 있으니 동생도 도와주려니들 생각하지만 정반대였고,
처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았습니다.
수요일인가 도착하고 일요일부터 플리마켙에 같이 갔습니다,
아파트3층에서 물건가지고 내려와 차에다 싣고 장사를 갔다가 도로 짐을 내렸다가 다음날 다시 싣기를 반복,
처음에 물건을 차에다 두었다가 차창도 깨지고 물건도 다 도둑맞고, 이탈리안만 사는 동네라 안심했었는데요,
길건너에 사는 히스패닉애들이 털어갔다고 하더군요,
그 아파트를 소개해줬었던 이탈리안에게 얘기를 하니, 애들은 찾았는데 물건은 없다고, 포기를 했었는데요.
돈으로 대신 받어다 줬어요. 도둑놈들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보고 훔친것 같았는데,
이탈리안들이 블락미팅을 하면서 앞으로 그런일이 반복하지 않도록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차에서 내렸다가 다시 실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마피아애들이 도둑놈들 데려다가 훔씬 두들겨 패주고 돈 받아내고요.
그곳에서 몇달을 살고 앞에는 차고, 뒤에는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형님네 주유소는 정비를 하지 않고 컨비니언 스토어를 바꾸고 펌프도 신식으로 설치를 했습니다.
공사하는 동안 야채가게며,생선가게,잡화가게,건축일을 했는데요,
일주일 이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주인들이 하는말이 조XX 가 형님이시냐고 그렇다고 대답하며는요,
진작에 얘기를 하지 나만 입장이 난처했다고 그러고는 해고시켰습니다.
그렇게 예닐곱개의 가게를 전전할때 처는 성당교우의 생선가게에서 일을 했고요,
처가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교우의 가게에서 일하기로 했는데 그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분에게는 컨비니언스 스토어 오픈하면 제수씨가 일할거라고 동네방네 소문만 냈지 막상 오픈하고 나니까 영어도 못하고 못 생겼다고,
안된다고 그래서 져지시티 JSQ 근처의 튀김가게로 일을 갔고요,
저에게는 모빌(MOBIL)매니저먼트 교육을 형님 친구분과 같이 받으라해서 펜실바니아의 킹 오프 프러시아 라는 곳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어머님도 저에게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
주유소도 사주고 말이다, 교육을 받으로 가기전 제 이름으로 주유소를 샀습니다.
어머님의 꿈이 깨지는데 한달이 걸렸습니다.
제 이름으로 산 가게는 형님 친구분에게 줄려고 산것입니다.
그 분은 소셜넘버가 없어서 제 이름으로 산것일뿐 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습니다.
어머님도 더이상 저에게 아무말도 안하셨어요,
그러고는 한달을 할일없이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한달도 되기전에 친구분이 그 주유소를 못하겠다고 그래서 나더러 하시라면서 커미션제로 하자고,
경비 제하고 반반씩 나누자고 그러마하고 갔는데요.
동네는 사우스 플랜필드, 손님은 100% 흑인, 50 샌트치 휘발유를 달래요..
그리고 말시켜서 대답하다보면 $ 2 ~3 넘어가는건 기본,
보름만에 포기하고 다시는 형님하고 일안한다고 어머님에 말씀 드렸는데 아무 말씀도 안하시더라고요.
너 맘대로 하라고, 그러고 다시 집에서 쉬는 사이 처가 일하는 가게에 손님으로 오신분이 노조에서 일할 동양인 목수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는
처가 바로 집으로 전화를 해줬고요,
저 또한 바로 그 사람에게 통화를 해서 내가 하겠다고,,
다음날 오라고해서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목수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그러면서 핼퍼 노조에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던 사람이 한달이 되어도 감감무소식,
형님은 월급 올려줄테니 나오라고 설득해달라고 어머님에게 전화를 해대고,
또 한국에 있는 큰 처남이 전기일을 했는데요,
나와라, 나와 같이 일하면 월급으로 200만원 주겠다고 하고 미국에 온지 4년만에 한국으로 역이민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볼까,
하면서 거절을 했고 거의 자포자기를 해 갈 즈음 져지시티 잡 클럽에서 전화가 왔어요,
내일 아침 6시 30분까지 로컬 325로 가라고요,
매일 늦잠만 자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날려니 죽을맛인데 그래도 모르니까 가자 하고 갔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짜리몽땅한 할아버지가 육두문자를 섞어가면 짱께가 여긴 왠일이냐고,
서류를 보여주고 등록을 하고 세멘트일이 생각보다 힘든데 할 수 있겠냐고, 할 수 있다고 힘차게 대답을 했고,
어떤 사람을 따라가라고 해서 따라간곳이 지금은 없어진 도미니코 버스투어 차고지에 터미널 공사 하는곳이었습니다.
제가 할일은 기술자들이 블럭을 쌓을때 블럭도 올려주고 세멘트도 반죽해서 올려주는것이었습니다.
가르쳐준데로 세멘트와 모래를 배합하고 물을 배합 기계에 넣고 잘 섞어서 외발다리 수레에 담고 어느 정도 찰진가를 확인하고,
날라다주고 기술자들에게 커피며 점심이나 저녁을 사주고 한수 알려 달라하면 잘 가르켜주고, 기술자들이 반죽을 갖다주고 직접 쌓아보라고,
그러면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첫주 3일 일했는데요, 그로스로 $ 360 받었어요,
명세표를 어머님에게 보여드리니 수고하셨다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더라고요.,
현금으로 바꿔다가 어머님과 처에게 반반씩 드리고 줬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한국에서는 핼퍼들이 기술자들의 연장을 닦아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안해줘도 되는데 남아서 기술자들의 연장들을 깨끗하게 닦아놓고 퇴근을 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주는 기계도 먼지를 털어내고 기름칠을 해서 다음날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말입니다.
그러는 사이 기술자들이 잘리던지해서 다른 회사에 가서 얘기를해서 저의 존재가 건설회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노조 지부장의 호출로 사무실에 가니 너가 노예냐고?
개네들 연장이나 닦아주고, 그래서 집에 가봐야 할일도 없는데 오후3시에 집에 가서 뭐하냐고?
내가 오버타임 달라는 소리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하는일이라고..
가는 회사마다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미국애들 회사연장을 사용하면 청소는 커녕 아무데나 던지고 가기 일쑤거든요..
건설회사들이 노조에 인력을 요청할때 누구를 지목하지 않아요,
원하는 숫자를 말해주면 노조에서 순서대로 나가는데 저만 지목을 받아서 미국애들의 질투도 많이 받았어요.
다음에는 인생에 꽃이 피다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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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글 기대하겠습니다...고생 많으셨네요...
경주애인님의 바톤을 이어 받아서 GBA님께서 이민의 삶 이야기를 쓰시기로 하신 모양입니다. 물론 제가 부탁도 드렸구요.ㅎㅎ 아무튼 다음 또 다음을 기다리게 생겼습니다...
God Bless America님의 인내심에 감탄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경우라면 하루 이틀은 버틸지 몰라도 아마 사훌째 되는날은 뛰쳐 나왔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평소의 성실함과 남을 배려하는 님의 행동에 자녀분들도 보고 배운바가 컸기에 미국 사회에서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식 농사도 부러울 정도로 잘 하신걸로 알고 있읍니다.
밝히기가 쉽지않은 가족사와 이민사를 이렇게 글을 올리신 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초기 이민자들께는 시사하는 바가 많을줄 압니다.
앞으로는 좋은일만 생기시길 바라면서 다음글을 염치없이 기다리렵니다.
큰 숙제를 맡으셨네요
숙제 하시는 동안 안 좋았던 일들일랑 모두 휴지통에 버리시고
좋은것만 챙기시길 바랍니다
좋은글 기대합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그 모진 고생을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당당한 GBA 님이 되신 것이겠죠. 쓰신 글- 마음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