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이 전쟁이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2022년 뜨거운 여름, 임진왜란 발발 430주년에 영화 한산(閑山)의 관객몰이가 뜨겁다.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4백만을 넘었다. 그중엔 두 번의 나의 관람도 포함돼있다. 개봉 다음 날 관람은 오랜만의 이순신 영화에 거는 기대감이었다. 일주일 후 두 번째 관람은 매번 문제가 되는 역사적 사실의 확인이었다. 김한민 영화감독은 임진왜란 3대 해전, 한산(閑山)·명량(鳴梁)·노량(露梁) 3부작을 기획하고 있다.
과연 한산이 8년 전 명량의 1,700만 관객을 넘어설지 기대된다. 영화 한산을 전쟁 영화 측면에서 보면 전투 장면은 통쾌하고 영상 기술은 탁월하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영화관의 시원한 냉방 못지않게 거북선의 맹활약은 시원함을 넘어 장쾌함이다. 바라건대 많은 국민의 관람으로 임진왜란의 이해와 성웅 이순신의 정신이 깊이 새겨지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영화 한산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던 대사가 시작과 끝부분에 있다. 투항한 왜군이 묻는다.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이순신이 답한다.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지….” 항왜가 다시 묻는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란 말입니까…?” 이순신은 답하지 않는다. 과연 이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의(義)는 무엇이고 불의(不義)는 무엇인가? 일본의 조선 침략은 불의이고 이를 막기 위한 조선의 싸움은 의라는 뜻일 거다.
정녕 그것만일까? 일본의 조선 침략이 불의인 것은 맞다. 그렇다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의는 무엇인가, 조선이 일본의 영토를 침범했는가? 조선이 일본의 전국시대 내전에 간섭했는가? 아니면 두 나라 간 정치·종교·외교적 마찰이 있었는가? 아니다. 아무런 분쟁도 대립도 없었다. 단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戰國)을 통일했으니 조선도 입조(入朝)하라는 무례였고, 명나라를 치는데 조선이 앞장서라는 정명향도(征明嚮導)의 협박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언감생심, 조선을 침략하고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탐욕, 남의 나라를 빼앗겠다는 도적(盜賊)의 심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일본군은 왜적(倭敵)이 아니라 왜적(倭賊)이었다.
영화 한산의 압권은 적선을 견내량에서 한산도로 끌어내는 유인 작전과 학익진을 펼쳐 적선을 섬멸하는 포위 작전이다. 그러나 이 통쾌한 장면은 영화 한산 못지않게 이순신 장군이 임금 선조에게 올렸던 한산대첩의 승첩 장계가 더 통쾌하고 사실감이 넘친다. 여기서 놓치지 말 것은 이순신 장군도 왜군을 적(敵)이라 하지 않고 도둑(賊)이라 기록한 사실을 이해하며 이 장계를 읽는다.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선이 서로 부딪쳐 싸우기 곤란할 뿐 아니라, 왜적(倭賊)들은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갈 것(賊若勢窮則依岸登陸)이므로 한산도 바다 한가운데로 끌어내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산도는 거제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이 바다라 헤엄쳐 나갈 방법이 없으며 적이 비록 육지에 오르더라도 분명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먼저 판옥선 5~6척을 보내어 선봉으로 나온 적선을 추격해서 엄습하려는 기세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여러 배에 나누어 탄 왜놈들이 일시에 돛을 달고 추격해 오려고 하였습니다.
아군의 선박들이 후퇴하는 척하니 도리어 왜적들이 추격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我船佯退而還彼賊逐之不已).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모든 선박의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鶴翼陣,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의 진법)을 펼치고 일제히 왜선을 향해 나가면서 각각 지자·현자·승자 총통을 쏘게 하여 먼저 한두 척의 적선을 깨트리자, 모든 적선의 왜놈들이 사기가 꺾이어 도망쳤습니다. 여러 장졸이 승리한 기세를 타서 펄쩍펄쩍 뛰며 앞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총탄을 마구 쏘아대니 형세가 바람 같고 우레 같아 적선을 불사르고 왜놈을 사살하기를 거의 한꺼번에 끝내버렸습니다.”(견내량파왜병장)
이순신이 이렇게 왜적을 물리친 전과는 압도적 승리였다. 일본 적선 73척 중 47척 분멸 12척 나포 14척 도주였고 일본 군사 4천~8천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은 판옥선 56척과 거북선 2척 모두 58척이 참전했으나 단 한 척의 전선도 잃지 않았고 사상자는 50명 미만이었다. 완벽한 승첩이었다. 한산대첩뿐 아니라 임진왜란은 도적 떼 왜적(倭賊)을 물리치는 전쟁이었다.
▶ 한산-용의 출현, 영화는 영화로 역사는 역사로 본다
한산대첩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스펙터클 하다. 굳이 허구의 상상이나 역사의 왜곡이 없어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 한산 역시 우려한 장면이 많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다고 지적하려는 의도는 더욱 아니다. 상상의 역사가 자칫 왜곡된 역사를 불러오는 우려 때문이다, 예컨대 거북선의 머리가 들락이는 망상의 구조, 거북선을 부딪쳐 적선을 깨트리는 무모한 충파, 또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쳐내는 첩보전, 여기에 등장하는 항왜 준사와 탐망군 임준영은 명량해전에 관련된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한산대첩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는 목자 김천손의 활약, 즉 미륵산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견내량에 출현한 왜적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한산대첩을 이루는 첩보 제공을 빠트린 일 등은 매우 안타깝다.
한산 해전 못지않게 중요했던 4차 출동의 부산포 해전을 3차 출동의 연장으로 그린 점도 역시 아쉽다. 시기와 인물 그리고 사실의 왜곡이 역사의 진실로 인식될까 걱정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를 곧 역사에 대입하지 않는 수준 높은 관객을 기대하며, 이순신 연구가의 노파심이 한갓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 한산대첩,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분수령이 되다.
한산대첩은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 연합함대와 일본의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이끄는 일본 수군함대가 대등한 전력으로 전략 전술을 겨루는 총력전이었다. 조선은 나라의 존망이 일본은 전쟁의 승패가 걸린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전이었다. 만약 이 해전이 일본의 승리로 제해권을 장악하고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했다면 일본은 수륙 병진으로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로 진격했을 것이다.
한산대첩에서 패한 일본 수군은 ‘앞으로 이순신 함대와는 싸움을 피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엄명을 받는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의기양양했던 왜적의 기세를 여지없이 꺾음으로써 전쟁의 향방을 조선의 승리로 돌려놓는 분수령이 되었다. 왜적들은 이 해전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후 평양을 점령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합류하여 명나라로 진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산대첩의 패배로 보급로가 차단된 일본군은 평양까지 진출한 고니시 유키나가를 포함한 모든 부대가 애써 점령한 조선의 수도 한성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한산 해전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승병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왜적을 쳐부숴야 한다는 백성의 공감대가 민초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전라 좌수사에 천거했던 영의정 겸 도체찰사 류성룡이 평가한 한산대첩이다. “우리나라가 전라도와 충청도, 황해도와 평안도 연해 지역을 지켜냄으로써 군량미를 조달하고 조정의 명령이 통하여 중흥할 수 있었다. 또한 요동의 금주·복주·해주·개주·천진 등지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아서, 명나라 군대가 육로를 통해 구원하러 와 적을 물리치기에 이른 것이 이 한 번의 전투 덕분이었다. 아아! 이것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이순신은 3도의 수군을 이끌고 한산도에 주둔하여 적이 서쪽으로 침범하는 길을 끊었다.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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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역경제신문(http://www.tradetimes.co.kr)
첫댓글 제가 영화 한산을 보고 무역인들의 전문지 [무역경제신문]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부족하지만 일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방진님이십니다. 수준 높은 감상평..감사합니다. 영화<명량>에선..장수의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관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더니..영화 <한산>에서는..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전쟁의 의미를 규정 하여 ...영화의 품격을 높이네요. 모두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대사이지만...애국심과 더불어 관객의 감정선을 적절히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 같아요. ..ㅎ
절제된 이순신, 노련한 어영담, 간절한 나대용, 감독이 의도하는 역할의 인물들.....조금은 주객이 전도된 듯 한 느낌도 있습니다. 이번에 어영담이란 인물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거 같습니다. 임진왜란, 저 도적들의 침략엔 명분도 정의도 없었습니다. 의는커녕 불의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도적들이라 하셨던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역시 멋진 감상평이시네요^^
그런데
저는 깨달음이 낮아서 그런지 아니면 섬나라 왜구의 성격이 잠재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 전쟁을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않네요.
더군다나 준사와 같은 왜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물론 영화에서는 다 표현하지 못한 다른점들과 함께 준사를 철저한 항왜로 변화시켰을거라 생각은 듭니다만~^^
음~
왜적(=왜구)이라는
말 자체에서 이미 불의가 포함되어 있지만요^^
대전엔 하루종일 잔뜩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시원했는데 인천, 서울, 강원쪽엔 비피해가 심하네요ㅠ
더이상 큰피해가 없기를~
옳으신 말씀입니다. 의와 불의를 규정할 수 없는, 이슈가 없는 싸움에 무슨 의가 있고 불의가 있겠습니까. 그저 침탈의 불의에 맞서 싸움을 굳이 의라 할 수 있겠지요. 밤새 퍼붓는 폭우가 걱정입니다. 모두 큰 피해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심에 감읍하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신 줄 압니다.
명량은 황당한 소설로 민중을 사로잡았고,
한산은 첨단 애니메이션으로 민중을 현혹시켰다고 할까요
아무튼 장군님을 선양하는 홍보물로는 성공할수 있으니 만족해야 되는지..
갑자기 육상 전투 전개등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어 한번 더 봐야 할것 같습니다.
의와 불의는 원천적으로 침략할 근거가 없는 불의의 전쟁이니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팩트 여부를 떠나 솔직히 재미는 명량보다 없는 거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더 잘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만,,,,,,
어쨌든 영화로써 충무공 이순신을 다시 한번 범 국민적으로 돌아보고 평가하고 인식하는 계기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그것 만도 대단하고 고마운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감상평 잘읽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졌다는데 피해없어신지요?
어영담이 한산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입이 귀에 걸리려고 합니다. ㅎ
예, 감사합니다. 서울의 피해는 없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강원도로 피신(?) 왔습니다. ㅎㅎ
어영담 회장님 이제 세계적 인물이 되셨습니다.^^
'명량'이 인기몰이를 하고..
'한산'이 조금 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였다..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고증들은 또 다른 학자들이나 책임자들이 논할 것이고..
다만 우리 '이배사'의 역할은..
사실을 사실대로..
좀 더 민중의 역할을 부각시키지 못 한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고..
義와 不義. 倭敵과 倭賊.
영화는 영화로..역사는 역사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강건하십시오!❤
이순신 영화 1탄, 2탄, 3탄, 이순신의 모습이 더 가까이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 감사드립니다.
방진 선생님, 귀한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어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한산, 용의출현'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광양현감을 지낸 '어영담'이란 분이 이순신 장군 휘하의 조방장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어영담(안성기분)이 견내랑에 주둔하고 있는 왜선들을 유인하는 조선수군의 지휘관으로 나오는 데,
실제문헌에 '어영담'이 이일을 맡아서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그 부분은 저도 의아합니다. 왜 갑자기 어영담 장군이? 하면서도 하기야 어영담은 남해의 바닷길을 꿰뚫고 있는 분으로서, 이순신의 무한 신뢰를 받고있는 분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한산 해전 시엔 이순신 함대의 중부장으로 참전했고, 1년 후 계사년 (1593) 4월엔, 어영담이 억울한 누명으로 체직 당할 위기에 처하자 [광양현감 어영담의 유임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소청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11월에 [어영담을 자신의 조방장으로 임명해 주기를 바라는 장계]을 올리게 됩니다. 과연 묵직한 국민배우 안성기 그래서 광양현감 여영담이란 인물이 마치 영화 [한산]의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광양현감 어영담이 전선 3척을 이끌고 왜적의 유인작전을 펼쳤다는 설정은 휙션(fiction)으로 사료됩니다. 한산도 승첩을 아뢴 장계 [견내량파왜병장]에서 이순신은 유인작전을 펼친 전선이 판옥선 5~6척이라고 밝혔지만, 유인작전을 지휘한 장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학익진을 펼친 후 왜적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광양현감 어영담의 역할을 기록한 데서 응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광양현감 어영담이 먼저 돌진하여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트려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쏘아 맞혀서 신의 배로 묶어 왔는데, 문죄하기 전에 화살을 맞은 것이 중상이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목을 베었으며, 다른 왜적을 비롯하여 머리 12급을 베고, 우리나라 사람 1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판옥선 5~6척으로 유인작전을 펼친 장수는 누구일까. 저는 어영담이 판옥선 3척으로 유인작전을 펼쳤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우리 카페지기 격군님께서 어디선가 유인작전을 펼친 장수는 전부장이었던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장황한 답변 죄송합니다. 명답은 단순 명료해야 하는데요….
@방진 방진 선생님, 사려깊은 귀한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남해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10년전에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란 특별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에 제장명 교수로부터 '이순신의 전략전술과 해전 승리'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순신의 생애와 임진왜란 해전에 이르기 까지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아주 소상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물론 한산해전에 대한 강의도 열강하였습니다.
한산해전의 전개과정에서 견내량의 왜선을 유인하기 위해 전선 5~6척을 투입하여 유인계를 썼는데, 이때 판옥선단을 인솔한 장수가 방답첨사였던 李純信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문제를 제기한 것은 '격군'님이 카페지기로 있는 이 카페에서 어찌 교수님의 역사인식과 다른 '어영담'으로 기정사실화 하는 느낌이 들어 사실확인을 하고 싶어 방진 선생님에게 문헌의 기록이 있는 지를 문의하게 된 것입니다.
제교수님의 강의 내용은 교재에도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이덕일 아 그러시군요, 격군님은 이순신 전문가 중에서도 가장 학문적 조예가 깊으신 분입니다. 저도 연구에 의문이 생기면 자주 여쭙곤 합니다. 혹시 제 교수님 강의 교재에 유인한 장수가 방답첨사 이순신이란 사료적 근거가 제시되었는지요? 저도 궁금해서 여쭈려는 참이었습니다. 영화 [한산] 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영화 예술이 허구의 상상력을 용인하는장르인지라, 그래서 우리 카페에 많은 분들이 이미 지적을 하신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방진 사료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판옥선 5-6척을 인솔한 장수는 방답첨사 였던 동명 李純信이었다."
이것이 교제에 있는 인솔장수에 대한 부분의 글입니다.
그리고 제교수님은 한산 해전에 출전한 거북선은 3척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방진님~ 칼럼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영화 칼럼글로 제게도 커다란 도움의 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해서 너무너무 감사함입니다~😊
늘 강건하시고 계속 좋은글 부탁드립니당^^
아이고! 감사합니다 ^^ 잘 지내시지요?
세월 좋은 날 어서와서, 통영도 가고 뵙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방진 휴가차 통영 한 번 오시면 좋겠습니다~
@김응함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어영담의 배역이 인상적이더라구요. 사실처럼 느껴졌구요. 아니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의와 불의, 왜적에 관한 표현 등 공부가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역동적 활동을 하시는 마하수님^^ 반갑습니다. 빨리 좋은 날이 와서 뵐 수 있기 바랍니다. 늘 행복하세요.^^,
의와 불의의 싸움이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정말 잘 읽고
공부 많이 됬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