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이의 인사예절
“안녕하세요? 목사님!”
2024년 6월 20일 폭염이 쏟아지던 날 그늘이 드리워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중학생 세준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건넨 인사 한 마디다. 길가의 텃밭에서 물을 주고 잡초 제거에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일부러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치지 않았으니 누구나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중학교 2학년에게 담임목사는 먼저 말을 건네기에는 여간 어렵고 어색한 사이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치기가 편했을 텐데도 그 아이는 이렇게 수줍은 인사를 잊지 않았다. 세준이는 무남독녀 외딸을 둔 이원상(李元尙) 장로, 곽영애 권사의 늦둥이 아들이니 여느 집보다 더욱더 소중한 귀남이다. 그는 중학생이 된 후 그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른 예배도 꼭 참석하는데 주일 오전 9시 중등부 예배를 마치고 낮 11시 예배는 물론 주일 오후, 수요일 저녁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있다. 수요일 저녁예배는 교회 방송실에서 영상과 음향을 담당하는 제 엄마를 돕기도 한다. 요즘 세태에 비하면 보기 드문 중학생이다. 몇 년 전 어떤 교인이 멀리서 마주보며 걸어오다가 목사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샛길로 빠지는 일이 있었다. 일부러 피하는 게 역력했다. 그래도 그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는데도 인사하지 않고 지나치는 교인도 있으니 말이다. 어느 새 인사예절이 사라지고 있는 삭막한 시대가 된 느낌이다. 이제는 남녀노소 그 누구라도 인사를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지 싶다. 이렇게 삭막한 때라서 그런지 세준이의 인사예절이 남달라 보였다. 인사를 잘하는 아이에게서 이 시대의 희망을 본다면 너무 지나친 이야기일까?
인사(人事)는 글자 그대로는 ‘사람의 일’이고 사전적 의미로는 ‘안부를 묻거나 공경하여 예를 표하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인류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1969년 7월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하면서 인류는 위대한 도약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그 이후 무인 우주선을 발사하여 태양계를 탐사하는 등 우주를 향한 인간의 도전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지구는 어느새 촌(村)이라 부를 정도로 작아졌다. 디지털(digital)은 진보하는 시대와 미래의 상징어가 되었다. 국력신장, 경제발전, 첨단과학은 우리네 삶의 질을 매우 높여 놓았다. 그러나 이런 첨단시대는 고령화, 고층화, 고립화라는 삼고시대를 부추기고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삶을 심화시켰다. 이제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인사예절은 전설의 고향에서 다룰 주제가 된 듯하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도 옆집 아파트는 미국보다 먼먼 이웃이다. 재 너머에 사는 개똥이네 형편을 염려하던 그 시절은 옛이야기 한토막이다. 컴퓨터 발명과 인터넷 보급으로 전자우편이 대중화되면서 훨씬 편리하게 너와의 소통할 길이 활짝 열렸지만 안부 문자는 난무하는 삭제 대상의 스팸 문자로 취급받는다. 오히려 상호 간에 높은 장벽 하나가 더 설치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인사예절이 사라진 불행한 시대의 단면이다. 인사(人事)가 사라지니 인상(人相) 쓰게 되고 범죄가 일상(日常)이 되고 말았다.
이런 시류(時流)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도 스며들고는 사랑으로 가득해야 할 이곳을 싸늘하게 만든다. 하나가 되라고 힘주어 강조하던 2천 년 교회 전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틈바구니를 이용하여 마귀란 놈이 더욱더 교활한 짓거리로 행패부리고 교회를 갈라지게 한다. 끼리끼리만 소통했던 고린도교회의 추악한 진상이 오늘의 교회를 강타하고 있다. 서로 존중하고 존경해야 할 성도 간 교제의 기본 메뉴인 인사예절이 자취를 감춘 탓 같다. 천국이 어떤 곳일지 묻는다면 필시 바르게 인사예절을 갖춘 곳일 게다. 어른을 보면 무조건 인사했던 그 시절, 아이를 보면 잘 지내는지 묻는 어른의 자상함이 흐르던 그때가 진정 천국이었다. 그런 인사가 일상이었던 그 시대에 배는 주리고 살았는지 몰라도 대신 따뜻하고 자상한 인격이 풍부하게 형성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성장한 어느 목회자는 교회 영구 표어를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로 정하고 인사 잘하는 교회를 꿈꾸고 있다. 인사를 잘해야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는 발 푼을 팔며 만나야 가능하다. 그 만남에서 나누는 몇 마디 대화, 작은 행동이 곧 인사다. 생각보다 인사는 어렵지 않다. 늘 고독 속에서 사는 노인을 불쑥 찾아가서 잠깐 기도하고 돌아오면 그처럼 좋은 인사가 없다. 또 언제나 혼밥 하는 어른과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기, 따뜻하게 보낸 문자에 하트 아이콘 보내기, 일면식이 전혀 없어도 살짝 올린 입초리로 목례하기, 아픈 사람 내 기도 속으로 초청하기, 낯선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며 안부 묻기, 뒤늦게라도 축하 한마디 전해주기, 용건 없이 전화 걸기, 타인의 말에 공감하기, 식사 후 물 떠다 주기, 일주일 만에 만난 너를 안아주기, 장날에 산 자두 몇 개 전달하기, 신발 가지런히 놓아주기, 어른이 들어오면 잠시라도 일어나기, 그냥 지나쳐도 모를 뒤통수에다 아는 척 하기, 복음 전도하기 등등이 모두 인사다. 타락한 인간에게 독생자를 보내시고 약속하신 영생의 선물은 인간이 창조주께 받은 최고의 인사가 아닐까? 그분에게 무릎 꿇고 납작 엎드리는 것이 곧 인간이 갖추어야 할 인사요 예의요 곧 예배다. 세준이처럼 인사할 줄 아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걸고 기도할 사명을 깨닫자. 싹수가 푸르러야 열매 맺을 확률이 높다. 인사는 만사(萬事)이니까 말이다.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린도전서 16:20).
2024년 6월 22일 대화면 땀띠공원에서 개최되는 평창지방 중등부 풋살 대회 출전을 앞두고 봉평교회 풋살 선수들, 세준이는 골키퍼를 맡았다(오른쪽 세번째)
풋살대회 나가기 직전 점심식사
교회 로뎀나무 카페에서 세준이와 함께 (2024년 6월 30일)
중등부 분반공부 시간에 이선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첫댓글 세준이 앞 날을 하나님 축복하소서